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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 이야기(1) 프롤로그

새로운 연재를 시작한다. 미술평론가 김유정의 제주문화 이야기 '길 가는 그대의 물음'이다. 우리의 삶에서 우러나오는 최애(最愛)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이고, 그것의 가치는 무엇인지 찾아가는 여정이다. 제주문화의 기저에 흐르는 돌, 바람, 여자, 말, 물(가뭄)의 5多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핀다. 비밀의 정원에 쌓인 잃어버린 시간과 기억의 지평을 열어 우리 삶의 소중한 모습을 복원하고자 한 기획이다. 독자제현의 애독을 바란다. /편집자주

 

우리는 나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나 나는 내 존재(存在)를 모른다.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하지만, 하루해가 빨리 지는 것을 한탄하면서 생의 짧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사는 동안 많은 일을 한다. 세상은 매일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놓고 그 대답을 미처 확인하지도 못한 채 잠들게 만든다. 그래서 삶은 언제나 미완으로 남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싸락눈 위로 다시 내리는 함박눈처럼 반복되는 의문이 쌓이지만 그래도 내일의 햇살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인생사다.

 

이백(李白)도 누군가가 “나에게 왜 푸른 산에 사느냐고 물어서(問余何事栖碧山) 그냥 웃기만 했더니 마음이 한가롭다(笑而不答心自閑)”라고 했다. 우리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내일을 만날 수 있음에 행복해 한다. 어디에 있건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이상향을 꿈꾸게 한다. 내 앞의 현실이 충족하지 못해 불안해 하면서 사랑과 명예, 부귀와 장수에 대한 유토피아를 갈망하고 또 갈망한다. 그러나 우리는 늘 욕망의 결핍에 시달리는 존재여서 이백처럼 마음이 한가롭지가 못하다.

 

그렇지만 돌아보면 인생은 지나가야 할 관문이 많다. 어쩌면 인생이란 시간의 선상에 올려진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일 것이다. 생(生)과 사(死) 사이에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두고 자신과 타자 사이에서 살아가는 것이 세상이다. 그러면 삶은 ‘고해(苦海)의 길’인가?

 

대정 향교에는 양반 자재들이 공부하는 동재(東齋)라는 집이 있다. 거기에 추사가 쓴 의문당(疑問堂)이라는 편액이 무척 인상적이다. 대정향교는 지방의 중등학교 정도 되는 교육기관이고 동재는 대정의 학생들이 숙식하면서 공부하는 집이다. 동재의 현판 의문당이란 말인즉슨 “궁금하면 물어라!”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 집이라는 뜻이다.

 

물음을 던지는 것은 비단 학생만이 아니라 모든 존재자의 탐구 행위일 것이다. 우리는 평생 세상이라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로서 삶에 필요한 것을 묻고 또 묻게 된다. 그것의 답은 잘 살았느냐, 못 살았느냐로 구분되겠지만 과연 어떤 삶이 잘 산 삶이었을까에 대해서는 저마다 가치관이 다를 것이다.

 

별처럼 많은 우리네 삶의 질문에는 백인이면 백 가지 답(百人百答)이 있다. 다양한 직업에다가 각자 삶의 경험이 다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각 또한 다르다. 성경의 말처럼 우리는 "네 이마의 땀으로 네 먹을 것을 벌어야"하는 존재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대답을 찾는 과정이란 바로 “너는 너가 되어라”는 말로 귀결되지만 늘 자신을 찾지 못한 우리는 ‘나’가 되기 위해 고뇌하며 해답을 찾으려고 애쓴다. 인간은 경험으로 완성되고 존재의 시간이 다하면 잊혀진다.

 

사실 생(生)이란 하루하루 나아가고, 나아지고자 하는 것의 연속이 아닌가. 마치 빈 보따리를 들고서 점점 그것을 채워가며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우리가 생존이 유리한 쪽으로 진화해 온 것처럼 말이다. 이 또한 조금이라도 더 잘,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인생은? 길어야 100년 남짓이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다 지나가고 지난 것들을 그리워하다 마침내 사그라진다. ‘내가 없으면 자기 앞의 세계도 없으므로’ 나는 지인들에게 단지 기념비성(monumentality)으로만 기억된다.

 

멸(滅)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무엇으로 변하는(變化) 것이다. 이별은 새로운 만남을 만들고 그 만남은 그리움으로 변해 다시 기다림이 된다. 시간 앞에서 촛불같이 흔들리는 존재, 우리 모두가 그 모습과 같다.

 

우리는 지금 내 앞에 있으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미망(迷妄)의 존재로서 고독이 우리를 에워싸지만 그래도 한 줄기 희망을 잃지 않는 ‘나’는 그 삶을 끈질기게 이어가는 의지로서의 존재이기도 하다. 도잠(陶潛, 365~427)은 자연으로의 회귀와 인간성을 회복하려고 했던 시인이다. 그는 말한다.

 

지나간 일 돌이킬 수 없음을 깨닫고, 앞으로 올 일은 바르게 좇을 수 있음을 알았다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

실로 길을 잃었으나 아직 멀리 가지는 않았으니, 지금이 옳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소(實迷途其未遠 覺今是而昨非).

 

우리는 사는 동안 후회되는 것들에 맞서 늘 반성하면서 다시 일어난다.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Sutta-nipata,經集)』는 『담마파다(Dhammapada, 法句經)』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붓다의 육성에 가까운 경전이다. 편찬 시대가 『담마파다』보다 앞선 대략 A.D. 3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경전에는 붓다의 탁발 수행 때에 ‘비천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분노와 증오심이 많고 사악하고 위선적이며 그릇된 견해를 고집하고 권모술수를 일삼는 사람,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며 살아 있는 생명체에 연민의 마음이 없는 사람, 재산이 많으면서도 늙은 부모를 봉양하려 하지 않는 사람, 자기를 치켜세우고 남을 헐뜯으며 자만심으로 목이 뻣뻣해진 사람, 남을 괴롭히고 욕심이 많으며 인색하고 박덕하면서 존경을 받으려는 사람.” 등 20가지 비천한 인간상이 있다. 사람들은 고귀한 인간이고 싶어한다.

 

인생은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의 연속일 것이다. 한 사회의 도덕(moral)이나 정의(justice)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자기중심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기에게 이로움이 있으면 기우는 속성이 있고, 밥이 나오는 곳에 마음을 기대게 된다.

 

이번 ‘길 가는 그대의 물음’은 따스한 감성으로 제주문화에 다가서려는 기획이다. 인생에서 그대의 물음에는 사실 정해진 답이 있을 수 없다. 자신의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존재의 사건에 참여하여 그 자리에 임하는 그대야말로 유일한 존재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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