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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오늘이 어머니 마지막 날인 듯 ... 하루를 사랑으로'

눈을 뜨면 어머니 방으로 가보는 게 아침 일과의 첫 번째다. 이불을 제대로 덮고 계신지, 이동 변기의 뚜껑이 열려 있지는 않은지를 살펴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부자리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어디로 가셨을까? 급한 마음에 버스 정류소로 내달린다. 어쩌면 서귀포 매일 시장에 가시려고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계실지 모른다. 아직은 사위가 어두컴컴하다. 그런데 저만치에 희끄무레한 물체가 보인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우리 어머니다. ‘저 스웨터는 너무 얇은데...., 감기에 걸리면 어떡하나. 요즘 독감이 유행하는데....’ 싶은 걱정에, “어머니!”하고 소리친다. 아, 꿈이다.

 

어느새 날이 환하게 밝아 있다. 지난밤 송구영신(送舊迎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예배를 드리고, 자정이 훨씬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후다닥 일어나 보니 왠지 바깥이 소란스럽다. 이렇게 밝은 아침이 낯설게 느껴진다. 평소에 기상하는 새벽 4시 반은 캄캄하고 고요하며 혼자인 시간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대문 밖으로 나가보니, 세상에! 집 앞이 자동차와 사람들로 만원이다. 새해 첫날의 일출을 기다리는 발길들. 아직은 해가 수평선 밑에서 불그스레한 빛으로 꿈틀대고 있다. 아! 오늘이 새해 첫날이지?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싶은 마음으로 서둘러 일출 대열에 합류한다. 내 집 앞이니 홈그라운드가 아닌가. 일출을 보기에 명당이지 싶은 자리로 슬쩍 끼어드는 내게 아무도 당신이 누구냐 묻지 않는다. 방금 나온 우리집 대문을 쳐다보고, 부스스한 내 머리와 슬리퍼를 바라보고는 선선히 틈새를 벌려준다.

 

실상은 저마다 핸드폰을 꺼내서 바다 끝의 붉은 기운을 좇느라 여념이 없다. 저 너머 보목포구의 방파제에는 사람들이 빽빽하게 무리 지어 서 있다. 장관이 따로 없다. 마치 제주의 해안가를 빙 둘러서서 당당하게 해풍을 마주하는 해송처럼 보인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소나무를 일컬어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라고 노래하듯, 새해 아침에 바닷가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이들에게도 걸맞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어진다. 세상 만물이 새해 아침을 새롭게 맞이하겠지만, 제주에서는 섬을 둘러 곳곳에 서있는 소나무야말로 새해를 처음 맞는 전령들이 아닌가.

 

해는 보일 듯 말 듯 움직이면서 수평선 위로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이 아침에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살려줍서’라며 더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소원인가? 아니면 어떻게든 삶을 변화시켜 달라는 나의 욕망인가. 구름을 뚫고 서서히 고개를 내미는 아침 해의 붉은 기운을 따라 사람들은 열심히 핸드폰을 움직인다. 일출의 기운을 먼저 감지한 갈매기들이 해를 향해 힘차게 날갯짓한다.

 

수년간 관찰해 온 바, 일출의 서막은 언제나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날아가는 광경으로 시작된다. 뒤를 이어 집어등을 켜고서 밤을 새운 배들이 귀항의 돛대를 세워 일출의 햇살을 통과한다. 새해 달력의 첫 장을 장식하는 아침 바다의 해와 배, 갈매기가 그렇게 3인조 그룹을 형성해서 핸드폰의 화면으로 들어온다.

 

드디어 자리를 이동하거나 핸드폰의 위치를 바꾸며 부산해지는 움직임을 향해서 새로운 해가 서서히 고개를 들어 올린다. 아니 그 해의 동작을 따라서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일사불란하게 맞춰지는 모양새다. 무대의 주인공답게 보목 바다의 해는 꿈틀거리며 바닷물을 솟구쳐 오르더니 구름을 뚫고서 전신을 드러낸다. 한꺼번에 탄성을 지르는 사람들의 환호가 부담스러운지 해는 그만 슬그머니 구름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다. 그러한 몇 번의 숨바꼭질 끝에 순간을 포착해서 일출을 건져 올린 이들이 핸드폰을 접고서 하나둘 자리를 뜬다.

 

얼떨결에 일출 찍기에 성공한 나도 그들과 함께 바다로부터 등을 돌린다. 돌아서는 내 가슴 속으로 바닷바람이 싸하게 밀려들어 온다. 아, 나는 이 아침에 아무런 생각도 결심도 계획도 수행하지 못했다. 그저 군중을 따라 일출을 보고 찍고 돌아섰을 뿐. 어쩌면 내 안에 소원이 아, 그 새해 소망이란 게 아예 없었던 게 아닐까.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하루 해가 똑같아서 날마다의 일상에 억장이 무너져버려서 새해의 의미를 지각하지 못했거나 거부하진 않았을까.

 

지난해를 보내면서 고백하려던 어머니와의 일상, 그 진실의 순간이 예기치 않은 아버지의 등장 때문에 삼천포로 빠지고 말았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어머니와의 전쟁이 그만 사라져 버리고, 나와 어머니의 20년 넘는 동거가 마치 애초에 정해진 운명처럼 미화되었다. 마치 어머니가 효녀를 만나서 장수의 복을 누리는 전설처럼 말이다.

 

사실 우리들의 아침은 이동변기의 소음 그 유쾌하지 않은 분위기로 시작된다. 플라스틱 변기가 달그락거리면서 어머니의 기상을 알리면, 바야흐로 모녀의 일상이 차례로 펼쳐진다. 오늘은 12시 5분 어머니의 웅얼거림과 동시에 변기 두껑이 열리면서 아침이 시작되었다. 지난 연말부터 아침 7시면 눈을 뜨던 어머니가 오늘은 특별하게 기상이 늦어진 셈이다. 내가 일상을 보내는 책상은 어머니 방과 부엌이 동시에 연결되는 위치에 있다.

 

어느 신문에서 ‘부자 노인, 최대 9년은 더 건강하게 산다’라는 헤드라인을 보고서 ‘소득에 따라 건강수명이 양극화되며, 고소득층은 75세-최하위층은 66세를 기록한다’는 내용을 읽는 중이다. ‘건강수명의 소득별 격차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 건강 양극화 해소 노력이 시급하다’라는 게 내용의 전반이다.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2008년 68.89세에서 2020년 71.82세로 12년 동안 2.93년이 증가해 왔는데, 여성의 건강수명이 73.98세로 남성(69.43세)보다 4.55년이 더 길다.

 

‘아하, 이 내용을 우리 연구원의 회원들과 공유해야지’ 싶어서 복사를 하려는 찰나 ‘달그락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심술궂게 들려온다. 급하게 복사를 해서 카톡방에 붙여놓고, 얼른 일어나서 어머니 방으로 달려간다. 세상에! 어머니는 변기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인기척을 들으신 어머니가 다시 눈을 뜨고서 ‘나 살려줍서’라고 중얼거린다.

 

“어머니, 새해 들언 어머니가 몇 살인 줄 알암수과? 백 세 설(103세)이우다, 예! 대포(고향마을)에서 어머니가 제일 오래 살암수게. 어머니영 물질을 고치(같이) 허던 큰년 어멍도 가고, 애끼는 조케(조카) 제이도 가수게. 이모님도, 삼춘들도, 다 가부난(가버리니까), 이제는 대포에 가도 어머니가 아는 얼굴이 하나도 어서 마씸(없어요). 경 허난(그러니까), 어머니, 이제는 ‘살려줍서, 살려줍서’ 허지 말앙, ‘불러줍서’ 허게 마씸. 친구도 호나(하나) 어시(없이), 몸은 베언(무거워서) 오몽허기도(움직이기도) 버치고(벅차고)...., 새해가 되어도 어느 자식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이제랑 천국에 강, 사랑하는 예수님도 만나고, 그리운 아버지도 만나보게 마씸. 경(그렇게) 허는 게 이보다는 좋지 않으쿠과(좋지 않을까요)?”

 

아, 나는 지금 어머니에게 ‘이제는 그만 사시라, 돌아가시는 게 더 낫겠다’라고 악담을 하고 있는 거다.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을까. 아마도 90세쯤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일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시어머니(촌에서 일만 하다 오신 듯 별로 말이 없고, 기십(성깔)도 없고, 기운도 없어 보이는)에게 며느리가 매몰차게 내지르는 소리다. “어머니, 나 저둘리지 말앙(걱정시키고 괴롭히지 말고) 홑썰(조금)만 지드립서(기다립서). 이 다리가 이추룩(이렇게) 붓기 시작해시난, 더 퉁퉁허게 부어오르민 죽어질 거우다.” 세상에! 그 며느리가 퍼붓던 저주와 지금 내가 뱉는 악담이 동전의 양면과 같지 않은가. 나는 지금 어머니에게 ‘돌아가시길’ 권고하는 셈이다.

 

아침마다 어머니의 요강을 치우고, 기저귀를 갈고, 얼굴과 몸을 닦아드리고, 옷을 갈아입히고, 아침을 먹여드리고, 침을 뱉으면 뛰어가서 닦아내고, 잘게 찢어서 흩어 놓은 휴지 조각들을 치우고, 움직이면 따라가서 부축하고, 점심 먹고, 저녁 먹고, 잠자리에 들고. “정옥아 나영 발 막앙(발을 맞대고) 눕게 이!”라는 어머니 말에 “알아수다!” 해놓고선, 새벽에야 살며시 발밑으로 기어드는 나.

 

지금 어머니는 마당을 바라보면서 “허태행씨, 허태행씨...”라고 아버지 이름을 중얼거리신다. 외로우신 게다. 어찌 아니 그러실까. 아버지가 떠나신 지 22년. 그동안 어머니 덕분에 아이들을 키우고 직장을 다니고 사회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이중섭 화백의 그림으로 유명한 ‘섶섬이 보이는 풍경’ 앞에서 바다와 더불어 살아간다. 해녀 출신 어머니가 ‘서귀포에 시내엔 못 살겠다’고 우겨서 이사를 오게 된 곳이다. 이 모두가 어머니 덕분인데도, 나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외면하고 보이는 현상 앞에서 은혜를 잊는다.

 

아,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때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고,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 없어라. 2025년도 새해에는 아침마다 마주하는 어머니 앞에서 어머니와 마주했던 내 생애 처음의 시간 그 진실의 순간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 내고자. 오늘이 어머니의 마지막 날인 듯 어머니와의 하루를 사랑으로 보듬으리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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