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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말이 나거든 상산으로 보내라 (3) 90여년 평생 제주마 육성한 고경수 옹

 

제주마 사육두수가 가장 많았던 시기는 1940년대다. 당시 도내에서는 2만여 마리의 제주마가 사육되어,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말의 생산지(馬産地)였다. 1960년대 제주마의 사육 두수는 1만2077마리였다. 1970년 7606마리, 1980년 2414마리로 격감하였고, 1986년 1347마리로 거의 멸종 위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제주마의 천연기념물 지정과 보호 시책에 힘입어 1990년 이래 제주마의 사육두수는 점차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2023년 현재 우리나라에 등록된 말 3만6295두 중, 제주에는 2만5520마리가 등록되어있다. 품종별로는 3만6295마리 말 중 더러브렛 1만6058두, 일반마 1만2039두, 제주마 8198두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이는 고경수 옹(95)이다. 처음에 두 마리의 조랑말로 목장을 꾸린 그는 1980년대까지 사육두수를 100여 마리로 늘리며 제주 조랑말의 혈통을 계승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나아가 목장 개량과 초지 조성을 기반으로 우수한 품질의 제주말을 생산하던 그가 우수 경주마를 육성하기 시작하면서 제주 경마 산업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됐다.

 

그는 고향인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서 목축업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출생했다. 6·25 전쟁 참전 후 선흘리 이장과 공동농업목장조합장 등을 거치며 초지 개량과 마필(馬匹) 육성에 힘써왔다. 지금도 천연기념물인 제주마를 비롯해 ‘한라마’ 등 100여 두를 작은 아들과 직접 키우며 우수 마필 생산에 노력하고 있다.

 

그러한 그의 안목은 제주 경마 마주(馬主)로 빛을 발해 두 차례 최우수 제주마 생산 표창과 4차례의 대상 경주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받은 상금도 1억 원이 넘는다. 그가 오랫동안 애지중지했던 착한 말 ‘백록왕비’와 ‘은주거목’이 이룬 성과다.

 

제주마 육성을 위해 90여 년 평생 새벽마다 아침 이슬 맞으며 마사로 향하는 둔주(屯主) 고경수 옹은 2017년 제1회 호국영웅 ‘헌마공신’ 김만일 상 대상 수상자다.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출신 김만일(1550∼1632)은 선조, 광해군, 인조 대에 걸쳐 자신의 목장에서 키운 양마(良馬)를 군마(軍馬)용으로 나라에 바쳐 ‘헌마공신’의 칭호와 관직을 제수받았다. 『비변사등록』(1781)에는 ‘헌마인’(獻馬人) 또는 ‘헌마공신(獻馬功臣)’, 『승정원일기』(1872)에는 ‘헌마공신(獻馬功臣)’이라 기록되어 있다.

 

인조는 헌마공신 김만일의 영웅적인 애국정신에 고마운 마음을 담아 비단옷을 보냈고, 그가 살았던 동네가 오늘날 남원읍 ‘의귀리(衣貴里)’로 불리는 것도 임금님으로부터 ‘귀한 옷을 받은 마을’이란 데서 나왔다.

 

고경수 옹은 말 100여 마리를 키우신 아버지를 따라 다섯 살 때부터 말을 탔다. 그가 살던 조천읍 선흘 근처에 중학교가 없어 가장 가까운 구좌읍 김녕중학교에 다닐 때는 말을 타고 통학했다(그는 김녕중학교 1회다). 등교 때는 내리막이지만 편도 대략 8.5km이다. 나중엔 김녕에서 하숙했는데, 타고 간 말은 하숙집(안동우 전 제주시장 생가)에서 맡아 돌봐줬다고 했다.

 

말은 무엇보다 우수한 종자가 중요하다. 할아버지 이래 고경수 집안의 말은 인근에서 가장 유명했다. 그는 우수한 종자를 찾아 여기저기 안 다녀본 데가 없다. 말은 대개 2, 3년 키우면 팔 수 있을 만큼 성장한다. 예전에 말은 마차용으로 금방 팔려나갔다고 한다. 1924년 말 6마리를 팔아 2000평 규모의 좋은 밭을 사기도 했다. 당시 말 한 마리 가격은 100냥(20원), 아주 좋은 말은 500냥을 받기도 하였다.

 

지금도 그는 제주 전통 방식으로 말 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작은아들과 함께 운영 중인 목장은 3대에 걸쳐 주위 방목지역 담을 돌로 쌓아 올려 마치 조선 시대 목마장을 연상케 한다. 광활한 목장은 수백 년 된 나무와 자연환경을 그대로 살린 초지로 조성돼 있다. 연중 말을 방목할 수 있는 피우설가(避雨雪家, 비와 눈을 피할 수 있는 집) 형태의 개방형 마사(馬舍)를 가지고 있다. 말은 심지어 겨울에도 자연 그대로 방목하여 키워야 잘 자란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ᄆᆞᆯ(말)’키우기 일은 무엇보다 소질이 맞아야 한다. 운이 맞아야 한다. 말은 착하고 사람보다 머리가 더 좋다. 말은 평생의 친구다. 그런 친구와 평생을 함께해서 행복하다. 지금도 하루 한차례 꼭 목장에 간다. 집 근처 마사에 하루 서너 차례 가서 말들을 쓰다듬고 갈기를 고르며, ‘착하다 착하다’ 칭찬해 준다.” 평생 말과 함께 한 ‘제주말의 오랜 친구’ 고경수 옹의 지론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 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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