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6 (월)

  • 구름많음동두천 29.0℃
  • 구름많음강릉 24.7℃
  • 구름많음서울 32.2℃
  • 흐림대전 30.9℃
  • 흐림대구 27.8℃
  • 흐림울산 25.5℃
  • 흐림광주 30.4℃
  • 흐림부산 30.0℃
  • 흐림고창 31.1℃
  • 흐림제주 29.5℃
  • 구름많음강화 28.9℃
  • 흐림보은 27.7℃
  • 흐림금산 31.2℃
  • 흐림강진군 27.7℃
  • 구름많음경주시 25.5℃
  • 구름많음거제 29.6℃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27) 2020년대 이후 타계한 제주 작가들①

가버린 인생 돌이킬 수 없다

 

시간은 조석이 밀려오듯 많은 사람들을 어디론가 데려간다. 그 누구도 시간에 저항할 수가 없다는 것은 진리이며, 그 시간의 물살을 거슬러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세를 상상한다.

 

특히 종교인들은 현실의 편안함과 더불어 더욱 적극적으로 영생을 꿈꾼다. 그렇다. 종교는 믿는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믿는다는 것은 생각일 뿐 실존은 바뀔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부활이라는 것에 대해 반증하지 못하였으므로 그것은 현실적으로 착각에 불과하다. 그저 생각뿐인 것.

 

삶이란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신비감이 있다. 생명체의 태어남과 죽음,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모르는 생명체의 위대한 행로는 그 자페로 경이롭다.

 

최근 작고한 제주 작가는 누구인가.

 

2020년대 작고한 제주 작가는 강용택, 강광, 강영호, 백광익, 강길원 등 5명이다. 강광은 제주대 강사로 왔었고, 강길원은 제주대 교수로 재임했는데 본적이 육지 출신이지만, 직업상 제주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후진을 가르쳤다. 김창열은 한국전쟁 당시 경찰관으로 제주에 온 화가다. 그 인연으로 저지리 예술인 마을에 김창열미술관이 건립되었다. 강용택, 강영호, 백광익은 토박이다.

 

제주작가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제주출신이거나, 제주에서 교육자로 지내다가 육지로 간 일련의 화가들을 말한다. 지금은 제주작가라는 말이 예전보다 큰 의미는 없지만 정책적으로 볼 때 구분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들 6인의 작고작가들은 나름 제주와 육지에서 활동을 했던 화가들이다. 화가 본인이 제주를 바라볼 때와 제주에 와서 살 때, 또 제주에 짧게 근무하더라도 화가 자신의 정서적 감수성들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다.

 

강광(1940~2022)은 유독 과묵한 인상으로 조용히 살아온 화가였다. 강광은 평안남도 북청 출신으로 1965년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베트남 전쟁 참전 이후 제주도에서 약 10년 동안 오현고 미술교사와 제주대 강사로 지내면서 상징주의적인 리얼리즘을 구현하였다.

 

1960년대 한국전쟁의 상처를 잊으려는 듯 추상미술이 유행하던 시기에 다시 충격적인 5‧16군사쿠데타를 목격해야만했던 화가로서는 당시 삶의 모순들에 대해서 말할 수 없는 의기(義氣)와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강광은 감수성이 예민한 대학시절에 4‧19혁명을 겪었고, 서울미대 졸업 후 미국의 대리전쟁인 베트남 참전이라는 육중한 역사의 무게를 견디면서 참전의 아픈 기억의 경험들에 대한 침묵을 배웠다.

 

그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懷疑)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사람이란 무엇이었던가? 전쟁 앞에선 삶이란 존엄하지도, 존엄한 적도 없었다. 적이란 이념이 만들어낸 괴물이자 허상이어서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싸워야 했는지도 분별할 수가 없었다. 전쟁터에서는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정의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은 것이라곤 인간 존재에 대한 트라우마뿐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강광에게 제주의 4월은 여전히 야생 들녘의 바람으로 휘돌고 있었고, 그 역사의 바람은 다시 5월 광주로 불어가 그 슬픔을 묵과하지 않게 만들었다. 슬픔은 비장함의 끝이 아닌가. 그래도 비극 속에서도 끝내 희망의 실마리를 놓지않은 채 평화의 다리가 보이는 한반도를 꿈꾸었다. 공안검찰에 의해서 불온시 된 '다리가 보이는 산하'는 그의 내면 깊숙히 우러나온 고민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강광의 기법으로는 캔버스 화면 위에 마티에르를 살리고자 두텁게 바르는 폴리에스테르 퍼티(putty, 일본 발음으로 빠데라고도 불렀다) 위에 색을 입히는 작업을 선호했고, 이 퍼티 작업은 당시 젊은 제주 작가들에게도 그 기법이 전수되었다.

 

삶이란 의미의 연속이지만 시간은 모든 존재를 무력화시킨다. 생전에 분단된 한반도를 여전히 황야라고 인식했던 강광은 2022년 4월 5일 향년 82세를 일기로 영원한 야생의 대지로 돌아갔다.

 

강광의 '오월의 노래-잃어버린 섬'(1985년)은 오늘에 보아도 여전히 예사롭지가 않다. 젊은 날의 사회적인 고뇌로부터 양심의 메아리가 울려오는 것일까?

 

'오월의 노래'는 제주 4‧3의 섬에서 보는 비극적 현대사의 상징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948년 4월의 학살로 얼룩진 제주섬이 물결은 여전히 1980년 오월 광주로 흐르며 겹쳐지고 있다. 강광의 인식처럼 규명되지 않고 치유되지 못한 역사는 계속 중첩되면서 나쁜 역사가 돼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시 자행되는 억울한 죽음이 없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강광은 잠들지 못하는 제주섬이야말로 광주를 위해서 상징적인 오름에서 봉화를 피우고 있다. 우리의 소망은 현실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며, 역사의 물결은 결국 평화를 향해 열려 있기에 섬에서 벌어진 죽음의 의미를 한반도에서 새롭게 되새겨져야하므로 ‘오월의 노래’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깨침의 죽비라고 할 수 있다.

 

강광의 '횃불'(1980년대)은 말 탄 여성이 황량한 대지에서 죽음을 위령하려있는 듯 빛이 없는 잿빛의 세상을 향해 횃불을 들고 있다. 그러나 빛은 보이지 않고 형상만 어렴풋이 실루엣으로 처리돼 암울한 세상의 들판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횃불의 상징이란 우리는 암울한 현실을 마치 환한 대낮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우리 세계는 잿빛인데도 불구하고 컬러로 덮힌 채 착각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마치 화가 자신이 약소국에서 태어난 설움인듯 미국의 대리전인 베트남전이라는 더러운 전쟁에 참전해서 알게 된 수많은 한반도의 모순은 마치 돌파구 없는 구덩이에 빠져 불빛 없는 횃불을 들고 있는 형국이 아닐까?

 

자신의 위치를 깨닫지 못하는 가혹한 현실은 갇힌 세계에서 강요된 정의와 다름 없을 것이다. 화가는 우리에게 잿빛 세계를 벗어나야만 실제로 푸른 자연과 따스한 대지, 아름다운 생명의 광야를 달릴 수 있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백광익(1952~2024년)은 밤하늘의 별을 노래했던 화가였다. 우주를 수놓은 수많은 별이 그의 벗이었지만 2024년 결국 그도 별이 되었다. 모든 인간은 별과 같다. 별의 원소가 인간을 이루는 원소와 같기 때문이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 인간 모두 별로 가거나 지구별이 된다.

 

백광익은 제주 출신으로 제주대 사범대학 미술교육과를 졸업했다. 현대 추상미술을 제주에 도입을 시도하여 1976년 ‘관점동인’을 결성하고, 이듬해 창립하면서 제주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추구하는데 앞장 선 화가 중 한 명이다.

 

제주도미술대전 최우수상 및 특선 4회를 수상했고, 창작미술협

회 공모전에 출품하여 대상을 수상하는 등 공모전에 도전하여 성과를 냈다. 부산청년비엔날레, 남부현대비술제 등 국내외에서 30여 회의 개인전과 수많은 단체전을 열 정도로 활발한 작품활동했다. 국내의 수많은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고, 대한민국미술대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을 역임하여 후세대 발굴에도 기여했다. 한국미협제주지회 17대, 20대 지회장을 역임했다.

 

미술교사로 시작하여 오현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제주국제예술센터 이사장과 무릉갤러리 관장으로 활동하다가 2024년 7월 16일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유증으로 영면하였다. 7월 19일 오전 6시 부민장례식장에서 미협장으로 발인하였다. 바야흐로 인생의 무상함을 절감한다.

 

백광익의 '78-세월'(1978년)은 관점동인의 일원이었던 화가의 추상 초기의 즉흥적인 작업이다. 화면에는 사각의 모양들과 비정형적인 형상에 스크레치들을 남기고 있다.

 

추상이란 무엇인지 모를, 그래서 화가 자신마저 생각지도 못한 감각을 일깨우고자 작업을 한다. 추상은 형태와 색의 향연이다. 어떤 구조를 이루거나 그 구조의 속, 혹은 안감과 같은 유사한 것들의 흔적일 수가 있다.

 

세월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물질에서 시간의 흔적을 추적한 것 같다. 오래된 흔적이 묻어나는, 혹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퇴색과 풍화, 마모가 주는 감성적 느낌들은 시간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추천 반대
추천
1명
100%
반대
0명
0%

총 1명 참여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22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실시간 댓글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