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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오래 돼도 여전히 익숙지 않는 무거운 일상

하룻밤과 낮, 거의 스무 시간을 지그시 눈을 감고서 주무시는 어머니. 그 앞에 엎드러져서 “어머니, 미안허우다. 나가 그자 ‘침 바끄지(뱉지) 맙서, 밥 흘리지 맙서’ 허멍 존다니(잔소리)만 해연..., 어머니한티 입에 맞는 음식 하나 못 해드리멍 그냥 ‘밥 먹읍서! 살려도랜만 허지 말앙 입을 벌립서. 밥 먹는디 죽는 사름 보십디강!’ 허멍 큰 소리만 지르곡, 반찬이 어신 건 생각을 못 핸 예.... 죄송허우다, 어머니! 제발 눈 뜹서게. 나가 영 빌엄수게....”라면서 답답한 마음에 어머니의 눈꺼풀을 뒤집으려고 하자, “야이, 무사(얘가 왜 이래)?”라면서 내 손을 강하게 밀치신다. 아, 우리 어머니가 괜찮으시구나. 힘이 여전하시구나. 살아나셨구나!

 

“어머니, 이제랑 일어납서. 어머니 그추룩 아끼는 상추를 어떤 머리 검은 쥐(사람)가 막 뜯어감수게!”. 그러자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을 살며시 뜨시더니, 내 얼굴을 두 세 번 쓰다듬으신다. 그러고선 ‘너는 왜 이리 예쁘냐’는 듯한 표정으로 다정하게 웃으시곤 다시 눈을 감으신다.

 

‘아, 이렇게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겠구나’하는 마음에 애간장이 다 녹아든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은 불효뿐이구나. 언제나 어머니가 이 자리에 앉아서 함께 식사하시려니...., 내가 드리는 밥을 옴막옴막(아기가 숟가락을 받아 먹는, 넙죽넙죽보다 작은 표현) 받으시면서 하루가 백년 같이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가슴이 먹먹하게 조여들면서, 눈물이 핑그르 돌다가 툭 툭 떨어진다.

 

혼자서 황망해진 마음을 털어버리려고, 마당에 남아 있는 상추를 뜯는다. 이제 장마가 들었으니, 내일이라도 비가 오기 시작하면 다 녹아서 스러지고 말 것이다. 아까울 거야 없지만, 조금만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 누군가에겐가 요긴한 송키(채소)가 될 텐데.... 그렇게 하나 하나 뜯은 상추를 누구에게 줄까, ‘받으면 혹시나 귀찮지는 않을까’하면서 비닐 봉지에 넣는데, 어머니의 기침 소리가 들린다.

 

어느새 일어나서 요강에 앉아 계신다. “어머니, 벌써 1시가 되어부러수다 예! 제게 아점 먹고, 마당에 강 상추 홑썰 뜯어줍서! 지난 주에 어머니한티 해바라기씨를 보내준 김집사님에게 갖다 드리게 마씸!” 내 목소리가 너무 컸을까? 눈이 뚱그래진 어머니가 한 말씀을 하신다. “이 비 그치곡 제라지게 장마가 들민, 상추도 노물도 채소들은 다 녹아분댄 그만큼 고라신디..., 아직도 상추가 그대로 이시냐? 그 집사님 공을 어떵 해영 갚을 거니? 사람은 뭐라도 받아 먹으민 꼭 은혜를 갚아사 헌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이시니?”라며 핀잔을 주신다.

 

아, 우리 어머니가 아직은 정신이 맑으시구나. “어머니, 그 집사님께는 어제 이미 갖다 드려수다. 게무로사(아무려면) 나가 어머니 마음을 그추룩 대음허곡(신경쓰지 않고) 모른 체 험직 허우꽈? 영 해도(이래도) 나가 김성춘 권사님이영 23년을 같이 살멍, 눈치 코치 다 외우는 6번째 똘 아니우꽈? 정옥이!”라며 잘난 척을 해본다. 그러자 마음이 코삿해진(누그러져서 만족해지신) 어머니가 내 손을 잡고서 식탁으로 오신다.

 

당신의 자리에 앉아서 수저를 바로 놓으시고, 반찬 그릇들도 가지런히 정돈하신다. 그리곤 왠지 모르게 미안스러운 사위의 자리를 바로 챙겨놓고, 지팡이를 들어서 반찬들을 그 앞으로 모아놓는다. 아,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더니, 우리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시다. 언니가 정성껏 끓여 온 갈치국을 보시더니, 그것도 사위의 자리로 옮겨 놓으신다. 대신에 내 앞에 놓여 있는 국수 그릇을 당겨서 당신 앞에 가지런히 놓으신다. 그리고 고개를 정중하게 숙이시더니, 감사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빈빈 노는 노인에게 음식을 주시난 감사합니다. 경헌디, 나는 먹어도 일을 헐 수가 없습니다. 자식들 걱정 끼치지 말고, 잘 지내게 해주세요. 아멘” 세상에... 어머니는 103세가 되어서도 ‘먹은 만큼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계신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어머니는 당신의 삶으로 몸소 가훈을 삼으셨다. 동새벽에 일어나서 밭으로 나가서 일을 하시고, 해가 기울어서 풀이 보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서 집으로 돌아오셨다. 그런 어머니의 우리를 향한 가훈은 “일 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는 것이었다.  신약성경에서 바울 사도가 성도들에게 권면하신 말씀으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 하거든 먹지도 말라 하였노라.(데살로니가후서 3:10절)”는 구절이다.

 

그렇게 솔선수범 동네 일등으로 일하시는 것을 보시고, 골목 안에 사시는 옥자 할망은 늘 어머니의 노년을 걱정하셨다. “정열이 어멍아, 몸을 홑썰 애끼라. 그추룩 쇠추룩 일만 일만 허당 보민, 허리가 굽엉 나추룩 꼬부랑 할망이 되어분다, 이! 아무도 나 대신 살아줄 수가 어신예. 경허난 니 몸을 니가 애끼곡, 니를 낳아준 설운 어멍 생각허영 여부룩 서부룩(이렇게 저렇게) 몸에 좋은 것도 솔째기 먹으라, 이!”

 

이제는 어머니가 우리 동네 대포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사는 노인이 되셨다. 이따금 고향 분들이 어머니의 안부를 물어온다. “아직도 괜찮으신지. 식사는 잘 하시는지...” 그러고 나서 꼭 신신당부를 하신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꼭 동네에 연락을 해달라’라고.

 

사실 어머니는 아직도 잘 드신다. 입에 달고 사시는 하소연이 ‘날 살려줍서!’이다. 그러면 내가 어김없이 내뱉는 추임새 같은 잔소리가 ‘먹읍서!’이다. “어머니, 옛날에는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댄 했주만은, 요샌 그런 말이 어서져수게. 잘 먹으민 죽을 수가 어시난 마씸. 어머니도 보십디강? 먹는디 죽는 사름을? 경 허난, 살려줍샌 허지 말앙, 무조건 먹음서, 양! 잘 드시민 잘 살아지난, 예! 나도 경 허는 어머니가 막 좋아 마씸! 이제 내년까지만 더 사시민 104살이 됨니께. 경 허민, 어머니가 그추룩 노래를 부르던 부택이 어멍만큼 사시는 거라, 예! 경 헌디, 어머니는 똘이영 곹이 살암시매, 나 생각해영, 105살까지만 사시게, 예!”

 

이렇게 글은 쓰고 있지만, 요즘 들어 나는 불효자로 살고 있다. 아침에 어머니가 눈을 뜨시면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것으로 시작되는 하루의 일상이 이제는 오래 되어 익숙할 만도 하건만, 여전히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식탁에서 일일이 밥을 떠먹이고, 씹어서 삼킬 때까지 “삼킴서!”를 외치며 기다리는 동안, 어떤 날은 한 나절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한 참 걸려 식사가 끝나고 보면, 식탁 아래 수북하게 떨어져 있는 음식물 쓰레기. 그것을 치우면서 마음으로 들어오는 생각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이러니 나는 불효자일 수밖에.....

 

그런 마음을 달래려고 아침마다 시를 읽어본다. 오늘은 권선애님의 ‘못 할 짓’을 펼친다.

 

‘느그 아부지는 요즘 날마다 메뚜기를 잡아다 잡숫는다

배추밭으로 논으로 한바퀴 돌면 꽤 잡아 오시거든

다리 떼고 나래 떼고 달달 볶아서 꼭꼭 씹어 잡숫는다

나보고도 자꾸 먹으라고 하는데

난 안 먹어, 못 먹어

고 볼록한 것도 눈이라고 잡으려고 손 내밀면 어쩌는지 아냐

벼 잎을 안고 뱅글뱅글 뒤로 돌아가 숨어

그래도 잡히겠다 싶으면 톡 떨어져 죽은 척을 해

살겠다고 용을 쓰는 거지 뭐야

다 늙은 것이 그 애처로운 몸짓을 어찌 먹나

못 할 짓이지

 

큰오빠 생일이면 앵두 발갛게 돋는 우물가에서

기르던 닭 모가지도 비틀던 엄마가

 

막내가 사나흘 몸 덜며 누웠을 때

후박나무 큰 가지에 흰토끼 매달고 단숨에 가죽 벗겨

옻나무에 고아 먹이던 엄마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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