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낭과 함께 등장하는 단어가 ‘올레’다. 올레는 몇 집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진입로다. 제주도 올레는 먼 올레를 가운데 두고 마을 큰길, 즉 ‘가름 질(마을 길)’과 이어진다. 먼 올레에 맞닿은 집이 모여 ‘올레 집’이라 한다. 올레 집은 지역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제주도 공동체는 집-골-가름-마을로 전개된다. ‘골’은 뿌리에 달린 감자처럼 골목길로 연결되는 길을 말한다. 감자 뿌리 큰 줄기에 해당하는 ‘가름 질’, 가름에서 골로 이어지는 길인 ‘먼 올레’, 골에서 각각 집 마당으로 이어지는 진입로를 ‘올레’라 했다. 제주 기후는 취사와 난방 문화에도 영향을 줬다. 거센 비바람 때문에 부엌은 집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 집을 크게 짓지 않았다. ‘굴묵’과 ‘솟덕’은 이런 지리적 특성화 문화를 잘 볼 수 있는 시설이다. 보통 육지에서는 부엌 아궁이가 취사와 난방 겸용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취사와 난방시설이 분리된다. 각각 ‘솟덕’과 ‘굴묵’이라고 불렀다. 성읍민속마을보존회 강희팔 이사장은 “집을 크게 짓지 못하게 되자 부엌 구조도 육지와 다르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무더운 기후도 전통가옥 형태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1980년대 중반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일이다. ‘한국 경제사’ 수업 시간에 난데없이 ‘제주도에는 왜 대문이 없는가?’를 두고서 학생들 간에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제주 출신인 나로서야 당연히 “애초부터 거지와 도둑이 없는 믿고 살던 사회여서 굳이 대문을 설치할 필요가 없었다”라고 확신하며 말했다. 그러자 즉각 반론이 제기됐다. 학과 선배 중 한 명이 “그보다 훔치고 갈 물건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도둑질만 해서는 굶어 죽기 딱 알맞다. 그래서 대문이 필요 없었다. 심지어 대문을 마련할 형편도 못 됐다”라고 서울 출신 박사과정 선배 형이 매정하게 말했다. 그때 난 '다른 사람도 아니고 평소 친한 저 형이 어찌 저런 말을 할까?'하며 다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광호 교수님이 그 상황을 정리해 주지 않으셨다면, 난 제주 섬 놈의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삼무 정신’ 홍보대사 겸 수호천사 역을 다하기 위해 끝까지 논쟁을 끌고 가려 했을 거다. 다들 알다시피 ‘삼무(三無)’란 도둑·거지·대문 등 제주에 없는 세 가지를 말한다. 삼다(三多, 돌·바람·여자가 많다는 의미)와 함께 삼무는 제주의 또 다른 상징이다. ‘삼무’를 제주 정신으
이거 가저 강, 테워 불라 “성근 어멍아, 이것들 가저 강 테워 불라.” 아니! 이 멀쩡한 음식들을 태워버리라니.... 이해가 안 됐다. 그렇다 해도 지엄하신 시어머니 말씀인지라 주섬주섬 챙겨 나와 마당에서 태워버리려고 하는데, “메누리야, 뭐 허젠 햄시니? 그걸 무사 ᄉᆞ라불젠 햄디야?” 아니! ‘태우라’해서 태우려고 하는데, 왜 갑자기 ‘소라’가 나오지? 그날 시어머니가 ‘테우라’라고 했던 말은 ‘나눠주라’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며느리가 그걸 들고 나가 태워버리려고 하다니, ‘무사 그걸 ᄉᆞ라불젠 햄시니?’라며 시어머니가 놀랄 건 당연했다. 아무리 일 시켰기로서니, 시댁 어른들 앞에서 귀한 음식들을 ‘ᄉᆞ라불젠 허는’(태워버리려고 하는) 큰며느리가 두렵기까지 했을 거다. “성근 어멍아, 그거 캄저 확 뒈쓰라!” ‘뒈쓰라’, 이건 또 뭘 하라는 말이지? 영문몰라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주방으로 뛰어 들어와 프라이팬을 뒤집으며 기겁을 한다. “아까부터 이거 뒈쓰랜 안 해냐! 이거 다 카부런 하나도 못 먹게 되부러신예!" 이미 숯이 되어 버린 녹두전 앞에서, '도대체 내가, 어느 부분에서 무슨 잘못을 저질렀지?'를 꼼꼼하게 복기해 봐도 당시로선 도저히 알지
언어의 보물창고 '제주도의 생명력을 키워 온 다양한 문화유산 가운데서 가장 제주 원형을 읽을 수 있는 자산이 바로 제주 언어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제주도를 언어의 보물창고라고 했다.' 이는 평생 제주어를 연구해 온 제주어 연구 2세대 강영봉 제주대 명예교수의 지론이다. 제주의 삼보(三寶)는 바다, 식물, 언어가 보물이라는 뜻이다. 제주 언어는 제주 사투리·제주도 방언·제주어·제주말이라고도 한다. 2010년대 이후 학계에서는 제주말을 ‘제주도 사투리' 혹은 ‘제주도 방언'이 아니라 ‘제주어'로 접근하고 있다. 일반 대중들 사이에서도 독립된 언어로, ‘제주어'를 인식하는 관점이 보편화 되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와 제주도, 제주도의회, 국제 표준화 기구에서는 ‘제주도 방언’이 아닌 ‘제주어’로 분류하고 있다. ‘제주어’란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사용되는 언어 중에서 제주의 문화 정체성이 담겨있고, 제주 사람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전달하는 데 쓰이는 전래적인 언어를 말한다(제주어 교육 활성화 조례, 제주특별자치도 조례 제1495호). 조선 중기 문신 김상헌이 1601년 8월부터 제주도에 6개월 체류하며 쓴 여행 일기인 『남사록(南槎錄)』에 보면, '귀양살이를 한 신장령(
무조건 재밌게 해라! 1998년 가을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고향 제주로 내려온 나는 인생 첫 대학강의를 하게 되었다. 기왕 하는 김에 한 다리 건너지 않아도 훤히 다 아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최소한 강의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 말자 싶어서, 강의 경력 30년의 대학교 때 은사님을 찾아가 그 ‘비법’을 여쭈었다. 무조건 재밌게 해라! 단 1분이라도 빨리, 끝내라! 명강! 명강해도 휴강만 한 명강은 없다. 궁리 끝에 나는 재밌게 수업하기 위해 제주도 사투리를 써 보기로 했다. 당시 야간 강의에는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출석한 직장인들이 많아 그런지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난 단 한 명이라도 덜 졸게 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다행히 그 방법은 먹혔다. 새침한 30대 중반 신참 강사의 입에서 80대 촌 할머니의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가 무심코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는 다들 재밌어했다. 제주의 언어는 한라산 남쪽과 북쪽이 조금 다르다. 게다가 조선 시대 행정구역인 제주, 대정, 정의(지금의 성읍) 지역마다 쓰는 단어가 약간씩 다르다. 서귀포시 예래동에서 태어나 중문동에서 자란 나는 매미를 ‘재열’이라고 불렀다. ‘왕재열’, ‘폿재열’, ‘구재기재
영주실, 시로미 ‘최초의 동북아 탐험가’ 혹은 ‘희대의 사기꾼’으로도 전해지는 서복 동도의 목적은 불로초를 구함이다. 확실하게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시황제의 방사 서복이 한라산에서 구했다는 불로초가 바로 ‘시로미’라는 이야기도 있다. 시로미는 ‘영주실(瀛洲實)’이라고 불렀다. 영주(제주도)에서 나는 열매라는 의미이다. 제주도의 자연과 풍속에 대해 기록한 『남환박물(南宦博物)』(1704)에는 “한라산 꼭대기에 나는데 열매는 능금 같다. 빛은 검고 달다.” 김정호가 쓴 『대동지지(大東地志)』(1861∼1866년경)에도 “영주실은 한라산에서 나는데 조금 검고 달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로미는 시로미과 시로미속의 상록 활엽관목이다. 열매의 맛이 달지도 않고 시지도 않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암고란(巖高蘭)이라고도 한다. 한자로 오리(烏李), 즉 까마귀의 자두라는 뜻이다. 영어로는 크로우베리(crowberry)이다. 제주도 한라산 고산지대나 백두산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안토시아닌이 풍부해 항산화 효과가 매우 뛰어나다. 허리를 튼튼하게 하고 뼈를 단단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어 예로부터 한방에서 허리나 무릎이 시큰거릴 때 약으로
서귀포를 아~시나요? 진짜! 서귀포를 아시나요? 우리가 살면서 국어 교과서에 발췌된 지문을 조금 읽었을 뿐인데 원작을 다 읽은 듯이 얼렁뚱땅 넘어간다거나, 맛보기 영화 프로그램 주섬주섬 보고 나서 전편 다 봤다는 듯이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부분만 대강 알면서 전부를 훤히 다 안다고 애써 떠벌리기도 한다. 서귀포가 고향인 난 단 한 번도 서귀포에 살아본 적이 없다. 1981년 서귀읍과 중문면이 서귀포시로 통합되기 전까진 중문 살다가, 고등학교 진학하면서 제주시로 갔다. 이런 연유로 난 어릴 적부터 대한민국 가장 남쪽에 있는 도시 이름에 왜 서쪽을 나타내는 ‘서’가 들어갈까? 왜 서귀포하면 항상 ‘칠십리’를 떠올릴까? 왜 어머니는 매년 집에서 직접 한라산 ‘시로미’로 술을 담갔을까? 그게 많이 궁금했다. 다들 아는 척해도 정확히 알진 못하는 눈치다. “서귀포만의 특별함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이해합니다. 서귀포를 안다는 점은 서귀포 지역의 문화적 다양성과 환경적 특성을 이해하며 서귀포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뜻입니다.” 2013년 설립된 서귀포 귀농귀촌협동조합 대표 안광희(52)씨의 말이다. 진시황 불로초 전설 서귀포시 지명유래에는 역사적 사실과
곶자왈은 제주도민의 보물창고 과거 제주 사람들은 곶자왈에서는 숯을 많이 구웠다. 숯 굽는 재료로 가시나무류, 밤나무, 산딸나무, 서어나무 등이 쓰였다. 예전 숯을 구웠던 숯 가마터가 곶자왈 곳곳에 남아 있다. 숯 굽기를 위해 설치되었던 숯막들도 함께 볼 수 있다. 숯을 굽는 숯가마와 함께 곶자왈에서 발견되는 생활유적으로 옹기 가마터가 있다. 옹기를 굽는 가마를 제주에서는 ‘굴’이라 불렀다. 노란 그릇을 만들던 가마를 ‘노랑굴’, 검은 그릇을 만들던 가마를 ‘검은굴’이라 했다. 노랑굴에서는 물허벅과 항아리, 된장독과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검은굴에서는 떡시루, 사발, 대접 등 제사용품을 만들었다.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와 구억리, 제주시 한경면 산양리와 청수리 등의 옹기 가마터가 곶자왈 지대에 남아 있다. 곶자왈 지대에서의 수렵에 관한 기록은 『탐라순력도』의 「교래대렵」을 통해 알 수 있다. 임금에게 진상하기 위해 사슴, 멧돼지, 노루, 꿩 등을 수렵하였다. 노루를 잡기 위해 ‘노루텅’이라는 100~150cm 높이 함정을 만들기도 했다. 노루텅 흔적은 교래 곶자왈이나 선흘 곶자왈 등에서 발견된다. 제주도는 돌이 많아 농사를 지을 토지가 부족했다. 그래서 척
생물종다양성과 생태계의 보고 혼자라면 올레길이 좋다. 그러나 같이라면 곶자왈이 좋다. 곶자왈에선 아무리 착하게 산 사람이라도 혼자 걷기 무섭다. 서늘하고 음습한 대기, 짙은 그늘과 자욱한 안개, 바위를 감싼 나무, 이따금 들려오는 정체 모를 소리, 등반로를 벗어나기 힘든 빽빽한 밀림 등. 곶자왈을 다니다 보면 궁금한 게 많다. 곶자왈에서만 볼 수 있는 바위, 머들, 숨골, 식물, 동물, 곤충, 파충류 등과 함께 돌 숯가마, 숯 막, 산전 터, 옹기가마 터, 노루 텅, 소 물통, 말 물통, 잣 성 등 벌써 몇 해 년 전 대학 입시 때문에 힘들어하는 딸을 위로할 겸 곶자왈로 갔다. 처음에는 딸 혼자 한참을 앞서 걷더니, 얼마 가다 멈춰 있었다. 분위기도 음산하고 도깨비가 있는 거 같고 해서 무서워 아내와 날 기다린 듯했다. 그보다 소리 없이 펼쳐지는 낯선 광경과 경관, 각종 동·식물에 대해 같이 얘기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제주도는 삼다(三多)·삼무(三無)·삼보(三寶)의 섬이다. 삼다와 삼무는 다 아는 바와 같고, 삼보는 바다, 식물, 언어가 보물이라는 뜻이다. ‘식물의 보배’라는 말은 학자들이 제주도 식물을 연구한 결과, 좁은 지역에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분포하
지난해 어린이날 연휴 사흘 동안 1m(정확히는 1023mm)가 넘는 ‘물 폭탄'이 한라산 삼각봉에 쏟아졌다. 하루 33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다. 제주도 역대 5월 중 가장 많은 비다. 게다가 서귀포시 지역 강수량은 376.3mm이다. 이는 서귀포시에서는 1961년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이 내린 비다. 종전 300mm 넘는 기록은 대부분 여름 장마나 태풍 내습 때였다. 이 정도 비가 내리면 다른 지방에서는 100% 물난리 난다. 하지만 제주에서는 슈퍼급 태풍이라면 모를까? 웬만큼 비가 많이 내려도 거의 물난리가 생기지 않는다. 내린 비가 대부분 건천을 따라 바다로 흘러가거나 증발해 버리고 나머지는 지하로 스며든다. 한 선배가 있다. 그 무섭다는 남자 고등학교 1년 선배지만 왠지 만만해 보이는 형, 신장이 작고 몸이 왜소해 그렇기도 하지만 인상 자체가 순하고 착해 보여 더 그런 선배다. 그 형은 대학생 때부터 빗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통로가 궁금했다. 결국 제주에 내린 많은 비가 지하로 스며드는 통로가 어디인지를 밝히는 연구에 인생을 걸었다. “제주도가 아름다운 건 바다 위에 떠 있는 섬(島)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약 188만 년 전부터 1000년 전까지 제주
숨겨진 제주섬 이야기 뭉치를 펼칩니다. 그동안 알았던 제주가 아닌 신비의 세계 뒤에 숨겨진 제주의 이야기와 역사를 풀어냅니다. ‘제주 톺아보기’입니다. 그렇고 그렇게 알고 들었던 제주의 자연·역사, 그리고 문화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리워진 보석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사회사·경제사·사회복지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박사가 이야기꾼으로 나서 매달 2~3회 이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식물 사냥꾼, 중국인 윌슨 어니스트 헨리 윌슨은 포리 신부가 보내 준 표본이 아무리 봐도 기존 전나무와 뭔가 다르다고 생각하여 자생지에서 직접 확인하고자 1917년 10월, 제주도로 왔다. 그는 타케 신부와 같이 한라산에 올라 포리 신부가 채집했던 한라산 1100~1900m 같은 장소에서 구상나무를 채집하여 미국으로 가져갔다. 그 후 연구 끝에 구상나무가 형태적으로 전나무나 분비나무와 전혀 다른 특징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 결과, 윌슨은 제주도 한라산에서 채집한 구상나무를 'Abies koreana E. H. Wilson'이란 학명으로 신종 발표하였다. 속명 ‘Abies’는 전나무를 뜻하는 라틴어로 구상나무가 전나무 속임을 뜻하며, 종속명 ‘k
숨겨진 제주섬 이야기 뭉치를 펼칩니다. 그동안 알았던 제주가 아닌 신비의 세계 뒤에 숨겨진 제주의 이야기와 역사를 풀어냅니다. ‘제주 톺아보기’입니다. 그렇고 그렇게 알고 들었던 제주의 자연·역사, 그리고 문화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리워진 보석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사회사·경제사·사회복지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박사가 이야기꾼으로 나서 매달 2~3회 이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제주시 한라수목원에서는 매년 ‘제주 자생식물 나눠주기’ 행사를 한다. 이 행사에서 한라산과 오름에 서식하는 자생식물로 한라수목원이 자체 생산한 구상나무, 주목, 눈향나무, 백당나무 등 10종 3000그루를 민간에 제공한다. 다른 한라산 자생식물도 그렇지만, 특히 구상나무와 주목은 시중에서 구하기 어렵다. 이 행사는 구상나무 보존을 위한 ‘현지 외 보존 전략’의 한 부분이다. 만약 자생지에서 구상나무가 여러 요인에 의해 멸종된다 해도 유전적 정보들이 현지와 다른 곳에도 남아 있게 하려는 전략이다. 한라산 중산간지에 우리가 연구할 수 있는 시험림 공간들을 확보해 어린 구상나무 숲을 만들고 있다. 이날 제공되는 한라산과 오름에 서식하는 자생식물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