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 영 늙엄시니? 오몽허지(움직이지) 못허키여” 욕조 안에서 목욕을 마치고 일으키려고 하자, 끙끙대며 내뱉으시는 어머니의 푸념이다. 등이 더욱 굽어지고, 어깨가 한층 좁아지셨다. 아직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지는 않지만, 지난 주보다 부쩍 말라 보인다. 어린 아이처럼 작아지셨다. 입맛이 없다고 몇 숟갈씩 덜 뜬 게, 이렇게 에누리 없이 드러나고 만다. 아기는 먹는 만큼 토실토실 성장하지만, 노인은 먹지 않는 만큼 앙상하게 말라간다.
백세 노인의 건강은 절대적으로 먹는 만큼 유지된다. 아침마다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려고 들이대는 말이, “먹엉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댄 헙니께! 경 헌디, 어머니가 이추룩 안 먹엉 남기민, 나도 어떵 헐 수가 어수다, 예! 게무로사 이거 혼 숟가락을 남길 일이우꽈? 나한티 살려도라 살려도라 허지 말앙,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만 냉기지 말앙 드십서! 경 허민, 올 가을에도 너끈히 미깡밭에 갈 수 이실 거우다! 나가 이추룩 손가락을 걸엉 약속을 허쿠다 양!”
이렇게 식사 때마다 벌어지는 ‘달램 반 협박 반’의 시나리오를 접을 수 없는 건, 그래도 어느 정도 이 방식이 먹혀들기 때문이다. 아직은 더 살고 싶은 의욕이 있으신 어머니는, 주어진 식사량을 그럭저럭 감당하신다. 그러고 보니, 지난 주말, 제주시에서 큰 딸이 다녀간 게, 식욕을 유지시켜 주는 보조제인 듯하다. 백세 노인의 수명은 사랑받는 만큼, 먹는 만큼 연장된다. ‘게무로사 이 늙은 어멍을 제게 죽어불랜 안 해영... 이추룩 먹을 것들 하영 해 와시냐...’라며 입을 벌리시는 어머니. 오늘 아침엔 큰 딸이 해 온 곰국에 밥을 말아서 몇 숟갈을 더 드셨다. 계란도 드셨으니, 오늘의 식사는 보너스까지 더해진 셈이다. 먹는 만큼 커가는 한 살 아기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주어진 하루를 자신의 기력으로 지탱할 수 있는 게 백세 노인의 복이다.
이따금 사람들이 묻는다. 장수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어머니에게 무엇을 특별히 해드리느냐고? 사실인 즉, 민망할 정도로 해드리는 게 없다. 어머니의 아침 식사는 삶은 계란 하나 반, 김, 식사대용식으로 나오는 뉴케어 반 잔, 된장국이나 미역국 정도다. 여기에다가 치매약과 혈압 약을 드리는데, 짧으면 30분, 길면 1 시간이 걸린다.
연하곤란(삼킴 장애)이 있는 어머니에게, 한 숟갈을 떠서 “삼킵서”를 외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식욕은 밑바닥을 드러낸다. 게다가 기운이 더 떨어지면 돌봄이 힘에 부치는 노동이 되려 해서, 얼른 커피를 마신다. 벌써 두잔 째다. 일어나자마자 커피 한 잔으로 시작되는 나의 일상은, 어머니와의 생활이 힘겨워질수록 그 빈도와 양이 증가한다. 그러다가 불면이 오는 밤이면, 시간을 뒤척이며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본다.
우리 어머니에게도 훈훈한 젊은 시절이 있었다. 아마도 50대 초반이었을 게다. 어느 날 클방(방앗간)에서 벼를 도정해서 곤쌀을 지고 오신 어머니가 구덕을 난간에 내려놓으셨다. 달짝지근한 어머니의 땀 냄새와 함께 햅쌀의 달콤한 향기가 구수하게 스며 나왔다.
왜 그랬을까? 나도 모르게 얼른 달려들어서 쌀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얼른 입속으로 털어 넣었다. 어머니에게 꾸중을 들을지언정 되돌이킬 수 없는 내 것이 되도록 말이다. 그 때는 생쌀이 그토록 귀한 간식이던 시절이었다. 씹으면 달콤한 물이 입 안 가득 감도는 특별한 먹거리다.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께서 쌀을 한 움큼 집어서는 내 윗도리의 개왁숙(포켓)에 조심스레 넣어주셨다. 그게 어머니와 나 사이에 간직된 평생의 비밀이 되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어머니의 그 사랑으로 내가 무사히 자라서 어머니가 되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2남 7녀의 자식들에게 나름의 특별한 방식으로 사랑, 사랑을 안겨주셨으리라.
그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백 세 어머니를 가슴 저리게 품어본다. 아마도 어머니에게 특별히 지극정성인 다섯째 딸, 매달마다 용돈을 보내오는 넷째 딸, 어머니를 위해 새벽을 기도하는 셋째 딸, 한 달에 한 번씩 치매 약을 받아오는 막내딸도 저마다의 비밀스런 사랑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그게 힘이 되어서 어른이 되고 어머니가 되어서, 우리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삶들을 어머니처럼 살아내고 있는 지도.....
어쩌다가 어머니를 모시게 된 나는, 다섯 번째 딸. 2남 7녀 중에서는 일곱 번째다.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좋은 어머니가 힘들다. ‘어머니’ 하고 부르면 목이 메게 고마운 어머니가, 버겁다. ‘무서워서 혼자 잘 수 없다’면서 베개를 들고 우리 방으로 오신 어머니와 함께 잔 지 9년째. ‘나는 어쩌다 이렇게 복이 많아서 이 나이에 어머니와 한 방에서 자는가’라며 복을 헤아려 온 시간들이다.
그런데 어머니가 ‘침 뱉기’ 치매를 시작하셨다. 한 1년 정도 되어 가는 듯하다. 아무데나 침을 뱉으시니 늘 뒤따라 다니면서 닦아내야 한다. 가끔 닦기를 놓칠 경우에는 개미들이 까맣게 달려들어 청소부를 자청한다. “어머니, 여기 봅서, 예! 이 개미들이 어디서 다 온 줄 알암수과? 어머니가 침을 뱉어 놓으난 ‘더럽다’고 청소허래 다 모다들어수게. 경 허난, 제발 침은 이 휴지에 뱉음서 예!”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래도 별반 소용이 없다. 침 뱉기는 치매의 기본 증상이다. 요양보호사 표준 교재에 의하면 치매는 정상적이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뇌에 발생한 여러 가지 질환으로 인하여 인지기능을 상실하여 일상생활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상태다. 여기에서 인지기능이란 기억, 인식, 추리, 판단력, 시간, 장소, 사람을 인식하는 능력 등을 지칭한다.
치매의 대표적인 증상으로는 인지장애(기억력, 언어능력, 지남력, 시공간 파악 능력, 실행기능 저하 등), 정신행동 증상(우울증, 정신증, 초조 및 공격성, 수면장애, 기타 등)이 있다. 침 뱉기는 물건을 모아 숨기는 경우와 함께 정신행동 증상의 기타에 해당하는 문제행동이다. 말하자면 침 뱉기는 치매의 부정적 정신행동 증상 중에서 그나마 가벼운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침 뱉기는 일상을 공유하는 가족들에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특히 그 문제를 아는 나는, 괜히 발바닥이 미끈거리는 것 같고, 거실 유리창에 묻은 흔적이 어머니가 뱉은 침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어머니가 뱉어놓거나 흘려놓은 오물 주위로 개미들이 모여드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이 치명적인 불상사를 고치기 위해, 어머니에게 침 뱉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문제의 증거를 사실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따금 화를 내보고 더러는 협박도 해보지만, 별반 소용이 없다.
사실, 요양보호사 교재에 의하면 침 뱉기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화를 내면 침 뱉기 증세가 지속될 뿐 아니라, 오히려 그 불안감으로 인해 다른 종류의 정신행동증상이 추가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화를 내는 식의 부정적 반응은 치매 증상을 더욱 악화시키고 가족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치매는 돌보는 가족들에게도 특별한 처방이 필요한 ‘보호자의 병’이기도 하다. 따라서 돌보는 지혜가 필요해진다.
사실 침을 뱉는 것은 초조하거나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므로 부드러운 말로 안정감을 주어야 한단다. 목마르거나 배고프거나, 배변 같은 신체적 욕구해소가 필요하지는 않은지 확인해 볼 필요도 있다. 침을 뱉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를 시도하는 것이 좋으며, 특히 좋아하는 간식이나 뻥튀기, 강냉이, 바나나, 홍삼캔디 등 칼로리가 적으면서 입을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음식을 제공을 하면 침 뱉기를 줄일 수 있다.
그리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관심을 가질만한 즐거운 이야기를 하거나, 콩 고르기·수건 접기 등 소일거리를 하게 하면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것도 좋다. 이 방법을 어머니에게 적용해 보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빨래를 반듯하게 각을 세워서 정리해 놓지 못하시고, 대충 접어서 쌓아놓는 식이다.
옛날의 그 단정한 어머니의 솜씨는 다 어디로 갔을까? 생각하면 내가슴이 저리고 서럽다. 하지만, 애써 표정을 바꾸고 목소리를 낮춰서, ‘참 잘하셨다. 감사하다’고 칭찬해 드리면 어머니의 얼굴이 어린 아이처럼 밝아진다. 마치 숙제장에 ‘참 잘했어요!’라는 도장을 받아들고 어머니에게 자랑하던 나의 어린 시절, 그 얼굴처럼.
슬픈 일이기 하지만, 치매 어머니는 지금까지 알아 온 그 어머니와 다르기 때문에 지금의 눈높이에 맞춰서 새롭게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선 가까이서 눈을 맞추고 존중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최대한 쉬운 단어로 천천히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그리고 치매환자와 대화할 때는 ‘아느냐, 기억해보라’는 식으로 테스트를 하거나, ‘정말 치매네요’라며 환자에게 치매를 직면하게 하거나, 윽박지르는 태도는 삼가야 한다.
일단 주변 가족의 부정적 태도가 긍정적으로 바뀌면 치매노인의 행동도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고, 그만큼 가족의 부담도 줄어든다. 이보다 심한 치매 중기라면 과거의 기억이 사라져가지만, 옷을 개거나 마늘 까기 등 부분적인 단순 활동이 가능하다. 그리고 가족들 스스로도 건강을 돌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이를 소홀히 하면 가족들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금세 피로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을 위한 휴식 시간을 짬짬이 챙기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인이나 기관을 정리해놓는 것이 치매환자를 잘 돌보는 지름길이다(요양보호사 표준교재, PP 442-478).
치매노인이 나타내는 문제행동은 뇌의 기능상실로 인해 다시 어린아이와 같아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는 중앙치매센터의 당부를 읽으며, 오늘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어린 아이와 같은 웃음을 어제보다 많이 꽃피워야지 싶다. 지금 함께 하고 있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어머니, 고맙수다, 예!’라 고백하며, 어머니를 꼬옥 안아드리고저. 만 100세를 넘어 101세를 사시는 어머니의 오늘 하루는 얼마나 소중한가. 그 시간을 부둥켜 안고서 오늘은 어제보다 더 많이 웃어보리라. 사랑하리라. 감사하다, 고맙수다 하리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