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제주섬 이야기 뭉치를 펼칩니다. 그동안 알았던 제주가 아닌 신비의 세계 뒤에 숨겨진 제주의 이야기와 역사를 풀어냅니다. ‘제주 톺아보기’입니다. 그렇고 그렇게 알고 들었던 제주의 자연·역사, 그리고 문화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가리워진 보석같은 이야기들입니다. 사회사·경제사·사회복지 분야에 능통한 진관훈 박사가 이야기꾼으로 나서 매달 2~3회 이 스토리들을 풀어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애독을 바랍니다./ 편집자 주
서귀포시 대정읍 노을 해안은 남방큰돌고래가 매일 오전 10~12시, 오후 3~5시쯤 자주 나타난다는 곳이다. 얼마 전부터 ‘남방큰돌고래 멍’ 때리는 힐링 성지로 이름나 있다. 매일 해수면 위로 나오기만 기다리는 관광객들이나 지역주민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고 갯바위 끝까지 가서 망원경으로 바다를 관찰하거나 드론을 띄우는 열성 팬도 있다.
바다 날씨가 흐려 볼 수 없는 날도 있지만, 날이 개고 바다 날씨가 좋아지면 틀림없이 남방큰돌고래를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틈만 나면 거의 매일 이곳을 찾는 지역주민도 있다. 와서 한 시간 정도 ‘돌고래 멍’하며 자연치유하고 간다고 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으로도 식별이 가능한 가까운 바다에 남방큰돌고래 수십 마리가 모습을 보여줬다. 장난치듯 솟아오르며 물장구치는 남방큰돌고래 무리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동영상 찍기에 바빴다. 파도를 가르며 미끄러지듯 헤엄치는 남방큰돌고래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보일 때마다, “와~ 몇 마리야?”하는 탄성이 쏟아졌다. 어린 남방큰돌고래가 머리 들고 수면 위로 높이 점프할라치면 이구동성으로 “어머 저것 좀 봐, 너무 귀여워~”하며 즐거워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그곳에 자주 나타난다고는 하지만 그 시간에 거기만 가면 누구나, 당연하게 남방큰돌고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평소 좋은 일 많이 하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다. 그 덕에 혹여 남방큰돌고래를 보게 된다면, 그를 영접한 기운으로 앞으로도 많은 행운이 따를 거라 믿으며 겸손하게 기뻐하면 될 터다.
설령 못 보더라도, 아쉽지만 기분 나빠할 정도는 아니다. '역시 남방큰돌고래가 자신을 쉽게 보여주지 않은 신비스러운 존재구나!'하며 다음을 기약하면 된다. 사실 남방큰돌고래를 못 봤더라도, 한 시간 이상을 청정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대자연의 신비를 꿈꿨으니 그것만으로 돈 안 들고도 해양치유가 된 셈이지 않은가?
제주에는 이렇듯 돈 안 드는 치유 자연자원이 많다. 산이 그렇고, 바다가 특히 그렇다. 바다에 가서 멍하고 있다 돌아오면 자연적으로 해양치유가 된다. 감귤이나 구상나무·왕벚나무 등이 제주를 대표하는 식물이라면 남방큰돌고래는 바다 보물이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남방큰돌고래는 또 다른 제주 상징물이자 소중한 자연치유자원이다. 이런 남방큰돌고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계기로 더 관심을 끌었다. 이 드라마 방영 이후 서귀포시 대정읍 해안마을은 명소가 됐다.
드라마에서 우영우 변호사는 이렇게 말한다. “제주도 서귀포 대정읍에 가면 삼팔이·춘삼이·복순이가 어린 돌고래들과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수족관에 붙잡혀 돌고래쇼를 하다가 대법원 판결 때문에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들입니다. 언젠가는 꼭 보러 갈 겁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남방큰돌고래는 정확한 종 분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슷한 종인 큰돌고래로 잘못 알려지곤 했다. 특히 어디에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먹는지, 몇 마리가 있는지 등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국립수산과학원 조사 결과 지난 16년간 식별한 제주 연안 남방큰돌고래는 120여 마리로 확인됐다.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수명이 40~50여 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배 쪽에 검은 반점이 많아지고 배 쪽에 분홍빛을 띠는 게 특징이다. 매우 친화력 있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성체는 몸길이 2.6m, 몸무게 220∼230kg 정도다. 12개월의 임신 기간을 통해 한 마리의 새끼를 낳아 기른다. 갓 태어난 새끼는 몸길이 1∼1.5m, 몸무게 20∼23㎏ 정도. 제주도를 비롯해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열대 및 온대 해역 연안에 주로 서식한다.
2012년 10월 당시 국토해양부는 멸종위기에 놓인 남방큰돌고래를 보호 대상 해양생물로 지정, 공연 등 영리 목적의 포획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제주도 사람들은 예로부터 돌고래를 신성시했다. 살아있는 채로 다른 어류와 섞여 잡히더라도 절대 죽이지 않았다. 제주도 해녀들은 돌고래를 가리켜 ᄀᆞᆷ새기, ᄀᆞᆷ수기, 곰새기, 수애기, 수어기, 수해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렀다.
제주에는 “감새기 올 때 궂인 것 하나 조친다(돌고래 올 때 상어가 따라온다)”, “웨ᄀᆞᆷ새기 노는 딘 가지 말라(외톨이 돌고래 노는 데는 상어가 나타나므로 가지 말라)”라는 속담이 있다. 돌고래 뒤를 따라다니는 상어가 해녀 생명을 위협하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므로 돌고래가 나타나면 작업을 중지하고 경계해야 했다는 의미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에 등장
제주 돌고래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5권에 나온다.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인 유희춘(1513∼1577)은 전라도 수군의 조운(漕運) 폐단을 아뢰면서 “신이 삼가 살피건대 제주에는 강돈(돌고래)이 사슴으로 변해 그 생산이 끝이 없고 그 지방에는 호표(호랑이와 표범)나 시랑(승냥이와 이리)이 없어 사슴과 노루가 번성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원담을 사랑하는 남방큰돌고래
19세기 이전 제주에서는 연안에 전통 돌 그물인 원담(石堤)을 쌓아 어로 작업을 했다. 원담은 자연지형과 물때를 이용해 만든 제주의 전통 고기잡이 시설이다. 돌로 담을 쌓고 밀물이 들어오면 물을 가두었다가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들어왔다가 썰물 때 원담 안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해 남아 있던 멸치나 숭어를 ‘족바지’(뜰채) 혹은 ‘당망’으로 건져 올렸다. 남방큰돌고래는 이런 숭어나 멸치를 아주 좋아한다. 원담은 작게는 수 m, 크게는 수십m 크기로 둥그런 모양으로 만든다.
요즘도 가끔 원담에 들어오는 남방큰돌고래는 왕성한 먹이활동을 한다. 바닷물이 빠지면서 숭어나 넙치 등 먹잇감이 갇혀 나가지 못하는 생리를 잘 알아 수시로 들어온다. 바닷속 사정을 훤히 아는 이 남방큰돌고래가 원담에 들어오면 최소 한 달 이상 머문다.
원담 안에서 남방큰돌고래는 조석간만에 맞춰 움직인다. 물이 많이 빠졌을 때는 활동반경이 물이 고이는 한 곳으로 줄어들고 한 방향으로 천천히 유영한다. 바닷물이 만조일 때에는 커진 웅덩이에 따라 활동반경도 넓어지면 넙치를 잡아먹기도 한다. 그러다가 원담 안에 먹이가 떨어지면 만조를 이용하여 넓은 바다로 나간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진관훈은? =서귀포 출생, 동국대 경제학 박사(1999), 공주대 사회복지학 박사(2011). 제주특별자치도 경제특보를 역임하고, 제주테크노파크 수석연구원을 지냈다. 천사나래 주간활동센터 시설장을 맡아 일하며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학기 중에는 제주한라대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저서로는 『근대제주의 경제변동』(2004), 『오달진 근대제주』(2019), 『오달진 제주, 민요로 흐르다』(2021), 『제주의 화전생활사』(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