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2002년 4월1일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시행됐다. 이 법에서 ‘국제자유도시’라 함은 사람ㆍ상품ㆍ자본의 국제적 이동과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도록 규제완화 및 국가적 지원의 특례가 실시되는 지역적 단위라고 정의하고 있다(법 제2조). 이 법 제1조(목적)에서 정한 제주국제자유도시 개발을 달성하기 위하여 제4조의 규정에 의하여 수립하는 종합적이며 기본적인 계획이 ‘제주국제자유도시종합계획(이하, ’종합계획‘이라 약칭함)이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이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으로 변경됨에 따라 ‘종합계획’은 제주도의 화두가 됐다. 그 화두의 심장에 검을 꽂기 위해서 ‘종합계획’의 수립배경 및 성격, 추이 등을 톺아보는 일은 그 성과를 저울질하기 위한 선행 단계라 할 수 있겠다. 1994년 수립된 구(舊) ‘제주도종합개발계획’이 2001년 종료됨에 따라 세계화, 지식·정보화 등 21세기 국내외 환경변화를 수용하여 제주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지역계획이 필요하게 되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출범에 맞춰 2003년 2월 제1차(2002∼2011년) 종합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는데, 2005년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이 수립됨에 따라 4+1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2006년에 제1차 종합계획 중 보완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 종기(終期)가 가까워지자 2011년 12월 제2차 종합계획을 수립하였다. 이후 국내외 환경변화 및 도민의 정책수요를 반영하여 계획의 수정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2015년 12월 추진성과를 중간 평가하고 이를 반영하여 제2차 종합계획 중 수정계획을 수립하였다. 제1, 2차 종합계획은 장기적인 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미래 지향적 계획으로 최상위 법정계획이다. 1, 2차 종합계획의 각 비전과 전략 등을 요약하면 아래 [표1] 기재와 같다. [표1] 제1, 2차 종합계획 비전 · 전략 등 제2차 종합계획 중 수정계획 기간이 만료되고 국제자유도시 정책 추진 여건 변화 등 새로운 메가트랜드에 대응하는 전략 수립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제주특별자치도는 제3차(2022∼2031년) 종합계획을 수립하였다. 이를 요약하면 아래 [표2] 기재와 같다. [표2] 제3차 종합계획 비전 · 목표 · 핵심사업 필자는 제1차 종합계획부터 제2차 수정계획의 수립 및 평가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한 바 없으므로 종합계획의 성과를 논평할 자격이 없다. 다만 1990년대 중반에 ‘제주도종합개발계획 심의위원’으로 일한 적이 있어서 이후 수립된 종합계획에 관하여 관심을 갖고 있을 뿐이다. 이 글에서는, 제주연구원(JRI)이 2019년 11월 작성한 「제3차 제주국제자유도시 종합계획 수립방향 설정연구」 논문에 실린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여론의 추이를 말하고 싶다. 제주연구원(JRI)이 제1, 2차 종합계획에 대한 의견과 향후 수립될 제3차 종합계획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도의원, 행정공무원, 대학교수, 언론인, 연구기관, 시민단체 등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대상자의 응답자별 특성은 다음과 같다. 성별은 남성 64.4%, 여성 35.6%이고, 연령대는 20대 18.2%, 30대 18.2%, 40대 28.0%, 50대 40.2%, 60대 이상 5.3%이다. 소속 기관별로는 제주특별자치도의원 9.2%, 제주특별자치도 공무원 24.2%, 대학교 17.4%, 언론인 18.9%, 기타 연구소 등 13.6%, 시민단체 16.7%로 집계됐다. 설문조사의 요지는 ‘제1차 종합계획부터 제2차 수정계획까지 이 계획의 수립과 집행을 통해 국가발전에 얼마만큼 이바지하고, 그리고 도민들의 소득 증대와 삶의 질 향상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인데, 최고점 5점 기준으로 할 때 평균 2.88점으로 보통 이하로 나타났다. 이에 더하여, 위 연구논문에서는 제주국제자유도시 출범 초기에 계획된 7대 선도 프로젝트 중의 하나인 제주공항 자유무역지대 조성사업, 쇼핑아울렛 조성사업 등은 추진되지 못하였고, 역외금융 등은 정부의 불허방침에 의해 착수도 못했다는 점, 복합형 국제자유도시 육성의 목표가 미완성되었다는 점, 제1차 종합계획은 국가계획인데 2006년 7월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의 계획 등은 지방계획으로 변경되어 그 위상이 낮아졌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 제주의 신․구간과 관련된 이사 ☞ 신․구간이란 신간(新刊)과 구간(舊刊)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데, 신구간(新舊間)은 제주도의 전통 풍습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24절기 중 대한 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약 7~8일 동안 이어지는 이사 풍습인데 대개 양력으로 1월 하순쯤이 된다. 제주의 풍습에는 1년에 딱 일주일 동안 신들이 하나도 없는 기간이 있는데 바로 '신구간'이라고 한다. 신구간의 공식명칭은 세관교승(歲官交承)이라고 하는데,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1만8천의 신들이 존재하는 신들의 고향으로 불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부엌 신인 조왕신(조王神), 문의 신인 문전신(門前神), 땅을 다스리는 토신(土神)이 대표적인 신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이들을 포함한 1만8천의 신들은 신구간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에게 지난 1년간 자신이 관장하였던 소관 업무를 보고하게 되고 자신의 공적에 따라 새로운 발령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때는 지상에 내려와 인간사를 관장하던 신들이 한 해의 임무를 다하고 옥황상제에게 새해의 책임을 맡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버린 신들의 부재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에는 신들이 없으니 당연히 건축이나 이사, 면례 등 생활에 관계된 모든 일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다고 믿는 것마저. 심지어는 '동티'가 나지 않는다고 하여 집수리나 화장실을 고쳐도 무방하다고 여기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이사할 때 가장 먼저 옮기는 물건으로는 화롯불이나 체, 키, 솥단지, 이불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솥단지를 이사 갈 집에 들여놓으면 상대방이 이사 준비가 채 안 되었어도 이사를 끝난 셈이 되어 신구간이 지난 다음에 옮겨도 무방하다고 여기고 있다. ▲ 이사할 때 금기시하였던 물건들 ☞ 이사할 때 보통 비(빗자루)는 가지고 가지 않았는데, 비는 복을 쓸어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또 맷돌도 가져가지 않았는데, 이것은 곡식을 가는 기구이므로 곡식의 파괴는 곧 가난은 물론 복(福)까지 부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활 도구를 버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밤중에 몰래 들여다 놓기도 했다. 특히 이사할 때 그릇이나 거울 등을 깨뜨리는 것을 대단히 불길하게 생각했는데, 이것은 불길한 징조를 의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이사와 관련하여 행운과 복을 안겨주는 전통적인 방법 ☞ 이사를 하여서 붉은팥을 고물로 한 시루떡을 해서 이웃과 함께 먹었는데 귀신을 쫓는 의미 외에 동네에 인사를 겸한 인정의 나눔이라 할 수 있다. 지금도 이사를 하면 이웃에게 떡을 돌리는 습관이 있다. 또 부적(符籍)을 붙이거나 짚으로 만든 사람 모양인 제웅을 만들어서 대문에 매달기도 하는데, 이것은 집안에 불길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의식이라 볼 수 있다. 또 이사 가는 집으로 돈이나 곡식, 천 등을 들고 들어가기도 하는데 이것은 장차 새집에 재물이 많이 들어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이사하는 당일 이사 가는 집의 대문, 부엌, 마당, 방, 곳간, 화장실, 우물 등에 쌀, 보리, 밀, 콩, 팥 등을 함께 볶아서 뿌리기도 하는데 잡귀를 쫓아내는 의미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뜻도 들어 있다. ▲ 이사할 때 소금이나 팥 외에 귀신을 쫓아냈던 방법 ☞ 장롱 아래 붉은색으로 임금 왕(“王”) 자를 써서 붙여 놓는 방법인데, 이것은 귀신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붉은 색을 쓴 것이고, 한자로 임금 “王”자의 의미는 높은 권력을 뜻하므로 귀신이 겁을 먹고 이사하는 집으로 따라서 오지 못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또 홍두깨를 이사한 집의 큰방에다 가져다 놓기도 하는데 사실 홍두깨는 몽둥이 모양과 비슷하다. 그래서 커다란 홍두깨를 보고 귀신이 집안으로 침입하였다가 기겁을 하고 도망갈 것이라는 믿음에서 비롯된 일종의 부적과 같은 대상으로 삼은 것이라 본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신영대는? = 대한풍수연구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역술인협회 공인 역학연구원이다. 중문학 박사와 풍수학자로서 ‘제주의 오름과 풍수’, ‘명리학원리대전’, ‘풍수지리학 원리’, ‘전원시인 도연명 시선', ‘흰 구름 벗을 삼아 읽어보는 당시선’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한라산 총서'의 구비전승·지명·풍수 분야와 ‘세계자연유산지구 마을일지 보고서’ 중 풍수 분야 공동 집필자로도 참여한 바 있다. 또 제주도 각 마을 '향토지' 풍수 부문에 공동 집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제주관광대 관광중국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978년 6월 2일 대통령 박정희는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 항파두리에서 열린 항몽유적지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했다. 당시는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제주도 방문이 됐다. 그날 제주도민과 학생 등 2만여 명이 행사장에 모였다. 항몽유적지는 고려 시대 몽골에 항쟁한 삼별초의 마지막 보루였던 곳으로, 1997년 4월 18일 사적 제396호로 지정됐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나도 그날 행사장에 일찍 가서 대통령 일행을 기다렸다. 20분 정도 흘렀을까? 약 30m 앞에 승용차가 멈추더니 대통령이 내렸다. 대통령은 기다리던 도민들과 악수하면서 행사장 안으로 들어오셨다. TV에서 보던 대로 작은 키에 얼굴이 까무잡잡했다. 당시 60세였던 대통령은 특유의 옅은 미소를 띤 채 나랑도 스치듯 악수하며 지나갔다. 나는 또래보다 키가 작아 행사장 맨 앞에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있었던 거다. 나는 얼른 대통령님 손을 꽉 잡으며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사실 그날 난, 그에게 하고픈 말이 있어서였다. 4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그때서라도 위로하고 싶었다. “늦긴 했지만 이제라도, 영부인님 일은 참! 안 되셨습니다. 힘내십시오!” 한 마디 위로라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인파 속에 묻힌 채 행사장으로 들어가 버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운동장에서 공 차며 놀다가 갑자기 교무실 쪽에서 하늘이 무너진 듯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 뛰어 가봤다. 몇몇 여선생님들은 울고 계셨고 교감 선생님은 바닥에 주저앉아 정신을 못 차리신 듯 보였다. 화면에선 하얀 한복을 입은 육영수 여사가 피 흘리며 들려 나가는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박정희 대통령 얘기를 엄청 많이 들으면서 자랐다. 귀 생김새가 나와 비슷하고, 키가 나보다 작아 그에 대한 인상은 친근한 편이었다. 하지만 이후, 박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가혹하게 찢겨 극단적으로 갈라지면서 내 생각이 널뛰듯 흔들리기도 했다. 미악산 아래까지 다 감귤나무 심어라! 자라면서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주로 감귤과 관광단지 개발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 동네 어른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서귀포 정방폭포부터 대포 주상절리, 색달해수욕장 등을 보고 그 해안 경관에 감탄한 나머지, 당장 중문관광단지 건설을 지시했다.”더라, “서귀포시 동홍동 미악산 아래까지 감귤나무를 심을 수 있을 수 있는 땅이면 다 감귤나무를 심어라, 제주도는 온난한 지역인 만큼 식량 증산보다 감귤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라.”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더라, 같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주고받던 시절이다. 잘 알려진 대로 박정희 모델은 정부가 시장을 대신해 투자와 경제발전을 주도 하는 방식이다. 개발 정책의 형성·집행·점검 조정 모든 과정에서 일방적으로 정부가 주도했다. 당시 경제정책은 빈곤 탈출, 개발과 성장, 산업화, 수출주도형으로 축약된다. 이 같은 경제정책으로 한국경제의 양적 팽창, 산업화 기반 조성, 절대적 빈곤 탈출 같은 성과가 나타났다. 박정희=산업화라는 등식이 성립됐던 지점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5.16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이상할 정도로 제주도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 오늘날 제주 경제 기반을 닦아놓았다는 사실은 누가 뭐래도 명백하다. 하지만 그가 왜? 하필 제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않았는지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흐릿하다. 다만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부터 대통령 재임 18년 동안 총 25회 제주도 방문을 돌이켜보면 제주에 와서 무슨 일을 했는지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연두순시와 방문이 제일 많고 선일 포도당 준공식, 화순 화력발전소 준공식, 항몽순의비 제막식 같은 행사 참여와 연휴 때 휴양차 가족들과 방문도 꽤 있다. 연초 연두순시 때 내린 지시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불시에 혹은 수시로 점검하기 위해서거나, 혹은 그 과정에서 생긴 민원이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기 위해 제주도청이나 도민이 볼 때 불쑥, 혹은 돌연 제주를 다녀가기도 했다. 1970년에는 한 해 네 번이나 제주를 방문했었다. 1970년 1월 23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휴양차 제주를 방문했다. 다음날 서귀포에서 하룻밤을 묵은 육영수 여사는 당시 제주도 지사인 권용식 지사 부인과 함께 제주시로 오면서 권 지사 부인으로부터 우회도로 도로포장을 대통령께 건의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로부터 25일 후 내무, 건설, 문교, 농림 장관 등을 대동한 박 전 대통령은 제주에 내려와 우회도로 포장 공사를 내년(1971년)까지 매듭지으라고 특별지시하고 올라갔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제주특별법의 제정이유’에 명시된 바와 같이 헌법과 지방자치법에서 정한 일반적 자치조직·자치재정권 등을 초월한 높은 단계의 자치권이 보장된 선진적인 지방분권모델을 구축하는 일은 국제자유도시로 조성·발전시키려는데 있고,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의지와 결단은 제주특별자치도에 적용되고 있는 각종 법령상 행정규제를 폭넓게 완화하고,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점진적 제도 개선이라 할 수 있다. 중앙행정권한의 이양은 국무총리실에 설치된 제주지원위원회(제주특별법 제17조)가 전담하여 주관하여 왔다. 제주도에서 자체 발굴, 확정한 이양의 대상을 도의회의 동의(재적의원 ⅔)를 받아 제주지원위원회에 제출하면 중앙행정기관의 협의를 거친 뒤 제주지원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에서 결정, 추진하는 방식이다(제주특별법 제12조).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당시, 중앙정부는 제주특별자치도에 1,062건의 권한 및 각종 특례를 제주특별법에서 직접 수권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골자(骨子)는 기초자치단체의 폐지와 단일 광역자치단체로 개편, 고도의 자치권 부여, 감사위원회 및 자치경찰단의 전국 최초 신설, 특별행정기관(7개)이관, No Viza 입국 확대, 국제고 설립 허용 등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이후(기간 2007년 8월3일~2019년 12월10일) 5차례의 제도개선을 통해 정부권한 3,598건의 특례를 아래 [표] 기재와 같이 이양하여 자치입법 형성권과 정책형성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크게 강화하였다. 중앙행정권한의 이양(移讓)은 특별자치도 15년(2006년 7월~2021년 6월) 동안 합계 4,660건(=1062+3598)으로 집계됐다. 제주특별법상 권한이양 방식은 ① 협의의 권한이양, ② 사무이양, ③ 조례특례 이양, ④ 법적특례 이양, ⑤ 특례 창설 형(型)의 다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제①유형은 “일반법인 □□□법 제○○조 규정에 따른 △△△장관의 권한은 제주특별도지사의 권한으로 한다(예: 제주특별법 제240조).”이다. 이를 ‘포지티브 방식’이라 한다. 위 [표]에 나타난 권한 이양 중, 1,568건은 제①유형으로 전체의 30.2%에 달한다. 그런데 제주특별법 ‘제240조(관광숙박업의 등급 지정에 관한 특례) ① 「관광진흥법」 제19조제1항부터 제4항까지의 규정에 따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권한은 도지사의 권한으로 한다.’라는 개별 조문이 개정되거나 삭제될 경우에는 도지사의 권한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이러한 태생적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첨단산업 분야 규제는 기존 포지티브 방식을 바꿔 글로벌 스탠더드(국제표준)에 맞게 네거티브 방식(negative list system)으로 제주특별법을 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제②유형은 “시행령(대통령령, 총리령 또는 부령)에서 정한 ○○사항을 제주특별자치도 조례로 정한다(예: 제주특별법 제121조).”이다. 제주특별자치도에 이양된 권한 및 특례 4,660건 가운데, 48.3%에 달하는 2,506건은 여기에 포함된다. 이 방식은 법률유보의 원칙 또는 법령우위의 원칙에 의해 제주의 특유 환경이나 특성에 맞는 조례를 제정하는데(자기결정권) 한계가 있어서 전국 일반자치단체와 유사한 조례를 제정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문제점이 있다. • 제③유형은 지방분권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새로운 유형의 중앙행정권한의 지방이양으로서 ‘일반법인 □□□법에 불구하고 ○○○사항은 제주특별자치도 조례로 정한다(예: 제주특별법 제44조).’이다. 권한 및 특례 이양 4,660건 가운데, 2.0%에 달하는 104건은 ‘조례특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형식은 일반법의 규정을 배제하고 제주특별자치도가 자치조례로서 특정 사항을 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자치도의 성격에 가장 적합한 권한이향의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제주특별법 제123조(세율 조정에 관한 특례)에 근거하여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특별자치도세 조례’를 제정하여 일부 세목에 대해서 세금을 전부 부과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세목에 대해서는 표준세율의 2배까지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세입법권을 법률적 수준까지 확대하여 자치재정권을 강화하였다고 보여 진다. . • 제④유형은 일반법의 규정을 배제하고 제주특별법에 특례를 직접 규정한 경우로서 제주특별법 ‘제120조(제주특별자치도세) ① 도지사는 지방세법 제8조 제2항 및 제4항에도 불구하고 도세와 시·군세의 세목을 제주특별자치도세의 세목으로 부과·징수한다.’라는 규정을 예시할 수 있겠다. 권한 및 특례 이양 4,660건 가운데, 3.6%에 달하는 189건은 ‘법적특례’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제④유형은 입법형성권의 측면에서 볼 때 제③유형에 비해 자기결정권이 뒤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 제⑤유형은 일반법에 없는 법규사항을 제주특별법에 규정하여 제주자치도에만 특정 권한을 수권하는 형식이다. 권한 및 특례 이양 4,660건 가운데, 15.8%에 달하는 822건은 ‘특례 창설유형’으로 엄격히 따지면 일반법에 존재하지 않은 법규사항이므로 중앙행정권한을 제주특별자치도에 이양한다고 볼 수 없다. 국가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설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른 광역자치단체에 없는 지방분권의 강화 또는 주민참여의 강화를 위한 자치제도, 그리고 제주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규제완화 또는 산업진흥을 위한 산업 관련 특례(예, 제주특별법 제162조 투자진흥지구)를 제주특별법을 통해 직접 수권하는 형식이다. 이런 유형의 입법 사례로는 ‘새만금 사업 추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등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이라 약칭함)이 2006년 2월11일 국회 의결을 거쳐 법률 제7849호로 제정됐다. 이 특별법의 시행으로 종전의 제주도가 폐지되고, 2006년 7월1일부터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하고, 종전의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은 폐지됨과 동시에 국제자유도시의 조성 및 육성에 관한 법제도 대부분이 신법인 제주특별법으로 승계되었다. 이 특별법은 제정 후 20년이 경과하는 동안에 299 차례의 개정(타법 개정 포함)을 통해 개별 법조문이 수정, 보완됐다. 2005년 12월30일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제주도행정체제특별법’ 제3조는 “제주도의 제주시·서귀포시·북제주군·남제주군을 각각 폐지하고 제주도에는 지방자치법 제2조 제1항, 제3조 제2항의 규정에 불구하고 관할구역 안에 지방자치단체인 시와 군을 두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의 시행으로 2006년 7월 1일부터 제주도에는 4개 시·군의 기초자치단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제주특별법의 제정이유를 살펴보겠다. 종전의 제주도를 폐지하고, 제주특별자치도를 설치하여 자치조직·인사권 및 자치재정권 등 자치권을 강화하며, 교육자치제도의 개선과 자치경찰제의 도입을 통하여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보장함으로써 선진적인 지방분권모델을 구축하는 한편, 제주특별자치도에 적용되고 있는 각종 법령상 행정규제를 폭넓게 완화하고, 중앙행정기관의 권한을 대폭 이양하며, 청정산업 및 서비스산업을 육성하여 제주특별자치도를 국제자유도시로 조성·발전시키려는 함이다. 제주특별법의 주요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① 자치분권 분야 • 제주특별자치도지원위원회의 설치(법 제7조 및 제8조) • 제주특별자치도지사의 법률안 제출 및 입법반영(법 제9조) •. 제주특별자치도의 설치 및 법적 지위(법 제10조) 기존 도(道)와는 법적 지위가 차별화된 '제주특별자치도'를 새로이 설치함으로써 선진적인 지방자치제도의 확립과 국제자유도시의 조성에 기여하도록 함. • 중앙행정기관 권한의 단계적 이양(법 제12조) • 자치조직의 자율성 강화(법 제13조∼제16조) • 주민권리의 확대(법 제23조 및 제24조) • 주민소환제의 도입(법 제25조∼제40조) • 제주특별자치도의회의원의 정수와 선거구에 관한 특례(법 제41조 내지 제43조) • 인사청문회(법 제44조) •.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지원 및 운영의 자율성 강화(법 제45조∼제47조) •. 인사제도 및 운영의 자율성 부여(법 제49조·제50조 및 제52조) • 성과중심의 인사관리와 인사충원제도의 개방(법 제53조 내지 제56조 및 제60조 내지 제62조) • 감사위원회의 설치·운영과 감사 특례(법 제66조∼제71조) • 자치재정권의 강화(법 제72조∼제77조) • 교육위원회의 구성 및 기능 강화(법 제79조) • 교육감 및 교육의원의 주민 직접선거(법 제80조·제81조 및 제91조) • 행정시 단위의 교육청 설치(법 제98조) • 보통교부금 및 교육비특별회계 전출 비율 조정(법 제101조 및 제102조) •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소속의 자치경찰기구 설치(법 제106조·제107조 및 제109조) • 자치경찰의 사무 및 그 수행방법(법 제108조 및 제110조) • 치안행정위원회(법 제113조 및 제114조) • 교통안전시설 관리업무의 이관(법 제138조 및 제139조) •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이관(법 제140조∼제151조) ② 국제자유도시의 여건 조성 부문 • 관광진흥 관련 지방공사의 설립·운영(법 제170조) • 관광사업의 권한 이양(법 제171조) • 관광진흥개발기금에 관한 특례(법 제173조) • 외국교육기관의 설립대상 확대, 설립요건 완화(법 제182조 및 제183조) • 초·중등학교 운영의 독자성 부여(법 제186조 및 제187조) • 의료산업에 대한 행정규제의 완화(법 제198조 내지 제200조) • 청정 1차산업의 육성을 위한 여건 마련(법 제202조 내지 제215조) ③ 국제자유도시 개발계획 부문 • 제한적 토지수용권 부여 및 토지비축제도 확대(법 제234조 및 제235조) •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특례(법 제244조·제253조 및 제254조) •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의 기능 강화(법 제266조) ④ 환경·교통·보건복지 그 밖의 부문 • 건설·교통 분야 권한 이양(법 제248조·제249조·제252조·제255조 내지 제260조 및 제325조) • 환경관리 분야의 권한 이양(법 제299조 및 제300조) • 수자원의 종합적 관리체계 구축(법 제311조 내지 제324조) • 보건복지제도에 관한 특례(법 제326조 내지 제342조) • 단계적인 규제자유지역화의 추진(법 제346조) 제주특별법은 지방자치와 지방행정에 관한 일반법이 지방자치단체에게 부여하는 자치사무 및 자치권보다 더 많은 권한을 ‘권한이양’을 통하여 제주특별자치도에 부여하는 등으로 여러 가지 차등화 된 특례를 인정하고 있다. 이 법은 자치모범도시의 틀을 만들고, 또한 경제자유구역에 준하는 경쟁 기반의 틀을 조성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선진적인 지방분권 모델 구축에는 미완성이므로 향후 개선 과제이기도 하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유사제도를 비교하면 아래 [표] 기재와 같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표]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이철괴는 항상 두 가지 물건을 지니고 다닌다. 이는 도교 미술에서 그를 구별하는 핵심 코드다. 하나는 ‘철지팡이(鐵拐)’이다. 무거운 철로 만든 지팡이로 ‘이철괴’라는 이름 자체가 ‘철지팡이를 짚은 이 씨’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호리병(寶葫蘆)’이다. 모든 병을 고치는 신비한 영약이 들어 있는데 밤에는 이 호리병이 커져서 그 안에서 잠을 자기도 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철괴는 팔선 중에서도 유독 중국 민중에게 인기가 많았다. 약자와 소외계층의 수호신이기에 그랬다. 거지의 형상을 하고 있기에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신선으로 추앙받았다. 이철괴는 겉은 추하고 비루한 거지일지라도 그 내면은 신선(진리)일 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는 중국 민중의 철학이 담겨 있다. 거지는 단순히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빈틈을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거울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이철괴의 전설처럼 겉모습 너머의 본질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가 거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미래에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관점을 바꿔야 한다. ‘개인의 실패’가 아닌 ‘시스템의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과거에는 거지를 게으름의 결과나 운명으로 치부하기도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 거지는 사회적 안전망이 어디서 끊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낙인을 제거해야 한다. 거지를 ‘잠재적 범죄자’나 ‘불쾌한 존재’로 보기보다, 주거·의료·고용 시스템에서 밀려난 ‘사회적 고립자’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이철괴가 신선의 영혼을 가졌듯, 노숙 생활을 하는 이들 중에는 정신적 질환, 경제적 파산, 혹은 현대 사회의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다양한 사연이 있음을 인정하는 공감이 필요하다. 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동전 한 닢을 던져주는 ‘적선’은 일시적인 배고픔은 달래줄 수 있지만, 굴레는 끊지 못한다. 첫째,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 전략이 필요하다. 집이 생겨야 재활 의지도 생긴다는 원칙이다. 거주지를 먼저 제공하고 이후에 알코올 중독 치료나 직업 훈련을 병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둘째, 정신건강 및 커뮤니티 복원에 주의해야 한다. 많은 거지가 심리적 고립 상태에 있다. 그들을 다시 사회적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심리 상담과 소속감 부여가 필수적이다. 셋째, 디지털 소외 방지에 유념해야 한다.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서 구걸조차 어려워진 현대판 거지를 위해, 디지털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는 정책이 필요하다. 거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시스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다음과 같은 태도를 공동체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첫째, 인간 존엄성을 유지해야 한다. 거지를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을 맞추고 인격체로 대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 가장 큰 상처가 된다. 둘째, 지속 가능한 기부 문화가 있어야 한다. 개인의 직접적인 적선보다는 전문적인 구호단체를 통해 체계적인 자립을 돕는 방식으로 기부의 질을 높여야 한다. 이철괴가 짚었던 철지팡이는 어쩌면 우리 사회가 약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최소한의 지지대일지도 모른다. 거지가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누구든 거지가 되었을 때 다시 일어설 지팡이를 찾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끝>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국립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1666년 9월 일본 나가사키에 주재하고 있던 동인도회사 무역관장 앞으로 이해할 수 없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이상한 복장(조선 옷)을 한 이들이 13년 전 사라진 스페르베르호 선원이라 주장하고 나타났다. 하멜 일행은 실종으로 처리된 상태였다. 스페르베르호는 1653년 9월에 동인도회사 무역관이 있는 일본 나가사키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해 일본으로 가던 중 스페르베르호가 제주에 표류했던 사실을 조선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동인도회사 간부들은 1년 뒤인 1654년 10월 스페르베르호와 그 배에 실린 화물을 장부에서 삭제하고, 선원 64명의 실종을 발표했다. 1666년 9월 4일 하멜 이하 8명은 달이 지고 썰물이 시작되는 시간을 기다려 해변에 있는 배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갔다. 나가사키에서 조사를 받고 1년 후 동인도회사 본부가 있던 인도네시아 바타비아(자카르타)에 도착했다. 하멜 일행 중 전라 병영을 탈출 못 한 나머지 7명이 있었는데, 이들도 일본과 조선 간의 협상을 통해 1668년 9월에 나가사키로 떠났다. 이들도 바타비아를 통해 본국으로 돌아갔다. 나가사키에 도착한 하멜은 밀린 월급 상환을 요구했지만 수용되지 않자, 네덜란드로 돌아가 암스테르담의 담당자에게 다시 월급을 청구하고 조선에서 겪은 일을 기록으로 남겼다. 바로『하멜 표류기』다. 하멜은 회계사 겸 서기였다. 선원 중에 유일하게 문자를 알고 있었던 사람이다. 이 때문에 하멜이 조선에 표류했을 때 조선에 관한 모든 사항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멜은 ‘동인도회사 직원을 위한 보고서 작성 지침서’에 따라 표류기를 작성했다. 하멜의 이러한 전략은 성공했다. 처음 신청한 선원들은 배가 침몰하면 일 안 했다고 간주한다면서 2년 치 봉급만 인도적 차원에서 주고, 하멜 등 7명 선원에게는 13년 치 봉급을 지급했다. 이에는『하멜 표류기』로 동인도회사가 유명해진 점이 작용했다. 『하멜 표류기』는 ‘표류기(漂流記)’와 ‘조선 왕국기(朝鮮王國記)’로 구성되었다. ‘표류기’는 네덜란드를 떠난 이후 조선에서의 억류 생활을 거쳐 다시 귀국할 때까지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일지이며, 난파 경위, 조선에 표박(漂迫) 이후 하멜 일행이 겪은 체험과 감상이 연대순으로 기록했다. ‘조선 왕국기’는 조선의 지리, 풍토, 산물, 정치, 군사, 형법 제도, 종교, 교육, 교역 등 하멜이 조선에서 체류하면서 보고 들은 조선에 대한 모든 사항을 기록했다. 하멜과 함께 탈출한 다른 선원이나 지인들이 기록하거나 문답한 내용에는 그들이 조선에서 처와 자식들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멜 역시 조선에 처와 자식이 있었지만, "조선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생겼다."라는 점은 자신에게 불리하게 적용됨을 우려, 『하멜 표류기』에서 뺐으리라, 추측만 하고 있다. 이와 관련이 있어선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어쨌거나 하멜은 귀국 이후 동인도회사에서 계속해 회계사로 일하며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의 주무 부서인 행정자치부는 2005년 9월경부터 제주자치도의 설치 근거를 마련하고 그 지위와 사무를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약칭 제주특법법(안)의 작성에 착수한다. 그 요지는 이렇다. 중앙부처는 법률의 체계와 구성 내용을 검토한 결과, 특별자치도의 설치 부분과 국제자유도시 조성 부분을 분리하여 2개의 법률로 나누지 않고 하나의 법률로 규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나아가 법안의 내용은 제주특별차지도 기본계획에 제시된 사항들을 토대로 하되 핵심 산업의 육성 부분은 현재 시행 중인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규정된 내용들을 발전적으로 수용하기로 하였다. 다른 한편, 제주도 행정체제에 관한 사항은 「제주도 행정체제 등에 관한 특별법」(이하, ‘제주도행정체제특별법’이라 약칭함)을 따로 제정하여 규정하기로 하였다. 행정자치부는 관계 중앙부처와 제주도정, 열린우리당과 상시 협의하면서 쟁점 사항을 조정한 후, 새로 제정하는 법률의 명칭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이라 약칭함)의 시안을 작성하여 2005년 11월 4일 ‘제주도행정체제특별법(안)’, ‘지방자치법개정(안)’과 함께 행정자치부 장관의 명의로 입법예고(공고 제2005-189호)를 하였다. 입법 예고된 제주특별법(안)의 제정이유를 살펴보면, ‘제주특별자치도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함으로써 선진 분권 모델을 구축하고 실질적인 지방자치를 보장함과 아울러 규제완화와 국제적 기준의 제도 도입을 통하여 핵심 산업을 중점, 육성함으로써 제주특별자치도를 경쟁력 있는 국제자유도시로 발전시키겠다.’는 것이었다. 2005년 5월 20일 국무총리 주재 하에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확정된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을 토대로 제주특별법(안)의 골조가 완성됐기 때문에 기본계획에 제시된 사항들은 거의 그대로 이 법안에 수용됐다. 중앙의 주무부처는 2005년 7월27일자 제주도의 주민투표 결과를 수렴하여 제주특별법(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고, 2005년 11월 21일 국무회의에 상정하였고, ‘제주도행정체제특별법(안)’, ‘지방자치법개정(안)’과 함께 심의·의결을 거쳐 대통령의 재가를 득함으로써 정부(안)으로 확정됐다. “주민투표”란 지방자치단체의 폐치·분합 또는 주민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거나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하여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실시하는 선거권이 있는 주민 전체의 의사를 묻는 투표를 말한다. 행정자치부 장관의 2005년 6월27일자 주민투표 요청에 의해 제주도는 기초자치단체의 폐치 등에 관한 도민여론 수렴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제주도는 2005년 7월 27일,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제주도내 시·군을 폐지하여 제주도를 단일 광역자치제로 개편한다는 내용의 혁신안을 선택했다. 투표율은 36.7%(제주시 34.6, 서귀포시 34.2, 북제주군 42.2, 남제주군 40.1)이고, 개표결과는 투표자수 14만7656명 중 혁신안(시군폐지 및 道단일 광역자치제로 개편)이 8만2919명(57%), 점진안(시군 통폐합 없이 광역과 기초간 기능조정만 하는 안)이 6만2469명(43%)으로 집계됐다. 이 주민투표 실시와 관련하여, 제주시와 서귀포시, 남제주군은 2005년 7월8일 행정자치부 장관을 피청구인으로 하여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2005헌라5호)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05년 12월22일 재판관 8:1의 의견으로 각하 결정을 했다. 그 심판의 의의와 여론의 추이를 요약하면 이렇다. 심판의 대상은, (주위적으로) 행정자치부 장관의 2005년 6월27일자 주민투표요구행위와 제주도지사의 주민투표발의공고행위가 청구인들의 자치권한을 침해하거나 주민투표법 제8조 제1항에 따른 주민투표실시권한을 침해하는지 또는 무효인지의 여부, (예비적으로) 위 투표실시요구와 투표 실시로 인해 제주도 내의 모든 기초지방자치단체가 폐치됨으로써 청구인들의 자치권한이 침해될 위험이 있는지의 여부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첫째> 지방자치단체의 폐치, 분합에 관한 주민투표는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 입법 자료를 제공하는 기능에 불과하다는 것이고, <둘째> 주민투표 실시행위 자체만으로는 입법형성이 없는 한 자치권한의 현저한 침해 가능성이 없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위 헌재 결정 후, 제주도행정체제특별법이 의결되고 나서 제주시 등 3개 자치단체가 위 법률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출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그 결과를 확인하지 못해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제주도가 가진 지정학적, 사회적, 경제적 및 문화적인 다양한 측면에서의 특수한 독자성에 주목하여 선진적인 분권모델의 선도 지역으로 삼자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이를 법제도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기초자치단체를 폐지하고, 도 단일의 광역자치단체 체제로 개편한 것인데, 이런 법제도가 지방자치에 관한 헌법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이 크게 일어났다. 우리 헌법은 지방자치를 보장하면서도, 지방자치권의 범위 내지 내용을 국회의 광범위한 형성에 맡겨 놓고 있다(헌법 제117조 및 제118조). 헌법이 보장하는 지방자치제도는 국회의 입법에 의해서 그 범위나 한계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입법자에게 광범위한 형성 권한을 줌으로써 국회의 법률 제·개정행위에 의하여 지방자치권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될 위험이 상존한다. 그 쟁송은 현행법상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것이 유일하다.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1항은 “헌법재판소는 심판의 대상이 된 국가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의 존부 또는 범위에 관하여 판단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제1항의 경우에 헌법재판소는 권한침해의 원인이 된 피청구인의 처분을 취소하거나 그 무효를 확인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회의 법률제정행위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침해했다고 판단할 경우 헌법재판소법 제66조 제1항에 따라 법률제정행위의 위헌 또는 위법확인을 할 수 있다는 점에는 학설상 논란이 없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20년이다. 2006년 7월1일 출범한 특별자치도 제주는 대한민국의 제주를 향한 집념의 깃발이다. 그 이면엔 대한민국의 예인선이 되기를 바라는 '제주개발'의 성장사가 있다. 1991년 말 제주개발특별법이란 외피를 걸친 제주호의 항해가 시작된 지도 어언 35년이다. 법과 제도, 구조와 내용으로 제주를 만들어간 변천사를 이제 되짚어본다. 제주개발특별법 탄생에 관여했던 김승석 변호사가 그 일련의 역사를 정리한다. 중단없는 제주의 새로운 전진을 새 연재에서 모색해본다. / 편집자 주 제주도는 21세기 비전으로 2002년 4월에 시행된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에 의거, ‘국제자유도시’와 ‘평화의 섬’을 추진 중에 있었으나 국제자유도시가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혁신적인 지방자치 및 행정체제의 구축은 시대적 소명으로 떠올랐다. 이에 제주도는 2002년 ‘제주도행정개혁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제주의 여건과 특성을 반영하고 지역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주형 자치모형’을 개발한다.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는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국정과제로 선정하여 김대중 정부와는 차별화된 실질적인 지방분권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2003년 10월31일 제주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도민과의 대화에서 제주 ‘특별자치도’에 대한 획기적인 구상을 밝혔다. 그 진의(眞意)가 무엇이고, 그 정치적 배경이 어떠한지, 이 점에 대해 도내에서는 여러 갈래의 해석이 있었다. 제주도의 법적 지위를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一國兩制), 또는 미국의 주(州)정부 수준으로 격상시키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이와 달리 ‘홍콩’ 형(型)과 미국의 주정부(洲政府) 형 모델을 논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체제와 법률에 의한 지방자치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 헌법에 비추어 비법(非法)적 발상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노 대통령 발언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서도 2004년 4월 총선을 겨냥한 도내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한 선거 전략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2002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하여 임기 시작 전에 제주를 방문했던 노 대통령이 제주도를 '지방분권시범도'로 격상시키겠다는 언급한 점, 그리고 2003년 국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는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 신(新)행정수도건설 등을 다룬 3개의 특별법과 관련한 정부의 의지에 비추어 보건대 제주도를 국가균형발전, 지방분권의 특별한 지역으로 설정하겠다는 정치적 결단으로 해석하는 게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특별자치도 추진에 대한 정책 의지에 따라 제주도정은 2004년 3월 제주연구원(JRI)에 「제주특별자치도 기본방향 및 실천전략」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다른 한편, 정부는 2004년 1월 지방분권특별법을 제정하고, 그 내용에 지방분권의 시범실시를 위한 제주자치도 추진의 법적 근거를 존치하였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지방분권5개년 종합실행계획(2004년∼2008년)을 수립하면서 그 추진과제에 「제주자치도 추진」을 포함함으로써 제주자치도 설치를 국가정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제주도정은 제주연구원(JRI)의 2004년 11월 용역성과물인 「제주특별자치도 기본방향 및 실천전략」의 내용 일부를 수정하여 “제주특별자치도 추진계획”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해 11월 30일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와 행정자치부에 이 문서를 제출하였다. 이 추진계획은 자치권의 강화에 중점을 둔 것이었다.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육성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실천전략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의견에 따라 수정, 보완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규제자유지역화, 국제적 관광·휴양산업의 제도적 기반확충, 경쟁국 수준의 조세 인센티브 적용, 해외 접근성 확대, 출입국관리제도 개선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보완계획을 마련하여 중앙 정부에 제출하였다. 이에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는 “제주특별자치도 추진(보완)계획”에서 제시된 과제들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한편, 제주도와 경쟁관계에 있는 포르투갈의 마데이라 자치지역과 홍콩·싱가포르 등의 사례를 조사·연구하였다.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마련한 기본구상(안)은 2005년 5월 20일 국무총리 주재 하에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의 구상’을 확정하였다. [표] 그 요지는, 제주발전의 비전을 3대 핵심 산업(관광·교육·의료)과 이에 토대를 둔 첨단산업을 육성하여 친환경적 동북아 중심 도시로 조성하고, 사람·상품·자본의 자유로운 이동과 기업 활동의 편의가 최대한 보장되는 이상적 경제 모델을 구축하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고도의 자치권이 인정되는 특별자치도를 실시하여 분권형 선진 국가를 선도한다는 것이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구상」이 행정절차에 따라 예고되자 도내 일부 시민·사회단체들은 위 계획(안)에 포함된 ‘영리법인의 교육·의료기관의 설립 허용, 외국교육기관의 내국인 입학 및 과실송금의 허용, 노동시장의 개방 등에 대하여 반대의견을 제시하였다. 제주도정은 수렴된 도민의견의 일부를 반영하여 위 계획(안)을 일부 수정하고, 나아가 2005년 7월 27일 실시된 행정계층구조 개편에 대한 주민투표의 결과(유권자 36.7% 참여, 57% 찬성으로 통과된 단일광역자치안)을 반영하여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안)을 확정한 후 같은 해 9월 21일 중앙정부에 제출하였다. 최종 확정된 기본계획(안)은 제주자치도의 비전을 ‘동북아 중심의 국제자유도시’로 설정하였고, 자치와 분권의 선도 모델 및 최적의 기업 환경 조성을 추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특별자치도의 추진방향을 자치권의 획기적 확대, 규제 자유지역 및 국제적 기준의 도입, 핵심 산업의 육성, 지역정체성의 확립, 청정 환경의 보전에 두고 있다. 그 추진 전략으로 특별자치도의 시행, 제주프로젝트의 실행, 추진 여건의 조성 등 3개 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나아가 제주특별자치도의 제도적 장치로써 제주도의 행정계층구조를 개편하는 한편, 자치입법권 강화, 자치조직 및 인사권의 강화, 자치단체기관의 구성 방식의 자율화, 자치재정권의 강화,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이관 및 기타 특례의 인정 등을 포괄하는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가칭) 제주특별자치도법의 제정은 제4기 민선 도정이 시작되는 2006년 7월 1일에 특별자치도가 출범할 수 있도록 국회 일정을 조율하는 단계에 진입하게 됐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승석은? = 제주불교신문 편집인이자 변호사다. 인터넷신문 <제주의 소리> 발행인 겸 대표, 제주도 정무부지사를 역임했다. 저서로는 대한문학 제53호 신인문학상을 받은 '나 홀로 명상'(2009년, 불광출판) 수상집이 있다.
봄 기운이 완연한 지금, 오늘 하루는 다섯 날을 쉼 없이 산 당신을 위한 시간입니다. 여유로운 주말, 시 한 편의 여유를 선사합니다. 당신의 주말을 위하여. 매주말 허유미 시인이 전하는 '잠시의 여유'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다섯 살 섬 허유미 흔들말에 앉아 폴폴 날리는 흙먼지 잡아먹던 어린 손 좌악 펴면 엄마가 온다 눈시울 붉어진 바다 계절도 잊고 시간도 잊고 그저 등에 업힌 채 엄마 배를 물결인 듯 만지며 좋아 좋아 웃을 때마다 켜지는 집어등 참았던 졸음이 가고 가고 바다 가까이에서 산다. 바다 가까이라는 말보다 바다에 붙어 있다는 말이 더 맞다. 낮이면 신작로에서 흔들말을 탄다. 흔들말 위에서 몸이 뒤뚱뒤뚱 흔들릴 때마다 흙먼지가 폴폴 날아다닌다. 나는 그 먼지를 입으로 잡아먹는 시늉을 하며 논다. 그렇게 하다 보면 펼쳐친 손끝으로 엄마가 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바다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바다가 울고 있는 것인지 내가 울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것도,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을 때 나는 늘 엄마 등에 업혀 있다. 엄마 등 세상은 조용히 흔들린다. 엄마의 배를 만지면 물결이 느껴진다. 나는 그걸 바다라고 불렀다. 엄마의 몸이 바다이고, 나는 그 위에 떠있는 섬이다. 바다에 기대면 따뜻하고 조용하다. 금방 잠이 온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이런 바다 하나쯤을 마음에 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바다는 꼭 누군가일 수도 있고, 장소일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우리는 각자 조금씩 흔들리면서도, 오래된 파도 소리 같은 하루을 안고 살아간다. ☞허유미는?=제주 바닷가 마을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수평선, 물너울, 등대, 섬은 나의 첫 친구들이었다. 말문이 트였을 때 엄마라는 말보다 바다라는 말을 많이 했다. 물질하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는 파란 요람, 파란 집, 파란 놀이터였다. 청소년 시절 유난히 말수가 적어 엄마 아빠가 걱정했다. 말수가 적은 대신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고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풍경이나 사물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시절부터 시집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 책꽂이에 시집이 많아지면서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갖고 국문학과에 진학했다. 2016년 제주작가 신인상, 2019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 「우리 어멍은 해녀」,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한국작가회의 회원, 제주작가회의 회원.
이원진 목사는 하멜 일행에 대한 심문을 마치자, 이들을 ‘국왕 숙부의 집'에 머물게 했다. 『하멜 표류기』에는‘지금 국왕(효종)의 아저씨(광해군으로 추정)가 왕위를 찬탈하려다가 갇혀 죽은 곳’이라 기록하고 있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광해군은 처음 강화도로 유배됐다가, 병자호란 발발 다음 해인 1637년 제주로 유배됐다. 그는 제주성에 위리안치되어 여러 모욕과 암살의 위험을 견디며 쓸쓸히 여생을 보내다가 병으로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12년 후, 36명 네덜란드 선원은 광해군이 유배 생활 도중 머물렀던 적거(謫居)에 수용되었다. 당시 그 인원을 수용할 만한 규모의 시설이 거기 외엔 없었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어쨌거나 현재 이를 문화 콘텐트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제주시 용담공원에는 ‘용담1동 하멜 길’이 있다. 17세기 제주를 이방인의 눈으로 바라본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을 소재로 한 ‘하멜 길’이 제주시 용담1동에 들어섰다. 하멜 일행이 제주에서 지낸 10개월간 역사의 기록을 용담1동에 맞게 스토리텔링 했다. 하멜 길은 제주읍성 서문, 배고픈 다리, 선반 내, 동한두기, 용연, 부러리길 등을 둘러보는 총 2km 구간으로 정했다. 하멜 일행은 약 10개월 동안 서문에 있는 광해군 적거(謫居) 터에 머물렀다. 그동안 제주 성 인근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용담 부러리 길을 통해 제주 성으로 입성했고, 용연은 앞서 언급한 대로, 이원진 목사의 배려로 조를 짜서 산책도 하게 하고 빨래도 하게 했던 지역이며 그들을 위한 연회가 열리기도 했다. 제주향교 담벼락 너머로 아이들의 글 읽는 소리를 엿들었다. ‘한두기’는 다른 사연이 있다. 이원진 목사 이임 이후 새로운 목사가 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새로운 목사가 부임하고 대우가 박해지자, 하멜 일행 가운데 6명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들켜 무산됐다. 탈출을 기도한 6명은 25대씩의 곤장을 맞고 한 달 동안이나 누워있었다. 그때 탈출을 시도했던 장소가 ‘한두기’라고 추정하고 있다. 이번 ‘용담 1동 하멜 길’ 조성에 자문역을 맡은, 양진건 제주대학교 명예교수는 “하멜의 역사적 가치를 계승하고 콘텐츠화하여 용담1동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 앞으로 네덜란드 호르콤시와 국제적 교류도 추진해 지역 축제나 기념비 건립 등 후속 계획도 진행할 예정이다”라고 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은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인 돌하르방을 주인공으로 내세웁니다.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가만히 앉앙 보기만 헐거냐 (가만히 앉아 보기만 할 거니) We can't just stand by and watch, can we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