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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한 어른을 모시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100세 너머를 사는 장수노인의 특징은 무엇일까?

 

100세 이상 장수인을 400명 이상 연구해 온 박상철 교수(전남대 연구석좌교수)에 의하면, 첫 번째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걷든가, 텃밭을 가꾸든가, 잠시도 쉬지 않고 손발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장수의 선두를 달린다. 말하자면 남에게 일을 맡기지 않고 스스로 무언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다. 마치 세월도 이들의 부지런함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왕성한 심신의 활동이, 결국 운동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다. 더불어 뇌의 신경세포도 자극해주므로 치매가 생길 틈도 없애준단다. 그러한 삶의 속도를 유지함으로써 노화에 붙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결국은 장수인으로 남게 되는 셈이다. 세월보다 한 발 앞서 삶을 박차고 달려나가는 인생 경주의 상급이라고나 할까?

 

둘째는 호기심이 왕성하다는 점이다. 동네 대소사를 꿰뚫고 있으며, 늘 새로운 것에 관심을 둔다.

 

셋째는 솔직하다는 사실이다. 무엇이든 가슴에 쌓아두지 않고 할 말이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렇게 감정을 표출함으로써 스트레스를 별로 받지 않게 된다. 넷째 잘 어울리려고 노력한다. 혼자 사는 노인이지만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고, 자식들과 동거하더라도 매일 마을 노인회관을 찾아가 사람들을 만난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는 첫 번째 장수의 특징에 해당하는 편이다. 어쩌면 대부분의 제주도 어머니들이 그러리라 생각된다. 제주도가 ‘삼다도(三多道)’라 불리어지는 이유가, 그렇지 아니한가. 돌과 바람이 많은 척박한 자연 환경을, 여인들이 온 몸으로 감싸안으며 버텨내는 현상을 보고, 누군가 ‘삼다도’라 불렀던 게 어느새 굳어졌을 테니까.

 

조선시대에 제주도는 여름철 홍수와 태풍, 가뭄으로 인해 수해(水害)·풍해(風害)·한해(旱害)가 극심해서, ‘삼다도’라 불리었다고도 하지만 말이다. 통계적으로는 1948년 4·3사건으로 남자들의 희생이 대단히 많아서, 여다의 섬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제주4·3사건 진상 보고서’에 의하면 희생자 숫자가 약 3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그 비율이 여자 20%, 남자 80%로 가늠된다.

 

해방 후 정부가 처음으로 실시한 1949년 인구총조사를 보면, 제주도 전체 인구 25만4589명이다. 그 가운데, 남자는 11만4759명(45.08%), 여자는 13만9830명(54.92%)으로, 남자가 여자의 82%에 불과하다. 참고로 2022년 12월 말 현재 제주도 총인구는 69만9751명으로, 남자 35만2303명, 여자 34만7448명으로, 남자가 4855명 더 많은 편이다. 2008년도부터 남자 28만2937명(50.1%), 여자 28만2582명(49.9%)으로, 통계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남녀 성비가 역전되었다.

 

오늘은 초반부터 더위 먹은 글이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어머니가 힘들면 나도 힘들어진다. ‘정옥아, 네가 좋으면 나도 좋고, 네가 싫으면 나도 싫다’ 하시며,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시던 선생님도, 이 더위에 많이 편찮으시다. 부디 지독한 여름을 잘 견뎌내시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드럽게 불어오면, 그 좋은 파크 골프장을 한 번쯤 걸어보시고, 다시 한 번, 부디 꼭 한 번만 기운을 차리시기를.... 나의 기도가 이 여름과 힘겹게 사투하시는 모든 어르신들에게 간절한 바람으로 가 닿으시기를 소원한다.

 

대포마을 동네 잔치에 다녀온 이후로 어머니의 얼굴이 편안해지더니, 요사이는 몸 상태가 부쩍 좋아진 느낌이다. 무더위에도 그다지 힘들어 하지 않으시고, 비교적 잘 드시고, 잘 주무신다. 물론 하루 종일 소파에 앉아서 끄덕끄덕 조시는 게 일상이지만 말이다.

 

오늘은 뜬금 없이 ‘자리회를 사오라’고 하신다. ‘자리철이 끝나서 냉동된 것들 뿐’이라고 했더니, 고개를 저으신다. 그러고는, “대포 기정목 밭, 허태행씨 사는 디 가민 자리회를 먹을 건디...”라며 서운해 하신다.

 

기정목은 우리가 마지막으로 살았던 고향의 지명이다. 아버지는 농사일을 주로 하셨지만, 자리철이 되면 태우를 타고 가서 우리가 먹을 만큼 자리를 잡아오시곤 하였다. 도마에서 일일이 자리 비늘을 벗기고 자리회도 손수 만들어 주셨는데, 우리가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재밌게 구경을 하노라면, 아주 작은 자리들을 골라서 된장에 찍은 다음 통째로 입에 넣어주셨다. 제비가 새끼들 입에 벌레를 넣어줄 때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아버지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은하수처럼 흘렀다. 가을에는 밤 사이에 갈치를 잡아오셨는데, 그 빛깔이 은색으로 빛나서 눈이 부셨다.

 

어머니는 지금 그 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리우신 게다. 어디 아니 그러실까. 나도 자리, 갈치, 졸갱이, 갈쟁이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하늘을 우러르게 되는데.... 아버지는 한라산 중산간에 소가 겨우내 먹을 꼴을 베러 가셨다가도, 졸갱이(작은 바나나처럼 생긴 열매)가 보이면 줄기째 따서 구루마에 매달고 오셨다. 껍질을 벗기면 찐득한 과육 속에 까만 깨처럼 씨가 박혀 있었는데, 달달한 그 맛도 일품이지만 아버지의 땀이 배인 열매 자체가 감동이었다. 어쩌면 어머니는 자리회보다 그 속에 담긴 아버지와의 살가운 추억, 그 사랑이 그리우신 거다.

 

가을이 되면 어머니가 놀이 삼아 지내시라고 언니가 작은 밭을 만들었다. 잔디를 파내고 흙을 잘 골라서 배추를 심을 요량이다. 마당에 있는 꽃들을 잡초로 보시는 어머니에게, 잔디란 녀석은 얼마나 쓸 데 없는 잡풀인가. 어머니는 마당에서 흙을 만질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 평생을 농부로 사셨으니, 흙을 만지기만 해도 그 감촉이 얼마나 친숙할까.

 

요즘은 입에 달고 하시는 말씀이 “날 살려줍서!”다. 얼마나 삶이 무겁고 힘들면 저러실까 싶으면서도, 심술궂게 잔소리를 해댄다. “어머니, 이제랑 ‘날 불러줍서’랜 헙서. 대포에선 어머니가 젤로 오래 살암수게. 이제는 먹는 거, 걷는 거, 자는 거 다 고생 아니우까. 경 허난, 다른 할망들추룩 ‘자는 잠에 나 불러줍서!’랜 기도를 허십서. 경 해사, 어머니도 마음이 펜안허곡, 혼 시라도 살아 이신게, 그자 감사헐 꺼 아니우꽈!”라고.

 

엄격히 말하자면, 나는 지금 어머니에게 ‘어서 돌아가시라’고 강권하고 있는 셈이다. ‘긴 병에 효자 없다’듯이, 어머니의 장수가 길어지니 자녀들의 관심이나 방문도 뜸해졌다. 거기에는 이 여름의 무더위가 한몫을 하는구나 싶기도 하지만, 혼자서 어머니와 하루를 씨름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사실은 많이 고단하고 외롭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치매를 하는 것 같아서 슬프고, 하루하루 점차적으로 소멸해 가는 어머니의 일상이 아프다. 꺼져가는 촛불같은 어머니의 생명을 어떻게든 붙들어 보려고 애쓰던 봄철과 달리, 이 여름은 산다는 것 자체가 버겁고 고되다. ‘죽어도 요양원만은 보내지 말아 달라’는 어머니의 부탁과 달리, 형제들 중에는 요양원 얘기를 비치는 이들도 더러 생겼다. 내가 힘든 내색을 드러낸 탓이 크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만 온 동네가 필요한 게 아니다. 한 분의 어른을 모시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어머니를 위해 밭을 만드는 언니가 있어서 그만이지만, 그래도 오늘처럼 무덥고 고달픈 날에는, 누군가의 응원이 필요하다.

 

지금 이 시간, 어머니는 소파에서 주무신다. 삐뚤어진 베개를 바로 하려고 들척이자, “무사게!” 하면서 팔을 휘두르신다. 전에 없던 짜증이다. 선풍기 바람을 싫어하시는 어머니도, 오죽하면 올 여름은 선풍기를 타박하지 않으신다. 이제는 식사량이 줄어서 얼굴살이 많이 빠졌다. 주름진 얼굴이 많이 쳐져서 더 늙고 쇠약해 보인다. 그 단단하던 종아리도 많이 가늘어졌다. 지팡이를 짚고서도 자꾸만 헛디디려 해서, 어머니가 움직이면 나도 따라 반사한다.

 

문득 사는 게 무언가 싶은 생각에, 김종두 선생님의 ‘사는 게 뭣 산디1’를 펼쳐본다. ‘사름 사는 일은 헌한 산을 오르는 거여. 이녁만씩 인생의 탑을 쌓아 가는 거여..... 산을 오르면 이내 해는 져불곡, 탑을 쌓고 나면 우리의 육신은 깃털이 되고 말주만, 버친 삶 짊어졍 살아 온 똠과 눈물, 이게 우리가 살아 온 보람이여. 이게 사름 사는 거여.’ 아, 아직은 어머니가 깃털처럼 날아가실 때가 아니다. 어서 마음의 끈을단단히 하고서 어머니에게 집중해야 한다. 후회 없이 원도 없이 말이다.

 

선생님이 병상에 계실 때 전화를 주셨다. “허선생님 글에, 제 시가 자주 등장하는데...., 보아하니 그게 많이 닳아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시집 한 권을 더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보내온 시집을 펼쳐보면서, 선생님의 혜안을 읽는다. “동문 시장통에 강 보난, 푸성귀 혼 줌 내 놩, 호루를 살아가는 늙신네들 이서라. 고는 귀는 막앙 잘 알아듣지 못호곡, 눈은 침침호멍도 정광허게(건강하게) 살아가는 이 늙신네들. 몽그라진(닳아진) 손콥으로 송키(채소) 다듬으멍, 그 옛날 고슴 팽팽호던 시절 골아가멍 빙세기(빙긋이) 웃엄서라.”

 

그래, 늙어서의 삶이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그렇게 저렇게 살아내는 거다. 어서 이 무더위가 지나가고, 저 마당에 배추가 시퍼렇게 자라면, 우리 어머니 그것들을 캐면서, 빙세기 웃으셨으면..... “정옥아, 제게 소금 가져오라 이!”라고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시면, 좋겠다. “할머니 김치찌개 최고다! 바로 이 맛이야!!” 라는 손자들의 탄성을, 어머니가 다시 들을 수 있으면, 정말로 좋겠다. “조냥허곡 부지런허민 하늘이 도와!”라는 어머니의 가훈을, 올 가을에도 변함없이 들을 수 있기를, 두 손모아 기도한다. 아, 어머니에 대한 나의 불효가 눈물이 되지 않게 하소서.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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