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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행복한 요양원 생활(2) ... 미국의 요양원과 매장방식의 물음

20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나를 따라 한국행을 택하셨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면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아버지의 꿈을 이루어 드리고 싶다’는 아들의 부탁으로 미국에 가신 지 17년만이었다.

 

비록 아들 때문에 부득이 가게 된 미국이지만, 아버지는 신기하게도 그곳을 참 좋아하셨다. ‘미국에서는 모든 것을 정반대로 하면 된다!’하시면서 문화충격에도 불편보다는 재미를 느끼셨다. 동서남북을 서동북남이라하면 되듯이, 미국에 대한 아버지의 이해는 그곳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윤활유가 되었다. 늘그막에는 아무것도 보탠 게 없는 나에게 ‘용돈까지 주는 나라’라면서, 부디 미국을 축복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미국생활이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자식 때문에 그 가슴 뛰는 대포바당 물질도, 그 아까운 한라산 고사리도 다 뒤로 하고, 생판 모르는 이국땅에 강제로 옮겨진 보릿자루 같았다.

 

그럼에도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며 봉제공장, 건물청소 등에서 소일거리를 찾았다. 제주도 할망의 부지런으로, 길가의 공터에 호박을 심고 배추도 키워서는 이웃 할머니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셨다. 자식들이 걱정하거나 미안해할까 싶어서, 늘상 씩씩하고 담대하게 미국 생활을 지탱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면서 어머니의 마음이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의 장례식은 영화처럼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묘지 근처의 장례식집(funeral house)은 조용하고 아늑하기가, 마치 소풍장소와도 같았다. 하긴 천상병 시인도 ‘귀천(Back to Heaven)’이란 시에서 천국 가는 길을 일컬어 ‘이 세상 소풍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읊조리지 않았던가.

 

꽃 속에 파묻혀서 약간의 미소를 머금은 아버지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말없이 받으셨다. 교회 가실 때 입으시던 까만 양복과 하얀 와이셔츠, 익숙한 자주색 넥타이가 아파트 할머니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두 달 전, 아버지가 한국에 오셨을 때 내가 사드린 혁대가 은빛버클을 빛내며 아버지의 허리를 단단히 두르고 있었다. “아버지, 이 허리띠 매시고 십년만 더 든든히 살아주십서 예!”라는 내게, “나는 벌써 만족하게 살았다. 하지만 생사화복이 하늘에 달렸으니...”라며 말끝을 흐리시던 아버지.

 

생각해보니, 그 때 이미 아버지얼굴은 핏기가 없이 매우 수척해 있었다. 효도한답시고 모시고 간 유명호텔의 뷔페음식에도 전혀 손을 대지 않으시고.... 미국으로 가시자마자 병원에 입원하신 아버지의 병명은 위암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 앞에 서서 더 없이 담담하고 침착하게 조문객을 받으셨다. 오히려 요양원 할머니들이 더 슬퍼하며 아파하셨다. 눈가를 훔치시거나 가슴을 여미시는 할머니들의 애통함이, 실은 우리의 억눌린 슬픔을 눈물로 자아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며 할머니들을 위로하시는 어머니를, 아버지가 미안하신 듯 고요히 응시하셨다. 안경 너머로 실눈을 뜨시고 안 보시는 척 하면서도 다 보고 계시는 아버지. “내가 보통 같으면 육십까지 살 것이요, 하나님 보시기에 괜찮다 싶으면 팔십까지 살 것이네”라고 마치 지나가는 바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당신의 운명을 예고하시던 아버지의 음성이, 우리 모두를 가만가만 위로해 주었다. 아버지는 82세, 어머니는 81세였다. 대포마을에서 18세, 17세에 결혼했으니, 65년을 해로한 셈이다.

 

드디어 아버지는, ‘아,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찬송을 들으시면서 입관하셨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아시는 주님, 늘 돌보아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라는 가사는, 아버지 생애의 신앙 간증이었다.

 

예배를 주관하시는 목사님은 아버지의 삶을 일컬어 ‘헛되지 않은 인생’이라고 말씀하셨다. 발인예배가 끝난 후 아버지의 관은 캐딜락에 옮겨져서 천천히 묘지(memorial park)로 향했다. 아, 하늘이 얼마나 눈부시게 맑고 밝고 따듯하던지, 우리들은 마치 소풍을 가는 어린애들 마냥 아버지의 캐딜락을 따라서 평화롭게 행진하였다.

 

걸어가는 동안 우리는 목적지가 묘지인 것을 잠깐씩 잊어버렸다. 초여름의 푸른 잔디와 색색깔의 고운 꽃들, 얼굴을 간질이는 햇살과 바람이, 우리들의 슬픔을 가만가만 어루만졌다. 슬퍼하려야 슬퍼할 수 없을 정도로 온 세상이 화사해서, 그야말로 ‘오늘은 천지가 수정처럼 맑음(crystal clear)’이라 기록할만한 날씨였다.

 

캐딜락이 묘지에 다다르자, 단정하게 검은 정장을 한 성도들이 아버지의 관을 경건하고도 조심스럽게 받쳐 들었다. 아버지가 들어갈 무덤가에 이르렀을 때, 미리 가서 기다리던 성도들이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라는 찬송가를 불렀다.

 

미국식 묘지는 구덩이가 아주 깊었다. 한국은 옆으로 구덩이를 파서 관을 가로로 들어앉힌 후 봉분을 높게 올리는 형식인데 반해 미국은 땅 속으로 깊이 파여진 구덩이 속으로 관을 세로로 수직 낙하시켜 집어넣는 방식이었다.

 

아버지의 관이 이제 막 컴컴한 땅 속으로 들어가려는 찰라, 어머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려 하였다. 세상에! 그동안 상주로서 슬픔과 애통을 묵묵히 참고 체통과 예의를 지켜내던 어머니가, 어둡도록 깊은 구덩이에 그만 놀라서 눌렀던 비통함을 저도 모르게 분출시키신 거다.

 

‘안 된다!’라며 관을 붙잡고서 몸을 기울이며 땅 속으로 들어가려는 게 아닌가. 어쩌면 함께 묻히려고 몸을 던진 건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그 순간부터 이성을 잃은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나, 한국으로 데려가 도라 이! 같이 우리나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무덤도, 17년을 살았던 세월도, 울타리 같은 두 아들도 더 이상 어머니를 미국에 붙들어 두지 못하였다. 그곳 생활의 종착지인 요양원과 매장방식이 어머니의 이민생활을 과감하고도 신속히 청산케 하는 자물쇠가 되었다.

 

그렇게 하여 나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제발 요양원에는 보내지 말아 달라’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셨다. 아, 요양원을 향한 뼈아픈 슬픔과 뿌리 깊은 두려움이여! 어쩌면 그 끔찍한 미국의 요양원이 어머니의 발걸음을 고향으로 향하게 하는 은인이 되어 주었는지…….

 

그 덕분에 나 또한 어머니와 함께 인생의 황혼기를 이토록 가슴 따뜻하게 보내고 있는지도……. 아버지의 마지막 독백처럼 인생의 생사화복은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은혜에 속해 있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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