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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 (11)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창조물 괴물 ... 하나의 몸 서로 다른 자아 간 갈등
우리 정치권 모습도 마찬가지 ... 공동선 향해 나가는 것만 해답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자신의 모든 지식을 ‘영끌’해서 생명창조의 야망에 쏟아붓는다. 그의 피조물은 그의 또다른 자아인 셈이다. 모든 창작자(철학자ㆍ음악가ㆍ작가 등)들에게는 자신을 대표해줄 자신의 ‘대표작ㆍ걸작(Magum Opus)’이라는 것이 있다.

 

 

그들에게 자신의 ‘매그넘 오푸스’는 자신의 정체성이 되기도 한다. 프랑켄슈타인의 매그넘 오푸스는 곧 그 ‘피조물’이고, 그 피조물이 실패로 규정되는 순간 프랑켄슈타인의 인생 자체도 실패로 규정될 수밖에 없이 둘은 한 몸으로 엮여버린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끔찍한 실패로 확인된 ‘대표작’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를 거부하고 작품목록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한다. 그러나 피조물은 자신이 프랑켄슈타인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기를 원한다.

그 갈등은 결국 프랑켄슈타인이 북극 끝까지 도망치고, 괴물은 북극 끝까지 추적하는 ‘복수극’으로 이어진다. 한 몸이 벌이는 참으로 기이하고도 처절한 아귀다툼이다. 하나의 몸에서 2개의 서로 다른 자아들이 벌이는 끔찍한 갈등은 ‘암피스바에나(Amphisbaena)’적이다.

암피스바에나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이다. 페르세우스가 잘라버린 머리 9개 달린 메두사의 머리를 독수리가 물고 갈 때 리비아 사막에 떨어진 피에서 한 몸에 머리 2개가 달린 암피스바에나라는 괴물이 탄생했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암피스(amphis)’는 ‘양쪽으로’이고 ‘바에나(bainein)’은 ‘가다’라는 의미라고 한다. 

암피스바에나는 한 몸에서 나온 두 개의 머리가 서로 반대방향을 보고 가려 한다. 당연히 서로의 머리의 목을 물어뜯고 뒤엉켜 싸우기도 하고, 어느 한쪽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국 몸이 찢어지고 만다.

그러나 그토록 증오하는 ‘다른 머리’가 죽으면 나도 죽고 마는 기묘한 운명이다. 어쩌면 ‘샴쌍둥이’와 퍽이나 닮은 운명이다.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괴물은 서로를 증오하지만, 동시에 상대방 없이는 자신도 존재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결투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벨트 결투(Bältespännare)’라는 야만적인 결투는 암피스바나에의 실사판이다. 벨트 결투는 두 남자의 허리를 하나의 벨트로 샴쌍둥이처럼 서로 얼굴을 마주 보게 묶어놓고 단검으로 싸우게 하는 결투방식이다. 상대의 심장박동과 숨소리까지 고스란히 느끼면서 상대를 죽여야 한다.
 

 

대부분은 함께 죽거나 이겨봤자 자신도 반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결투다. 이 전설적인 잔혹한 결투가 은밀하고도 면면히 이어져 현대에는 갱단 집단 내에서 행해진다고 한다. 분명한 것은 이런 암피스바에나적 결투는 승패가 없는 공멸을 전제로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신화는 항상 병 주고 약 준다. 인간사회가 공멸할 수밖에 없는 암피스바에나의 경고를 하면서, 두 마리 뱀이 등장하지만 암피스바에나의 비극을 피할 수 있는 힌트도 제공한다. ‘카두세우스(Caduceus)의 지팡이’가 그렇다.

우리에겐 명품 브랜드로 잘 알려진 ‘에르메스(Hermes)’는 전령(傳令)의 신(神)이다. 에르메스는 인간과 신, 이승과 저승 등 말이 통하지 않는 두 세계 사이를 날아다니며 통역을 해주기도 하고 갈등을 중재하기도 하는 신이다. ‘카두세우스’라는 그리스어는 ‘전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아마 에르메스가 가지고 다닌 지팡이를 카두세우스의 지팡이라고 했던 모양이다.

어느 날 에르메스 신이 두 마리 뱀들이 서로 뒤엉켜 물어뜯고 싸우는 꼴을 보고 뱀들 사이에 지팡이를 꽂자 뒤엉켜 싸우던 뱀들이 싸움을 멈추고 지팡이라는 하나의 ‘중심축’을 공유하며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 카두세우스의 지팡이는 공동선을 향한 질서를 의미한다.

결국 중심축을 껴안고 공동선을 향해 나아가는 것만이 서로를 물어뜯고 종국에는 공유하는 한 몸이 갈가리 찢겨나가는 암피스바에나적 갈등을 하나의 질서를 공유하며 풀 수 있다는 것이 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였던 모양이다.

그 지팡이를 법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혹은 그것이 인간의 이성이라고 저마다 해석이 분분하다. 고대 바이킹들이나 했을 법한 벨트 결투와 같은 암피스바에나적 결투가 온 나라를 휩쓴다.

한 몸이 분명한 남북한이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달고 서로 자기 갈 길 가겠다며 서로의 머리를 물어뜯고 온몸이 찢겨나간다. 하나의 몸통에 달린 보수와 진보, 여야가 그러하고, 한 정당, 한 진영에서도 두 개의 머리가 사생결단한다. 서로 “니가 가라 하와이” 하면서 이죽대다가 급기야 칼부림하듯 제명해버린다.

메리 셸리가 그린 ‘프랑켄슈타인’의 비극에서도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죽어버리자 그와 사생결단하고 싸우던 ‘괴물’도 스스로 죽어버린다. 그것이 암피스바에나의 비극이다. 보수가 없는 진보는 더 이상 아무 의미 없고, 진보가 없다면 보수도 자동 소멸한다. 상대의 목을 자르면 나도 죽는다.
 

 

이 엽기적인 암피스바에나적 혈투을 멈추게 할 카두세우스의 지팡이는 아마도 공동선을 향한 주체적인 ‘시민정신’일 듯한데, 여기저기에 저마다의 주군에게만 충성을 다하는 ‘신민(臣民, subject)’과 통치의 대상에 불과한 ‘국민’은 넘쳐나는데 정작 ‘시민’은 보이지 않으니 딱한 일이다.

해외뉴스를 통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르완다의 후투족과 투치족,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미얀마의 로힝야족 인종청소 모두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나 똑같아 보이는 사람들끼리 벌이는 ‘암피스비에나’적인 비극이다.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이 모든 암피스바에나적 비극을 ‘미세한 차이에 대한 자아도취(Narcism of minor differences)’ 현상이라고 정신분석한다. 서로 너무 닮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 미세한 차이에 죽기 살기로 집착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그 미세한 차이가 그들에게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인 양, 그것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다 같이 죽자고 하니 참으로 딱하다. [본사 제휴 The Scoop=김상회 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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