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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일제강점·6.25·보릿고개·새마을운동·감귤심기 거친 세월의 지혜

 

‘긴병에 효자 없다’ 하듯이 100세 넘은 어머니와 살면서 ‘고맙다’란 말을 기대하는 건 언감생심(焉敢生心) 가당찮은 일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어머니께서 “촘말로 고맙다, 이!”라는 소리를 습관처럼 하신다. 미안한 듯 웃으시면서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서는 몇 번이나 양 볼을 쓰다듬는다.

마치 소중한 보물을 대하듯 보고 또 보고, 만져보고 안아보신다.

 

그럴 때 창가로 햇살이 비쳐 들면 마치 어미 닭이 날갯죽지 안에 끌어모아 부화시킨 병아리 마냥 내 몸 안으로 뜨거운 기온이 감돌아든다. 포근함, 바로 솜이불 안의 아기를 감싸안은 어머니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온도다. 동시에 어쩐지 불안한 생각이 스멀거려서 목소리를 높인다.

 

“어머니, 미신(무슨) 소리우꽈? 나가 어머니한티 고맙주. 어머니가 어떵(어떻게) 나한티 고마울 수가 이수과(있어요)? 어머니가 2남 7녀, 우리 아홉을 어떵 키워신지는 온 동네가 알고, 우리도 다 아는디 마씸!” 사실 어머니는 10명을 낳아 첫딸을 폐렴으로 잃어버렸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언제 낳읍디강? 어떵 생겨십디강? 기분은 어떵 헙디강?”. “게매이(글쎄다), 잘 모르키여만은 저녁에 나실 거여. 밭에 갔당 완(갔다 와서), 저녁 먹언, 배가 아파오난, 아고, 아기가 나오젠 햄고나(나오려고 하는구나) 해연(해서) 드러누우난, 어그라(얼른) 나와실 거여.... 생기민 어떵 생기느니게. 아기가 핏덩어리주. 니네 아방한티 ‘뭐 나져수과(낳았습니까)?’ 물으난, 똘이랜 허곤테(하길래), 어그라(얼른) 고개 돌려부렀져. 이제 생각해 봐도 칭원헌(서러운) 것이, 위로 셋을 똘만 낳은 후제(후에) 네번째로 니네 오라방이 나와신디, 또 똘·똘·똘·똘이라. 똘만 4번을 계속 나와부난, 나가 미신 염치로 니네 아방 보는 디(데)서 니 얼굴을 뵈려보느니. ‘게무로사(어쩌면) 하나님도 어떵 나한티 이추룩(이렇게) 해지는고...’ 허멍(하면서), 지성기(포대기)에 싼 바라다(곧바로) 방구석으로 밀려부러신예(밀쳐버렸단다). 경 호난(그렇게 했더니) 니네 아방이 영(이렇게) 고라라(말하더라) '똘도 똘 나름이라. 아기가 막 동차게(똘똘하게) 생겨서. 이 후제(후에) 자네(어멍)를 멕영(먹여) 살릴 줄 어떵(어떻게) 알아?' 허멍(하면서), 아기를 나 쿰(품)으로 안아다 줘라. 그제사 니한티 젖을 물려신디, 나 모음(마음)이영 지 주제(형편)를 알아신고라(알았는지) 베랑(별로) 울지도 안 허멍, 돌라붙언(달라붙어서) 막 젖을 뽈아라.... 이제 생각해 보난(보니까) 니한티 잘도 미안허다게. 니네 아방이 곤(말한) 거추룩(것처럼), 니 덕분에 이추룩(이렇게) 백 설 넘게 혼디(같이) 살아질 줄을..., 그때 나가 어떵 알아실 거니.... 미한허다 이! 하나님은 니추룩(너처럼) 착하고 여망진(당차고 똘똘한) 똘을 나한티 보내줘신디, 나가 그 땐 홈치(도무지) 그걸 몰라서....”

 

이상은 어머니와 내 삶의 바깥 면이다. 실상은 이야기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다녀온 후 6시쯤 컴퓨터를 열어서 신문 뉴스를 훑어본다. 밤새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가 직장을 은퇴하고 집에서 어머니의 요양보호를 하는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런데도 뉴스에 마음을 쓰고, 오피니언에 머리를 주억거린다. 노인 관련 칼럼이나 행사 정보가 보이면 얼른 복사를 해서 카톡방으로 옮겨 놓는다. 9시쯤 되면 제주장수복지연구원 회원들에게 전달해 줄 요량이다. 이따금 좋아하는 칼럼니스트들의 글이 심금을 울리면 무슨 횡재라도 한 듯이 운수 좋은 날이 된다.

 

그런데 7시쯤 어머니 방에서 이동변기가 달그락거리면,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아, 오늘은 운수가 된통 없는 날이구나.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어머니를 요강에 앉혀 드린다. 용변이 시작되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기저귀를 갈고 요강을 비운다. 그리고 어머니가 더 잠들기를 거부하면, 옷을 갈아입히고 부축해서 거실로 이동한다. 당신의 자리로 정해진 창가의 의자에 앉혀드리면, 지팡이로 탁자의 물건들을 정리하신다.

 

아, 어머니의 지팡이는 만 100세가 되던 해, 노인의날에 대통령이 보내준 청려장이다. 명아주의 잎이 푸른색이라 청려장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는데, 효자들이 부모에게 바치는 선물이었단다. 심장에 좋은 식물이라 몸에 지니고만 있어도 효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미국에서 심장 수술을 한 경력이 있는 어머니가 오늘도 그 청려장을 짚고 걸음을 옮기신다.

 

식탁에 앉혀 드리면 얼른 생선을 당신 앞으로 끌어당기신다. 내가 돌아서서 밥을 푸고 국을 뜨는 사이 어머니는 어느새 맨손으로 생선을 뜯으신다.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다. 어디 아니 그러실까. 40년을 바다에서 해녀를 하신 이가 아니신가. 소살로 옥돔도 쏘아서 잡으시고 문어도 잡아채시던 손이다. 생선 덕분에 오늘 아침도 밥 한 그릇을 거뜬히 비우셨다.

 

언니가 씨뿌리고, 어머니가 가꾸어낸 배추가 알맞은 국물로 식욕을 돋운다. 미역국도 좋지만, 사시사철 반가운 건 배추된장국이다. 입맛이 없을 때는 국물에 말아드려도 그만이다. 이제 어머니는 일일이 떠먹여야 한다. 그렇게 하고서도 식사가 끝나면 식탁 밑에 떨어져 있는 찌꺼기들이 수북하다.

 

양치질을 시켜드리고 거실의 창가에 놓아진 당신의 의자에 앉혀 드리면, 어머니는 두 개의 흔들의자를 번갈아 가며 하루해를 보내신다. 창밖으로 내다보이는 마당의 배추와 무, 파와 상추 등이 꽃보다 더 마음에 드시는지, 언제나 한 번쯤은 탄성을 지르신다. “아고, 우리집은 부재여, 이! 누게가 심어시니? 이땅(이따가) 저 배추 노물(나물)로 된장국을 끓영 생선(옥돔)에 밥 먹자, 이!” 어머니에게는 여전히 옥돔만이 생선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도 옥돔, 잘하면 조기까지 봐주고, 우럭이나 쥐치 등은 바다에 버렸지 않은가. “언니가 씨 뿌리난, 어머니가 검질(잡초) 매멍(뽑으면서) 키워수게. 경 허난, 반은 언니 꺼, 반은 어머니 꺼우다!” 그래도 어머니는 그 배추가 당신 것이라 여기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 마음에는 늘 ‘세상에 내 것이 어디 있으랴’하는 체념이 서려 있다. 1923년 3월 22일생. 일제·6.25·보릿고개·새마을·감귤심기 등을 다 거쳐오신 세월의 지혜이려니.

 

설거지를 하고 뒤돌아보니 의자 밑에 휴지 조각들이 허옇게 흩어져 있다. 어머니의 치매증세 1호가 휴지를 뜯어서 여기저기 흩트려 놓는 거다. 그리고 휴지 한 롤을 이리저리 말아서 웃옷 주머니, 바지 주머니, 의자 틈에, 머리맡에, 이불 속에 숨겨 놓는다. 마음이 쓰리다.

 

아들네 손자 손녀를 돌봐준다고 미국으로 이민 가신 부모님이 아이들이 크고 나서 잠깐 하신 일이 청소였다. 아마도 교포분이 야간 사무실 청소를 용역으로 맡아 하면서 화장실의 휴지 갈아놓기 같은 허드렛일을 시키셨지 싶다. 쓰다 남은 휴지를 롤에서 빼고 새것으로 갈아 끼우고 나서, 남겨진 휴지를 집으로 가지고 오셨다. 1980년대 초반이었다.

 

그 시절에 제주도에서는 미처 수세식으로 바꾸지 못한 변소에서 돼지도 식구처럼 함께 살았다. 그만큼 휴지도 귀했을 거고. 어머니에게 천연펄프화장지가 30개 들어 있는 휴지다발을 보여드리며, 이제는 시대가 변했음을 알려드린다. “어머니, 우리집에 이추룩 휴지가 하시난(많으니까가), 이게 다 어머니 꺼니가, 제발 여기저기 곱지지(숨기지) 맙서 예!”라고 호소해 본다. 알아들으셨을까? 얼른 휴지 하나를 들어서 가슴에 안으신다. “이건 나 꺼여, 이!”라고 빙그레 웃으신다.

 

‘긴 병에는 효자가 없다’라고 하지만, 세상사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102세 어머니에게 빨깐색 털코트를 사다가 입혀드리는 딸. 우리집 6번째 딸의 효심이다. “어느날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셨어. 이때껏 보아온 중에 가장 멋진 모습으로. 양복을 잘 차려입으시고 얼굴도 화안하니 빛나시더라. 너도 알잖아. 우리 아버지는 농사철에는 새카맣게 그을리셨다가도 겨울이 되면 다시 하얗게 희어지시는 걸. 내게 다가오셔서는 ‘정심아, 고맙다 이!’라고 하시더라. 깜짝 놀라서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만 꿈이 깨져버렸어. 꿈이라기엔 너무 선명하더라”

 

아버지는 천국에서도 어머니를 생각하시나 보다. 당신의 아내, 김성춘 여사가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누구 덕에 웃으시는지 바라보시는 게다. 이참에 나도 어머니와의 휴지 전쟁을 끝내야 하겠다. 어머니에게 휴지란 일의 추억이요, 아버지와의 사랑이요, 딸을 도와주는 일의 하나이거니.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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