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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제주 사람들의 정서·문화를 담고 있는 언어 ... 제주어(1)

 

무조건 재밌게 해라!

 

1998년 가을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치고 고향 제주로 내려온 나는 인생 첫 대학강의를 하게 되었다. 기왕 하는 김에 한 다리 건너지 않아도 훤히 다 아는 좁은 지역사회에서 최소한 강의 못 한다는 소리는 듣지 말자 싶어서, 강의 경력 30년의 대학교 때 은사님을 찾아가 그 ‘비법’을 여쭈었다.

 

무조건 재밌게 해라!

단 1분이라도 빨리, 끝내라!

명강! 명강해도 휴강만 한 명강은 없다.

 

궁리 끝에 나는 재밌게 수업하기 위해 제주도 사투리를 써 보기로 했다. 당시 야간 강의에는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출석한 직장인들이 많아 그런지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난 단 한 명이라도 덜 졸게 하는 게 최우선 목표였다. 다행히 그 방법은 먹혔다. 새침한 30대 중반 신참 강사의 입에서 80대 촌 할머니의 구수한 제주도 사투리가 무심코 쏟아져 나오는 장면에서는 다들 재밌어했다.

 

제주의 언어는 한라산 남쪽과 북쪽이 조금 다르다. 게다가 조선 시대 행정구역인 제주, 대정, 정의(지금의 성읍) 지역마다 쓰는 단어가 약간씩 다르다.

 

서귀포시 예래동에서 태어나 중문동에서 자란 나는 매미를 ‘재열’이라고 불렀다. ‘왕재열’, ‘폿재열’, ‘구재기재열’ 등. 하지만 가시리나 세화, 태흥 등지에서는 매미를 ‘재’라고 한다. 서귀포, 남원, 표선 등지에서는 쥐를 ‘쥉이’라고 하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쥐를 ‘중이’, ‘쥥이’라고 한다. 수산, 김녕, 명월에서는 지네를 ‘주넹이’라고 한다. 나도 어릴 적엔 ‘주넹이’ 잡으러 다녔었다. 맥주보리가 여무는 이삭 줄기가 지네 모양 같다 해서 ‘주넹이 보리’라 했다. 반면 노형, 조수, 인성, 선흘, 남원에서는 지네를 ‘지넹이’ 혹은 ‘지냉이’라 한다. 문어를 ‘물꾸럭’이라고 불렀던 나는 문어를 ‘뭉게’라고 부르는 걸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경우는 이외에도 수없이 많다. 이를 제주어 ‘언어권’이라 하며 이를 지도에 표시하면 ‘언어지도’가 된다. 어쨌거나 이런 얘기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기 출신지나 친정이 밝혀지고 자기 경험이나 향수가 자연스럽게 배여 나와 어느덧 수업 분위기는 고향 뒷산으로 향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중년 아주머니 학생이 조심스레 내게 말했다. “교수님! 교수님 강의가 정말 재밌기는 한데, 제가 제주에 온 지 몇 년 안 돼서 그런지 교수님 말씀을 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엄청 속상하네요!”

 

아뿔싸! 젊은 학생들이 대부분인 주간 강의 때는 더 그랬다. 아예 강의시간에는 표준어를 써 달라고 항의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사석에서만 사투리를 가끔 쓰고 강의시간에는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했다.

 

단 ᄄᆞᆯ래기 ᄌᆞᆷ녀

 

25년이 지난 어느 날, 1998년에 강의했던 지금은 50대 초반 제자가 제주어를 보존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제주학연구센터와 제이누리 공동 주체 ‘제주어 보전, 제주어 찾기 공모전’에 수상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잇날 서펜이 ᄆᆞ살 동네 버렝이 ᄆᆞ을엔

(옛날 서편 모래 동네 벌레 마을엔)

단ᄄᆞᆯ애기 두릴 적 벗과 놀멍 체얌 베운 멘주기 헤엄

(외동딸아기 어릴 적 벗들과 놀며 처음 배운 올챙이 헤엄)

쉴 트멍 읏이 바당더래 ᄃᆞᆮ곡

(쉴 틈 없이 바다로 달려가고)

물에 들어가게 물에 들어가게 ᄒᆞᆫ딜로 ᄒᆞ는일 저싱 이싱질 헤엄

(바닷물에 들어가게 바닷물에 들어가게 함께 다 같이 하는 일 저승 이승 헤엄)

 

어떵ᄒᆞᆸ니까 어떵ᄒᆞᆸ니까 ᄌᆞᆷ녀들 지켜줍서

(어찌합니까, 어찌합니까 해녀들 지켜주옵소서)

불어터진 양착 손 모두왕 봉덕에 불 싼 빌엇주

(부르튼 양쪽 손 모으고 봉덕에 불 밝혀 빌었지)

 

절 들럭퀴는 바당 철썩 들어 가민 ᄂᆞᆯ싹ᄒᆞᆫ 몸 ᄄᆞ시 심이 나

(파도 날뛰는 바다 철썩 들어가면 나른한 몸 다시 힘이 나)

ᄒᆞ이 ᄒᆞ이 들숨 날숨 입바우서 춤추어 가민

(호이 호이 들숨 날숨 입 주위에서 춤추어 가면)

바당도 ᄄᆞ랑 심벡ᄒᆞ멍 어여싸나 어여싸나

(바다도 따라 경쟁하며 어여싸나 어여싸나)

어가라 물질 ᄒᆞ는 우리 어멍

(얼른 물질하는 우리 엄마)

 

이 시는 1970년생 강래화 시인이 87세 해녀, 친정어머니의 삶을 제주어로 그려낸 ‘단 ᄄᆞᆯ래기 ᄌᆞᆷ녀’라는 시(詩)다. “제주어가 가장 최고의 자산”이라는 강 시인은 8살 때부터 동네 앞바다에서 물질을 시작하여 지금도 ‘할망 바당’에서 물질하는 친정어머니의 인생을 제주어가 아니면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할망 바당’이란 주로 80대 노령 해녀들이 물질하기 쉽도록 수심 5m 이내로 얕게 만들어진 마을 어장을 말한다.

 

“제주의 정서에 맞게 글을 쓰기 위해, 그 표현을 제주어라는 이 아름다운 언어로 할 수가 있잖아요. 제주어를 학교에서 배워본 적 없어요. 공부하면서 배운 거를 제가 시를 쓸 때 응용을 한 거죠.”

 

이렇게 말하는 강 시인은 ‘푼드룽 ᄒᆞ다’, ‘푼드랑 ᄒᆞ다’라는 제주 말을 가장 좋아한다. 이는 마음에 만족하여 흐뭇하다, 더할 나위 없이 좋다는 제주어이다.

 

제주어는 바다라는 주변 환경과 관련된 문화적 특징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해녀를 뜻하는 ‘ᄌᆞᆷ녀’, 바닷물 속 조업을 뜻하는 ‘물질’, 해녀가 물질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이 뜨게 하는 공 모양의 기구 ‘테왁’, 해녀가 채취한 해산물을 담아두는 그물로 된 그릇을 의미하는 ‘망사리’ 등의 어휘가 있다. 이처럼 제주어는 제주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매우 높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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