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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54) 이웃나라 제주도를 침략한 왜구 ③

제주도의 왜구 침략

 

일찍이 제주도는 일본과 중국, 한반도를 잇는 무역로 중간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왜구들의 중요한 약탈 대상 지역이 되었다. 바다의 해적활동에 필요한 물과 식량, 땔감 공급지로 중국이나 대만 베트남을 가려면 제주도는 중요한 지점으로 왜구들이 노리는 지정학적 거점이 된다.

 

 

추자도에 왜구가 처음 침략한 것은 고려 충숙왕 10년(1323)이다. 회원(會原)의 조운선을 군산도(群山島:현 고군산 군도)에서 약탈하자 내부부령(內府副令) 송기(宋頎)를 파견하여 왜구를 격퇴시켰다. 또 동년 10월 6일 추자도 등지에서 노략질하고 노약자와 남녀를 잡아갔다. 왜구들이 자주 침략하여 추자도에 사람이 줄어들자 고려 정부는 충정왕 2년(1350)에 추자도 주민들을 제주도 조공포(朝貢浦:도근천) 근처로 이주시켰다. 한편 그로부터 60년 후 조선이 개국 초기인 태종대(1413)에 제주도로 이주한 추자도 주민들의 절반을 추쇄하여 진도로 옮기려는 전라도 관찰사의 진도 목장 계획이 있었다.

 

•추자도 왜구 침략 이후 제주를 침범한 사례를 내용에 따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충혜왕 2년(1341)에 왜구가 정의현에 쳐들어 왔으며, 이듬해에는 무려 700여 척의 배가 내침을 했다. 충정왕 3년(1351)에 왜구가 귀일촌에 침범했다.

•또 공민왕 원년(1401)에는 왜구가 우포(友浦:옛 이름이 범질포인 것으로 보아 화순포이다. 우포(벗개)라면 용수리를 말하기도 한다)를 침범하였다.

•공민왕 8년(1359)에는 대촌(제주성안)까지 침범하였다.

•우왕 2년(1376)에 왜적 600여 척의 대규모 왜구가 제주 주변을 맴돌다가 제주를 침범하니, 탐라 성주 고신걸(高臣傑)이 왜구와 싸우다가 화살을 맞아 부상당해서도 끝까지 전의를 잃지 않고는 왜구를 격퇴시켰다. 승전을 접한 고려 정부는 고신걸에게 특별히 정2품 호조전서(戶曹典書)의 벼슬을 내렸다.

•우왕 3년(1377) 여름에 왜적이 다시 침입하였는데, 전라수군 도만호(都萬戶) 정룡(鄭龍) 등이 병선 2척으로 정탐하다가 왜선 1척을 포획하여 모두 죽였다.

•태종 원년(1401)에 왜구들이 제주 서촌 마을인 곽지촌에 쳐들어가 노략질을 하였다.

•태종 4년(1404) 왜구가 고내촌과 명월촌을 침범하였다.

•태종 6년(1406) 1월에 왜선 16척이 제주를 노략질하니 제주 병사들이 이를 물리쳤다. 동년 3월에는 왜선 14척이 추자도에 정박하자 전라도수군절제사 구성미(具宬美)가 나아가 싸워 이를 격퇴하였다. 가을 7월에 왜적이 다시 쳐들어와 산남쪽에서부터 돛을 바람에 날리며 대정현 죽도(竹島:차귀도)에 다다랐는데 이때 안무사 이원항(李原恒)과 판관 진준(陳遵) 등이 이들을 맞아 공격하니 왜적들이 바로 물러갔다.

•태종 8년(1408)에 왜적이 조공천으로 들어왔다.

•태종 18년(1418) 왜적이 우둔(牛屯:구좌읍 행원 어등포 우목장), 우포(牛浦: 한경면 용수리), 차귀 등지를 침범했다.

•세종 26년(1444) 왜구들이 제주(濟州)에서 노략질하다가 변방을 지키는 장수(邊將)에게 사로잡히고 나머지 도적은 대마도(對馬島)로 도망쳤다. 세종이 이예(李藝)를 파견하여 대마도주에게 도망쳐 간 나머지 도적들을 잡아서 보내라고 유시하니, 대마도주도 감히 숨기지 못하고 이예가 돌아올 때 도망간 왜구를 데려왔다.

• 중종 5년(1522) 왜변으로 추자도 주민 30여 명이 살해되었다.

• 중종 31년(1540) 가을 8월 제주 목사 권진(權軫)과 판관 한근(韓瑾)이 왜적이 침입하여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 죄과가 암행어사 원수장(元壽長)에게 적발되어 둘이 함께 파직되었다. 

 

 

•명종 7년(1552) 여름 5월 왜적과 중국 떠돌이 상인 등의 8척의 배가 표류하다가 정의현 하천리 천미포(川尾浦)에 도착하여 백성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이 기록은 아래와 같다.

 

정의현 천미포 왜란

 

제주의 대표적인 왜구 침략 사건으로는 천미포 왜란(川尾浦 倭亂)을 들 수 있다. 천미포는 제주어로 지역 주민들은 ‘내끼’나 ‘내깍개’라고 하는데 ‘내(河川) 끝(尾)’에 있는 포구’라는 뜻이다. 또 이곳을 다른 이름으로 구진포(寇進浦)라고도 한다. 즉 ‘왜구를 물리친 포구’라는 뜻이다. 제주의 해안 지형은 아무 곳이나 배를 댈 수 없다. 오래전 어사 김상헌이 제주섬 지형이 날카로운 점을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암초들이 송곳처럼 숨어 있어서 배를 함부로 대었다간 파선의 위험이 커 왜구들은 포구가 있는 곳을 선택하여 상륙한다. 천미포도 외항은 만처럼 돼 있어 큰 파도를 막아주고, 포구는 천미천 하류가 돼 넓은 지형을 이루고 있어서 상륙에 좋은 입지를 가지고 있다.

 

 

 

명종 7년(1552) 제주목사 김충렬(金忠烈, 1503~1569)은 정의현(旌義縣) 천미포에 왜구가 침략했다는 사실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남쪽 대양(大洋)으로부터 황당대선(荒唐大船) 2척이 천미포로 상륙하여 주민(浦口民)들을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자 정의현감 김인(金仁)이 접전을 벌여 왜구 1인을 생포하였으나 날이 저물고 비가 와서 왜구가 물러가자 진을 치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때 하륙(下陸)하여 싸움을 벌인 왜구의 수는 약 70여명, 배 위에 줄지어 선 왜구는 중국인을 포함한 수백 명이었다. 날이 밝자 왜구들은 험하고 단단한 암벽에 의지하여 방패로 앞을 가리고 조총을 쏘아대며 활로 쏘면서 방어를 계속하였다. 왜구들은 아군이 진격하면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와 대적하기를 반복하니 제주의 장졸(將卒)과 말이 모두 피곤하였고, 아군은 병기마저 부족하여 이들을 격퇴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제주목사 김충렬은 수십일 동안 왜구와 싸워 성과를 올렸지만, 일부 왜구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갔고, 다른 왜구는 산 속에 숨어 주민과 군졸들을 사상케 하는 실책을 범하였다. 제주목사 김충렬은 고전(苦戰) 끝에 망고삼부라(望古三夫羅)를 사로잡았으나 나머지 왜구를 진멸(殄滅)하지 못하고 어선을 훔쳐 달아나면서 퇴로를 열어준 책임으로 정의현감 김인과 함께 죄인으로 유배되었다. 체포된 망고삼부라는 성천부(成川府)로 유배를 갔다.

 

왜란(倭亂)이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제주목사 김충렬처럼 병무(兵務)에 어두운 문관(文官)보다는 무관(武官)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무관 출신 이정(李玎)을 제주목사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이정은 변방의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것이 두려워 부임을 미루다가 결국 왕명과 국법을 어겼다는 죄로 의금부로 압송되어 사형을 선고 받았지만 죄가 감형되어 절도(絶島)의 군졸로 강등되었다.

다시 후임 제주목사는 무관 출신인 남치근(南致勤, ? ~ 1570)이 임명되었다. 남치근은 기개가 높은 장수로 담력이 크고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다. 남치근은 왜구 격퇴의 공으로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된 무장(武將)이며, 후에 그는 한성부 판윤(判尹)의 요직을 거쳐, 경기·황해·평안 삼도토포사(三道討捕使)가 되어 1562년 황해도 재령의 해서(海西)에서 난을 일으킨 임꺽정을 효수한 인물이기도 했다. 

 

 

남치근은 곧바로 제주에 부임하면서 군비(軍備)를 증강하여 왜구의 재침략에 대비하였다. 1554년 5월 왜선 한 척이 천미포에 상륙하자 남치근은 배에서 내린 왜구 10여 명 중 1명을 사살하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1554년 6월에도 다시 제주목사 남치근으로부터 왜인 12급을 참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승정원은 왜구의 침략이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을 염려하여 변방 제주를 지킬 보다 구체적인 계책을 논의하라고 비변사에 지시를 내렸다. 이의 대책중 하나가 유사시 가리포 첨사(僉使)의 신속한 군사 지원이었다. 같은 해 가을 7월에 제주 목사 남치근이 왜적의 배 2척을 포획하여 그 공으로 품계를 올려 받았다.

 

나쁜 일은 연이어 잘 일어난다. 이미 조성된 상황을 바로 해결하지 않을 경우 연달아 일어나는 것이다. 모든 일이 평소에 대비해 놓지 않으면 마침내 작은 불씨가 번져 큰 불이 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불은 늘 마른 대로 번지고 물은 언제나 젖은 대로 흐르는 것이다. 이미 길이 만들어져 흐름이 있어서 시간만 기다리고 있는 데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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