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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33) 제주 바다 대상으로 현대적 해석

바다에 주목한 특별한 그림 공필화

 

전통은 현대를 통해서만 제대로 보인다. 현실의 시대 정신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전통은 빨리 사멸(死滅)한다. 전통은 시간적 개념을 넘어서는 지금-시간의 공간에 대한 생동감 있는 적응일 것이다. 당대성이 없는 전통은 고리타분한 골동품과 같다. 전통은 신제품처럼 새롭고 세련되고 신선해야 한다. 지금 세대가 이해하는 미감이 요구되기도 한다. 역시 해석자로서 화가의 몫이 된다. 

 

 

이미선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여성 공필화가이다. 비단에 그려지는 까다로운 공필화 기법을 다루는 일은 ‘장인으로서의 작가’라는 개념에 더 어울린다. 그만큼 공필화는 시간과 공력(功力)을 들이는 싸움이기에 집중력과 정확도가 요구됨으로써 장인들의 태도를 쉽게 버릴 수가 없게 만든다.

 

이미선의 장인적 태도는 이미 중국 원나라 때 영락궁 삼청전에 그려진 대형 벽화<조원도(朝元圖)>의 모사를 통해 오롯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서 담력(膽力)을 키울 수 있었고 장인적 배포는 그때 몸에 밴 것이다.

 

2024년까지 이미선은 이중섭 미술관, 서울 제주갤러리, 평화센터 등 개인전과 초대전을 통틀어 모두 16회의 경력이 있는 중견 작가로써 성장했고, 지속적으로 한국 공필화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다.

 

작가라는 이름의 인생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노정(露呈)에 서 있는 것인 만큼, 중국화의 기교로써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기 위한 ‘한묘중기(韓描中技)’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선은 고향(故鄕)이 제주도 서귀포여서 그에게 한국성은 곧 제주 로컬리티가 되며, 제주가 밑바탕이 깔린 한류를 지향하는 것이 그의 미학적인 특질이자 목표가 되고 있다.

 

 

제주 아일랜드, 치유의 정원

 

제주도, 바람마저 울고 가는 외로운 아일랜드. 구로시오 해류(黑潮流)에 스치는 섬의 아픈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화가는 붉은 화산섬의 이름으로 그림을 그렸다. 아름다운 자연 아래 펼쳐지는 풍경은 고난의 연대를 지나 왔던 수많은 제주사람들의 숨비소리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는 ‘들숨 날숨’의 그 파람 소리가 단지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소리로만 알 뿐, 섬땅에 기록된 지문(指紋)이자 거친 숨결의 역사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 예술은 기억의 환기작용이기도 하여, 아름다움도 고통을 치유하는 하나의 희망이 되기도 한다.

 

이미선은 지난 2022년 제주 서울 갤러리, ‘제주 아일랜드-치유의 정원’이라는 주제로 공필화의 전통을 제주의 바다를 대상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일상은 늘 자연에 가까이 있는데, 이미선은 그간 자연의 언저리에서 공존하는 일상의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 사물과 풍경들을 즐겨 다루면서 여전히 ‘치유의 정원’이라는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주제로 제주를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다. 삶의 중심이 제주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선에게 ‘치유의 정원’은 관람자만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살이에서 새롭게 보듬어야 할 대상들의 상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녀가 그림을 그림으로써 마음이 후련하거나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기에 ‘치유의 정원’은 자아의 그늘에 새 빛을 쏘이고, 타자에게도 심리적 위안을 줌으로써 삶에의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선의 그림은 매우 안정적으로 평온하고 고요하다. 잔잔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것, 예술의 기능이 복잡한 혼돈 속 일상을 정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제주 아일랜드-치유의 정원’은 제주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풍경과 소재로 구성되었다. 한라산, 오름, 들판, 밭, 섬 속의 섬, 폭포, 바다 등의 정경 아래 소재들은 말, 나비, 밭, 돌고래, 꽃, 탑, 의자 등이 있다.

 

이미선이 전통 공필화의 기법을 현대적 해석으로 보여준 것은 오름이나 섬, 그리고 한라산의 묘사에서 보여준 면 분할 방식이다. 작은 모자이크처럼 색면을 분할하면서 쌓아가듯 형태를 붙이는 묘사 방식은 제주의 전통 민화에서 전해오는 것이기도 하다. 넓은 면을 채색하면서 작은 블럭과 같이 면분할 방식으로 다른 기법을 동시에 한 화면에 배치하는 것은 칠한다는 것보다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다. 한 화면에서 또 다른 공간 개념들로 다르게 보여주는 것은 마치 암석의 입자 구성과도 같이 구조화된 층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미선이 보여준 소재들 가운데 그가 오랫동안 몰두해온 대상은 바다에 등장하는 나비이다. 나비는 상징적으로 섬과 육지의 매개, 자연과 청정이미지로서 건강한 생태의 증거, 동물과 곤충이 영속적으로 공존할 자유, 몸과 정신의 교감 상태를 말하고 있는 상징이며, 영혼의 매개자로 인식되는 ‘나부(나비)의 신화적 초현실성이기도 하다.

 

또 나비는 섬 주위를 유영(遊泳)하는 남방 돌고래의 벗인 해녀처럼, 돌고래의 새로운 친구가 되기도 하고, 궁국적으로 제주의 생태적 건강함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때 돌고래와 함께 등장하는 나비는 의인화로 길을 가는 인생의 동반자의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동행이 비록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이것을 보는 관람자들은 새로운 기분으로 우리 세계에 대한 신비로운 감정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바다를 건너는 나비는 무려 1000km를 날아 육지에 도달하는 제주 왕나비의 전설적인 행보를 먼길(長程)이라는 상징으로 그린 것이다. 부드러움은 억셈을 이길 수 있는데 연약한 날개로 거친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그것의 강렬한 에너지는 생명의 힘이 아닐까? 어쩌면 모든 생명체에게는 개체마다 희망적인 삶의 목표를 관철시키려는 의지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의지는 본능적 생명작용일 것이다.

 

이미선은 마치 나비가 된 듯이 육지로 나들이 한 것이 어느덧 16년 만의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2022년 육지 나들이는 새로운 전기(轉機)를 마련하는 일이어서 다른 때보다 의미가 새롭다고 했다. 제주도 자연과 바다가 육지 사람들의 치유의 정원이 된다는 의미가 되면서, 또 그간 해협을 건너지 못했던 여행이기도 했다. “나의 막힌 마음을 새롭게 일깨워주는 것은 바다를 건너는 나비와 돌고래의 평화로운 동행처럼 이 동행은 치유를 위한 평화의 길이며, 평화는 결국 인류에게 되돌려 줄 때 진정한 평온이 찾아올 것이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제주 아일랜드-치유의 정원’은 세계가 더욱 혼돈으로 치닫는 지금에 바다로 이어진 지구촌의 상처받은 세계시민을 향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과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가는 작가의 마음이 투사된 돌고래의 나아감을 보여주었다.

 

 

여전히 시간은 갈 것이고 사회는 쉬지않고 변화의 바람을 탈 것이다. 돌고래는 약자가 되었고, 멸종 위기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인류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예상 앞에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육상의 대지는 황폐해지고 물은 오염되고 있으며, 재난은 끊이질 않고 커져만 간다. 남은 바다는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과 제조물 폐기물에 환경이 병들고 있다. 문명을 창조했던 인간은 그것을 생산한 만큼 버려야 할 것도 총량이 같을 것이다. 기후 열대화는 전지구의 생태를 교란시키고, 식량난과 기후 재앙이 빈번해지고 있다. 인류가 갈길은 더 약한 생물들의 수난으로 이어져 미래가 어둡기만하다. 어쩌면 이제 예술은 우리의 미래인 암울한 시대를 그리야 할 지도 모른다. 돌고래가 길을 잃고 있다면 우리 인간들도 똑 같이 길을 잃고 있을 것이다.

 

공필화가 이미선은 50대 여성 중견작가로서 동덕여대 회화과, 중국 노신미술대에서 중국화 공필화를 공부하고 경인미술대전 우수상, 제주도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고 제주대 출강, 전업화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다각도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통의 공필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확장시키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정통 공필화가로서 제주의 자연을 치유의 정원이라는 개념으로 접근, 아름다운 생태적 자연을 화폭에 담는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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