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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행복한 요양원 생활 (1)

미국에서는 노인이 아파서 병원에 들어갔는데 치료가 여의치 않으면, 그 다음 행선지가 대부분 요양원이 된다. 집으로 돌아올 경우 전적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 생활이란 게 한국에서처럼 며느리나 딸이 가정에서 부모를 모시면서 병간호를 하는 게 여의치 않은 구조다.

 

낯선 이국땅에서 가족 구성원들이 저마다의 시간표에 따라 주어진 역할을 기계처럼 수행해 내야 하는, 그야말로 심신이 모두 예약되어 있는 긴장상태다. 나의 시간과 마음을 빼내어 다른 가족을 돌봐 줄 여유가 없다는 얘기다.

 

오죽하면 고향에서 친척이나 지인들이 방문 소식을 보내올 때, 처음에는 그렇게도 가슴 설레게 반가운 마음이, 차츰차츰 시간 내기조차 어려운 부담으로 변해 갈까. 아니, 돌아보면 어느새 우리나라도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회가 되어 있기는 하다.

 

환갑을 넘기신 나이에 삶의 터전을 옮기신 아버지는, 의외로 미국 생활에 적응을 잘 하셨다. ‘1달러’면 살 수 있다는 볼티모어시 다운타운의 낡은 건물들을 돌아보면서, ‘조금만 더 일찍 왔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드러내실 만큼 도전적이기도 하셨다.

 

드넓은 땅과 무한한 일거리들이 아버지의 가슴을 뛰게 하는 나라였다. 영어의 알파벳을 배워서 미국 시민권도 따내셨다. 메릴랜드의 오션시티 근처에서 낚시하기를 좋아하셨고, 플로리다에 있는 디즈니월드도 가보셨으며, 이스라엘 성지순례도 즐기셨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미국은 눈도 멀고 귀도 멀고, 입도 막힌, 그야말로 감옥 같은 곳이었다. 참, 게장을 무척이나 좋아하시는 어머니는, 볼티모어의 명물인 크랩만큼은 가격 불문하고 즐겨 드셨다.

 

크랩은 볼티모어를 대표하는 요리로, 라면스프같은 조미료(OLD BAY)를 잔뜩 뿌려서 고압의 스팀으로 쪄낸 후, 망치로 쳐서 껍질을 깨뜨려 속살을 빼 먹는다.

 

어쩌면 그 짭짤한 맛이 해녀인 어머니의 향수를 달래주었던 게 아닐까. 2년 동안의 손자녀 돌봄이 끝나자마자, 두 분은 볼티모어 다운타운에 있는 노인아파트로 거처를 옮기셨다.

 

다행히 한국 노인들이 대부분 이 아파트에 모여 살고 있었다. 아파트 앞에는 종각 식당, 서울 떡집이 있었고, 주변으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슈퍼마켓, 식료품점, 여행사 등도 한국어 간판을 달았다. 이곳에서 미국 생활의 자신감을 얻은 어머니는, 노인 아파트 할머니들과 사귀면서 군복가게에서 일거리를 얻기도 하였다.

 

걸어서 생활할 수 있는 이곳에서, 노인아파트의 할머니들이 스무 분 가량, 마치 한국인 거리처럼 친숙하게 여생을 보내고 계셨다. 일요일이 되면 교회의 봉고버스가 할머니들을 태우러 오셨다. 대부분 6.25 때 남한으로 피난 왔다가 딸을 따라 이민한 경우들이었다.

 

아버지는 할머니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아파트 전체를 통틀어서 할아버지가 서너 분 정도에 불과했다. 그중에서 가장 젊은데다가, 아버지의 찬송 소리는 고음의 테너였다. 게다가 교회의 노인회장이라, 수요일이면 할머니들의 거처를 순회하면서 저녁예배를 인도하셨다. 할머니들은 저마다의 솜씨를 다채롭게 뽐내면서 예배를 위한 간식을 부지런히 내놓았다.

 

제주도에선 처음 보는 음식들이라, 어머니는 늘 ‘배운 할망들이라서 음식도 고급지다’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폈다. 사실 어머니가 할 줄 아는 서양요리는 카레가 전부였다. 한때는 교회에서 배운 카레 솜씨를 발휘해서 중문면 대포리의 해녀할망들을 놀라게 하던 우리 어머니. 제주도를 벗어나자 그 자랑스러운 솜씨와 자부심이 효력을 다하고 말았다.

 

할머니들은 손수 만든 샌드위치나 만두, 핫케이크, 쿠키 등을 저마다 모양 있게(어머니 표현으로는 ‘벨 요망을 다하며’) 차렸다. 그러한 할머니들의 경쟁심은 교회에 갈 때면 또 다른 모양의 해프닝을 벌였다.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할머니들이 아버지를 끌어당겨 자기들 옆자리에 앉히느라 벌어지는 실랑이들.

 

그런 아버지를, 어머니는 모르는 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창밖을 바라보며 딴전을 피웠다. 하지만, 실상인즉, 어머니는 허연 미소를 날리면서 끌려가는 아버지가 참으로 야속하였다. 그 할머니들은 말투나 매무새가 미국적이고 배운 티가 났다. 그러므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자존심을 지켰을 뿐.

 

가끔 어떤 할머니가 한동안 안보여서 안부를 물어보면,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하였다. 그런 날이면 어머니의 얼굴이 한 두 차례 어두워졌다. 어머니는 요양원이 너무 싫다고 하셨다. 한 번 들어가면 영영 얼굴을 볼 수 없는데다가, 궁금하다 싶으면 장례식이나 부고장 소식이 날아드는 게 수순이니까. 어머니의 눈에 요양원은 고려장과 같은 마지막 장소였다.

 

이제는 한국도 노인이 치매를 시작하면 요양원행을 고려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부는 2008년, 고령과 질병으로 일상생활을 지속하기 힘든 노인을 위해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해 노인 돌봄을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돌보기가 어렵고, 자녀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노인들이 국가의 보조를 받아 요양원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노인복지시설 이용현황을 보면, 2020년 말 기준, 노인요양시설에 18만6289명,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에 1만6786명, 총 20만3075명의 노인들이 노인의료복지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밖에 양로시설에 1만1619명, 노인공동생활가정에 953명, 노인복지주택에 7925명, 총 2만497명이 자신의 집이 아니라 노인주거복지시설에 적을 두고 있다.

 

이러한 노인장기요양보험급여 대상자는 65세 이상인 자, 65세 미만이지만 노인성 질병을 가진 자로, 거동이 불편하거나 치매 등으로 인지가 저하돼,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장기요양 인정은 65세 이상 노인 또는 65세 미만 노인성 질환 대상자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 신청서를 제출하고, 등급판정을 거친 후 받게 된다. 의사나 한의사가 발급하는 소견서가 그 기초자료다. 장기요양 1등급은 심신기능의 장애로 일상생활에서 전적으로, 2등급은 상당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인데, 주로 치매가 장애의 원인이다.

 

우리나라는 치매환자 증가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 중 하나다. 2020년 기준 전국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813만4674명, 이중에서 치매추정 환자수가 84만191명이다. 제주지역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인구수는 10만6154명, 치매추정 환자 수는 1만1474명이다. 65세 이상 노인 중에서 11%, 적어도 열 명 중 한 명이 치매를 앓는 셈이다.

 

치매 증상은 기억력 저하, 언어 장애, 시공간 파악 능력 저하, 계산 능력 저하, 성격·감정의 변화 등으로, 예전 수준의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 치매 증상이 나타난 이후부터는 점차 기억력, 언어능력 등이 지속적으로 감퇴한다. 장기요양인정 점수에 따른 등급판정 기준이 1∼2등급의 경우 요양원 입소가 가능하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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