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셸리(Mary Shelley)의 「프랑켄슈타인」을 단순한 공포 소설이나 과학 스릴러로 소비해 버리는 것은 자칫 이 작품의 가장 위험하고도 종말론적인 심장을 떼어놓고 읽는 부당한 독해법일 수도 있겠다.
프랑켄슈타인의 원작자 메리 셸리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사실 최초의 근대적 ‘종말론(Apocalypse)’ 소설을 쓴 작가다. 메리 셸리는 「최후의 인간(The Last Man)ㆍ1826년」을 통해 전염병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미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종말의 인간군을 그려낸다.
요즘 흔하디흔한 지구종말이나 인간종말 영화들과 너무나 똑같은 전개방식과 내용이라 놀라운 소설이다. 메리 셸리가 문학사에서 ‘최초의 종말론자’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녀의 부모 역시 각종 ‘최초’의 타이틀을 획득한 혁신의 DNA 보유 혈통이다.
「여성의 권리옹호(A Vindication of the Rights of Woman)ㆍ1792년」라는 명저를 남긴 그녀의 어머니 메리 울스톤크래트(Mary Wollstonecraftㆍ759~1797년)는 사상사에서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공식 기록되는 자유주의 철학자다.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ㆍ1756~1836년)은 최초의 개인주의적 무정부주의자로 기록되는 인물이다.
무엇이든지 ‘최초’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메리는 ‘최초’의 종말론 소설가였으며 동시에 최초의 미래학자로 불려도 무방할 듯하다. 19세기의 탁월한 ‘미래학자’로 불릴만한 메리 셸리는 이미 1818년에 21살의 나이로 프랑켄슈타인 박사를 통해 21세가 오늘날 대세가 된 로봇과 인공지능(AI)을 합친 ‘피지컬 AI’에 해당할 법한 ‘괴물’을 탄생시킨다.
메리 셸리가 탄생시킨 ‘괴물’은 그 외모는 흉측하지만 북극의 바닷속에서 몇 미터 두께의 얼음을 뚫고 나오고, 삼손처럼 ‘끙’하고 한두번 용을 쓰면 얼음에 갇힌 거대한 함선도 밀어 바다로 내보낼 수 있는 괴력을 지녔다.
그 괴력을 발판으로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실험실에 쇠사슬로 묶어놓고 폭파해도 거뜬하게 살아남는다. 흔한 괴물이 아니라 ‘불가사리’ 같은 ‘불사不死의 괴물’이다. 그런데 이 괴물은 피지컬만 압도적인 것이 아니라 지능까지 압도적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마수에서 벗어난 괴물은 숲속 어느 대단히 ‘지성적인 노인’의 집으로 숨어들어 그곳에서 노인이 평생 수집해 놓은 밀턴의 ‘실낙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퍼시 비시 셸리(Percy Bysshe Shelley)의 시 ‘오지만디아스(Ozymandias)’ 등등 인류 최고의 지혜와 지식들을 인공지능(AI)처럼 습득한다.
실로 최강의 ‘피지컬 AI’ 탄생이다. 요즘 화제가 되는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가 이 ‘괴물’일지도 모르겠다. 메리 셸리의 선지자적 예언에 탄복할 뿐이다.
이런 극강의 피지컬 AI가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좌표’ 찍고 복수에 나섰으니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괴물은 복수를 위해 말 그대로 ‘지구 끝까지’ 박사를 추적하고, 박사는 지구의 ‘땅끝 마을’인 북극까지 도망친다.
결국 험난한 도주 끝에 만신창이가 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더 이상 도망갈 곳 없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괴물과 마주한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통상적인 권선징악의 스릴러물이라면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해 정의를 구현하고 끝나면 된다.
그런데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는 뜻밖의 반전이 일어난다. 죽어가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뜻밖에도 괴물에게 느닷없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다. 그보다 더욱 충격적인 ‘반전’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사과를 받은 괴물도 참으로 싱겁고 맥락 없이 박사를 용서한다.
사과와 용서를 주고받으면 대개는 해피엔딩이 돼야 마땅할 텐데, 프랑켄슈타인은 원작 소설이나 영화 모두 결코 마음 따뜻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메리 셸리의 원작소설과 델 토로 감독이 변주한 영화는 그 마지막 장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원작에서 괴물은 북극 탐사선 선장을 통해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창조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혀 괴로워하다 이미 죽었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자신을 창조한 박사의 회한을 전해들은 괴물은 비탄에 사로잡혀 마지막 말을 남긴다. “나는 장작더미 위에 올라 불길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나의 재는 바다로 흩어지고, 나의 영혼은 평화롭게 잠들 것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의 피조물인 괴물이 인간세계를 모두 파괴하는 재앙이 되리라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떨며 숨을 거두지만, 정작 그 괴물은 깊은 번민 끝에 더 이상 세상을 파괴하지 않고 스스로 자폭해서 사라지는 길을 택한다.
당대 최고의 낭만파 시인이었던 남편 퍼시 비시 셸리 못지않게 낭만주의 문학가였던 메리 셸리다운 결말이다. 인간이 창조한 기계문명의 모든 괴물이 인간들에게 재앙이 되기 전에 ‘낭만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사라져주는 것으로 끝맺는다.
어쩌면 인간들이 세상에 내놓은 과학문명의 모든 괴물들은 이렇게 ‘낭만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사라져주는 것이 아니니 그 창조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가 소개하는 ‘판도라의 상자’는 신이 열지 말라고 한 상자를 인간이 열어버려서 상자 속에 봉인돼 있던 모든 종류의 재앙이 세상에 나와 버렸다고 한다. 혹시 우리가 열어젖힌 ‘AI 시대’는 1818년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을 통해 인간들에게 열지 말라고 경고한 우리시대의 판도라 상자일지도 모르겠다.
판도라의 상자에 갇혀 있던 모든 재앙이 세상으로 퍼져나갔지만, 상자 속에서 남아있던 마지막 한 가지가 ‘희망’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온갖 재앙 속에서도 꾸역꾸역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
델 토로 감독이 영화를 끝내면서 마치 영화의 묘비명처럼 적어 넣은 바이런의 시구 한 구절이 인상적이다: “심장은 부서지겠지만, 심장이 부서진 채로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간다(The heart will break, and yet brokenly live on).”
메리 셸리의 원작에는 없는 문장이다. 온전히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슈타인 해석이지만, 델 토로 감독이 AI 시대의 입구에서 특별히 프랑켄슈타인을 소환한 이유도 어쩌면 이 한 문장에 담겨있는 듯하다.
“머지않아 괴물이 될 AI와 피지컬 AI들이 우리들의 심장을 부수겠지만, 우리는 부서진 심장을 부여안고 그래도 꾸역꾸역 살아가리라.” 그것이 델 토로 감독의 종말론적 예언인지 혹은 위로인지는 모를 일이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