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재신〔재록신(財祿神)〕을 건네면서 구걸하는 거지 이 부류의 거지는 오로지 새해 때만 구걸한다. 음력 정월 초사흘 저녁이 되기만 하면 재신을 믿는 상점에서는 돈을 벌게 해달라고 향을 사르고 제사지내며 재신을 영접한다. 거지는 그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해 궐련 가게에서 흑연으로 재신상이 인쇄된 누런 종이를 사서는 집집마다 방문하며 “재신 왔어요!”라고 소리친다. 길하기를 바라는 까닭에 급히 들어오게 하고는 그들에게 동전 몇 푼을 건네준다. 거지들이 전해주는 재신상이 그려진 종이는 그리 크지도 않고 쌌다. 밑천은 별로 들게 없으면서 이익은 많은 장사인 셈이다. 하룻밤 사이에 벌어들이는 돈은 평상시의 몇 갑절이나 된다. (20) 새해맞이 노래를 부르며 구걸하는 거지 이 부류의 거지도 오로지 새해 때만 보인다.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정월 보름 까지 거지들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구걸할 때 평상시처럼 주인을 먼저 부르지 않고 우선 길상을 전하는 노래를 부른다. “새해 새달 신춘이 됐네요. 진홍빛 대련이 문 가득 붙어있고 커다란 원보(元寶)를 들고 오네요. 앞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요전수(搖錢樹)요 뒷문으로 들어오는 것은 취보분(聚寶盆)1)이라. 취보분에 금꽃이 꽂혔네요, 부귀영화가 최고네요.” 이런 노래를 읊은 후에 뒤이어 소리친다. “어르신, 부인, 새해 인사를 드립니다, 길하게 만드는 돈 좀 선사하세요.” 길상을 바라는 사람들은 인색함이 없이 동전 몇 푼을 건네준다. (20) 명절 때 구걸하는 거지 단오절이나 중추절 때에 크고 작은 상점에서 구걸한다. 상점 문 앞에 서서 목판을 두드리며 반주하며 속된 노랫가락을 부른다. 모두 점포 경영에 관련된 내용이다. 반은 아첨하는 내용이고 반은 흠을 들추어내는 내용이다. 돈을 줄 때까지 기다린다. (21) 찬밥을 빌어먹는 거지〔도냉반(倒冷飯)〕 이 부류의 거지는 어린 아이들이 많다. 모두 두목인 ‘야숙(爺叔)’을 모신다. 점심과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정해진 구역 내에서 밥을 나르는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밥통을 빼앗듯 받아 잔반을 얻어서는 돌아가 먹는다. (22) 쓰레기 줍는 거지〔습황(拾荒)〕 이 부류의 거지는 대부분 여성과 어린 아이들이다. 강북 사람과 산동 사람이 가장 많다. 삼태기를 매고 대나무 집게를 들고서는 거리와 골목의 쓰레기통에서 고물을 찾아내 돈으로 바꾼다. 하루에 얼마를 버는지 말해 무엇 하랴. (23) 담배꽁초 줍는 거지 손에 깡통을 들고 길을 다니며 사람들이 버린 담배꽁초를 주워서는 되팔아서 입에 풀칠하였다. (24) 자동차 문을 열어주는 거지 몇 년 사이에 새로 나타난 거지 유형이다. 깔끔한 옷차림을 하고 회사, 극장, 호텔, 무도장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자동차 번호를 기억했다가 손님이 나오면 곧바로 차를 찾아주고서 아주 공손하게 차문을 열어주고는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돈을 요구한다. 돈을 주지 않으면 시끄럽기 그지없다. 차가 없는 손님에게는 대신 차를 잡아주고 동전 몇 푼을 얻는다. (25) 부두 거지 이런 거지는 대부분 가옥을 가지고 있다. 각 부두에서 가방을 들어주거나 짐을 옮겨주면서 돈을 받는다. 장사가 잘 될 때는 하루에 칠팔 원을 벌기도 한다. 근대의 상해는 폭력배 조직이 창궐하였다. 위 보고서에서 나열한 거지의 유형은 직관적으로 고찰한 일반적인 상황일 뿐이다. 폭력배 조직과 뒤섞인 여러 부류의 거지에 대한 흑막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당시 졸업을 앞둔 여대생들이 두려울 수도 있는 거지 세계를 분석했다는 점은 분명 뛰어나다 할 것이다. 보고서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는 예부터 지금까지 거지들이 구걸하는 방식을 고찰하는 데에 가치 있는 참고 대상을 제공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요전수(搖錢樹), 이파리처럼 돈이 달린 나무, 흔들면 돈이 떨어진다고 한다. 동한(東漢)시대(25~220)에 요전수(搖錢樹)라는 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흔들어 떨어뜨리고 나면 다시 돈이 열려, 전설 중에서도 신기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 취보분(聚寶盆), 보물이 모이는 그릇이라는 뜻으로 우리네의 우리의 ‘화수분’ 또는 ‘보물단지’ 격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무협소설 연재를 다시 시작합니다. 2019년 5월부터 1년간 연재했던 무협소설의 시즌 2입니다. 무협은 무술(武)로 협(俠, 의기로울)을 이룹니다. 창작인 소설이 더해져 무협소설이 됐습니다. 퓨전무협 소설입니다. 무협의 묘미는 살리기 위해 일상적인 무협용어는 사용했지만, 해석이 힘든 용어는 현대어로 풀어썼습니다. 생생한 묘사를 위해 실존 인물의 이름을 그대로 따 왔습니다. 이름을 차용 당한 인물들은 제주에서 ‘공인’입니다. 공인다운 아량으로 소설인 점을 이해 부탁합니다. 무협소설 주인공들이 매번 외치는 기합으로 연재를 시작합니다. “갈(喝)∼” [편집자 주] 岱宗夫如何 (태산은 어떠한가) 齊魯未了 (제나라, 노나라에 푸른빛 끝이 없네) 造化鐘神秀 (조물주는 신비한 기운을 모았고) 陰陽割昏曉 (산의 앞뒤로 아침과 저녁을 나누네) 胸生層雲 (부푼 가슴엔 층층의 구름이 일고) 決入歸鳥 (눈을 부릅뜨니 둥지로 돌아가는 새가 들어오네) 會當凌絶頂 (반드시 정상에 올라) 一覽衆山小 (저 낮은 산들을 둘러보리라) “두보(杜甫)! 당신은 진정한 중국 무림의 시성(詩聖)이야. ‘망악(望岳, 태산을 바라보며)’은 언제 읽어도 사나이 가슴을 마구, 마구 두드리지. 제나라를 여방으로, 노나라를 야방으로 바꿔보니 새로운 게 보이더군. 나, 창업 준비하고 있어. 무림 선거 플랫폼이야. 무사의 욕망은 언제나 무한하지. 태초부터 선거비무는 종합예술이야.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되겠어. 미국무림 나스닥 상장도 가능해.” 무림 2020년 2월 5일, 서귀포무림 신시가지 워케이션 수련장. 호검이 운기조식(運氣調息)을 마친 후 나지막이 읊조렸다. 몸 안의 기를 돌리고 호흡을 조절해 내공을 끌어 올리는 명상법. 사우나를 갓 마친 듯 온몸이 개운했다. 호검은 1인 기업 CEO 겸 개발자다. 무사들에게 짧디 짧은 권력을 영원토록 지속시켜 줄 환타스틱 플랫폼 프로그램 완성을 앞두고 있었다. 카드 할부 대신 일시금 들고 줄을 서는 곳. 지금은 변방 개발자지만, 완성만 되면 중원무림 시장 장악도 시간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제주무림 차기 방주를 뽑은 비무가 좀 복잡한 탓이었다. 얽히고 설킨 우리네 무림사처럼 말이다. 호검은 눈을 감고 판세를 계산했다. 복잡하다면 복잡할 수도, 쉽다면 쉬울 수도 있었다. 이럴 때는 단순하게 푸는 게 정석이었다. 여방부터 각개격파였다. 더불어민주방에선 차기 맹주를 노리는 무사가 많은 게 골치였다. 제주맹주 영훈공. 중원무림 의원 대림검(제주시갑무림)과 성곤검(서귀포무림), 전 중원무림 의원 재호검, 무려 네명의 무사가 경합을 준비 중이었다. 그 중 단 하나만 살아남는 서바이벌 비무. 호검은 고민을 잠시 멈췄다. 제주맹주 영훈공이 무소속방 출전도 고민한다는 첩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타래처럼 복잡한 정치비무였다. 고차방정식을 풀기 위해선 A4 용지가 간절히 필요했다. 생과 사, 무사의 욕망을 한없이 응축시킬 황홀한 공간, 눈 덮인 킬리만자로보다 더 마음 깊이 스며드는 순백의 무한한 공간이었다. 고객무사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무림상권 분석이 우선이었기 때문이었다. 호검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옳거니. 그제야 호검의 눈에 큰 그림이 보였다. 중원무림이었다. 지난 2일이었다. 한때 보수의 암사자라고 불렸고, 좌우, 우좌를 종횡무진했던 민주방 최고위원 언주검. 그녀가 최고위원 회합에서 직격했다. “재명지존의 민주방을 청래·조국방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고대 로마무림은 2인자, 3인자에 의한 반란이 빈번했다. 하늘 아래 두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진리다. 어흥!”하고 포효했다. 친청계로 불리는 정복 최고위원은 “공익을 핑계로 사익을 챙기려는 것 아니냐”며 즉각 반격했다. 재명지존과 청래방주과 수하를 내세워서 힘겨루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친명(친 재명지존)과 친청(친 청래방주)의 물밑 암투. 무림 명언이 있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 강호에 1인자가 둘일 수는 없었다. 동서고금을 검색해도 진정한 2인자를 키우는 지존은 없었다. 하지만 재명지존도 청래방주도 전국 무림 곳곳에 거미줄처럼 촘촘한 라인을 구축했다는 소문은 파다했다. 더불어민주방엔 연애의 법칙보다 더한 룰도 있었다. 현역 맹주가 하위 20% 점수를 받으면 득표수 20% 감점. 공천 불복 무사는 최대 18년간 25% 감점. 단 공천 불복은 대권무림 기여도를 평가해서 최고무사 회의서 미적용 무사 선발할 수 있음. 개봉박두.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그 어느 무사도 근접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 최고위원들이 친명과 친청으로 극한 대립이 이어지는 민주방을 지긋이 바라보던 호검이 자신의 허벅지를 안마하듯 펜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야 또렷이 보이는군. 얽히고 설킨 무수한 라인, 교집합, 무사들의 최근 동선을 겹치면 알 수 있지. 단 한 무사만 빼곤 일장춘몽은 운명이야. 가여운 변방의 무사들이야. 꿈에선들 잊지 못할 제주맹주를 향한 서막이 오르고 있어.” 갑자기 호검은 몹시도 궁금해졌다. 한때 강호를 강타한 서울대무림 영민훈장의 ‘추석이란 무엇인가?’ 물음처럼. “라인이란 무엇인가? 무사들이 부여잡은 라인은 어떤 라인인가? 낡디 낡은 동아줄인가. 아니면 축복받을 무사를 위해 생산된 체코무림산 레드 다이아몬드 로프. 두 가닥 곱하기 두 가닥 직조방식. 굵기도 팔 점 육 밀리. 꼬임 방지 기술이 적용돼서 바로 사용 가능한가.” 호검이 검색해 보니 좀 비싼 게 흠이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강정태는?=제주 출생. 제주대 사회학과를 나왔다. 저서로는 제주대 대학원 재학시절, 김태보 지도교수와 함께 쓴 '제주경제의 도전과 과제(김태보 외 4인 공저)'가 있다. 제주투데이, 아주경제 등에서 기자생활을 하다 귀농했다. 2020년 제주작가회의 신인상(단편소설)을 받으며 등단했다.
(7) 팔이나 다리가 없는 거지〔세 발 두꺼비(三脚蛤蟆)〕 이런 거지는 모두 상해 외곽지에서 유괴당하여 온 어린 아이다. 팔과 다리를 자른 후 길거리에서 애처롭게 울면서 구걸하도록 만들었다. 구걸한 돈은 거지 두목에게 주어야한다. 그러면 찬 죽 한 사발 얻어먹을 수 있다. 돈을 구걸해오지 못하면 매를 맞았다. 살 길이 막막하고 죽지도 못하여 처참한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갔다. (8) 자해하며 구걸하는 거지〔개천창(開天窗)〕 칼이나 바늘을 가지고 자신의 머리나 얼굴을 찌르고 다니는 거지도 있고 한 자 크기의 강철 칼을 목구멍에 밀어 넣고 다니는 거지도 있다. 철판으로 자기 머리를 깨뜨려 온몸에 피를 줄줄 흘리며 다니면서 행인에게 돈을 구걸하는 거지도 있다. 연민일까 공포일까. (9) 보온 그릇을 걸고 다니는 거지〔수완유성(水碗1)流星)〕 보온 그릇을 입이나 코에 걸고 다니며 구걸하는 거지다. 상해에는 많지 않고 가끔 보이는 유형이다. (10) 입을 열지 않는 거지 안 들리는 척 말 못하는 척하며 구걸하는 거지다. 벙어리로 가장해 행인의 연민을 먹고 사는 거지다. (11) 향로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거지 이런 유형의 거지는 맹인이 대부분이다. 끝이 날카로운 쇠 끌을 정수리에 박고 끌에는 선향 한 개와 붉은 초 2개를 꽂아 불을 붙이고 향내를 풍기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며 구걸한다. 구경꾼들을 모아 자비심을 일으키고 동전 몇 푼을 얻어낸다. (12) 염불하며 다니는 거지 불상이나 신주를 등에 지고 목어를 치면서 염불하고 다닌다. 사찰의 기부금 증서를 가지고 길을 따라 탁발한다. 사찰을 수리해 건조한다거나 불상에 다시 금칠한다며 다닌다. 태도는 성실하고 말은 온화하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기꺼이 보시한다. (13) 노강호(老江湖) 노강호(老江湖)는 중국어로 오랫동안 외지를 돌아다니며 산전수전 다 겪어 세상물정에 밝은 사람, 떠돌이이다. 이런 부류의 거지는 남녀를 불문하고 삼삼오오 무리를 이룬다. 강의 나루터나 바다의 부두를 끼고 있는 도시를 왕래하거나 강호를 주유하면서 기예를 팔아 생계를 꾸려간다. 상해는 무역통상하는 대도시이기에 그들은 늘 주재한다. 소림무예를 실연하거나 다완 세우기, 인간탑 쌓기, 공중제비 묘기를 보이기도 하고 호금을 연주하면서 남녀가 함께 「사계상사(四季相思)」를 부르며 공연하기도 한다. 관중들이 모여 박수치며 대단하다 칭찬할 때 대표자가 허리를 굽히고 공수하면서 돈을 요구한다. 수입은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보다 몇 배는 많았다. 점포 문 앞에서 코로 젓가락을 세우고 접시를 돌리는 거지도 있었다. 손에는 작은 칼을 던지면서 한바탕 놀다가 놀이가 끝나면 손님이나 주인에게 돈을 요구하였다. 돈을 주지 않고 쫓아내면 그들은 “거지를 때리면 호걸이 아니다.”라며 능글맞게 말하며 떠나지 않았다. 점포 주인은 소란을 피하려고 동전 몇 개를 건네주었다. (14) 봉양(鳳陽) 아줌마 모두 강북 봉양(鳳陽)의 빈민이다.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비바람 속에서도 구걸하였다. 일 년 내내 만날 수 있었다. 남자는 수숫대를 들고 여자는 화고를 흔들었다. 머리에는 덮개가 없는, 비로드로 만든 낡고 붉은 꽃을 몇 송이 꽂은 낡은 밀짚모자를 비뚜로 썼다. 머리 뒤로는 둥글게 묶고 작은 쪽을 만들어 닭털 같은 비녀를 꽂았다. 입술은 연지를 바르고 얼굴엔 분을 발라 소곡을 흥얼거리면서 북을 치며 춤을 추면 남자는 반주에 맞추어 움직였다. 한바탕 공연을 끝내면 사람들에게 동냥하면서 말했다. “아주머님네, 어른신네, 자선 좀 베풀어주십시오!” 10여 개의 동전을 얻었다. (15) 승려 이런 부류의 거지는 대부분 곳곳을 돌아다니며 걸식하는 탁발승이거나 가난한 도사다. 행인은 좋은 인연을 맺기 위하여 보시한다. (16) 신체장애 거지 손이 잘리거나 발이 없고 두 발 다 없거나 손과 발 모두 없는 거지다. 피범벅이 되어 진탕이 된 거리를 뒹굴며 동냥 달라 소리친다. 사찰이나 도관 주변 거리에 가장 많다. 어떤 거지는 일부러 칼자국을 내고 돼지피를 묻힌 후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면 행인들은 처참한 모습에 연민을 느껴 동전 몇 닢을 던져준다. (17) 가슴을 치며 다니는 거지 이러한 거지를 만나면 놀라 입을 벌리고 힘들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된다. 그들이 구걸하는 방식은 여타 거지와 다르다. 눈물도 흘리지 않고 소리 지르며 어려운 지경을 하소연하면서 가슴을 열어젖히고는 낡은 가죽 신발창으로 힘껏 내리치며 구걸한다. 너무나 많이 때린 까닭인지 가슴은 이미 부어올랐고 혹 같은 붉은 덩어리가 맺혀있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물과 사람의 협력은 오래된 일로서 양용방의 작품을 보게 되면 재료가 곧 형식이 되고, 사람은 두뇌로서 내용을 만들어 냈다. 낡은 레디메이드가 새로운 의미로 태어난 것이다. 이번 양용방의 'my life'는 만들어진 오브제 혹은 발견된 오브제를 이용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작품 'Food mark'는 하나의 애벌레 형상인데 숟가락으로 애벌레를 만들었다. 숟가락이 모두 65개인데 현재의 작가 나이를 상징하여 자신이 평생 밥벌레로 살아온 날을 회상하듯, 모든 인간의 생애란 결국 이 밥을 먹기 위해 살아온 존재라는 것을 되새겨준다. '세상살이'는 일상에서 쓰다 버려진 주전자, 프라이팬, 식기를 다양한 기표로 새겨서 허공에 매달아 인간 세상만사의 삶의 이야기를 되살리려는 의도가 있다. 삶이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그 기물에는 스피커를 통해서 우리 일상의 온갖 소리와 잡음 곧 '세상의 삶의 소리'를 듣도록 했다. 식기들은 밥, 생활, 일상, 먹는다는 인간 의례의 상황들이 소리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겹치게 한다. '깊은 잠(deep sleep)'은 대야에 잠자는 듯 노루 머리뼈가 흰빛의 물에 잠겨있는 모습이다. 야생에서 힘차게 뛰놀던 노루가 결국에는 인간의 덫에 걸려 가죽은 장식용으로, 고기는 식용으로 쓰였고, 하얀 육수는 일상의 사람들 보신용이 된 희생양의 상징이며, 곧 자연을 아프도록 동정하는 '동물 최후'의 의례가 된다. 결국 그 동정의 이면에는 자연을 거스른 인간의 최후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어야 한다. '나의 정원(my garden)'은 냄비 뚜껑을 이용한 정원의 연잎이 되었다. 나의 생명을 유지하는 도구가 이제는 연꽃이 된 것이다. 연꽃이 더러운 늪지에서 고고하게 핀다는 의미로 볼 때 하수구가 한때 화려한 생명의 절정의 모습이었다는 반전이 가능하다. '샤넬 백이 아닙니다(It's not a Chanel bag)'는 소비사회의 꽃이라고 말하는 명품 이미지를 패러디한 작품으로 자세히 보면 흔한 폐품이 변하여 샤넬 백으로 다시 태어났다. 하지만 산업폐기물로 만든 명품이라는 의미에서 화려한 소비사회가 다시 이 폐품으로 재활용되는 풍자를 보여준다. 샤넬 백의 짝퉁인 샤넬 백, 그것을 구매하기 위해 일을 하는 우리 삶의 슬픈 자본주의가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전제로 하는 사회이다. 생산이 있기에 그것을 쓰는 사람들이 있고, 이 둘의 관계는 순환되면서 점점 한쪽으로 집중된다. 소비를 위한 생산이라면 인간 실존을 위한 생명 활동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는 그 범위를 훨씬 넘어서 빈익빈 부익부라는 차이에서 독점이 발생한다. 수요와 공급을 위한 균형을 유지하기보다는 이윤을 위해서라면 공급의 과잉도 불사하여 결국 인플레이션이나 공급부족인 디플레이션이라는 위기를 초래한다. 자본주의는 상품과 화폐로 돌아가는 사회다. 화폐는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지불수단이자 유통수단이 되며, 원래 대로라면 상품의 수요와 공급이 화폐의 크기와 같아야 한다. 그러나 그것의 조절이 불가능하게 되면 자본주의는 과부하가 결려 사회적 위기인 공황을 불러온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품격도 화폐로 말하는 사회다. 즉 돈의 가치가 우선시 돼 모든 상품의 소유를 결정하므로 부에 대한 욕망은 화폐를 소유한 크기로 나타난다. 욕망하는 사회에서 고가의 상품을 소유하는 능력은 그 사람의 권력이 된다. 그런 사회에서는 부의 척도가 곧 인간의 척도가 되는 것이다. 양용방의 작품 중에 지금의 동시대 욕망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대단한 나의 삶(bravo my life)'이 있다. 컴퓨터, 유튜버, 비트코인 등 자본주의 욕망의 상징들로 나타난다. 재료는 실제로 프라이팬이다. 오늘날 자본주의 우리 초상이라고 할까. 지금의 우리 현실적인 삶에 대한 알레고리(allegory)로써 풍요와 욕망의 밑바닥을 보는 듯하다. 양용방의 일상에서 발견된 오브제들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한 작품들이다. 이런 아상블라주나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은 크게 보아 정크아트의 일종이 되는데 오래전부터 하나의 예술 양식으로 자리 잡은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양용방 특유의 위트와 알레고리를 섞어 우리 모두의 my life를 환기하게 시켜주고 있다. 나의 my life는 곧 당신에게도 my life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당신들은 결국 모두는 주체로서 내가 되고 그럼으로써 my life는 상대적으로 우리 모두를 구성하는 것이 바로 나인 것이다. 모든 존재로서 우리는 끝내 개체라는 존재자가 될 때 my life가 된다. 결과적으로 양용방의 my life는 자신의 이야기이자 우리 모두를 향한 메시지가 되고 있다. 양용 방이 추구하는 예술 언어는 일상에서 찾는 즐거움과 재미이다. 심각하지 않으면서 여운을 남기는 위트와 유머는 양용방 조각의 독특한 풍자(諷刺)정신이 되고 있다. 삶이란 이름답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며, 쓸쓸하면서도 뿌듯한 일로 행복해지기도 한다. 어느 인생 구비에서는 억울하여 울다가도 어떤 고개를 넘어서면 환한 태양을 보기도 한다. 늘 비가 오는 날이 없듯이 항상 해가 뜨는 날도 없다. 삶은 날씨처럼 상황이 다르고 여러 사건이 있기에 감정은 천차만별 늘 일렁이는 바다와 같다. my life는 인생의 희비극적 찬가이자 삶이란 늘 녹녹지 않으면서도 즐거움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그 기쁨이야말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줄곧 내 곁에 있는 일상임을 일깨워준다. my life는 곧 당신의 이야기이지만 우리의 모든 삶에는 ’사물과 인간의 협력’이라는 오래된 미래가 있었고, 앞으로는 그 협력이 더욱 가까이 우리와 함께 할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본 세기 초에, 상해 호강(滬江)대학교 사회학과 오원숙(吳元淑), 장사일(蔣思壹) 두 여학생이 당시 상해에서 활동하고 있는 700명의 거지를 대상으로 사회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거지가 구걸하는 방법을 분류해보니 상해의 거지는 20(여) 부류로 분류할 수 있었다. ……거지가 구걸하는 기술은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진보하였다.” 총 25가지 구체적 상황을 분류해서 배열해보니 대체로 5가지 큰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증하였다. 예부터 지금까지 중국 거지가 구걸하는 기예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발전했는지 역사의 궤적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여기서 다음과 같이 정리해 이해를 돕고자 한다. (1) 길가에서 자기의 처지나 곤란함을 적어 놓고, 사람들에게 구걸 이런 방식으로 구걸하는 자는 비교적 체통을 강조하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에드워드로, 서장로 일대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서 혼자, 혹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 거지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고개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닥에 앉아있거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고 있기도 하였다. 앞에는 행인에게 도와달라는 비참한 처지가 써진 하얀 종이나 하얀 포가 깔려 있었다. 아예 분필로 직접 바닥에 글을 쓰기도 하였다. 하소연하는 내용은 대동소이하였다. 자신의 출신은 청백하다. 명문의 후예다. 불행하게도 부모가 다 세상을 떠서 타향을 떠돌게 되었다. 인정이 종잇장보다 얇아 옛날 스승과 친구와 친척 모두 낯선 사람처럼 대하며 도움을 주지 않는다. 명문 출신으로 감히 조상을 욕보이지 못한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어쩔 도리가 없어 인인군자에게 간청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를 도와주시라. 이런 내용 이외에도 자기 남편이 병을 얻어 병석에 누우니 자녀가 굶주렸다, 집안의 팔순 노모가 병을 얻어 치료할 방도가 없다 등등도 있다. (2) 차를 쫓아다니며 구걸 차를 쫓아다니며 구걸하는 거지는 조계지역에 많았다. 하루 종일 강북의 소곡을 노래하며 길거리에서 빈둥거렸다. 차림새가 단정한 부녀자가 자동차나 인력거를 타고 가는 것을 보면 차를 바짝 쫓아가며 구걸하였다. 낡은 나사로 된 중절모자나 그냥 양손을 모아 차를 향하여 부인, 아주머니, 아가씨 등등을 외치며 동전 한 푼을 달라고 애걸하였다. 애걸한 결과 한 푼도 얻지 못하면 퉤! 침을 뱉거나 뭐라고 욕지거리를 날린 후 다른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3) 수레 밀며 구걸 이러한 거지는 열서너, 열대여섯 살 아동들이 대부분이었다. 남자 아이가 주를 이루었다. 다리 앞에서 인력거를 기다리다가 인력거가 오면 돌아가면서 다리 어귀까지 밀어주면서 수레에 탄 손님에게 돈을 구걸하였다. 그 어린 거지들은 조직적이었다. 각자 불량배 ‘야숙(爺叔)’을 모시고 있었다. 하루에 이삼백 원을 상납하지 못하면 수레 미는 일조차 할 수 없었다. (4) 고정 구역에서 구걸하는 거지〔정구(頂狗), 정파(釘把)〕 이런 유형의 거지가 가장 많고 간교한 자가 수위를 차지하였다. 이들은 길거리에서 행인에게 돈을 구걸하였다. 낡은 깡통을 들고 행인의 뒤를 쫓아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입으로 끊임없이 외쳤다. “어르신, 부인, 도련님, 아가씨. 자선 좀 베풀어주세요. 목숨 하나 살려주세요. 복 받으시고 장수하세요. 출세하시고 부자 되세요. 동전 한 푼만 주시면 공덕이 한량없습니다. 고난에 처한 사람을 구제해주세요. 미래에 복이 올 겁니다. 어르신, 부인, 자선 좀 베풀어주세요. 다리를 세우고 길을 닦는 것과 같습니다. 자손에게 은덕이 갈 겁니다!” 침이 사방으로 튈 정도로 열변을 토한다. 행인을 붙잡고 놓지 않는 거지도 있다. 빠져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동전 한 닢을 던져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동전을 던져주지 않으면 바짝 쫓아와 끝없이 쫑알댄다. 자신이 반드시 지켜야할 경계선까지 쫓아오게 마련이다. 어떨 때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몸에 지니고 있던 물건을 도둑맞는 경우도 생긴다. 어린 아들을 품에 안고 조금 나이가 있는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무릎 꿇고 구걸하는 여자 거지도 있다. 같이 다니는 조금 나이가 든 아이는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고나서 쫓아다니며 손을 벌려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들도 고정된 지역이 있었다. (5) 거리를 돌아다니는 거지 이런 부류의 거지는 초보자이다. 부끄러움을 잘 타 목소리가 작고 우물쭈물 앞으로 나서지 잘 못한다. 그야말로 풋내기이다. 집 문 앞이나 상점 앞에서 쭈뼛쭈뼛 서있으면 볼썽사납기도 하고 고객이 불편할까봐 동전 몇 푼을 던져준다. (6) 뱀을 가지고 다니는 거지〔완청룡(玩靑龍)〕 이런 부류의 거지는 강북에 많다. 사나운 성격의 소유자가 대부분이다. 팔뚝만한 크기의 뱀을 손에 쥐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강압적으로 동전을 요구한다. 주지 않으면 주변을 맴돌면서 여러 가지로 뱀을 가지고 희롱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 흉한 집의 형상들 1) 막다른 곳에 서 있는 골목 집이나 지반이 원래 흙이 아닌 매립지에 있는 집, 집안에 나무가 지붕보다 높은 경우, 2) 망해서 나간 집으로 기운이 없는 땅, 연못이 마당에 있어서 죽은 기운이 가득한 집, 3) 기존 두 집의 담을 헐어 한 집으로 합친 경우, 4) 형과 동생이 이웃에 나란히 집을 가지고 살 경우, 5) 대문에서 안방이나 부엌문이 보이는 집, 벽에 금이 가거나 물이 스며드는 집, 6) 집이 어둡고 습기가 차며 늘 그늘이 짙은 집 등은 좋지 않은 집의 형상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 흉악범 집의 지세는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은 그곳에 있다. 반대로 집안이 발전하고 잘 되는 명당 집은 대체로 풍수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많은 실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집터의 조건과 주택의 공간 배치 살기 좋은 집이란 무엇보다도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야 하고, 신선한 공기가 잘 통하고 밝은 햇빛이 잘 드는 집이다. 되도록 북쪽과 서쪽이 높고 남쪽과 동쪽이 낮은 듯하고 일단 기울지 않고 평탄하여 안정감 있는 따뜻한 집이면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도로와 너무 떨어지지 않아 교통이 비교적 편리하고 무엇보다도 전망이 좋은 집이 상격(上格)이다. ▲ 흉(凶)한 집과 길(吉)한 집의 형상 ☞ 막다른 곳에 서 있는 골목집이나 지반이 원래 흙이 아닌 매립지에 있는 집, 집안에 나무가 지붕보다 높은 경우, 망해서 나간 집으로 기운이 없는 땅, 연못이 마당에 있어서 죽은 기운이 가득한 집, 기존 두 집의 담을 헐어 한 집으로 합친 경우, 형과 동생이 이웃에 나란히 집을 가지고 살 경우, 대문에서 안방이나 부엌문이 보이는 집, 벽에 금이 가거나 물이 스며드는 집, 집이 어둡고 습기가 차며 늘 그늘이 짙은 집 등은 좋지 않은 집의 형상으로 볼 수 있다. 대부분 흉악범 집의 지세는 풍수학적으로 좋지 않은 곳에 있다. ☞ 반대로 집안이 발전하고 잘 되는 명당 집은 대체로 풍수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많은 실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산수(山水)의 유정(有情)한 도리(道理) ☞ 풍수에서는 땅의 형세에 따라 음양의 생기가 유동한다고 보는데 이는 마치 인체 속에 기혈(氣血)이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로 동일시하여 ‘맥(脈)’이라고 하였다. 땅속의 에너지를 유통하는 지맥은 인체의 혈관과 같고, 용맥(龍脈)인 산의 능선과 자락은 인체의 손과 발에 비유할 수 있다. 풍수에서 '한 치라도 높으면 산이요, 한 치라도 낮으면 물이다'라고 했다. ▲ 팔괘방위에 따른 풍수적 배치 ☞ 팔괘방위에 따른 주택의 공간 배치는 풍수적으로 다양한 방식이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주택의 형태나 위치, 구조, 설계에 의해 주택의 형편에 어울리는 배치가 가장 좋다. 본지에 소개하는 방법은 다만 참고용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풍수에서 이기론적 배치에서 서사택과 동사택을 구분하는 방법도 있고, 괘효를 바탕으로 팔괘 방위로 구분하여 가족구성원의 방을 배치하는 방법도 있으나 천지의 이치는 변화의 이치이자 변통의 이치이니 주택의 현실적인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팔괘(八卦)의 방위에 의하면 북쪽은 욕실이나 식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적합하고, 북동쪽은 부엌이나 식당 또는 현관의 위치로 알맞다. 동쪽은 해가 뜨는 방향으로써 어린이 방이나 현관 또는 침실, 식당이 위치하면 좋고, 동남쪽은 서재, 침실, 주방 또는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방으로 적합하다. 남쪽은 햇빛이 잘 들기 때문에 어린이 방이나 안방으로 적합하고, 남서쪽은 응접실이나 현관 또는 가재도구 실로 알맞다. 서쪽은 침실이나 세면장으로 적합하고, 서북쪽은 부모님 방이나 욕실, 현관, 차고 등으로 적합하나 절대적인 것은 아니고 집이나 방의 구조에 따라 적당하게 배치한다. ▲ 팔괘 방위별 배치(참고용)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신영대는? = 대한풍수연구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역술인협회 공인 역학연구원이다. 중문학 박사와 풍수학자로서 ‘제주의 오름과 풍수’, ‘명리학원리대전’, ‘풍수지리학 원리’, ‘전원시인 도연명 시선', ‘흰 구름 벗을 삼아 읽어보는 당시선’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한라산 총서'의 구비전승·지명·풍수 분야와 ‘세계자연유산지구 마을일지 보고서’ 중 풍수 분야 공동 집필자로도 참여한 바 있다. 또 제주도 각 마을 '향토지' 풍수 부문에 공동 집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제주관광대 관광중국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근대 이후에 대다수 거지는 모두 불량배, 무뢰한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사기 칠 수 있으면 사기 치고 강탈할 수 있으면 강탈하였고 공갈쳐서 갈취하였다. 훔치고 강탈하고 협잡하고 음란하고 상해를 가했다. 끝내 생명까지 앗아갔다. 다섯 가지 죄악을 모두 갖추었고 못된 짓이란 못된 짓은 다했다. 그런데 인정할 것은 인정하여야 할 것이 있다. 상당한 거지들은 여전히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여러 가지 자취를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수단으로 술수를 부리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강호에서 기예를 팔면서 구걸하거나 변장해 구걸하는 방식이다. 청대 말기 민국 초기에 강호에서 거지가 구걸하는 수단을 반영한 여러 가지 은어를 살펴보면 그 진면목을 낱낱이 알 수 있다. 읍(揖)하며 구걸 : 읍하며 인사하는 것을 주권자(丢圈子), 동종업종에 같이 있는 사람을 주권당(丢圈黨), 사람의 뒤를 뒤쫓아 따르며 끝까지 동냥을 멈추지 않는 것을 간구진(赶狗陣), 수레 뒤를 쫓아 뒤따르며 구걸하는 것을 간사각(赶四脚), 노인을 파로(吧老), 노부인을 자파로(雌吧老), 젊은 부인을 양모(洋毛), 어린 아이를 구자(狗子), 구걸해 얻을 돈을 담은 종이 봉지를 금두(金頭)라고 불렀다. 사연을 적어서 가지고 다니며 구걸 : 사람에게 동정을 얻을 수 있는 사정을 적은 전단지를 괘황방(掛皇榜), 전단지를 가지고 구걸하는 것을 마가당(磨街黨), 손에 전단지를 들고 있는 것을 제요패(提搖牌), 전단지를 행인에게 건네 읽도록 하는 것을 투첩자(投帖子), 전단지에 써진 내용을 간곡하게 말하는 것을 배신주(背神咒), 적은 사연을 가승(家乘), 사정을 담벼락이나 벽 모퉁이의 땅에 쓴 것을 도분자(塗粉子), 땅에 엎드리는 것을 마가석(磨街石)이라 불렀다. 신의 이름을 빙자하며 구걸 : 신령이 보우한다며 거짓말하며 기부금을 모집하는 것을 동자당(童子黨), 주민에게 종이 인형(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태움)을 건네면서 구걸하는 것을 송자(送子), 종이 인형을 천사(天賜), 한 사람이 혼자서 가는 것을 냉송(冷送), 한패를 이루어 쟁과 북을 치면서 가는 것을 향송(響送), 구걸하는 것을 도황(挑黃), 주민을 장자(樁子), 보시하는 사람을 장두(樁頭)라고 불렀다. 춘련과 같은 글씨를 건네면서 구걸 : 글씨를 건네면서 구걸하는 것을 표엽자(飄葉子), 대련을 건네는 것을 표용문(飄龍門), 춘련을 표의청(飄宜靑), 붓을 쇄화(灑花), 종이를 엽자(葉子),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 글씨를 건네는 것을 대석우(對石牛),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사람에게 글씨를 건네는 것을 동파(同派), 상대방이 건네는 글씨를 받지 않는 것을 타퇴고(打退敲)라 불렀다. 울며불며 하소연하면서 구걸 : 울며불며 구걸하는 것을 소원당(訴冤黨), 땅 위에 애절한 사연을 적는 것을 고지장(告地藏), 애절한 사정을 쓴 종이를 고책(苦冊), 우는 것을 쌍구견(雙口犬), 친척에게 몸을 의탁하려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고 거짓말 하는 것을 탈축두(脫軸頭), 남편이 죽었다거나 아내가 죽었다며 거짓말하는 것을 타단자(打單子), 병을 앓고 있는 듯 땅에 엎드려 울며불며 하소연하는 것을 노마고(老磨苦), 어린 아이가 부모를 따라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것을 소마고(小磨苦)라 불렀다. 추천장이나 소개장을 들고 구걸 : 자신의 성명이나 직위를 쓴 소개장을 상판(相板), 그 소개장이나 추천장을 들고 구걸하는 것을 고상(古相), 유배범을 탄래판(汆來板), 호송원이라 거짓말하며 구걸하는 자를 무상부(武相夫), 남의 집을 방문해 구걸하는 자를 배객(拜客), 문인아사라 거짓말하며 구걸하는 자를 문상부(文相夫), 글자 수수께끼로 구걸하는 자를 차첨경(扯籤經), 재난을 피하려고 타향을 전전한다고 거짓말하며 구걸하는 자를 심반자(尋伴子), 강압적으로 떼쓰며 동냥을 강요하는 자를 쟁파자(掙把滋)라고 불렀다. 상복을 입고 구걸 : 부모가 돌아가서 구걸하러 다닌다고 거짓말하며 구걸하는 자를 상망당(喪亡黨), 부친이 죽은 것을 실상(失上), 모친이 죽은 것을 실하(失下), 한패거리를 타변고(打邊鼓), 시신을 닮을 관이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등외투(等外套), 입관하려 하여도 수의가 없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등포신(等包身), 출관하지 못한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등수두(等水頭), 돈을 구걸하는 것을 예수두(掜水頭), 타인에게 간파당한 수법을 주조(走潮), 도망가는 것을 퇴조(退朝)라고 불렀다. 이러한 부류를 보면 불량배, 무뢰한의 본질이 잘 나타나 있다. 위장을 벗겨내면 속임수로 이익을 갈취하고 많은 사람을 모아 떼를 지어 강탈하는 행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조직폭력배와 같은 불량배, 무뢰한인 거지 단체의 행위도 별반 다름이 없었다. 구걸한다는 명목으로 몰래 정탐한 후 기회를 틈타 강탈하고 도둑질을 일삼았다. 여자 거지를 미끼로 한 이른바 ‘집비둘기 풀어놓기(放白鴿)’, ‘고기낚시(釣魚)’ 등 악랄한 행위를 자행하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물론 심한 경우도 있었다. 본래 장애가 아니면서 동냥을 쉽게 하려고 화장과 같은 수단을 동원해 장애인인양 구걸하고 다니는 거지가 생겨났다. 심지어 화장과 같은 방법도 쓰지 않고 직접 장애인인 척, 병자인 척 구걸하기도 하였다. 요 근래 중국 도시에 있었던 일이다. 길거리에 한 중년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눈의 흰자위를 까뒤집고 적홍색에 가까운 얼굴색에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있었다. 한 손은 꽉 쥐고 다른 한 쪽은 방금 칼을 맞은 닭발처럼 흔들리고 몸은 규칙적으로 떨어댔다. 분명한 간질처럼 보였다. 죽을병은 아니었지만 대단히 고통스럽고 완치도 어려운 병이었다. 남자 옆에는 오륙 세가량 되는 남자아이가 울면서 앉아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만들었다. 어린 아이의 등에는 빽빽이 글자가 써진 하얀 천이 바느질되어 있었다. 그 두 부자의 애처롭고도 불행한 사연이 쓰여 있었다. “마음씨 좋으신 시민 여러분,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 아주머니. 저는 산서성 A시 B촌 출신입니다. 고향에 몇 년 동안 기근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유괴를 당했고 노인들은 울화통이 터져 돌아가셨습니다. 죽으려 해도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아내를 찾아 나섰습니다. 도와주십시오. 가련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다음 생에서는 소나 말이 되어서 보답하겠습니다. 저는 간질이 있습니다. 병이 발병하면 마음씨 좋으신 분께서 어린 아들을 돌봐주십시오. 선행하고 덕을 쌓으시면 큰 복이 주어질 것이요 자손대대로 행복하게 되실 겁니다.” 구구절절 비통함이 묻어난다. 약자를 동정하는 것은 인류의 공통적인 심리다. 순식간에 어린 아이가 들고 있는 통에 동전이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아니 지폐도 넣어줄 것이다. 눈치 채셨을 테지만, 그 중년 남자는 하루에 두 번 그렇게 간질을 실연하며 4년을 보낸 전문 사기꾼이었다. 많은 돈을 벌어 기와집을 가진 부자였다. 상(尙) 씨로 ‘이뢰두(二賴頭)’라는 별명을 가진 내몽고 흥하현 A향 B촌의 먹는 것만 밝히고 일은 싫어하는 홀아비였다. 물론 간질도 거짓이었다. 아들이라는 어린 아이도 주어온 애였다. 어린 아이 이외에 구걸하는 문장, 낡은 바가지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간질병을 실연하기 전에 입에 소량의 가루비누를 물면 되었다. 거품은 자연히 생길 터였다. 유괴당한 아내도 없었다. 애욕을 배설하려면 그저 아무 때나 정부를 찾아가면 되었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일도 생겨났다. 건강한 사람이 신체장애자를 구걸하는 간판이나 도구로 사용하였다. 심양시 수용소에 노인 한 명과 장년 한 명이 수용되었다. 장년은 43세의 유곤(劉混)으로 산동 등현(騰縣) 사람이고 노인은 유파(劉巴)로 유혼의 둘째 숙부였다. 둘째 숙부는 1미터 키의 기형 장애인이었다. 처와 자식이 있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던 유혼은 둘째 숙부가 구걸하는 데에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둘이 힘을 합쳐 사기극을 벌이기 시작하였다. 조카는 유모차에 장애인 숙부를 태우고는 밀면서 남경, 천진, 심양을 돌아다녔다. 유모차에는 “관대히 봐주십시오.”라고 쓴 하얀 깃발을 세우고서는 돌아다니며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애상곡을 불러댔다. 불쌍히 여기는 눈과 탄식 중에 길에서 만난 노동자, 간부, 군인, 초등학생 모두 돈을 꺼냈다. 1원, 10원, 100원, 그리고 지폐, 계속해서 유모차에 앉아 있는 노인 손에 쥐어주었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장년은 연신 고개 숙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가련한 마음을 내자 얼마 되지도 않아 몇 천 만 원이 모였다. 인간의 선량한 천성이 그렇게 거지들의 왜곡된 심령에 반복적으로 더렵혀졌다. 새로운 술수를 부리는 졸렬한 원시적 속임수에 인간의 동정심은 모독당했다. 그런데 그런 속임수는 결코 현재에 ‘새로 생긴 수단’이 아니었다. 그런 술수는 명·청대에 이미 존재하였다. 거지들의 은어 속에 ‘수수께끼의 답’이 숨겨져 있다. 똑똑히 셀 수 있는 범죄의 증거다. 예를 들어 보자. 피가(披街)는 반신불수의 거지를 가리키고 지황우(地黃牛)는 땅을 굴러다니는 거지다. 추양각(推羊角)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구걸하는 것이고 답정승(踏定勝)은 발 대신에 손으로 땅을 짚고 다니는 거지다. 동과(東瓜)는 팔다리가 없는 거지를 말한다. 금전표(金錢豹)는 온몸이 상처투성인 거지이고 괴선(拐仙)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거지를 가리킨다. 취보(聚寶)는 구걸한 돈을 넣는 바구니이고 영지장(迎地藏)은 구걸하는 것을 말한다. 목후(沐猴)는 어려움에 처한 고상한 문인처럼 가장한 거지이고 헌고육(獻苦肉)은 손과 발에 종기나 상처가 나 있는 것처럼 분장한 거지를 말한다. 내곤(來滾)은 다리 장애인으로 걷지 못하는 거지를, 과봉조자(過鋒照子)는 맹인으로 가장한 거지를 말한다. 화지(畵指)는 벙어리 흉내 내는 거지를, 묘황(描黃)은 병색이 짙은 척 가장한 거지를, 묘용(描容)은 형태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모두 흔히 사용되고 자주 효과를 보는 사기 수법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 시대는 과거처럼 “~이란 무엇인가?”라는 개념 규정이 어렵다. 그만큼 산업사회·테크놀로지 혁명으로 인공지능(AI) 사회가 되면서 한 마디로 오늘의 사회를 정의하기가 어렵고, 매우 다의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물론 시대의 성과는 지난 시대의 성과들이 중첩돼 발전하며, 결론은 늘 과정 속으로 전화(轉化)된다. 과정은 하나의 결론으로 매듭 지어지고, 그 결과 또한 다시 하나의 과정이 된다. 그러므로 과정은 더 나은 하나의 결과라는 변증법적인 관계로 나타난다. 우리의 역사는 물질 도구와 생명 인간이, 기계와 생명체의 콜라보가 역사 과정에서 중심적인 구조였으나, 물질과 생명, 도구와 개념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해서 사고한 나머지 오늘의 사회적 결과에 이른 것을 모른다. 우리 시대는 지적으로 팽창된 시대다. 수렵사회로부터 인공지능 시대까지, 자연물 교환에서 코인, 익명자 전자 교환까지, 인간의 자연적 지능에서 생성형 인공지능까지 그야말로 여러 번의 획기적인 혁명을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선발 자본주의와 후발 자본주의 간의 차이는 크고, 민주주의와 파시즘이 같은 울타리에 살고 있어, 늘 감시사회이자 통제사회의 비상구가 열려 있다. 대량산업의 증산은 산업폐기물의 양산으로 이어지고, 반짝이는 것들은 다시 빛이 죽어서 녹슨 채 버려진다. 소비사회의 궁극적 목표는 쉬지 않고 생산하는 것이며, 그럴수록 버려진 것 위로 새로운 제조품이 덮을 뿐, 자원고갈과 환경 파괴의 길만 넓어지고 있다. 불확정한 시대란 기술 진보의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 전망을 세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인류라는 이름이 갈 길은 필요하나 디스토피아 지구가 기다리고 있어 살 곳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재앙의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16세기에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래 우리는 제한 없는 탄소배출로 인해 우리 지구의 회생 능력은 잃어버리고 있다. 쓰고 버리는 사회라서 대개의 상품이 일회용으로 끝나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가 버린 쓰레기 환경이, 그 폐기물들이,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버린 물건으로부터 또 자신이 새로 만든 도구(AGI: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에게서 양방향으로 공격받을 처지에 있다. 산업사회의 등장은 예술에 빠른 영향을 미쳤다. 조각에선 폐품 조각(Junk Sculpture)이라는 개념이 등장하여 일상에서 ‘발견된 오브제‘라는 형식이 되었다. 산업사회의 시대정신이 3차원적 콜라주라고 할 수 있는 아상블라주(Assembiage) 양식을 탄생시켰다. 아상블라주라는 조각의 개념은 산업 제품이었던 폐품을 이용하여 자르고 두드리고 뚫거나 이어 붙여 재배열하거나 용접으로 접합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산업사회의 기성 제품인 레디메이드(ready-made)는 자체가 개념적인 작품이 되기도 하지만 전통적 조각 방법인 흙을 붙이고, 돌이나 나무를 깎는 조각과 달리 일상의 도구가 조각으로 취급된다. 또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모빌이나 키네틱 아트처럼 바람이나 자체 동력을 이용하여 움직이는 조각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이런 작업은 20세기 초 산업사회에 새로 등장한 양식들로써 오늘날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여전히 후기 산업사회에서는 사물과 인공지능을 포함한 인간과의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실 인류의 문명 자체가 사물 도구와 인간의 콜라보의 길을 걸어온 것을 재확인할 수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 용맥(龍脈)과 용혈(龍穴) 앞서 언급했듯이 용맥은 주된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기의 지하 통로라 할 수 있는 산의 능선을 가리킨다. 용혈은 기(氣)가 흘러가는 산능선인 용맥을 따라 흘러온 기운이 뭉친 터를 의미한다. 그림에서 보듯이 용맥을 타고 흐르는 기가 최종 모이는 요긴한 곳이 바로 용혈이다. 용혈은 명당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산천의 기운이 응집된 최적의 공간을 의미한다. ▲ 용세(龍勢) 용세는 풍수에서 기운의 강약을 나타내는 산의 세력이나 산의 크기, 산의 생김새, 산의 미추, 대소, 형태의 좋고 나쁨을 의미하는 풍수적 용어이며, 풍수적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중요한 조건에 해당한다, 산과 물의 외적으로 나타난 형태나 흐름을 관찰하여 산천에 내재된 생기(기)의 흐름과 기맥(氣脈)의 근간을 파악하고, 산의 골격과 모양, 생김새 등을 가늠하여 용맥의 기운과 강유(剛柔)를 종합적으로 판별하는 형기론(形氣論) 풍수에서 매우 중시되는 부분이다. ▲기운이 잘 모이는 주택 선정의 조건 - 자연적인 위치와 기후 ☞ 우리가 사는 집은 마음과 몸을 휴식할 수 있는 최상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에 풍수적인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우선 햇볕과 달빛, 별빛이 늘 다정한 모습으로 환히 비치는 곳이 좋다. 바람의 유통이 적당하고 차고 더운 기운이 편중되지 않는 곳은 질병이나 사고가 없다. 너무 산이 높거나 산속에 첩첩이 둘러싸여서 하늘이 조금만 보이는 곳은 살 곳으로 적당하지 않다. 사람은 태양의 밝은 기운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들이 평평하고 유연하며 넓을수록 좋은 터가 되고 바람의 유통이 적당하고 기후가 편중되지 않으면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 주택의 위치로 부적합한 곳 ☞ 집이 그늘지고 습기가 많거나 냉(冷)한 기운이 모여 있으면 좋지 않다. 밝은 기운이 적고 습기를 동반한 음침한 기운이 들어오면 인체의 양기를 빼앗고 혹은 집안에 잡귀가 모여들기도 한다. 지대가 너무 높거나 너무 낮은 곳은 좋지 않다. 이러한 곳은 산안개와 습한 곳에서 나오는 일종의 독 기운인 장기(瘴氣)가 은연중 침입하여 원인 모르게 사람이 병들기 쉽다. 특히 큰 하천이 직선으로 흐르는 옆에는 땅의 기운을 빼앗아 가기 때문에 좋지 않고, 암석(巖石)이나 이상하게 생긴 바위가 보이거나 골짜기 바람이 차갑게 불어오는 곳은 좋지 않다. ☞ 차량이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큰 도로변이나 교차로는 주택의 위치로 부적합하다. 차량 및 행인들의 소음과 먼지로 인해 좋은 기운이 순환하지 못하여 심리적인 불안이나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 집 안에 화초나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하고 정원수가 잘 자라지 못하는 곳은 땅에 기운이 없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곳에 살면 건강에 이상이 생기고 매사에 장애가 따르고 발전이 늦기 때문에 풍수적인 방법으로 여러 각도에서 보완해야 좋아질 수 있다. 또 공장이나 큰 건물, 관청 등 집보다 큰 빌딩이 있으면 집터의 기운을 누르기 때문에 좋지 않고, 집터가 너무 경사가 지거나 절벽이나 낭떠러지 부근은 피하는 것이 좋다. ☞ 매립지나 납골 화장터, 흙의 빛깔이 어둡고 습한 곳, 집 앞이 높고 뒤가 낮은 곳, 도로가 대문을 향해 나 있는 집이나 가옥이 있던 곳이 도살장이나 공동 창고로 이용되었던 곳, 집이 큰 산에 가로막혀 있는 곳도 좋지 않다. ▲ 집, 사무실, 영업장 주변의 좋지 않은 지형지물 ☞ 한 눈으로 보아도 험상한 돌과 암석으로 이루어진 추악한 봉우리가 있든지 혹은 옆으로 불안하게 비뚤어진 봉우리가 있거나 혹은 금방이라도 무너지고 떨어지는 듯한 형상이 있거나 혹은 도둑처럼 살짝 엿보고 넘겨보는 형상이거나, 이상한 암석과 기괴하게 생긴 바위가 산의 위쪽 또는 아래쪽에 보이거나, 골짜기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집이 있거나 하면 좋은 기운이 모이지 않고 흩어지므로 사람이 살기에 좋지 않다. ☞ 지세가 포근하고 단정한 곳은 무언인지 모르게 마음이 자연히 편안해지고 심리적인 흡족함을 느끼게 된다. 집 주변의 산세가 고르지 못하고 둔탁하며 형상이 수려하지 못하고 울퉁불퉁하고 보기 싫은 모양을 하고 있으면 기운이 잘 모이지 않는 곳이다. 사람은 여러 환경에 의해 성격이나 심성이 영향을 받기 때문에 특히 자연적인 조건을 무시할 수 없다. “큰 바위 얼굴”의 이야기처럼 주변의 지리적 형세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은 매우 큰 것이다. 예를 들어, 산이 수려하고 높으며 물이 맑고 깊으면 인심이 유연하여 너그럽고 도량이 큰 인물이 나오고, 반대로 산과 물이 경쾌하지 못하고 좁고 협착하여 조화롭지 못하면 인물됨이 떨어져 졸렬하여 소견이 좁은 인물이 나고, 산의 지세가 온전치 못하고 가파르고 험하면 마음이 험상궂고 냉혹하고 표독한 자가 나온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신영대는? = 대한풍수연구학회 편집위원장, 한국역술인협회 공인 역학연구원이다. 중문학 박사와 풍수학자로서 ‘제주의 오름과 풍수’, ‘명리학원리대전’, ‘풍수지리학 원리’, ‘전원시인 도연명 시선', ‘흰 구름 벗을 삼아 읽어보는 당시선’ 등 다수의 저서를 냈다. '한라산 총서'의 구비전승·지명·풍수 분야와 ‘세계자연유산지구 마을일지 보고서’ 중 풍수 분야 공동 집필자로도 참여한 바 있다. 또 제주도 각 마을 '향토지' 풍수 부문에 공동 집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제주관광대 관광중국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신체에 장애가 있어 일반인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는 까닭에 세상 사람들에게 가련한 마음을 내게 하여 동정을 사고 동냥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물론 그중에는 ‘채생절할(采生折割)’의 인위적인 불운을 당하여 불구가 된 거지도 포함된다. 모양을 바꾸는 수단으로 위장한 거지까지도 포함한다. 만약 첫 번째 경우는 운명의 장난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지경에 빠진 것이고 두 번째 경우는 처참한 피해자가 된 처지라고 얘기한다면 세 번째는 사기 수법으로 세상 사람들의 자비심을 욕되게 만드는 불량배요 무뢰한이라고 하겠다. 두 번째 경우는 이전에 논했던 바라 여기에서는 첫 번째와 세 번째 경우의 신체장애 거지를 보자. 먼저 본래 신체장애를 가진 거지를 보자. 당대 단성식(段成式)의 『유양잡조전집(酉陽雜俎前集)』 5권 「궤습(詭習)」의 기록이다. 대종(代宗) 이예(李豫) 대력(大曆) 연간(776~779)에 동도(東都, 낙양) 천진교(天津橋, 낙양 옛 성 서남쪽에 있었다)에 두 팔이 없는 거지가 있었다. 오른발로 붓을 집어 글을 써주면서 돈을 받아 생활하고 있었다. 글씨를 쓸 때마다 먼저 서너 번 붓을 하늘로 1척이나 높게 띄웠는데도 한 번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았다. 그가 쓴 글자는 정자인 해서였다. 일반인이 손으로 쓴 글씨보다도 뛰어났다. 분명 인정해야 하리라. 이 신체장애를 가진 거지는 가련하기는 하지만 존경해야 마땅하다. 두 팔이 없어 발로 글씨를 쓰는 연습을 하고 뛰어나게 써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한다는데 어느 누가 동정하지 않을 것이며 감탄하고 존경하지 않겠는가. 송대 서현(徐鉉)의 『계신록(稽神錄)』에 신체장애인 여자 거지 이야기가 수록돼 있다. 건업(建業, 남경) 지역의 부녀자로 등에 커다란 혹이 자라났다. 안쪽에는 꽃봉오리 같은 것이 생겨나서 길을 걸을 때면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일 년 내내 시내를 돌아다니며 구걸하였다. 본인 자술에 따르면 본래 시골 아낙이었다고 했다. 동서 집안에서 각각 누에를 길렀는데 본인이 매해마다 손실을 보게 되자 형수가 기르는 누에를 몰래 불태워버렸다고 했다. 그때부터 등에 종기가 생겨나더니 결국 커다란 혹으로 변했다고 했다. 평상시에는 옷으로 혹을 가리고 다녔다. 답답해 노출시키면 큰 주머니를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인과응보 형태의 전기적인 색채가 짙다. 그런데 그런 질병을 가진 여인이 노동력을 상실하고 보기가 흉하여, 상응하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 못하니 어찌 가련타 하지 않겠는가. 맹인이 구걸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사례가 적지 않다. 전해오는 바는 이렇다. 옛날에 신시(新市)라는 지방이 있었다. 제(齊) 씨 성을 가진 맹인이 시내에서 구걸하다가 거리에서 부주의하여 그의 길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으면 욕을 쏟아 부었다. “당신도 눈이 없는 게요!” 맹인인 것을 본 행인들은 문제 삼지 않았다. 나중에 양(梁) 씨 성을 가진 맹인도 그곳에 구걸하러 갔다. 성격이 더 포악하였다. 어느 날 공교롭게도 제 씨와 양 씨 거지가 구걸하다가 길에서 마주쳤다. 양 씨가 욕을 퍼부었다. “당신도 눈이 없는 게요!” 서로 상대방이 맹인임을 알지 못한 터라 욕설이 오고갔다. 그 모습은 본 행인들은 웃을 수밖에. 물론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옛날에는 맹인 거지가 흔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청대 말기에 광동에는 나병이 유행하였다. 광주 성 밖에 나병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의료원을 세워 전염이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 나병 환자는 눈썹이 빠지고 얼굴에 악성 종기가 생겼으며 수족이 오그라들어 사람들은 공포감을 가졌다. 나병 환자들은 가끔 의료원을 벗어나 시내에서 구걸하기도 했는데 사람들을 그들을 보면 돈을 던져주고 자리를 피했다. 그래서 나병 환자들은 다른 거지보다도 구걸하기가 쉬웠다. 나병 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전염될까 걱정 되어서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기에 그랬다. 신체장애인은 본인이 무척 고통스러웠기에 거지로 전락할 경우가 많았다. 각별히 어려웠기에 사람들의 연민과 동정을 구할 수 있었다. 능력이 닿는 데까지 구제를 하려 했음도 당연하다. 그런 거지들은 신체적 장애가 구걸하면서 생활할 수 있는 자본이 되었다. 그런 자립, 자중, 자애를 모르는 신체장애 거지들은 왕왕 화가 도리어 복이 되어 사회와 타인에게 의존하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밑천이 되었다. 세상 사람들의 동정과 보살핌의 대상이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런 기예를 실연하며 구걸하는 방식은 민간 예술 측면에서 보면 가장 간단한 잡기 성질, 즉 소형 잡기인 ‘수류성(水流星)’이다. 간단하고 쉽게 배울 수 있기에 이 잡기로 구걸하는 거지는 아동이 대부분이다. 청 왕조 최후 1년, 1911년에 제남(濟南) 밖에서 어린 아이가 이런 방식으로 길가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구걸하고 있었다. 그 어린아이는 물이 가득 든 그릇 하나를 손에 들고 나왔다. 그릇을 줄로 묶어 미간에 연결시킨 후 손으로 공중에서 흔들다가 손을 놓자 머리 위에서 흔들거리며 빠른 속도로 빙빙 회전하였다. 그릇 속에 담긴 물은 쏟아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알려진 바로는 그 소년은 왕 씨로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나 홀론 유랑하며 구걸했다고 한다. 근대나 현대에 이르러 우리는 여전히 그릇 두 개를 가지고 재빠르고 날쌘 동작으로 작은 구슬을 옮기는 방식으로 구걸하는 어린 거지들을 볼 수 있다. 이 또한 같은 부류다. 성인 중에는 ‘화류성(火流星)’ 잡기를 실연하면서 구걸하는 거지도 있다. 『북경민간생활채도』 제90 「사화류성도(耍火流星圖)」의 제사는 이렇다. “이것은 중국 화류성이다. 사람이 줄 하나를 가지고 양쪽 끝에 철사 망을 매달고 속에 숯을 넣어 불은 붙인 후 돌리는 것을 화류성이라고 한다. 그릇에 물을 담아 돌리는 것은 수류성이라고 한다. 손으로 돌리든지 입에 물고 돌리든지 땅에 누워 돌린다. ‘용 둘이 구슬을 가지고 논다(二龍戱珠)’, ‘질풍처럼 바다를 건너다(飄洋過海)’, ‘배검(背劍, 왼손으로 검의 호수를 잡고 팔꿈치에 붙여 세워 검을 감춤)’, ‘편마(騙馬, 말에서 내렸다가 안장을 손으로 잡고 다시 오름)’과 같은 이름이 있다. 거리에서 이를 실연하면서 돈을 번다.” 이외에도 마술, 무술, 항아리 곡예, 패왕편(霸王鞭)1), 석쇄(石鎖) 유희 등과 요지경, 취 재주부리기가 있다. 기예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거지 유형은 천태만상이요 별의별 것이 다 있었다. 인력 제공 유형(노무형, 勞務型) 이른바 ‘노무형(인력 제공 유형)’의 거지는 일반인이 마다하는 싼 값, 비천하면서 간단한 노동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동냥하는 거지를 가리킨다. 청대 고록(高祿)의 『청가록(淸嘉錄)』 12권 「十二月·叫火燭」 기록은 이렇다. “세밑 기나긴 밤, 딱따기를 치면서 길을 따라 ‘인화물 조심, 경계’를 큰소리로 외치는 자를 ‘규화촉(叫火燭)’이라고 한다. 채철옹(蔡鐵翁)은 시로 읊었다. ‘해질 무렵에 누가 불조심을 외치는가, 거지가 길을 따라 대나무 딱따기를 치네.’ 지금 민간에 야경을 도는 것과 같다.” 거지는 대부분 혼자서 도처를 유랑하며 구걸하면서 외롭고도 추운 밤을 보낸다. 더욱이 연말연시의 추운 밤에는 일반인들은 온가족이 모이기에 야경을 도는 ‘규화촉’의 일은 거지와 같은 오갈 데 없는 사람을 고용한다. 거지도 그런 기회에 평소보다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에 마다하지 않는다. 청대 말기 민국 초기에, 포두(包頭) 양산(梁山) 사인구(死人溝)의 거지는 시신을 입관하고 야경을 도는 일을 맡았다. 노동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노무형’에 속한다. 물론 수입은 모두 거지 두목에게 바쳤다. 북경의 강방(杠房)은 혼례나 장례가 있을 때 많은 거지들이 임시로 고용되어 일을 도왔다. 대도시에서 구걸하는 거지는 차문을 열어주거나 짐을 날라다주거나 오르막을 오르고 다리를 건너는 수레꾼을 도와주면서 행하를 받아 생활하기도 했다. 이 모두 ‘노무형’에 속하는 거지다.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노동을 제공하면서 구걸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다. 경쟁이 심할 때가 많았다. 노동을 제공하는 구걸 방식은 대부분 임시성에 지나지 않았다. 무작위일 경우가 많았다. 거지 항방(行幇) 구성원 중에서 두목에서 선택되어 파견되거나 다른 사명을 받은 자들을 제외하면 노동을 제공하면서 구걸하는 거지는 대부분 비교적 안분지족하는 자들이었다. 막돼먹은 불량배하고는 달랐다. 현대 요 몇 년 사이에 대도시의 길거리에서 신문이나 잡지를 파는 남녀 맹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이 부르는 가격은 정가보다도 비싸지만 가련한 마음에 사람들은 사준다. 정가보다 비싸다고는 하지만 몇 푼을 더 벌기도 어렵고 벌었다 한들 소소한 액수에 불과하다. 이런 부류의 사람도 전문적인 거지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임시성의 노무형 거지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경제적인 형편이 곤란한 맹인에게는 생활에 다소나마 보탬이 되는 이러한 노동을 제공하면서 구걸하는 행위는 그나마 떳떳하고 마음이 편안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돈을 벌기는 그리 쉽지 않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패왕편(霸王鞭)은 원래 중국 민간 무용에 쓰이는 채색된 짧은 곤봉으로 양 끝에 구멍을 뚫고 구리 조각을 끼워 소리 나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 도구를 이용해 실연하는 중국의 민간 무용의 하나를 가리키기도 한다. 화곤무(花棍舞), 타련상(打連湘)이라고도 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대만 정치대학교 중문학과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자로 『선총원(沈從文) 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 『재미있는 한자풀이』, 『수달피 모자를 쓴 친구(선총원 단편선집)』, 『음식에 담겨있는 한중교류사』, 『십삼 왕조의 고도 낙양 고성 순례』, 『발자취-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는 여정』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