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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의 '길 가는 그대의 물음' ... 제주문화이야기(47) 풍경의 기억상실, 내가 살던 초가는? ①

20세기 제주도는 초가와 돌담으로 이루어진 마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재료가 필연적으로 제주 마을의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 시대변화는 제주 환경의 역할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대체했는데, 더이상 옛 환경을 유지하지 못하는 섬은 새로운 형태의 관광으로 변형된 마을 경관으로 태어났다. 역사는 언제나 그랬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고 있으며, 아마 내일도 그럴것이다. 섬의 얼굴은 처음과 달리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모든 존재하는 것이 그런 것처럼 초가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사라지고 우리도 사라져 갈 것이다.

 

 

몸에 털이 없어진 인간은 옷이 필요해서 풀로 옷을 만들었고, 소빙하기에는 동굴에서 살다가 지구가 따뜻해지면서 태양을 가리는 집이 필요했다. 초가는 초기 인류의 집 재료인 셈이다.

 

인간에게 진보란 사회적 발전의 지표가 되는 상황을 만나는 것이다. 풀잎, 동물 가죽, 제조된 옷의 속도처럼 동굴, 초가, 너와집, 기와집, 시멘트, 철제, 유리 등은 문명의 발전 속도에 비례했다. 그 가운데 1980년대까지 비교적 원형이 많이 남아있었다. 초가가 적어도 60대 이상의 연령층에게는 매우 익숙한 집 형태일 것이다. 대게 초가의 추억이라고 하면 한마디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초가는 오래된 형식의 집이었다. 초가를 이용한 집은 정주(定住)가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유래한다. 제주의 초가는 순수한 자연재인 풀(草:띠(茅)), 흙, 돌, 나무로 만든 풍토재(風土材)이다. 화산섬이라는 특성이 돌을 중심에 두고 초가를 이루었다.

 

15세기에 유배 왔던 충암 김정(金淨, 1486~1521)이 처음 제주 초가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사람이 사는 집은 띠(茅)로 엮어서 매지 않고, 새(茅)를 지붕에 나란히 펴서 깔고는 가로로 눌러 단단하게 한다.' 따라서 우리가 아는 초가지붕에 바둑판 모양으로 매는 띠줄은 훨씬 뒤의 방식이었다.

 

또한 16세기 초 집안에는 관리의 집 외에는 온돌을 놓지 않았는데 방은 구덩이를 파서 돌로 메꾼 다음, 그 위에 흙을 발라서 마르면 건초를 깔고 잠을 잤다. 기와집이 매우 드물어서 대개 관청마저 초가를 덮었다. 올래는 바람을 막기 위해 돌담을 쌓아서 매우 좁은 것이 몰아치는 바람과 눈을 막기 위해서였다.

 

제주 초가는 적어도 2000년대 초까지 겨우 잔재가 남아 있었고, 지금은 민속촌에서나 볼 수 있는 사라진 가옥이 돼버렸다. 그렇지만 지금은 초가지붕은 없지만, 그 형태를 알 수 있는 돌집이 남아있다.

 

돌집은 초가의 뼈대로써 1960년대에는 띠 가는 것이 번거로운 초가 대신, 양철 지붕이나 그 위에 콜타르를 칠한 지붕이 간간이 나타났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국가재건 시책으로 시멘트 국산화에 힘입어 평슬래브 주택이 양산화되기 시작했다. 필요한 석회석의 개발에 박차를 가해 쌍용양회를 비롯하여 현대, 한일, 동양 등 여러 개의 시멘트 공장을 건설하여 자급자족을 넘어 수출까지 하는 상황이 되었다(김석윤, 2014). 

 

그야말로 한국은 시멘트 천국이 된 것이다. 이때부터 제주의 축담이나 돌담도 시멘트가 결합한 담장이 등장하였고, 1970년대 초부터는 농촌지역에 남은 초가들을 대부분 개량하여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꿨다. 1970년대는 주거의 측면에서 볼 때 새마을 운동이 일어나 농촌 취락구조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근대 주거문화를 주도하던 시기였다.

 

지금 제주의 농촌은 빠르게 도시화가 진행 중이다. 농촌의 전통 마을은 사라지고, 반(半)도시화가 되면서 농촌의 경관은 점점 상실하고 있다. 전통 농업이 쇠락하면서 농가(農家)라는 개념이 무색할 정도로 농촌은 소도시가 되고 있다. 마을 한 가운데에 1980년대부터 등장한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고, 아파트나 빌라, 밭 가운데에 새롭게 전원주택이라는 개념으로 곳곳에 건립되고 있다.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농촌의 초가는 틀만 남겨둔 채 현대식으로 개량되었다. 화장실은 실내로 가 있고 부엌은 싱크대로 바뀌었으며, 식사 또한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었다. 모든 것의 생활방식이 도시화돼 편리해졌다. 변화는 운동의 요소이며 필연적인 결과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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