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영훈 지사의 보좌진, 경선 앞두고 사직 행렬 ... 경선 지원 본격화
국민의힘 제주도의원 공천지원자 ‘실종’ ... 제주시을 10개 선거구 '0'
웅대한 합창으로 부활을 노래하다...워유데어(WERE YOU THERE) 제주 콘서트
해학적인 돌하르방 ... 영혼 위로하는 동자석
노형오거리서 월동무 2t '와르르' ... 교통정체 등 대혼란
‘문대림 vs 위성곤’ ... 민주당 제주지사 경선판도 새 대립각
JDC 이사장에 송석언 전 제주대 총장 ... 16일 취임
내란세력이 끝까지 하지 않는 말 “내 탓이오!”
제주, 난방도 ‘탄소 제로’시대 열린다 ... 2035년까지 10만 가구 전기로
문대림, '제2공항 주민투표'로 승부수 ... 오영훈·위성곤에 공개 질의
제주 고유의 상부상조 문화 ‘수눌음’을 기반으로 한 공동육아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며 지역 돌봄의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웃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수눌음돌봄공동체’가 올해 220개 팀으로 확대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제주도와 제주가족친화지원센터는 17일 메종글래드 제주 컨벤션홀에서 ‘우리가 수눌음돌봄을 하는 이유’를 주제로 2026년 수눌음돌봄공동체 발대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를 비롯해 도의회 관계자, 공동체 참여자 등 250여 명이 참석해 공동체 출범을 함께했다. 이날 발대식은 개회식과 격려사, 참여자 자유발언, 실천 선언문 발표 및 전달식, 공동체 운영 안내와 사례 공유, 기본 교육 등으로 구성되며 현장의 목소리와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수눌음은 육지의 품앗이와 유사한 서로 돕고 돌아가며 나누는 공동체적 노동·교환을 가리키는 제주어다. 수눌음돌봄공동체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서로의 아이를 함께 돌보는 주민 참여형 돌봄 체계다. 개별 가정이 감당하던 육아 부담을 지역사회가 함께 나누는 구조로, 틈새·저녁·주말·긴급 돌봄 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된다. 이 사업은 2016년 18개 팀으로 출발해 10년 만에 220개 팀으로 확대되며 약 12배 성장했다. 올해는 모두 250개 공동체(1126가구)가 신청해 높은 관심을 보였고, 도는 수요를 반영해 기존 계획보다 20개 팀을 추가 선정해 220개 공동체(1006가구)를 최종 확정했다. 선정된 공동체에는 아동 1인당 월 2만 5000원(장애아동 3만 5000원)의 활동비가 지원된다. 팀별 최대 200만 원까지 지원된다. 특히 공동체 돌봄은 가족 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참여 가구 분석 결과, 1자녀 가구 비율은 감소한 반면 2자녀와 3자녀 가구 비율은 증가했다. 이는 공동체 기반 돌봄 환경이 양육 부담을 줄이며 다자녀 출산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제주도의 합계출산율도 최근 0.83명에서 0.87명으로 소폭 반등하며 이러한 변화와 맞물린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오영훈 지사는 “수눌음돌봄공동체는 제주만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확장한 미래형 공동육아 정책”이라며 “높은 수요를 반영해 참여 규모를 확대했고, 현재 3500여 명이 함께하는 돌봄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공동체 확대 과정에서 다자녀 가구 비율 증가 등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역 기반 돌봄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지원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시 일도2동 도의원 선거에 출마하는 김희현 예비후보가 18일 어르신들의 건강한 노후와 활력 있는 일상을 위한 ‘어르신 건강 행복 동네, 일도2동’ 비전을 제시했다. 김 예비후보는 그동안의 의정활동을 바탕으로 일도2동 내 어르신 복지 기반을 다져온 점을 강조했다. 이번에는 경로당과 생활권 중심의 건강·돌봄·일자리 정책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그동안 어르신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데 힘써왔다면 이제는 그 공간 안에서 얼마나 더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실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어르신들이 일도2동에 사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가장 따뜻한 복지 현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 예비후보는 우선 기존 경로당 기능을 확장한 ‘9988 어르신 전용 건강 힐링센터’ 건립을 약속했다. 정기 건강 체크와 온열 테라피, 전문 재활운동이 가능한 공간으로 조성해 경로당을 ‘동네 안 작은 병원’ 역할까지 수행하는 복합 건강거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와 함께 무릎 관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전 경로당 의자 식사 문화’ 조기 정착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의료와 재활, 복약지도를 연계한 지역 밀착형 건강관리 체계 구축도 주요 공약에 포함됐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멀리 이동하지 않고도 집 가까이에서 진료와 재활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역 의료기관과 협력체계를 강화하고, 약국과의 연계를 통해 다제약물 복용 관리와 복약 상담을 지원하는 ‘단골약사 복약상담제’도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어르신 맞춤형 일자리 확대 방안도 내놨다. 단순 환경정비 중심의 일자리를 넘어 고마로 스토리텔러, 시니어 디지털도우미, 마을안전 보안관, 인생한끼 조리단 등 경륜과 경험을 살릴 수 있는 분야의 일자리를 발굴하고, 지속적인 재취업 교육도 뒷받침하겠다는 계획이다. 독거 어르신 안전망 강화를 위한 ‘스마트 안심 케어’ 공약도 제시했다. 홀로 사는 어르신 가구에 AI 스마트 안심벨과 웨어러블 기기를 보급해 건강 상태를 수시로 확인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신산공원 등 주요 생활거점에는 어르신 체형과 안전성을 고려한 전용 운동기구를 확충하고, 숲길을 활용한 ‘어르신 전용 순환운동 코스’를 조성해 일상 속 건강활동을 지원하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김 예비후보는 "최근 인화경로당을 방문해 현장의 변화를 직접 확인했다"며 “어르신들이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식사하시고,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 속에서 밝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며 일도2동의 미래를 봤다”며 “그 웃음이 끊이지 않도록 어르신들의 건강과 행복을 끝까지 책임지는 도의원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어 “3선의 추진력과 진정성을 바탕으로 어르신 복지의 체감도를 높이고, 일도2동을 어르신이 행복한 동네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일을 앞두고 도 전역에서 다양한 추모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도민과 국민이 함께 참여하는 ‘기억과 공감의 시간’으로 운영된다. 제주도는 이달 16일부터 다음달 3일까지를 공식 추념기간으로 정하고, 다양한 추모 행사에 나선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추념기간에는 제주도와 제주도교육청, 4·3희생자유족회 등 유관 기관과 단체가 힘을 모아 추모행사뿐 아니라 문화·학술행사,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운영한다. 특히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메타버스 기반 온라인 추모관도 계속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헌화와 분향, 위패 봉안실 방명록 작성 등 비대면 추모가 가능하다. 추념식 전날인 4월 2일에는 제주4·3평화공원 위령제단에서 식전제례가 봉행된다. 이어 ‘4·3 평화대행진’이 전야제와 연계해 진행된다. 대학생과 청소년, 유족, 도민 등 2000여 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참가자들은 관덕정과 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시청에서 출발해 광양사거리에서 합류한 뒤 제주문예회관까지 함께 걸으며 4·3의 의미를 되새긴다. 같은 날 오후 6시 30분에는 제주문예회관 야외광장에서 전야제가 열려 추모 분위기를 이어간다. 이어 4월 3일에는 제주4·3평화공원에서 제78주년 희생자 추념식이 엄숙히 거행된다. 이 기간 종교계와 시민사회도 추모에 동참한다. 이달 28일 불교 위령제를 시작으로 29일 원불교 천도재, 4월 1일 방사탑제 등이 잇따라 진행되며 추모의 의미를 더한다. 2일에는 4·3 78주기 식전제례와 도련1동 4·3희생자위령제, 동회천 4·3희생자위령제, 제1회 4·3 대학생 포럼, 4·3평화대행진에 이어 4·3 78주기 전야제가 진행돼 추모 분위기를 확산한다. 4·3 추념일 당일에는 제33회 4·3문화예술축전, 행원리 4·3희생자위령제, 하가리 4·3희생자위령제, 전국 국공립대학 총학생회의 4·3 분향소 설치, 일본 오사카 통국사 4·3 78주기 추념 독경, 4·3 인문학 콘서트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4일에는 서울에서 78주기 추념식이 운영되며 5대 종단 추모 종교 의례가 거행된다. 10∼12일 노무현기념센터에서 서울 4·3 영화제가 열린다. 제주도는 추모 분위기 조성을 위해 홍보 아치와 현수막을 제주 전역에 설치하고 온라인 추모관(https://peace43.jeju.go.kr)도 운영 중이다. 4월 3일은 제주도 지방 공휴일로 민속자연사박물관·도립미술관·돌문화공원 등 직영 문화시설이 무료 개방된다. 김인영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이번 추념기간이 4·3의 아픔을 함께 기억하고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담은 4·3 정신을 널리 확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 차귀도 인근 해상에서 발생한 어선 화재 사고로 선박이 침몰하면서 해경이 집중 수색을 마무리하고 보다 넓은 범위의 해상 수색으로 전환했다. 제주해양경찰서는 지난 14일 차귀도 남서쪽 약 90㎞ 해상에서 발생한 화재 어선 사고와 관련해 사흘간 집중 수색을 벌였지만 실종된 한국인 선원 2명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17일 밝혔다. 해경은 선체가 완전히 침몰한 점을 고려해 실종자들이 선내를 벗어나 해상으로 표류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색 범위를 점차 확대해 왔다. 그러나 항공기 6대와 함정 52척을 동원한 집중 수색에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수온과 조류 흐름 등 해상 환경을 반영한 광역 수색 체제로 전환했다. 사고는 지난 14일 오전 10시께 발생했다. 29톤급 근해자망 어선인 한림선적 A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선박에는 선원 10명이 타고 있었다. 해경은 신고를 접수한 직후 함정과 헬기를 급파해 화재 진압과 구조 작업을 동시에 진행했지만 섬유강화플라스틱(FRP) 구조의 선체는 빠르게 불길에 휩싸였다. 선박은 약 80%가 소실된 뒤 화재 발생 약 7시간 만에 진화됐다. 이후 선체 손상으로 해수가 유입되면서 같은 날 오후 5시44분께 수심 약 74m 해저로 가라앉았다. 승선원 10명 가운데 8명은 인근 어선에 의해 구조됐다. 이 중 인도네시아 국적 선원 4명은 호흡기 이상 증세로 헬기를 통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나머지 4명은 치료 후 귀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까지 실종된 한국인 선원 2명에 대한 수색은 이어지고 있지만 사고 해역의 수심이 깊어 수중 수색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상황이다. 해경은 해류와 수온 분석을 토대로 실종자 표류 가능 해역을 중심으로 수색 범위를 넓혀가며 장기 수색을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해발 1000m 계곡을 따라 물길이 흐르며 독특한 경관을 이루는 제주 한라산 지형이 자연유산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한라산 어리목계곡 용천지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어리목계곡 용천지대는 한라산 북서부 방면으로 약 3.5㎞ 떨어져 있는 광령천 상류 구간에 자리하고 있다. 이 일대는 해발 고도가 1020∼1350m에 이른다. 제주의 용천수는 주로 해안선을 따라 발달해 있으나, 어리목계곡은 고지대에서 지하수의 집수 양상과 흐름을 관찰할 수 있는 지형으로 가치가 크다. 1970년대 이후에는 하루 평균 1만~1만2000t(톤)의 용천수가 흘러나오며 중간 산악지대 물 공급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용천수의 흐름 유형이나 유량, 수질 변화를 체계적으로 살펴보면 제주 전역 지하수의 흐름과 변화를 예측하고 파악할 수 있어 연구 가치가 뛰어나다. 현재 이 일대는 천연보호구역과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관리하고 있다. 화산암층과 계곡 절벽, 이끼 폭포 등이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경관을 형성해 생태적 서식처로서도 보존할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1월 '한라산 어리목계곡 화산암층과 용천수'라는 이름으로 천연기념물 지정을 예고했으나, 명칭을 '한라산 어리목계곡 용천지대'로 확정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한라산을 오르는 탐방객이 제주의 다양한 지질학적 역사를 이해하고 그 가치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오영훈 제주지사가 오는 6월 3일 치러지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재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오 지사는 15일 오후 제주시 칠성로 차없는거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의 변화를 완성할 수 있도록 ‘완성의 4년’을 허락해 달라”며 출마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 4년이 제주의 미래를 위한 설계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4년은 그 설계를 완성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더불어민주당 경선 경쟁자인 문대림·위성곤 국회의원과 송재호 전 국회의원을 비롯해 제주도의회 박호형 행정자치위원장, 현길호 보건복지안전위원장, 송창권·김기환·송영훈 의원, 도의원 예비후보들과 지지자들이 참석했다. 행사는 별도의 참석자 소개 없이 오 지사의 회견문 낭독과 기자들의 질의응답 순으로 진행됐다. 오 지사는 “지난 4년 동안 무너진 제주의 현재와 미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반을 다져왔다”며 “이제 설계는 마무리됐고 실행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제주의 변화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선 9기 도정 운영 방향으로 ▶모든 삶을 아우르는 복지 기본사회 제주 ▶재생에너지 중심의 녹색문명 도시 제주 ▶청년 중심 산업·경제 혁신 제주 ▶제주다움이 살아있는 글로컬 콘텐츠 르네상스 제주 ▶진정한 자치 실현을 위한 연방도시 제주 등 5대 구상을 제시했다. 오 지사는 자신에 대해 “완벽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언급하며 “판단의 무게 속에서 부족했던 점도 있었지만, 도민들의 따끔한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이어 “서로를 향한 낙인과 흔들기보다는 제주의 미래를 위해 함께 나아가야 한다”며 당내 경쟁 후보들을 겨냥한 듯한 발언도 했다. 오 지사는 “어두운 밤바다에서 별이 길잡이가 되듯, 도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저에게는 길을 밝히는 별과 같다”며 “도민이 비춰주는 방향을 따라 새로운 제주의 길을 열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 전략과 관련해 오 지사는 “제주에서 추진해 온 정책들이 중앙정부의 국정 방향과도 맞물려 있고 실제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며 “이러한 성과를 도민들에게 충분히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민주당 광역단체장 평가에서 하위 20%에 포함돼 경선에서 20% 감점을 받게 된 사실을 언급하며 “이를 공개한 것은 도민과 당원들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서도 “그 평가가 제주도와 도민에 대한 정당한 평가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고 밝혔다. 오 지사는 “민선 8기 도정의 성과는 특정 개인이 아닌 도민들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라며 “지난 4년의 성과와 부족한 점을 솔직하게 공유한다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공약 이행 평가와 관련해서는 “신뢰도 높은 매니페스토 운동본부가 매년 제주도정 공약을 점검하고 평가하고 있다”며 “그 결과를 참고해 달라”고 말했다. 다만 기초자치단체 설치 문제에 대해서는 “2026년 시행은 어려워졌지만 중앙정부 국정과제에 반영된 만큼 향후 선거에서 추진될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도정 정책이 도민들에게 충분히 체감되지 못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앞으로는 도민들이 더 공감하고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4·3 역사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법률적 감시가 강화된다. 제주도는 16일 제주도청에서 '4·3 역사왜곡 대응 법률자문단' 위촉식을 열어 변호사 5명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이용혁·백신옥·전주영·김정은·안홍모 변호사 등이다. 법률자문단은 '제주도 4·3 역사왜곡 대응 법률 지원 등에 관한 조례'에 근거해 구성됐으며 4·3 역사 왜곡 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과 예방을 위한 법률적인 자문을 하게 된다. 법률자문단 소속 변호사 5명은 각각 도의회와 4·3 희생자유족회, 4·3 관련 단체, 제주지방변호사회 등의 추천을 거쳐 도지사가 위촉했다. 임기는 이날부터 2028년 3월 15일까지 2년으로, 두 차례까지 연임할 수 있다. 제주도는 이번 법률자문단 출범을 계기로 4·3 역사 왜곡 행위에 대한 체계적인 법률 대응 기반을 마련하고, 4·3의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며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권익 보호에 기여할 방침이다. '제주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은 제주4ㆍ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와 제주4·3 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ㆍ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 부속섬 추자도에 추자도 특산물인 참굴비의 생김새를 닮은 '추자 보물섬 웰니스 광장'이 들어선다. 16일 제주시에 따르면 제주시 추자면 대서리 147-16번지 일원에 조성되는 광장은 제4차 도서종합개발계획(2018∼2027년)에 반영돼 추진된다. 추자도는 참굴비로 널리 알려진 지역인데도 이를 상징하는 대표 공간이 부족해 참굴비를 형상화한 공원과 야외공연장 조성을 통해 지역 정체성을 강화하고 관광 거점 공간을 재정비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시는 사업비 14억5000만원(국비 11억6000만원, 지방비 2억9000만원)을 투입해 올해 8월 광장을 준공할 계획이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도가 지역화폐 '탐나는전' 기능을 확장해 관광·청년·교통 정책과 연계한 지역 생활결제 플랫폼으로 키운다. 15일 제주도에 따르면 탐나는전은 2020년 11월 30일 첫 발행 이후 지난달까지 누적 발행액이 2조4485억원을 기록했다. 또한 탐나는전 앱 가입자는 지난달 말 기준 28만명으로, 카드 발급이 가능한 14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의 47.8%에 달한다. 음식점·미용실·약국·도소매업 등 생활 업종 가맹점은 4만8612곳이다. 올해 도는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국비 285억원을 확보해 연중 10% 캐시백 적립을 기본으로 운영하되, 명절 등 소비 촉진이 필요한 시기에 최대 20%까지 상향하는 탄력 체제를 도입했다. 기능 확장과 앱 고도화도 추진한다. 지난해 3월 외국인·MZ세대 결제 편의 제고를 위해 개발한 큐알(QR)결제 플랫폼은 올해 해외 결제 범위를 11개국 22개사에서 18개국 35개사로 넓힌다. 지난해 12월 선보인 탐나는전 학생증은 제주대 학생 8555명 중 1천241명(14.5%)이 사용 중이다. 올해 제주한라대·제주관광대 등 도내 전 대학으로 확대한다. 2월 출시한 케이패스(K-Pass) 탐나는전 체크카드 발급도 이어간다. 탐나는전·대중교통비 환급·체크카드 기능을 통합한 이 카드는 지난달 한 달 만에 4059개가 발급됐다. 새로 도입한 '선물하기' 기능은 이름과 전화번호만으로 탐나는전을 전달할 수 있어서 경조사 답례품이나 법인 임직원 복지 수단으로 활용 범위가 넓어졌다. 매장 방문 없이 원격 결제가 가능한 비대면 결제서비스는 현재 시범 운영 중으로, 정식 출시 후 학원비 등 주기적 결제와 배달 서비스에도 적용된다. 도는 탐나는전 결제 데이터를 업종·지역·상권별로 실시간 분석하는 빅데이터 시스템을 구축해 소비 패턴 분석 결과를 정책 설계에 직접 활용할 계획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정부가 의과대학 정원을 단계적으로 늘리기로 하면서 제주대 의대 정원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교육부가 13일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32개 의대에 전달한 ‘2027~2031학년도 의대 정원 배정안’에 따르면 제주대 의대는 2027학년도에 28명이 추가되고, 2028학년도부터는 증원 규모가 35명으로 확대된다. 현재 제주대 의대 정원은 40명이다. 배정안이 그대로 확정될 경우 2027학년도에는 정원이 68명으로 늘어나 2028학년도부터는 75명을 선발하게 된다. 전국 의대 정원 역시 단계적으로 증가한다. 2024학년도 기준 전국 40개 의대 정원은 3058명인데 2027학년도에는 490명이 늘어 모두 3548명을 모집한다. 이어 2028학년도부터 2031학년도까지는 매년 613명씩 추가로 늘어나 최종적으로 3671명 규모로 확대될 예정이다. 대학별로 보면 강원대와 충북대가 가장 큰 폭의 증원을 받는다. 두 대학은 2027학년도에 각각 39명이 늘어나고, 2028학년도부터는 49명까지 확대된다. 전남대와 부산대도 2027학년도에 31명, 2028학년도부터는 38명이 증가하는 등 지역 거점 대학 중심으로 정원이 크게 늘어난다. 제주대 역시 경북대, 충남대, 경상국립대 등과 함께 비교적 큰 규모의 증원 대상에 포함됐다. 교육부는 지역 인구 규모와 의료 취약 지역 여부, 지역 의료 인프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학별 정원을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2027학년도부터 늘어나는 정원은 모두 ‘지역의사제’ 전형으로 선발된다. 해당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은 졸업 후 의대가 위치한 지역에서 10년 동안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지원 자격 또한 의대 소재지 또는 인접 지역의 중·고등학교에 입학해 졸업하고, 재학 기간 동안 해당 지역에 거주한 학생으로 제한된다. 교육부는 이번 사전 통지안에 대해 각 대학의 의견을 오는 24일까지 받은 뒤 3월 중 대학별 정원을 다시 통보할 예정이다. 이후 행정기본법에 따른 30일간의 이의 신청 절차를 거쳐 4월 중 최종 정원을 확정할 계획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송악도서관(분관장 고도현)은 내달 5일 식목일을 맞아 가족 구성원 20팀을 대상으로 가족 문화체험 프로그램‘고무신 다육 화분 만들기’를 운영한다. 이번 프로그램은 이수영 ㈜꽃섬 대표와 함께 그림책‘고무신 기차’를 읽고 고무신을 활용해 다육 화분을 만들어 보는 체험 활동으로 회차별 10팀씩 총 2회에 걸쳐 진행된다. 1회차는 5일 오후 1시 30분부터 3시까지 2회차는 오후 3시 30분부터 5시까지 운영되며 총 20팀이 참여할 수 있다. 참가 신청은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공공도서관 누리집(https://org.jje.go.kr/lib/index.jje)에서 오는 25일 오전 10시부터 선착순으로 받는다. 송악도서관 관계자는 “가족이 함께 그림책을 읽고 자연과 관련된 체험 활동에 참여하며 독서의 즐거움과 환경의 소중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가족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제주도 해양수산연구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 고수온에 적응할 대체 양식어종으로 말쥐치 양식에 처음으로 성공했다고 16일 밝혔다. 연구원은 제주 해역의 고수온 환경에 적합한 어종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해 말쥐치 종자를 생산하고 같은 해 9월 치어 상태로 여름철 고수온 지역인 서귀포시 대정지역 양식장에 시범적으로 보급했다. 평균 25g, 길이 약 12㎝ 크기로 양식장에 최초 보급된 말쥐치 치어는 양식장 환경에 적응해 4개월 만에 200g 수준까지 성장했다. 지난 1월 말부터는 순차적으로 출하가 이뤄지고 있다. 시범 양식 기간 중인 지난해 9월 양식장 수온이 최고 28도까지 상승했지만 말쥐치는 고수온 피해 없이 안정적인 사육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말쥐치는 우리나라 남해와 제주를 포함해 동중국해, 일본 연안 등 서북태평양 온대 해역에 널리 분포하는 어종으로 비교적 높은 수온에서도 생존과 성장이 가능하다. 연구원은 이번 시범 양식으로 여름철 고수온기에 말쥐치가 광어 등의 대체 어종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처음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대정지역 등 도내 양식장에서는 광어 등의 어종을 주로 양식하고 있지만 고수온으로 인한 폐사 피해가 매년 발생하고 있다. 말쥐치는 육질이 우수해 시장 수요가 높지만 현재 양식이 이뤄지지 않고 자연산 어획에 의존해 공급이 제한적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제주관광공사는 마을 등 지역원을 기반으로 관광상품을 개발해 판매할 전담여행사와 로컬 콘텐츠 기획 역량을 갖춘 크리에이터 총 11곳을 최종 선정했다고 17일 밝혔다. 마을 여행 전담여행사 분야에는 제주착한여행, 지붕뚫은친구들, 찰쓰투어, 컬러랩제주, 하나투어제주 등 5곳이 선정됐다. 크리에이터 분야에는 더사운드벙커와 더원트크로스미디어, 딜리셔스라이프랩, 랄라고고, 잇지제주, 저스트닷하우스 6곳이 뽑혔다. 이번 지정된 전담여행사와 크리에이터는 앞으로 제주도 마을 여행 통합브랜드 '카름스테이'와 연계해 마을 자원과 주민 삶을 기반으로 한 체류형·체험형 마을 여행 콘텐츠를 기획·운영할 예정이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
제주 서귀포에서 길을 건너던 80대가 30대가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SUV)에 치여 숨졌다. 제주 서귀포경찰서는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30대 A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A씨는 지난 16일 오후 7시 26분께 서귀포시 호근동 한 4차선 도로에서 SUV를 몰던 중 도로를 건너던 80대 B씨를 치여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사고 당시 B씨는 심정지 상태로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사망했다. SUV 운전자 A씨는 당시 음주운전 상태는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의 과실과 B씨의 무단횡단 여부 등 정확한 사고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제이누리=이정아 기자]
민선 8기 오영훈 제주도정의 핵심 측근들이 사직 행렬에 나서고 있다. 정책특보와 고위 보좌진들이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경선을 앞두고 도정을 떠나 오 지사의 선거전 지원에 나설 전망이다. 12일 제주도에 따르면 곽민욱 제주도 정책특보가 임기를 약 5개월 앞둬 사직 의사를 밝히고 의원면직 절차가 진행 중이다. 곽 특보는 오 지사가 국회의원 시절 보좌관으로 함께 일했다. 이후 국회사무처 정책연구원과 민주당 중앙당 정책위원회 전문위원을 거쳐 지난해 8월 도정에 합류했다. 제주도정의 특보 제도는 ‘제주특별자치도 행정기구 설치 및 정원 조례 시행규칙’ 제3조의2에 따라 운영된다. 현재 곽민욱 정책특보를 비롯해 여창수 대외협력특보, 김영환 에너지특보 등 3명이 활동 중이다. 특보는 1년 단위로 임기를 연장할 수 있는 전문임기제 공무원으로 지사 임기 종료나 사퇴 시 자동 면직된다. 곽 특보는 도정을 떠난 뒤 자유로운 신분으로 오는 15일 오 지사의 출마 기자회견 시점에 맞춰 외곽에서 정책 지원에 나서고 경선 준비에도 참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 지사가 국회의원 시절부터 줄곧 보좌진 역할을 수행했던 이영민 정무비서관은 일찌감치 사퇴하며 조직 정비에 나섰다. 민선 8기 도정 출범에 맞춰 비서관으로 재직하다 지난해 9월 사직했다. 팀장급 개방직 인사들도 사직 행렬에 동참한다. 표성준 제주도 대변인실 홍보기획팀장도 사퇴 수순을 밟고 있다. 오는 16일 정식으로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표 팀장 역시 사직 후 오 지사 선거캠프에 합류할 계획이다. 오 지사 측은 15일 출마선언을 계기로 조직 전반을 경선모드로 전환한다. 도정 내 핵심 인력들이 속속 캠프로 합류하면서 당내 경쟁력 강화는 물론 전략 수립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제이누리=이기택 기자]
지난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총소득(GNI)이 3만6000달러대에 머물며 대만과 일본에 뒤졌다. 2023년과 2024년 연속 일본ㆍ대만을 앞섰던 국민소득이 역전당했다. 경제성장률이 낮았지만, 원화가치 약세(원ㆍ달러 환율 상승) 영향도 적지 않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명목 GNI는 3만6855달러. 전년 대비 110달러(0.3%) 증가에 그쳤다. 원화 기준으로는 5241만6000원, 1년 새 229만6000원(4.6%) 늘었지만 원ㆍ달러 환율이 뛰며 까먹었다. 2024년 1364원이었던 연평균 환율이 지난해 미국의 관세 불확실성과 외환 수급 불균형으로 1422원으로 오른 탓이다. 지난해 환율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394.97원)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1276.35원)을 제치고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환율이 오르면 원화 기준 국내총생산(GDP)이 늘어도 달러로 환산하는 1인당 GNI는 맥을 못 춘다. 2022년에도 연초 1200원 수준이었던 환율이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 올라 연평균 1292원에 이르렀고, 그해 1인당 GNI는 전년보다 7.0% 줄었다. 2023년부터 3년 연속 3만6000달러대를 벗어나지
많은 문학 사가(史家)들이 메리 셸리가 그려낸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한계를 부정하고 오만에 빠진 당대의 영웅 나폴레옹의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메리 셸리를 비롯한 당대 유럽인들에게 나폴레옹은 단순한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phenomenon)이었고, 특히 메리 셸리와 같은 작가들에게는 영감의 원천이면서 또한 비판의 대상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다. 1797년생인 메리 셸리는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며 제국을 건설하던 시기에 가장 감수성 예민한 시절을 보냈다. 그녀의 부모인 윌리엄 고드윈은 자유주의 무정부주의자였고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로 나폴레옹의 혁명적 가치와 그에 따른 독재를 비판적 논쟁의 중심에 둘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그의 연인이자 후일 남편이 됐던 바이런과 쌍벽을 이루는 낭만파 시인 퍼시 셸리(Percy Shelley) 역시 나폴레옹의 광기 어린 전쟁과 독재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그의 대표작인 「오지만디아스(Ozymandias)」를 쓴 인물이다. 메리 셸리가 결코 나폴레옹에게 우호적이 될 수 없는 환경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분명 뛰어난 과학자다. 그러나 그는 자신과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마치 이카루스처럼
미국ㆍ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영향으로 주식ㆍ외환시장이 나흘째 요동쳤다. 3일과 4일 이틀간 하락률이 18.4%로 세계 최악이었던 코스피지수가 5일 9.63%(이하 전일 대비), 6일 0.02% 상승하면서 반등했다. 4일 ‘천스닥’이 깨졌던 코스닥지수도 5일 1100대로 올라섰다. 6일에도 전일 대비 3.43% 상승해 1154.67로 한주 거래를 마쳤다. 원ㆍ달러 환율은 3일 야간거래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00원을 넘어섰다가 5일 1460원대로 내려갔다. 중동 전쟁 탓이라지만 세계 최대 하락폭에 이어지는 급등으로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ㆍ매수 호가 일시 효력정지)와 서킷브레이커(거래 일시 중단)가 발동되는 등 변동성이 너무 컸다. 게다가 서울지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이 4일 리터(L)당 1800원을 돌파했다. 중동 전쟁의 불똥이 한국 경제를 직격했다. 전쟁이 이란의 결사항전으로 격화하며 장기화하면 한국은 고환율ㆍ고유가ㆍ고물가의 ‘3고高’ 비상 상황에 갇히게 된다. 정부는 최악 시나리오까지 염두에 두고 3고 확산을 막기 위해 총력 대응해야 한다. 아시아 주요국보다 한국 주식ㆍ외환시장의 충격이 심각한 것은 증시 비중이 큰 몇몇 대기업이
괴물은 “나는 당신의 아담(Adam)이 돼야 했다”며 자신을 인간이 아닌 괴물로 창조한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책임을 묻고 ‘애프터서비스’를 요구한다. 하나님이라는 창조주는 아담을 번듯한 인간으로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애프터서비스로 그의 짝 이브를 만들어주는 책임을 다했다. 그러나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흉측한 모습으로 태어난 피조물을 팽개쳐 버린다. 결국 괴물은 당연히 받아야 할 애프터서비스마저 거부하는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를 한다. 동생을 죽이고 약혼녀도 죽여 버린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도 분노한다. 그러면서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의 ‘개싸움’이 시작된다. 그러나 사실 괴물이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동생, 그리고 약혼녀를 죽이는 상황을 만든 것은 창조 직후 실망감에 휩싸여 괴물을 버리고 도망쳐버린 프랑켄슈타인 자신이었다. 그는 본인이 만든 상황을 도리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상황논리’의 원인으로 삼는 ‘순환논리의 함정’에 빠져버린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이 괴물을 인정 안 하고 버린 이유, 그리고 종국에는 괴물을 죽이러 나선 이유를 모두 자신의 피조물인 괴물이 자신의 기대에서 벗어났다는 상황논리, 그리고 ‘가족의 안위’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는 상황논
1994년 12월 초의 일이다. 중앙언론사에 재직하며 제주에서 주재기자 신분으로 활동하던 때였다. 그 시절 사무실에 묘한 편지가 배송됐다. 수신인만 적혀 있을 뿐 발송인 이름은 없었다. 내용은 현직 신구범 지사를 겨냥한 제보였다. 그해 구좌읍 이장단협의회의 동남아 여행이 시빗거리였다. “현직 신 지사가 이장단협의회 회장인 신모 이장에게 일화 30만엔을 줘 선거를 앞두고 그를 매수했다”는 내용의 제보가 투서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한 곳만이 아니라 여러 언론사로 그런 내용의 편지가 배달됐다. 그 다음해 첫 민선 1기 6·27지방선거가 예고된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다. 확인을 했지만 신 지사 측의 답변은 “이장단이 해외시찰을 한다고 할아버지 뻘 친족인 신 이장이 도와달라기에 공금을 지원할 순 없어서 과거 일본 방문 중 친족회에서 ‘활동비나 보태라’며 받은 일본 돈을 개인적으로 드렸다”는 것이었다. 당시 예산엔 도지사의 ‘재량사업비’가 있었지만 그는 예산을 쓰지 않았다. 스스로 사비로 처리했다. 그것도 나중 예기치 않던 구좌읍 관내 교통사고로 여행일정이 취소되자 보탰던 여행경비는 돌려받았다. 더 사안을 확인해보자 그 익명의 투서는 언론사만이 아니라 검찰, 경찰, 행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다. 5개월여 전인 지난해 12월3일 느닷없이 계엄이 선포됐다. 계엄과 쿠테타가 간헐적으로 등장하던 대한민국의 과거도 아니고, 그것도 45년 전이 마지막이었던 기억인데도 다시 등장한 것부터 이상했다. 남미와 아프리카도 아니고, 이미 선진국 반열에 올라선 나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상했다. 그런데 그 계엄은 당일 밤 10시23분 선포돼 다음날 새벽 1시1분에 국회의원들의 결의로 해제 의결됐다. 2시간 38분만에 무효가 된 계엄령이었다. 이건 이상하다기 보단 좀 놀랍다. 그런데 그 이후로 이상함의 연속이다. 계엄이 무효가 되고 현직 대통령이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불려 다녔지만 그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은 그동안 공식적 사과는 한 적이 없다. 거꾸로 ‘내란몰이’라며 야당(이제는 야당이 아니다)과 국민 대다수를 오히려 겁박했다. 일부 기독교와 극우 세력은 지난 4월4일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만장일치 결정으로 대통령직 파면결정이 난 이후에도 여전히 ‘탄핵 무효’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그 집회현장엔 태극기·성조기와 더불어 이스라엘 국기까지 휘날린다. 어느 나라 국민인지 참 이상하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탄핵반대’를 외치며 그렇게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담쟁이가 뒤덮인 돌벽 한쪽이 덩그러니 서 있다. 초록색 방수포가 뒤덮은 객석 바닥은 이미 원형을 잃었고, 공연을 품던 무대는 무너진 채 흉터처럼 갈라진 흔적만 남았다. 한때는 웃음과 박수로 가득했던 자리에 이제는 공사 차량 자국과 철거 상흔만이 흩어져 있다. 오래도록 서귀포 시민들의 추억을 품어온 서귀포 관광극장은 이제 잔해와 철거의 상처로만 존재한다. 청춘의 기억을 간직한 무대, 가족과 함께한 영화 관람, 동네 아이들이 뛰놀던 객석의 풍경은 사라지고, 남은 것은 허물어진 건축물과 그것을 지켜보는 허탈한 눈빛뿐이다. 현장을 찾은 건축가와 시민들은 잇따라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라면 보강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함께 "무대를 배경으로 보낸 낭만의 시간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졌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 벽체를 손으로 짚으며 "아직 숨 쉬는 건물인데 왜 이렇게 급히 없애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30일 오후 이중섭 거리를 찾은 어린이와 시민, 외국인 관광객들마저 발걸음을 멈췄다. 회색빛 공사판 가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고, 일부는 휴대폰을 꺼내 무너진 흔적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른 이는 "관광지에 왔더니 왜 철거 현장만 남았느냐"며 의아해했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전국은 요동쳤다. 17개 시·도가 일제히 비상 체제로 흔들렸다. 비상계엄령이 발동되던 그 때 제주에서는 도청 본관 출입문이 닫혔다. 밤 11시 17분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13분까지다. 이 조치가 단순한 '출입문 통제'였는지, 아니면 '청사 폐쇄'였는지를 두고 해석이 엇갈리며 제주도정은 곧바로 '불법 계엄 동조' 의혹에 휘말렸다. 논란의 중심에는 오영훈 제주지사의 '부재'가 있었다. 오 지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불법 계엄 사태에 대한 여러 의혹에 대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그날 저녁 저는 제주에 없었다. 서울에서 기업인들과 면담을 마친 뒤 오산에서 식사를 했고, 오후 9시 5분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고 말했다. 이후 자택으로 이동해 비서실장과 특보들로부터 상황 보고를 받으며 지시를 내렸고, 새벽 1시 30분 도청 회의를 소집해 "군·경은 상부 지시가 있더라도 따르지 말라"는 불복 지침을 명확히 내렸다고 해명했다. 그는 "도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역할은 다 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기자단의 질문은 한 가지로 모였다. "
이쯤되면 거의 여론조작이라 말하는게 나을 듯 싶다. 제주에 기초자치단체를 다시 세우자는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르는 시점에서다. 연이어 쏟아지는 '여론조사'라는 이름의 수치가 오히려 도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도와 도의회, 정당과 연구기관, 나아가 언론사까지 앞다퉈 민심을 계량화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제각각이고 질문은 자의적이다. 불과 며칠 간격으로 나온 조사조차 상반된 결론을 내놓으니 도민의 눈에는 이 과정이 '정치적 셈법에 맞춘 각본'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일 발표된 제주연구원 조사에서는 3개 기초자치단체 설치 찬성 46.3%, 반대 34.9%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찬성 응답자의 63%는 내년 민선 9기 출범과 동시에 도입을 원한다고 답했다. 표면적으로는 찬성이 우세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전 더불어민주당 제주도당이 공개한 여론조사는 정반대였다. 도당 조사에서는 3개 구역안 반대가 43.1%, 찬성이 35.9%로 반대가 더 많았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정반대 결론이 도출된 셈이다. 도의회는 다시 별도의 여론조사를 추진 중이다. 이번 조사는 1500명을 대상으로 ▲행정체제개편위원회 권고안 인지도 ▲기초자치단체 설치 법률안 인지도 ▲선호 구역(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지난달 3일 새벽 5시. 초여름의 선선한 공기 속 제주시 삼도2동 제2투표소(제주남초)에 하나둘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제21대 대통령선거 본투표가 시작되기 직전의 풍경이었다. 정당 참관인과 투표 사무원,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들이 속속 도착했다. 오전 5시 30분, 개시 준비가 본격화되자 사무원은 참관인을 상대로 투표지와 도장, 봉인 스티커를 하나하나 들어 보이며 설명했다. 봉인작업은 군더더기 없이 진행됐고, 투표소는 긴장감 속에서도 질서를 유지했다. 하지만 평온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전 6시 35분. 한 50대 남성이 조용히 투표소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내민 그에게 여성 사무원이 선거인명부를 대조하던 순간, 전산 시스템에는 이미 '사전투표 완료'로 명시돼 있었다. "혹시 사전투표 하지 않으셨어요?" 사무원의 질문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안 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원은 옆 동료와 눈짓을 주고받고는 다시 물었다. 그리고 재차 "29일에 혹시 사전투표하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었다. 남성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신분증을 챙겨 빠르게 투표소를 빠져나갔다. 현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참관인과 사무원들
고온다습한 기후를 갖는 제주도에서는 어떤 시설이나 구조물, 형상을 나무로 만들 경우, 목재 부분이 쉽게 부식되어 1~2년마다 한 번씩 새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모든 걸 돌로 만들자, 주의였다. 제주도 각 마을 중요한 곳에, 세워지는‘거욱’이나 읍성 취락 입구에 세워졌던 돌하르방 역시 그랬다. 제주도의 대표 캐릭터 돌하르방의 주요 기능은 수호신적 기능, 주술 종교적 기능, 위치 표식 및 금표 기능 등이다.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돌영감, 수문장, 장군석, 동자석, 망주석, 옹중석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그중에서도 우석목, 무성목, 벅수머리, 완옹중 석상에서 유래했다 해서 옹중석(翁仲石)이라는 이름이 많이 통용되었다. 북촌 돌하르방공원에서 만난 김남흥 돌하르방 장인(1967년생)은 먼저 인문학적 소양 얘기부터 꺼내 들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그가 15년 전 돌하르방에 인생을 걸면서 처음 매달린 일이 돌하르방에 관한 인문학적 탐구였다. 돌하르방이 어떤 연유로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역사적 유래에 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1971년 제주특별자치도 민속문화재 제2호로 지정된 돌하르방은 1754년(영조 30년)에 제작되었다고 추측된다. 이 때문에 김남흥 장인은 몇 년간 도서관을 찾아 관련 사료를 발굴하여 탐독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런 돌하르방 장인 김남흥 관장은 15년간의 열정과 노력으로 창조한 그의 ‘상상의 나래’를 알아듣기 쉽게 풀어 줬다. "‘탐라기년(耽羅紀年)’에는 1754년 김몽규 제주 목사가 옹중석을 창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국 진시황 때 흉노족 등 북방 이민족을 물리쳤다는 거인 완옹중이라는 인물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죽은 후 진시황이 그의 동상을 아방궁 앞에 세웠다.” “김몽규 목사는 본토 사람으로 막상 제주에 와보니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었고, 당시 전염병이 돌아 800여 명이 죽어 나갔다. 이 상황에서 흩어진 민심을 모아야 했던 김몽규 목사 역시 완옹중이란 인물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제주 사람들의 삶이 든든해지기를 기대하며 관 주도로 옹중석을 만들어 동·서·남 성문 앞에 상징적 문지기를 세웠다. 우석목, 무석목 등으로 불리다가 1971년 제주도 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돌하르방이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제주 목성을 지키던 돌하르방은 우락부락하고 무장을 한 모습으로 키가 크다. 반면 정의현성(서귀포시 성읍리)이나 대정현성(서귀포시 대정읍) 돌하르방은 각각 12기로 제주목 절반에 불과하며 키도 작다. 제주 목사가 주도했고 정의현과 대정현에서 따라 했다. 당시 지역마다 부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돌도 달랐기 때문에 석수들의 표현이 다르게 나타났다. 다만 돌을 가장 적게 깎아내면서 형태를 끌어낸 기법은 같았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문득 고등학교 시절, 당시 월남 참전용사 출신인 미술 선생님이 “돌하르방은 주변 현무암을 가져다가 대강 파놓은 예술적 가치가 별로 없는 싸구려 관광 공예품에 불과하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났다. 그 때문에 여태껏 내가 '제주 돌하르방을 희화화하고 평가 절하했었구나'하는 자책감이 들기도 했다. 제주의 돌인 검은 다공질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돌하르방은 그 재질을 잘 살려 입체감을 더하며 조금씩 다른 형태를 지니고 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큰 눈, 자루 같은 코, 다문 입, 넓게 뻗는 귀 등 해학적이면서 인정 넘치는 얼굴을 하고 있다. 벙거지를 눌러쓴 머리는 약간 옆으로 비스듬하여 무언가를 생각하는 모습이다. 하체는 옷자락으로 발이 보이지 않고, 배 중심에 위아래로 골이 있다. 두 손은 배에 올려놓고 위엄 있는 모습으로 서 있다. 돌하르방은 손의 위치에 따라 상징하는 인물이 달라진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문인(文人)을 상징하고, 왼손이 위에 놓인 돌하르방은 무인(武人)을 상징한다. 오래된 돌하르방이 쓰고 있는 모자는 보통 버섯 머리 혹은 벙거지 모양으로 남근 모양과 흡사하다는 주장이 있다. 한때 돌하르방 코를 만지면 남자 아기를 낳는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막연한 기대로 혹은 재미 삼아 돌하르방 코를 만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하르방의 코 부분을 부수고 가루 내어 물에 타 마시는 풍습도 있었다. 2007년 작고한 제주도 마지막 석장(石匠) 고 고흥옥 옹은 돌 깨는 일을 하다 독학으로 동자석과 문인석을 만드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무덤에 동자석을 세우는 사람들이 줄었고 찾는 사람도 없어지면서 더 이상 동자석을 만들지 않았다. 동자석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 모습을 한 동남(童男), 동녀(童女)의 형상이다. 동자석은 동제석, 동ᄌᆞ석, 동주석, 동제상, 애기동자, 자석 등으로 부른다. 제주 민묘(民墓)는 부등변 사각형의 산 담으로 둘러 있고, 그 속에 둥근 봉분이 있으며 묘주(墓主)의 시중꾼이라 할 수 있는 아담한 동자석이 쌍으로 마주 서 있다.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작고 귀여운 동자석은 제주의 대표적 석상이다. 무덤을 지키고 죽은 이의 영혼을 위로하는 의미를 지닌 제주 동자석은 현무암이나 화산암으로 만들어졌다. 다른 지역 동자석과 다르다. 제주 동자석은 손에 홀, 부채, 문자, 수저, 붓, 칼, 술병, 술잔, 부채, 뱀, 새, 음양의 성기 등 다양한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다이아몬드형, 타원형 등 기하학적 무늬도 있다. 2024년 고 이건희 회장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제주 동자석과 문인석 55점이 국립제주박물관 옥외정원에서 선보였다. 이 동자석과 문인석은 2021년 4월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2만1000여 점 작품 가운데 일부다. 2006년 제주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돌 문화를 집대성한 제주 돌문화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제주 지역 최초의 예비타당성 사업으로 지금도 여전히 조성 중이다. 제주 돌문화공원은 곶자왈 지대에 있는 326만9731㎡(100만 평) 부지에 야외 전시장뿐만 아니라 제주 돌 박물관, 설문대할망 전시관, 오백장군갤러리 등의 다양한 실내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야외 전시장을 제외하고 실내 전시실만 합쳐도 4만2900㎡에 달하는 전시시설이 들어섰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 공간 3만7719㎡를 넘어서는 규모다.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돌 문화와 오랜 시간을 견뎌낸 제주 사람들의 지혜와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돌 문화공원 야외 전시장에는 48기 돌하르방, 사악한 기운과 액운을 몰아낸다는 방사탑, 제주의 상징인 정주석, 무덤 주위에 세워 망자의 한을 달래준다는 동자석 등이 망라돼 있어 제주의 풍성한 돌 문화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조선의 해금(海禁)과 공도(空島)정책 한국 사료에 왜구가 처음 나타난 시기는 사료에 의하면 고종 10년(1223)이며, 이때부터 공양왕 4년(1396)까지 약 169년 동안 519회에 걸쳐 침략한 사실이 있다. 주로 조운선 약탈이나 납치를 시도한 것으로 보아 식량과 인적 자원을 노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인 경우 『명사(明史)』와 명실록(明實錄)』에 의하면 홍무(洪武) 원년(1368)부터 홍무 7년(1374)까지 중국 연안에 왜구가 침략한 곳은 23회 이상이 되자 당시 신생왕조였던 명나라의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 이에 홍무 4년(1371) 연해민(沿海民)들이 아무 때나 바다로 나가는 것을 제한하는 해금령을 내렸으며, 연해 지역에 해구(海寇)·왜구(倭寇)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해방정책을 실시하였다. 해금(海禁)은 하해통번지금(下海通番之禁) 즉 “바다에 나가 오랑캐와 통교하는 것을 금지한다”라는 말의 약칭이었다. 이러한 해금령은 중국 영향권에 있는 조선과 일본에 해방정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간혹 해금이 완화돼 해외무역을 허용하는 범위에서 개해(開解)가 이루어지기도 했으나 해금은 명·청 시대의 국가의 외교, 무역, 국방 등의 안보 정책이 되었다. 조선은 중국의 해금정책과는 다른 공도(空島)정책으로 주민들이 바다에 나가는 것을 통제했다. 원래 공도정책의 시초는 고려말 한반도 연안에 왜구가 극성을 부리면서 시작되었고, 원종 12(1271)년 왜구가 거제도를 공격하자 고려 정부는 거제도민을 내륙지방인 거창과 진주로 이주시키면서 사실상 시작되었다. 공도정책이란 말 그대로 섬에 사람이 살지 않고 비워두는 것을 말한다. 14세기 말엽부터 15세기 중엽에 이르도록 서남해 도서 지역에 출몰하여 미역을 채취해 가거나 배를 만들어 가는 등 섬주민들을 괴롭혔다. 사실상 15세기 조선 정부는 왜구들의 노략질 대상인 주민들을 섬에 살지 못하게 함으로써, 왜구들이 약탈할 것이 없으면 그들이 빈 섬에 오지 않으리라는 계산을 하고 있었다. 왜구나 수적들이 경제적인 이익을 얻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공도정책의 본뜻이었다. 바야흐로 성종 연간에 「도서거주금지령」과 「추쇄령」이 내려졌다. 이때에 주민들에는 강력한 단속이, 수령과 만호에게는 감독 책임이 주어졌다. “쇄환해온 자가 다시 섬으로 숨어들면 해당지역 만호나 수령은 이유를 막론하고 본인은 파직시키고 가족들은 변지(邊地:변방)로 보낸다.” 하지만 이 정책 또한 왜구들과 유랑민이 다른 피해를 끼치게 된다. 왜구들은 빈 섬을 점령하여 그곳의 나무로 배를 만들고 임시 생활 근거지로 삼는 것이 다시 문제가 되었다. 포작인과 국내 유랑민들도 빈 섬을 드나들면서 숨박꼭질하듯 추쇄(推刷)와 쇄환을 피하기도 했다. 이주민들도 섬을 선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세금이 싸고 요역의 부담이 적어 섬으로 이주하기를 희망했다. 왜구에 대한 정의, 그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왜구는 누구인가? 왜구의 발생 원인과 그들의 활동 근거지, 왜구의 구성원에 대한 한·일간의 시각차는 매우 크다. 먼저 일본 고등학교용 6개의 역사 교과서에서 보이는 왜구에 대한 시각을 종합해 보면 왜구의 근거지로는 대체로 쓰시마, 이키, 마쓰우라 지방과 제주도의 해민, 히젠마쓰 우라, 고토(五島)열도의 삼도(三島), 북규슈와 세토내해, 마쓰우라 등지로 보고 있다. 왜구가 등장하게 된 발생 원인으로는 6개의 역사 교과서 중 4곳이 불분명하다고 기술하고 있으나, 2곳의 교과서에서는 ▲식량 자급의 어려움 ▲식량부족 내란기의 일본 국내 정치 혼란 상황을 이유로 들고 있다. 왜구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5가지가 있는데 ▲왜구라 불리는 해적집단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으로 구성된 일본인 중심 ▲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三島)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북규슈와 세토내해의 주민 ▲일본인 해적 집단, 쓰시마, 고토(五島) 등지의 일본인으로 기술하고 있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국내 정치 혼란기의 식량문제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다. 왜구의 주체에 있어서 두 가지가 특이한데 왜구에 제주도의 해민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고, 왜구를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한·일 학자들의 왜구를 보는 시선은 어떠한가? 한국 연구자들은 왜구를 일본 해적, 혹은 일본인으로 보는 견해다. 왜구의 근거지를 일본의 삼도(三島)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여기서 삼도는 쓰시마(對馬島), 이키시마(壹岐島), 마쓰우라(松浦)를 말한다. 일본 연구자들은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보듯이 왜구를 해적집단으로 인식하면서도 규슈(북규슈)와 세토내해에의 무사와 상인, 삼도 왜구, 일본인과 고려인의 연합, 제주도 해민, 쓰시마 고토 등지의 일본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한·일간 왜구를 보는 이러한 시각적 편차는 급기야 무라이 쇼스케(村井章介)처럼 “왜구(倭寇), 왜인(倭人), 왜어(倭語), 왜복(倭服)이라는 말의 왜(倭)는 결코 ‘일본’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말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왜구는 “반(半)한국, 반(半)중국, 반(半)일본이라는 민족적으로 애매한 주변지역의 경계인”이라고 동아시아의 특수성과 시대상황을 무시하여 무리하게 뭉뚱그려 정의하기도 한다. 사실상 왜는 삼국시대부터 신라를 중심으로 자주 침략해 약탈한 사례가 있으며, 이를 반영하듯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에도 ‘왜구(倭寇)’라는 단어가 보이는데 왜구의 어원이 되고 있다. 여기서 왜구는 “왜(일본)가 약탈했다. 왜가 침략했다”라는 사실이 왜와 왜구가 중첩되고 있는데 단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한 점도 많다. 그래서 왜구의 정의가 매우 포괄적이며 다의적이어서 쉽게 개념을 내리기가 어렵다. 물론 왜의 침략은 일본 국가 차원의 행동이라는 사실 면에서 일본인 해적집단이기도 한 왜구와는 다르다. 왜라는 말이 오해를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한편으로 왜(일본)에서 쓰시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해적 무리인 왜구들에게 외교의 책임을 물어 체포해 고려로 압송한 사실도 왜구와는 다른 왜(일본)의 입장도 있다. 그러나 1350년 경인년 왜구의 대규모 침략 이래 왜구들의 한반도 침략이 잦아졌지만, 후세들은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왜란의 성격이 '왜적이 침략한 전쟁'이라는 이미지로 굳어버려 왜라고 하면은 바로 왜구를 연상하게 된다. 한국과 중국, 일본의 특수성을 동시에 봐야 한다. 그렇다면 왜구들은 누구였는가가 항상 문제라는 사실이다. 대개의 왜구 연구자들은 일본 남북조 내전으로 규슈가 혼란해진 시기가 고려에 왜구들이 대거 출몰한다는 시기와 같다는 점에서 그 원인을 규슈 내의 남북조 내전으로 해상 세력의 공권력에 대한 통제력이 약한 데서 찾고 있다. 나아가 규슈 내 남조 세력을 지지하고 있는 군벌이 식량을 얻기 위해 자신의 휘하의 군사들을 고려에 투입한 것이 경인년 왜구의 실체라는 주장도 한다. 왜구의 근거지로는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었지만, 다수의 연구자들 또한 쓰시마(對馬島)가 삼도(三島) 중에 하나이며, 더불어서 이키시마(壹岐島), 규슈 북부의 마쓰우라시마(松浦島), 또는 히라도(平戶島)를 꼽고 있다. 이와 같이 왜구의 근거지가 되는 지역들은 지정학적으로 한반도와 제주에 가깝고, 언제라도 바다 해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해상 운용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그런 세력 중 하나로 유력한 규슈 서북부 지역의 마쓰라토(松浦黨)나 쓰시마의 소다(旱田)씨 등이 있는데 이들 해상 집단이 쓰시마를 집결지로 삼아서 왜구를 이끌었다는 주장이 설득을 얻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심한 경우도 있었다. 거지 단체가 그걸 기회로 함부로 협박해 재물을 강요하였다. 진우문(陳雨門)의 『개봉춘절구침(開封春節鉤沉)』에 한 사례를 기록하고 있다. “설 전후 연말연시 때에 거지가 많았다.” 『개봉기구전불진노인담(開封耆舊傳拂塵老人談)』 기록을 보자 :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음력 섣달부터 음력 섣달 그믐날까지 상국사(相國寺)의 속인들과 잡팔제(雜八弟, 강호에서 상하구류의 한 분파를 말하는데 소매치기, 유괴범, 사기꾼 등을 포함한다)가 결합하여 귀신, 부녀자로 분장해 북을 치고 휘파람을 불면서 매일 저녁 상점이 문 닫을 즈음에 길을 따라서 사기치고 강탈하였다. 섣달 그믐날이 가까워지면 더 심해졌다. 그러면 상국사 두목 노요(魯耀)가 친히 나서서 중재하였다. 연말마다 거상들이 대표를 선발하여 약간씩 갹출하여서 거지 두목에게 전달했는데 ‘송년(送年)’이라 불렀다. 민국 8년 이후에서야 처음으로 단속되었다. 중일전쟁 이전에 연화락을 실연하며 다니는 거지들이 있었다. 어린아이 머리에 부들로 엮어 만든 꾸러미를 씌우고 코와 입만 보이게 구멍을 낸 후 그 위에다 석회로 자라 모양을 그리고 가운데에 ‘왕팔(王八)’ 두 글자를 써서는 목에다 삼밧줄을 묶어서 끌고 다니면서 불운한 기운을 없애라 소리치며 구걸하였다. 상점에 이를 때마다 상점의 크기에 따라 반드시 8수(80문, 800문, 최소한 8문)를 주라고 강압적으로 요구하였다. 경험이 있는 상점에서는 80문이나 800문을 주면 행운의 말을 몇 마디 읊고는 떠났다. 그렇지 않으면 불길한 말을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쏟아내었다. 쟁반에 4색의 연말 선물을 올려놓고 먼저 새해 인사를 하고 그에 따라 후사(적으면 100문, 많으면 1000문)하라고 강요하는 일은 다반사였다. 위와 같은 사례는 모두 옛날 설날 풍속 중의 구성부분이다. 거지도 상응하는 관습을 형성하였다. 재미있는 일은 따로 있다. 평상시에 사람들은 약자를 동정하는 심리와 선량한 마음이 생길 때에는 힘이 닿는 데까지 거지에게 기꺼이 보시하고 구제하였다. 그런데 일단 자기 가정의 운명과 절실한 이해관계가 있는 금기와 상충될 때에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택했다. 눈치가 있는 거지들은 금기가 많은 설날 기간에는 구걸하는 것을 피했다. 설날 전에 강압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식으로 구걸했더라도 설 때에는 습속 제약에 얽매여 교묘하게 순응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쌍방이 공유하는 케케묵은 낡은 습관이 되었다. 옛날에 하남(河南) 거지는 ‘돈을 요구할 때에는 반드시 8수로 하여야 했다.’ 왜 그랬을까? 한족의 수(數)문화를 교묘히 이용한 까닭이다. 한족은 ‘8’을 길한 숫자, 정해진 운명, 정액의 숫자로 생각하는 관습이 있었다. 거지가 조왕신에게 제사하다 연말에 거지가 관례대로 강압적인 방식으로 구걸하는 행태는 송대에 이미 선례가 있었다. ‘타야호(打夜胡)’라 한다. 송대 맹원로(孟元老)의 『동경몽화록(東京夢華錄)』 10권 「십이월(十二月)」의 기록이다. “이 달이 되면 가난한 자 서너 명이 한 무리가 되어 귀신 부인으로 분장하고 쟁과 북을 치면서 대문을 돌며 구걸하였다. 민간에서는 ‘타야호’라 불렀다. 요괴를 몰아내는 법이다.” 이런 ‘타야호’는 양언령(楊彦齡)의 『양공필록(楊公筆錄)』에는 ‘打夜狐’, 조언위(趙彦衛)의 『운록만초(雲麓漫抄)』에는 ‘打野胡’라 되어 있지만 실제는 이런저런 명목으로 돈을 갈취한다는 뜻인 ‘타추풍(打秋風)’과 마찬가지다. 어떤 곳에서는 재신을 건네주고 어떤 곳에서는 도깨비 모양으로 가장해 잔꾀를 부리는 것일 따름으로, 실제로는 형태를 바꾸고 기회를 틈타 동냥하는 것으로 명목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청대 소주(蘇州)에 거지가 조왕신에게 제사지냈다. 청대 고록(顧祿)의 『청가록(淸嘉錄)』 12권 「십이월·도조왕(跳竈王)」의 기록이다. “음력 초하루에 거지 서너너덧 명이 한 무리를 이루어 조왕, 조왕부인으로 분장하여 각자 대나무 가지를 잡고 문 앞에서 시끄럽게 굴면서 구걸하였다. 24일이 되어야 그치는데 ‘도조왕’이라 부른다. 주종태(周宗泰)는 『고소죽지사(姑蘇竹枝詞)』에서 ‘또 늦겨울이 되니 분주하게 재촉하여 길거리에 재신화상이 상점마다 열리게 하네. 조왕신으로 분장한 사람이 오니 사람마다 아양 떠는데, 결국은 돈으로 주머니를 채울 속셈이라네.’ 라고 읊었다.” 이에 대하여 고록은 평어 방식으로 고증해 인증하였다. “이랑(李廊)은 『경청사(鏡聽詞)』에서 ‘상자에서 거울을 꺼내 조왕(竈王)에게 고별하였네.’라고 했는데 조신(竈神)을 조왕이라 부른 것으로 당(唐)대에 이미 그러하였다. 또 이작(李綽)은 『진중세시기(秦中歲時記)』에서 ‘섣달 그믐날에 나(儺)가 들어왔는데 모두 귀신 형상이었다. 안에 둘이 있었는데 나공(儺公), 나모(儺母)다.’라고 했는데 가설정(家雪亭)이 『토풍록(土風錄)』에서 현재의 조공(竈公), 조파(竈婆)라고 하였다. 채철옹(蔡鐵翁)은 시에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돈을 요구하니 결국 쌍을 이루었다.’ 『양서(梁書)』에서는 ‘나(儺)는 야운(野雲)이다.’ 『남사(南史)·조경종전(曹景宗傳)』에서는 ‘일찍이 음력 섣달 에 사람을 시켜 가택에서 사악함을 쫓도록 하였다.’……유독 강지(江志), 진지(震志)에서는 ‘24일에 거지가 얼굴에 분칠하고 모습을 바꾸어 남녀 귀신으로 분장해 구나(驅儺) 제사를 지내고 재물을 요구하였다. 민간에서는 도조왕(跳竈王)이라 한다.’ 주밀(周密)은 『무림구사(武林舊事)』에서 말했다. ‘24일, 시정에서 나(儺)를 맞이하였다.’ 오만운(吳曼雲)은 『강향절물사(江鄕節物詞)』 서론에서 ‘항주의 풍속에는 조왕에게 제사지낸다. 거지는 음력 섣달 하순에 얼굴을 검게 칠하고 시가로 나가 깡충깡충 뛰면서 돈과 쌀을 요구하였다.’라고 말했다.” 이 사이에 현지에서는 또 거지들이 종규(鐘馗)에게 재사지내는 풍습이 있었다. 『청가록』 12권 「십이월·도종규(跳鐘馗)」의 기록이다. “거지는 낡은 갑옷과 투구로 종규처럼 분장하여 문 앞에서 춤을 추면서 귀신을 쫓았다. 음력 초하루에 시작해 섣달 그믐날에 그쳤다. ‘도종규’라 한다. 주종태(周宗泰)는 『고소죽지사(姑蘇竹枝詞)』에서 ‘흰 머리 낡은 모자 헌 옷, 만 량의 황금으로 향화 드리네. 보검을 새로 갈아 귀신을 쫓아내니 확실히 나라를 지키는 충량이구나.’ 라고 읊었다.” 거지가 종규에게 제사지내는 ‘도종규’도 돈을 버는 하나의 명분임은 분명하지만 관습이었다. 사람들은 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도 즐기면서도 ‘인격을 잃어버리는’, 자신이 직접 귀신으로 분장하지 않으려고 어쩔 수 없이 돈주머니를 풀어 거지와 같은 ‘천민’을 고용한 것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보시 방법으로 거지를 매수하여 신을 즐겁게 하고 자신도 즐기는 목적을 달성하였다. 거지에게 속세 사람과 귀신 사이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담당케 하였다. 신을 공경하면서도 거지에게 신을 희롱하는 역할을 맡겨 거지의 인격을 희생시켰다. 거지를 사람과 귀신 사이를 중개하는 사자로 삼을 셈이다. 정말로 이해하기 힘든 논리다. 예부터 지금까지 여러 습속 중에서 이러한 앞뒤가 서로 맞지 아니하고 모순되는, 자가당착인 상황이 어디 한둘이던가. 일정한 의미에서 말하면 습속은 특정한 모순의 산물이라 할 수도 있다. 습속은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다. 습속은 특정한 모순을 조정하고 균형을 잡는 공구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무협소설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연재했던 무협소설의 시즌 2입니다. 무협은 무술(武)로 협(俠, 의기로울)을 이룹니다. 창작인 소설이 더해져 무협소설이 됐습니다. 퓨전무협 소설입니다. 무협의 묘미는 살리기 위해 일상적인 무협용어는 사용했지만, 해석이 힘든 용어는 현대어로 풀어썼습니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습니다. 이름을 차용 당한 인물들은 제주에서 ‘공인’입니다. 공인다운 아량으로 소설인 점을 이해 부탁합니다. 무협소설 주인공들이 매번 외치는 기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갈(喝)∼” 적막했다. 텅 빈 수련장은 도무지 적응되지 않았다. 수백조 원 중원무림 예산을 쥐고 흔들었던 게 엊그제였다. 정신이 어수선할 정도로 수많았던 휘하들은 나른한 봄날의 꿈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내 수련장에 노크 소리가 들린 적이 언제였던가. 도무지 기억에 없었다. 타의적 독고다이(独孤多異) 무사가 되고만 것인가. 인지도 상승 수련을 위해 시전을 한 바퀴 돌 때는 “누구라 마씸?” 하는 통에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 성유검이우다” 했지만, 반응은 눈만 껌벅껌벅.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위해 수련하고 있는가. 제주무림은 왜 이렇게 나에게 매정하게 대하는가. 국민의힘방도 섭섭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집안싸움으로 몸살을 앓고, 전국무림 판세도 TK(대구, 경북)무림만 빼곤 위기에 놓여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중원 지원 없이 각자도생(各自圖生) 하라는 말인가. 3자 대결로 경선 흥행몰이를 하는 민주방 무사들이 생각났다. 살짝 배가 아픈 상황이었지만, 가소로웠다. “정책설계와 운용 무공엔 관심이 없고 행사장 무공에만 익숙한 자들이다. 영훈공은 지난 4년 동안의 성과에 대해 도민무림인으로부터 낙제점을 받았다. 대림검은 오랫동안 정치무공을 펼치면서 수많은 약속을 했지만 책임을 진 적이 없다. 성곤검은 또 어떤가. 3선 중원무림의원을 지내면서 서귀포무림에서 해놓은 게 뭐가 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성유검은 문득 지난날이 떠올랐다. 가슴 벅찬 ‘4전 5기’ 신화였다. 눈을 감고 내공 급충전 명상을 시작했다. 금세 충전 100%. 눈이 번쩍 뜨였다. 성유검은 호검의 무림 플랫폼에 무사회원 가입을 하곤, 자신의 초미니 자서전을 리얼타임으로 썼다. 제목은 ‘달려라, 날아라 성유검!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시각, 호검은 정체 모를 이에게서 긴급 카톡을 받았다. ‘영훈공, 이번 주 공식 출마 선언. 단, 예비무사 등록은 4.3 맏상제 핑계로 미룰 듯. 출마 선언 후 비무준비캠프 공식 오픈.’ 호검이 탄식했다. “오늘은 왜 이렇게 바쁜 거야. 영훈공 공식 출격 첩보에 성유검 초미니자서전까지. 우선 내 회원무사로 가입한 성유검 초미니 자서전부터 읽는 게 상도의지.” ◆ 마루치 아라치 주제곡의 예언 무림 1964년 3월, 제주시 용담동 출생. 초등 무림시절 그를 무사의 길로 이끈 MBC방 라디오 연속극 프로가 있었다. 60년대생 아동무사들을 열광하게 했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였다. “달려라 마루치, 날아라 아라치…. 정의의 주먹에 파란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애창곡 마루치 아라치 주제가를 흥얼거리던 성유검은 멈칫했다. 지금 자신의 상황과 너무나도 흡사했던 것이었다. “내 미래를 위한 예언 곡이었던가. 파란색(파란해골 13호)은 민주방의 상징색. 마루치 아라치 이름 색은 공교롭게도 국민의힘방을 상징하는 빨간색이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내게 불의를 물리치는 정의감을 심어줬어. 내 반드시 파란 해골 13호를 물리쳐 전국무림 지도 색깔을 바꾸고야 말 거야.” 성유검은 다시 집중했다. 아버지는 높은 직책을 지낸 포졸간부였다. 그 때문이었을까. 초등무림 때부터 혹독한 가정수련을 받아야 했다. 용두암 인근 얼음장 같은 용천수가 솟는 곳에서 혹독한 겨울에도 냉수마찰수련. 덕분에 아버지는 목욕탕수련비를 아낄 수 있었다. 세월 급가속 모드, 연세대무림 경제학과에 입학한 시절이었다. 소년 급제를 하고 싶었다. 대학무림 1학년을 마치자마자 전지훈련장인 절에 들어가 고시수련 플랜을 세웠다. 고된 수련의 서막이었다. 진시(辰時)부터 해시(亥時)까지 고시무림방 ‘경헌제방’에서 수련하다 3학년 때 1차 관문을 통과했다. 하지만 멀고도 먼 길이 예고되어 있었다. 낙방을 거듭하며 소년급제의 꿈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캠퍼스 낭만은커녕 제대로 된 연애도 한 번 못 하며 대학시절 시간을 몽땅 투자했는데 말이다. 대학무림 졸업 후엔 좀 복잡해졌다. 1차 고배, 1차 합격 후 2차 실패, 또 2차 실패였다. “실패도 반복되면 습관이 되는구나.”, 하곤 깊은 한숨을 지었다. 하지만, 무림 1989년 최종 관문을 통과한다. 전적을 보면 1차 관문 3번 합격, 2차 관문 4번 탈락 후 통과. 말 그대로 ‘4전 5기’였다. 성유검은 남에겐 쉽사리 털어놓지 못할 고뇌가 있었다. 결혼 얘기만 나오면 몸이 움츠러들었다. 권위주의적 가부장제 무사 집안의 장손, 1년에 12번이 넘는 제사수련, 성격과 내공이 센 누나검과 여동생검. 가벼운 소개팅비무도 힘든 악조건이었다. 가문의 소개로 만난 이화여대무림에서 약대 무공을 익힌 경민낭자에게 비장한 각오로 집안 내력을 상세하게 고백했다. 경민낭자는 약처방을 찾는 듯 당황해하며 잠시 고심하더니 결혼을 수락한다. 3번의 만남, 45일이란 초스피드로 결혼에 성공한 것이었다. 서울집에 신혼집을 차렸던 당시였다. 경민낭자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시아버지가 헛기침하며 쑥스러운 듯 봉인한 봉투를 내밀었다. 사랑스러운 며느리무사에게 주는 시아버지의 첫 선물. 감사해하며 받았다.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열어보곤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빼곡하게 적혀 있는 제삿날 명부였다. 집에서 모시는 제사수련이 일 년에 12번이 넘었다. 그중 5번의 제사는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그 어떠한 일이 있어도 반드시 제주무림으로 내려와 출전해야 하는 제사였다. ◆기재부 컨트롤타워 핸들 잡은 성유검 중원무림 기획재정부 소속 무사가 된 후였다. 중원무림 예산 수백조 원을 배분 계산을 하곤, 그 무거운 돈을 등짐으로 나르는 곳. 힘깨나 쓰는 무사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성유검은 출세는 못 해도 ‘변방 무사여서 무능하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는 않았다. 자정이 넘어서야 퇴근하고, 아이들이 아침에 일어나기도 전인 꼭두새벽에 출근하는 강행군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무림 2011년 예산총괄과장 무사의 직위에 오른다. 이후 무림 2019년,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까지 오른다. 중원무림 경제정책 컨트롤타워 핸들을 잡은 것이었다. 장차관을 빼곤 넘버1 운전무사. 그뿐이 아니었다. 중앙부처 제주무림 출신 무사 모임인 ‘제공회’ 수장으로도 선출되며 무사인생 황금기를 맞는다. 당시, 여식에게서 받은 편지. “사랑하는 아빠검, 흔히 차를 운전하면 본래 무사의 성격이 나온다고 하는데, 핸들을 잡고서도 화를 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요. 아마 그래서 저도 성향이 화를 내는 편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나 봐요.” 그는 회고했다. 자나 깨나 제주무림에 대한 애정, 제주대병원방, 국립제주호국원방, 기상청 제주청사방 등 예산확보에 많은 힘을 썼다. 무림 2019년 12월엔 30년 공직무사 생활을 마무리하곤 한국자산관리공사 ‘캠코’ 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하 2,000여 명, 자산 7조 원에 달하는 공기업방이었다. “0.2% 인구의 유대무림인이 세계무림을 움직이는 것은 무사 네트워크 덕분이다. 30년 동안 구축해 온 무사 네트워크를 활용해 중원무림과 긴밀한 협력적 관계를 조성하면서 제주 무림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밀알이 되고 싶다.” 성유검은 돌연 캠코에 사표를 내곤 무림 2022년 4월, 국민의힘방 제주맹주 후보 비무에 첫 출전한다. 결과는 향진검 40.61%, 성철검 37.22%에 이어 28.45%. 꼴찌로 탈락했다. ◆ 성유검 “결선비무 진출 ‘성곤검과 대림검’, 최종 경선승자 성곤검” 성유검 초미니 자서전을 완독한 호검은 몹시도 궁금해졌다. 지금 제주무림 최대 관심사는 민주방 경선에서 누가 승리할까였다. 본선에서 맞붙을 무사라면 의미 있는 예측이 나올 것 같았다. 성유검에게 카톡을 보냈다. “경선비무 룰은 확정됐어. 과반수 득표 무사가 없을 때 누가 결선 비무 후보가 될 것으로 예측하는가? 또 경선 최종 승리 무사는 누구일 것 같은가?” 성유검은 미리 준비했다는 듯 초스피드로 답변 톡을 보냈다. “결선투표 진출 무사는 성곤검과 대림검이 될 것이다. 결국, 경선 최종 승리 무사는 성곤검이 되겠지. 감점 요인도 없고, 정치행보를 보면 큰 약점이 없기 때문이지.” 호검은 고심했다. 호시탐탐 성곤검의 중원무림의원직을 노리는 기철검이 생각나서였다. 성곤검이 민주방 후보가 되면 서귀포무림에선 중원무림의원 보궐비무가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유권자 무사들은 월 천 원만 꾸준히 내면 권리방적을 보유할 수 있다. 민주방과 국민의힘방에 양다리를 걸친 무사들은 너무 많았다. 호검이 탄식하듯 말했다. “만약, 기철검이 몰래 자신의 수하들을 가동해 민주방 경선비무에 개입한다면 성곤검이 경선비무 승리무사가 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지. 선관위방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역선택무공 말이야.”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