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가 보여주는 오하이오주州 어느 ‘깡촌’ 마을 비극의 진앙은 이 마을의 작은 교회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러셀 부인(할리 베넷 분)은 이 쇠락한 폐광촌 교회의 독실한 신자이자 인자한 할머니다. 주인공 윌러드(빌 스카스가드 분)의 어머니이자 아빈(톰 홀랜드 분)의 할머니이며, 헬렌(미아 바시코프스카 분)의 양어머니이자 레노라(일라이자 스캔런 분)의 양할머니라는 그 ‘직함’만으로도 그녀가 ‘불행의 아이콘’이라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전쟁에서 돌아온 외아들 윌러드가 고향을 등지자, 러셀 부인은 고아이면서도 독실한 신자이고 ‘참한 아가씨’인 헬렌을 양녀로 삼는다. 그런데 헬렌은 ‘미친 부흥사’ 로이(해리 멜링 분)와 결혼하고, 로이는 자신의 ‘부활의 능력’을 증명하겠다고 헬렌을 죽이지만 부활기도가 씨도 먹히지 않자 갓난 레노라까지 버리고 야반도주한다. 그렇게 졸지에 고아가 된 레노라를 독박육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외아들 윌러드가 아내가 죽었다고 자신도 자살한다. 역시 졸지에 고아가 된 친손자 아빈도 러셀 부인이 거둬 키울 수밖에 없다. 사람에게 닥칠 수 있는 모든 불행이 몰아닥친 러셀 부인이 매달릴 수 있는 곳은 교회뿐이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제목답게 ‘사라지지 않는’ 온갖 악마들이 날뛰면서 거의 모든 등장인물이 비극에 빠진다. 그중에서도 스스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윌러드(빌 스카스가드 분)와 레노라(일라이자 스캔런 분)의 모습이 가장 비극적이다. 윌러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악명 높은 솔로몬군도 전투에서 악마 같은 일본군을 맞아 자신도 악마가 되면서 ‘신은 죽었다’고 믿는다. 귀향해서 ‘어쩔 수 없이’ 교회예배에는 가지만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사랑하고 의탁하는 아내 샬럿이 치유 불가능한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숲속에 자신만의 기도터를 마련하고 맹렬하고도 광적인 치유의 기도에 매달린다. 전형적인 ‘민원성 신자’인 셈이다. 당연히 응답은 없다. 신이 답하지 않자 윌러드는 기도의 양과 질을 대폭 업그레이드한다. 밤낮으로 기도에 매달리고 종국에는 어린 아들 아빈의 유일한 친구인 강아지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십자가에 매달아 바치는 엽기적인 피의 기도를 올린다. 이런 저질스러운 기도에 응답할 신은 없다. 그렇게 아내 샬럿이 죽자 한순간에 ‘현타(현자의 타임)’가 몰려온 윌러드는 기도터에서 목을 매 자살한다.
영화에는 ‘사라지지 않는’ 다양한 악마가 저마다의 악마성을 발휘해 누가 정말 ‘대마왕’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비중은 비록 미약하나 그 역할은 그야말로 창대한 악마는 노컴스티프 마을의 보안관 보데커(세바스찬 스탠 분)라는 인물인 듯하다. 주민이라야 수백명에 불과한 낙후되고 작은 마을이다 보니 영화 속에선 보데커가 근무하는 변변한 파출소조차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모든 사건은 보데커 혼자 현장출동하고 혼자 처리한다. 결국 보데커가 마을의 모든 사건에 절대권력을 행사한다. 19세기 영국 액턴(Acton) 남작이 교황의 무오류성을 비판하면서 남겼던 ‘모든 권력은 대개 부패하며,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위대한 사람은 거의 항상 나쁜 사람이다(Power tends to corrupts, and 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 Great men are almost always bad men)’라고 했던 경구는 보데커에게도 적용된다. 작은 시골 촌락에서 거의 교황급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보데커는 절대적으로 부패하고 악마(bad man)가 된다. 크든 작든 그것이 마치 모든 공동체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라도 되는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속에서 가장 딱한 장면은 오하이오주州의 주민 400여명에 불과한 노컴스티프(Knockemstiff)라는 쇠락한 작은 촌락의 순진한 소녀들이 도시에서 온 ‘멋쟁이’ 젊은 목사에게 농락당하는 모습이다. 노컴스티프라는 쇠락한 촌락에 어울리는 늙고 후줄근한 병든 목사가 퇴임하자, 대도시 교회에서 ‘좌천’된 프레스턴(로버트 패틴슨 분)이라는 젊은 목사가 세련된 자동차와 복장, 그리고 말투로 무장하고 부임한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한 마을 사람들은 열과 성을 다해 교회에서 환영식을 열어준다.[※참고: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원작 속에서 프레스턴 목사는 대도시 교회에서 교인 상대 성추문으로 퇴출당한 목사로 그려진다.] 온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음식을 차려온다. 러셀 부인(헤일리 베넷 분)도 마음 같아서는 닭요리를 준비하고 싶지만 살림살이가 여의치 않아 ‘닭 살코기’ 대신 저렴한 ‘닭 간’을 최선을 다해 요리해 간다. 프레스턴 목사는 마을 사람들이 진열해 놓은 요리들 앞을 마치 요리경연대회 심사위원장처럼 ‘같잖다’는 표정으로 살피며 지나다가, 마침내 러셀 부인이 혼신의 힘을 기울인 닭 간 요리 앞에 멈춘다. 이 싸구려 요리에 프레스턴이 거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는 소외되고 폐쇄된 남부의 촌락들에 자생하는 ‘악마’들 외에 외부에서 유입된 악마들도 등장한다. 칼(제이슨 클라크 분)과 샌디(라일리 키오 분)가 그들이다. 영화는 이들 외래종 악마들에게도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해 그들의 ‘악마성’을 추적 보고한다 먼저 샌디를 보자. 그녀의 오빠가 노컴스티프(Knockemstiff)의 보안관인 것을 미뤄보면 샌디 역시 노컴스티프 출신임에 분명하다. 영화는 샌디의 과거까지 소개해 주지 않지만 레이 폴록(Ray Pollock)의 원작이 밝히는 그녀의 과거는 노컴스티프 출신으로 자신의 ‘반반한’ 미모 하나만 믿고 답답한 고향을 뛰쳐나가 캘리포니아로 무작정 뛰어든다. ‘스타’의 꿈을 꿨지만 결국은 연예계 ‘포식자’들에게 착취당하고 포르노 배우로 전락하는 상처만 안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오하이오주州 쇠락한 식당에서 일하던 아가씨다. 샌디는 그곳에서 역시 캘리포니아의 포식자들에게 영화감독의 꿈이 산산조각 나고 포르노 사진이나 찍다가 오하이오 ‘깡촌’으로 돌아온 칼을 만난다. 같은 상처를 공유한 ‘상처 입은 피해자 커플’이다. 샌디와 칼은 자신들이 대도시에서 겪은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악마’들 중에서 두명의 목사는 단연 압권이다. 로이 라퍼티(Roy Laferty·해리 멜링 분)는 정식 신학교육을 받고 안수받은 목회자가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를 ‘목사님’이라 부르며 열광한다. 휠체어에 의지하는 사촌인 시어도어와 함께 소외된 지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여는 풍각쟁이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 로이는 노컴스티프 교회의 주일 예배에 강연 초청을 받아 거미가 든 유리병을 자신의 머리에 쏟아부어 신앙을 증명하는 퍼포먼스를 벌인다. 신앙의 힘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거미 공포증(Arachnophobia)’을 물리쳤다고 “할렐루야”를 외친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로이의 할렐루야를 복창한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곡마단의 막간 쇼 정도일 이 ‘거미 쇼’는 광적인 복음주의에 사로잡힌 노컴스티프 신자들(남부침례교와 오순절 교회)에게는 그야말로 신유와 기적으로 비쳐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낸다. 로이의 포퍼먼스에 ‘꽂힌’ 고아 소녀 헬렌은 그 자리에서 로이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로이는 자신이 창안한 ‘거미 쇼’에 맛들였는지 단발성에 그치지 않고, 헬렌과의 결혼 후에도 부흥회 약발이 떨어질 만하면 반복한다. 어느 날 결국
미국이 겪은 2차 세계대전 중 일본과의 태평양 전쟁 중에서도 참담하기로 가장 유명한 전투가 남태평양 과달카날 전투였다고 한다. 1942~1943년 사이 약 6개월간 남태평양 작은 섬 과달카날 섬과 그 주변 섬들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미군 7000여명과 일본군 약 2만명이 전사했다. 일본군의 피해가 더 ‘악몽적’이었음에도 미국은 자신들이 입은 피해만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는 전투다. 본래 남의 피해에는 둔감하고 나의 피해는 뼈에 사무친 법이다.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주인공 윌러드도 이 전투에 참여해서 ‘지옥과 악마’를 제대로 경험한다. 일본군이 미군 중사를 산 채로 가죽을 벗겨 십자가에 매달아 놓은 끔찍한 현장도 목격한다. 일본군만 악마가 아니라 일본군과 마찬가지로 악마가 돼 일본군을 도륙하는 자신의 동료 미군의 모습도 생생히 목격한다. 과달카날 전투 전사자 7000여명에 포함되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윌러드는 ‘나라 잃은 표정’으로 귀향한다. 귀향길에 오하이오주州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일하는 샬롯을 우연히 목격한다. 한 노숙인이 식당에 구걸하기 위해 들어온다. 식당 주인은 매몰차게 노인을 내쫓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샬롯은 주인 몰래 신문지에 먹을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의 배경 오하이오주州의 몰락한 작은 촌락 ‘노컴스티프’. 마찬가지로 활력을 잃고 쇠락한 웨스트버지니아주의 ‘콜 크릭(Coal Creek·탄광촌)’. 두 곳은 ‘왕년’에 한때 미국 최고의 부를 누리고 미국의 심장이었던 지역들이다. 그러나 1940년대 미국의 ‘전기혁명’을 뒷받침했던 웨스트버지니아의 탄광과 1960년대 미국의 ‘철강혁명’의 심장이었던 오하이오의 철강도시들은 석유의 본격 개발에 이은 철강산업의 쇠퇴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이 영화는 영화적 장르를 ‘남부 고딕(Southern Gothic)’이라고 못 박고 있다. 문학에서 ‘고딕’이란 단순히 유령이 나오는 괴기담이 아니다. 한 시대를 호령했던 역사의 주인이 몰락해 가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옛 영광을 잊지 못한 채 먼지 쌓인 대저택 안에서 무기력하게 고사枯死해가는 음산하고도 기괴한 풍경을 의미한다. 지금은 ‘러스트 벨트’로 통칭되는 영화에 등장하는 오하이오의 쇠락한 공장지대와 버려진 탄광지대에 남아 살아가는 영화 속 인물들은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외부에 대한 경계와 폐쇄성 속에서 기적을 향한 광적인 기도에만 매달린 채 고사해가고 있다. 콜 크릭 마을의 목사
먼저 ‘노컴스티프’는 원작 소설 작가이자 이 영화의 ‘내레이터’로 참여한 도널드 레이 폴록(Donal Ray Pollock)의 고향이기도 한 실재하는 지명이다. 반면, 콜 크릭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미국에 무수히 산재하는 탄광촌의 보통명사에 가깝다. 쉽게 말하면 이름 없는 탄광촌이다. 영화가 분위기나 느낌이 크게 구분되지 않은 이 쇠락한 촌락들을 오가며 전개되다보니 가끔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작가가 굳이 이 2개의 촌락을 하나의 ‘프레임’에 담으려 한 이유가 궁금해진다. 오하이오주의 노컴스티프와 웨스트버지니아의 콜 크릭은 그 사이에 오하이오강(Ohio River)을 사이에 두고 200여㎞ 떨어져 데칼코마니처럼 마주 보고 있는 촌락들이다. 영화의 주인공 윌러드(빌 스카스가드 분)와 아빈(톰 홀랜더 분)은 그 오하이오강을 건너오고, 또 건너가서 똑같은 악마들을 만나고 자신들도 악마가 돼간다. 웨스트버지니아 콜 크릭 출신인 윌러드는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에 투입돼 악마가 된 인간들의 생생한 모습을 목격한다. 그러나 그곳에 신은 없었다.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는다’는 복음주의 신앙인 ‘남부침례교’ 모태신앙이었던 윌러드는 악마들이 날뛰는 그 참혹한 전쟁터에
한때 탄광으로 번영했지만 석유산업이 본격화하면서 버려진 땅 ‘웨스트버지니아’.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에서 보여주는 이곳의 절망적인 무기력과 배출구 없는 분노, 그리고 그들이 오로지 매달리는 광적인 기도의 모습은 음산하고 기괴하다. 영화에서 배경으로 소개하지 않지만, ‘버려진 땅’ 웨스트버지니아의 그 음산하고 기괴한 분위기는 1921년 영화 속 그 땅에서 벌어진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했던 노동자 무장 봉기 사건인 ‘블레어산 전투(Battle of Balir Mountain)’를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당시 웨스트버지니아의 석탄 광부 1만여명은 자본의 착취와 사설 무장 괴한(우리나라로 치면 백골단)들의 폭력에 맞서 삽자루 정도가 아니라 진짜 총을 들고 봉기했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미국 내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무장충돌이었고, 여전히 미국 현대사의 감추고 싶어 하는 상처이자 치부로 남아 있다. 자본가들의 편에 선 주州 정부와 보안관들은 광부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심지어 민간 비행기를 동원해 사설 공중 폭격까지 감행했다. 결국 연방군과 육군 항공대(전투기)까지 광부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됐다. 우리가 경험했던 ‘5·18 민주화운동’과 너무도
영화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Devils All The Time·2020년)’는 도널드 레이 폴록(Donald Ray Follock)의 동명 소설을 안토니오 캄포스(Antonio Campos) 감독이 영상으로 옮긴 미국의 ‘버려지고, 격리된’ 지역에 관한 보고서에 가깝다. 원작자인 폴록은 ‘버려진 채 잊힌’ 오하이오주州 남부 ‘노컴스티프(Knockemstiff)’라는 시골 출신으로 30년 넘게 그곳 제지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독특한 작가다. 그렇게 이 작품은 외부인의 시선이 아닌, 내부자의 뼈저린 경험에서 나온 작품으로, 여기엔 화려한 미국에서 소외되고 쇠락한 채 버려져 ‘유령의 땅’이 돼버린 지역의 절망과 무기력, 그리고 분노가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이 ‘늦깎이’ 작가의 첫 작품이 미국 내에서 대단한 반향을 이끌어냈고, 곧바로 캄포스 감독에 의해 영화화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원작자 폴록은 영화에도 직접 참여해 마치 ‘르포’처럼 내레이션이 유독 많은 이 영화에서 본인이 경험한 ‘유령들의 땅’의 절망감을 담담하게 육성으로 전달해 영화의 ‘리얼리티’를 더해준다.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1945년)부터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저서를 영화화한 ‘장미의 이름’은 마지막에 이르러야 기호記號의 반전을 보여준다. ‘기호’는 우리가 매일 접하면서 해석해야 하는 정보이고 사인(sign)이며 시그널(Signal)이다. 하지만 이런 기호를 잘못 수용하면 ‘망상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윌리엄 수도사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기기인 안경까지 휴대하고 다니며 수도원 연쇄살인을 수사한다. 요즘으로 치면 ‘CSI급’ 과학수사다. 윌리엄 수도사는 동시대 실증주의 철학자인 윌리엄 오캄을 상징한다. 윌리엄 오캄은 당시 유럽에서 최초로 안경을 쓰고 모든 것을 철저하게 관찰한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윌리엄이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이미 죽어 있었던 사람은 벼랑에서 떨어져 시체로 발견된 삽화가 아델모 한명뿐이었다. 그때 광신적인 수도사 ‘알리나르도’가 공포에 사로잡힌 얼굴로 윌리엄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속삭인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예언대로 흘러가는 것이오!” 근대적 합리주의와 기호학의 대가라 소개되는 윌리엄은 당연히 이 황당한 ‘요한계시록 프레임’을 비웃는다. 그런데 또다른 수도사 베난티오가 돼지 피 항아리에 처박혀 죽은 시체로 발견되자 윌리엄도 ‘요한계시록 프레임’에 걸려든다. 그러고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