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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톺아보기] 당신은 입도(入島) 몇 대? (2) 최장기 유배인 조정철

 

제주에서도 유배 문화를 지역문화 콘텐츠화하는 작업이 활발하다.

 

광해를 콘텐츠로 한 영화, 오페라, 연극, 유배길, 테마 상품, 각종 체험 프로그램 등이 많다. 광해의 흔적을 쫓아 광해 유배길, 유배 생활 중 광해가 즐겼다고 알려진 육고기와 잡채, 김치 등 광해의 밥상, 제주에서 입었던 옷 등 광해군 테마 상품, 임금님께 올리는 작은 상 한상차림 ‘광해 소반’, 나들이 음식‘광해 행반’, 광해군의 시를 담은 유리 문진 등 광해 기념품 등.

 

제주 유배 문화 콘텐츠의 꽃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제주 여인 홍윤애와 유배인 조정철의 목숨을 건 사랑 이야기다.

 

최장기 유배인 조정철은 제주와 인연이 깊다. 그의 할아버지 조정빈이 1723년 정의현에 유배되었고, 1731년에는 작은할아버지 조관빈이 대정현에 유배되었었다. 그의 아버지는 1754년 탕평책을 거론하다 대정현에 유배되었다. 조정철 자신도 27년 유배 생활 대부분을 제주에서 보냈다.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아내가 자결하는 절망적 상황을 맞이한 조정철은 20살 홍윤애(洪允愛)를 만나게 된다. 육지에서 지원해 줄 가족이 없던 조정철의 처지가 궁지에 몰렸다는 걸 알게 된 홍윤애는 용기를 내어 의탁지(地) 김윤재의 아낙을 찾아가 자기가 그분을 돌보아드리겠다 자청했다고 한다.

 

홍윤애는 조정철의 의복과 식사를 수발함에 그치지 않고 어머니가 시집갈 때 쓰라고 생전 마련해 둔 비단 옷감을 팔아 붓과 종이, 서책을 구해 조정철에게 시와 글을 쓰도록 했다. 홍윤애는 대역죄인인 그에게 기꺼이 사랑을 바쳤고, 정식으로 혼인을 맺지는 않았지만 딸을 낳았다.

 

그러던 중 당파가 달라 오랜 견원지간인 김시구가 1781년(정조 5년) 3월, 제주 목사로 부임해 오게 된다. 그는 오자마자 판관 황윤채와 짜고 조정철을 제거하고자 했다. 조정철을 불러 갖은 형벌을 가하여 죄목을 만들고자 했으나 뜻대로 안되자 조정철의 거처를 출입하던 홍윤애를 잡아들인다.

 

김시구는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그녀에게 모진 고문을 했다. 그러나 ‘공의 목숨은 나의 죽음에 있다’라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형틀에 매달리는 고문을 당한 홍윤애는 결국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정조가 죽고 새로운 임금이 등장하면서 조정철은 유배에서 풀리게 된다. 27살에 대역죄인이 된 뒤 약 30년이 흐른 뒤다. 다시 관직에 오른 조정철은 제주 목사를 지원했다.

 

화북포로 부임하자마자 조정철은 유배 시절 자신을 구하기 위해 의롭게 목숨을 버린 그녀의 무덤을 찾아 목메어 울면서 밤을 새웠다. 다음날 묘비를 세우며 조정철은 묘갈명(墓碣銘)을 썼다. 조정철이 써 내려간 묘갈명은 당시 사대부로서는 파격적인 행동이었다. 조정철은 목사라는 공인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홍랑(洪娘)을 ‘홍 의녀(義女)’라 존칭하고 묘갈명을 남겼다.

 

비문에는 '옥 같던 그대 얼굴 묻힌 지 몇 해던가. 누가 그대의 원혼을 하늘에 호소할 수 있으리. 진한 피 깊이 간직하고 죽고 나도 인연이 이어졌네'라는 시를 남겼다. 이는 지금도 유배 문학의 꽃으로 여겨진다. 조정철이 홍윤애를 위해 세운 묘비의 시비(詩碑)는 우리나라 유일의 금석문으로 전해지고 있다.

 

1997년 11월 9일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양주조씨 문중의 사당인 함녕재에서 홍윤애를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고 전해지는 조정철의 정식 부인으로 인정하여 사당에 봉안하는 의식이 거행됐다. 비로소 두 사람의 순애보가 186년 만에 복권된 셈이다.

 

홍윤애의 무덤은 제주시 삼도1동 ‘전농로’에 있었다. 1932년 이곳에 제주 농업학교가 들어서면서 무덤은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로 이장되었다.

 

제주시에서는 묘비 옆길을 '홍랑로'라고 이름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전농로 벚꽃 거리 왕벚꽃 축제를 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제주 의녀 홍윤애 순애보는 창작 오페라, 연극, 무용, 문학제 등으로 되살아나고 있어 현재도 유배 문화 콘텐츠의 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정책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지식산업센터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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