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산은 최남단 항구도시 모슬포 출신의 젊은 작가로 2023년 제49회 제주특별자치도미술대전 대상 작가이다. 2024년 3월 20일부터 4월 8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내 제주갤러리에서 유화작품 22점으로 김산 초대개인전 ‘염원’을 선보이고 있다. 화가 김산은 제주대학교에 미술학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현재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2010년 대학 2학년 때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회의 개인전과 70여 회의 초대전·단체전에 참가했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신진 작가 발굴 프로그램인 ‘젊은 모색 2021’에 선정된 바 있는 유망작가이며, 2024년 3월 이중섭 미술관에서 초대전을 함께 열고 있다. 이번 서울 제주갤러리 초대전 ‘염원’은 작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느꼈던 삶의 소중함에 대한 염원(念願)을 통해, 생명의 근원은 자연이며, 자연과 사람이 서로 교감해야만 상생공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자각에는 고향에서 느꼈던 ‘본향(本鄕)’에 대한 깊은 애정의 결과이며, 본향은 제주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써 거기에서 나오는 ‘본향의식’이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의 본질이라는 것을 작품마다 진득하게 담고 있다.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찾아서 최근 김산의 그림은 신비한 기운으로 싸여 있다. 고전적인 영성(靈性)의 느낌이랄까, 울창한 숲에서 나오는 청량(淸涼)한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기운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림은 삶의 반영되기에 화가의 삶에 그 궁금증이 더해진다. 김산의 고향은 가파도와 마라도로 가는 뱃길의 작은 항구 도시 최남단 모슬포이다. 이 모슬포가 속한 대정읍은 과거 외세의 질곡(桎梏)의 역사가 스민 아픈 땅으로, 여전히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대정읍은 옛 대정현 지역으로 말만 들어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거의 알 정도로, 동계 정온과 추사 김정희 등 정치적인 이유로 많은 이들이 유배를 왔고, 1901년 신축민중항쟁의 장두 이재수의 고장이며, 황사영의 아내이자 천주교인 정 마리아의 슬픈 묘역이 있는 곳이다. 모슬포의 해안은 조선시대 왜구들의 침범이 잦았고, 그 앞을 흐르는 구로시오(黑潮) 해류는 동인도회사 하멜을 비롯하여, 중국, 필리핀, 베트남, 일본 오키나와, 규슈 지역의 어민들을 데리고 오고, 반대로 제주민을 그 곳으로 데려가 이어도의 희망을 품게 했다. 현대사에서는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알뜨르 비행장이 있었고, 일본군이 패망하여 떠나자 미군이 다시 관여하면서, 한국전쟁 때 육군 제1훈련소가 만들어지고, 중국군 포로수용소 등 피난민을 포함한 군사기지촌이 되었다. 전후에는 미군부대 맥라브 기지를 만들어 휴양지라는 이름으로 운영했으며, 지금은 미군으로부터 한국 공군에게 이관된 모슬봉 레이더기지가 동북아시아를 감시하고 있다. 김산의 증조부는 4·3항쟁에 연루돼 6·25때 예비검속으로 구금된 후 섯알오름에서 희생돼 백조일손(百祖一孫)에 묻혔다. 당 조모(祖母)는 해녀(잠녀)로 일생을 보내며 본향당에서 바다의 공포를 이겨냈었다. 김산의 그림에는 그의 가계(家系)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산의 작품은 마치 리트머스(litmus)지(紙) 처럼 자신의 가족사와 제주사가 중첩되면서 4·3, 굿, 폭낭, 본향의 의미들을 해석한 것이다. 김산의 독특한 성장배경과 맞닿아 있다고나 할까. ‘사회적 풍경’이나 ‘백록’의 주제는 그 가족사의 확장이며, 사실적인 묘사 방식을 지향하는 것도 그런 역사 인식과 장소 경험을 반영한 것이고, 초현실적인 관점을 비치는 것도 낭만주의적인 이상향의 시각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 세대의 역사와 시대정신을 MZ세대로 횡단하여 재해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산은 대학생 신분으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어릴 적에 시골 고향(모슬포)에서 해녀 할머니의 생활을 지켜보면서 자란 것을 계기로 김산은 2010년 대학 2년을 마치고, 할머니의 바다를 주제로 삼아 '어머니의 바다'전을 이중섭 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끝마치고 군 입대를 했다. 이때 해녀 할머니의 일생에 관심을 가지고, 해녀굿, 물질, 해녀들의 바다이야기를 그릴 수 있었다. 제대후 대학을 졸업하면서 폭낭(팽나무)의 생명력에 매료돼 한동안 볼펜으로 흑백작업과 아크릴릭 칼라 작업을 했다. 그 후 곶(자왈)에 시선을 돌려 곶이 풍기는 원시적인 느낌을 받고 식물의 관찰을 통해서 자연생태에도 마치 인간처럼 삶과 죽음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시골 고향이 전해주는 본향(本鄕:마을수호신)의 의미가 매우 강렬해서 이후 폭낭, 사회적 풍경, 백록, 곶(자왈)의 주제에 상징성을 되살릴 수 있었다. 사회적 풍경에는 다시 산담과 4·3의 동굴, 두 할머니(성할머니와 처할머니)의 초상, 숲이 등장했고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버스정류장, 동자석 같이 기억상실된 일상의 풍경에도 눈을 돌려, 2021년 국립현대미술관 '젊은 모색 21'에 선정 작가가 돼 부스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작품은 경험에서 얻은 삶의 형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한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대상인데도 어떤 때는 크게, 어떤 때는 작게 보인다“고 했다. 이때 대상은 사물이거나 풍경 아니면 물체일 것이며, 다르게 보인다는 것은 스스로 삶의 경험에 대한 느낌, 보는 방법에 따라 그렇게 보이게 된다. 또 대상은 색채의 시각적인 변화에 의해서 물체의 확장과 축소, 공간 거리에 따라 대기 원근의 음영적 빛의 작용에도 영향이 미친다. 결국 다빈치는 "경험은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확신 속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경험을 중시 여겼다. 그는 “감각을 통과하지 않는 정신적 행위는 모두 공허하다”라고 할 정도로 감각적 경험을 최선으로 여겼다. 경험은 시간을 전제로 하여 자신의 삶을 깊이 있고, 익숙하게 만든다. 곧 인생이 경험 자체인 것이다. 생명체인 인간은 모든 삶의 정보가 이 경험에서 나오므로, 누구나 공간에 대한 지각 경험은 다르겠지만 어느 누구도 그 경험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화가의 경험은 자신의 사회적 환경에 따라 인상적으로 강렬하게 남은 것들이 작품의 주제 담론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인상(印象)은 지각되는 순간 경험으로 남고, 그 인상에 대한 느낌들이 몸의 기억인 관념이 된다. 우리는 온갖 시각적 관념 속에서 살아가며 응고된 이념의 그물에 둘러져 있어 볼 것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념으로 둘러싸인 마음은 흔들리기도 하지만 견고하게 고착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상상적 관념은 실재의 환영(幻影)처럼 꿈과 같이 사실주의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것은 회화가 단지 현실의 재현적인 모방이 아닌, 사실적이지만 비현실적인 상징, 즉 가상현실의 그림을 그릴 수도 있다. 시각은 지각으로써 마음을 움직인다. 오래 전 내면에 쌓인 무의식에서, 외부적 사건, 상황에 따라 동요하는 현실의 감정까지 오감 지각은 항상 유동(流動)하는 감정을 일으킨다. 예술은 바로 이 몸의 경험적 느낌의 결과이다.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2003)는 "작품은 하나의 경험"이며, 사실상 "예술은 작품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정신"이라고 하여, 오로지 작품 속에 화가의 정신세계가 있으며, "예술의 목표 자체가 예술"이라고 말한다.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5~1945)는 “화가는 평생을 다하여 회화를 찾는다. 그때 평생(삶 전체)은 그 목표도 수단도 확실치 않은 창작에 대한 탐구”를 하게 되는데, 그 창작은 “불확실성과 절대적 열정만이 있는 탐구”라고 말하고 있어 기약없는 예술의 길을 말하고 있다. 사실,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놀이 문화에서 유래한다. 요한 하위징아(Huizinga, Johan, 1872~1945)의 말처럼 문명사회의 예술은 신화와 의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예술도 놀이라는 원초적인 토양에서 자양분을 받고 있다. 현대인의 마음에 자리하는 신화적 상상력은 우리들의 오래된 원초성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다. 신비, 성스러움, 고고함에 대한 그 과거의 우러름은 오늘날은 게시(揭示)의 가치가 되고 있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없는데 한 화가의 경험은 멀게는 이론적으로 얻어지고, 가깝게는 생활 속에서 획득된다. 우리는 마을길에서, 또는 숲길에서 수많은 사물들과 만난다. 부드러운 바람을 스쳐가고 고개를 내민 나뭇가지를 건드리며 투박한 돌담을 돌아서 먼 산을 마주한다. 돌길, 습지, 밭담, 새, 구름, 나비, 나무, 넝쿨, 이웃의 풍경, 사람들을 바라본다. 경험하는 것, 즉 살아가는 것은 바라봄의 연속이며 스쳐감의 경로이기에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지나가는 것들도 있다. 이것을 우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선 매순간 삶의 아름다움과 고통, 기쁨과 좌절이 기다리고 있으며, 충만함과 억울함, 또 보람과 희망, 분노와 평안이 교차하거나 뒤섞인다. 흔히 사물들 간 스치고, 지나가고, 만나는 것을 관계라고 하는데 어떤 관계는 신중하고 어떤 관계는 의미 없이 잊힌다. 어떤 관계에선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하고, 혹은 어떤 만남에서는 타자의 실체를 깨닫기도 한다. 언제나 삶은 자신을 속이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결국 인생은 자신의 문제들을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사물자체는 세계 전체이며 사물들은 고유한 속성이 있다. 이를 테면 숲에서는 나무와 풀, 서식하는 동물이 중심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공간에서 중심이 된다는 것은 보는 자의 시선의 선택이다. 지정된 사물들에서 그것들의 세계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장소의 현장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거기의 사물들의 속성을 알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소에는 인간의 시선 방향에 따라 빛나는 존재들이 있다. 하나의 공간에서 빛나는 존재들은 무엇이나 될 수 있지만 그것의 선택은 오로지 화가의 영혼에서 할 일이다. 예술은 사물의 이미지를 강렬한 인상으로 부각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숲과 같이 현실에 존재하는 것일 수도, 오래된 시간 너머 백록같이 과거의 존재자를 불러올 수도 있다. 예술은 무엇이든 소환할 수 있으며 상상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예술은 작품으로부터 규정되어야만 한다. 작품을 보면 화가의 정신세계가 보이고 자신의 ‘존재 드러냄’이 보이고, 또 다른 무한한 ‘세계가 열려있음’이 보인다. 현실과 허구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고뇌하는 화가의 열정도 보인다. 그 열정의 결과들은 불확실성을 압축시킨 담론 주제의 빛남으로 모아진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김유정은? = 최남단 제주 모슬포 출생이다. 제주대 미술교육과를 나와 부산대에서 예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한국미술평론가협회), 제주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제주의 무신도(2000)』, 『아름다운 제주 석상 동자석(2003)』, 『제주의 무덤(2007)』, 『제주 풍토와 무덤』, 『제주의 돌문화(2012)』, 『제주의 산담(2015)』, 『제주 돌담(2015)』. 『제주도 해양문화읽기(2017)』, 『제주도 동자석 연구(2020)』, 『제주도 산담연구(2021)』, 『제주도 풍토와 문화(2022)』, 『제주 돌담의 구조와 형태·미학(2022)』 등이 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입니다.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격이나 다름 없는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벹이 과랑과랑 헌 날이우다 (오늘은 햇볕이 쨍쨍한 날입니다) "It's a sunny day today."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 )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거지라는 이름으로 사기 치거나 도둑질하거나 건달이 되는 등 사회 치안을 해치는 범죄행위를 자행하는 사람이 많았다. 송나라, 원나라 이래로 그 해로움은 극심해 졌다. 화갑이 넘은 늙은 거지 노파가 사기에 골몰하기도 하였다. 청나라 말기에 항주(杭州)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런 사례 중 하나다. 당시 항주에는 야간에 승객을 태워 강을 건네주는 선박이 있었다. 한밤중에 100리를 가는데 남녀가 뒤섞여 건넜다. 남녀 승객이 머무는 칸 사이에는 판자 하나가 가로놓여 있을 뿐이었다. 인화(仁和)현(縣)1)에 풍류를 즐긴다고 자처하는 장(張) 씨 성을 가진 경망스러운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소년이 배를 타고 부양(富陽)으로 가고 있었다. 옆 칸에서 자신에게 웃는 듯 마는 듯 주시하는 여인이 있었다.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니면 뭐겠는가. 밤 12시 경이 되어 승객 대부분이 잠을 청할 때였다. 장 씨 소년은 판자 너머에서 자신의 하체를 쓰다듬는 손길을 느꼈다. 소년은 기뻐 아예 양물을 꺼내 어루만질 수 있게 하였다. 손을 뻗어 상대를 만졌다. 여인이 틀림없지 않은가. 몸을 일으켜 상대를 덮쳤다. 아무 말도 건네지 않은 채 운우의 정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닭이 울 때가 되자 장 씨 소년이 몸을 일으켜 자신이 있던 칸으로 돌아가려 하였다. 그런데 상대방 여인이 단단히 껴안은 채 놔주지 않았다. 소년은 여인이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여기고는 더 정열적으로 사랑을 나눴다. 날이 서서히 밝아올 때, 소년은 자신과 함께 있는 여인의 머리카락을 보았다. 백발이었다. 대경실색하자 여인이 말했다. “나는 본래 길거리에서 빌어먹은 거지 노파요. 올해 60살이 넘었소. 남편도 자식도 친척도 없이 의지할 데가 없음을 한탄했는데 지난 밤 지나칠 정도로 그대에게 흠뻑 사랑을 받았소. 속담에 하룻밤 부부라도 만리장성을 쌓는다고 하였소. 하룻밤이지만 깊고도 깊은 인연을 맺은 셈이오. 지금 당신은 내 남편이오. 어떤 예물도 필요 없소. 그저 당신만 따를 거요. 죽을 먹으라면 죽을 먹고 밥을 먹으라면 밥을 먹을 것이오. 어떻소?” 장 씨 소년은 놀라고 난처해져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여러 승객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리를 듣고 놀라 잠에서 깨서는 한바탕 웃어 제쳤다. 나중에 소년에게 2백 량을 주고 사례하게 하자 거지 노파는 그제야 손을 놓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거지 노파가 밉살스럽기는 하지만 실로 가련하기 그지없다. 장 씨 소년은 자업자득일지니. 그래도 그 황당한 행동거지에는 동정이 간다. 시골 어린이를 유괴해 동냥질시키고 따르지 않으면 죽였다 청나라 도광(道光) 17년(1837) 9월, 화중〔禾中, 가흥(嘉興)〕 삼탑사(三塔寺) 남쪽에 시골 아낙네 왕(王) 씨가 살고 있었다. 시댁과 친정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때가 첫 곡식을 수확한 때라 보보(餑餑, 중국식 간식)를 만들어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친정집에 갈 채비를 하였다. 남편은 이튿날 시내로 나가 장사하여야 했기 때문에 빨리 돌아오라고 부탁하니, 부인은 그러마라고 답하고는 아들을 데리고 친정집으로 갔다. 그런데 날이 저물어도 무슨 까닭인지 돌아오지 않았다. 이튿날 남편이 처갓집으로 가서 장인에게 상황을 물으니 도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참을 찾아도 찾을 수 없자 어쩔 수 없이 귀가하였다. 그날, 집을 나선 후 저수지를 따라 걷다가 만수산(萬壽山) 북쪽 1리 쯤에 다다랐을 때 건너편 기슭에 정박해둔, 얼룩조리대로 지붕을 엮은 배인 약포선(箬包船)이 보였다. 급히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배를 불러 세운 후 약포선까지 태워달라고 하였다. 가까이 가자 어린 거지 둘이 먹을 것을 가지고 다투고 있었다. 어린 거지가 손에 보보를 들고는 다른 거지에게 욕을 해댔다. “어제 사부가 말했잖아. 네가 비럭질을 해오지 못했기 때문에 네게 먹을 것을 주지 말라고 했잖아. 이 보보는 내게 상으로 준 거란 말이야. 네가 왜 뺏어!” 농부가 가까이 다가가서 광주리에 닮긴 보보를 보았다. 자기 아내가 만든 보보처럼 보였다. 어린 거지에게 물었다. “네 사부는 이 보보를 어디에서 가지고 왔니?” 어린 거지가 답했다. “어제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를 데리고 우리 사부에게 저수지를 건너게 해달라고 불렀어요. 사부는 배를 몰고 기슭으로 건너가 그들을 태워주고 돈을 벌었어요. 가지고 있던 보보 광주리로 대신 갚은 거예요. 지금 이거 몇 개 밖에 남지 않았단 말이에요.” 말을 듣자마자 농부는 곧바로 장인에게 달려가 알렸다. 사람 수 십 명을 모은 후 각자 몽둥이를 들고 배에 올라가 나이 든 거지 두 명을 붙잡았다. 배를 수색하였다. 뒤쪽 선실에 항아리 여러 개가 놓여있었다. 열어보니 항아리에 잘려진 시체가 가득 들어있었다. 팔다리가 잘려나갔거나 몸통이 잘린 시체들이었다. 오래된 시체도 있었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는 듯 보이는 시체도 있었다. 작은 항아리 하나는 진흙으로 입구가 봉해져 있었다. 비틀어 열어보니 농부 아내와 아들의 머리가 담겨있었다. 아직 마르지 않아 선혈이 낭자하였다. 거지들을 묶어서 관부로 압송하였다. 읍령(邑令)이 심리하며 추궁하자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그 나이 든 거지 둘은 배를 타고 강호를 유람하면서 전문적으로 시골 어린이를 유괴해 동냥질시키면서 살고 있었다. 유괴한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렸다고 하였다. 흉악하고 잔인함에 모두 치를 떨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나는 여류 시인이다 - 안나 게이코(安娜 惠子) 21세기 여성 시인이 된 것은 행운이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와 권리는 늘 미천했어. 이제 나는 현재의 선두주자 가운데 서고 싶어. 단순히 좋은 딸, 아내,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바느질하고 요리하는 데만 힘과 시간을 쓰지 않고, 소나무만큼 강하고 독립적이어야 하지. 물론 우리도 꽃처럼 웃어. 마리 퀴리의 지혜가 높이 솟아오른 것처럼, 시의 창시자인 나이팅게일처럼 시몬느 드 보봐르가 자신의 철학을 쓴 것처럼 말이지. 다른 사람을 위해 우산을 들어줄 수 있을 때 비나 눈이 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지. 그런 면에서 당신은 살아갈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당신은 또한 이 시대의 창조자이기도 하지. I am a poetess (By Anna keiko) I am lucky to be a female poet in the 21st century. During thousands years of history, Women's status and rights have always been humble. Now I want to stand among the forerunners of the present. It's not just about being a good daughter, wife and mother, Nor does it just consume energy and time to sew and cook, But to be as strong and as independent as a pine tree. Of course, we also smile like a flower. Like Marie Curie's wisdom rising to the heights, Like Nightingale, the founder of poetry, Like Simon de Beauvoir writing her own philosophy. When you can hold an umbrella for someone else You don't have to be afraid of rain and snow, You are worthy of life in that way. You are also the creator of this era. ◆ 안나 케이코(Anna Keiko) = 상하이에 오랫동안 거주하고 있으며 시와 인문주의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녀는 글로벌 평화 대사 증서를 받았으며 ACC Shanghai Huifeng International Literary Society의 창립자 겸 회장직을 맡고 있다. 그녀의 시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50개국에 걸쳐 2,000편 이상의 시가 출판되었다. 또한, 그녀는 Amazon과 같은 플랫폼에서 상당한 판매를 달성한 9권의 호평을 받은 시집을 집필했다. 안나 케이코는 뛰어난 재능으로 20개가 넘는 국제 시상을 받았으며, 2020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한자어 ‘걸개(乞丐)’의 여러 명칭을 보면 거지의 본래 뜻은, 재물을 동냥하면서 삶을 살아가는 극빈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동냥하는 사람이 극빈자가 아닌 경우도 있었다. 부자도 기꺼이 빌어먹었다. 예를 하나 들면 이렇다. 청나라 때에 상해(上海) 가정(嘉定)현 남쪽에 유명한 사찰 명칭에 따라 이름 붙여진 남상진(南翔鎭)이 있었다. 진의 동쪽에 큰 부자라고는 할 수 없어도 넉넉한 토지와 부동산을 가진, 그리 부족함이 없는 중산층 가정이 있었다. 자식과 며느리도 있어 생활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홀연히 집을 떠나 거지가 되었다. 집안사람들이 그를 강제로 집에 끌고 가서 애걸복걸하며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그의 족제의 집안도 부유하여 그에게 100묘(畝)의 전지를 주겠다고 하였다. 그가 가진 전지도 2경(頃, 약 2만여 평)이 넘으니 100묘를 더한다면 의식주에 걱정이 없었지만 그는 한사코 응하지 않았다. 부모도 외아들인 그에게 사정사정했다. 그는 부모에게 말했다. “제가 보기에 천하에 거지가 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일은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사해를 집으로 삼아 빌어먹으며 살기를 원합니다. 이미 제게는 아들이 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손자를 곁에 두고 노년의 즐거움으로 삼으시면 됩니다. 제가 두 분께 드리는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말을 마치자마자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끝내 동냥하며 생을 마쳤다. 풍족한 삶에 환멸을 느꼈을까? 정신적인 공허함에 기꺼이 동냥하면서 자신이 바라던 인생의 즐거움을 구했다. 물론 세상에 이런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거지에게 1문(文)을 희사해 부자 되고 아리따운 아내를 얻다 청나라 때에 기꺼이 거지가 된 부자의 또 다른 사례가 있다. 비정상적인 변태 심리로 마음의 안정을 얻으려고 거지가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집에 와서 구걸하는 굶주린 백성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이 또한 기이한 일에 속한다. 항주(杭州)에서 발생한 일이다. 김용(金熔)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빈한한 가정 때문에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쌀가게에서 장사를 배우고 있었다. 어느 날, 가게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식당 한 곳을 지나치게 되었다. 식당 주인이 한 손으로 거지를 붙잡아 놓아주지 않은 채 실랑이 하고 있었다. 주위사람들은 중재하지 않고 구경만하고 있었다. 김용이 나서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거지가 식사를 마쳤는데 1문이 부족하여 사정했으나 주인이 관용을 베풀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 김용은 상황을 듣고는 어찌 1문밖에 되지 않는 돈 때문에 이런 지경에 이를 수 있느냐고 말하면서 곧바로 주머니에서 1문을 꺼내어 대신 지불하였다. 거지는 자신의 곤란한 상황을 해결해준 것에 고마워하며 김용을 뒤따라가다가 외지고 조용한 곳에 다다르자, 김용에게 이름과 사는 곳을 묻고는 고맙다고 공수하며 말했다. “나는 하남(河南) 출신이오. 집안에 만금의 재물이 있소. 수천이나 되는 굶주린 백성이 집에 매일 찾아와 먹을 것을 달라하니, 괴로웠소. 모든 창고를 털어서 먹인다 하여도 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소. 창고도 다 비고 해서, 집에서 뛰쳐나와 강호를 전전하면서 동냥질하고 있소. 그런데 성년이 된 큰딸이 우리 늙은 부부와 동행하니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오. 사람의 이목을 끌 뿐 아니라 아이가 세속에 물들까 염려되어 걱정이 말이 아니오. 지금 길에서 만난 사람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당신을 보니, 성실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라 판단되오. 비록 1문밖에 안 되는 돈이기는 하지만 감격해 우러러 받들게 되었소. 이러면 어떻겠소? 내 딸을 주리다. 내 딸을 당신에게 시집을 보내려 하는데 당신은 어떻소?” 김용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진, 최고로 좋은 일이 아니던가. 조용히 대답하였다. “우연히 만났지만 우리가 서로 인연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겠습니다. 어르신에게 총애를 받기는 했습니다만 혼인대사를 제멋대로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 제가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아뢰고 다시 가부를 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저녁에 집에 돌아가 부모에게 일의 전후를 말하고 있는데 거지 부부가 묘령의 아리따운 딸을 데리고 집에 들어서는 게 아닌가. 마침내 결혼하였다. 한 달 후, 거지의 딸은 김용의 가족이 무척 진실하고 순수하여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석과 장신구를 남편에게 주면서 밑천 삼아 장사하도록 하였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김용의 집안은 현지의 부호가 되었다. 돈 1문으로 뜻을 이루고 아리따운 부인과 부귀를 얻으면서 일시에 대중의 흠모와 칭찬을 받게 되었다. “오랫동안 황금을 뿌리더라도 미인의 사랑을 받은 적 있었던가. 꽃 같은 절세미인을 그저 주머니 속 동전 한 푼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어찌 알았겠는가!” 이 전기적인 이야기는 부자가 거지 행세하는 보기 드문 사례라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거지라는 하류계층에 속한 빈민이 자신들을 경시하는 사회의 세속 관념에 대한 위화감을 반영한 것이거나, 아니면 일부러 기이한 얘기로 세상 사람에게 자극을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자신들의 심리적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인과응보의 소극적 처세 사상의 일종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주는 경고요, 스스로 조소를 면하기 위한 변명이며 위안이기도 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위험한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응하기 위해 적응성 면역을 강화시키는 것이 백신이라면, 선천성 면역의 일종인 NK 세포(자연살해세포)의 활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기능성 소재들이 개발되어 건강기능식품으로 시판되고 있다. NK 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와 암세포를 공격하여 파괴하는 매우 중요한 면역 세포로 그 수가 적거나 활성도가 낮으면 바이러스 질환이나 특히 암에 취약하게 된다. 우리가 적과 싸울 때 군인의 수도 중요하지만 수가 적더라도 전투력이 좋으면 일당백이 가능한 것처럼 NK세포 역시 그 개수보다 활성도가 중요하다. NK 세포의 활성도를 높이는 방법으로는 적절한 운동과 수면, 균형 잡힌 식사 및 스트레스 줄이기가 있다. 스트레스를 만병에 근원이라고 많이 얘기하는데 결국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려 병에 취약해 지는 것이다. 사실 스트레스는 인류가 살아남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원시 시대에 산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느긋하게 반갑다고 인사할 것이 아니라 도망치든 싸우든 해야 할 것이다. 호랑이를 만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혈액이 근육으로 가서 운동 능력을 향상시킨다. 먼 미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인 생존에 도움이 되는 면역이나 소화가 뒷전으로 밀리는 것이 당연하다. 과거에는 살면서 호랑이를 만날 일이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에서 너무 많은 호랑이를 만나고 있다. 회사에 출근했는데 호랑이 부장, 늑대 과장 등을 매일 매시간 보고 있으니 스트레스 호르몬이 계속 분비되어 면역이 뒤로 계속 밀리므로 암과 전염성 질병에 취약하게 된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각하다면 이것을 감기와 같은 병으로 인식하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적절한 치료와 상담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또한 NK 세포의 활성도를 높이는 기능성 소재인 베타-글루칸이나 폴리감마글루탐산칼륨(PGA-K)가 들어있는 건강기능식품의 섭취도 고려해 볼만하다. 면역력이 약하면 병에 취약하지만 아군을 적으로 잘못 인식하여 오작동하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내 것을 적으로 인식하여 내란이 벌어지면 같은 편끼리 싸우게 되는 자가면역 질환에 걸리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류머티즈성 관절염인데, 퇴행성 관절염이 관절의 연골이 나이가 들면서 서서히 손상되어 발생하는 만성적인 질환인 반면에 류마티즈성 관절염은 면역 체계가 관절을 싸고 있는 윤활막을 적으로 인식하여 파괴함으로써 발생하는 염증성 질환이다. 또한 면역 체계가 췌장 세포를 적으로 인식하여 파괴하면 인슐린 분비가 잘 되지 않아 제1형 당뇨에 걸리기도 한다. 이외에도 아토피 피부염, 전신에 염증반응과 홍반(붉은색 반점)이 나타나는 루푸스와 만성염증성 장 질환인 크론병도 자가면역 질환의 일종이다. 그에 더하여 면역계는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무해한 침입자를 위험한 적으로 오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알레르기이다. 사람에 따라 꽃가루나 먼지 입자, 갑각류, 땅콩 등이 조금만 들어와도 적으로 인식하여 공격하는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나는데 히스타민과 같은 강력한 화학 물질을 과도하게 분비함으로써 숨가쁜 현상, 재채기, 콧물, 눈물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심하면 아나필락시스라는 과민 충격 상태를 야기하여 심지어 죽음을 초래할 수도 있다. 식품에서도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는 재료가 쓰인 경우 함유된 양에 상관없이 ‘밀, 우유, 대두 함유’와 같이 원재료명을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나타내야 하고, 원재료로 들어있지는 않지만 제조설비를 같이 사용함으로써 혼입될 가능성이 있을 때도 ‘이 제품은 계란, 우유를 사용한 제품과 같은 제조 시설에서 제조하고 있습니다’와 같은 주의사항을 표시하고 있으니 잘 살펴보아야 한다. 면역력을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자신에게 맞는 즐거운 취미 생활을 갖거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명상 같은 것도 해봄직하다. 다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매일매일이 호랑이를 만나는 상황으로 느껴진다면 전문가의 상담이나 치료를 받는 것도 적극 권한다. 면역력을 높이는데는 양질의 수면도 중요하다. 깊이 푹 자야 하는데 잠을 잘 못 이룬다면 숙면에 방해가 되는 술이나 커피(카페인)을 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활성산소가 발생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먹거리도 중요한데 면역 체계를 유지하려면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영양소를 잘 공급해줘야 한다. 특히 면역 체계에서 강력한 무기인 항체는 단백질의 일종이기 때문에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이밖에도 홍삼, 인삼, 마늘, 생강, 양파, 표고버섯, 김치, 청국장 등의 식품이 면역력 강화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병에 걸리지 않으려면 면역력 강화에 못지않게 세균 및 바이러스와 같은 적들과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 바이러스나 세균에 같이 노출되더라도 그 시간과 양에 따라 감염될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얘기한 바 있다. 독감이나 코로나가 유행하는 시기에도 방역 마스크만 잘 착용하면 무사히 잘 넘어갈 수 있다. 각종 유해 세균과 바이러스를 가장 많이 접촉하는 신체 부위인 손을 잘 씻으면 각종 감염성 질환의 60%는 예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루 8번 정도 손을 씻는 것을 권하며 손톱, 손등, 손목까지 꼼꼼히 씻는 것이 좋다. 좋은 생활습관이 면역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황무지(신인 시인에게) - 타로 효코(法橋太郎) 시인 계절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층 빌딩 숲속의 보이지 않는 황무지. 예를 들면, 자동차 배기음으로 시작되었지. 이른 아침 지하층을 걷는 쓸쓸한 발소리. 보이지 않는 비밀의 방에는 노인, 병자, 시체가 숨겨져 있어. 지폐의 조용한 배포. 배수로로 흐르는 깨끗한 하수. 보이지 않는 방사선. 불쌍한 감정. 단락된 동작. 이 지구상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고 건물만 아름답게 보여. 황무지. 나의 삶과 죽음은 둥둥 떠다닐 만큼 가벼워졌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날이 밝았다. 기차는 심장이 뛰는 것처럼 규칙적으로 달렸어. 내가 알고 있던 지구는 빠르게 노화되었지. 세계가 균형을 회복하려고 노력함에 따라 지폐의 밀도는 증가했어. 미친 트럭이 지나갔지. 시간이 왜곡되었어. 세상의 기둥은 똑바로 서 있지 않아. 시는 어떻게 솟아오를까? 새로운 단어의 불타버린 대지. 황무지. 시인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부 사물에 모방한다. 시에 대한 반항은 눈에 띄지 않는 잡초 밑에 있는 잡초와 같다고 감히 말한다. 말로, 유연하고 우뚝 솟은 야생화를 흉내 내봐. 진심으로 말을 전하려고 하면 풍부한 물이 쏟아져 나오고, 네가 밟는 푸른 풀은 더욱 푸르러진다. 잎은 흙을 따라 낮게 퍼지며 이슬과 서리를 견뎌내지. 말들만 보이는 역청길 옆에서도 땅을 꿰뚫는 풀 한 포기가 되어라. 바람이 피부를 자르는 면도날처럼 나뭇잎을 날리게 하라. 너의 더러운 냄새나는 말에 너의 피가 흐르게 하라. 거기를 강과 강바닥이라고 부르라. 추위를 견디는 불을 지피라. 불에 비친 얼굴들 사이에서 부드럽게 말해보라. 빛이 밝게 빛나게 하라.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것을 깊이 믿으며 강물의 흐름을 거슬러 원류로 가라. THE WASTELAND - To the new poet (By Taro Hokkyo) The season was beginning to disappear. An invisible wasteland amidst a forest of skyscrapers. For example, it began with the sound of car exhaust. The sound of lonely footsteps in the early morning walking on the basement floor. Old people, sick people, and corpses hidden away in invisible secret rooms. The quiet distribution of paper money. Clear sewage flowing into a culvert. Invisible radiation. The poor feelings. Short-circuited actions. Nothing has changed on this earth, only the buildings look beautiful. The wasteland. My life and death have become so light that they float away. The day dawned as if nothing had happened. The train ran as regularly as a heartbeat. The earth I had known aged rapidly. The density of paper money increased as the world tried to regain its equilibrium. A crazy truck drove by. Time was distorted. The pillars of the world did not stand straight. How does poetry soar? A new scorched earth of words. A wasteland. The poet imitates his own inner world to external things. I dare to say that the rebellion against poetry is like a weed at the foot of a conspicuously unnoticeable weed. Words, imitate the supple, towering wildflowers. When you sincerely try to convey words, there is abundant drinking water spilling out, and the green grass you step on becomes even greener. The leaves spread low along the soil and withstand the dew and frost. Be a stalk of grass that pierces the ground, even from the side of a bituminous road where only a string of words can be seen. Let the wind blow its leaves like razor blades that cut the skin. Let your blood run through your foul-smelling words. Call there a river and a riverbed. Build a fire that endures the cold. Speak softly among the faces reflected in the fire. Let the light shine brightly. Go to the headwaters against the current of the river, believing deeply that nothing is impossible for us. ◆ 타로 효코(Taro Hokkyo, 法橋太郎) = 1963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1985년 와세다대학에 입학했으나 병약하여 1989년 와세다대학을 중퇴하였으며 1998 일본 레키테이 신에이상(Rekitei Shinei Award)을 받았다. 2021 아랍 황금별상(Arab Golden Planet Award)를 받았으며 아랍권에서 문학박사를 받았다. 2023년에 알바니아에서 그의 시가 발표되었고 2024년에는 방글라데시의 Daily Global Nation과 인도 사만탈랄 바브나(Samantalal Bhabna)에 게재되었다. 또한, 알제리와 그리스에서도 소개되었다. ☞ 강병철 작가 = 1993년 제주문인협회가 주최하는 소설부문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2016년 『시문학』에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2012년 제주대에서 국제정치전공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평화연구소 특별연구원, 인터넷 신문 ‘제주인뉴스’ 대표이사, (사)이어도연구회 연구실장 및 연구이사, 충남대 국방연구소 연구교수, 제주국제대 특임교수,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제주통일교육센터 사무처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국평화협력연구원 연구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33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이며 국제펜투옥작가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제34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인권위원으로 재선임됐다. 국제펜투옥작가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장위구르 자치구역의 대표적인 위구르족 작가 중의 한 명인 누르무헴메트 야신(Nurmuhemmet Yasin)의 「야생 비둘기(WILD PIGEON)」를 번역 『펜 문학 겨울호』(2009)에 소개했다. 2022년에는 베트남 신문에 시 ‘나비의 꿈’이 소개됐다. ‘이어도문학회’ 회장을 역임하였으며 이어도를 소재로 한 단편소설 ‘이어도로 간 어머니’로 월간 ‘문학세계’에서 주관한 ‘제11회 문학세계 문학상’ 소설부문 대상을 받았다. 한국시문학문인회에서 주관하는 제19회 ‘푸른시학상’을 수상했다. 강병철 박사의 시와 단편소설은 베트남, 그리스, 중국 등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고 있다. 최근엔 중국의 계간 문학지 《국제시가번역(国际诗歌翻译)》에도 강 작가의 시 두편이 소개되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입니다.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격이나 다름 없는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게민 맹심허영 갔당옵서" (그럼 조심해서 갔다 오십시오) "Take care"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 )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
제주도내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제주도민 뿐만 아니라 전국, 해외에서 제주도 부동산에 대한 투기가 많았다. 최근의 일이다. 이에 제주당국에서는 실제 농사를 짓지 않는 농민이 아닌 자가 농지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 이행강제금, 처분 명령 등의 처분을 하는 등 적지 않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이란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원칙을 말한다. 국회는 농지의 소유ㆍ이용 및 보전 등에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농지를 효율적으로 이용하고 관리하여 농업인의 경영 안정과 농업 생산성 향상을 바탕으로 농업 경쟁력 강화와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 및 국토 환경 보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한 농지법을 입법화 하였다. 위 법에 의하면 농지는 자기의 농업 경영에 이용하거나 이용할 자가 아니면 소유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위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농지를 소유하는 경우 등 매우 제한적으로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다.(농지법 제6조) 또한 농지를 전용(농지 외에 다른 부지로 전용하는 것을 말함)하는 경우에는 위 법 34조의 전용 허가를 받거나 적어도 일시사용허가를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제주도 내의 농지의 가격이 오르면 오르는 대로 비싼 가격에 농지를 팔기 위하여 농사를 짓지 아니한 자에게 농지를 매도하는 등 농지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농지 가격이 내리면 내리는 대로 싼 가격에 매수하여 추후 비싼 가격에 매도하기 위하여 농사를 짓지 아니한 자가 농지를 매수하는 등의 위법행위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와 같은 위법 사례가 발생하는 경우, 농지법에서는 위반자에게 농지 처분 명령을 이행하도록 강제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감정평가법인 등이 감정평가한 감정가격 또는 개별공시지가 중 더 높은 가액의 25/100에 해당하는 이행강제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이런 문제로 상담하러 온 의뢰인들을 살펴보면 농지의 가액에 비례하여 이행강제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수억, 수천 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받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물론 재산을 형성하거나 재산의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대상이 농지가 됨에 있어서는 이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농지는 재산증식의 수단이 될 수 없다. ☞홍광우는? = 대한변호사협회 부동산 및 형사전문변호사다. 현재 서귀포경찰서에서 경미범죄심사위원회 시민위원, 선도심사위원회 전문위원, 수사민원 상담센터 법률상담 변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또 서귀포시교육청 지방공무원인사위원회 위원, 서귀포지역 건축사회 법률자문위원회 위원, 서귀포시 노인복지관 고충처리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COVID19)가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백신을 맞지 않더라도 모두가 코로나에 걸리지는 않았다. 동료나 가족이 독감에 걸려 콜록거리는 그 옆에서 같이 생활해도 모두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도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지만 사람들 간의 면역력 차이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면역이란 내 것(자기)과 남(비자기)을 구별하는 것으로 특히 위험한 남들을 골라내서 제거하는 능력이다. 내 몸을 구성하거나 내 몸이 만들어 내는 것들은 우리 편으로 인식해서 공격하지 않고, 세균이나 바이러스와 같이 내 것이 아닌 위험한 것들은 적으로 인식해서 제거한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는 크게 선천성 면역과 적응성(후천성) 면역 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 선천성 면역 체계는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게 되며 유해한 것으로부터 우리 몸을 방어하고 위협이 되는 것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피부와 점막은 1차적으로 유해한 것들을 차단하고, 대식세포(세균 및 암세포와 같은 이물질을 잡아먹는 세포)는 외부의 침입자나 적을 먹어 치우는 역할을 한다. NK 세포로 알려진 자연살해세포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공격하여 파괴한다. 암세포는 원래 내 것이지만 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적으로 인식하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도 원래는 내 것이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된 순간 그 안에서 바이러스가 증식되어 다른 정상 세포를 연속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기 때문에 적으로 인식하여 잡아먹는 것이다. 선천성 면역 체계가 잘 작동하면 외부에서 침입한 세균을 잡아먹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도 파괴하니 병에 걸리지 않겠지라고 여길 수 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독감에 걸린 사람 옆에서 생활하더라도 바이러스 노출시간, 노출량 및 개인 간의 면역력의 차이가 감염 여부를 좌우한다. 같은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병원체에 얼마나 많이 노출되느냐에 따라 병에 걸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리 몸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침투하면 면역체계가 이것들을 차례로 제거하므로 아무리 많이 들어오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두 없어지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우리 몸에 들어와서 그대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증식을 한다. 예를 들어 우리 면역 체계가 30분에 500마리의 세균을 제거할 수 있고 세균이 두배로 늘어나는 증식 시간이 30분이라고 가정하면, 세균 500마리가 침투했을 때는 30분만에 제거가 가능하다. 그런데 1000마리가 침투했다면 30분 동안 500마리는 제거되지만, 나머지 500마리는 두배로 증식하여 도로 1000마리가 되기 때문에 세균의 수는 줄지 않고 그대로 일 것이다. 세균에 오래 노출되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온다면 우리 면역 체계가 제거하는 속도보다 증식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세균의 수는 계속 늘어나서 감염이 점점 더 퍼지게 되는 것이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열을 내어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를 늦춤으로써 우리 면역 체계가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는 우리 면역 체계가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증식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외부에서 새로운 무기인 항생제나 항바이러스제를 투입하기 때문에 굳이 우리 몸도 괴로운 열을 낼 필요가 없어 해열제로 열을 내리게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방어하도록 선천성 면역 체계를 갖추는데 많은 투자를 하면 병에 걸리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무수히 많은 종류의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평생 만나볼 일도 없는데 이것에 대한 모든 무기를 만들어 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영양소를 섭취하면 면역 체계의 유지뿐만 아니라 인체의 성장×유지 및 에너지와 생체에 필요한 물질을 만드는데도 사용하기 때문에 면역 체계에만 과도한 투자를 할 수는 없다. 일상의 예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 인구는 약 5000만명이고 그 중 군인은 약 50만명인데, 만일 군인을 1000만명으로 늘리면 웬만한 적이 쳐들어 오더라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인, 노인 및 미성년자를 빼고 나면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인구가 약 2000만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나머지 3000만명을 먹여 살려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언제 얼마나 많은 적이 쳐들어 올 지 모르는 상황에서 군인만 잔뜩 늘려놓을 수 없듯이 인체도 선천성 면역에만 과도한 투자를 하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적응성(후천성) 면역 체계이다. 적응성 면역 체계는 우리 몸에 군인 수는 그대로 유지하되 침입하는 적에 꼭 맞는 무기를 만들어 대응하는 것이다. 침투한 적의 특징을 파악하여 그에 맞는 항체를 만들어 적을 제거하거나, 적에게 감염된 세포를 파괴한다. 적을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선천성 면역 체계보다는 느리게 반응하지만 특정된 적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고, 병원체에 따라 기억 시간에 차이는 있지만 한번 걸렸던 병에는 다시 감염되지 않도록 기억을 한다. 예를 들어 수두에 한번 걸리고 나면 수두 바이러스를 적으로 인식하는 항체를 보유하게 되므로 면역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면 다시 수두에 걸리지 않는다. 다만 한번 세포로 숨어든 바이러스는 면역력이 좋을 때는 세포 밖으로 나올 수 없기 때문에 감염력이 없으나 우리 면역력이 떨어지면 다른 개체로 전파하기 위해 세포 밖으로 뛰쳐나온다. 수두 바이러스는 신경세포에 숨어 있다가 증식하면서 뛰쳐나오기 때문에 신경 세포가 파괴되어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대상포진이 발병하게 된다. 한번 특정 감염성 질병에 걸린 후 낫게 되면 그것에 대한 항체를 가지게 되어 다시는 걸리지 않는데 그 상황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거나 심각한 부작용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류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해서는 미리 대응하는 무기를 갖출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인류가 개발한 것이 백신이다. 전염병에 걸리지 않더라도 마치 걸린 것과 같이 인체가 느끼도록 하여 특정 바이러스나 세균에 대한 기억을 심어줌으로써 실제로 그것들이 인체에 침투하였을 때 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백신과 항생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뤄볼 것이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 김동청 교수는? = 연세대 생화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대학원 생화학과 이학석사 및 서울대 대학원 농화학과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상㈜ 중앙연구소 선임연구원, 순천제일대 조교수, 영국 캠브리지대 방문연구원, 성균관대 기초과학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청운대 인천캠퍼스 화학생명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식품기술사 자격도 갖고 있다.
옛 한어(漢語)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인 단음사(單音詞), 즉 한 글자가 한 단어가 되는 경우가 많아 지극히 간략하였다. 거지의 뜻인 ‘걸개’를 ‘개(丐)’라고만 부른 고대 문헌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하급 관노, 머슴, 거지〔개(丐)〕 모두 부모의 무덤에 가서 성묘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또 “거지〔개(丐)〕 무리가 에워싸 절하며 구걸하였다”1)라고 했는데 거지를 ‘개(丐)’ 한 글자로 표현하였다. 현대 한어뿐 아니라 청나라 말기 이전에 거지에 대한 호칭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걸인(乞人)’이라는 호칭을 쓰기도 하였다. “발로 차면서 주면 걸인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음력 11월에 걸인을 만나면 저고리를 벗고 그와 함께 하였다”, “만승의 주인은 길 위의 걸인을 구하였으나 얻지 못했다”2)라는 문장이 그것이다. 어떤 책에는 ‘걸아(乞兒)’라고 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범(范) 씨 문도가 길에서 걸아, 마의(馬醫)를 만나면 모욕을 주지 않았다”, “육장 옆에 파리매 모여들어 우레처럼 시끄럽고 걸아들이 다투어 짊어지고 사그라진 재로 향하네", “패루(牌樓) 높이가 20장 … 밑에 걸아 수백이 거처한다”3)라는 구절이 보인다. ‘걸색아(乞索兒)’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은(隱)은 천성이 머뭇거리니, 항(沆)의 문지기와 가복이 싫어해 왕왕 걸색아라 불렀지만 항(沆)은 한결같이 대했다”, "걸색아가 기어이 굶어죽었는데 어찌 나를 이처럼 방치하는가!”4)라는 문장이 있다. ‘개인(丐人)’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희종(僖宗) 말기에 광릉(廣陵)에 가난한 두가균(杜可均)이라는 개인이 있었다. 나이가 40여 세였다. 밥은 먹지 않고 술만 마셨다. 매일 술집에 들어가 돌아다니며 술을 얻어마셨다”, "어제 개인을 쫓아가니 어디를 유랑하는지 알겠는가!”5)라는 문장이 보인다. ‘개부(丐夫)’라 부르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병폐가 있으니, 개부의 손에 주옥(珠玉)이 있고 황금을 품속에 품고 있으나 길에서 굶어 죽는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구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개곤(丐棍)’이라 부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생각지도 않았던 정신혁고(鼎新革故) 이후에 개곤 손수(孫壽)의 수중에 떨어졌다”6)라는 구절이 있다. 걸식하는 부녀(婦女)를 ‘걸파(乞婆)’라 부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네가 듣지를 못했다는 말이냐? 구역질나고 비열한 늙은 걸파를 믿고 나를 욕하는 것이야”, “너같이 늙은 걸파조차 관을 들고 나를 찾아오다니”, “그 늙은 걸파를 누가 모른다는 말이냐. 그러나 공무는 공평하게 처리해야 한다”7)라는 구절이 보인다. 거지를 ‘화자(化子)’라 부른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혼자 나를 외로이 버려버리면 어디에서 몸을 편안케 하겠소. 화자가 되어 죽을 때까지 걸식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그런데 원나라 잡극 중에 다른 용례가 있다. 화자(花子)라 부르는 경우다. 예를 들어 “야! 말만 번지르르한 화자(花子), 빨리 꺼져!”, “경사(京師)에서는 걸아를 화자(花子)라고 부르는데 어디에서 뜻을 가져왔는지 알 수 없다”8)라고 하였다. 따지고 보면 ‘화(花)’는 ‘화자’의 ‘화(化)’ 발음이 전화한 것으로 본래 ‘화자(化子)’다. ‘규화자(叫花子)’는 바로 ‘규화자(叫化子)’이다. ‘규(叫)’를 ‘고(告)’로 쓴 경우도 보인다. 잘못된 전음이다. 옛날에 남에 집에 들어가 구걸하지 않고 길거리에서 행인을 부르며 쫓아가 빌어먹는 거지를 ‘규가(叫街)’라 하였다. 이러한 거지가 ‘규화자(叫化子)’로 나중에 거지를 부르는 총칭으로 사용되었다. ‘규화(叫化)’는 곧 ‘빌어먹다, 동냥하다’이다. 그리고 “사문 안통(安通)이 길가에 옻칠을 해서 만든 큰 상을 세우고 재물을 교화(敎化)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또한 구걸하는 방법 중 하나였다. 또 “일부러 기회를 잡아 신음하면서 힘없이 지팡이를 짚고 교화(敎化)하였다”9)라는 구절도 보인다. 여기에서 ‘규(叫)’와 ‘교(敎)’는 통용된다. ‘화(化)’는 모화〔募化는 (승려·도사 등이) 탁발(托鉢)하다. 보시(布施)를 구하다. 동냥하다 뜻이다. 모연(募緣), 화연(化緣), 구화(求化)와 같이 쓴다〕를 가리킨다. 승려나 도사들이 보시를 구하는 것으로 속세의 일, 천한 일에 대한 아호(雅號)다. 불교에서 교화의 인연을 ‘화연(化緣)’이라 한다. 불교와 도교에서는 보시하고 선을 행하는 자는 부처나 신선과 인연을 맺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렇듯 거지를 ‘규화(叫化)’나 ‘교화(敎化)’라 부른 것은 행위를 가지고 명명했거나 덕행을 행한다는 의미를 가진 명칭이었다. 지금에 이르러서 ‘규화자(叫化子)’는 구어 중의 속칭이 되어 버렸고 ‘걸개(乞丐)’는 서면어로 자주 쓰는 명칭이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1) 당대 유종원(柳宗元) 『기허경조맹용서(寄許京兆孟容書)』) ; 청말 황헌조(黃軒祖) 『유량쇄기·오취봉(游梁瑣記·吳翠鳳)』. 2) 『맹자(孟子)·고자상(告子上)』 ; 『남제서(南齊書)·무릉소왕엽전(武陵昭王曄傳)』 ; 청대 당견(唐甄) 『잠서(潛書)·원간(遠諫)』. 3) 『열자(列子)·황제(皇帝)』 ; 송대 범성대(范成大) 「청식재서사(請息齋書事)」 제3수 ; 청대 이두(李斗) 『양주화항록·신성북록중(揚州畵航錄·新城北錄中)』. 4) 오대(五代) 왕정보(王定保) 『당척언·호지기악급제(唐摭言·好知己惡及第)』 ; 『태평광기(太平廣記)』 498권에 인용한 『옥천자‧묘탐(玉泉子‧苗耽)』. 5) 당대 풍익자(馮翊子) 『계원총담·두가균각서(桂苑叢談·杜可均却鼠)』 ; 청대 요섭(姚燮) 『수가칠세아(誰家七歲兒)』 6) 청대 공자진(龔自珍) 『을병지제숙의제십륙(乙丙之際塾議第十六)』 ; 청대 저인획(褚人獲) 『견호사집·가화행(堅瓠四集·嘉禾行)』 7) 원대 무명씨 『화랑단(貨郎旦)』극 제2절(折) ; 청대 이어(李漁) 『신중루·노견(蜃中樓·怒遣)』 극 ; 모순(茅盾) 『손 이야기(手的故事)』 8) 『원잡극(元雜劇)』에 수록된 작자 미상인 명대의 극 『리운경득오승진(李雲卿得吾升眞)』 제3절 ; 『원곡선(元曲選)』에 수록된 「장천사(張天師)」극 제2절 ; 명대 사조쇄(謝肇涮) 『오잡조(五雜俎)』 5권 「인부(人部)」 9) 『북제서(北齊書)』 ; 돈황(燉煌) 변문 『유마힐경보살품변문갑(維摩詰經菩薩品變文甲)』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연재를 시작합니다. 고광표 작가의 '돌하르방이 전하는 말'입니다. 제주의 상징이자 제주문화의 대표격이나 다름 없는 석상 '돌하르방'을 통해 '오늘 하루의 단상(斷想)'을 전합니다. 쉼 없이 달려가는 일상이지만 잠시나마 생각에 잠기는 순간이기를 원합니다. 매주 1~2회에 걸쳐 얼굴을 달리하는 돌하르방은 무슨 말을 할까요?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기다립니다./ 편집자 주 "아맹 고라도 몰라 마씀, 혼저왕 봅서" (아무리 말해도 모릅니다. 어서 와서 보세요) "No matter how much I tell you, you will not understand. Hurry! Come and see" ☞ 고광표는? = 제주제일고,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와 미국 시라큐스대 건축대학원과 이탈리아 플로렌스(Pre-Arch )에서 도시/건축디자인을 전공했다. 건축, 설치미술, 회화, 조각, 공공시설디자인,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하는 건축가이며 예술가다. 그의 작업들은 우리가 생활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에 익숙한 ‘무의식과 의식’ 그리고 ‘Shame and Guilt’ 등 현 시대적인 사회의 표현과 감정의 본질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