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 해외에서 제주도 부동산에 대한 투기가 많았다. 최근의 일이다. 이에 제주당국에서는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이 아닌 자가 농지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이행강제금, 처분 명령 등의 처분을 하는 등 적지 않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이란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원칙을 말한다. 국회는 농지의 소유ㆍ이용 및 보전 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여 농업인의 경영 안정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바탕으로 농업 경쟁력 강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 및 국토 환경 보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한 농지법을 입법화 하였다. 위 법에 의하면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위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농지를 소유하는 경우 등 매우 제한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농지법 제6조) 또한 농지를 전용(농지 외에 다른 부지로 전용하는 것을 말함)하는 경우에는 위 법 34조의 전용 허가를 받거나 적어도 일시사용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제주도 내의 농지의 가격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비싼 가격에 농지를 팔기 위하여 농사를 짓지 아니한 자에게 농지를 매도하는 등 농지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농지 가격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싼 가격에 매수하여 추후 비싼 가격에 매도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지 아니한 자가 농지를 매수하는 등의 위법행위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위법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 농지법에서는 위반자에게 농지 처분 명령을 이행하도록 강제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감정평가법인 등이 감정평가한 감정가격 또는 개별공시지가 중 더 높은 가액의 25/10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상담하러 온 의뢰인들을 살펴보면 농지의 가액에 비례하여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수억, 수천 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받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물론 재산을 형성하거나 재산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대상이 농지가 됨에 있어서는 이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지는 재산증식의 수단이 될 수 없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백신을 맞지 않더라도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았다. 동료나 가족이 독감에 걸려 콜록거리는 그 옆에서 같이 생활해도 모두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도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사람들 간의 면역력 차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면역이란 내 것(자기)과 남(비자기)을 구별하는 것으로 특히 위험한 남들을 골라내서 제거하는 능력이다. 내 몸을 구성하거나 내 몸이 만들어 내는 것들은 우리 편으로 인식해서 공격하지 않고,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이 내 것이 아닌 위험한 것들은 적으로 인식해서 제거한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크게 선천성 면역과 적응성(후천성) 면역 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 선천성 면역 체계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며 유해한 것으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고 위협이 되는 것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피부와 점막은 1차적으로 유해한 것들을 차단하고, 대식세포(세균 및 암세포와 같은 이물질을 잡아먹는 세포)는 외부의 침입자나 적을 먹어 치우는 역할을 한다. NK 세포로 알려진 자연살해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공격하여 파괴한다. 암세포는 원래 내 것이지만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적으로 인식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도 원래는 내 것이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순간 그 안에서 바이러스가 증식되어 다른 정상 세포를 연속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적으로 인식하여 잡아먹는 것이다. 선천성 면역 체계가 잘 작동하면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을 잡아먹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도 파괴하니 병에 걸리지 않겠지라고 여길 수 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독감에 걸린 사람 옆에서 생활하더라도 바이러스 노출시간, 노출량 및 개인 간의 면역력의 차이가 감염 여부를 좌우한다. 같은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병원체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몸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투하면 면역체계가 이것들을 차례로 제거하므로 아무리 많이 들어오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증식을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면역 체계가 30분에 500마리의 세균을 제거할 수 있고 세균이 두배로 늘어나는 증식 시간이 30분이라고 가정하면, 세균 500마리가 침투했을 때는 30분만에 제거가 가능하다. 그런데 1000마리가 침투했다면 30분 동안 500마리는 제거되지만, 나머지 500마리는 두배로 증식하여 도로 1000마리가 되기 때문에 세균의 수는 줄지 않고 그대로 일 것이다. 세균에 오래 노출되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온다면 우리 면역 체계가 제거하는 속도보다 증식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세균의 수는 계속 늘어나서 감염이 점점 더 퍼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열을 내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를 늦춤으로써 우리 면역 체계가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는 우리 면역 체계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외부에서 새로운 무기인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투입하기 때문에 굳이 우리 몸도 괴로운 열을 낼 필요가 없어 해열제로 열을 내리게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방어하도록 선천성 면역 체계를 갖추는데 많은 투자를 하면 병에 걸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수히 많은 종류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평생 만나볼 일도 없는데 이것에 대한 모든 무기를 만들어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영양소를 섭취하면 면역 체계의 유지뿐만 아니라 인체의 성장×유지 및 에너지와 생체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데도 사용하기 때문에 면역 체계에만 과도한 투자를 할 수는 없다. 일상의 예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인구는 약 5000만명이고 그 중 군인은 약 50만명인데, 만일 군인을 1000만명으로 늘리면 웬만한 적이 쳐들어 오더라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인, 노인 및 미성년자를 빼고 나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가 약 2000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나머지 3000만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언제 얼마나 많은 적이 쳐들어 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인만 잔뜩 늘려놓을 수 없듯이 인체도 선천성 면역에만 과도한 투자를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적응성(후천성) 면역 체계이다. 적응성 면역 체계는 우리 몸에 군인 수는 그대로 유지하되 침입하는 적에 꼭 맞는 무기를 만들어 대응하는 것이다. 침투한 적의 특징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항체를 만들어 적을 제거하거나, 적에게 감염된 세포를 파괴한다. 적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선천성 면역 체계보다는 느리게 반응하지만 특정된 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병원체에 따라 기억 시간에 차이는 있지만 한번 걸렸던 병에는 다시 감염되지 않도록 기억을 한다. 예를 들어 수두에 한번 걸리고 나면 수두 바이러스를 적으로 인식하는 항체를 보유하게 되므로 면역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다시 수두에 걸리지 않는다. 다만 한번 세포로 숨어든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좋을 때는 세포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감염력이 없으나 우리 면역력이 떨어지면 다른 개체로 전파하기 위해 세포 밖으로 뛰쳐나온다. 수두 바이러스는 신경세포에 숨어 있다가 증식하면서 뛰쳐나오기 때문에 신경 세포가 파괴되어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대상포진이 발병하게 된다. 한번 특정 감염성 질병에 걸린 후 낫게 되면 그것에 대한 항체를 가지게 되어 다시는 걸리지 않는데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서는 미리 대응하는 무기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인류가 개발한 것이 백신이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마치 걸린 것과 같이 인체가 느끼도록 하여 특정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기억을 심어줌으로써 실제로 그것들이 인체에 침투하였을 때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백신과 항생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뤄볼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옛 한어(漢語)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단음사(單音詞), 즉 한 글자가 한 단어가 되는 경우가 많아 지극히 간략하였다. 거지의 뜻인 ‘걸개’를 ‘개(丐)’라고만 부른 고대 문헌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하급 관노, 머슴, 거지〔개(丐)〕 모두 부모의 무덤에 가서 성묘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또 “거지〔개(丐)〕 무리가 에워싸 절하며 구걸하였다”1)라고 했는데 거지를 ‘개(丐)’ 한 글자로 표현하였다. 현대 한어뿐 아니라 청나라 말기 이전에 거지에 대한 호칭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걸인(乞人)’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였다. “발로 차면서 주면 걸인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음력 11월에 걸인을 만나면 저고리를 벗고 그와 함께 하였다”, “만승의 주인은 길 위의 걸인을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다”2)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어떤 책에는 ‘걸아(乞兒)’라고 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범(范) 씨 문도가 길에서 걸아, 마의(馬醫)를 만나면 모욕을 주지 않았다”, “육장 옆에 파리매 모여들어 우레처럼 시끄럽고 걸아들이 다투어 짊어지고 사그라진 재로 향하네", “패루(牌樓) 높이가 20장 … 밑에 걸아 수백이 거처한다”3)라는 구절이 보인다. ‘걸색아(乞索兒)’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은(隱)은 천성이 머뭇거리니, 항(沆)의 문지기와 가복이 싫어해 왕왕 걸색아라 불렀지만 항(沆)은 한결같이 대했다”, "걸색아가 기어이 굶어죽었는데 어찌 나를 이처럼 방치하는가!”4)라는 문장이 있다. ‘개인(丐人)’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희종(僖宗) 말기에 광릉(廣陵)에 가난한 두가균(杜可均)이라는 개인이 있었다. 나이가 40여 세였다. 밥은 먹지 않고 술만 마셨다. 매일 술집에 들어가 돌아다니며 술을 얻어마셨다”, "어제 개인을 쫓아가니 어디를 유랑하는지 알겠는가!”5)라는 문장이 보인다. ‘개부(丐夫)’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병폐가 있으니, 개부의 손에 주옥(珠玉)이 있고 황금을 품속에 품고 있으나 길에서 굶어 죽는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구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개곤(丐棍)’이라 부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생각지도 않았던 정신혁고(鼎新革故) 이후에 개곤 손수(孫壽)의 수중에 떨어졌다”6)라는 구절이 있다. 걸식하는 부녀(婦女)를 ‘걸파(乞婆)’라 부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네가 듣지를 못했다는 말이냐? 구역질나고 비열한 늙은 걸파를 믿고 나를 욕하는 것이야”, “너같이 늙은 걸파조차 관을 들고 나를 찾아오다니”, “그 늙은 걸파를 누가 모른다는 말이냐. 그러나 공무는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7)라는 구절이 보인다. 거지를 ‘화자(化子)’라 부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혼자 나를 외로이 버려버리면 어디에서 몸을 편안케 하겠소. 화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걸식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런데 원나라 잡극 중에 다른 용례가 있다. 화자(花子)라 부르는 경우다. 예를 들어 “야! 말만 번지르르한 화자(花子), 빨리 꺼져!”, “경사(京師)에서는 걸아를 화자(花子)라고 부르는데 어디에서 뜻을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8)라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화(花)’는 ‘화자’의 ‘화(化)’ 발음이 전화한 것으로 본래 ‘화자(化子)’다. ‘규화자(叫花子)’는 바로 ‘규화자(叫化子)’이다. ‘규(叫)’를 ‘고(告)’로 쓴 경우도 보인다. 잘못된 전음이다. 옛날에 남에 집에 들어가 구걸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행인을 부르며 쫓아가 빌어먹는 거지를 ‘규가(叫街)’라 하였다. 이러한 거지가 ‘규화자(叫化子)’로 나중에 거지를 부르는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규화(叫化)’는 곧 ‘빌어먹다, 동냥하다’이다. 그리고 “사문 안통(安通)이 길가에 옻칠을 해서 만든 큰 상을 세우고 재물을 교화(敎化)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또한 구걸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또 “일부러 기회를 잡아 신음하면서 힘없이 지팡이를 짚고 교화(敎化)하였다”9)라는 구절도 보인다. 여기에서 ‘규(叫)’와 ‘교(敎)’는 통용된다. ‘화(化)’는 모화〔募化는 (승려·도사 등이) 탁발(托鉢)하다. 보시(布施)를 구하다. 동냥하다 뜻이다. 모연(募緣), 화연(化緣), 구화(求化)와 같이 쓴다〕를 가리킨다. 승려나 도사들이 보시를 구하는 것으로 속세의 일, 천한 일에 대한 아호(雅號)다. 불교에서 교화의 인연을 ‘화연(化緣)’이라 한다. 불교와 도교에서는 보시하고 선을 행하는 자는 부처나 신선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렇듯 거지를 ‘규화(叫化)’나 ‘교화(敎化)’라 부른 것은 행위를 가지고 명명했거나 덕행을 행한다는 의미를 가진 명칭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규화자(叫化子)’는 구어 중의 속칭이 되어 버렸고 ‘걸개(乞丐)’는 서면어로 자주 쓰는 명칭이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당대 유종원(柳宗元) 『기허경조맹용서(寄許京兆孟容書)』) ; 청말 황헌조(黃軒祖) 『유량쇄기·오취봉(游梁瑣記·吳翠鳳)』. 2) 『맹자(孟子)·고자상(告子上)』 ; 『남제서(南齊書)·무릉소왕엽전(武陵昭王曄傳)』 ; 청대 당견(唐甄) 『잠서(潛書)·원간(遠諫)』. 3) 『열자(列子)·황제(皇帝)』 ; 송대 범성대(范成大) 「청식재서사(請息齋書事)」 제3수 ; 청대 이두(李斗) 『양주화항록·신성북록중(揚州畵航錄·新城北錄中)』. 4) 오대(五代) 왕정보(王定保) 『당척언·호지기악급제(唐摭言·好知己惡及第)』 ; 『태평광기(太平廣記)』 498권에 인용한 『옥천자‧묘탐(玉泉子‧苗耽)』. 5) 당대 풍익자(馮翊子) 『계원총담·두가균각서(桂苑叢談·杜可均却鼠)』 ; 청대 요섭(姚燮) 『수가칠세아(誰家七歲兒)』 6) 청대 공자진(龔自珍) 『을병지제숙의제십륙(乙丙之際塾議第十六)』 ; 청대 저인획(褚人獲) 『견호사집·가화행(堅瓠四集·嘉禾行)』 7) 원대 무명씨 『화랑단(貨郎旦)』극 제2절(折) ; 청대 이어(李漁) 『신중루·노견(蜃中樓·怒遣)』 극 ; 모순(茅盾) 『손 이야기(手的故事)』 8) 『원잡극(元雜劇)』에 수록된 작자 미상인 명대의 극 『리운경득오승진(李雲卿得吾升眞)』 제3절 ; 『원곡선(元曲選)』에 수록된 「장천사(張天師)」극 제2절 ; 명대 사조쇄(謝肇涮) 『오잡조(五雜俎)』 5권 「인부(人部)」 9) 『북제서(北齊書)』 ; 돈황(燉煌) 변문 『유마힐경보살품변문갑(維摩詰經菩薩品變文甲)』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입니다.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격이나 다름 없는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아맹 고라도 몰라 마씀, 혼저왕 봅서" (아무리 말해도 모릅니다. 어서 와서 보세요) "No matter how much I tell you, you will not understand. Hurry! Come and see"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 )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보편적 형제애 - 로히니 베헤라(Rohini Behera) 우리는 함께 일어서고 우리는 함께 넘어진다 존재들이 묶여 있는 곳 묻혀버린 감정으로 보편적인 형제애를 열망하자 사랑에는 상호 존중과 신뢰가 필요하니 인간의 문화는 지혜를 따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형제애를 지키자 손을 맞잡고 평화를 도모하자 필요할 때 서로를 섬기는 것 좋은 분위기를 위해 새롭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평화 구상을 확산하자 인생의 마지막 별은 형제애이다. Universal Brotherhood (By Rohini Behera) Together we rise Together we fall Where beings are bound With buried emotions Let’s aspire for universal brotherhood Love needs mutual respect and trust Human culture is to follow wisdom With the passage of time Let’s uphold love of brotherhood Promote peace by joining hands Serving each other in times of need To create an ambience upright With new concepts, positive Spread new peace initiative Life’s final star is brotherhood. ◆ 로히니 베헤라(Rohini Behera) = 1943년 생으로 인도 오디샤(Odisha)에서 공무원으로 36년간 근무하고 은퇴하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세계 5대 시인 연맹(세계 시인 연맹의 최고 기관)의 국제 특별 협의회 회원이며 문학과 온라인 신문 및 잡지 Regd No 75/2018-19를 위해 인도 문학 협의회의 비서로 임명되었다. 그는 글로벌 교육 개혁을 통해 평화를 증진한 공로로 나이지리아 세계평화연구소(WIP)로부터 가장 권위 있는 ‘WORLD EPITIOME OF HUMANITY’상을 수상했다.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세계평화연구소는 그를 인도 오디샤 주의 ‘AMBASSADOR OF PEACE’로 임명하였다. 남아프리카 이글스 대학은 그를 2018년 대사 및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Motivational Strips는 그에게 GOLDEN BADGE, GLOBAL DOVES OF PEACE, GOLDEN LITERATURE, INDEPENDENCE DAY GLOBAL LITERARY HONOR, AMBASSADOR DE LITERATURE 및 MS FOUNDER's Award-2022를 수여했다. 그는 ‘SPLENDOUR OF LOVE (A collection of poems)’, ‘POETIC PEARLS (A collection of Pictorial Poems)’ 등의 시집이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세상 살아가다보면 억울한 일이 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 좋은 경우가 있다. 형사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의뢰인은 연말에 친구들과 실내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가 사소한 이유로 다른 테이블의 손님과 시비가 붙었다고 한다. 의뢰인은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고, 상대방은 주먹으로 여러 차례 의뢰인의 배를 때렸는데 서로를 폭행으로 고소하였단다. 그런데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으며 담당 수사관은 쌍방 폭행으로 보인다면서 서로 합의해서 사건을 마무리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의뢰인은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흔든 것뿐이기에 폭행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상대방이 먼저 주먹으로 배를 가격해서 이에 대한 항거차원에서 멱살을 잡은 것뿐이라고 한다. 반면에 상대방은 의뢰인을 실제로 때렸기 때문에 폭행은 맞다고 생각해서 억울하다고 한다. 의뢰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폭행죄의 구성요건인 폭행은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는 유형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신체에 대한 유형력 행사가 반드시 신체에 접촉하는 경우만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에 상대방의 신체에 근접하여 고성으로 폭언이나 욕설을 하거나 손발이나 물건을 휘두르거나 던지는 행위 또한 신체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로서 폭행에 해당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 따라서 주먹이나 발로서 상대방을 때리는 것만이 폭행이 아니고, 멱살을 잡고 흔드는 것도 폭행에 해당된다. 그래서 담당수사관이 쌍방폭행으로 보고 있는 것이 크게 잘못된 판단은 아니라고 생각이 된다. 또한 실무에서 정당방위나 정당행위는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 만약 상대방이 시비 도중에 갑자기 칼을 휘둘렀을 정도면 인정될 여지가 있겠으나, 단순히 서로 간에 시비가 붙은 경우에 누가 먼저 때렸는가는 크게 중요치 않다. 한편 폭행죄는 반의사불벌죄라고 하는데, 이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기관이 수사하고 기소하여 처벌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표명할 경우 처벌을 못하는 범죄들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는 폭행죄, 협박죄, 명예훼손죄가 이에 해당한다. 과거 스토킹범죄도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였으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들이 잇다르면서 반의사불벌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짐에 따라 국회에서 법률개정을 통하여 2023년 7월 11일부터 스토킹처벌법의 반의사불벌 조항이 삭제되어 스토킹범죄 또한 합의를 해도 양형에서 참작 사유가 될 뿐 처벌이 되고 있다. 반의사불벌죄의 대표적인 범죄인 폭행죄의 경우, 단순한 쌍방폭행은 합의하면서 서로 고소를 취하하면 사건은 종결된다. 만약 서로 간에 합의가 안 되어 재판까지 이어지게 되면 나중에 전과기록까지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담당 수사관이 권유하는대로 서로 간에 고소를 취하하는 조건으로서 합의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다만 1심 판결 선고 전까지 합의하여 서로 고소를 취하해야 유효하며 이 경우 법원에서는 공소기각의 판결을 내리게 되나, 항소심에서 합의되면 양형에 참작될 뿐이며 공소기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형사사건은 가능한 초기 단계에서 해결하는 것이 좋다. 경찰 단계에서, 검찰, 법원으로 올라갈수록 시간도 오래 걸리게 되며 해결이 복잡해지는 경우가 있다. /한동명 법무법인 더바로 변호사
거지는 ‘남에게 빌어먹는 사람’이다. 한자어 개걸(丐乞), 걸인(乞人), 걸개(乞丐), 유개(流丐), 유걸(流乞), 화자(花子, 化子)가 같은 말이다. ‘거지’의 옛말인 ‘것 ㅸㅏ Δㅣ’는 15세기 문헌부터 나타난다고 한다. ‘거지’는 한자인 ‘걸(乞)’과 ‘어치’가 결합한 말로 ‘거러치’, ‘거러지’, ‘거어지’로 변했다1)고 해석하기도 한다. ‘빌어먹다’는 ‘돈이나 곡식, 물건 따위를 거저 달라고 빌다’ 뜻이다. 같은 말은 ‘구걸(求乞)하다’, ‘걸식(乞食)하다’, ‘동냥하다’이다. ‘동냥’은 ‘동령(動鈴)’이라는 불교용어에서 왔다. 동령은 번뇌를 깨뜨리고 불심을 강하게 일으키기 위해 흔드는 도구다. 여러 불교의식은 물론 스님이 걸식 수행의 한 방편으로 탁발하는 과정에서도 흔들었다. 이 동령이라는 말에 ‘거지 등이 구걸하는 행위, 또는 그렇게 해서 얻은 물건’이라는 속된 의미가 결부되었다. ‘동녕’을 거쳐 ‘동냥’이 됐다는 해석이다. 빌어먹는 사람의 상황이나 방법은 여러 가지가 뒤엉키어 복잡하다. 임시방편으로 시장 거리나 가게, 골목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기적으로 걸식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거지 신분으로 구걸은 하지 않고 여러 범죄에 가담한 사람도 있다. 따라서 거지의 역사를 고찰하려면 먼저 무엇이 거지인가? 거지의 종류는 어떻게 되는가? 거지가 생기게 된 사회와 문화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1. 어룡혼잡의 신비스런 세계 한자 ‘걸개(乞丐)’ 명칭 한자어 걸개(乞丐)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면 ‘걸개’라는 호칭과 그 본래 함의를 봐야 한다. 한자 ‘걸(乞)’의 뜻은 ‘희구(希求)하다, 기구(祈求)하다, 구하다, 빌다’ 이다. 동시에 반대말로 쓰여 ‘주다’ 뜻으로도 쓴다. 상반된 뜻이 한 글자 속에 있다. ‘개(丐)’는 ‘匄’로도 쓴다. 갑골문에서는 대부분 제사(祭祀) 용어로 사용하였다. 신령에게 구걸(애걸)하다 뜻이다. 예를 들어, “崇雨,匄於河(숭우,개어하)”가 그것이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재앙이 되니 하신(河神)에게 영험을 구한다는 말이다. 본의와 같이 ‘주다’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비한 재물이 헤아릴 수 없어 백성에게는 하나도 줄 수 없었다.”(『위서(魏書)·식화지(食貨志)』)라고 하였다. 이 두 글자를 합하여 ‘걸개(乞丐)’가 됐지만 여전히 서로 모순된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재미있는 모순된 자의(字意) 현상도 이치에 맞는다고 하겠다. 기구(祈求)하고 비는 사람의 개괄적인 목적은 주는 것에 있다. 줄 수 있어야 기구하고 비는 것을 만족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걸개’에 타인에게 주기를 바라는 뜻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토취(討取)’ 뜻도 있다. ‘독촉하여 받다, 받아 내다, 요구하다’ 뜻이다. “동완(東莞)의 장봉세(臧奉世)는 나이 스물이 넘어서 반고(班固)의 『한서(漢書)』를 읽고 싶었는데 남에게 빌린 책을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매형 유완(劉緩)에게 남에게 받은 명함이나 편지의 빈자리가 있는 종이를 달라고 요구〔걸개(乞匄)〕해 손으로 책 한 권을 베꼈다.”(『안씨가훈(顔氏家訓)·면학(勉學)』)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걸개(乞匄)’은 바로 ‘토취(討取)’ 뜻이지만 장봉세는 결코 남에게 빌어서 먹는 거지는 아니었다. 오늘날에 통용되는 거지를 가리키는 말인 ‘걸개(乞丐)’는 음식, 재물을 달라고 요구해 살아가는 사람이고 일종의 자발적인 사회 직업이라 할 수 있다. ‘걸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북송시기 이방(李昉) 등이 편집한 『태평광기(太平廣記)』에 이미 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외진 동네와 궁벽한 마을에 마의(馬醫, 수의사), 술집 주인, 거지, 머슴, 그리고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아이들은 모두 ‘개(앞잡이)’이다”라고 하였다. 또 “초법(鈔法, 지폐를 발행해 유통시키는 법)이 행해지자 아침에는 부상(富商)이었는데 저녁에는 거지가 되었다”2)라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지폐를 금은, 주전을 대신해 유통되기 시작한 후 아침까지는 부유한 상인이었는데 저녁이 되면 구걸해서 살아야하는 거지 신세가 되는 사람이 생겨날 정도로 엄청난 변화가 생겨났다는 말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다음과 같이 해석하기도 한다 : 옛날 문헌을 보면 ‘거지’는 ‘거00지’로 되어 있다. 이것은 중국어 ‘걸자(乞: 빌 걸, 子: 아들 자)의 발음을 그렇게 써 놓은 것이다. ‘걸’에 접미사인 ‘자(子)’가 연결된 단어이다. ‘자(子)’는 중국어의 접미사인데, 우리말에 와서는 두 가지 음으로 읽혔다. 하나는 ‘자’이고 또 하나는 ‘지’다. ‘판자(板子)’는 ‘판자집’일 때에는 ‘판자’이지만, ‘널판지’일 때에는 ‘판지’로 읽는다. 주전자, 감자, 사자, 탁자 등의 ‘자(子)’는 ‘자’로 읽지만, 가지(식물의 하나), 간장 종지, 꿀단지 등의 ‘자(子)’는 ‘지’로 읽는다. 남자와 여자 생식기의 이름 끝에 ‘-지’가 붙은 것도 모두 이것 때문이다. 따라서 거지는 ‘걸지’에서 유래되었는데 ‘ㄹ’이 탈락하여 거지가 되었다.(안도) 2) 제126권 『왕씨견문(王氏見聞)』 인용 ; 『주자어류(朱子語類)』 제130권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고민철 개인전 ‘제주적 추상’전 서울 인사동에 있는 제주갤러리에서 중견 화가 고민철의 ‘제주적 추상전’이 성화리에 열렸다. 제주의 풍토를 주제로 추상미술의 새로운 미학을 개척하고 있는 와중에 마련된 이번 전시는 그간 고민철이 천착해 왔던 제주 문화의 진솔한 향기를 느끼게 하여, 많은 서울 관람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고민철은 원래 인상주의 화풍을 선호했던 화가로, 주로 제주의 자연과 풍물을 사실적으로 그리다가 어느날 추상회화로 방향을 바꿔 독창적인 제주 추상의 길을 열어나가고 있다. 이번 서울전은 제주미학의 새로운 시선을 개척하고 있는 화가의 신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고민철은 제주대 미술학과 서양화 석사를 취득해 ‘추상표현주의 표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새로운 창작방법으로 제주의 풍토적 자연을 추상화로 시도하여 돌, 바람, 해저, 이어도 등 생태, 기후, 신화적인 시선으로 제주인의 삶에 주목하면서 작가 자신의 문화적 DNA를 속임없이 표출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고민철의 ‘제주적 추상’이라는 새로운 회화의 작품을 소개한다. 존재를 드러내는 행위로서의 추상 어떤 그림이라도 화면에 눈을 점점 가까이 댈수록 형체는 모호하게 나타난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겹치거나 반복되는 선들과 색채의 음영(陰影), 내가 한 눈에 보았던 사물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만드는 평면의 어지러운 흔적들뿐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그렇게 확실하게 보이던 사실적인 형상이 하나의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알고는 당황하게 된다. 어떤 3차원의 입체적인 대상에 대해 믿었던 확신이 무너져 그것이 2차원의 평면이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20세기는 평면의 언어들에 주목했다. 과거 르네상스와 더불어 원근법의 등장한 이후 건축술이 발달하면서 현실에 존재하는 건물에 더욱 주목하게 되고, 급기야 현실 세계의 실재를 화면으로 가져오기 위해 그 현실과 똑같이 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무려 500년 동안 그 신화는 깨지지 않고 세상을 지배했는데 이것이 환영주의(illusionism)라고 하는 조형적 방식이었다. 갑골문에서 그림(畵)은 한 손으로 붓을 잡고 무늬의 선을 그리는 모습이다. 어떤 행위에는 아름답게 꾸미거나 자신이 즐거운 놀이로서 행하는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예술은 시대마다 개념이 변하면서 그것의 인식과 형식, 제도마저 달라진다. 그렇지만 그림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창작행위 중 하나이며, 사물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사물의 대상이나 그것을 직관한 심상(心象)을 ‘나타내는 행위로써 무엇인가 떠올리는 것, 의미를 부여하거나 구상(構想)하는 고차원적인 정신 활동인 것이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미술사에서 회화는 구상화(具象畵)와 추상화(抽象畵)가 있다. 구상화의 전통에서는 그리스어 테크네라는 단어는 수공업적 기술(예술)과 장인(匠人, 기술자)을 강조했지만, 마르틴 하이데거는 이를 달리 해석하고 있다. 오히러 테크네는 앎의 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앎이란 ’보았음‘을, 넓은 의미에서 ’봄‘을 뜻하며, 이러한 ’봄‘은 현존하는 것으로써 인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니까 창작은 현존속으로 나타내게 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의미에서 테크네는 오히러 화가가 지각하고 있는 인상(印象)과 기억의 관념(觀念)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게 하는 추상에 더 가깝다. 오늘날은 그 장르를 넘어선 새로운 조형 기술들인 설치, 영상 미디어가 등장했다. 그렇지만 가장 오래된 형식과 기법에 기반을 둔 화가들은 여전히 많다. 전자매체의 시대가 왔음에도 회화가 자신의 감성을 전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추상화의 시간을 잠시 돌아보면, 인류 문명의 시작과 함께 발견된 동굴벽화의 그림들이 들소와 짐승 무리, 손바닥 그림이었다는 사실에서 보는 것처럼 어떤 사물의 재현이 그림의 시작이 되었고, 이후 상징 기호의 시대(신석기 시대)를 거쳐 다시 3차원의 세계를 구현하다가 20세기 초에 다시 2차원의 추상주의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현실 세계의 모든 형태들은 입체이지만, 거기에는 무수한 평면의 패턴들이 얽혀 있다. 그러니까 구상 속에 추상이 있고, 추상 속에 구상이 있다는 말이다. 하나의 형태는 보는 시점, 보는 방향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다. 우리의 세계는 빛의 작용이 매우 중요하다. 빛이란 전자기파의 주파수인데 그 빛으로 인해 사물들의 형태와 색채를 분별하게 된다. 만일 빛 파동이 더 빨리 진동하면 그 빛은 더 파랗게 되고, 조금 더 느리게 진동하면 그 빛은 더 붉게 나타난다. 색은 빛의 파동에 의해서 달라지면서 우리 세계의 사물들이 여러 가지 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최초의 추상 화가는 누구일까? 우리는 통념적으로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진실은 스웨덴 출신 힐마 아프 클린트(Hilma af Klint, 1862~1944)라는 여성화가가 1906년 추상화 연작을 그린 것이 처음이었다. 현재까지 바실리 칸딘스키가 자연적 요소에 음악성을 살려서 1910년(1913년)에 그린 수채화 <무제(untitled)>가 세계 최초의 추상화로 알려졌었다. 오로지 색채를 가지고 면(面)의 경계를 만들고, 다양한 크기의 선의 리듬으로만 이루어진 <무제>는 원근법적인 재현과 사실적인 장식의 전통을 일거에 배제한 작품이었다. 러시아의 화가 말레비치(Malevich, Kazimir Severinovich, 1878~1935)에 의해서 시작된 기하학적 추상주의(geometric abstractionism) 또한 1913년에야 등장했다. 여성화가 클린트는 칸딘스키보다 2살이나 위였고, 두 사람 모두 1944년 같은 해에 사망했는데 칸딘스키와 말레비치에 앞서 그녀는 이미 1906~1907년 두 해에 걸쳐 기하하적 추상주의 작품을 제작했으나 세간에 주목받지 못한 채 서양미술사에 뒤늦게 알려졌던 것이다. 과거 여성이 처한 사회적 위상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람들은 선구자, 또는 역사적 시원(始原)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최초의 시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기도 하거니와, 역사의 시간에서 보면, 맨 처음 자각한 자, 실행한 자의 위치가 새롭게 조명되기 때문이다. 20세기 미술에서 추상의 등장은 형식주의(formalism) 미술의 시대를 열었다. 미국의 미술비평가 클레멘트 그린버그(Clement Greenberg, 1909~1994)가 형식주의 미술의 대표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림의 2차원적인 평면성을 옹호했다. 입체적 사실주의에서 평면성으로의 전환은 폴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이나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에게서 쉽게 발견되고 조르죠 브라크(Georges Braque, 1982~1963)와 파블로 피카소의 큐비즘을 거쳐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 ~ 1970),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 클리포드 스틸(Clifford Still, 1904~1980) 등의 색면회화(Color Field)에 이르러 평면성이 극에 달한다. 재현 중심의 서사화(敍事畵)의 자리에 순수한 미술의 형식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영상 시대에 거꾸로 가는 고민철의 행보 지금은 로컬리티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후 서울과 지방이라는 2분법적 구도의 경향론(京鄕論)은 중심부와 주변부로 차별하면서 문화의 지배구조를 이뤘지만, 오늘날은 그 구조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다원주의(多元主義)의 영향도 한 몫을 하고 있고, 지역으로 향하는 이주 인구의 확대, 시장경제의 세계화 전략이 지역의 특성들을 균일하게 일반화하면서 차이가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문화적 대안으로서 로컬리티가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어디에나 있다. 지역 간 색깔이 점점 줄어들면서 제주 로컬리즘이라는 정체성은 과거 농업사회와 해양·목축사회에 기반을 두었던 풍토적인 삶에서 드러났었지만, 점점 그 정체성마저 해당 삶의 방편들이 산업사회로 대체됨으로써 사실상 점점 축소되거나 소멸되고 있다. 지금의 현실은 하이브리드 시대다. 이 혼성(混成)의 시대는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한데 마치 구산업(석유)이 신산업(전기)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병존하는 과도기처럼, 혹은 이주하는 종족과 원주민이 새로 섞이면서 하나의 퓨전 문화가 되는 변화의 운동단계가 되고 있다. 갈수록 인류가 지구인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생각은 모두가 느낄 수 있는 체감온도일 것이다. 현재 추상화를 선호하는 작가는 매우 드물다. 그러므로 제주 추상화에 대한 모색은 형식주의 미술에 대한 깊은 미학적 고민과 새로운 창작방법론의 과제를 안겨준다. 추상화는 사회적인 내용을 다루기보다는, 오로지 조형언어라고 할 수 있는 색채, 선, 형태의 아름다움에 기반을 둔 미술의 양식사적인 전통에 닿아있다. 제주에서는 1960년대에 서울에서 수학한 서양화가 김택화, 강태석에 의해서 추상화가 처음 시도되었다가 1970년대 후반 ‘관점’그룹의 등장으로 일시적으로 회자되다가 지금은 다시 추상주의가 쇠락한 상태에 있다. 당시 추상주의는 서울을 중심으로 일었던 국제주의적 경향성을 띤 미학적 실험정신에서 출발했으나, 이후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적 미학의 반성적 태도가 일면서 다시 그 기운은 사그라들고 말았다. 이로써 고민철의 등장은 매우 중요한 추상화의 새로운 계기가 되고 있는데 그가 구상화에서 추상화로의 방향 전환은 제주 추상화를 다시 되돌아보게 하는 신선한 행보가 되고 있다. 고민철은 백광익, 양묵 등 제주의 추상작가들의 대열에 새롭고 서면서, 처음부터 강한 로컬리티적 특성을 보여주었다. 오늘날 대세가 된 영상 미디어 작가들의 등장은 시대의 추이로써 전자매체의 대중화에 따른 것이어서 앞으로 예상될 미래의 방향을 위한 조건 반사작용과 같은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제는 전통 장르가 돼버린 추상화의 존재가 매우 불확실한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가듯이 보이는 고민철의 행보는 어느 정도 소수자라는 희소가치의 장점을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영상의 시대에서 추상화라는 남다른 선택을 한 것은 ‘사실상 많다는 것의 대세’에서 오히려 ‘소수이기에 특별할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글로컬리즘을 구현하고 있는 제주적 추상 그렇다면 고민철의 추상화의 미학은 무엇에 바탕을 두고 있고 그가 구상에서 추상으로 방향을 바꾼 이유가 무엇일까. 서양미술은 이미 중세부터 스토리에 기반을 둔 문학주의의 영향, 즉 신화나 성서에 영향으로 그것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충실한 설명을 요하는 삽화들이나 그리스 로마신화, 그리고 기독교 역사화, 전쟁화가 성행했다. 이런 문학주의는 미술을 서사구조의 보조자, 또는 삽화적 성격, 교회 화가로 전락하게 만들었고, 신고전주의에 이르러서 역사화는 정점에 달한다. 사물은 반드시 정점에 이르게 되면 다시 쇠퇴의 길로 되돌아간다. 미술에 대한 순수한 욕구는 새롭게 창작하는 계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빛을 재해석한 인상주의 출현이었다. 우리에게 시간은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형식들을 가져다 준다. 1980년대 삶의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계급주의 미학이 남한을 흔들다가 잠잠했던 한국미술의 무풍지대와 같던 시기에, 지역주의 열풍이 서서히 일고 있었다. 2000년 초 제주는 올레코스가 개발되었고, 이주민의 급거 입도하는 등 미술 형식에서도 로컬리티를 모색하는 기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4·3미술로 모아졌고, 한편에서는 미술의 크기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두 편향 모두 뾰족한 미학적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단체 미술행사 중심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럴 때 개인의 태도는 중요해진다. 고민철은 돌연 오랫동안 추구하던 인상주의 화풍을 버리고,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된다. 주저 없이 풍경화를 버리고 마음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자유로운 미술 형식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아파 본 자만이 실존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다. 그에게는 분명 어떤 심적인 자각이 크게 있었던 것을 알 수가 있다. 지난 1월 고민철은 ‘환희-바람 속으로’라는 개인전을 통해서 제주적 추상의 시작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액션이 큰 붓질과 임파스토 드리핑(Impasto dripping) 기법을 중심에 둔 화려한 색채의 대작들을 선보이면서 제주적 색채와 형태를 지향하는 로컬리즘의 특질을 보인 것이다. 임파스토(impasto)란 ‘두껍게 칠하는 물감 기법’을 말하는 것으로 이탈리아어 ‘반죽하다’라는 임파스타레(impastare)에서 유래했다. 물감을 나이프나 붓으로 화면에 두껍게 바르거나 자유롭게 흘릴 경우 굳으면 마치 조각처럼 도드라지는 입체감이 나타나기 때문에 작업시 화가의 감정 상태가 잘 드러난다. 칠하지 않고 붙게 함으로써 마티에르가 살아나기 때문에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동작에 적합하다.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 잭슨 폴록(Paul Jackson Pollock, 1912~1956), 루시안 프로이트(Lucian Michael Freud, 1922~ 2011) 등이 이를 선호했던 화가들이었다. 고민철은 이 임파스토 드리핑을 용암이 흘러내리는 과정으로써 보여준다. 돌의 고장 제주에 걸맞는 용암의 물질적인 성질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어릴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나타나는 물색(物色, color)의 강렬함이 배어난다. 그의 기법은 단순한 형식 찾기의 문제만으로 볼 수는 없다.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형식에서 자신의 원초적 기억들과 삶의 환경에서 몸에 밴 시간적인 경험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에서 불현듯이 화가의 할머니와 가족에게서 받은 관습적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비투스(Habitus)가 그의 작품에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원초적인 사회심리 표현은 매우 우발적이며, 무의식적으로 표출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이 아비투스적 표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마음을 차분하게 한 후 순식간에 자동기술적인 액션으로 주요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고민철의 화면에는 대개 반복적 행위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같은 것 같지만 다른 대칭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난다. 작품의 중심 구조는 무의식적 행위들의 속도감 있는 표현으로 채워지고, 세부 디테일들은 우연적인 효과들을 의식적으로 조절하는 절묘한 조합을 만들어 낸다. 자동기술이란 우연적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액션으로 매우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그는 사물을 그린다, 표현한다는 행위를 넘어선 질료의 특성들, 흩뿌려지고 중첩되는 색으로 만들어진 화면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핵심적인 것은 바로 '발견하는 형태, 발견되는 색채'라는 의미를 가진 제주 로컬리티를 지향하는 모습일 것이다. 그의 작품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제주 로컬리즘으로 맞춰져 있다. 제주 추상이라는 담론을 상정했을 때 단연코 풍토적인 양상(樣相)을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인데, 상징적으로 돌담, 태풍, 바다, 해저라는 주제에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이의 상징들은 모두 사물과 공간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제대로 보이게 된다. 바람은 바다와 하늘과 땅의 춤이면서 태풍이 돼 혼돈으로 치달음으로써 마침내 세상을 정화시킨다. 돌담은 그 구멍 사이로 바람을 보내버리는 리듬을 조절하며 안정된 호흡으로 역할을 고수한다. 바다는 변화무쌍하여 하늘과 대지의 기운을 받아 인간에 이롭다가도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해저는 또 다른 신들의 세계로서, 해양 타계(他界)의 이어도와 같은 유토피아가 된다. 따지고 보면 세계는 모두가 연결돼 있어서 나의 작품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이 나의 의식과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렇듯 고민철에게 줄곧 연관되어 흐르는 하나의 미학적인 원리가 있다면, 인생이라는 생생한 삶의 실체는 화가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원초적 기억으로 형태와 색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한다. 그것은 마침내 제주섬 만이 가능한 제주적 추상이라는 이름으로 구현될 것이며, 글로컬리즘의 새로운 근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통증 - 자혼기르 노모조프(Jakhongir Nomozov) 사랑이 내 몸에 흡수되고, 나는 사랑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네. 내가 쓴 이 시들은 하나하나 내가 진실을 맹세한 것들이지. 당신이 내 눈속에서 보는 불꽃 그빛은 천국에서 오는 것이려나? 그리고 내 마음 속에 피어난 소원은 당신은 본 적이 없는 기적이라네. 내 희망은 결코 시들지 않고 마르지 않아 봄은 항상 내 영혼을 번창시킬거야. 큰 고통이 있다해도 견딜수 있어 내 혈관과 뼈를 강하게 해줘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만들어졌어 인생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내 작은 몸 속에, 내 작은 가슴 속에 나는 얼마나 많은 재능과 사랑을 가지고 있을까? 인생은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을려나?! PAIN (Poems by Jakhongir Nomozov) Love is absorbed into my body, I cannot help singing a love song. Each of these poems that I wrote Is an oath I gave to the truth. The sparks you see in my eyes Are the lights come from Heaven And the wishes bloomed in my heart Are the mirabilis you have never seen. My hope will never wither, dry up Spring always flourish my soul. There is a great pain which is able to Flourish my veins and bones at all. I was made from love of The Almighty Does the life know who I am? In my tiny body, in my little chest How much talent and love do I have? Does the life know who I am?! ◆ 자혼기르 노모조프(Jakhongir Nomozov) = 1997년 1월 24일 우즈베키스탄 나망간(Namangan) 팝(Pop) 지역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의 "Juntos por las Letras" 회원이며 우즈베키스탄에 관한 국제 작가 그룹의 활동적인 회원이며 협력자이다. 우즈베키스탄의 터키 국영 전자 잡지 "SIIR SARNICI"의 대표자이며 카자흐스탄공화국 국제예술가협회 "Kosh Kyang" 회원, 우즈베키스탄 코디네이터, 카자흐스탄 공화국에 설립된 국제 협회 "세계 인재"의 회원이며 "Abay" 메달, "국제 아미르 테무르 자선 기금 기념 배지" 및 "과학의 자부심" 상을 수상했다. 국제 예술가 협회 회원, 키르기스 공화국 키르기스 시인 및 작가 공공 기금 회원. 젊은 예술가들의 전통 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시, 저널리즘, 번역 분야에서 창작 활동을 해왔다. 그의 시는 국제적인 "Gospel"과 "Flashmab" 선집에 출판되었다. 그는 "내 마음의 반역자", "성스러운 공간", "각성 노래"라는 책의 저자이다. 2022년 터키 출판사 "Baygenc"에서. 시집 <태양의 숨결>이 출간되었다. 다수의 국내 및 국제 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터키 인도, 러시아, 방글라데시, 네팔, 파키스탄, 케냐, 알제리, 베트남,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벨기에, 중국,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알바니아, 미국 등의 국가에서 신문 및 잡지 및 문학 사이트에 게재되었다. "세계 재능" 국제 협회, "키르기스스탄 시인과 작가 공공 기금" 회원이다. 그는 대학에서 저널리즘 및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였으며 최근에 터키 국가의 "Guzel Alania Award"을 받았으며 신문 "Children's World"의 특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우리의 기억 - 팔리 은드레카(Fali Ndreka) 오늘 밤 내 환상이 시간을 맞췄어. 그러나 시간은 영혼이 없어. 시간은 이해하지도 느끼지도 못하지. 시간은 카펫만 깔고, 이 세상에 떠나고 오는 이들을 위해 근데 나는 건설하려 애쓰지! 당신을 위한 세상을. 그리고 당신은 나에게 끝없이 감사하지. 우리 눈에는 늘 서로가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 우리를 위해 이 구절을 추억으로 쓰고 있어. 나는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외계인도 아니야. 구름 위를 날아다니는 상상도 아니야. 하지만 우리는 소박하고 따뜻한 집에 살고 있지. 우리는 식탁을 펴고 함께 밥을 먹으며 어제와 오늘처럼 살아가네. 하지만 오늘날에도 당신은 고대 모자이크처럼 보여. 그 아름다움은 절대 사라지지 않고 더욱 커져만 가지. 그러므로 나에게 당신은 모든 보물과 장식품보다 더 중요해. 그리고 나는 삶이 결코 사라지거나 끝나지 않기를 바라지. 그리고 지금 우리는 감동으로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어. 아, 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테니스처럼 그리고 우리 둘 다 챔피언으로 남을 거야. 서로에 대한 헌신, 사랑과 충성심. 이 시간은 지구의 수증기처럼 날아가네 제단의 먼지 냄새와 같아. 그리고 우리 마음속의 불은 켜지고 꺼지네. 마술사의 눈속임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눈의 아이러니는 결코 밑천이 드러나지 않아. 그리고 바로 이곳이 불타오르는 우리 추억의 세계 이 세상에서 우리는 결혼을 했고, 나는 죽어도 결코 완벽해지진 못하겠지.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면 우리는 추억으로만 남을 거야. 또는 명사로. 응, 우리한테는 중요해 그리고 사랑은 남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에도 똑같은 울림이 있지. KUJTIMI JONE (By Fali Ndreka) Sonte fantasia ime godet kohen Por koha eshte e pa shpirt. Ajo nuk kupton dhe as nuk ndjen. Ajo vec shtron tapetin e saje, Per ate qe iken dhe ne kete bote vjen Por une me mundime ndertova Nje bote per ty. Dhe ti me falenderon pa mbarim, Sepse njeri tjetrin kemi pere gjithmone ne sy, Prandaj une po shkruaj sot per ne keto vargje si kujtim. Une nuk jam i jashtezakonshem apo nje alien. As ti nje imagjinate qe fluturon mbi rete. Por ne jetojme ne shtepizen tone te thjeshte e te ngrohte, Shtrojme sofren dhe hame bashke e jetojme si dje ashtu dhe sot. Por ti edhe sot ngjan me nje mozaik antik. Ku bukuria e tij kurr nuk i venitet por vec i shtohet. Ashtu per mua ti je me shume se gjithe thesaret dhe stolite. Dhe dua qe jeta per ne kurr te mos shuhet e mbarohet. Dhe tani po jetojme kohen tone plot emocion. Eh ,kjo kohe sa shpejte po fluturon, Si nje tenis, Dhe ne te dy do te mbetemi gjithenje si nje kampion. Te përkushtimt ndaj njeri tjetrit,të dashurisë dhe besnikerise. Fluturon kjo kohe si avulli i tokes, Si profum i pluhurit te nje altari. Dhe dritat ne zemren tonen ndizen e fiken. Si manovrat e nje magjistari. E ironite syve tane mbi boten kurr nuk shterruan dhe sosen. Dhe pikerishte, kjo eshte bota e kujtimeve tona,te perflakura Mes te cilave ne u marrosem , u poqem,por kurr nuk u persosem. Dhe keshtu ne pas disa kohesh Do te mbetemi vetem nje kujtim, a nje emer. Po per ne eshte e rendesishme dhe do te mbetet dashuria, Dhe te njejtat trokitje qe kemi ne zemer. Our Memory (By Fali Ndreka) Tonight my fantasy hits time But time is soulless. She neither understands nor feels. She only lays her carpet, For those who leave and come to this world But I struggled to build A world for you. And you thank me endlessly, Because we always have each other in our eyes, That's why I'm writing today for us these verses as a memory. I am not extraordinary or an alien. Not even an imagination that flies above the clouds. But we live in our simple and warm house, We spread the table and eat together and live like yesterday and today. But even today you look like an ancient mosaic. Where its beauty never fades but only increases. So for me you are more than all the treasures and ornaments. And I want life to never fade away and end. And now we are living our time full of emotion. Oh, how fast time is flying, Like a tennis And we both will remain as a champion. To the devotion to each other, of love and loyalty. This time flies like the vapor of the earth, Like the perfume of the dust of an altar. And the lights in our hearts turn on and off. Like the maneuvers of a magician. The irony of our eyes on the world never ran out of sauce. And precisely, this is the world of our memories, inflamed Among which we get married, I died, but I never became perfect. And so after some time We will remain just a memory, or a noun. Yes, it is important for us and love will remain, And the same knocks that we have in our hearts. ◆ 팔리 은드레카(Fali Ndreka) = 알바니아 출신(Laurato)으로 알바니아 티라나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였다. 현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 거주하며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철학과 신학적 시 작품들을 100편 이상 쓴 작가로 알바노풀리(Albanopuli) 매거진 이사이며 알바니아 언론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법대로 하자!’라는 표현. 변호사로서 반가운 말이다. 그러나 당사자에게도 마냥 좋은 일인지는 의문이다. 통상적으로 소송은 소장을 접수하면서 절차가 시작된다. 소장이 상대방에게 송달되면, 상대방은 소장에 대한 답변을 준비한다. 답변서가 제출되고, 변론기일이 지정된다. 변론기일은 한 번만 진행되는 경우도, 대여섯 번 또는 열 번이 넘게 진행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각 변론기일은 약 한 달에서 두 달에 한 번 지정되고, 변론절차가 종결된 이후 또 약 한 달 뒤 선고기일이 지정된다. 선고를 확인한 뒤 판결이 납득되지 않는다면 불복절차를 진행한다. 이처럼 소송은 생각보다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당연히 오래 걸린다. 몇 년씩 걸리는 경우도 많다. 특히 요즘은 소송이 워낙 많아 더욱 지연된다. 내가 입은 경제적, 신체적, 정신적 손해에 대한 배상이 당장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너무 억울해서 잠도 이루지 못하여 소송을 제기했다가 그 복잡한 절차와 길어지는 재판 기간에 당황하여 변호사를 찾는 경우도 많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정을 잊어버릴 즈음에야 판결이 선고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종종 생긴다. 소송에서 승소했다고 끝이 아니다. 상대방이 판결 내용에 따라 자발적으로 이행을 하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해야 한다. 재산명시신청과 채권에 대한 압류 또는 부동산에 대한 강제경매 신청 등. 소송만큼 시일이 소요된다. 소송비용까지 모두 상대방에게 받아낼 수 있는 판결문이 있지만 실제로 그 비용을 받기까지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이 필요하다. 소송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힘들어하는 당사자를 지켜보는 것도 굉장히 힘겹다. 소송이 좋은 결과로 마무리되더라도, 의뢰인으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기는 생각보다 어렵다. 소송이 끝나더라도 의뢰인들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까지는 요원하다. 사무실에 오시는 분들은 소송을 각오하고 오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소송이 진행되는 기간과 소송이 종결된 이후의 절차까지 알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상대방과 대화가 되지 않으니 소송해서 내 권리를 지켜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상담을 시작한다. 구체적인 절차와 예상되는 소요 기간, 그 비용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면 매우 놀라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상담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차분히 잘 고민해보라고 조언한다. 놀랍게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문제가 당사자 간에 원만히 해결되기도 한다. 당연히 눈앞의 사무실 매출에는 타격이다. 그렇지만 덕분에 문제를 잘 마무리했다는 감사 인사를 통해 보상받는 뿌듯함이 훨씬 값지다. 소송을 결심하기 전에 충분히 숙고하여야 한다. 소송은 정말 최후의 수단이다. ☞이용혁은? =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변호사. 변호사시험 합격 후 제주도청 특별자치법무담당관실에서 3년간 근무하며 경험을 쌓은 뒤 제주지방법원 사거리에서 개업했다. 대한변협 대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제주지방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 제주도 지방노동위원회, 제주도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의 국선변호인/국선대리인 역할을 수행하며 공익활동에 힘쓰고 있다. 이외에도 제주지검 청원심의회 등 각종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도민로스쿨 특별강연과 제주도 공무원을 위한 특강에도 힘쓰며 지역발전에도 이바지하고자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