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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전 세계 최고 인기 크리스마스 트리 '쿠살낭'

숨겨진 제주섬 이야기 뭉치를 펼칩니다. 그동안 알았던 제주가 아닌 신비의 세계 뒤에 숨겨진 제주의 이야기와 역사를 풀어냅니다. ‘제주 톺아보기’입니다. 그렇고 그렇게 알고 들었던 제주의 자연·역사, 그리고 문화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리워진 보석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사회사·경제사·사회복지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박사가 이야기꾼으로 나서 매달 2~3회 이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제주시 한라수목원에서는 매년 ‘제주 자생식물 나눠주기’ 행사를 한다. 이 행사에서 한라산과 오름에 서식하는 자생식물로 한라수목원이 자체 생산한 구상나무, 주목, 눈향나무, 백당나무 등 10종 3000그루를 민간에 제공한다. 다른 한라산 자생식물도 그렇지만, 특히 구상나무와 주목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

 

이 행사는 구상나무 보존을 위한 ‘현지 외 보존 전략’의 한 부분이다. 만약 자생지에서 구상나무가 여러 요인에 의해 멸종된다 해도 유전적 정보들이 현지와 다른 곳에도 남아 있게 하려는 전략이다. 한라산 중산간지에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시험림 공간들을 확보해 어린 구상나무 숲을 만들고 있다.

 

이날 제공되는 한라산과 오름에 서식하는 자생식물 10종이 다 귀하고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그날 행사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나처럼 구상나무를 분양받길 원한다. 하긴, 제주사람치고 구상나무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한라산을 한 번이라도 올라 본 사람이라면 구상나무가 그려주는 사계절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터라 더 그렇다.

 

구상나무와 주목은 다르다. 구상나무는 잎끝이 얕게 갈라져 있다. 앞뒷면의 흰 줄 때문에 멀리서 보면 희끗희끗한 은 녹색을 띠는 부분이 많아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다. 주목은 이름 자체가 줄기가 붉은 나무라는 뜻으로 줄기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특히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의 대표 수목 중 하나고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이다. 자연 자원적 측면이나 학술적 측면에서 가치가 매우 높다.

 

한라산에서 생태적 가치가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300m 이상 지역인 아고산대 지역이다.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의 가치가 다른 지역보다 크다. 특히 구상나무는 이 지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대표 식물이며 아고산대 지역에만 자란다.

 

전 세계 최고 인기 크리스마스 트리

 

대략 45년 전 12월 초 동네에서 ‘다방(茶房)’을 운영하시던 어머니 친구분이 중학생인 나에게 제안해왔다. 다방에 크리스마스 트리로 장식할 나무를 구해다 주면 용돈을 주시겠다 하셨다. 어느 싸락눈 오던 날 저녁, 친구랑 같이 손수레 끌고 멀지 않은 오름으로 갔다. 마침 오름 중턱에 적당한 나무가 있어 그걸 조심스레 파다 드렸다.

 

그 나무는 ‘다방’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역할을 하다 봄이 되자, 그 집 마당으로 옮겨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나무가 구상나무였다. 지금이야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땐 마을에서 조금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구상나무를 찾아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1840년 경 영국 왕실에서 가문비나무에 장식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종교 개혁자 루터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밤 숲속을 산책하다 영롱한 달빛이 소복하게 눈 쌓인 전나무 위에 비추며 주변을 환하게 밝힌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예전 트리 장식에는 영국 왕실 전례에 따라 독일산 가문비나무를 애용했다. 그러나 가문비나무는 너무 커 가정집에서 장식으로 사용하기 힘들었다. 그 대안으로 크기가 아담하고 잎이 견고하며 가지와 가지 사이가 넓어 장식 달기에 적합한 원뿔형 구상나무가 인기 끌게 되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한라산 구상나무를 개량한 ‘코리안 퍼’라는 구상나무다.

 

100년 전만 해도 제주에서는 구상나무 10여 개를 엮어 테우 배를 만들었다고 한다. ‘테우 축제’로 유명한 ‘테우’는 제주 연안에서 자리와 갈치를 낚거나 해초 채취할 때 사용했던 통나무배로 통나무 10여 개를 엮어 만든 뗏목 배다. 원래 ‘테우’는 부력이 뛰어난 구상나무로 만들었다. 구상나무를 한라산에서 베어낸 후 소나 말을 이용해 바닷가까지 끌어와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물에 잘 뜨고 잘 썩지 않는 데다 송진이 많아 제주 바다에서 잘 잡혔던 자리돔 석 섬(약 500 리터)을 실고도 거뜬했다 한다. 한라산에 구상나무가 귀해진 후부터는 ‘숙대낭’(삼나무)으로 만든다.

 

제주에서는 구상나무를 ‘쿠살낭’이라 불렀다. ‘쿠살’은 성게, ‘낭’은 나무를 가리키는 제주어다. 구상나무 잎이 성게 가시처럼 생겼다 해서 ‘쿠살낭’이라 했다. 구상나무를 신종 식물로 발표한 미국 식물분류학자 윌슨은 이 나무를 제주 사람들이 ‘쿠살낭’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는 ‘구상나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왕벚나무 타케 신부와 온주 밀감 포리 신부

 

1898년 에밀 조셉 타케는 선교사로 대구교구에 부임한 이래 1902년부터 1915년까지 제주도에서 사목활동을 했다. 그러면서 7047점의 한라산 식물을 채집한 그는 채집 표본들을 미국 하버드대, 일본 동경대, 영국 왕립식물원 에딘버러 표본관, 프랑스 파리 자연사박물관 등에 보냈다. 현재 학명에 채집자 ‘Taquet(타케)’가 들어간 제주도 특산식물이 13종에 이른다.

 

타케 신부는 1908년 4월 14일, 한라산 중턱 관음사 뒷산 해발 600m 지점에서 왕벚나무 자생지를 발견하고 왕벚나무 표본을 채집했다. 1912년 독일 베를린대학 케네 박사가 타케 신부가 채집한 표본을 왕벚나무의 한 가지 변이종이라고 발표하면서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라는 설이 나왔다.

 

서귀포에 온주 밀감을 전파한 최초 인물 역시 타케 신부다. 타케 신부는 1902년 서귀포 ‘한논 성당’에 부임한 이후 1915년까지 선교 활동과 식물채집을 하는 한편, 1911년 일본 아오모리에서 포교하던 포리 신부가 보내 준 온주 밀감 묘목을 서홍 성당 일대에 심었다. 제주지역 근대 온주 밀감 재배의 시초다.

 

1874년 위르뱅 포리는 일본 니가타현에 선교사로 들어와 선교 활동하면서 일본 식물들을 채집하여 프랑스와 영국의 표본관에 보냈다. 1902년 포리 신부는 제주도로 건너와 서홍 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선교 활동을 하던 타케 신부를 만나, 같이 한라산에 올라가 제주 특산식물을 채집했다. 포리 신부는 이때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 표본을 미국 하버드대 아놀드 식물원 분류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에게 보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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