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인수위 인선 과정에서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가 원희룡 전 제주지사(전 국토부 장관)를 추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이 관련 녹취 파일을 공개했다. 14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민주당이 지난 13일 공개한 녹취에서 명씨는 2022년 3월 13일 윤석열 정부 인수위 첫 인선 발표일에 지인과의 전화 통화에서 "원희룡은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다 사연이 있다"며 "원 지사가 인수위에 이름이 있었나? 없었는데. 하여튼 잘 돼서 다행이네. 나는 그 사람한테 바라는 것도 없고"라고 말했다. 명씨는 또 "거기다 안상수(전 창원) 시장님이 나보고 원 지사 부탁도 여러 번 했고, '원희룡이 어떻게 들어왔지?' 신성범(국민의힘 의원)은 알거든"이라고 말하는 내용도 담겼다. 명씨는 특히 "원래 내가 '원희룡을 선대위 중책에 앉혀라'라고 올렸더니 권성동이 '내가 할게' 이렇게 돼서 그 자리에 들어간 것(2021년 11월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명씨가 2021년 선대위 구성 당시 원 전 장관을 추천했으나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의 반대에 부딪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위 인선에서는 원 전 장관 발탁이 관철됐다는 취지의 언급"이라고 해석했다. 이에 대해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반박하며 "헌재의 위법과 곽종근(전 특전사령관) 및 민주당의 기획 공작을 지적했더니, 또다시 터무니없는 기획 공작을 펼치고 있다. 원희룡이 두렵긴 두려운가 보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지난 대선 경선 최종 경쟁자였고, 대선 캠프 정책본부장이었던 내가 대통령 인수위에 누구 추천으로 갈 사람이냐"며 민주당의 주장을 일축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에 사는 40대 초반 임신부가 구급대원의 도움으로 119구급차 안에서 무사히 아이를 출산했다. 16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20분 "아이가 곧 나올 것 같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는 제주시 연동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39주 임신부 A씨(42)를 구급차에 태웠다. 119구급대는 A씨 상태를 확인하고 분만이 임박했다고 판단해 산모 동의를 얻고 곧바로 구급차 안에서 출산을 유도했다. 당시 탯줄이 아이 목에 감겨 있었다. 하지만 119구급대가 침착하게 대응한 결과 다행히 A씨는 오전 6시 33분 구급차 안에서 무사히 딸을 출산했다. 산모와 아이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모두 건강이 양호한 상태로 전해졌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항공이 영업을 총괄하는 커머셜본부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지난해 12월 무안공항 사고 이후 여객 수송 실적이 감소하자 경영 내실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1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다음달 26일 제주도에서 정기 주주총회를 열고 정재필 커머셜본부장을 신규 사내이사로 선임할 예정이다. 정 본부장은 아시아나항공에서 영업전략1팀장을 지낸 뒤 2023년 제주항공에 합류했다. 현재 커머셜본부장을 맡고 있다. 영업 및 수익성 강화에 집중해 온 이력을 고려할 때 이번 사내이사 선임은 실적 회복을 위한 전략적 결정으로 해석된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12월 무안공항 사고 이후 운항 감축을 통해 안전성 확보에 집중해왔다. 이에 따라 국내선과 국제선 운항량을 10~15% 줄였다. 다음달까지는 이 같은 감축 기조를 유지할 예정이다. 4월 이후 적용될 하계 스케줄에서도 추가 감축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러한 조치는 제주항공의 여객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LCC(저비용항공사) 여객 수송 실적에서 제주항공은 국내선과 국제선 모두 각각 티웨이항공과 진에어에 밀려 3위로 내려앉았다. 이번 사내이사 선임은 이러한 실적 하락을 반전시키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커머셜본부장이 이사회에서 활동하는 것은 처음이 아니다. 앞서 영업 전문가인 유명섭 전 커머셜본부장이 2016년 5월부터 2021년 말까지 약 6년간 사내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이번 인사로 제주항공 이사회는 기존의 6인 체제에서 7인 체제로 개편된다. 기존 사내이사였던 김이배 대표이사와 이정석 경영기획본부장(전무)에 정 본부장이 합류하면서 사내이사가 2명에서 3명으로 늘어난다. 또 기타비상무이사였던 이장환 AK홀딩스 재무팀장의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김형원 AK홀딩스 법무 담당이 후임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이는 법무 전문성을 강화하고 관련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으로 분석된다. 사외이사 후보로는 민흥식 전 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과 연태준 홈플러스 부사장이 올라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경영 내실화와 신뢰 회복을 위한 항공업 전문가를 이사회에 선임하는 것"이라며 "실적 회복과 수익성 개선에 집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와 오키나와가 하늘길과 바닷길을 연계해 관광·물류 협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두 지역은 크루즈와 항공 네트워크를 활용한 경제적 시너지 창출과 특산품 교류 확대 방안을 논의하며 동북아 관광·물류 허브로 도약할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14일 제주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서귀포시상공회는 지난 13일 일본 오키나와현 우루마시에서 간담회를 열고 양 지역 간 물류·관광·산업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크루즈 및 항공 네트워크 연계를 통한 경제적 시너지 창출 가능성을 집중 점검했다. 이번 간담회에는 서귀포시상공회를 비롯해 우루마시농림수산부, 우루마시관광물산협회, 오키나와현산업진흥공사, 오키나와현문화관광스포츠부 등 50여 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오키나와현 동부에 위치한 우루마시는 나하공항과 크루즈항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항공·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한 주요 경제·물류 거점이다. 서귀포시상공회는 이번 방문에서 우루마시가 보유한 물류·관광 인프라를 벤치마킹한다. 제주항과 서귀포항을 국제 물류·관광 거점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다. 특히, 나카구스쿠만항을 방문해 오키나와의 크루즈·물류산업 현황을 직접 확인하고 서귀포항과의 연계 방안을 검토했다. 송재철 서귀포시상공회 회장은 "우루마시의 크루즈항과 물류 인프라는 제주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며 "제주항과 서귀포항이 동북아 물류·관광 허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우루마시와 협력 모델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간담회에서는 양 지역 특산품 교류 확대 방안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서귀포시상공회는 우루마시 특산품 매장 '우루마르쉐'를 방문해 현지 생산·가공품의 유통 시스템을 점검하며 제주산 농수산물과 특산품의 일본 시장 진출 가능성을 탐색했다. 오키나와에서는 특산품이 관광객을 대상으로 활발히 유통되고 있어 제주 역시 이를 벤치마킹해 특산품의 해외 판로 확대를 모색할 계획이다. 긴죠 히로후미 우루마시 농림수산부 과장은 "제주와의 협력이 양 지역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상호 교류 확대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제주와 오키나와는 역사적·지리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아 이번 서귀포시상공회의 방문이 실질적인 관광·물류·산업 협력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항공 및 크루즈 네트워크를 연계하는 협력 모델이 제주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지 주목된다. 도내 관광업계 관계자 최모씨(48·여)는 "제주와 오키나와가 하늘길과 바닷길로 연결된다면 양 지역을 연계한 관광상품 개발이 활발해질 것"이라며 "특히 크루즈와 항공 네트워크가 구축되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뿐만 아니라 양 지역 간 특산품 교류도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지난 12일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발생한 갈치잡이 어선 전복 사고 실종자를 찾기 위한 밤샘 수색이 진행됐지만 성과가 없었다. 14일 제주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해경과 해군 등으로 구성된 수색팀은 지난 13일 오후 6시부터 서귀포 선적 근해연승어선 2066재성호(32톤·승선원 10명) 실종자 3명을 찾기 위한 야간 수색을 벌였다. 수색팀은 함선 14척과 항공기 1대 등을 투입해 집중 수색을 벌였다. 하지만 실종자를 발견하지 못했다. 앞서 해경은 전날 주간 수색 중 해상에 표류하던 50대 선원 유모씨 시신을 수습한 데 이어 선원들이 쉬는 공간인 선실에서 60대 선원 김모씨 시신도 수습했다. 해경은 이날도 함선 37척과 항공기 5대, 해안가 수색을 위한 인력 275명을 동원해 실종자 수색을 이어갈 예정이다. 재성호는 지난 12일 오후 7시 56분 서귀포시 표선면 남서쪽 12㎞ 인근 해상에서 초단파무선전화(VHF-DSC)로 긴급구조 신호를 보낸 뒤 오후 8시 전복된 채 발견됐다. 짧은 순간에 강한 너울성 파도를 맞아 배가 뒤집힌 것으로 추정된다. 승선원 10명(한국인 6, 베트남인 3, 인도네시아인 1) 가운데 한국인 선장과 외국인 선원 4명 등 5명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에 의해 구조됐다. 나머지 한국인 선원 5명 중 2명이 사망했고 3명이 실종상태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에서 지자체와 대학이 협력하는 지역혁신사업(RIS)의 성과를 공유하고, RIS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연계를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지·산·학·연 포럼 및 학술대회가 열린다. 제주도와 제주지역혁신플랫폼(제주RIS)은 오는 17일 메종글래드 제주에서 '제주 RIS 미래 신산업 혁신 지·산·학·연 포럼 및 학술대회'를 개최한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포럼은 ‘제주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혁신과 협력’을 주제로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된다. 1부에서는 식전행사와 개회식이 진행된다. 이어 손정민 전북대 산학협력단장이 '지·산·학·연 협력의 미래: 지역 발전을 위한 혁신 생태계 구축'을 주제로 기조 강연을 진행한다. 2부에서는 '성공적인 RIS·RISE 연계 사업을 위한 지·산·학·연 협력 방안'을 주제로 패널 토론이 진행된다. 도, 제주대, 지역기관,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RIS·RISE 연계 사업의 방향성과 지역 및 도외 기업의 역할, 인재 양성, 지역산업 혁신 전략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포럼에서는 RIS 사업을 통해 수행된 지역혁신자율과제 및 성장브릿지 과제와 관련된 학술 논문 발표도 함께 진행된다. 또 지자체와 기업, 대학교, 연구기관 관계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스탠딩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지역 언론의 발전과 경쟁력 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제주도의 제1기 지역언론발전위원회가 출범했다. 제주도는 13일 오전 제주도청 삼다홀에서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언론 발전 지원 조례'에 따라 지역언론발전위원회 위촉식을 열었다고 밝혔다. 이 조례는 지역 언론의 저널리즘 전문성과 공공성을 강화하고, 주민의 알권리 보장 및 사회적 약자의 권익 향상을 통해 민주주의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지난해 제정됐다. 이를 통해 지역 발전과 도민 복리 증진을 도모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조례에는 제주지사와 지역 언론 및 언론인의 책무를 명시하는 한편, 지역언론발전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규정을 포함해 지역 언론 지원을 위한 근거를 담고 있다. 지역언론발전위원회는 도청 언론홍보 담당 부서장을 포함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됐다. 위촉된 위원은 제주도의회, 제주도기자협회, 도내 언론학회, 제주언론인클럽, 제주언론노동조합협의회, 시민단체에서 각각 1명씩 추천됐다. 지역 언론 분야에서 경험과 학식을 갖춘 전문가 2명도 포함됐다. 위원 임기는 2년이다. 1회 연임이 가능하다. 이날 초대 위원장으로는 현학수 제주관광공사 본부장이 선임됐다. 위원회는 앞으로 지원사업 선정 및 기준 마련, 지원 대상 심의 및 선정, 사업 평가 등을 담당한다. 지역 언론 발전을 위한 심의 및 자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이날 열린 첫 회의에서는 2025년도 지역언론발전지원사업 계획안을 심의하고, 위원회 운영 방안을 논의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위촉식에서 "지역 언론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오 지사는 이어 "올해 출범하는 지역언론발전위원회가 지역 언론이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제주에서 모범적인 언론 성장 모델을 실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또 "위원회가 언론 현안뿐만 아니라 도정 정책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을 제시해주길 기대한다"며 "언론인의 직무 역량과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위원들이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당부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 지역의 꿀벌 개체 수가 지난 5년 동안 3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가 13일 발표한 '2024년 가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양봉농가는 439곳, 꿀벌 개체 수는 5만6678통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6만 3142통에서 10.2% 감소한 수치다. 벌집 한 통에는 약 1만~3만 마리의 꿀벌이 서식한다. 제주도의 꿀벌 개체 수는 2020년 8만 803통에서 2021년 7만 8767통, 2022년 7만 1927통으로 매년 줄어들고 있다. 5년 동안 32.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도는 꿀벌 감소의 주요 원인으로 기후 변화를 지목했다. 기온이 떨어지면 꿀벌이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날개짓을 더 많이 하게 되면서 폐사율이 높아지고, 개화 시기의 변화로 꿀 생산량도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또 꿀벌 개체 수 감소로 여왕벌 공급도 줄면서 여왕벌 한 마리 가격이 20만원에서 최대 40만원까지 상승한 점도 양봉농가가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분석됐다. 다른 가축의 사육 규모를 살펴보면 지난해 도내 한우 사육 두수는 3만8456마리로 2023년(3만8978마리)보다 522마리(1.3%) 줄었다. 돼지는 51만9209마리로 2023년 54만3540마리 보다 2만4331마리(4.5%) 감소했다. 도는 사료비 상승과 축산물 가격 하락 등으로 한우와 돼지 사육 두수가 줄어든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 젖소 사육 두수는 증가했다. 지난해 도내 젖소 사육 두수는 4149마리로 2023년(3972마리)보다 177마리(4.5%) 늘었다. 도는 저지종 젖소 도입으로 고급 우유 생산이 확대되면서 유가공업체의 집유량이 증가한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또 계란 가격 상승 영향으로 닭 사육 두수도 증가했다. 지난해 닭 사육 두수는 186만 마리로 2023년 181만6000마리 보다 4만4000마리(2.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도 오리 595마리, 염소 3937마리, 면양 113마리, 사슴 277마리가 사육되고 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 해상에서 10명이 탄 어선이 전복돼 5명이 구조됐고, 나머지 5명을 찾기 위한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3일 제주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2일 오후 7시 56분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남서쪽 12㎞ 해상에서 서귀포 선적 근해연승어선 2066재성호(32톤)에서 초단파무선전화(VHF-DSC) 긴급구조 신호가 수신됐다. 해경 500톤급 함정은 이날 오후 8시 현장에 도착해 뒤집힌 상태의 재성호를 발견했다. 출입항관리시스템상 재성호에는 한국인 6명과 외국인 4명 등 모두 10명이 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외국인 4명(인도네시아 1, 베트남 3)과 한국인 선장 등 5명을 구조했다고 해경은 전했다. 구조된 5명 중 3명은 구명벌(구명보트)에서, 1명은 선체 위에서, 1명은 해상 표류 중 각각 구조됐다. 구조된 이들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일부는 저체온증을 호소하고 있으나 대부분 건강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파악됐다. 해경은 이들을 서귀포 강정항으로 이송할 예정이다. 해경은 나머지 승선원 5명에 대한 수색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경비함정 12척과 해경 구조대·특공대, 연안구조정 2척, 해군·지자체 3척, 민간 어선 4척, 항공기 1대 등이 동원됐다. 해당 해역에는 풍랑주의보가 발효 중으로 바람이 초속 18∼20m로 불고 3m 높이 파도가 일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2일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발생한 어선 전복 사고와 관련해 "경비함정 및 수중수색 구조대원 등 가용 장비·인력을 총동원해 최우선으로 인명을 구조하라"고 지시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더큰내일센터가 이달 21일까지 월 최대 150만원의 수당을 지원하는 '탐나는 인재' 10기 참가자를 모집한다. 제주더큰내일센터는 오는 17일부터 21일까지 ‘탐나는 인재’ 10기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13일 밝혔다. 지원은 온라인 지원 페이지(jdnc.kma.or.kr)를 통해 가능하다. 탐나는 인재 10기는 참가자들이 프로그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했다. 월 최대 150만원 상당의 수당을 지원한다. 취·창업 과정의 분리 선발, 교육 과정 패스트트랙 도입, 맞춤형 관리 및 액셀러레이팅 지원 등 여러 개선 사항이 적용된다. 모집 대상은 공고일 기준 만 15세부터 34세 이하 청년이다. 학력이나 경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단, 선발된 참가자는 최대 18개월 동안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센터가 운영하는 전일제 교육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모집 인원은 75명 내외다. 도내 지원자 75%, 도외 지원자 25%의 비율로 선발한다. 지원자는 인성 검사, 면접, 자격 기준 확인 등의 과정을 거쳐 최종 합격자가 결정된다. 최종 합격자는 오는 4월 1일 발표된다. 4월 15일부터 '탐나는 인재'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온라인 지원 페이지 또는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센터(064-720-8900, 8931~3)로 문의하면 된다. 원희룡 도정 시절 전국 첫 지자체 청년 일자리 창출 조직으로 2019년 9월 출범한 제주더큰내일센터는 오영훈 도정에서 민간위탁 방식으로 전환됐다. 2022년 첫 민간위탁 운영기관으로 한국표준협회가 선정됐지만 운영 계약 연장을 포기하면서 올해부터 한국능률협회가 운영을 맡게 됐다. 한국능률협회의 운영 기간은 2025년 1월 1일부터 2027년 12월 31일까지 3년간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롯데관광개발이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 개장 이례 첫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롯데관광개발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392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고 13일 밝혔다. 롯데관광개발이 제주 드림타워 복합리조트가 개장한 지난 2020년 12월 이후 영업이익 흑자를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매출은 50.4% 증가한 4715억원으로 최대치를 경신했다. 순손실은 1144억원으로 적자 폭이 줄었다. 카지노 부문이 2946억원의 순매출(총매출에서 에이전트 수수료 등을 뺀 금액)을 냈다. 드림타워 카지노의 이용객 수는 38만3000명으로 2023년보다 43.5% 늘었다. 롯데관광개발은 기존 중화권 고객은 물론 제주∼도쿄 노선 재개로 일본 VIP가 많이 늘어난 점이 지난해 호실적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국내 거주 하이롤러(거액의 배팅을 즐기는 이용객) 외국인들의 원정 방문이 이어진 것도 주효했다. 그랜드 하얏트 제주의 지난해 별도 매출은 1474억원으로 2023년보다 19.7% 증가했다. 여행업 매출(848억원)은 37.3% 늘어난 848억원으로 역대 최대다. 롯데관광개발은 지난해 5월 프리미엄 브랜드 'HIGH&'(하이앤드)를 정식 론칭하며 고품격 여행상품 개발 등 차별화 전략을 내세운 바 있다. 롯데관광개발은 "지난해 11월 8300억원 규모의 리파이낸싱(재융자)에 성공하며 이자 부담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며 "지난해를 뛰어넘는 매출 신화를 바탕으로 올해에는 당기순이익 흑자 전환의 턴어라운드(실적개선)를 실현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차고지 증명제 적용 대상의 확대·축소를 두고 제주도의회에서 서로 다른 개정안이 연이어 발의돼 논란이 예상된다. 대다수 차량을 제외하는 방향의 개선안과 특정 계층과 지역을 중심으로 예외를 인정하는 안이 맞붙고 있다. 12일 제주도의회에 따르면 김황국 국민의힘 의원(용담1동·용담2동)은 최근 2007년 2월 이후 등록된 대형 자동차만 차고지 증명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지난해 7월 기준 차고지 증명 대상 차량 36만여 대 중 80% 이상인 31만여 대가 제외된다. 사실상 차고지 증명제의 실효성이 크게 줄어드는 조치다. 반면 현지홍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다자녀가정이 소유한 차량과 부속도서 주민들의 차량을 차고지 증명 대상에서 제외하고, 나머지 차량은 기존 제도를 유지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현재 제주도내 2명 이상 다자녀가구가 약 4만여 명, 부속도서 인구는 수천 명 수준이다. 이를 감안하면 차고지 증명에서 제외되는 차량 수는 비교적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방향성을 가진 개정안이 잇따라 발의되면서 도의회에서의 논의 과정에서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차고지 증명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 전문가들은 공영주차장 확충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공영주차장 확대 ▲차고지 증명 요건을 충족하기 어려운 지역에 대한 예외 적용 ▲차고지 허용 거리 완화 등의 방안을 제안하며 현실적인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특히 제주도의 경우 도심과 농촌 지역 간 주차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인 차고지 증명 적용보다는 지역별 맞춤형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차고지 증명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들은 해당 제도가 헌법상 보장된 평등권과 재산권, 거주·이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한다. 차고지 증명제도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이다. 특히 차고지 증명제 도입 이후에도 제주의 주차난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전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제주도는 현재 '차고지증명제 실태조사 및 실효성 확보방안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조례 개정 작업에 나설 계획이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올해 첫 제주4·3 직권 재심에서 당시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수형 희생자들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는 지난 11일 제주4·3 당시 부당하게 수감된 수형인 30명에 대한 제58차 군사재판 직권 재심을 진행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들은 1948년과 1949년, 적법한 절차 없이 1차 및 2차 군사재판에 회부돼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등의 혐의로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에 검찰의 무죄 구형과 변호인 측의 무죄 변론이 이어졌다. 재판부는 청구인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제주4·3 합동수행단의 직권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제주4·3 군사재판 수형인은 모두 1692명에 달한다. 같은 날 오전에는 일반재판 직권 재심도 진행돼 제19차·제20차 40명의 수형인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현재까지 일반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수형인은 모두 231명이다. 재판부는 "제주4·3은 당시에도 슬픈 일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앞으로도 여전히 슬픈 역사가 될 수 있다"며 "이번 무죄 선고가 그 슬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유족 3명이 청구한 재심도 함께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들 3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제주 서귀포 해상에서 전복된 서귀포 선적 갈치잡이배 2066재성호(32톤, 승선원 10명) 실종 선원으로 추정되는 시신 1구가 발견됐다. 서귀포해양경찰서는 13일 오전 9시 57분 사고 지점에서 남동쪽으로 11㎞ 떨어진 해상에서 사고 어선 실종자로 추정되는 시신 1구를 발견했다고 이날 밝혔다. 시신은 현재 실종 상태인 한국인 선원 5명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해경은 오전 10시 24분 시신 1구를 해경 경비함에 인양, 감식반 등을 동원해 시신의 정확한 신원을 확인할 계획이다. 재성호는 지난 12일 저녁 7시 56분 서귀포시 표선면 남서쪽 12㎞ 인근 해상에서 초단파무선전화(VHF-DSC)로 긴급구조 신호를 보낸 뒤 오후 8시 전복된 채 발견됐다. 해경은 승선원 10명(한국인 6명, 외국인 4명) 가운데 한국인 선장과 외국인 선원 등 5명을 구조했고, 실종된 한국인 선원 5명을 수색 중이었다. 재성호는 지난 10일 오전 9시 56분께 조업을 위해 서귀포항에서 출항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의식을 잃고 쓰러진 고령의 이모를 보고도 그대로 방에 둬 결국 숨지게 한 60대 남성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제주지법 형사2부는 13일 유기치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60대 A씨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또 3년간 노인 관련 기관 취업 제한을 명했다. A씨는 지난해 8월 1일 오전 제주시 일도2동 주거지에서 함께 사는 80대 이모 B씨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은 것을 보고도 구호 조치나 신고 없이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또 치매를 앓고 있는 90대 친모를 숨진 B씨와 같은 방에서 6일간 생활하게 한 혐의도 있다. 같은 달 7일 B씨 손자 신고로 경찰이 현장에 출동했을 당시 B씨는 이미 사망 후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B씨는 관상동맥 경화 증세로 쓰러진 것으로 추정되면서도 최종 사인은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A씨는 "이모가 쓰러져 가쁜 숨을 쉬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괜찮을 줄 알았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B씨가 쓰러진 직후 곧바로 구호 조치를 받았다면 목숨을 건질 수 있었을 것으로 봤다. 재판부는 "시신 부패 정도에 비춰보면 피고인이 피해자의 정확한 사망 시점은 알지 못하더라도 시신이 부패하고 있음은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를 유기한 것은 명백하다"며 "게다가 피고인은 대화 불가능한 중증치매 상태인 모친을 방치해 기본적 의무도 저버렸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제이누리=김영호 기자]
‘세계의 심장부’라는 뉴욕시에서 불과 1시간 남짓 떨어진 부촌 롱아일랜드에 세상과의 모든 연결망이 단절되는 재앙이 덮치지만 정부는 속수무책이다. 무언가 심각한 사고가 터진 게 분명한데 통신 자체가 끊겼으니 무슨 영문인지 알 도리가 없고, 불안감만 가중된다. 그때 하늘에서 눈처럼 ‘삐라’가 쏟아진다. 알 수 없는 아랍어로 쓰인 단 한 줄은 ‘미국에 죽음을(Death to America)’이라는 구호다. 국적을 불문하고 미국에 원한 맺힌 모든 이슬람 국가에서 표준화된 실제 반미(反美) 구호다. 워낙 간결하고도 강렬해서인지 9·11 테러 이후 많은 미국인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구호다. 이 구호가 적힌 삐라를 받아든 아만다의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마른침을 삼킨다. 9·11 테러의 재현을 예감한다. 이 구호의 기원은 1979년 테헤란 미국대사관 인질사태 때 미 대사관을 포위한 이란 군중이 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후 모든 반미 집회에서 ‘개회선언문’처럼 자리매김했다. 흥미로운 건 반미 선동 선봉에 섰던 당시 국가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태도다. 명색이 성직자였던 그는 군중집회에서는 이 저주의 구호를 허용했지만 라디오나 TV 방송에선 금지했다. 어떤 이유로든지 누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카드 활용술이 실체를 드러냈다. 4일(현지시간) 시행하려던 멕시코·캐나다 대상 25% 관세 부과는 한달 유예하기로 했다. 대신 캐나다와 멕시코는 펜타닐 마약 유입 및 불법 이민자 단속 등 트럼프의 요구사항을 들어줬다. 당사국들이 밀고 당기기 협상을 한 결과다. 트럼프가 일단 한발 물러선 데는 이유가 있을 게다. 미국산 농산물 수출이 영향을 받는 등 자국 경제에 미칠 타격과 수입물가 상승을 우려했을 것이다. 시간을 끌며 상대국으로부터 얻을 것은 얻어내자는 계산도 작용했을 수 있다. 트럼프가 관세 부과를 유예했다고 안심해선 안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는 명확하다. 관세를 활용해 무역적자를 줄이고, 세수를 늘리며, 제조업 기반을 미국으로 회귀시키겠다는 것이다. 달래고 어르면서 미국이 원하는 것을 끌어내려는 속셈이다. 멕시코·캐나다와 달리 중국 제품에는 미국이 4일 10% 추가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중국도 10일부터 미국산 품목에 10~15%의 보복 관세를 매기기로 했다. 트럼프 1기 정부 때 벌어졌던 미·중 관세전쟁 2라운드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 입장에선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에 집중한 수출 전략을 펴기도 어렵다. 지난해
아만다(줄리아 로버츠 분)의 가족은 주말 휴양지에서 인터넷과 TV, 전화, 전기 등 모든 유·무선의 ‘연결’이 예고 없이 순식간에 끊어지는 충격적인 사태에 맞닥뜨린다. 이를 ‘미증유(未曾有)’의 사태쯤으로 느낀 사람들은 충격과 혼란 속에 빠져 갈피를 잡지 못한다. 미증유의 사태란 이전에 한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사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영화 속 인터넷망의 붕괴는 미국사회에 한번도 없었던 일일까. 크고 작은 IT망의 교란 내지 붕괴 사태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발생한다. 크고 작은 사이버 테러 사건도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영화 속에서 모든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한번도 없었던 사건인 것처럼 여긴다. 2001년 나심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라는 미국의 통계학자가 ‘블랙 스완 이론(Black Swan Theory)’을 발표했다. 그 이후 블랙 스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금융 시스템의 붕괴현상을 이르는 말로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블랙 스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자신이 아직 보지 못했거나 예상치 못했던 것일 뿐, 매우 드물지만 나타날 수 있는 사태를 의미한다. 반면, 이미 한번쯤 경험했고 그것이 발생할 가능성이
요즘 들어 어머니의 식사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 입에 잔뜩 밥을 물고도 숟갈을 들어서 다시 집어넣으려 하신다. 허겁지겁 서두르는 모양새가 몹시도 배고픈 아이를 연상케 한다. 식탐이 느신 게다. “어머니 밥을 이추룩 잘 드시민, 앞으로도 오래오래 살아지쿠다, 예?”라고 추켜세워드리면, “게메게(그러게 말이다). 돌아오멍 살아짐직 허다 이!”라며 빙그레 웃으신다. 만족스러운 표정이 천상 어린애를 닮았다. 그러고는 정색하고서 뱉으시는 말씀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조반 잘 먹어사 호루 종일 일해여!”. 아, 어머니는 103세의 아침에도 밭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하면 걱정이 태산인가 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 치는 아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라는 조선시대 남구만의 시조가 상기되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치매증세가 그전보다 나아진 건 아니다. “정옥아 이리 와보라. 괴기가 딱 붙언 아니 떨어졈저게!” 무슨 일인가 해서 달려가 보면, 스웨터의 단추를 붙잡고 쩔쩔매고 계신다. 아, 어머니 눈에 드디어 헛것이 보이기 시작한 게다. 어쩌면 바다에서 물질을 할 때 소살로 생선을 쏘아 망실이에 집어넣었는데, 그
고교시절의 일이다. 40년 전이다. 그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선생님의 얼굴은 퍽이나 상기돼 있었다. 고전을 가르치는 선생님은 온화한 분이었다. 늘 학생들을 따뜻한 말로 대했다. 화내거나 꾸짖는 법이 없었다. 그날 선생님은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칠판에 백묵으로 한글자 한글자를 채워갔다. ‘가운데 중(中)’. 칠판을 가득메운 그 글자는 어떤 글자는 크게, 어느 글자는 작게, 그리고 어떤 글자는 비뚤어지게, 또 어떤 글자는 좌우 균형이 안맞게 ···. 그런 식이었다. 선생님은 그렇게 5분이 넘도록 칠판 전체를 빼곡하게 그 글자로 메꿨다.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여러분 여기에 쓰인 가운데 중(中) 글자 중에서 어느 게 진짜 가운데 중(中)인가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난 뒤 하나 둘 손을 들었다. 각기 모양과 균형, 칠판에 적힌 위치 등을 근거로 ‘진짜 가운데 중(中)은 이겁니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선생님이 내놓은 의외의 답. “여러분! 정확하게 자로 잰 듯 꼭 들어맞는 중(中)이란 글자는 여기에 없습니다. 중립이란 그런 기계적 잣대가 아닙니다. 오늘 수업은 이걸로 마칩니다.” 한동안 멍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지금으로선 이것 하나뿐이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갔으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 한다. 그나마 그에게 투표했던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규정과 법을 따지고 할 필요도 없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다. 그는 이제 ‘내란 혐의 피의자’ 신세다. 방조와 동조도 아니다. 이미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만으로도 그는 ‘내란의 주역’이다. 대다수의 국민 상식으로도 그가 현재 대통령 관저에 머무르고 있는 현실이 말이 안되는 지경이다. 당장 현행범으로 체포돼야 마땅한 정황과 사실관계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아직도 검·경이 시간을 끌고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2024년 12월3일 한밤 10시 23분. 그는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운운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는 자유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짓밟고, 헌법과 법에 의해 세워진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써,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입니다.” 한술 더 떠 그의 상황판단은 이랬다.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이끌기를 법으로만 하고 다스리기를 형벌로만 하면 백성이 법과 형벌을 면하려 할 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다. 이끌기를 덕(德)으로 하고 다스리기를 예(禮)로써 하면 백성들이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바로잡아 선(善)에 이른다.” 『논어』(論語) 위정편 제3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실 ‘공정’과 ‘상식’의 대명사였다. 국내 최고 명문대인 서울대 법대 출신이란 점에서도, 검사시절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기개에서도, 그리고 검찰총장이 되고 나서도 권력에 굴하지 않는 풍모에 그렇게들 생각했다. 물론 동의하지 않은 이들도 있었지만 지지자들은 그랬다. 오늘(1일) 대통령의 담화를 보고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다수 국민들의 정서와 동떨어져도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서다. 대통령의 말이 그르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많은 수치와 통계적 이유를 들어 의사단체의 부당한 논리를 공박하는 지금의 판단 때문이다. 지금이 이런 수치와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인지 의문이 들어서다. 윤 대통령의 주장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또 틀린 말도 아니지만 지금 그런 논리로 국민을 설득할 시점이며,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를 보일 때인지도 의문이다. 정부와 의료
“서북청년단이 온 이후 섬주민들과 육지에서 온 사람들간의 감정은 격화되었다. ··· 주민들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고무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3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총칼에 개의치 않고 떨쳐 일어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원인 없이는 행동도 있을 수 없다.”(동아일보 1948년 11월11일자) 세상이 미친 듯이 돌아갈지라도 역사는 기록으로 남아있다. 신문은 그래서 기록으로 전하는 역사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더욱 그 역사를 다시 짚어야 한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모를 일이 지금 횡행하기에 그렇다. 느닷없이 제주4·3 75주기를 맞아 제주란 무대에 등장하겠다는 ‘서북청년단’의 소식을 접하고 나오는 소리다. 무수한 양민들이 하루 아침에 제주란 공간에서 사라져버린 그 참혹한 비극을 추념하겠다는 시기에 나오는 황당무계다. 추념공간 어귀에서 그들이 집회를 열겠다고 한다. 그들은 누구인가? 지금 현존하는 서북청년단(西北靑年團)은 2014년 9월 결성된 서북청년단 재건위원회의 성과다. 그해 11월 28일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서북청년단을 재건했다. "김구는 김일성의 꼭두각시였고 건국을 방해했다. 반공단체인 서북청년단원 안두희가 김구를
서양화가 오승익은 제주대 미술학과 강사로 한라산을 주제로 줄곧 작업하고 있다. 마음에 깊이 남은 트라우마를 한라산을 보면서 치유하는 심정으로 가족과 지역 공동체의 삶의 기억을 되새기며. 역사속의 사계절을 마음속에서 흐르는 시간의 흐름으로 인식하여, 마치 허물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속살로 시작하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에게 한라산은 어머니이자 제주의 상징이 되었다. 2025년 1월 22일부터 2월 3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제주갤러리에서 개인전 '그 자리 한라산'을 열었다. 그곳이 내 마음이 사는 곳이다 우리는 평생 장소에 귀속돼 산다. 장소는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는 활동공간을 말하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 몸소 겪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최소한 한 곳 이상에서 살면서 그곳의 경험을 몸으로 습득한다. 이것은 역사적 경험이라는 실존의 현실적 ‘겪음’을 의미한다. 내가 있음으로써 비로소 세계가 있는 것이다. 나는 곧 내 몸이라는 시간의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는 현재다. 나의 현재는 나의 모든 과거의 기억과 공동체의 상황적 관계들, 사건, 경험, 그리고, 그것들의 기억을 쌓아놓은 의식 속의 지층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는 내몸의 현재를 이룬다. 그 현재는 미래에는 도달할 수 없을지라도 그 미래만은 가리킨다, 나는 존재하므로 현실에 살면서 생각한다. 자리(place)는 처소(處所)라는 의미의 곳, 장소를 가리키는 공간적 개념이다. 그러므로 자리는 어떤 대상이 차지하거나, 차지할 수 있는 표면에 있는 공간을 말한다. 또한 자리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거나 작용이 생기는 곳인 현재의 시간에 놓여있거나, 어떤 대상이 있었던 곳으로써 과거의 공간이기도 하다. 또 좁은 의미로써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곳이기도 하고, 그리고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위치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자리는 시공간을 감싸고 있는 특정한 장소를 지칭한다. ‘그’는 이미 알려진 대상을 가리키는 관형사이다. 그 자리란 꼭 집은 점을 말하는 ‘그곳’으로, 지리학적 특정한 장소를 말하는 것이다. ‘곳’은 공간의 어느 일정한 점이나 부분을 말하며, ‘그곳’은 그런 특정한 위치를 지명(指名)한 것이다. 여기서는 그곳은 한라산이다. 우리는 평생 많은 것을 가리켜왔다. 방향이란 상징적으로 목표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 사람이 가리키는 방향은 삶의 이유, 살아가는 지향점을 표현함으로써,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게 된다. 서양화가 오승익에게 그 자리는 한라산이었다. 하나의 상징인 한라산은 그에게는 인식의 대상이자 직간접적인 역사 경험의 장소가 된다. 한라산은 바다의 피라미드이다. 타원형의 섬 가운데 솟아난 삼각형의 피라미드가 마냥 제주인의 삶 속에서 건져 올린 사랑과 슬픔, 기쁨과 희망, 좌절과 절망마저도 그대로 쌓아 올려버린 섬 공동체의 산이다. 최초로 한라산이라고 한 사료는 1374년 최영이 탐라에서 목호를 토벌할 때 '여러 장수가 한라산(漢拏山) 아래에 주둔하면서 군사들을 쉬게 하였다(諸將屯漢拏山下休兵)'라는 『고려사』 「열전」 최영의 기록에서부터이다. 또 1388년 산방산에 살아서 산방법승(山房法僧)이라고 불렸던 혜일(慧日) 선사(禪師)의 시에 '한라산의 높이가 어느 만큼인가(漢拏高幾仍).'라는 시에도 나오고, 조선 초기 권근의 시에도 '푸르르고 푸른 한 점의 한라산(漢拏山)이, 만경창파 아득한 속에 멀리 있네.'라는 기록에서 보는 것처럼 한라산이라는 지명의 계보를 알 수 있다. 한라(漢拏)라는 말은 ‘은하수를 끌어당길 만한 산’을 말한다. 흔히 한라산을 진산(鎭山)이라고 하여 탐라의 수호신으로 여겼다. 한라산은 바다에서 솟아오른 화산이며, 곧 한라산이 제주도이고, 제주도가 바로 한라산이다. 삶에서의 희망의 원리 세상은 형태이고 색으로 표현된다. 자연이 모든 미의 근원이었으며, 우리의 실체였다. 거기에서 우리는 단지 시간의 길을 헤쳐 나가는 한 점 나그네일 뿐이다. 우리는 그 자연에 내던져진 존재이다. 사회적 존재란 자연에서 살아가기 위해 무리를 지어야만 공포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리 지음이 종국에는 또 다른 욕망의 공포를 만들어낸다. 그 공포에서 나오는 것이 무리 짓고 살아가는 자들의 오랜 역사였다. 역사는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의 정치적 행위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는 관계일 것이다. 자유롭기는 개인처럼 자유로운 것이 없지만, 남과 여의 삶이 가족을 이루면서 살아감으로써 운명공동체가 만들어지고, 거기에 경제적 분배가 수반함으로써 이해관계는 복잡해진다. 부와 빈의 차이란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의 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국 경제적인 표현으로써 최고의 단계가 전쟁이라는 이름의 약탈과 방어의 수단으로 나타나게 된다. 어쩌면 역사는 전쟁과 평화가 오가는 두 줄의 다리라고 할 수도 있다. 두 다리 사이에서 욕망하는 자들이 벌이는 탐욕과 그것을 인내하는 관계가 역사의 실체일 것이다. 이 두 다리에서 역사는 고민 끝에 개인으로 사는 것처럼 자유로운 삶을 꿈꾼 것이 오늘날 인류가 찾아낸 민주주의 체제일 것이다. 사회는 서로서로 인정하는 관계일 때에만 평화롭다. 인간은 이성적이며, 윤리적이며, 도덕을 판단할 수 있는 정신세계를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선과 악에 대한 사회적 기준을 만들어내어 급진적인 상황들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인 법을 만들었다. 물론 법도 다양한 체제의 사회적 스펙트럼을 갖게 된다. 그러나 어떤 체제라도 그것의 목표는 잘 사는 것이며, 안전한 평화를 누리는 삶을 얻을 수 있을 때 그 체제의 존속성이 유지되고 희망의 원리로써 인정된다. 변화하는 자연의 몸, 화산의 마음 약 200만 년에 달하는 한라산의 몸체에도 여전히 자연은 오고 가기를 반복한다. 자연의 본질이 변화에 있지만 결코 무란 없다.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다른 형체에 녹아있어서 그 녹아있는 것이 만물을 이루는 것이다. 만물이 자연의 실체이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동등하여 그대로 머무는 것이 단 하나도 없다. 길고 짧은 시간의 차이는 있으나 서로 교감하면서 자연히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일어난다. 물과 불, 흙이, 고체와 액체, 기체가 하나인 순환 체계이며,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도 원소의 원자가 된다. 우리의 세계에서 빛으로 표현한 색에서 가장 오래된 색상은 RGB라는 3원색일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색은 Red(빨강), Green(초록), Blue(파랑)라는 3원색을 가산혼합한 색으로 구현된다. 이 3원색(RGB) 공간에서는 이 RGB색 모두가 0인 지점에서는 검은색이 되고, 반대로 RGB색 모두가 최대인 지점에선 흰색이 된다. 현재 RGB색은 0에서 255까지 256단계의 색가(color value:色價)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볼 수 있는 색상의 수는 RGB색에서 만들어진 1677만6216(R256xG256xB256)가지가 된다. 색은 빛의 작용으로 감지된다. 자연에서 보이는 만물의 색은 바로 우리 눈이 감지하는 스펙트럼에 의한 색들이다. 우리 눈은 파장이 400~700nm 영역인 가시광선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눈의 시각세포를 통해 들어온 색 정보를 뇌가 인식하기 때문이다. 우리 뇌가 구분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색의 이름을 말할 수 없으므로 우리 눈이 가장 뚜렷하게 감지할 수 있는 대표적인 3원색만의 머리글자만을 따서 모든 색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한원택 2022). 그러나 색은 빛의 물리적 작용으로 차이를 나타낼 수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색이 감정을 자극한다는 데 있다. 우리가 아는 색의 감정을 보면, 빨강은 뜨거움:정열, 녹색은 자연:상쾌함, 파랑은 차가움:냉정 등으로 상징화되었다. 물론 색은 국가나 지역마다, 혹은 관습과 풍속의 역사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 또는 지역 풍토에 따라 표현되기도 한다. 오승익인 경우 제주의 색은 역사와 자연이 함께 숨 쉬고 있는 색으로 인식한다. 붉은색을 보면, 4·3역사의 색으로 인식하거나 화산암재인 스코리아(scoria)와 그리고 갈옷의 색깔을 연상하며, 초록은 한라산의 자연과 밭의 작물을 떠올리며, 파랑은 4계절 변하는 푸른 바다와 산호사(珊瑚砂)의 비취색의 해안을 떠올린다. 흰색은 눈이 덮인 오름과 한라산을, 그리고 갈색에선 잠자는 대지의 평원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색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과 그 취향을 형성시킨 사회적인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한마디로 색의 상징들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심리적인 경향성에 따라 만들어졌으며, 특히 만물에 밴 색에 따라서 사실적으로 불리는 이름 아래 감정이입을 시킨 경우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하늘색은 파란 하늘에서 비롯되고, 살색은 피부색을 말하며, 살구색, 복숭아색 등 자연물의 색깔을 따오기도 했다. 검정색은 사회적으로 권위와 위엄의 제복으로 상징되거나, 까마귀처럼 흉조라는 의미에서, 혹은 어둠이라는 암흑이 두려워 죽음의 색으로 상징화되어 애도의 색이 되기도 했다. 색은 본래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색과 연결되는 물질 속성의 색채와 사회적인 관념이나 이데올로기적 상징에서 불리기도 한다. 한라산을 지질적인 색으로 보면, 바탕에는 검은색과 적색, 변화된 갈색, 청색 등 돌이라고 하는 매재가 있으며, 기후 조건에 따라 그 위를 덮는 4계절의 변화무쌍한 생태 자연의 색과 더불어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계절의 색이 있다. 그러나 화가 자신의 색은 자신의 환경적 조건에서 자기의 역사적인 경험과 성장 과정에서 받아들인 삶의 인상을 투사한 색의 감정으로 표현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이외에 그들은 또 길거리 쓰레기를 청소하거나 관방 측간의 똥오줌을 치우고 길거리에서 죽은 시체를 치우는 일도 담당하였다. 화재 등 자연재해에 대처하는 책임도 졌다. 1918년 포두 지역에서 흑사병이 유행하여 3000여 명이 죽었는데 그들이 책임지고 시체를 성 밖으로 옮긴 후 화장하였다. 죽은 시체를 피하려 할 때에는 그들이 나서서 운반하여 매장하고 검시관의 검시를 돕기도 했다. 주인이 없는 사형수의 시체가 있을 때에는 그들이 옷을 벗겨내고 깨끗이 빨아 헌 옷 파는 노점상에게 팔았다. 심지어는 시체에서 심장이나 뇌를 꺼내어 약을 만들어 팔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공업계, 상업계의 노동조합이 양산에게 일상용품이나 노임 등을 공급하였다. 매년 사대 명절이 되면 여러 상점에서 그들에게 따로 선물을 보냈다. 그 외에도 ‘부수입’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분수에 만족하여 본분을 지키면서 입에 풀칠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양산을 삶을 돌보아주며 평생 의지할 수 있는 집단으로 여겼다. 그러나 양산에 가입하면 항방(行幇) 규칙을 반드시 따라야 했다. 일반적으로 업종을 바꾸어 다른 일을 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항방의 비밀도 엄수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 각 거리에 밀정으로 파견된 거지가 제때에 양산으로 돌아가 상황을 보고하지 않으면 ‘괴정(拐挺)’으로 죽도록 얻어맞았다. 봉건주의 가부장적 통치방식을 따르는 항방에서 때리거나 욕설을 퍼붓는 것은 일상사였다. 흉년이 들면 사회 기부금과 관방의 구제 물품 대부분은 양산의 우두머리가 중간에서 자신의 주머니를 채워버렸다. 최전성기 때에는 우두머리가 첩을 두기도 했고 주방도 두어 개가 있는 집에서 살기도 했다. 산서방(山西幇)의 은행업계가 자금 유통이 원활하지 않는 기간에는 이자를 갚으려고 양산의 우두머리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20년대 전후로 양산의 많은 사람이 가로회(哥老會)1)에 가입한 후에 토비로 전락하면서 다년간 ‘사인구’에 똬리를 틀었던 흑사회였던 개방의 세력은 점차 약화되다가 4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와해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가로회(哥老會), 청(淸)나라를 몰아내고 명(明)을 부활시킬 목적으로 활동한 비밀결사 조직 중의 하나다. 18세기 중반 이후 청나라의 통치력이 점차 쇠퇴하자 궁핍한 농민이 서로 돕고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일종의 투쟁 단체였다. 처음에는 농민끼리 모여 부자를 타도하고 명나라의 대의를 따르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차츰 정치적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그 뿌리는 명나라가 쇠약해지고 청나라가 일어설 즈음 청나라에 맞서 명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하여 결집한 비밀세력인 홍문(洪文)이었다. 홍문에 뿌리를 두고 일어났던 비밀결사조직으로는 가로회, 백련교(白蓮敎), 의화단(義和團) 이외에도 천지회(天地會), 배상제회, 삼합회(三合會), 홍화회(紅花會), 삼점회(三點會), 첨제회(添弟會), 소도회(小刀會) 등이 있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내몽고자치구에 속해있는 포두(包頭, 바오터우)의 옛 시가지역 초시가(草市街) 북쪽에 ‘자인구(慈人溝)’라는 지역이 있다. 근 반세기 이전에는 그 지방을 ‘사인구(死人溝)’라 불렀다. 본래 관을 놓아두던 곳이었다. 많은 거지가 그곳에 구멍을 파서 모여 살았다. 그래서 점차 포두의 유명한 빈민굴로 변했다.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그곳에 범인을 잠시 구류하는 ‘흑방(黑防)’이 있었다고 전한다. 포두(包頭)에서 체포한 범인과 오원(五原), 동승(東勝), 싸라치(薩拉齊) 뒷산 지역에서 압송해 온 범인은 모두 그곳으로 이송하여 구류했다가 다시 싸라치의 큰 감옥으로 호송하였다. 포두의 흑사회 조직 ‘양산(梁山)’의 대본영 ― ‘충의당(忠義堂)’ ― 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양산(梁山)’이라는 말은 ‘쇄(鎖)’와 ‘리(里)’ 양 가문의 병칭이다. 어김없는 깡패 집단이었다. ‘쇄가(鎖家)’는 건륭 연간에 귀화성(歸化城) 공주부(公州府)에서 야경을 돌던 마삼홍(馬三紅)과 농사를 짓던 진사해(秦四海)가 창립했다고 전한다. 명나라 영락제 주체(朱棣)를 조사(祖師)로 모셨다. 마 씨, 진 씨 가문의 인원은 모두 취고수(구식 혼례나 장례식을 할 때의 악사)와 교자꾼이 골간이었다. 그들의 정상적인 생계 방식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끌어 모으는 것이었다. 각자 활동 근거지가 있었다. 근거지를 ‘방장(方場)’이라 부르고 어느 누구도 그 경계를 넘지 못했다. 예를 들어, 포두 ‘쇄가’의 방장은 동으론 사르친(莎爾沁)진, 서로는 마지(馬池)진, 북으로는 석괴구(石拐溝), 남으로는 대수만(大樹灣)까지였다. 이것이 홍방(紅幇)의 ‘반청복명(反淸復明)’〔청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움〕 의식이 유래한 항방이다. 이렇게 추측한다. “당시 옹정 황제가 자기의 통치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방회(幇會)의 ‘반청복명’의 민족혁명역량을 약화시키고 그의 종실과 가권에게 자기 의견을 알려 반대 되는 두 개의 하층 사회집단을 따로 조직하면서 분화되고 와해되었다.”〔유영원(劉映元)〕 ‘리가(里家)’의 우두머리는 처음에 북경성 팔기 중에서 가난해진 왕야(王爺) 여덟이라고 전한다. 나중에 장(張), 고(高), 한(韓) 3문으로 나뉘었다. 리가의 성원은 모두 거지였다. 「연화락(蓮華落)」을 연주하거나 「수래보(數來寶)」를 부르며 구걸하면서 곳곳을 돌아다녔다. 범염(范冉)〔범단(范丹)〕을 조사로 모셨다. ‘쇄(鎖)’, ‘리(里)’ 양대 가문은 힘을 확대하려고 ‘양산(梁山)’과 합쳤다. 쇄 가의 각 고방(鼓房) 단장 중에서 양산의 우두머리를 천거했기에 ‘충의당’은 해당 고방에 설치했다. 문 앞에 ‘대행(大行)’이라 쓴 호두패(虎頭牌)와 소가죽 채찍을 걸어두었다. 당에는 ‘쇄’, ‘리’ 두 가문의 조사를 모셨다. 우두머리가 밖을 나서면 호위가 따랐다. ‘괴정(拐挺)’이라 부르는 나무 몽둥이로 권력의 상징으로 삼았다. 평상시에는 괴정을 조사의 신탁 위에 놓아두었다. 그것을 이용하여 항방의 규칙을 집행하여 장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양산의 권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쇄가의 손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평소에 리가의 거지는 모두 주어진 세력 범위 내에서 구걸하였다. 자기 구역이 아닌 곳에서는 잔치나 장례식이 있어도 동냥할 수 없었다. 현지에서 일반 집안에서 큰일이 생길 때에는 양산 사람을 청해서(실제로는 고용) ‘준문(蹲門)’, 즉 대문을 지키고 거지들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하루에 은화 1원이었지만 떠날 즈음에는 구걸하지 못하고 양산에 남아있던 거지에게 1원을 더 얹어 주었다. ‘준문’하는 거지와 리가 거지는 고장(鼓匠) 막에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었을까?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탁상에 앉을 수 없습니다. 양산의 규칙을 어기게 되니까요.” 양산의 거지는 어떤 때에는 점포 취사장에게 탄 재를 퍼내주거나 개숫물을 버려주거나 하면서 남은 밥을 얻어먹었다. 생일, 회갑, 개업, 이사, 승진, 연말에 해당 집에 가서 축하노래를 불러주면 신선한 술과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사인구로 돌아가 아편을 흡연하는 거지가 많았다. 평상시에 길거리에서 구걸할 때도 리가의 사람은 어렵지 않게 동냥할 수 있었다. 리가는 토비와 암암리에 결탁해 있었고 관부의 밀정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거지들에게 미움을 사서 재난을 초래할까 두려워했다. 다시 말해 양산 현지는 안팎이 결탁되어 있었다. 그들은 관부에 도적을 체포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훔친 물건이나 돈을 도적과 나누었다. 외지에서 포두까지 도망쳐 온, 죄를 지은 도적은 먼저 양산에 가서 등록해야 했다. 야간에 도둑질하는 거지는 ‘빨간 줄 뛰는 자’라 불렀고 낮에 도둑질 하는 거지는 ‘청색 줄 뛰는 자’라 했으며 아침과 저녁에 도둑질하는 거지는 ‘등미(燈謎)놀이1) 하는 자’라 불렀다. 야간에 도둑질할 때 망을 보며 휘파람을 부는 거지를 ‘막대에 올라간 자’라 불렀고 집에 들어가 도둑질하는 거지는 ‘못에 뛰어는 자’라 했다. 장물을 나눌 때에는 후자가 전자보다 많이 가졌다. 낮에 도둑질하는 거지는 일반적으로 4부류로 나뉘었다. 상점 소매를 터는 거지를 ‘고매(高買)’라 하고 시장 행상인을 터는 거지를 ‘노점을 쓸다’라고 불렀다. 농민의 수레, 나귀바리를 터는 거지를 ‘바퀴 굴린다’라고 하고 큰길의 행인을 터는 거지를 ‘자루 집다’라고 했다. 등록된 여러 도둑질은 이 중에 하나만 할 줄 알면 되고 양산이 지정한 지역을 벗어나서는 안 됐다. 그렇지 않고 규칙을 위반하다가 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에게 발견되면 윗선에 보고되고 양산에서는 곧바로 사람을 보내 체포했다. 경범(예를 들어 초범)이면 곤장을 맞는 선에서 끝나지만 누범자는 사라치(薩拉奇)의 큰 감옥으로 보내졌다. 도둑이 현지에 발을 붙이려면 반드시 양산 기준에 맞는 약속을 받아들여야 했다. 도둑질한 장물은 3일 이내에는 마음대로 처분해서는 안 됐다. 잃어버린 물건이 지방 세력자의 것이면 양산에서 분실물을 찾아내어 돌려줘야하는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장물을 판 후에는 30%를 꼭 양산에 헌납해야 했다. 이후에 우두머리가 경찰과 개인적으로 나누어 가졌다. 양산에 속한 거지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었다. 권법이나 봉술을 하는 사람, 본바닥 불량배 등 사회에 해를 끼치는 인간들은 다 모여 있었다. 당시의 공업계, 상업계, 경찰도 그 강호 세력이 현지 치안을 유지하는 것을 기꺼이 이용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밤에 포두 전 지역의 순찰과 야경을 책임졌다. 밤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은 행인을 단속하고 심지어 체포할 수도 있었다. 성을 지키는 병사가 도박하려고 성 밖으로 나갈 때에는 성문의 열쇠를 그들에게 맡기기도 하였다. 그들도 야간을 이용해 성문을 열고 행상의 통행을 허가하면서 이익을 취하기도 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등미(燈謎), 타호아(打虎兒), 문호(文虎)라고도 하는데 음력 정월 보름이나 중추절 밤, 초롱에 수수께끼의 문답을 써넣는 놀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에 북경의 ‘강방(杠房)’ 업종은 한때 흥성하였다. ‘강방’이란 전문적으로 장례(葬禮) 의장(儀仗)을 세주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관을 덮는 수놓은 단자 덮개, 의장대용의 길을 여는 징, 우산, 부채, 깃발, 패, 수레, 가마 등을 빌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의례하고 관을 메고 의장을 드는 인원을 대신하여 고용하기도 하고 관을 짜는 데에 필요한 목재 등 필요한 물품을 대신 구매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강방은 장례를 청부 맡아 처리하는 전문 직업이었다. 관을 메고 의장을 드는 것과 같은 막일은 비록 당시에 대단히 중히 여기는 의식 중 하나였기는 했지만 결국은 비천한 일에 속했다. 그래서 거지에게 임시로 일하여 돈 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때의 품삯은 행하(行下)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방에 교부하는 금전을 빼더라도 평상시에 구걸하는 금전보다도 많았다. ‘효자(孝子)’에 충당되어 길을 따라가면서 지전을 뿌리기도 했다. 그래서 강방은 또 ‘화자두(化子頭)’라는 명칭이 붙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실제로 북경의 이른바 화자두는 몇 푼 안 되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었다. 북경에서 과거에 푼돈을 구걸하는 것은 대부분 외지에서 온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겨울이 되면 올라와 적은 돈을 구걸해 갔다. 봄철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목돈을 벌 수 있었다. 진정한 북경 토박이 화자두는 패거리를 이루어 대놓고 구걸했다. 그러한 사람들을 ‘간상인(竿上的)’이라 통칭했다. 노동력을 팔려고 하면 개인은 방법이 없었다. 항방에 가입해야 했다. 먼저 ‘간자(竿子)’에게 절하고 ‘간상(竿上)’에 가입해야만 나중에 일이 있으면 일을 맡겼다. 돈을 벌면 먼저 일정한 비율을 떼야했고 동시에 우두머리가 명령하면 반드시 따라야 했다. 민국 이후에 ‘간상인’의 세력은 다소 감소하기는 했지만 강방의 업종에서 행했던 관을 메는 사람과 의장을 드는 사람은 여전히 구시대의 유풍이 되어 행해졌다. 현 중국이 성립한 이후에야 정부는 그런 노동인민을 조직하여 장례업 공회에 가입시켰다. 일이 있으면 돌아가면서 출근하고 함부로 할 수 없도록 했다. 노임도 강방과 협상한 후에 결정하였다. 나중에 그런 사람들은 모두 정식적으로 기중(忌中)조직에 가입하였다.”〔장관정(張官鼎)〕 옛날에 북경의 강방(杠房) 업종을 ‘화자두(化子頭)’라고하기도 했는데 항상 거지를 고용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거지를 고용하면 현지 거지 항방과 왕래해야 했다. 그래야 아무 때나 필요할 때 어려움 없이 고용이 보장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일정한 정도에서 필요한 지역 질서를 유지할 수 있어서 경영 과정 중에 생기는 의외의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두 거지 항방 세력을 빌려야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문화가 쌓여온 과정을 보면 여러 가지 항방은 선천적으로 탄생 시기부터 봉건 색채가 침투되어 있다. 거지 항방은 직업이 없는 유민으로 이루어진 오합지졸이라, 유랑민 의식을 가지는 것은 당연했다. 크고 작은 흑사회(黑社會, 폭력조직) 단원이기도 했다. 이것이 중국 거지 단체가 타락하고 변질된 기본 이유 중 하나였다. 항방은 관방이나 토비와 결탁하여 서로 이용하고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하며 불법 세력(조직)이 되었다. 청나라 말기 민국 초기, 즉 50년대 이전에 불법조직이 된 거지 항방은 계속해서 나타나고 활략하였다. 심지어 8,90년대에 이르러서도 범죄 집단이 된 거지 항방 세력이 또다시 대두하여 해악을 끼치기도 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