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은 항생제와 더불어 인류를 심각한 전염병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켜준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백신은 인간에게 특정한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면역력을 갖도록 투여하는 의약품이다. 물론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에게도 전염병 예방을 위한 백신이 사용되고 있다. 백신 접종 시에 바이러스나 세균 등의 특정 병원체를 그대로 사람에게 주사하면 진짜로 감염되어서 병에 걸리거나 죽을 수 있기 때문에 병원성이 없는 유사한 물질이 백신으로 사용된다.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은 병원체가 우리 몸에 들어오는 것은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여 개체수를 늘리기 위한 것이다. 병원체는 세포벽이나 단백질 껍질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인체의 면역 체계는 병원체의 내부가 어떤지 들여다 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우리 면역 체계는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바깥 껍데기에 붙어있는 단백질이 사람의 것이 아니면 적으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균이나 바이러스 껍질에 있는 단백질을 항원이라고 하고, 항원이 우리 인체에 들어오면 적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는 항체가 만들어져서 항원을 제거하는 것이 면역이다. 특정 병원체의 껍데기 조각이나 단백질을 백신으로 사용하면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감염력은 없지만 우리 면역 체계를 자극하여 항체를 만들어낸다. 백신을 맞은 이후에 같은 병원체에 노출되더라도 백신에 의해 만들어진 항체가 즉각적으로 대응하여 해당 바이러스나 세균이 인체에서 증식하기 전에 제거하므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모든 바이러스와 세균의 껍데기는 자신만의 고유한 항원 단백질을 가지고 있고 이것에 대응하는 항체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백신은 오직 한 종류의 병원체에 대해서만 면역력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새로운 전염병이 나타날 때마다 그것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백신을 맞아야 하는 것이다. 백신이 없던 시대에는 전염병에 예방이라는 개념은 없었고, 전염병이 돌면 개개인의 면역력에 따라 감염 여부가 결정되고 병에 걸리면 낙후된 의료 수준으로 인해 사망자가 많이 발생하였다. 백신의 개발은 인류에게 치명적인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하여 전염병 예방과 수명 연장이라는 놀라운 선물을 안겨 주었다. 인류 최초의 예방접종에는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이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어린아이들에게 가장 위험한 재앙으로 호환, 마마, 전쟁을 꼽는데, 호환은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것이고, 마마는 천연두(두창)를 뜻한다. 그만큼 천연두는 어린아이들의 목숨을 많이 앗아간 치명적인 전염병이었고, 설사 감염되었다가 낫는다고 하여도 얼굴에 수포가 생겨 곰보가 되는 불행을 가져왔다. 기원 전 이집트에서도 천연두가 발병했다는 증거가 있고, 20세기 들어서도 최소 3억명이 천연두로 목숨을 잃었다는 보고가 있다. 천연두가 워낙 위험한 질병이다 보니 15세기 중국에서는 천연두 환자의 상처 딱지나 고름을 가루로 만들어 코로 흡입하게 하여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도록 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살아있는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실제 천연두에 걸리는 위험한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18세기에 영국 의사인 제너는 자기 동네에서 소젖을 짜는 일을 하는 여성이 우두(소 천연두)에 걸리고 난 후에 사람을 전염시키는 천연두에는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를 감염시키는 우두 바이러스는 천연두 바이러스와 구조는 유사하지만 사람에게는 병원성이 매우 낮아 위험하지는 않았다. 이러한 우두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접종하여 천연두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하는 종두법을 백신이 과학적으로 적용된 최초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조선 말에 지석영 선생이 종두법을 도입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19세기 파스퇴르에 의해 광견병과 탄저병에 대한 백신이 개발되면서 본격적인 백신의 시대가 열렸다. 백신으로 실제 살아있는 바이러스나 세균을 사용하면 전염병에 걸리게 되기 때문에 △병원체를 열이나 화학 약품으로 처리하여 죽이되 껍데기에 있는 항원 단백질은 남아있는 사균 백신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살아는 있는데 인체에 해가 없을 정도로 약하게 만든 약독생균 백신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의 독성은 없애고 항원 단백질은 갖는 톡소이드 백신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또한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적으로 인식하여 면역력을 갖게 하는 것이 결국 껍데기에 있는 항원 단백질이므로 이것만 따로 분리해서 백신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유전공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유전자로부터 대량으로 항원 단백질을 생산하여 백신으로 활용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 백신 중에 mRNA 백신은 기존의 백신과는 다른 과학적 원리를 활용하여 만들어 지는데 코로나 백신과 진단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려 한다. 백신은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강력한 무기이다. 예방접종이 이루어 지면서 천연두는 인류가 최초로 완전히 박멸한 질병이 되었다. 1980년 5월에 WHO(세계보건기구)는 천연두 근절을 선언하였고,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천연두 예방접종을 하지 않게 되었다. 천연두 외에도 홍역, 결핵, 수두 등의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백신이 개발되고 예방접종이 이루어 지면서 이제는 감염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물론 결핵 예방접종을 했더라도 다시 결핵에 걸리는 경우가 있듯이 백신이 모든 사람에게서 해당 전염병을 100% 예방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천연두, 홍역, 소아마비와 같이 백신이 없던 시대에 치명적이었던 전염병들이 현대에서는 거의 발병하지 않는 데에서도 백신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어린아이들은 전염병에 취약하므로 우리나라에서도 소아국가예방접종을 실시하고 있다. 소아국가예방접종은 국가에서 필수적으로 권장하는 것으로 B형 간염, 결핵, 디프테리아, 파상풍, 백일해, 폴리오, 폐렴구균, 로타바이러스, 홍역, 풍진, 수두, A형 간염, 일본뇌염 예방접종 등이 여기에 들어간다 백신이 전염병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아무리 얘기하여도 코로나의 사례를 예로 들며 백신을 맞아도 다시 걸리더라 또는 부작용이 심하다더라 하면서 걱정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백신은 한번 맞으면 인체의 면역 세포가 그것을 적으로 기억하고 항체를 만들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번 접종으로도 병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백신을 맞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당 병원체에 대한 면역 세포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항체의 양도 점점 줄어드는 경우가 있어 몇 차례 예방접종이 필요할 수도 있다. 또한 바이러스는 돌연변이를 계속 일으키기 때문에 껍질의 항원 단백질의 구조가 바뀌어 기존의 항체가 인식하지 못하게 되므로 바뀐 항원에 대한 백신을 다시 맞아야 한다. 그래서 독감 백신도 해마다 맞는 것이고 코로나 백신도 새로운 돌연변이가 나타날 때마다 맞는 것이다. 백신은 임상 시험을 거쳐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 몸에 원래 존재하는 물질이 아닌 것을 인체에 넣기 때문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증상은 경미하고 지속 시간도 짧다. 사람의 체질과 상태에 따른 부작용을 고려하여 예방접종은 반드시 병원에서 하게 되어 있고, 일정 시간을 머무르게 하면서 지켜보게 하고 있다. 간혹 사람에 따라 백신 접종에 따른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지만 백신을 맞았을 때의 이점이 부작용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백신 접종을 권하는 것이다. 하지만 면역 억제치료를 받고 있거나 백신에 사용되는 항원이나 첨가제에 대한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은 백신을 맞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백신 접종은 전염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보호해 주는 중요한 수단이다. 집단 내에 면역을 가진 개체수가 많아질수록 전염의 고리가 끊어져서 백신을 맞지 못하는 사람들도 보호할 수 있다는 측면을 고려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백신 접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백신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아도 되게 백신의 유통과 보관 과정이 철저히 관리되어야 하고, 부작용 발생 시에 그 원인을 파악하여 적절한 대책과 보상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이식위천(以食爲天)’, 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말이다. 옛 중국인은 먹는 것을 하늘로 삼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의식주가 부족해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다면 구걸하게 되고 거지가 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거지에 관한 여러 가지 조사의 대부분은 이런 상황에 주의하고 있다. 현장에서 여러 가지 구걸하는 추태를 대면했을 때 그들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렇게 구걸하는데, 가장 기초적으로 가지고 있어야할 체면도 없고 염치조차도 필요 없다는 말이요?” 대답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 단순하고 명쾌하였다. “배고픔을 참을 수 없는데 체면을 살필 겨를이 어디 있단 말이요. 체면을 생각하면 굶어 죽고 얼어 죽게 생겼는데, 이런 상황까지 이르렀는데 체면이 뭐가 필요하오!” 이런 솔직한 대답을 들으면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게 된다. 논리에 맞는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동정하게 된다. 그런데 거지의 다른 면을 보면 어떻게 될까. 돈을 위해서는 어떤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돈이 생기면 주색잡기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한다. 먹고 마시며 오입질도 하고 도박도 한다. 매우 많은 거지들이 때때로 놀랄만한 금액을 집에 붙이기도 한다.……말문이 막힌 나머지 분개하고 비할 수 없는 증오에 온몸이 떨릴 수도 있다. 그러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이 그 가련한 얼굴과 사람 마음을 떨리게 만드는 애걸복걸하는 말을 듣게 되면 다시 측은지심이 생겨나서, 자기 자신은 물건 살 때에 재삼재사 고려하면서 쓰지도 않았던 돈을 꺼내 한꺼번에 그 떨고 있는 지저분한 손에 쥐어주게 된다. 아! 사람 천성이 본래 선하다는 것은 그렇게 기이하고도 교묘하다. 길을 잃은 그 죄악의 영혼은 그렇게 가증스러운 마력(魔力)을 갖추고 있음이니. 누가 알겠는가, 그 배후에 때때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죄악 중에 당신 도움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런 죄악은 당신이 생활하는 사회 치안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있다. 선량한 공공생활 질서를 오염시키고 파괴하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사회 환경의 악순환이다. 궁하면 생각이 바뀐다는 다른 면 :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 모택동은 50년대에 유명한 논점을 발표하였다. “중국 6억 인구의 명백한 특징은 일궁이백(一窮二白)1)이다. 그것은 나쁜 일이라 볼 수도 있으나 사실은 좋은 일이다. 궁하면 생각이 변하여 일을 처리해 나가고 혁명을 한다. 한 장의 백지는 부담이 없다.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문자를 쓸 수 있고 가장 새롭고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이 사상은 일찍이 빈곤대국인 중국이 자력갱생하고 간고분투 하도록 고무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지만, 실제는 빈곤을 영광으로 알고 궁핍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궁과도(窮過渡)’2)현상이다. 분명한 ‘아Q정신’인, 거지 철학으로 변질되었다. ‘문화대혁명’ 이래로 수많은 의식주의 거지와 정신적인 거지가 터져 나왔다. 한쪽은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다른 쪽은 시원시원하게 타인에게 희사하면서 스스로 만족해했다. 동시에 스스로 봉쇄하면서 아무도 그 오묘함을 알 수 없는 역사 여정을 연출해냈다. 중국에는 가장 두려운 문화 현상이 하나 있다.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笑貧不笑娼)” 구걸은 부끄러워도 몸을 파는 것은 부끄럽지 않다는 뜻이다. 이런 가치관은 직접적으로, “궁하면 사상이 변한다”라고 하는, 옳고 긍정적인 사상과는 다른, 상반된 한 면을 이끌어 냈다. 가난도 범죄가 자생하는 토양의 하나가 되었다. 한편으로는 “빈곤하더라고 빈곤한 패기가 있다(窮有窮志氣)”라고 하거나, “빈곤한 사람도 자연히 빈곤한 자의 기개가 있다”라고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라고 영락과 죄악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비정상적인 변태심리요 인격 왜곡이며 자포자기다. 이 모든 것은 중국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요 현실이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곤궁도 범죄를 양산하는 토양 중 하나다. 이런 ‘곤궁, 빈곤, 가난’은 경제적 빈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정신적 빈곤도 포함한다. 이는 사회생활의 잠재적 위기 중 하나다. 거지의 발생과 내막에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심도 있게 성찰하여야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중국은 인구가 많은 농업문명의 역사가 오랜 나라, 고국(古國)이다. 비록 역사상 몇 번의 번영을 구가한 태평성세가 있기는 했지만 빈곤과 낙후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귀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그 오래되고 낡은, 신주(神州) 대지를 배회하였다. 빈곤의 악마는 오랫동안 역대 중국인들이 끊임없이 경건하게 계속적으로 올리는, 결코 낮아져 본 적이 없는 제사의 향불을 마음껏 향유하였다. 그렇기에 빈곤은 느긋하게 흩어지지 않고 연속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농업문명으로 유명한, 농사짓기를 생업으로 삼고 살아나가는, 경식(耕食) 위주의 대국이 매번 전쟁의 봉화가 끝이지 않고 홍수가 온 땅을 할퀴며 천재가 세상을 뒤덮을 때마다 맨 먼저 환란을 당하는 부류는 농민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도시와 시골의 빈민이었다. 다행히 도탄에 빠지지 않은 농민은, 생계를 유지하려고 처자를 데리고 황망하게 고향을 버리고 타향으로 피난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죽이라도 먹으려고 자녀를 팔기도 했다. 처자와 생이별해 각자 살 길을 찾아야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서 대량으로 가장 기본적인 거지 자원이 생겨났다. 거지 무리 속에는 곤경에 빠진 궁핍한 농민이 대다수였다. 걸식하면서 근근이 목숨을 부지하니, 심리적 부담이 가중되어 왜곡된 심리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고유한 인격의 존엄이 손상되었다. 남세스럽고 낯을 들 수 없는 불운한 삶을 그 누가 원하겠는가! 곤궁은 늘 거지와 동반하였다. 궁핍은 생각만하여도 전율하게 만드는 글자였다. 빠져나갈 길만 있다면 절대 비천하게 생계를 꾸리지 않을 것이다. 누가 먹을 것을 구걸하는 거지 떼와 같이 지내겠는가. “가난은 비웃어도 창녀는 비웃지 않는다”라는 말은 이러한 심리상태가 비틀린 의식이다. 양가 부녀자가 창기가 된다는 것은 실제 육체를 팔고 인격을 파는 특화된 걸식의 한 방식이다. 창기의 실제 수입은 자신과 가족이 지불하는 대가에 결코 미칠 수 없지 않은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첫째는 빈궁, 둘째는 공백 상태 ; 기초가 박약하다는 말로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문화적으로 공백상태에 있음을 가리킨다. ‘궁(窮)’은 농·공업이 낙후된 것, ‘백(白)’는 문화·과학 수준이 낮은 것을 뜻한다. 1956년 4월, 모택동(毛澤東)이 ‘10대 관계를 논함(論十大關係)’이라는 연설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선진 제국에 비하여 낙후된 것을 표현한 말로, 이러한 공백 상태는 오히려 장래의 창조성과 발전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에서 썼다. 다시 말해, 당시 모택동은 중국 상황은 첫째가 경제적 궁핍이고 둘째가 문화적 백지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벗어나기 위하여 모든 인민이 자발적으로 사회주의 건설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 ‘가난한 상태에서 공산주의 사회로 넘어가다’라는 의미다. 20세기 50년대 말에 나타난 중국 정부의 극좌적인 정치 현상을 말한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입니다.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격이나 다름 없는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일 허젠 허난 속아수다" (일 하려고 하니 수고했습니다) "Thank you for your hard work."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 )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김산의 상징적인 담론들 ‘폭낭’은 제주어로 팽나무를 말한다. 제주에서 폭낭은 깊은 의미가 있다. 폭낭은 오래된 마을일수록 수령(樹齡)과 형태가 을씨년스러울만큼 기괴하지만 그 나무의 역할도 중요하다. 특히 바닷가 마을일수록 그 형태가 상상을 초월하며 풍향수(風向樹)로써 한라산을 향해 빗자루처럼 누워있다. 폭낭의 역할 중 한 가지는 폭낭이 있는 곳이 마을의 중심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더위를 쫓는 쉼터의 역할도 하고, 마을 소식도 서로 전하는 장소가 되기도 하지만 긴급할 때 마을 공회(公會)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또한 폭낭은 대표적인 神木(신목)이 되기도 한다. 본향당 안에 오방색 물색(컬러)을 걸고 신체(神體)가 되는 것이다. 해안 마을은 신체가 석상이나 잡목이 되지만 중산간 마을에선 폭낭이 주요 신체가 되고 있다. 김산이 폭낭을 마을의 중요 사건을 지켜본 목격자, 시간의 증인이라고 하는 것은 그 나무가 인간보다 훨씬 오래도록 역사 앞에 의연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풍경’이라는 담론은 풍경 속에 은닉(隱匿)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찾는 것이었다. 멀리서 자연 그대로 보이는 풍경도 가까이에서 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으로 생채기를 입고 있다. 전쟁, 벌채, 산불, 채집, 사냥, 산행 등 생존과 관련된 직·간접적인 이유들의 흔적이 가득한데 토기 파편, 안경, 소뼈, 농기구, 비닐까지 인간 삶의 파편들은 아름다운 숲에 몰래 숨어 있다. 자연이 어떻게 서서히 사회화되고 있는 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풍경의 일부처럼, 때로는 너무 어색하게 말이다. 몰래 숨긴 것의 보물찾기처럼 숲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다면 결코 보이는 것은 없다.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은 자아의 통찰에 달려 있다. ‘동자석’ 은 영혼에 대한 사유(思惟)에서 시작되었다. 어릴 때 산(山;무덤)에서 자주 보았던 동자석이 어른이 돼 새롭게 소환된 것이다. 동자석은 귀여운 아이 석상으로 먼저 떠난 이들을 위해 자손들이 효성으로 세운 현무암 조각이다. 석상 아이는 외로운 조상과 벗이 되어 온갖 심부름을 한다. 동자석은 떠난 조상을 위해 자손들이 예의, 효도, 그리움, 봉양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유독 제주도에 많이 만들어졌다. 여린 나비는 투박한 동자석과 대조를 이룬다. 아이 석상이 자손들 마음의 상징이라면, 나비는 조상의 영혼이 환생한 것으로 생각되는 자연적 실체이다. 굿에서 ‘나부(나비)’는 조상의 영혼으로 관념돼 한지 조각으로 날려 보낸다. 동자석과 나비는 서로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인간의 육신과 영혼의 상보성(相補性), 조상과 후손이 교감하는 시간, 돌의 강함과 유기체의 유연함을 서로 대응시키고 있는 관계다. 무기물과 유기물도 모두 자연에서 나서, 결국 현실에서 만나고 다시 원래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작가의 영원회귀사상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백록(白鹿)’은 한라산 신선 사상에 입각한 표현이므로 제주에서 장수와 평화를 상징하는 담론이 된다. 백록, 숲의 빛나는 만남 김산은 요즘 신비한 숲을 그리고 있다. 한 마리의 백록은 지금 한라산에 없지만 작가의 마음에는 늘 살고 있다. 백록의 숲은 과거 제주 원시림을 상징하기도 하고, 한라산 자락에 있는 곶의 모습이기도 하다. 원형(archetype)의 숲 사이 한 마리 흰 사슴은 제주의 상징으로 빛을 발한다. 고려시대 제주에는 노장 사상, 무속과 불교가 유행하였는데 ‘당(堂:본 향당)오백 절(寺)오백’이라고 하여 제주섬 곳곳에 신당과 절간이 매우 많았었다. 예전 한라산은 사슴, 노루들의 놀이동산과 같았으나 조선시대에 해마다 다량의 사슴, 노루 가죽을 진상하다보니 19세기 말에 이르러 한라산 사슴이 멸종하였다. 흰 사슴은 조선 초기부터 한라산에서 포획하여 조정에 바친 기록이 있고, 전설에 사슴 무리를 돌보는 신선이야기가 전해온다. 구전에 의하면, 한라산은 홍산(紅山), 청산(靑山), 백산(白山) 세 가지로 불렀다. 봄에는 붉은 진달래, 참꽃이 가득하고 가을에는 단풍이 빨갛게 물들어 홍산이라 하고, 여름엔 수목이 푸르러서 청산(靑山)이 되며, 겨울에는 흰 눈이 덮여 백산(白山)이라고 했다. 계절 따라 변화무쌍한 한라산에서는 남극노인성을 볼 수 있으며, 신선이 날마다 백록(白鹿)을 데리고 와 물을 먹이는 곳이라서 백록담이라고 불렀다. 한라산은 예로부터 이처럼 노인성, 신선, 흰 사슴, 불로초, 영지버섯 등 도가의 장수사상이 깃든 곳으로 유명했다. 한라산을 꼭짓점으로 보면 제주도는 남북의 길이가 짧고 동서의 길이가 긴 타원형의 섬이다. 180만 년 전 화산으로 만들어진 섬이기에 가는 곳마다 검은 색 현무암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그 산허리 아래로 에워싸고 있는 곶이라고 부르는 숲이 여러 군데 있는데 오늘날은 곶자왈이라 부르고 있다. 곶은 우거진 숲을 말하며 한자로는 ‘수(藪)’로 쓴다. 지역민들은 오래전부터 ‘술’이라고 불렀다. 곶자왈은 근래에 만들어진 합성어로 곶=산 숲, 또는 깊숙한 산속의 수풀이고, 대규모로 숲을 형성하고 있다. 연관된 명사로 곶질(길). 곶밧(밭), 곶쉐(소), 곶돌(아아용암판석) 등의 말이 있다. 자왈=가시밭, 또는 작은 잡목이나 수풀이 우거진 가시덤불 지대로 작은 규모이고 곶가까이나 또는 밭 구석에 형성된다. 연관된 말로 가시자왈(가시가 많은 자왈)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실상 곶은 원시림 숲이 있는 장소이다. 제주는 바다로 둘러진 울울창창한 고도(孤島)였지만 몽골이 일본 정벌을 위해 한라산에서 벌목하여 수백 척의 전선(戰船)을 만들었거나 목장용 목책(木柵), 초가의 자재(資材), 진상선(進上船) 제작, 숯 재료 벌채, 화전(火田) 개간 등에 의해서 오늘의 숲의 모습이 되었다. 김산의 숲에 대한 모티프는 곶(자왈)에서 시작되었다. 곶은 제주인의 생활근거지로 대개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사냥, 땔감과 열매의 채취, 목양(牧養), 숯가마 운영, 도피 은둔, 비념의 장소이기도 했다. 숲은 제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 장소가 된다. 숲으로 보여도 숲 이상의 사회적 장소였던 것이다. 김산의 백록은 한라산의 자연과 제주인의 삶의 소망으로써 장수사상을 근원에 두고 있다. 숲은 신성한 곳으로써 백록의 길이자 우주(하늘)의 기운이 내리는 영역이다. 이때 백록은 작가의 염원의 상징으로써 세계, 인간, 생태, 사물 모두를 아우르는 수평적 관계의 길로 안내하는 매개자가 된다. 특히 사실적인 묘사와 대기 원근법의 표현은 세속에서 벗어난 성스러운 신비주의를 더하고 있어서 마치 오늘날의 문명을 역설적으로 되돌아보게 한다. 자연스럽게 현재의 우리 세계를 비판적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자연의 모든 것이 인간과 공생하는 관계라면, 여기에서 백록은 인간의 온갖 행위들을 응시하는 신성한 존재로서 현현(顯現)한 것이다. 인간다움의 마지막 모습이, 우리에게 여전히 양심이 남아있을 때까지라고 한다면 그래도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볼만하다. 김산의 염원은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숲의 생태적 ‘아름다움이 그대로 있음으로’ 묻고, 백록이 빛나는 ‘순백(純白)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것으로 답하고’ 있다. 모든 색의 마지막은 처음 바탕색(素色)일 것이라는 믿음에서 김산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인간이여, 숲을 버리고 우리는 어디까지 추락할 것인가?”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거지를 보는 관점에 모순이 존재한다. 복잡하고 여러 특징을 가진 사람이 모인, 모순에 가득 찬,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구성원이기에 그렇다. 신비한 조합이 모순된 관점을 가지게 된 원인이다. 각양각색의 거지 유형을 식별하면 그 일부를 알 수 있다. 거지의 여러 가지 걸식 방법으로 분류하면, 거지를 크게 11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 첫째, 지팡이를 짚고 그릇을 들고 다니면서 거리에서 동냥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그 다음으론 길거리에서 무릎을 꿇고 다니면서 동냥하는 거지, 그 다음으론 큰소리로 ‘동냥 줍쇼’ 외치며 다니는 거지가 많다. 여기에는 네 가지 부류가 있었다. 동항(東項), 서항(西項), 홍항(紅項), 백항(白項)으로 구분된다. 억지 부리며 강압적으로 구걸하는 거지는 홍항이고 애걸복걸하며 구걸하는 거지는 백항이다. 동항과 서항은 어떠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둘째, 전문적으로 경조사를 거행하는 점포, 매장, 가정에 가서 금일봉을 요구하는 거지다. 거지에게는 근거지가 있었다. 자기 경계를 넘지 못했다. 다른 근거지에서는 구걸하지 못했다. 규정과도 같았다. 금일봉 액수의 대소는 큰일을 치루는 가정의 크기에 따라 달랐다. 이외에 거지는, 신부를 맞을 때나 영구를 바랠 때 일을 도와주면서 수수료 일부를 받았다. 셋째, 다른 일은 하지 않고 강호 여러 지역을 유람하는 거지다. 한 지역에 가면 현지 거지의 우두머리를 찾아가 동냥하였다. 1년에 한 곳을 한두 번만 가야한다. 어떤 때에는 길 가는 사람에게나 상점을 찾아가 구걸하기도 하였다. 넷째, 기예를 팔면서 강호를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거지다.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사방으로 돌아다녔다. 희곡이나 도정(道情)1)을 음창하거나 산가(山歌)2)나 연화락(蓮花落)3)을 불렀다. 이마에 그릇을 올려놓는 것과 같은 사완(耍碗), 손가락이나 콧등으로 사발 돌리는 소잡사(小雜耍)를 하기도 하고 칼 삼키기, 쇠구슬 삼키기를 공연하기도 하였다. 뱀을 콧구멍에 집어넣고 입으로 나오게 하는 뱀 쇼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기예를 가지고 행인을 불러 모은 뒤 공연 사이사이 멋들어진 부분에서 관중에게 관람료를 받았다. 다섯째, 막일하며 먹고 사는 부류다. 마부를 도와 언덕을 오르거나 다리를 건너는 데에 힘을 보탰다. 체력 노동자의 조수가 되는 부류도 있었고 타인의 물건을 날라다주는 일을 하는 부류도 있었다. 여섯째, 신체불구형 거지다. 불편한 몸으로 거리를 지나는 행인에게 돈을 구걸하였다. 맹인, 절름발이가 있었고 넓적다리 헌 데서 농혈이 흘러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손과 발이 합쳐져 머리 옆에서 자란 기형인 몸으로 구걸하는 거지도 있었다. 독약으로 신체를 훼손시켜 귀, 코, 입, 눈 모두에 작은 구멍 하나씩만 남겨두고 동냥하는 거지도 있었다. 기형인 몸을 가지고 구걸하는 불구자는, 불량배가 인위적으로 멀쩡한 지체를 자르거나 훼손시켜 강압적으로 거리에 나가 구걸하게 만든 후 나중에 이익을 갈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곱째, 거짓말하거나 명의를 도용하여 사람에게 가련하게 느끼게 만드는 방법으로 구걸하는 거지다. 친척에게 의탁했다가 불우하게 재난을 만나 어쩔 수 없이 타향을 전전하게 됐다고 거짓말하는 사람도 있고, 부모가 병들어 효도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동냥하고 있다고 거짓말하거나, 집안에 돌아가신 분이 있는데 돈이 없어 장사를 치르지 못하고 있다고 거짓말하며 구걸하였다. 혹은 코가 썩어간다거나 궤양이 생겼다고 하거나 피가 나고 고름이 흐른다는 등 일부러 몸에 병을 만들어 구걸하는 거지도 있었다. 분장한 거지가 그들이다. 여덟째, 억지 부리며 강제로 요구하는 거지다. 생떼부리는 경우다. 범죄자인 경우도 있었고 불량배인 경우도 있었다. 돈을 요구하다가 주지 않으면 곧바로 강압적으로 돌변하여 생떼부리며 칼로 자신의 머리나 팔, 얼굴 등을 자해하였다. 피 흘리면서 겁주는 경우다. 돈 줄 때까지 그런 행동을 계속하였다. 아홉째, 귀이개와 같은 조그마한 물건을 팔면서 구걸하는 거지다. 주로 거지 두목이 일하는 데에 눈과 귀 역할을 했다. 열째, 여자거지다. 이런 부녀자는 특별한 기예나 특기가 없었다. 불구자이거나 위장해 돈을 편취하기도 하였다. 열한째, 남녀가 함께 구걸하는 거지다. 사찰이나 도관에서 아직 식지 않은 향의 재를 운송해주면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빗자루로 먼지를 털어주면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외에 의사 노릇하면서 약을 팔며 다니는 경우도 있고 점치면서 구걸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구걸하거나 노인이나 병자를 데리고 다니면서 구걸하는 거지도 있었다. 가지각색이요 형형색색이다. 세상의 추태란 추태는 다 동원하였다. 상술한 여러 가지 형태는 대부분 예나 지금이나 일맥상통한다. 현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거지꼴하고 다니면서 편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무리를 어찌 증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물며 그중에 머리털이 치솟는 범죄행위가 감춰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강탈, 약탈, 간음, 강도, 절도, 상해를 입히는 경우가 그 예이다. 역대로 사람들은 변함없이 꼬임에 빠져들었다. 여전히 도외시하며 손해를 당했다. 그러면서 불결한 재주를 부리게 만들었고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량한 마음을 모독하고 희롱하게 만들었다. 일부 사람들은 본질을 꿰뚫어보고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쳐버리기도 했지만, 거지 놀음을 알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은 주동적으로 열성적으로 자비의 마음을 내어 그 놀음에 따랐다. 거지의 수법은 변했다 해도 그 본질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고 예나 지금이나 판에 박은 듯이 특정한 하위문화의 전통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생계 때문에 어쩔 도리 없이 곤경에 빠진 거지조자 많은 패악을 저지르는 무리와 한패거리처럼 오해 받고 있다. 사람들은 거지의 희롱 때문에 판단내리기를 어려워한다. 누가, 어느 것이 진짜 거지인가? 어느 것이 가짜 거지인지, 누가 쉬이 분간할 수 있는가? 어느 누가 흥미를 가지고 진짜와 가짜를 세밀하게 판별하려 하겠는가? 거지의 세계는 실로 귀신과 사람이 섞여 있는, 어룡혼잡의, 신비하면서도 죄악이 충만한 세계임은 분명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도정(道情)은 곡예(曲藝)의 한 종류다. 당대의 『승천(承天)』, 『구진(九眞)』 등 도곡(道曲)에서 시작된 창(唱) 위주의 곡예(曲藝)다. ‘어고(魚鼓)’와 ‘간판(簡板)’으로 반주한다. 원래는 도사(道士)들이 강창(講唱)한 도교(道敎) 이야기의 곡(曲)이었는데 나중에 일반 민간고사로 제재를 삼았다 ; 어고(漁鼓), 타악기의 하나로, 죽통(竹筒)의 한쪽에 얇은 가죽을 씌우고 손으로 친다. ‘도정(道情)’의 주요 반주악기다 ; 간판(簡板), 한 자 남짓한 대나무 판이나 나무판 2쪽으로 된 타악기의 일종으로 ‘희곡(戱曲)’나 ‘도정(道情)’의 반주에 썼다. 2) 산가(山歌), 남방의 농촌 혹은 산촌에서 유행하던 산이나 들에서 일을 하거나 사랑을 구할 때 부르는 민간 가곡이다. 3) 연화락(蓮花落)은 설창(說唱)하는 전통 곡예 예술이다. 공연자는 1인이 일반적으로 말하기도 하고 노래하기도 한다. 칠건자(七件子)를 치면서 반주한다. 몇 사람이 간단히 분장하고 대나무 판을 치면서 노래하기도 한다. 통속적인 내용을 가진 가곡이다. 보통 노래의 매 단락마다 ‘연화락(蓮花落), 낙연화(落蓮花)’라는 메기는 소리를 붙인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입니다.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격이나 다름 없는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안트레 들어 왕, 저녁 먹엉 갑서 (안으로 들어오셔서 저녁식사하고 가십시오) "Come inside and have dinner before you leave."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 )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바닷속 파도의 의미 - 타미키오 L. 둘리(Tamikio L. Dooley) 저물녘이 되어서 햇빛이 쉬고, 달이 밤을 즐겁게 하네. 내 뒷마당이 나를 맞이하지, 바다 앞의 해변 소리와 함께, 매 저녁 이 순간에만, 긴 낡아지는 가운을 걸치고 맨발로 거닐어… 바다로 향해서 나 자신을 찾아가고, 바다의 파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듣고 포용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하네, 내 발밑의 모래를 느끼며, 세상에 신경을 쓰지 않네! 매일 나 자신을 보면서, 잠이 들지 않는다 해도, 바닷가 가장자리에 물이 뿌려질 때, 얼음 같은 파도가 내 발가락에, 희망을 가득 심어주지 내가 충분히 용감해져서 다가오는 파도로 발을 디딜 때, 강철의 명예, 목표의 흉갑을 얻지, 그리고 나는 숨 막힐 듯한 파도 속에서 건강한 정신을 얻지. What the Waves Mean in the Ocean (By by Tamikio L. Dooley) Evening approaches where sunlight rest and the, Moon entertains the nightfall. My backward patio greets me, With the sound of the beach before the ocean, Every evening just at this moment, I dress up in my long withering gown with tall bare feet, and stroll… Toward the ocean to find myself, What the waves mean in the ocean? This is why I visit to listen and embrace as I, Arrange the bottom of my feet into the grains, not, Accepting a care in the world! I am the world as I look at myself each day, Even though sleep, Fails me, At the spray of the edge of the seashore, Icy waves rush, Against my toes, Enchanting them with hope, When I become brave enough to step into the demanding waves, I shall attach honor of steel, breastplate of purpose, And the sound mind as I suffocate in the ocean waves. ◆ 타미키오 L. 둘리(Tamikio L. Dooley) = 수상 경력이 많은 작가이며 시인이다. 그녀는 150개의 작품이 있으며 저서 90권을 출판하였다. 그녀는 범죄, 스릴러, 미스터리, 판타지, 역사, 서부, 로맨스, 좀비 아포칼립스, 초자연적 주제의 소설과 실화를 쓰고 있다. 그녀는 여가에는 단편 소설, 시, 기사, 수필, 건강 책, 어린이 책, 일기, 저널, 영감을 주는 책, 문화, 아프리카계 미국인 및 역사책을 쓴다. 그녀는 CreatiVIngenuitiy Magazine의 창립자이자 발행인, Friendship of People Magazine의 편집장, The Daily Global Nation Newspaper의 대사이다. 또한, 타미키오 둘리 작가 코치 기구의 회장이자 창립자이며, Empowering Education Skills and Programs의 회장, 문화 및 예술 유산, 평화 및 회복력을 위한 동맹 (ACAHPR)의 회장, (IFCH) 국제 창의성 및 인간성 포럼 모로코 왕국의 대사, 명예 회장, 의장 및 고문, (AFC) 아랍 재단 국제 재단의 이사, EngLang Skills Training Academy (ELSTA) 기관에서 취업 능력을 위한 영어 트레이너 및 작가 기술 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이다. 타미키오는 또한 World Wide Writers Association의 국제 사무국장이다. 그녀의 작품들은 Humanity Magazine, CreatiVIngenuitiy Magazine, Kidliomag, Friendship of People Magazine, The Daily Global Nation Newspaper, Connections E-Magazine 등 다른 잡지와 신문에 소개되었다. 그녀는 Bard's Day Key Anthology, People's Poetry Parliament, Multinational Pen Soldiers Poetry Anthology 등에 발표된 작품으로 다음과 같은 상과 자격증을 받았다. <수상 및 자격증> 2016년 9월 최고의 범죄 작가로서의 명예로운 인정 2023년 방글라데시 국립 시인 무대 시상 2023년 고귀한 상 2023년 하이퍼시 시집 (1700명의 시인이 참여한 시집)에 대한 자격증 2023년 "Zheng Nian Cup" 국립 문학 대회 (2위) 2023년 가상 국제 예술가 갤러리 자격증 2023년 최고 리더십상, 최고 시집상 2023년 인민 시의회 문학 자격증 2023년 러시아 니즈니 노브고로드의 V.M. Terehov 기념 자격증 2022년 세계 문학상 2016년 범죄 부문에서 처음으로 수정 트로피상 수상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켜준 혁신적인 과학 기술을 꼽는다면 항생제와 백신을 들 수 있다. 미생물에 대항하는 무기인 항생제와 백신의 개발로 인간은 미생물과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인간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아도 감염병에 잘 걸리지 않게 하여 도시의 규모가 급속히 커질 수 있었다. 항생제는 우리 인체에 들어 온 세균의 증식을 억제하거나 죽이는 물질로 세균성 감염을 치료하는데 사용된다. 곰팡이를 죽이는 물질은 항진균제라 하고,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하는 물질은 항바이러스제로 따로 분류한다. 항생제가 외부에서 들어 온 적을 죽이기 위해 투입된 무기라면, 백신은 우리 몸의 면역 체계를 강화시켜 우리 스스로 적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물질이다. 인간에게 치명적인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대해 많은 백신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백신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다룰 것이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전쟁을 통해 서로를 끊임없이 죽여 왔지만 실제로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의해 죽은 인간의 수가 훨씬 더 많다. 심지어는 콜롬버스가 신대륙으로 건너 간 대항해 시대 이후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원주민 들이 몰살당한 원인이 스페인 군대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유럽인들이 전파한 감염병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인류를 가장 많이 죽인 세균과 바이러스로는 흑사병, 스페인 독감, 결핵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흑사병은 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스페인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전 세계 인구 약17억명 중 약 5억명을 감염시켜 1700~500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히 결핵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을 가장 많이 죽여 온 감염병으로 지금까지 200여년 동안 결핵에 의해 약10억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고, 현재도 매우 위험한 세균성 질병으로 불명예스럽게도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결핵 발생률이 2위(2022년 기준)이다. 이외에도 세균에 의한 감염병으로는 콜레라, 이질, 폐렴, 매독, 나병(한센병) 등이 인간의 건강과 수명에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수백년 전만 하더라도 세균성 질병 때문에 인간의 평균 수명은 30살이 안될 정도였고 태어난 아이 10명 중 3명은 한 살도 되기 전에 사망했다. 현미경이 없던 시대에는 세균의 존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감염병의 원인을 신의 징벌이라고 여겨왔다. 나병(한센병)에 걸리면 죽지 않더라도 피부가 문드러져 외모가 흉측해지므로 문둥병이라고 부르며 혐오하기도 했다. 흑사병도 손과 발이 괴사하여 검게 변하면서 죽게 되는 신의 형벌이라 여겼다. 레벤호크가 세균을 관찰할 수 있는 현미경을 발명하면서 세균 존재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이후 과학자들은 미생물에 의해 병이 생기고 전파되는 것을 증명하였다. 감염병의 원인이 미생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뾰족한 수는 없고 여전히 인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면역력의 차이에 따라 같은 미생물에 노출되더라도 병에 걸리는지 또는 죽는지가 결정되었다. 이에 인류는 백신과 항생제를 개발하여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에 맞서기 시작했다. 페니실린이라는 항생제의 발견은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려주었다. 항생제가 없던 시대에는 세균에 의한 병에 걸렸을 때 자체 면역에 의해 치유가 되지 않으면 의사들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많은 과학자들이 세균을 효과적으로 죽이는 물질을 찾으려고 노력한 결과, 영국의 세균학자 플레밍에 의해 페니실린이 발견되었다. 황색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배양 접시에 우연히 푸른곰팡이가 떨어져 자랐는데 그 주위에는 세균이 죽어 투명한 부분이 형성된 것을 보고 푸른곰팡이가 균을 죽이는 물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니실리엄(Penicillium)이라는 푸른곰팡이가 만들어 내는 물질이라 하여 페니실린(penicillin)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후 체인과 플로리가 페니실린을 추출하고 정제하는 방법을 개발하고 동물실험과 임상실험을 거쳐 제품으로 대량 생산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항생제가 탄생한 것이다. 이 공로로 체인과 플로리는 플레밍과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하였다. 페니실린은 제2차세계대전 말기인 1943년에 상용화되어 세균에 의한 감염으로 목숨을 잃던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하는 기적의 약이 되었다. 페니실린은 인간을 감염병으로부터 지켜내는 영웅이었고, 인류는 이제 세균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뒀다고 대부분이 생각했다. 하지만 몇몇 과학자가 우려한대로 페니실린이 발견된 지 불과 1년만에 페니실린의 공격을 무력화하는 페니실린 내성균이 나타났다. 세균은 돌연변이를 통해 페니실린을 무력화시키는 무기를 만드는 유전자를 가지게 되었고 자기 후손에게 이 유전자를 넘겨주는 것은 물론 내성이 없는 다른 세균에게 전달해주어 내성을 갖게함으로써 페니실린 내성균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다. 더 이상 페니실린이 항생제로서의 역할을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인류는 메치실린, 암피실린, 세팔로스포린, 아목시실린, 카바페넴 등과 같은 수많은 고성능 항생제를 개발하여 감염병에 맞서왔지만 세균 역시 새로운 항생제에 적응하여 내성을 갖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다양한 항생제에 대해 내성을 갖는 내성균의 출현과 확산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폐렴, 결핵 등과 같은 세균성 질병이 불치병이 되는 항생제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특히 여러 종류의 항생제를 사용하더라도 죽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다제내성균)의 출현은 인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연간 약 70만명 정도가 항생제 내성균에 의해 사망하는데 2050년에는 연간 10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슈퍼박테리아는 병원에 장기간 입원한 환자나 기저 질환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사람에게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면역력이 약하여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을 스스로 죽일 능력이 없는데 항생제마저 듣지 않으니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슈퍼박테리아는 아직까지 면역력이 센 건강한 사람에게는 큰 문제는 아니고, 주로 장기간 입원하고 있는 환자들에게서 발생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건강한 사람에게도 위협이 되는 초슈퍼박테리아의 출현도 있을 수 있다. 항생제를 사용할 경우 항생제에 민감한 세균은 바로 죽지만 지속적인 항생제 노출로 인해 돌연변이를 겪은 일부 세균은 살아남아 증식하므로 항생제의 사용은 필연적으로 내성균을 만들게 된다. 이러한 내성균의 출현과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항생제 남용이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량은 최근 줄어들고는 있지만 OECD 국가들 중에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실제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은 세균이 원인이 아니기 때문에 항생제가 필요하지 않지만 세균에 의한 2차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환자가 요구하여 항생제를 처방하는 경우도 있다. 항생제 내성균의 출현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생제의 사용을 최소화하고 해당 세균에 맞는 적절한 항생제를 선택하여 정확한 용량과 투여 기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①의사가 처방한 경우에만 항생제 사용하기, ②의사에게 항생제 처방을 요구하지 않기, ③처방받은 대로 방법과 기간을 지켜 복용하기, ④감염예방 수칙 준수하기(손씻기, 예방접종 등)와 같은 ‘항생제 내성 예방수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항생제는 세균을 죽이는 물질이어서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에는 소용이 없고 이때는 항바이러스제를 사용해야 한다. 다만 바이러스는 세균처럼 독립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사람의 세포 안으로 들어가 증식하기 때문에 죽이기도 어렵고 죽이는 과정에서 인간 세포에 손상을 줄 수도 있다. 설사 효과적인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한다고 하여도 바이러스는 쉽게 돌연변이가 일어나기 때문에 내성 바이러스가 빠르게 출현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를 직접 죽이는 것이 아니라 증식 속도를 늦추거나 바이러스가 세포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도록 봉쇄하는 역할을 하는데 바이러스마다 증식과 전파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각 바이러스에 특화된 항바이러스제를 개발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이러스에 대한 무기로는 백신이 효과적이고, 인류는 인간에게 큰 위협이 되는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다. 백신의 원리와 활용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청나라 때 A현에는 거지들이 모여 사는 곳이 있었다. 집이 여러 채였다. 사람들은 ‘거지촌’이라고 불렀다. 끼어들기 좋아하는 호사가가 거지촌에 대련 한 폭을 선물로 보냈다. 상련은 “비록 관리도 장사치도 아니지만”이었고 하련은 “오히려 와호장룡(臥虎藏龍)의 안채다”이었다. 한 마디로 거지 집단의 구성원이 무잡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나쁜 사람들이 모여 있고 악행을 감추어주는 장소라는 것을 분명하게 표현하였다. 복잡다단한, 비열함을 간직한 곳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청나라 때 거지에 대한 허가(許珂) 부녀의 관점1)은 근래 사람들의 거지를 대하는 일반적인 인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인구가 나날이 증가하니 생계를 꾸리기가 갈수록 어렵습니다. 외국 상품은 시장에 가득하고 국내 상품은 배제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업자는 더 많아졌습니다. 만약 국가 이익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구멍을 막지 않는다면 나라는 더욱 빈곤해질 것이요, 백성도 더더욱 곤궁해질 것입니다. 오랫동안 이런 지경이 계속되면 민족 공업은 쇠락하고 일용품조차 외국 상품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전국이 거지가 되는 국면을 변화시키기 어렵게 됩니다.” 그녀가 집안어른에게 이렇게 말하자 집안어른은 대답하였다. “거지에 대한 내 관념은 여태껏 네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거지에게 가련함을 느꼈다. 같은 인간인데도 우리는 의식주를 걱정하지 않는데 거지는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기 때문이다 ; 나중에는 거지를 증오하게 되었다. 거지는 의타성이 습성이 돼 스스로 생계를 꾸려나가려 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몇 년이 흐르자 다시 거지를 불쌍히 여기게 되었다.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교도의 길을 강구하지 않아 거지 스스로 생존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그들 자신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다시 수년이 흐른 후에는 지극히 혐오하게 되었다. 거지를 깨끗이 씻어내야 옳다. 깨끗해지길 바랄 뿐이다.” 뜻은 이렇다. 거지는 의타성이 습관이 됐기에 가뭄과 장마 같은 재해나 돌림병 등으로 그들을 깨끗이 씻어내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게 된다는 말이다. 거지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다. 대부분 다 이치에 맞다. 그런데 천재지변으로 거지를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그들 전부를 열등한 존재, 나쁜 놈이라 여기는 것은 옳은가?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평가하는, 하나의 측면에서 전체를 개괄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합리적이지도 않고 사실에 부합하지도 않는다. 거지 집단에는 어중이떠중이가 다 모여 있다. 사람과 귀신이 섞여 있다고 표현할 정도다. 어룡혼잡이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잡스럽게 모여 있기에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법이다. 어찌 동일시하여 깨끗이 씻어내야 한다는 말인가. 자연 재해와 사람으로 인한 재앙이 굶주림과 빈곤을 만들었다. 그것이 거지가 생겨나게 된 근본 원인이다. 재앙이 빈번해지면 국가의 어려운 국면도 쌓이고 쌓이게 된다. 거지도 차례차례 끝도 없이 나타난다. 그중 도적이나 불량배가 저열한 근성을 쉬이 노출해 큰일을 저지르게 되고 온갖 나쁜 짓을 저지르게 되어, 가정과 국가는 불안하게 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거지에 대하여 가련하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지극히 증오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어쨌든 간에 거지의 형상은 흠모하거나 좋아하는 대상은 되지 못한다. 거지를 가련하게 여기더라도 경계하게 된다. 혐오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산은 최남단 항구도시 모슬포 출신의 젊은 작가로 2023년 제49회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 대상 작가이다. 2024년 3월 20일부터 4월 8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내 제주갤러리에서 유화작품 22점으로 김산 초대개인전 ‘염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 김산은 제주대학교에 미술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2010년 대학 2학년 때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회의 개인전과 70여 회의 초대전·단체전에 참가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젊은 모색 2021’에 선정된 바 있는 유망작가이며, 2024년 3월 이중섭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함께 열고 있다. 이번 서울 제주갤러리 초대전 ‘염원’은 작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던 삶의 소중함에 대한 염원(念願)을 통해, 생명의 근원은 자연이며, 자연과 사람이 서로 교감해야만 상생공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에는 고향에서 느꼈던 ‘본향(本鄕)’에 대한 깊은 애정의 결과이며, 본향은 제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써 거기에서 나오는 ‘본향의식’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의 본질이라는 것을 작품마다 진득하게 담고 있다.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찾아서 최근 김산의 그림은 신비한 기운으로 싸여 있다. 고전적인 영성(靈性)의 느낌이랄까, 울창한 숲에서 나오는 청량(淸涼)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기운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림은 삶의 반영되기에 화가의 삶에 그 궁금증이 더해진다. 김산의 고향은 가파도와 마라도로 가는 뱃길의 작은 항구 도시 최남단 모슬포이다. 이 모슬포가 속한 대정읍은 과거 외세의 질곡(桎梏)의 역사가 스민 아픈 땅으로, 여전히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대정읍은 옛 대정현 지역으로 말만 들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알 정도로, 동계 정온과 추사 김정희 등 정치적인 이유로 많은 이들이 유배를 왔고, 1901년 신축민중항쟁의 장두 이재수의 고장이며, 황사영의 아내이자 천주교인 정 마리아의 슬픈 묘역이 있는 곳이다. 모슬포의 해안은 조선시대 왜구들의 침범이 잦았고, 그 앞을 흐르는 구로시오(黑潮) 해류는 동인도회사 하멜을 비롯하여,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오키나와, 규슈 지역의 어민들을 데리고 오고, 반대로 제주민을 그 곳으로 데려가 이어도의 희망을 품게 했다. 현대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알뜨르 비행장이 있었고, 일본군이 패망하여 떠나자 미군이 다시 관여하면서, 한국전쟁 때 육군 제1훈련소가 만들어지고, 중국군 포로수용소 등 피난민을 포함한 군사기지촌이 되었다. 전후에는 미군부대 맥라브 기지를 만들어 휴양지라는 이름으로 운영했으며, 지금은 미군으로부터 한국 공군에게 이관된 모슬봉 레이더기지가 동북아시아를 감시하고 있다. 김산의 증조부는 4·3항쟁에 연루돼 6·25때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후 섯알오름에서 희생돼 백조일손(百祖一孫)에 묻혔다. 당 조모(祖母)는 해녀(잠녀)로 일생을 보내며 본향당에서 바다의 공포를 이겨냈었다. 김산의 그림에는 그의 가계(家系)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산의 작품은 마치 리트머스(litmus)지(紙) 처럼 자신의 가족사와 제주사가 중첩되면서 4·3, 굿, 폭낭, 본향의 의미들을 해석한 것이다. 김산의 독특한 성장배경과 맞닿아 있다고나 할까. ‘사회적 풍경’이나 ‘백록’의 주제는 그 가족사의 확장이며, 사실적인 묘사 방식을 지향하는 것도 그런 역사 인식과 장소 경험을 반영한 것이고, 초현실적인 관점을 비치는 것도 낭만주의적인 이상향의 시각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 세대의 역사와 시대정신을 MZ세대로 횡단하여 재해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산은 대학생 신분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어릴 적에 시골 고향(모슬포)에서 해녀 할머니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자란 것을 계기로 김산은 2010년 대학 2년을 마치고, 할머니의 바다를 주제로 삼아 '어머니의 바다'전을 이중섭 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끝마치고 군 입대를 했다. 이때 해녀 할머니의 일생에 관심을 가지고, 해녀굿, 물질, 해녀들의 바다이야기를 그릴 수 있었다. 제대후 대학을 졸업하면서 폭낭(팽나무)의 생명력에 매료돼 한동안 볼펜으로 흑백작업과 아크릴릭 칼라 작업을 했다. 그 후 곶(자왈)에 시선을 돌려 곶이 풍기는 원시적인 느낌을 받고 식물의 관찰을 통해서 자연생태에도 마치 인간처럼 삶과 죽음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시골 고향이 전해주는 본향(本鄕:마을수호신)의 의미가 매우 강렬해서 이후 폭낭, 사회적 풍경, 백록, 곶(자왈)의 주제에 상징성을 되살릴 수 있었다. 사회적 풍경에는 다시 산담과 4·3의 동굴, 두 할머니(성할머니와 처할머니)의 초상, 숲이 등장했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버스정류장, 동자석 같이 기억상실된 일상의 풍경에도 눈을 돌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1'에 선정 작가가 돼 부스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작품은 경험에서 얻은 삶의 형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인데도 어떤 때는 크게, 어떤 때는 작게 보인다“고 했다. 이때 대상은 사물이거나 풍경 아니면 물체일 것이며,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 삶의 경험에 대한 느낌, 보는 방법에 따라 그렇게 보이게 된다. 또 대상은 색채의 시각적인 변화에 의해서 물체의 확장과 축소, 공간 거리에 따라 대기 원근의 음영적 빛의 작용에도 영향이 미친다. 결국 다빈치는 "경험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경험을 중시 여겼다. 그는 “감각을 통과하지 않는 정신적 행위는 모두 공허하다”라고 할 정도로 감각적 경험을 최선으로 여겼다. 경험은 시간을 전제로 하여 자신의 삶을 깊이 있고, 익숙하게 만든다. 곧 인생이 경험 자체인 것이다. 생명체인 인간은 모든 삶의 정보가 이 경험에서 나오므로, 누구나 공간에 대한 지각 경험은 다르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 경험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화가의 경험은 자신의 사회적 환경에 따라 인상적으로 강렬하게 남은 것들이 작품의 주제 담론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인상(印象)은 지각되는 순간 경험으로 남고, 그 인상에 대한 느낌들이 몸의 기억인 관념이 된다. 우리는 온갖 시각적 관념 속에서 살아가며 응고된 이념의 그물에 둘러져 있어 볼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념으로 둘러싸인 마음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견고하게 고착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상상적 관념은 실재의 환영(幻影)처럼 꿈과 같이 사실주의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것은 회화가 단지 현실의 재현적인 모방이 아닌, 사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상징, 즉 가상현실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시각은 지각으로써 마음을 움직인다. 오래 전 내면에 쌓인 무의식에서, 외부적 사건, 상황에 따라 동요하는 현실의 감정까지 오감 지각은 항상 유동(流動)하는 감정을 일으킨다. 예술은 바로 이 몸의 경험적 느낌의 결과이다.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는 "작품은 하나의 경험"이며, 사실상 "예술은 작품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정신"이라고 하여, 오로지 작품 속에 화가의 정신세계가 있으며, "예술의 목표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한다.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5~1945)는 “화가는 평생을 다하여 회화를 찾는다. 그때 평생(삶 전체)은 그 목표도 수단도 확실치 않은 창작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는데, 그 창작은 “불확실성과 절대적 열정만이 있는 탐구”라고 말하고 있어 기약없는 예술의 길을 말하고 있다. 사실,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놀이 문화에서 유래한다. 요한 하위징아(Huizinga, Johan, 1872~1945)의 말처럼 문명사회의 예술은 신화와 의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예술도 놀이라는 원초적인 토양에서 자양분을 받고 있다. 현대인의 마음에 자리하는 신화적 상상력은 우리들의 오래된 원초성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신비, 성스러움, 고고함에 대한 그 과거의 우러름은 오늘날은 게시(揭示)의 가치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데 한 화가의 경험은 멀게는 이론적으로 얻어지고, 가깝게는 생활 속에서 획득된다. 우리는 마을길에서, 또는 숲길에서 수많은 사물들과 만난다. 부드러운 바람을 스쳐가고 고개를 내민 나뭇가지를 건드리며 투박한 돌담을 돌아서 먼 산을 마주한다. 돌길, 습지, 밭담, 새, 구름, 나비, 나무, 넝쿨, 이웃의 풍경, 사람들을 바라본다. 경험하는 것, 즉 살아가는 것은 바라봄의 연속이며 스쳐감의 경로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지나가는 것들도 있다. 이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선 매순간 삶의 아름다움과 고통, 기쁨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으며, 충만함과 억울함, 또 보람과 희망, 분노와 평안이 교차하거나 뒤섞인다. 흔히 사물들 간 스치고, 지나가고, 만나는 것을 관계라고 하는데 어떤 관계는 신중하고 어떤 관계는 의미 없이 잊힌다. 어떤 관계에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혹은 어떤 만남에서는 타자의 실체를 깨닫기도 한다. 언제나 삶은 자신을 속이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결국 인생은 자신의 문제들을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사물자체는 세계 전체이며 사물들은 고유한 속성이 있다. 이를 테면 숲에서는 나무와 풀, 서식하는 동물이 중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공간에서 중심이 된다는 것은 보는 자의 시선의 선택이다. 지정된 사물들에서 그것들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장소의 현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거기의 사물들의 속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소에는 인간의 시선 방향에 따라 빛나는 존재들이 있다. 하나의 공간에서 빛나는 존재들은 무엇이나 될 수 있지만 그것의 선택은 오로지 화가의 영혼에서 할 일이다. 예술은 사물의 이미지를 강렬한 인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숲과 같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오래된 시간 너머 백록같이 과거의 존재자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예술은 무엇이든 소환할 수 있으며 상상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작품으로부터 규정되어야만 한다. 작품을 보면 화가의 정신세계가 보이고 자신의 ‘존재 드러냄’이 보이고, 또 다른 무한한 ‘세계가 열려있음’이 보인다. 현실과 허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고뇌하는 화가의 열정도 보인다. 그 열정의 결과들은 불확실성을 압축시킨 담론 주제의 빛남으로 모아진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입니다.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격이나 다름 없는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벹이 과랑과랑 헌 날이우다 (오늘은 햇볕이 쨍쨍한 날입니다) "It's a sunny day today."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 )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거지라는 이름으로 사기 치거나 도둑질하거나 건달이 되는 등 사회 치안을 해치는 범죄행위를 자행하는 사람이 많았다. 송나라, 원나라 이래로 그 해로움은 극심해 졌다. 화갑이 넘은 늙은 거지 노파가 사기에 골몰하기도 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항주(杭州)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당시 항주에는 야간에 승객을 태워 강을 건네주는 선박이 있었다. 한밤중에 100리를 가는데 남녀가 뒤섞여 건넜다. 남녀 승객이 머무는 칸 사이에는 판자 하나가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인화(仁和)현(縣)1)에 풍류를 즐긴다고 자처하는 장(張) 씨 성을 가진 경망스러운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소년이 배를 타고 부양(富陽)으로 가고 있었다. 옆 칸에서 자신에게 웃는 듯 마는 듯 주시하는 여인이 있었다.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니면 뭐겠는가. 밤 12시 경이 되어 승객 대부분이 잠을 청할 때였다. 장 씨 소년은 판자 너머에서 자신의 하체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꼈다. 소년은 기뻐 아예 양물을 꺼내 어루만질 수 있게 하였다. 손을 뻗어 상대를 만졌다. 여인이 틀림없지 않은가. 몸을 일으켜 상대를 덮쳤다. 아무 말도 건네지 않은 채 운우의 정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닭이 울 때가 되자 장 씨 소년이 몸을 일으켜 자신이 있던 칸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런데 상대방 여인이 단단히 껴안은 채 놔주지 않았다. 소년은 여인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여기고는 더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눴다. 날이 서서히 밝아올 때, 소년은 자신과 함께 있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백발이었다. 대경실색하자 여인이 말했다. “나는 본래 길거리에서 빌어먹은 거지 노파요. 올해 60살이 넘었소. 남편도 자식도 친척도 없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한탄했는데 지난 밤 지나칠 정도로 그대에게 흠뻑 사랑을 받았소. 속담에 하룻밤 부부라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였소. 하룻밤이지만 깊고도 깊은 인연을 맺은 셈이오. 지금 당신은 내 남편이오. 어떤 예물도 필요 없소. 그저 당신만 따를 거요. 죽을 먹으라면 죽을 먹고 밥을 먹으라면 밥을 먹을 것이오. 어떻소?” 장 씨 소년은 놀라고 난처해져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여러 승객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 잠에서 깨서는 한바탕 웃어 제쳤다. 나중에 소년에게 2백 량을 주고 사례하게 하자 거지 노파는 그제야 손을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거지 노파가 밉살스럽기는 하지만 실로 가련하기 그지없다. 장 씨 소년은 자업자득일지니. 그래도 그 황당한 행동거지에는 동정이 간다. 시골 어린이를 유괴해 동냥질시키고 따르지 않으면 죽였다 청나라 도광(道光) 17년(1837) 9월, 화중〔禾中, 가흥(嘉興)〕 삼탑사(三塔寺) 남쪽에 시골 아낙네 왕(王) 씨가 살고 있었다. 시댁과 친정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때가 첫 곡식을 수확한 때라 보보(餑餑, 중국식 간식)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친정집에 갈 채비를 하였다. 남편은 이튿날 시내로 나가 장사하여야 했기 때문에 빨리 돌아오라고 부탁하니, 부인은 그러마라고 답하고는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갔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도 무슨 까닭인지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남편이 처갓집으로 가서 장인에게 상황을 물으니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 없자 어쩔 수 없이 귀가하였다. 그날, 집을 나선 후 저수지를 따라 걷다가 만수산(萬壽山) 북쪽 1리 쯤에 다다랐을 때 건너편 기슭에 정박해둔, 얼룩조리대로 지붕을 엮은 배인 약포선(箬包船)이 보였다. 급히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배를 불러 세운 후 약포선까지 태워달라고 하였다. 가까이 가자 어린 거지 둘이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고 있었다. 어린 거지가 손에 보보를 들고는 다른 거지에게 욕을 해댔다. “어제 사부가 말했잖아. 네가 비럭질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네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했잖아. 이 보보는 내게 상으로 준 거란 말이야. 네가 왜 뺏어!” 농부가 가까이 다가가서 광주리에 닮긴 보보를 보았다. 자기 아내가 만든 보보처럼 보였다. 어린 거지에게 물었다. “네 사부는 이 보보를 어디에서 가지고 왔니?” 어린 거지가 답했다. “어제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사부에게 저수지를 건너게 해달라고 불렀어요. 사부는 배를 몰고 기슭으로 건너가 그들을 태워주고 돈을 벌었어요. 가지고 있던 보보 광주리로 대신 갚은 거예요. 지금 이거 몇 개 밖에 남지 않았단 말이에요.” 말을 듣자마자 농부는 곧바로 장인에게 달려가 알렸다. 사람 수 십 명을 모은 후 각자 몽둥이를 들고 배에 올라가 나이 든 거지 두 명을 붙잡았다. 배를 수색하였다. 뒤쪽 선실에 항아리 여러 개가 놓여있었다. 열어보니 항아리에 잘려진 시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팔다리가 잘려나갔거나 몸통이 잘린 시체들이었다. 오래된 시체도 있었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보이는 시체도 있었다. 작은 항아리 하나는 진흙으로 입구가 봉해져 있었다. 비틀어 열어보니 농부 아내와 아들의 머리가 담겨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아 선혈이 낭자하였다. 거지들을 묶어서 관부로 압송하였다. 읍령(邑令)이 심리하며 추궁하자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그 나이 든 거지 둘은 배를 타고 강호를 유람하면서 전문적으로 시골 어린이를 유괴해 동냥질시키면서 살고 있었다. 유괴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렸다고 하였다. 흉악하고 잔인함에 모두 치를 떨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