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조원에 이르는 세수 펑크를 막으려 외국환평형기금을 4조~6조원 헐어 쓰기로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택도시기금에서도 2조~3조원을 가져다 쓰기로 했다. 세수가 일시적으로 부족하면 다른 데서 돌려쓸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전용하겠다는 기금의 성격이다. 외국환평형기금은 환율이 급등락하면 달러나 원화를 사고팔아 환율을 안정시키는 ‘외환 방파제’ 성격의 국가 비상금이다. 이미 지난해 같은 이유로 20조원을 전용했는데 올해 또 손대겠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외국환평형기금 활용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는데 한달여 만에 이를 뒤집었다. 최근 원ㆍ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을 위협하는 등 고공행진하고 있다. 미국의 경기가 예상보다 좋아 금리인하가 미뤄질 가능성이 높고, 최근 우리나라 수출이 부진한 영향이다. 외환위기까지 겪은 나라에서 세수가 부족하다고 이태 연속 외국환평형기금을 헐어 쓰겠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을 망각한 악수(惡手)다. 주택도시기금 전용 발상도 명분이 약하다. 주택도시기금은 아파트 청약통장 가입자들이 내는 돈으로 조성한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공급 등에 써야 할 주거복지 재원이다. 서민
거대혜성 디비아스키가 6개월 후 도착 예정으로 지구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는데 미국의 사정이 딱하니 세계도 덩달아 딱하다.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이 중간선거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우려해 그 정보를 봉인해버린다. 거대혜성이 날아온다는 정보를 미 백악관이 감추자, 세계 모든 나라는 모두 ‘깜깜이’ 상태가 된다. 올린 대통령은 자신의 스캔들을 덮으려고 비로소 ‘혜성위기’를 발표하지만 세계의 사정도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두 미국의 조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연간 국방예산이 1000조원이어서 ‘천조국’이라 불리고 ‘우주방위사령부’까지 갖추고 있는 미국이 ‘어떻게 좀’ 해주기를 믿는 듯하지만 올린 대통령의 백악관은 세계를 걱정하거나 우방을 배려할 생각이 ‘1’도 없다. 올린 대통령은 혜성을 파괴하는 대신 잘게 쪼개 혜성을 이루고 있다는 희토류를 추출하겠다는 도박을 감행하기로 한다. 인도, 러시아, 중국 등의 우주강국들이 국제공조를 제안하지만 미국은 단칼에 거절한다. 누구에게도 희토류를 한 줌도 나눠주고 싶지 않다. 아마 미국이 지구를 위협하는 디비아스키 혜성을 쪼개어 착륙시키기에 성공했다면 3000조원어치 희토류도 획득하고 차후에 세계 모든 나라의 팔을
요즘 들어 어머니가 입에 달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날 살려줍서!”라는 주문 같은 기도다. 이따금 울먹거리면서 “어머니, 어머니, 날 살려줍서...”라고 할 때는 애간장이 다 녹는다. 밤 중에 홀연히 일어나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마당 한가운데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을 때는 마음이 시려서 눈물이 솟구친다. 이러한 상황을 요양보호사 교재는 치매 환자의 ‘배회’ 현상으로 묘사한다. 동시에 ‘102세가 되도록 살아계신 어머니가 저리도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하신 것일까?’ 싶은 속상함도 생겨난다. ‘비교적 잘 살았다’며 ‘호상’으로 지칭되는 장례식의 경우에도 할머니들은 통상 92세, 할아버지들은 86세가 아니신가. 간혹 “아버지, 날 살려줍서!”라고 할 때도 있는데, 숨이 차고 다급해서 하나님을 찾는 부르짖음이다. “어머니, 걱정허지 말앙 이 밥을 드십서!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댄 허주만은, 생각해 보십서. 어머니! 밥을 잘 먹는디 오꼬시 죽는 사름 봅디강? 먹으민 죽지 안 허난, 아무 걱정 허지 말곡, 그자 입을 벌립서!”. 이렇게 아침마다 식탁에서 어머니와 다투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이렇게 잔소리를 하면서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은 ‘다 된 밥에 코 빠트리듯
2분기 역성장(-0.2%)에 이어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분기 대비 0.1%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의 8월 수정 전망치 0.5%보다 0.4%포인트 낮다. 이런 추세라면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2.6%)는커녕 한은 전망치(2.4%) 달성도 쉽지 않다. 3분기 성장 부진은 수출 감소 때문이었다. 자동차와 이차전지 등 화학제품 중심으로 0.4% 감소했다. 주력인 반도체 수출도 심상찮다. 7~8월 두자릿수였던 증가율이 9월에 거의 반토막 났다. 성장률 기여도에서 순수출(수출-수입)이 –0.8%포인트로 거의 1%포인트 갉아먹었다. 12개월 연속 증가해온 전체 수출도 10월 1∼20일 327억6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중국경제 성장률이 예상보다 낮고, 미국ㆍ중국 간 무역 마찰이 심화하는 점은 수출전선의 암초다. 문제는 2ㆍ3분기 저성장을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다는 점이다. 물가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노동ㆍ자본ㆍ자원 등 생산요소를 동원해 이룰 수 있는 잠재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걱정을 더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추정한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다. 2020~ 2021년 2.4%였던 것이 20
영화 속에서 지구를 향해 돌진해오고 있는 직경 10㎞ 초거대혜성 ‘디비아스키’를 둘러싸고 미국사회는 양분되고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국론이 분열할까 싶기도 하지만, 우리도 디비아스키 못지않은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둘러싸고도 국론이 일치하지 않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미국도 중국 두들겨 패고 이슬람 테러리스트 때려잡는 일에만 국론 일치가 되는 나라다. 직경 10㎞짜리 혜성이라면 8000만년 전 지구에 내리꽂혀 공룡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 80%를 절멸시켰다는 그 전설적인 혜성의 크기다. 이번에도 바퀴벌레를 제외한 거의 모든 생명체는 끝장날 것이 확실한데, 무지·무능·무도의 화신과 같은 미국의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이익에 따른 ‘수작질’로 일관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자유민주주의 카멜롯(Camelot)’이라는 미국의 시민들이 저렇게 황당한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그 궁금증은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서서히 바뀐다. 당연히 많은 시민은 혜성 위기의 심각성을 직시하고 올린 대통령의 ‘수작질’에 넘어가지 말자는 ‘룩 업(Look U
한국은행이 3년 2개월 만에 통화정책 방향을 바꿨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11일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낮췄다. 미국이 지난 9월 금리를 0.5%포인트 낮추는 빅컷을 단행하는 등의 글로벌 통화정책 전환(피벗)에 한국도 늦게나마 합류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수를 진작하기 위해선 금리 인하가 필요한데 한은은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값과 급증하는 가계부채 때문에 주저했다. 그러다가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강화로 가계 빚 증가와 집값 급등세가 진정되는 조짐을 보이자 마침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장기화한 고금리와 고물가 속 부진의 늪에 빠진 내수가 회복될 수 있는 여건은 조성됐다. 그렇다고 기준금리 인하만으로 금방 내수가 살아나기는 어려운 구조다. 기준금리가 인하됐으니 기업과 가계의 대출 이자 부담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당장 가시적 효과가 나타나긴 어려워 보인다.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이 그동안 예금금리는 내리고 대출금리는 가산금리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올려왔기 때문이다. 금리 인하가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게 하려면 집값 상승을 막아야 한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둔화됐다고 하지만 오름세는 여전하다. 지난해 서울
영화 ‘돈 룩 업’ 속 재시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의 무지, 무능, 무도한 리더십 아래에서 미국은 거대 혜성 ‘디비아스키’에 속절없이 얻어맞고 종말을 고한다. 애덤 매케이 감독이 보여주는 올린 대통령의 막장 리더십을 지켜보노라면 한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영화 ‘돈 룩 업’에는 정말 어처구니없는 대통령이 등장한다. 아무리 영화라고 하지만 세계 패권국이자 민주주의의 요람 또는 보루라는 미국에서 과연 저런 막장 대통령이 선출된다는 게 ‘개연성’이 있을까란 의문이 든다. 영화의 현실적 개연성이 지나치게 떨어지면 관객들은 외면하기 마련인데, 전세계 많은 관객이 돈 룩 업을 진지하게 관람하고 많은 부분 공감한 것을 보면 ‘막장 리더십’이 현실에서 펼쳐지고 있는 모양이다. “내가 좀 더 멀리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If I have seen further, it is by standing on the shoulders of giants).”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였던 아이작 뉴턴이 남긴 명언이다. 대개의 명언들이 ‘권고’나 ‘명령’으로 돼 있어서인지 뉴턴의 말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왜 그러실까? 최근 들어 어머니께서 자주 밥을 달라신다. ‘어떠난산디(왜 그런지) 배고프다게!, 무사 영(왜 이렇게) 배고픈고 이? 얼언 박박 털어점져(추워서 덜덜 떨린다). 아무거라도 또똣헌 물에 홑썰 몰앙 도라게(따뜻한 물에 조금 말아서 달라)’라는 어머니가 내 가슴 속을 휘적이며 저민다. 요즘 세상에 배고프다니.... 삶에 허기가 스민다는 건, 그만큼 외롭다는 뜻이 아닐까? 오늘 아침에도 ‘배가 고프다’시는 어머니에게 밥을 두 번 차려드렸다. 먹고 나서 돌아서면 다시 허기가 지는 건 치매의 일종이다. 우리 할머니도 왕할머니도 ‘밥을 안 준다’, ‘배가 고프다’며 아버지의 울분을 자극하신 적이 있다. 배고픔은 일제시대와 4·3, 6·25, 보릿고개 등을 겪은 세대에겐 설움이고 슬픔이며 고통이고 아픔이 아닌가. 처음에는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하시던 아버지도 나중에는 치매임을 알게 되셨지만, ‘배가 고프다’는 치매는 그만큼 슬프고도 가슴아픈 말이리라. 지난 주말에는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온 나라를 기쁨으로 들뜨게 하였다. 무엇보다도 대표작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제주도의 4·3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더 기쁘고 감사했다. 일전에 한 번 읽고서 다
세계는 지금 첨단 전략산업 패권전쟁 중이다. 반도체와 이차전지 산업 등에 국가가 나서 대규모 보조금을 투입한다. 동시에 법적 제도적으로 국가간 기술 이전과 교역도 규제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이 경쟁적으로 나서는 첨단산업 국가대항전에서 한국 정부는 보이지 않고 기업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주요국들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며 반도체산업 육성에 나섰지만, 한국의 보조금은 ‘0원’이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기업에 총 527억 달러를 지급하는 반도체과학법(칩스법)을 2022년 제정해 시행 중이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높이기 위해 2023년부터 대표 기업 SMIC에 2억7000만 달러 보조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일본도 연합 반도체 기업인 라피더스 설립에 63억 달러 보조금을 투입했다. 이차전지 산업도 마찬가지다. 배터리 기업이 없는 미국은 부품의 50% 이상을 북미지역에서 생산ㆍ조립한 경우 보조금을 지급(인플레이션감축법ㆍIRA)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업체 CATL에 지난해 8억 달러 넘게 지원했다. 일본도 도요타 등 완성차ㆍ부품 업체에 3500억엔 보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그사이 정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 이 빌런 중 빌런은 여행자를 자신의 집으로 끌어들여 죽이는 게 ‘일’이다. 공교롭게도 기준은 침대다. 자신의 집에 있는 침대보다 큰 사람은 잘라서, 작은 사람은 늘려서 죽인다. 이처럼 누군가의 ‘엿장수 맘대로’ 식 기준은 불편함을 낳는다. 지금 우리 현실이 그렇게 보여서 안타깝다. # 장면1 = 올린 대통령(메릴 스트립 분)의 행정부는 거대혜성이 칠레 앞바다 600㎞ 지점을 향해 돌진해오고 있으며, 도착 예정일이 6개월 후라는 것을 보고받는다. 그러나 자신과 정부의 안전을 위한다는 정치적 이유로 그 사실을 발표하지 않고 봉인해버리는 ‘기준’을 설정한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 연구팀은 그 기준에 동의하지 않고 신문사와 방송사를 통해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을 유출한다.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 분) 생각에 정부의 안전보다는 국가의 안전을 우선해야 한다. 천체물리학과 박사과정생이었던 디비아스키는 졸지에 ‘반국가세력’으로 분류돼 미시간대학교 교정에서 무장경찰들에게 무지막지하게 연행된다. 올린 대통령은 정부와 국가를 같은 반열에 놓아버리거나 정부를 오히려 국가의 위에 놓는다. 정부는 국가의 일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은 무엇일까? 지난밤엔 흙을 적실 만큼 비가 내려서 밤사이에 기온이 서늘해졌다. 저녁에 열어둔 창문 사이로 가을바람이 들어와 이불을 비집고서 선선한 기운을 불어넣었나 보다. 그 기운에 눈을 떠서 창문을 닫으려는데,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인기척이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얼른 나가보니, 세상에! 어머니가 식탁에 앉아 계신다. “어머니, 이 밤 중에 여기서 미신 거 햄수과?”라고 묻는데, 입가에 거무스름한 가루가 묻어 있다. ‘배고프다’ 하시면서 반찬통에서 김을 꺼내든 어머니의 손등이 앙상하니 뼈가 드러나 보인다. 푸른 빛깔의 정맥도 눈에 띄게 선명해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얼른 어머니를 부둥켜 안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아, 어머니의 치매가 깊어지셨구나. 이를 어쩌나. ‘102세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깊은 동정심을 표시한다. 얼마나 힘이 들겠냐고. ‘아직은 괜찮다!’며 고개를 저으면, ‘그럴리가 있나, 보지 않아도 당근이지!’라며 내 손을 부여잡는다. 사실 ‘어머니의 치매 증상’이라고 하면 침을 아무 데나 수시로 뱉는 거, 기저귀를 몇 번이나 갈아드려야 하는 거, 화장실 출입이 여의치 않으니 뒷처리를 일일이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전망치보다 약 30조원 덜 걷힐 것으로 정부가 재추계했다. 세수가 367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고 예산을 짰는데 337조원대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56조4000억원의 세수 결손에 이어 2년 연속 대규모 ‘세수 펑크’가 공식화됐다. 세수 결손의 주된 요인으로 기업 실적 부진에 따른 법인세 감소가 지목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글로벌 교역 위축과 반도체 업황 침체로 법인세 감소폭이 예상보다 컸다”고 밝혔다. 당초 전망보다 덜 걷히는 법인세가 14조5000억원으로 전체 세수 결손의 절반을 차지한다. 부동산 거래 부진으로 양도소득세가 5조8000억원 덜 걷히고, 유류세 인하 조치를 계속 연장한 결과 교통ㆍ에너지ㆍ환경세도 4조1000억원 펑크 났다. 하지만 기업 실적 부진이나 자산시장 위축은 예견된 일이다. 정부가 상저하고(上低下高)의 장밋빛 전망을 고집하며 세수 추계의 기본인 경기 예측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대규모 세수 추계 오류는 최근 연례화했다. 2021년 이후 4년 연속 수십조원 오차를 냈다. 세수 오차율이 2021~2023년 3년 연속 두 자릿수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8.1%에 이른다.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