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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다시 어린아이가 되다 (2)

어린 시절에, 말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나는 부모님과 한방에서 지냈다.

 

2남7녀 중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난 두 언니를 그리워할 여유도 없이, 우리 7명은 17평짜리 초가에서 영토전쟁을 벌였다.

 

‘한라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모처럼 큰집을 지었다’는 큰언니의 건축소감이 무색하도록, 집은 비좁고 복잡하였다.

 

부엌과 연결된 안방과 마루를 사이에 두고 남향의 사랑방은 장남 차지가 되었다. 오빠는 마을에서 보기 드문 대학생이었다.

 

나머지 두 개 방 중 하나는 증조할머니 차지였다. 93세 할머니는 몸이 어린아이처럼 작았다. 우리 중에서 비교적 무게감이 컸던 셋째 딸이 자원하여 할머니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나머지, 부엌과 인접하여 자질구레한 생활도구들이 미리 진을 치고 있던 방으로 넷째와 다섯째 딸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안방에 체류하게 되었다.

 

갓난아기인 막내아들을 포함해 다섯 명이, 밤이면 또 다른 가족이 되어서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나는 주로 어머니 발밑으로 들어가, 한 발을 인형처럼 붙들고서 꿈나라 여행을 하였다.

 

40대 중반의 어머니에게서는 달작지근한 살 냄새와 땀이 밴 열기가 느껴졌다. 어머니 냄새와 느낌이 좋아서 코를 이불에 박고서 킁킁거리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고서 동생과 키득거리곤 하였다.

 

사람의 오감, 말하자면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중에서는 ‘후각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우리에게 ‘정글북’으로 잘 알려진 노벨문학상 작가, 키플링(Joseph Rudyard Kipling)도 ‘후각은 시각이나 청각보다 확실하게 심금을 울린다’고 하였다. 그의 어록 중에서 첫 번째도 ‘외국을 이해하는 첫 조건은 그곳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이다’로 소개된다.

 

인도에서 태어났으나 영국에서 교육을 받고, 다시 인도로 돌아가 대자연을 노래하며 시인이자 소설가로서의 성장과 성공을 누렸던 조지프 러디어드 키플링. 그의 생애를 두고 볼 때, 인도의 냄새에 대한 나름의 경험과 추억이 자연스레 작품 속으로 스며들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후각의 역할은 단순히 냄새를 맡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맛은 보통 혀를 통한 미각이 좌우하는 것 같지만, 실은 후각이 약 1만 가지의 냄새를 구분하면서 맛의 70~80%에 영향을 미친다.

 

감기에 걸렸을 때 입맛이 없는 이유도 후각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지 않는가. 어쨌든 후각에 대해 이토록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어머니에 대한 나의 오래된 기억이 냄새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3∼4학년 때의 어느 늦가을 오후, 어머니가 쌀부대를 등에 지고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서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클방(정미소)에서 금방 도정을 거쳐 온 쌀은, 난간에 부려지자마자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를 훅∼ 하니 풍겼다. 햅쌀이었다.

 

나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달려들어 쌀을 한 움큼 집어 들었다. 마치 소매치기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형국이었다. 그 당시 쌀은 제사나 명절 때라야 겨우 맛볼 수 있는 곤밥의 전신이라, 논이 귀한 우리 동네에서는 평상시에 보기 힘든 귀한 먹거리였다.

 

그런데 호통 치는 소리를 예상했던 내게,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쌀을 한 줌 듬뿍 쥐어들더니 내 주머니가 불룩하게 부어주시는 어머니. 세상에! 어머니의 붉은 얼굴에서는 막 지은 밥솥에서 스며 나오는 하얀 수증기가 이마에서 피어올랐다.

 

마치 아궁이 불에 막 뜸 들여지는 밥솥에서 수증기가 비어져 나오는 것처럼. 그리고 마지막 밥물처럼 구수한 땀 냄새가 내 호흡을 덮쳤다.

 

아, 이 냄새...! 원초적 생명력이, 뜨거운 사랑이, 노동의 거룩함이 느껴지는 어머니 내음. 바로 이 체취는 ‘어머니’ 하면 떠오르는 비밀스런 감각이 되어, 집을 떠나 전전하던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달픔, 그리움을 달래주는 향수병의 묘약이 되었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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