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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가 100년을 살아내셨다 (3)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사람이라면 가슴 뭉클하게 의미가 느껴지는 말이다.

 

아이를 안고 마실을 나갔을 때, 백일과 돌잔치와 명절에, 그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저절로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아닌가.

 

아이가 어엿하게 자라서 동네를 떠날 때까지 이웃들의 따뜻한 시선은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된다. 사려 깊은 언어와 다정스런 미소 없이 어떻게 한 생명을 무사하게 키워낼 수 있었으랴.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구십을 넘기면서부터는 온 동네가 이웃이자 친척이 되어 주었다. 특히 대소사를 맞은 동창생들의 한결같은 ‘어머니 사랑’은 누가 딸인지 헷갈릴 정도다.

 

경조사의 분주한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바지런히 챙기는 손길들.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는 ‘정옥이 어머니 반(몫)’이라면서, 저마다 자기들의 쟁반을 비워줄 태세다. 어디 고기뿐이랴. 떡과 찬을 곁들여서 불룩해진 어머니의 검은 봉지는, 그야말로 사나흘은 족히 먹을 식량으로 거듭난다.

 

십시일반이 이런 기분일까? 친구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은 마트에서 사온 고기와 다른 맛의 감동을 선사한다. “게무로사 다 산 늙은이를 제게 죽으라 아니하고, 이렇게 맛난 것들을 하영도 보냈구나!”라는 감탄과 함께, 흐뭇하게 음식을 바라보시는 어머니. 어쩌면 이렇게 생긴 사나흘이 모여서 어머니의 수명으로 이어졌으리라. 어머니의 집안은 대체로 80대 중반이면 유명을 달리하는 편이다.

 

어머니의 생신을 위해 제주시로 떠나려는 아침. 문득 생신축하 케이크만큼은 내가 마련하고 싶어졌다. 그래도 20년 동안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온 오너십이 있잖은가. 바로 그 특권을 내걸고서, 어머니의 100세 기념 케이크는 내가 맡기로 하였다. 육지에서 내려오지 못한 대신 케이크를 담당하기로 했던 셋째 딸이 어렵사리 양보해준 덕분이다. 이토록 특별하게 몸값이 올라간 케이크를, 어디에서 무엇으로 사는 게 좋을까?

 

고심 끝에 서귀포에서 가장 잘 나가는 브랜드 베이커리에 들렸다. 쇼윈도에 진열된 갖가지 케이크들이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을 골랐다. 면적이 넓은 만큼 장식이 다채롭고 화려해서, 마치 어머니를 위해 누군가 준비해 놓은 조각품 같았다.

 

혹시 케이크에 ‘100세 생신 축하’라고 새겨줄 수 있는지를 점원에게 물었다. “아, 100세나 되셨어요? 축하합니다. 우리 가게에서 100세 손님은 처음이네요. 그런데 글자를 새기려면 하루 전에 주문해야 하거든요...”라는 대화가 오가는 사이, 매장 안쪽에서 친구가 나타났다. “오늘 따라 왠지 가게에 일찍 오고 싶더니, 정옥아, 너를 만나려고 그랬구나.

 

어머니의 백수 기념 케이크, 내가 선물하면 안 되겠니? 너의 어머니는 우리 어머니시잖아!”라면서 얼른 케이크를 포장하는 사장님. ‘아니, 케이크는 내 책임인데...’라며 손사래를 치는 사이, 친구는 벌써 포장된 상자를 들고 문밖으로 나간다.

 

가게 앞에서 딸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친구는 얼른 감싸 안는다. “어머니, 벌써 백 살이 되어수과? 백수 생신, 축하 드렴수다 예! 이추룩 곱게 오래 살아주시난 잘도 고맙수다! 어머니, 오래오래 더 건강하게, 오∼래 사십서 양”하며 눈시울을 붉히는 정애.

 

그녀의 어머니는 오래 전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우리들이 한창 아이들을 키우던 30대에 편찮으셨으니, 마음과 생각만큼 어머니를 돌봐드리지 못하였다. 서귀포에서 부리나케 시장을 보아 허겁지겁 버스를 타고 중문까지 가면, 부리나케 지은 밥을 한 숟갈도 떠드리지 못한 채, 얼른 뒤돌아서 달려와야 했으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저려오는지... 요즘처럼 이 흔한 자가용만 있었어도 밥 몇 숟가락은 먹여드릴 수 있었을 텐데....’라며 지금도 아쉬워하는 딸. 친구는 어머니를 부둥켜안으며 저 멀리 하늘가를 살며시 쳐다본다.

 

사연을 모르는 어머니는 얼떨결에 친구를 얼싸안으며 무슨 일인가 싶은 얼굴이다. “자, 여기를 보세요. 어머니는 케이크 위에 손을 얹으시고, 정애는 활짝 웃어요!”라는 소리에, 어머니는 긴장된 표정으로 사진포즈를 취하신다. 생전 처음 해보는 역할이라, 무슨 일인가 싶으실 게다. 어쩌면 어머니의 일생에서 브랜드 있는 빵집 앞의 기념사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리라.

 

이제는 삶의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금 한 살의 원점으로 돌아오신 어머니. 여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들이 삶의 고비마다 어머니를 붙들어 드렸을까. 어머니가 걸어온 인생길 저편에서 친구들의 손길이 릴레이처럼 이어진다. 오늘 아침 그 바통을 이어받고서 어머니의 딸이 된 정애의 저 사랑 가득한 미소여! 그래, 어린 아이처럼 백세 노인을 위해서도 온 마을이 필요한 거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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