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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26) 백성원의 개인전 ‘중첩된 감각(Layerd Sense)-신촌'

서양화가 백성원의 제5회 개인전이 제주시 아라갤러리(대표 이숙희)에서 신작 15점, 오브제 9점 등 총 24점을 가지고 2024년 7월 13일부터 7월 28일까지 2주간 열리고 있다. 제주를 시각혼합 기법으로 바라보는 백 화가는 새로움을 시도하기 위해 신촌을 미학적으로 방황하던 시절 만난 제2의 회화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 백성원은 세계미술사에서 점묘법이라는 신인상주의 방법을 수용하면서도 제주적인 회화의 창작방법론으로 전환하려는 현대미술의 응용적인 개척자가 돼 고뇌하고 있는 작가이다. 오늘따라 신천의 기운이 리듬을 타고 맑은 기운이 느껴진다. <편집자 주>

 

 

그림은 마음 속 언어, 존재 드러내기

 

보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속엣 말을 해버리면 후련한 것과 같이 말이다. 아름다움에는 내면적 즐거움을 주는 황홀함과 감미로움이 숨어있는데 그림은 시를 읽으면 떠오르는 기쁨처럼 어떤 형태를 그려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것은 매우 감미로운 감정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운 미적 감정은 때로 신비롭기도 하다.

 

우리 인간에게는 어떤 영성(靈性)이 있다. 자신마저도 그 깊이를 모르는 창조적 본능이 그것을 일깨운다. 우리의 정신활동이 영혼이 깃든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창조적 본능에서 나오는 힘이다. 인간은 호모 파베르와 호모 사피엔스라고도 하는데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높은 단계의 정신적 활동을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문명사의 원조(元祖)를 이 둘의 결합인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술의 창조적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한 것도, 예술이 고결한 영혼의 활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한 것도 이 노동 때문이었다.

 

미술은 그림이라는 언어로 말하는 방식이다. 회화를 ‘그림으로 된 시(詩)라고 하는 이유가 틀린 말이 아니다. 화가는 언어가 있어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이자 소통의 역할을 수행한다. 바로 표현이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집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화가는 색깔과 형태가 있는 집에서 늘 지내고 있다. 그 집에는 포근한 색의 온화함과 터치의 격정적 감정도 살고,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색깔도 같이 지내고, 점들의 서로 생동하는 강약의 리듬도 함께 있어서 열정적인 기운도 있다. 화가의 집은 다양한 감정의 벗들도 방문하고, 집에는 그 집의 독특한 성격도 풍기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집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이용하면 변화가 가능한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가의 집은 실험실과 같아서 언제 어떤 결과를 얻을 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꿈을 꿔야만 자기집을 확장할 수 있다. 때로는 익숙하지만 알지 못하는 미지의 감정, 생각치 못한 무의식의 모습에 이따금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다른 느낌의 나의 집 그림자에 놀라기도 한다.

 

화가들에게 목표가 있다면 평생 나의 언어로 말해보고 싶은 충동(compulsion)일 것이다. 충동은 창조적 본능을 자극시키는 긴장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화가들은 매력적인 긴장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때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마음속에 숨어있는 말을 고백하기 위해서이다.  말을 하지 않으면 자기 존재를 알 수가 없고, 오히려 다하지 못한 말을 찾아 표현행위로 나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다할 수 없는 말이 남아 있다. 그것은 자아를 찾기 위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욕망은 현재 자신에게 숨쉬는 것 중 가장 적극적인 활동인자(活動因子)이고, 존재에 대한 생존의 지평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현재 진행형인 자기 삶의 모습이기에 내가 무엇이고,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 화가는 누가 뭐래든 수행자가 돼야만 한다. 나를 찾고 나를 바로 세우려는 존재, 그 수행하는 행위가 바로 존재자의 결과가 되면서, 쾌(快)를 누리는 현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림을 육필(肉筆)이라고 하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공동으로 만들어 낸 수행의 결과인데 보이는 행위가 보이지 않는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원의 수행적 회화(performative painting)

 

색 물감을 붓으로 바르게 되면 붓에 따라 터치들이 다르고, 화가 자신의 손의 힘에 따라 강약이 다르게 나타난다. 다양한 터치의 움직임에는 강약의 호흡처럼 감정이 따른다. 찍기와 긋기는 긴장과 흐름이 오로지 화가의 마음에 달려있다. 직선, 곡선, 자유곡선, 점, 점의 크기에 따라 혹은 당시 화가의 감정에 따라 화면의 분위기는 달라진다. 즉흥적 감정은 우연성이 많아서 화면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데 그것을 멈춰야만 자신이 어디까지 온 것인지 알 수가 있다. 수행에는 변화무쌍한 동작이 병행된다.

 

백성원은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 분할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분할주의는 혹은 '분할묘사법'이라고도 하는데 오늘날은 점묘법(點描法)이라고 부른다. 한 화가가 어떤 유파의 영향을 받는 것은 처음부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기법을 찾는 실험적 시도로부터 점점 자신의 성격과 취향에 맞는 스타일로 이동하게 된다.

 

분할주의는 조르죠 쇠라나 폴 시냐크가 오그던 루드와 외젠 슈브뢸들의 이론에 따라 추구했던 19세기말 물리적 색채의 작용을 활용한 창작방법이다. 이 분할주의는 캔버스 위에 원색을 혼합하지 않고, 그대로 보색 점들만 찍어서 화면의 색상이 상호교감의 효과를 보는 회화기법으로 색채의 동시대비(simultaneous contrast of colors)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색채의 동시대비 현상이란 화면의 색점들이 감상자의 눈으로 보게 되면 색깔과 색깔이 서로 혼합하여 다른 색상으로 보이는 착시(錯視) 효과를 말하는 데 우리는 이를 눈에서 섞인 색이라고 하여 ‘시각혼합(visual mix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그림이란 느끼는 감정의 작용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점묘법이라고 말할 때, 색점(色點)이라는 표현행위 시각에서 보면 동양화에서 말하는 묵점(墨點)과 유사한데 쌀방울 점인 미점준(米點皴)과 빗방울 모양의 우점준(雨點皴)과도 유사하다. 물론 여기에 검은 색으로만 점이 찍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백성원이 점묘법을 선호하게 된 것은 색상들의 어른거리는 움직임이 대상을 볼 때마다 다른 감정들이 누적되는 것처럼 중첩되는 느낌을 강하게 받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색 자체에서 찾는 구상화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마치 눈이 내리듯 중첩되는 느낌을 덮어씌우는 행위에서 찾는다. 고정돼 보이는 정지된 광경이 아니라, 계속 움직이고 꿈틀되는 유기체의 운동을 화면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화면의 움직움은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감정이 시시각각 다르듯이, 그의 점들은 크기에서 다르고, 점이 점 위로, 또는 꼬리를 늘이듯이 점점들의 사이사이와 그 위를 지나친다. 감정이 북돋았다가 서서히 눅여지는 것처럼 화면에 표현행위를 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거듭 부여하는 것이다.

 

백성원은 색은 풍경을 재현하는 색이 아니며, 형태 또한 그와는 거리가 먼 실루엣의 불명확한 움직이는 형상이 된다. 대상을 볼 때마다 변화하는 감정의 색과 행위의 움직임을 화면에 중첩되도록 하는 작업을 한마디로 ‘수행적 회화(performative painting)’라고 말할 수 있다.

 

화면의 진행에서 감정이 꺼지지만 않거나, 혹여 감정이 식어버렸더라도 다시 새로운 느낌으로 감정이 되살아나게 되면 그 대상의 상태는 다시 그때의 다른 감정의 모습으로 변할 수 있게 한다. 대기의 변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감정을 대상 위에 몇 번이고 입히는 것이다. 바라보면서 다르게 느끼는 그때그때 감정들이 바로 ‘중첩된 감각’의 실체가 된다.

 

 

중첩된 감각-신촌, 인간적으로 느껴보기

 

인간은 자연에서 타 생물과 다른 것이 없다. 단지 영장류라는 사실에서 특별하게 부여된 도구 사용, 인문과 문화의 차이가 어떤 포유류보다도 월등한 능력이 있다는 것뿐이다. 지금까지 호모 사피엔스의 지구 지배는 생물계의 폭압이기도 했다. 동물들은 자연적응에 놀라운 감각을 보여주지만 호모 사피엔스의 감각은 자연감각이 퇴화됐지만 오히려 문명적이면서 문화적으로 발달해 있다.

 

인간의 감각으로 돌아오면, 감각은 보통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라는 오감(五感)으로 나뉘며, 시각은 색과 형태를 인지하고, 청각은 소리를, 후각은 냄새를, 미각은 맛, 촉각은 만져서 재질을 감지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각 중에 시각을 말하는 것이다. 시각 감각은 어떤 대상을 보면서 끌림, 감탄, 즐거움,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회화 또한 시각 작용으로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들이 우러난다. 포근함, 서늘함, 투박함, 부드러움, 무서움 등 미추(美醜)의 감각이 있다.

 

니체의 표현대로 '이성은 감각들의 증거를 날조하는 원인이지만 감각들이 생성, 소멸, 변화를 보여줄 때 그것들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감각은 우리 몸의 실제 작용이므로 논리와 상상으로만 판단하는 이성의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밑바탕이 없이는 어떤 새로운 집도 기초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바로 백성원의 ‘신촌’은 감각의 중첩을 추구해온 작품들이다. 신촌은 제주의 해안가 마을이다. 사람들은 자연광 아래 마을이라면 되도록 빛이 해석해 낸 그대로 자연적인 색상의 풍경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색이 빛의 작용 때문에 보이는 것이어서 한라산, 숲, 오름, 바다, 마을, 집, 돌담 등이 충실하게 재현하게 된다.

 

그렇지만 백성원은 신촌 풍경을 바라볼 때 순간의 인상(印象)을 중시 여긴다. 인상은 기억을 통해서 저장되지만 볼 때마다 계속 새로운 인상이 기억으로 중첩되는 것이다. 인상은 순간적인 감정을 동반하여 미추(美醜)의 감정으로 교차하기도 한다. 이런 감각의 중첩 상태는 감성적인 경험들이 다른 새로운 감각을 자극함으로써 숨어있는 감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감각의 레이어(Layers)라고나 할까, 여기서 레이어란 기술적인 과정에서 쌓기처럼 처음의 것들이 그 위로 계속 겹쳐지는 현상을 감각에 빗댄 말인데, 처음의 느낌이 다시 기억으로 남아 또다시 다음 시각경험을 받아들인 기억과 더불어 새롭게 연계하는 혼합된 감정을 표현하는 창작방법을 의미하는 말이다.

 

 

백성원의 작법을 보면, 맨 처음 먹이나 아크릴 물감을 혼합하여 바탕에 드로잉 작업을 하고, 옐로우(황색계열), 마젠타(적색계열), 싸이안(블루계열)의 점들과 속도 있게 작은 선들의 율동이 마치 공간과 공간을 이어주듯이 즉흥적인 감정의 스펙트럼을 화면에 보여준다. 물감이 겹쳐짐은 경험적 인상의 시간을 나타내며, 색들의 하모니는 즉흥적인 즐거운 감정상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백성원의 이런 수행적 회화는 서양미술사에서의 점묘법을 몸이라는 물리적 동작과 결합시킨다는 점에서 몸의 기호가 만드는 표현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화면은 자연에서 생명력의 대상을 찾고, 분할된 많은 점들을 그 드로잉된 대상 위에 찍으면서, 다시 그 위로 점들이 눈발같이 내리는데 그때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흐트리듯 점들이 거듭 쌓이고 서로 교차한다. 사실 중첩은 반복이 아니다. 새로운 것 위에 다시 씌움이다. 이 덧씌움은 아래 것이 덮여서 보이지 않지만 여기저기 새어 나오고 그 안에 겹으로 존재한다. 사라지는 것은 퇴화이다. 우리는 영원히 소멸되기 전에 그것을 되살리는 새로운 관계를 물색해야만 한다.

 

부단한 수행은 새로운 개념으로 되살아나는데 이는 백성원에 의해서 서구 미술사조로만 남게 되는 분할주의 미학이 제주 신촌에서 변형된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이렇듯 백성원은 달라지는 화면의 기억들로 제주 해안 마을 신촌 풍경을 통해 퇴화된 인간의 감각을 되찾고자 한다. 바로 그의 감각은 끊임없이 덧씌워지는 시각적 욕망으로 미추를 넘나들면서 몸의 언어로 표현되고 있다. 신촌에서.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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