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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외롭지 않게, 혼자 중얼거리지 않게 ... 생애 최고의 소풍을 나가본다

 

요즘들어 어머니의 잠꼬대가 늘었다. “나 살려도라”고, 거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외칠 때는 가슴이 서늘해 온다. 얼른 어머니를 부둥켜안고서, “어머니, 나 여기 이시매 걱정 맙서 예!”라고 달래면, 마치 어린 아기가 엄마품을 파고들듯 매달린다. “정옥아, 나 살려도라 이!”라고 애원을 한다. 아마도 악몽을 꾸신 게다. 내가 무슨 힘이 있으랴. 그저 어머니를 바라보면, 가슴이 아플 뿐.

 

얼마나 외로우실까? 주위를 돌아보면, 어머니 연배의 어르신들이 하나 둘.... 거의 모두 이 세상을 떠났다. 한 때는 우리 고향 대포마을에 96세까지 장수하는 부부가 계셔서 참으로 부러워한 적이 있다. 부고 소식이 날아오면, 저도 몰래 아버지가 소천하시던 때의 나이와 비교를 하게 된다.

 

아버지는 80세에 미국땅에 묻히셨다. 당신 말씀대로, “보통으로 살면 60, 말씀대로 살면 80”이라 하시더니, 그렇게 가셨다. ‘만족하게 살았다’시던 아버지가 오늘 따라 가슴저리게 그립고 서럽다. “어머니, 나가 미신 힘이 이수과... ‘하나님, 나 살려줍서!’랜 기도를 헙서!” 어머니는 나의 담담한 반응에 딴 데로 시선을 돌린다. 그 담대하던 믿음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제 오늘, 아침마다 중얼거리며 반복하는 어머니의 잠꼬대는 형제들의 이름이다. “성아, 성우, 성은, 성택, 성숙, 성냉(성남)....” 외할머니는 5남 2녀를 두셨다. 특별히 ‘성냉’이라 부르는 어머니(성춘)의 막내 오라방은 어머니와 세 살 터울이다.

 

1928년 함경환(제주-시모노세키-오사카를 정기 운항하던 여객선) 사건으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외할머니는 남편의 시체를 찾아 바닷가를 헤맸다. 빈 상여를 매고 장례식을 치르던 날, 할머니는 “어떤 사람은 복도 하서(많아서) 시신을 두고 영장을 치루는고...”라며 대성통곡을 하였다. 대포 마을에는 한 집 건너 장례식이 벌어졌고, 배가 고픈 8살 성남이 5살 성춘이를 데리고 이웃집 영장집(장례식)에 가서 밥을 얻어 먹였다.

 

어쩌면 어머니는 그때를 생각하며 형제들의 이름을 되뇌고 있는 지도.... 기도처럼 반복되는 어머니의 중얼거림이 슬퍼져서, 월요일에 쓰는 이 글을 마칠 수가 없었다. 어제는 온 종일 비가 내렸다. 추적대는 겨울비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하루 내내 지나온 삶에 파묻혀서 서글프셨으리라.

 

비 날씨를 틈타서 한라산을 넘어 온 지인들과 함께, 나는 오랜만에 고급 호텔에서 회포를 풀었다. 서귀포 삼매봉 자락에 세워진 그 호텔의 정원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논 농사를 병작하던 곳이다. 이따금 엄습하는 어머니의 외로움을 떨쳐내면서, 나는 ‘서귀포에 이런 호텔 파라다이스가 펼쳐지다니...’ 라는 놀라움에 취해서 식음에 빠져들었다.

 

식당과 커피숍을 찾아서 헤매는 동안 서귀포 사람들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워낙에 수준이 높은 호텔이라, ‘도민 할인’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오만이 곳곳에서 기를 발했다. 대나무 대신 대나무 그림이 그려진 판넬로 주변과 경계선을 친 시설은, 그야말로 오만의 극치였다. 그들에게 그곳은 서귀포가 아니었다. 대나무는 서귀포의 정체성과 무관한 식물이다.

 

서너 시가 넘어서 집으로 와보니,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조을고 계신다. 무엇을 하시는 걸까? 손가락을 자꾸 꼼지락 거리시다가 이따금 허공을 휘저으신다. “어머니!”라고 부르자, 얼른 눈을 떠서 반갑게 하시는 말씀. “정옥아, 니 왔구나게! 나 홑썰(좀) 도와줄타? 이 밤에 나강 일을 해사 헐 건디, 무사산디 꽝이 배고 뽀사부런 홈치 못허키여게(왠일인지 뼈가 무겁고 쑤셔서 도무지 못하겠구나). 니가 혼썰만 도와주민, 경 허민(그러면) 저 일들을 다 해지키여만은...” 세상에! 어머니는 한 나절 동안 일을 하고 계신 게다. 두 손으로 부지런히 명주를 자았을까, 목화를 다듬었을까, 아니면 바느질을 하셨을까?

 

그래, 오늘은 분명히 헤진 옷들을 꺼내서 재봉틀도 돌리고 바느질도 하셨으리라. 어머니는 비가 와서 밭 일을 못 가시면, 구멍난 옷들 꺼내서 박음질하고 꿰매고, 작아진 옷들은 큰 옷으로 대폭적인 수선도 하셨다. 2남 7녀 중에서 위로 1남 2녀를 빼고, 나머지 고만고만한 아이들의 옷가지들을 꺼내서, 이리저리 운영의 묘를 살리셨다. 언니 옷이 내 옷이 되고, 내 옷은 동생이 입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하지만 어떤 날은, ‘각자의 옷은 각자가 꽤매라’는 특명을 내리셨다. 당신은 할머니, 아버지, 큰 아들 옷들에 집중을 하시면서.... 터진 옷을 뒤집어서 비슷한 색깔의 천을 덧댄 다음, 바느질의 실이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꽤매는 요령을 가르쳐 주셨다. 때로는 수명이 다 한 전구다마(알)를 양말에 넣어서 터진 부위를 깜쪽같이 기울 수 있게도 하셨다.

 

위로 두 언니와 동생은 마치 학교의 미술 시간이나 가사 시간의 작품처럼 어머니가 가르쳐주신대로 공들여서 그 일들을 하였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이리저리 낑낑대보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천을 바지의 겉면에 그대로 갖다대고 바느질을 하였다. 헤진 데를 안으로 막으나 겉으로 막으나, 터진 구멍을 막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바느질한 나의 바지는 항상 겉면에 덧댄 부위가 커다랗게 부각되어, 터진 옷의 부위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지금 생각하면 요즘의 거지패션처럼, 그것도 하나의 개성일 수 있겠지만, 그 시절엔 헌 옷임을 드러내는 단점이었다.

 

문제는 제주시에서 전근을 오신 총각선생님의 눈에, 그 헤진 바지의 적나라함이 놀라운 측은지심으로 꽂혀진 것이었다. 선생님은 나를 이유 없이 편애하셨다. 이따금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어깨를 두드려 주시기도 하셨다.

 

하루는 나의 일기장을 공개적으로 읽으시더니 교실에서 회초리를 내다버리셨다. ‘선생님의 빨간 몽둥이가 교탁을 탕탕 치면, 내 가슴은 철썩 거리며 파도를 맞는다’는 내용으로 기억된다. 그 정도로 편애를 하시면, 내가 교실에서 온전히 지낼 수 없는 것을 모르셨을까? 나는 그만 왕따가 되어, 공부께나 하는 아이들에게서 버림을 받았다. 아, 그 강력한 편애의 지독한 댓가여!

 

오늘도 내 글은 삼천포로 빠지고 있다. 어머니가 다시 잠꼬대를 하신다. 문을 열고 들여다 보니, 이불을 덮고서 모루 누워 주무신다. ‘아고, 놏 씻곡 해영 제게 장에 가얄 건디(얼굴 씻고 어서 시장에 가야 하는데...)’라는 웅얼거림. 요즘들어 어머니는 하신 말을 자꾸 반복하거나 혼자서 중얼거리는 일이 늘었다.

 

“대포 소식 홑썰 들어점시냐? 부택이 어멍은 백 두 살인디, 아직도 잘 살암신가 이?”라고 반복하여 물으신다. “어머니, 이제는 대포에서 어머니가 제일 오래 살암수다. 지금 백 혼 살이난, 부택이 어멍 추룩 백 두 살꼬지만 삽서 예!. 대통령이 어머니한티 청려장, 저 장수지팽이를 보낼 때는, 그만큼 오래오래 사시랜 헌 거 아니우꽈? 경 허난 맹심해영 비오는 날 감기 걸리지 말곡, 아침밥은 멩심해여 잘 드시곡, 혈압약·치매약도 잊어불지 말앙 꼭 드십서, 예!” 라고 반복한다.

 

요즘은 밤 중에 일어나서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하신다. 요양보호사 교재에는 치매노인의 배회에 대해 낙상이나 신체적 손상의 가능성을 주의하도록 적시해 놓고 있다.

 

대표적인 주의사항은 1)낙상 방지를 위해 안전한 주변환경을 조성한다. 2)치매 대상자의 신체적 욕구를 우선 해결해 준다. 3)단순한 일거리를 주어 배회 증상을 줄인다. 4)집 안에서 배회하는 경우 배회코스를 만들어 준다. 5)낮시간에 단순 일거리를 주어서 에너지를 소모하게 함으로써 야간배회 증상을 줄인다. 6)고향이나 가족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림으로써 정서불안에 의한 배회를 줄여준다. 7)치매 대상자의 주변을 친숙한 것으로 채워주고 가족과 다과 등을 함께 하는 시간을 갖는다(요양보호사 표준교재 p. 460).

 

오늘은 어머니와 함께 대포마을에 가볼까 싶다. 비가 갠 바깥 날씨가 다소 써늘해진 느낌이다. 하지만, 단단히 옷을 입고 자동차에 히터를 틀고서 노래를 부르면서 고향으로 달려가는 거다. 비록 우리가 살던 집은 헐렸고, 그때의 이웃들은 찾아볼 수 없겠지만, 어머니가 알아볼 수 있는 바닷가-큰갯물, 큰녓도, 대시배기, 모살코지 등은 여전하리라. 어제는 반나절 동안 어머니를 혼자 두었으니, 오늘은 외롭지 않게, 혼자서 중얼거리지 않으시게....

 

“바당도 볼고 물도 쌌져(바다도 잔잔하고 물도 썰물졌다). 바릇 카도 조키여(물질 가도 좋겠다)”라는 어머니의 잠꼬대. 언젠가는 어머니의 저 잠꼬대가 그리워질 때가 있으리라. “아고, 부지런들도...” 꿈 속에서 일을 하시는 우리 어머니, 오늘은 생애 최고의 소풍으로 한가롭게 재미지게 지내볼까나...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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