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노동위원회의 권리구제 대리인(법원의 국선변호인과 유사한 제도)으로 활동하다 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분쟁에 휘말리는 사용자와 노동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근로기준법 등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하려고 노력하는 사용자가 나름대로 꼼꼼하게 공부하긴 하지만, 관련 규정을 상세하게 파악할 수 없다. 노동자 역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지, 당장 본인이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면, 현재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꽤 유리한 것처럼 느껴진다. 얼핏 봤을 때 상시 근로자 수가 5인 미만인 업장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을 것처럼 해석될 수도 있으나, 근로기준법 시행령 [별표 1]에 따라 적용되는 규정이 적지 않고, 적용되는 규정이 현실과 거리가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단순한 아르바이트가 급하게 필요해서 알음알음 겨우 구하는 과정에 계약서, 임금명세서, 주휴수당 등을 고려할 수 있는 사장님이 과연 얼마나 될까. 특히나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서류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조차 없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였다는 책임은 모두 사용자가 부담한다. 노동자를 위한 구제책과 지원은 찾아보기 쉽지만, 초보 사장님을
최근 형사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후 2심에서는 유죄 판결이 선고된 형사사건이 있다. 이를 소개한다. A씨는 면허가 없는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들이받게 되었다.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B씨에게 경찰에 “내가 운전을 했다”고 허위진술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B씨는 경찰서에 자신이 운전을 했다고 허위진술을 한 후 위 피해자와 합의서도 B씨 명의로 작성을 하여 경찰에 제출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A씨와 B씨 사이가 악화되었고, 이에 B씨는 변심을 하여 실제 운전을 한 자는 A씨이고 본인은 A씨의 사주를 받고 허위 진술을 하였다고 지속적으로 자백을 했다. 그런데도 형사 1심 재판부는 A씨와 B씨에게 둘 다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형사소송법 제310조에는 피고인의 자백이 그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유일의 증거인 때에는 이를 유죄의 증거로 하지 못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이는 피고인이 임의로 자백을 한 경우에 법관이 유죄의 심증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별도의 보강증거가 없다면 유죄판결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이에 위 형사 1심 재판부에서는 B씨가 범죄 사실에 대한 자백을 하는
최근에 상담하였던 사건이다. 편의상 내용을 일부 각색하였음을 미리 밝힌다. 의뢰인은 몇 년 전에 교통사고를 당하였는데, 허리를 다치게 되어서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다행히도 치료 이후 사고 부위인 허리는 이제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는데, 갑자기 전신에 견딜 수 없는 정도의 통증이 지속되어 여러 병원을 찾아서 진료를 받아보았다. 의뢰인은 예전 교통사고의 후유증일 가능성도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의사들로부터 들었다고 한다. 계속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아도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전신통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으며, 일단 통증이 생기면 너무 고통스러워 서있을 수조차 없어 일상생활 자체가 어렵다고 한다. 의뢰인은 이러한 후유장애를 근거로 가해차량의 보험회사에 손해배상 청구를 하고 싶은데 사건을 맡을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나는 사건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였고, 그 이유는 과거 교통사고와 현재 전신통증의 연관성, 즉 인과관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의뢰인은 과거 교통사고도 사실이고,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전신통증도 사실이며, 그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담당의도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였다. 문제는 소송절차에서 교통사
간통죄는 2015년 2월 26일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사라졌다. 간통행위를 국가가 개입하여 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며,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에 맡겨야 할 것이지 형벌을 통하여 강제할 수는 없다는 이유였다. 상대 배우자에 대한 보호는 형법이 아닌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관하여 당시에도 그렇고 현재까지도 찬/반 논쟁이 이어지고 있으나, 어찌 됐든 위 결정 이후에는 상대 배우자의 보호에 관하여는 민사소송에 그 해결이 맡겨져 있다. 외도문제를 민사소송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유책 배우자 또는 외도 상대방(상간녀 혹은 상간남)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한다. 외도 상대방에게 소를 제기한 경우 상대방의 대응은 크게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상대방이 결혼한 사실을 알지 못했으므로 불법행위의 고의가 없었다(자신은 불륜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만남의 기간이 짧고 횟수가 적으며, 유책 배우자와의 공동으로 한 점을 고려하면 원고가 청구하는 위자료 액수는 과다하다는 주장이다. 전자라면 결혼 사실을 알 수밖
법률상담을 위해 찾아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하지도 못하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연을 자주 접하게 된다. 당사자는 그 과정에서 느꼈을 억울함과 황망함을 끝없이 쏟아낸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최대한 도움을 드리려 하지만, 정작 그런 사실관계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상당하다. 우리 모두 당장 축의금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현금이 없어 급하게 빌린다거나, 지인 물건을 잠깐 빌려 썼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사소한 일이지만, 엄밀히 따지면 모두 법률행위라 할 수 있다. 사실, 이런 자질구레한 법률행위까지 모두 계약서, 각서, 차용증 등의 문서를 써야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굳이 문서로 그 내용을 남기기 애매한 일상적인 법률행위의 범위는 모든 사람마다 그 기준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갑작스럽게 상대방에게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런 사실관계를 증명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차용증을 쓰자’라는 말을 차마 꺼내지 못하여 찜찜한 마음으로 돈을 빌려줬다면, 말을 꺼내지 못한 책임을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도움을 드리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나 못 믿어?’, ‘우리 사이에 그런게 필요해?’, ‘일단 급하니깐
우리 나라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에 의하여 성범죄 피해자의 경우 방어권의 행사 및 법륙적 지원을 위하여 피해자에게 국선 변호사를 지정해 준다. 나도 지난 1년간 피해자 국선 변호사로 활동을 해 오면서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을 접하게 되었고, 여러 종류의 성범죄 사건을 처리해 오고 있다. 그런데 수많은 성범죄 중 유독 ‘강제추행죄’에 대하여 가해자의 입장에서 무죄를 주장하거나 실제로 위 혐의에 무혐의 또는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위와 같은 일이 발생하였던 이유는 최근까지도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을 그 성립요건으로 하는데, 이러한 정도가 피해자의 항거가 곤란할 정도일 것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다. 즉, 가해자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스킨십을 한다고 강제추행죄가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피해자가 항거가 곤란할 정도로 폭행 또는 협박을 한 상태로 만져야만 강제추행죄로 처벌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는 1983년도부터 적용된 법리(대법원 1983년 6월 28일 선고83도399 판결)로 현시대와 전혀 부합하지 않는 것이다. 현시대에서는 과거보다 개인의 성적 자기 결정
제주도에는 제주도만의 법이 있다. 무슨 제주도의 관습이나 제주 지역사회에서 통하는 관례를 비유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제주특별자치도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 일반적으로 ‘제주특별법’으로 불리는 법률이다. 제주도에서 거주를 가지고 생활하면, 직간접적으로 제주특별법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제주특별법은 제481조까지 규정한 방대한 법률이며, 그 밖에 시행령, 세부적인 조례까지 더하면 업무상 사건을 처리할 때마다 관련 법령을 찾아 그 의미를 유기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는데도 제법 시간이 걸린다. 특히 제주특별법은 제주도의 종합적인 개발과 보존에 중점을 두고 있기에 토지의 이용과 개발에 관하여 특별한 제한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제주도가 좋아서, 혹은 사업목적으로, 그 밖의 여러 가지 이유로서 제주에 내려왔다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토지에 손을 대었다가는 제주특별법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예전에 맡아서 진행하게 된 사건이다. 사건 당사자는 제주시 조천읍 바닷가에 위치한 임야를 구입하였다. 그 토지는 절벽 부근이어서 전망이 좋았기에 당사자는 가족들을 위하여 목재 데크와 테이블을 설치하여 휴식 공간을 마련하려 하였는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하는 ‘무료법률상담’을 다녀왔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법률을 잘 알지 못해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고, 갚을 필요가 없는 빚을 갚는 등 손해를 보고 있었다. 주로 나온 질문들 위주로 살펴보면 괜찮은 생활법률상식이 될 것 같아 정리해 본다. #1 이자제한법상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이자율은 연 20%(2023년 10월 10일 기준)이고, 연 20%를 초과하여 약정한 부분은 무효이다. 연 20%를 초과하여 이자를 받은 자는 형사처벌(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까지 받을 수 있다. 이자를 연 20%를 초과하여 약정하고 지급하였다면 초과 지급된 부분은 무효이므로 당연히 반환청구를 할 수 있다. 내담자는 1000만원을 빌리고 월 50만원씩 수년 동안 갚는 중이라 했는데, 연 60%에 해당하는 말도 안 되는 이자율이다. 20%를 초과하여 변제한 부분은 무효이므로, 이제까지의 변제로 채무는 이미 전부 변제된 사실을 설명해 드렸다. #2 부모님이 빚이 더 많은 상태에서 돌아가시더라도 자식들이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다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내에 한정승인(고인의 재산 범위 내에서만 고인의 채무를…
고급 정장에 명품 넥타이로 무장한 채 외제차를 타는 멋들어진 변호사를 꿈꾸던 학창시절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동기, 선후배 대부분이 그런 상상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제자들에게,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변호사로 활동하셨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송무 변호사는 3W 직업이라는 것이다. 항상 걸어다니며(Walking), 끊임없이 서류를 써야 하고(Writing), 언제나 기다려야(Waiting) 하는 업보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꿈꾸던 변호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변호사로 일하며 재판에 임하다 보니, 교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재판이 있을 각 법정을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판 사이의 시간을 활용하기 위하여 사무실과 법원을 쉴 새 없이 드나들어야 한다. 사실, 제주의 특성상 대부분 소송이 제주지방법원에서 진행되어 아주 수월한 편이다. 육지에서 일하는 동료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곳곳에 퍼져 있는 법원에 출석하기 위한 그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재판 출석을 위한 이동만으로 하루의 일과시간 대부분을 할애하고, 그 과
제주도에서는 매일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각 지역에서 오일장, 매일장이 열린다. 시장에서는 온갖 상품들이 즐비하고, 이를 구경하고 사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비고 있다. 제주지방법원에서도 매주 화요일 시장이 열린다. 부동산 경매시장이다. 이 경매시장에도 소유권등기를 할 수 있는 과수원, 임야, 대지 등의 토지와 주택, 상가, 아파트, 빌라 등의 건물 뿐만 아니라 자동차, 선박 등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부동산 경매 시장이라고 하면 왜인지 전문 지식을 갖추어야 될 것 같고, 많은 돈이 있어야 될 것 같고, 온갖 문제가 많은 물건들이 경매 시장으로 나온다는 생각에 이에 대해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실상인 것 같다. 그런데 물건을 꼭 사지 않더라도 자꾸 옆에서 구경하다 보면, 부동산 경매 시장만큼 재밌는 곳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부동산 경매 시장은 작은 사회 그 자체다. 금리가 오르다 보면, 담보 대출금을 갚지 못하여 경매 시장에 부동산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게 되고, 담보 대출 실행도 여의치 않아 부동산을 낙찰 받기도 힘들게 되는데, 이에 반해 돈이 준비된 사람들은 그 만큼 싼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이는 요즘 부
변호사로서 법정에 출석하여 재판을 진행하는 송무가 주된 업무이기는 하나, 경우에 따라서는 돈을 받아내는 집행 업무를 맡기도 한다. 민사소송은 국가기관인 법원을 통하여 사적 분쟁에 대한 공적인 판단인 판결문을 받는 것을 주목적으로 하는데, 판결문을 받는 그 자체로 목적을 달성하는 소송도 있지만 후속단계가 필요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예컨대, 누군가에게 빌려준 돈을 받는 것이 목적이라면, 장기간의 민사소송이 끝나 승소 판결을 받았다고 해도 이제 머나먼 여정의 절반 정도 온 셈이다. 판결문은 “피고는 원고에게 돈을 지급하라”는 내용 등이 기재되어 있는 서류이지, 판결문 그 자체가 돈은 아니다. 판결문을 들고 금융기관에 가서 직접 돈으로 바꿀 수도 없다. 그래서 필요한 단계가 그 판결문을 이용해서 실제로 돈을 받아내는 집행, 또는 추심이라고 부르는 절차이다. 집행 절차도 재판만큼이나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집행의 시작은 판결문과 집행문, 확정증명원 등의 필요서류를 발급받는 것이다. 이로서 집행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는 한 셈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집행할 것인가. 채무자의 주소를 알고 있다면 우선 주소지의 부동산등기부를 떼어 본다. 만약 주소지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이야기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에서, 유일하게 멀쩡히 남은 황궁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이며 시작한다. 아파트 주민과 생존자들의 갈등이 생기고, 주민 중에서도 ‘자가주민’과 ‘전세주민’을 나누며 사회의 궂은 면을 보여준다. 영화 내용 중 법률적 쟁점이 되는 줄거리만 추리면 다음과 같다. 대지진 발생 후 기온이 영하 26도까지 이르는 이상저온 현상이 발생하고, 생존자들이 혹한을 피해 황궁아파트로 몰려든다. 생존자들은 아파트 복도, 공동현관에서 생활하다가, 한 생존자가 아파트 호수를 차지하기 위해 아파트 주민을 찌른 뒤 불을 지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을 계기로 아파트 주민은 주민회의를 통해 생존자들을 추방하기로 하고 물리력을 행사하여 추방한다. 시간이 지나고, 추방된 생존자들은 진열을 갖춰 황궁아파트로 진격하고 주민들을 살해한 뒤 아파트를 차지한다. 대지진 발생 직후, 아파트 주민이 아닌 생존자들이 아파트로 들어가도 괜찮은 것일까? 매정하지만, 어찌 됐든 타인의 주거지로 허락 없이 들어갔으니 주거침입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닐까? 형법에는 영화에서처럼 현존하는 위난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