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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102세 어머니의 애타는 사부곡

왠일일까? 요즘들어 어머니께서 자꾸 고향 이야기를 하신다.

 

“닌 대포 소문 들어지느냐? 강 방 오라게(가서 보고 오거라). 할망·할으방을 누게가 책임지느니? 할망·할으방은 하근디(여기저기) 아팡, 날 소뭇(자못) 기다렴실 건디...나가 이추룩 아팡 못 가는 줄도 모르고.... 강, 죽이나 쒕 드려동 오민 조키여만은....”

 

그래도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자, 갑자기 아버지가 생각나신 듯, 얼굴이 해맑아지신다. ‘허태행씨가 여자 곹으민 할망·할으방 죽 쒕 드리민 될건디....’ 아버지가 마치 대포마을에 살고 계시기나 한 듯이 아쉬운 눈치다. ‘강, 발 막앙 눠시민 조키여....’라고 혼잣말을 하시는 걸 보니,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시나 보다. 문득 가슴 저 밑에서 뭉클하고 뜨거운 것이 솟구쳐 오른다. 얼마나 외로우시면..., 얼마나 그리우시면.....

 

아버지는 22년 전, 미국에서 돌아가셨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면 공부를 더 해보겠다’는 아들을 위해 선뜻 이민을 떠나신 아버지는, 미국 시민으로 17년을 사시다 그곳에 묻히셨다. 아버지의 관을 땅 속으로 깊숙하게 내려서 흙으로 덮는 것을 보시고 엎드러지며 따라서 묻히려던 어머니는, 지금도 ‘아버지를 골충에 버렸다’고 애석해 하신다.

 

그 충격 때문일까? 한 번도 뒤돌아 보는 일 없이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를 타시더니, 도착하시자 곧장 미국 대사관으로 직행해서 영주권을 반납하셨다. 어쩌다 맡겨진 남의 지갑을 돌려준 것처럼 후련하고 안심스런 표정이라니....

 

그렇게 미국과 아버지를 잊어버린 어머니가 새삼 아버지를 소환하시니..., 102세의 나이와 엮여서 어머니를 향한 불안감이 내 가슴 속을 스멀거린다. 노인이 새삼 안 하시던 일을 하시거나 뜬끔 없는 말씀을 하시면, 혹여 무슨 일이 있으려나 하는 염려가 저도 몰래 우러나는 것처럼.

 

 

마침 봄이다. 1923년 3월 22일에 세상 밖으로 출현한 막내딸에게, 할아버지는 성춘(成春)이란 이름을 붙여주셨다. 그 이름처럼 2남7녀를 낳아서 80 명에 가까운 자손을 두셨으니, 그야말로 이름 값을 하신 셈이다. 어느 누가 이처럼 풍성하게 인생의 결실을 맺을 수 있으실까 싶다.

 

되돌아보면, 오직 자식들을 위해, 당신의 몸을 거름 삼아 그저 일만 일만 하면서 살아 온 인생이다. 그런데, 새삼 남편이라니... ‘강 발 막앙 눠시민 조키여(발을 맞대고 누었으면 좋겠다)...’라는 어머니의 중얼거림 속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봄비처럼 아련하다.

 

그동안 이 지면에다 어머니의 백세 일기를 기록하지 못하는 사이, 어머니는 KBS 인간극장의 주인공으로 지내셨다. 월〜금요일의 5일 동안 아침마다 32분의 휴먼다큐가 전국으로 송출되는 프로그램에서. ‘엄마의 102번째 봄’을 위해, 20일 동안 거의 하루 7〜8시간을 촬영했는데, 그것은 마치 제주 해녀할망의 강인함을 입증해 보이는 실험과도 같았다. 어머니는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노익장을 과시하셨는데, 프로그램을 담당한 피디(P·D)와 감독도 놀라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였다.

 

혹시나 방송 때문에 건강이라도 상하실까 노심초사 신경을 쓰는 눈친데, 어머니는 은근히 방송을 즐기는 듯 하였다. 게다가 방송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본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셨으니, 이 부분은 그동안 감춰진 어머니의 사랑과 진실이었다. 그것은 설문대 할망을 닮아서 남편을 비롯한 남자들에게 당당하고 때로는 무심해 보이는 제주도 할망의 본디 성품과 다른 모습이었다.

 

“허태행씨는 어디로 갔나?”라며 공개적으로 아버지를 구애하시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순애보였다. 지구상 어딘가에 살아계시기만 하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방송팀이 그냥 있을리가 만무하건만, 102세 어머니의 애타는 사부곡은 이룰 수 없는 천국의 사랑이었다.

 

한편, 어머니가 자랑스레 펼쳐놓는 이야기는, 17세에 이웃집 총각에게 시집와서 사랑받은 이야기였다. 신랑은 조부모 슬하의 장손이었는데, 18세 청년 치고는 키도 훤칠하고 얼굴도 잘 생긴 장정이었다. 특히 할아버지가 얼마나 손자 며느리를 귀애하셨는지, 어머니가 하는 일은 모든 게 칭찬거리였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에게는 ‘키는 꺽대같이 커서는...’ 하면서 하는 일마다 타박을 하셨단다. 손 발이 커서 일이 느린데다, 남이 하는 일에 끼어들기를 좋아하니, 사교성보다는 게으름으로 비쳤던가 보다. 게다가 갓 시집와서 여기저기 눈치를 보면서 바지런하게 손발을 놀리는 손자며느리에게 상전노릇까지 해대니, 할아버지 눈에서 번갯불이 떨어질만도 하였다. 할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서 한 번도 궂은 소리를 하신 적이 없었다. 언제나 “우리 손지 메누리는 일도 잘허곡 마음도 착허곡, 얼굴도 고운 게, 대포 일등 새각시여!”라고 자랑을 하셨단다.

 

어머니가 17세 시절의 꽃다운 추억을 펼쳐놓을 때면, 102세는 어디론가 달아나고 없어진다. 치매예방을 위해서 언니가 고무 다라이에 담아 놓은 하양.까망,노랑.진홍 색 콩 중에서 팥을 골라내는 작업이 얼마나 빨라지는지.... 또한 눈빛은 얼마나 진지하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는지...., 칭찬은 추억 속에서도 고래를 춤추게 하는 힘이 있었다.

 

사실 어머니는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함께 오직 부지런과 정직함을 의지하고 살았다. 도순리 부잣집에서 큰 밭 하나를 물려받아 왔지만, 성장한 큰 아들이 차지해버리고 말았다. 그 오라방의 딸인 조케가 어머니보다 한 두 살이 많아서, 타박도 하고 왕따도 시키면서 때로는 서럽게도 하였던 모양이다.

 

어머니와 함께 남의 밭 일을 거들면서 속이 답답해진 어머니는, 밤이면 야학에 가서 한글을 깨쳤다. 그리고 당신처럼 기댈 데 없는 처자들과 벗삼아서 일찌감치 바다로 나가 물질도 익혔다. 덕분에 15세에 동네 해녀들의 애기업개로 강원도 속초행 원정물질을 따라가서, 정작 현장에서는 해녀들과 함께 우뭇가사리 물질을 하는 해녀가 되었다. ‘1등은 못 해도 2등은 했다’는 어머니의 물질 기량은, ‘큰갯마을’이라는 대포마을지의 어촌계 편에서, ‘역대 해녀회장 중 제 10대 김성춘(1971)’이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렸을 적 기억이다. 대지 70평, 건물 17평에서 2남7녀와 함께 11명이 복작대는 우리집에 왕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소와 말, 개와 돼지도 한 울타리에서 식구로 살았으니 얼마나 복잡하고 불편하셨을까. 그런데도 할머니는 3남 2녀를 마다하고, 조그만 뒷방에서 소리 소문 없이 지내셨다. 얼마나 몸이 작으신지 이불 속에 할머니가 계신지, 이따금 들춰보아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어쩌면 할머니는 될수록 당신의 몸을 웅크려서 작아지려고 애쓰셨 지 모르겠다. 룸메이트로 지목된 정심 언니가 앉은뱅이 책상을 갖다놓고, 그 위에 거울까지 세우고서 독방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할머니는 밥도 아주 조금 드셨는데, 우리가 밭에서 일을 할 때는 어느새 따라와 한몫을 감당하셨다. 95세 할머니가 김을 매고 고구마를 캐시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 싶은데, 어머니는 할머니를 지극히 고마워하셨다. 아버지는 지나가는 자리장수에게서 굵은 녀석으로 한 됫박쯤 사서는, 하시던 일을 멈추고 자리굽기에 정성을 쏟으셨다. 어찌 보면 할머니가 오셔서 오히려 일이 더디어지는 듯도 한데, 어머니 아버지 얼굴은 몹시도 즐거워 보였다. 덕분에 우리는 모처럼 자리구이가 곁들인 점심으로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따뜻하고 편안한 느낌의 내리 사랑을 생애 처음으로 누려보셨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그 사랑이 감사하고 행복했으면, 102세가 되도록 잊지 못할 책임감을 느끼실까. 어머니는 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는 아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그 시절은 큰어멍, 샛어멍, 말잿어멍까지 아내를 두기도 하던 시절이었다.

 

4.3의 영향이었을까. 1949년도 통계청의 인구총조사를 보면 제주도의 총인구는 25만4589명이다. 남자가 11만4759명, 여자 13만9830명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18%가량 많았다. 2024년 2월 현재는 총인구(내국인)가 67만3665명이다. 남자 33만7202명, 여자 33만6463명으로 남자가 739명 더 많다.

 

아,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하고,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102세 어머니의 아득한 그리움이여! 이 자리를 빌려서 1923년 3월 22일에 출생하신, 어머니의 102세 생신을 축하드린다. 당신의 막내딸에게 ‘김성춘(金成春: 봄을 이루어라, 봄이 되어라)’이란 이름을 붙여주신 할아버지 김광용님(1928년 함경환 사건으로 돌아가심)께 막내딸의 안부를 전해 올린다. 할아버지께서 사오시마 약속하신 꽃신은 손녀딸 정심이가 해마다 계절마다 신발장이 가득하게 사드리고 있음도.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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