
“정옥아, 나 어떵 허코 이? 배가 막 고프다게....”
“어머니…. 아까 식사 해수게! 좋아허시는 고등어 구이영 언니가 해 온 호박잎 국에 밥 혼 그릇을 다 비워수다….”
‘배고프다’라는 말처럼 서러운 일이 또 있을까? 1923년생인 103세 어머니가 요즘 들어 자주 하시는 말씀이 ‘배고프다, 먹을 거 도라!(주라)’는 요청이다. 애써 식사를 차려 놓았는데 ‘못 드시겠다’라는 말보다야 백번 천번 배부른 소리지만, 어머니의 ‘배고프다’라는 말은 참으로 슬프고도 쓸쓸하다.
이후에 어머니가 천국 가시고 나서 덩그러니 비어 있는 어머니의 식탁을 볼 때마다, 나는 얼마나 자주 울먹이며 잘못 해 드린 흔적들을 속절없이 바라보게 될 것인지…. 오래도록 내 가슴을 울릴 후회와 한탄은 또 얼마나 자주 하게 될는지…. “이 국은 누게가 끓여시니? 호박잎도 쿠숭허고(구수하고), 촐레(반찬)도 잘 촐려신게!(차렸네)....” 아, 저 말은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자주 하시던 식사 후의 고마운 표현이 아니던가.
어머니에게 특별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간략하게 기록해 놓는 일기장을 펼쳐서 오늘의 일상을 기록해 놓는다. 적는 김에 기후에 대해서도 몇 자 옮겨본다. ‘연일 기세를 올리고 있는 올여름 폭염은 관측 사상 최고 수준이다. 폭염 지표인 일 최고 평균기온은 29.9도. 30도에 근접하며 역대 최악의 폭염이 있었던 1994년과 2018년을 넘어선 수치다. 이러다가 지구가 다 타버리는 건 아닐까.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냈지만, 우리 아이들은 어떻게 이 무자비한 여름을 견뎌낼 것인가. 아니, 우선은 103세 어머니가 이 여름을 무사히 견뎌내셔야 할 텐데.....’라고. 그리고 8월의 기록을 펼쳐보니 2⁓3주 전부터 유독 ‘배고프다’라는 상황이 자주 등장한다.
8월 12일의 일기는 다음과 같다; 화요일 새벽 어머니가 배가 고프다 하시면서 ‘달걀 삶은 거 하나만 달라’고 하셨다. 껍질을 까드리자 허겁지겁 부리나케 드신다. 저러다 목이 메면 큰 일이지 싶어서 얼른 물 사발을 가져다드렸다. 참 이상한 일이다. 전에 없이 ‘배고프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도 식사를 잘하시고서는 이웃이나 친척이 방문하면, 첫 마디가 ‘배가 고프다’라는 하소연이었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며느리가 시어머니 밥을 굶긴다’라는 소리를 들으며, 속은 속대로 애는 애대로 많이 끓이셨다. 할머니는 놀라울 만치 밥을 많이 드셨는데, 문제는 당신이 밥을 드셨는지를 잊어버리는 거였다. 드시고도 여전히 배가 고파서 자꾸 먹을 것을 달라시고, 드리는 대로 다 드시고선 방구석마다 무룩무룩(무더기무더기) 똥을 누고 다니셨다. 그리곤 그 똥을 손으로 집어서는 벽과 문틈에다 도배하듯 발라놓고, 이불 속에도 숨겨놓고, 밥사발에도 담아 두셨다. 그 뒤처리는 모두 어머니의 몫이었다.
보리 검질(김)을 매고 집으로 돌아온 정월의 매서운 저녁 어머니는 할머니를 목욕시켜 드린 후, 이부자리와 옷가지를 구덕에 잔뜩 짊어지시고 바다로 달려 가셨다. 솟아나는 용천수에 오물을 흘려보내면서,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오늘도 이 글은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어쨌든 2남 7녀를 키우면서 치매 시어머니까지 책임졌던 어머니의 상황에 비하면, 나의 경우는 그저 투정에 불과하다. 요즘은 방안에서 사용이 가능한 이동 변기가 있는 데다, 기저귀 또한 몇 번이고 마음껏 갈아입힐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가. 그래도 ‘배가 고프다’라는 소리는 요즘 같은 세상에선 쉽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 어머니 김성춘 여사님은 절대로 배가 고파서는 안 되지. 결단코 배고픈 설움이 인생의 한 순간에도 스며들지 못하도록 단단히 보살펴드려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요양보호사 표준교재를 펼쳐보면, ‘치매 대상자의 음식 섭취 관련 문제행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p.457⁓458); '치매 대상자는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계속 배고픔을 호소하고 음식이 아닌 것을 먹거나 음식을 거부할 수 있어 영양 관리가 필요하다. 치매 대상자가 노인일 경우, 하루 필요 열량은 1500⁓1600Kcal이지만 배회 등이 심하여 활동이 많은 경우 섭취량을 늘려 영양 섭취와 배설의 균형을 맞춘다. 또한 계속 같은 종류의 음식만 먹거나 밥을 먹고도 계속 식사를 요구하며, 단추·종이·비닐봉지·변·비누·샴푸·틀니·세제 등을 입에 넣고 우물거린다.’
아직 어머니는 이처럼 심각한 증세를 보이지는 않지만, 밥을 드시고도 돌아서면 배가 고프다 하시니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늘은 어머니를 모시고 좋아하시는 숯불 갈빗집으로 갔다. 모처럼 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나면 ‘한동안 배고픈 허기를 누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속셈을 안고서. 더욱이 우리를 알아보는 곳이라, 편안하고 친절한 데다가 저렴하기도 해서 어머니의 배고픔을 달래기엔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무엇보다도 서민적이라서 화장을 하거나 치장을 하거나 격식을 갖추지 않아도 좋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게다가 103세 어머니를 모시고 가도 이래저래 눈치가 보이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셀프 시스템으로 진열된 고기와 채소, 떡, 밥 등을 마음대로 가져다가 자유롭게 먹는다. 얼마를 먹든지 1인당 식사비는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어머니처럼 그다지 식사량이 많지 않은 사람은 본전이 생각 나는 곳이긴 하다. 그래도 식구들이 갖다 먹는 음식의 총량을 가늠해 보면 그다지 부담스럽지가 않다.
어머니도 주위를 둘러보시고 사람들이 자유롭고 편안하게 식사하는 게 마음에 드시는지, 생각보다 고기를 많이 드셨다. 하기야 어금니 하나가 빠진 이외로는 이빨이 튼튼해서 갈비도 마음껏 뜯으시는 분이 아니신가.
마침, 우리 자리가 계산대 옆이라, 식당의 여사장님이 어머니의 식사 모습을 은근히 살펴보는 듯하였다. 요즘 들어 기력이 없으시고 기분도 가라앉으신 어머니의 모습이 마음에 걸리신 건지….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어머니가 몇 세신지’ 상냥하게 물어본다. ‘103세!’라는 우리들의 합창 소리에 깜짝 놀라더니, 어머니에게 깍듯이 고개를 숙여서 경의를 표한다.
“대단하십니다. 오래 사시느라 수고가 참 많으셨습니다. 오늘 어머니께서 이곳에서 드시는 것은 모두가 공짜 저희의 선물입니다. 마음껏 드시고 천천히 드시고 기분 좋게 드시고, 생각나면 언제든지 다시 오세요. 103세 어머니께서 저희 식당에 오셔서 갈비를 맛있게 드시는 모습은 저희의 영광이자 서귀포의 특종입니다”라고 환영사를 해주는 게 아닌가. 그리고 ‘어머니와 딸의 저녁 식사’라는 제목의 사진을 찍어준 후에 엄지척하면서 진심 어린 환대를 보여주었다.
어머니도 분위기를 눈치채셨는지 전에 없이 고기를 맛있게 드시고 사이다도 시원하게 한 컵을 다 들이키셨다. 오래된 당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이 담뿍 스며있는 얼굴이 오랜만의 외출을 만족하게 여기시는 모습이다. 아, 오늘 저녁의 식사는 어머니의 생애를 일주일쯤 늘려드리지 않았을까 싶다.

저녁 어스름이 모여들자 ‘이 무더위를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노심초사하며 잔뜩 경계해 온 여름이 드디어 고개를 수그리는 낌새다. 저녁 기운이 서늘한 기운을 발하자, 여름도 기가 꺾여 무릎을 꿇는다. ‘103세 어머니가 과연 이 불볕더위를 이겨낼 수 있을까?’ 염려하며 전전긍긍하는 사이 한나절의 피서도 허용치 않은 지독한 여름도 꼬리를 내리고 물러날 것이다.
불볕이 연일 쏟아지는 날들을 헤아리며, ‘2025년도 여름이여, 안녕’을 외쳐본다. 다행히 어제오늘은 기적처럼 서너 차례 소나기가 쏟아져서, 시들어가던 사람들의 얼굴에 가을의 기운을 불어넣어 준다. ‘어머니가 올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염려하며 노심초사해 온 해시계 위에, 이른 아침에는 가을바람이 은밀히 불어와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가을날을 불러들인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이하 중략.’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