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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아버지의 여름편지

 

요즘 들어 어머니와 벌이는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는 옷 입기와 벗기기다. 입고 또 입고 다시 껴입는 어머니를 상대로 벗기고 또 벗기는 나는 결국 두 손을 들고 만다. 완전한 항복이다. 오로지 안방에 앉아서 입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어머니의 수비 작전에 비해 나는 이방, 저방, 부엌, 마당, 개집, 쓰레기통 등 공격해야 할 대상들이 산재하다.

 

오늘 아침도 어머니는 웃옷 5벌, 아래옷 4벌을 입으시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콩 고르기를 하신다. 하기야 요즘 같은 날씨에 깨·조·고구마 밭에 앉아서 숨이 턱턱 막히도록 헐떡거리면서 김을 매던 일과 비교하면, 선풍기 두 대가 마주 서서 바람을 일으키는 거실에서 하는 소일거리란, 아이들의 소꿉장난에 진배없으리라.

 

아, 새벽같이 밭으로 나가서 불볕더위에 불한당처럼 뒤덮은 잡초들을 뽑다 보면, 온몸이 땀에 절어서 체열과 지열이 합쳐질 즈음 재열(매미)이 목청을 다해 위험을 경고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매앰 매앰 매앰, 지금 당장 땡볕과의 싸움을 중단하고, 어서 이 나무 그늘로 피신하시오. 그러다가 숨이 막혀서 쓰러지거나 죽을 수도 있음을 경고합니다. 맴 맴 맴'라고 급하게 울어대던 그 소리가 얼마나 고맙고 시원하던지.....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어머니를 따라 재빨리 일어나 허리를 펴면, 서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달려와 ‘어서 와, 물때야!’라고 소리치던 바다. 일찌감치 물질 채비를 하고 오신 어머니가 테왁과 망실이를 담은 구덕을 등에 지고 와랑와랑 바다로 달려가면, 뒤따라서 눈썹을 휘날리며 신바람 나게 언덕을 내달리던 우리들의 여름이여!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현재 제주도에는 폭염특보가 발효 중이며,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제주도동부 35도 이상)으로 올라서 가혹하고 지독하게 무덥겠단다. 더욱이 당분간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 열대야가 나타나겠으니 건강관리에 유의하란다.

 

국가기관의 국민에 대한 당부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부터 고장난 우리집 에어컨은 성수기의 대기행렬이 무려 일주일 이상 길어져서 목요일이나 되어야지 담당기사가 방문할 수 있다는 비보 앞에 그저 죄송할 뿐이라고 묵묵부답 고개를 떨구고 있다.

 

어찌할 것인가? 게다가 각종 매체들은 ‘기온이 30∼32도일 때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하여 36도가 되면 30도일 때보다 50% 증가한다. 특히 고령자, 노약자 및 어린이 등이 체력적으로 적응이 힘들기 때문에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며, 65세 이상 노인은 일반인에 비해 폭염에 4배 이상 더 취약하다’라며 오늘은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 한다.

 

이런 날은 집에서 허송세월을 할 수밖에 없을 터. 김훈의 산문집 ‘허송세월’을 펴니, ‘여름편지’란 제목이 가슴을 두드린다. ‘책을 읽다가 눈이 흐려져서 공원에 나갔더니 호수에 연꽃이 피었고, 여름의 나무들은 힘차다. 작년에 울던 매미들은 겨울에 죽고 새 매미가 우는데, 나고 죽는 일은 흔적이 없었고 소리는 작년과 같았다./호수의 물고기들 중에 어떤 놈은 내가 물가로 다가가면 나에게로 와서 꼬리 치는데, 아 저 사람 또 왔구나, 하면서 나를 알아보고 오는 그놈이라고 나는 믿는다/여름 나무들은 이제 막 태어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빛났다. 나무들은 땅에 박혀 있어도 땅에 속박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김훈의 여름 편지는 스스로에게 쓴 것이다. 이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자기에게 편지를 쓰기란, 그만한 저력이 있는 유명 작가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노인의 초입에 서서 깜박거리는 기억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나에게, 편지란 쓰기보다 받을 때가 좋다. 오늘 같은 날 나에게도 편지 한 통 날아든다면, 가슴 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들어올 터이다. 편지를 보내지 않았으니 올 리도 없겠지.....

 

혹여 하는 마음으로 인터넷 바다에 들어가서 낚싯대에 ‘여름 편지’를 드리워본다. 아하, 이혜인 수녀님의 편지가 그분을 닮은 미소를 머금고 살며시 고개를 든다. '움직이지 않아도 태양이 우리를 못 견디게 만드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서로 더욱 뜨겁게 사랑하며, 기쁨으로 타오르는 작은 햇덩이가 되자고 했지?/산에 오르지 않아도, 신록의 숲이 마음에 들어차는 여름이 오면, 친구야, 우리도 묵묵히 기도하며, 이웃에게 그늘을 드리우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고 했지?’라고 속삭이면서.

 

7월 22일 중복을 사흘 앞둔 여름날 정오에 어머니와 나는 선풍기 두 대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거실에 앉아서, 어찌하면 이 더위를 버텨낼 수 있을까 근심스레 서로의 얼굴을 살피면서 눈동자를 맞춰본다. 어머니에게 이 여름은 어떤 의미일까? 혹여 마지막은 아닐까? 요즘 들어 어머니가 뜬금없이 “니네 아방은 어디 가시니?”라고 물으시니, 그때마다 무심한 가슴을 밀치면서 써늘한 기운이 스며든다. 그래 이럴 때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날아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가 볼티모어 공원에 묻힌 지도 어언 22년.

 

그래 아버지가 보내온 지난여름의 편지를 찾아보자. 그동안 모아둔 수십 통의 편지들이 색 바랜 봉투에 담겨서 저마다의 추억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에! 그중에서 유독 봉투가 누렇게 되어 오래된 이야기가 담겨 있을 듯한 게 시선을 끈다. 1988년 소인이 찍힌 아버지의 편지에 낚시 바늘이 꽃혀 있다. 세상에! ‘날 좀 보소’하며 고개를 치켜드는 편지에는 미국으로 이미 가신 직후의 그리움이 뚝뚝 떨어진다. 아, 보고 싶은 우리 아버지.

 

“정옥 앞

어제, 그러니 6월 8일자, 낚시질 갔다 와보니, 어머니가 ‘네가 전화해 왔더라’고 기뻐하더라. 나도 퍽 기뻤다. 고향에서 별 문제가 없다니 다행한 일이다. 이곳도 모두가 잘 지내고 있다. 그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것 뿐이다. (중략).

그런데, 내가 좀 유치한 부탁을 하고 싶구나. 요는 일이 없어서 집에만 있자니 시간이 얼마나 지루한지 힘이 들어 낚시를 가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세월을 보내기 좋으니, 여름 내내 다녀볼 작정이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올 때 제주에서 낚시줄 200원어치를 샀다. 1개 10원이라면서 주인이 세어보지도 않고 그저 집어주는데, 한 50개가 되겠더구나. 이거면 하고서 왔는데, 써보니 너무 쉽게 떨어져 버려서, 여기 걸로 써보니, 아무래도 내 소견에는 한국산만 못하구나. 그러니 네가 미국 올 때, 내가 견본을 보내니, 꼭 이만큼 한 걸로 한 포만 사 가지고 오너라. 한 포가 약 1천원 될 거여. 큰 것도 말고 작은 것도 말고 맞추어 보고서 사기 바란다. 네 앞 길을 우리 하나님께서 늘 지키시고 돌보고 계시기를 믿고 기도한다. 머지않은 시간에 만나서 즐겁게 대화하자. 6.9일, 父 書.”

 

이 편지를 읽어드리는 동안, 눈가에 이슬이 가득하도록 그리움이 가슴 저린 어머니가 편지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리신다. “이 종이도 미국에 갔다 왔구나.....” 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그 편지가 부럽기라도 한 듯 어머니는 한참 동안 쓰다듬고 안아도 보고, 낚시를 소중하게 만져보신다. 아, 부부란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의 화신이로다.

 

“정옥 앞

3일 전 네 편지를 잘 받아보았다. 강씨 사진도 받아서 본인한테 우송했으니 오늘쯤 도착할 것이다. 어머니는 네가 옷을 여러 벌 사서 보내주니 너무도 좋아서 입을 때마다 고마움을 느낀다. 금년 내로 네가 미국으로 와서 원하는 공부를 계속하고, 우리의 기대를 이루어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드린다. 이곳 식구들도 다 평안하고 잘 지낸다. 어머니는 직장(교포가 운영하는 군복 공장)에 나가는 것이 매우 즐거운 것 같다. 미국에도 한 차례 비가 내려서 대지를 푸르게 하여서 한시름 놓게 되었다. 고향 소식을 자주 전하여 주렴. 여기서는 편지라는 불편이 그만저만 아니다. 영준 엄마나 아빠가 차로 가서 부쳐주지 아니하면 아니 되는 형편이니, 그리 알고 고향에서 자주 편지하여 주기 바란다. 내가 온 지 벌써 20일이 지났는데, 네 소식밖에 못 받았다. 서로 언니들한테 연락해서 편지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모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몸이나 편안한지 전해주렴. 네 어머니가 무척 궁금해 하는구나. 다음 소식 기다리며 이만 쓴다.

8월 1일, 父 書"

 

여기서 강씨는 어느 목사님의 소개로 나와 맞선을 보기로 약속된 볼티모어의 교포 청년이다. 무슨 영문인지 내 사진을 받았을 그로부터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학교 내 한국인 교수는 나를 보자 뜻밖의 장담을 하였다. “서른이 넘어서 혼자 유학을 왔다면, 실컷 놀아도 석사는 문제 없을 터. 노는 게 남는 것이다” 그의 예언처럼 1년 4개월만에 MBA(경영학 석사)를 마친 나는 졸업을 하자마자 귀국해 복직하였다. 은행원으로. 이 결정은 내 인생의 가장 잘못된 판단으로 ‘인생에 3번 기회가 온다’는 시쳇말 중 한 번에 해당하는 거였으니.... 인생을 돌아보는 노년에 이르러 나는 솔직해지고 싶고, 청년들에게 나의 실패 사례를 전해주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현안은 어머니와 내가 어떻게 이 무더위를 잘 견뎌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글을 마칠 즈음 어머니는 국수에 옥돔을 얹어서 점심을 완료할 것이다. 어머니는 늘랜내(비린내) 나는 것만 있으면 어떤 장애나 문제도 이겨내고 밥 한 그릇을 뚝딱 드실 수 있다. 해녀 출신인 어머니에게 생선이나 게장은 밥도둑인 셈이다. 부디 오늘도 무사히... 그리고 이 글을 마치고 섶섬 앞으로 나가서 바다에게 여름 편지를 들려줄 수 있기를 빌어 본다. 아버지가 보내주신 여름편지를!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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