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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100세에는 한 치 앞도 모른다 (1)

‘오늘이 며칠이냐?’를 반복하여 묻는 것으로 시작된 어머니의 치매 증상은, 고구마나 감자·과일·떡 등 음식물을 종이에 싸서 이구석 저구석에 꽁꽁 숨겨두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의 방을 대청소하다 보면, 언제 적 것인지 모르게 새까만 곰팡이를 뒤집어 쓴 것들이 발각되곤 한다.

 

어떤 것들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가 없어서, ‘요양원 주간보호에서 나눠준 음식물인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선생님이 빵이나 과자, 떡 등을 나눠주셨을 것이고, 어머니는 일부러 아껴 먹다가 슬며시 얼마쯤은 호주머니에 넣고 오셨으리라.

 

어머니의 어렸을 적 첫 기억이, 두 살 위 오라방의 손을 잡고서 이웃집 초상집에 밥 얻어 먹으러 갔던 것이라니...얼마나 음식에 대한 부족이나 염려가 일상적이었으랴. 또한 나의 달콤하고 비밀스런 기억 또한, 어머니께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계를 하고 오셔서 살짜기 내 손에 쥐어주시던 사탕 두 알이 아니던가.

 

나만의 그 은밀한 비밀을 안고서, 하나 둘 곯아떨어지는 언니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던 그 겨울밤의 독서라니... 사실 책이야 흉내에 불과했고, 끄덕끄덕 거리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어머니의 발 기척에 용케도 눈을 부릅떠서 얻어내던 성취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속아준 어머니도 양보해 준 언니들도, 다 나의 그 얕은 속내를 들여다 보았음이 분명하다.

 

최근들어서는 아무데나 침을 뱉어 버리거나 손으로 쓰윽 훔쳐서는 슬쩍 앉은 자리 주변에 칠해버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 그렇게 침을 아무데나 뱉으면, 요양원에 보냅니다”라고 잔소리를 한다. 아니 공갈이나 협박에 가까운 큰소리를 친다. 처음에는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하다’라는 생각이 들더니, 자주 하고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일상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정작은 요양원에 보낼 생각도 없으면서, 그저 다시는 못하도록 겁을 주려고 한 것 뿐인데.... 가끔은 ‘이러다가 요양원에 가시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인다. 그만큼 치매증세가 다양해지고 깊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두루마리 휴지를 잘라서는 두툼하게 말아서 입는 옷의 주머니들마다에 불룩하게 집어넣는 것이다. 웃옷과 바지에 집어넣은 휴지를 다 빼면 한 손에 쥘 수도 없을 만큼 제법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정도라면 입고 다니기가 불편하지 않을까 싶다.

 

가끔은 세탁할 때 빼내지 못한 휴지가 모든 빨래에 허연 가루로 묻어서, 털어내거나 다시 세탁기를 돌리게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어머니의 휴지는 늘상 앉는 의자의 방석 밑에도, 거실의 쇼파 속에도, 잠자는 자리의 머리 맡이나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바구니에도 가득하다.

 

휴지가 얼마든지 있으니 이렇게 미리 숨겨놓지 않아도 된다고... 두루마리째 드려보기도 하고, 아예 비닐 포장 전체 묶음을 통째로 방 구석에 놓아도 보지만, 별반 소용이 없다. 주위에 물어보니, 휴지는 치매현상의 대표주자인 듯, 다른 할머니들도 사정이나 정도는 다르지만, 휴지를 챙기시는 게 습관적이시란다.

 

어머니는 왜 이렇게 휴지에 집착하시는 것일까? 미국에 사실 적에 잠깐 청소회사에 다니신 적이 있다는데... ‘그 때문일까?’ 하는 생각이 들면 코끝이 찡 하니 슬퍼지기도 한다. 아무리 치매로 하는 행동이라지만 엉뚱하게 근거도 없이 그러시랴 싶으면, 어머니의 고단하고 힘들었던 일생이 그려져서 와락 부둥켜 안고 울게도 된다.

 

이따금 마당에 있다가 소변기가 느껴지면 집안의 화장실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휘둘러보다가 적당한 구석에 가서 볼 일을 해결하시는 어머니. 평생을 들이나 밭에서 일을 하시거나 바다에서 물질을 하셨으니, 어머니가 마당에서 소변을 보는 일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그래도 아직은 스스로 대소변을 가리시고, 이따금 기저귀가 불편해지면 갈아입기도 하시니, 백세로서는 대단히 잘 살아내시는 편이리라. 그럼에도 작은 치매증상마다 ‘다시 또 이러면 요양원에 보냅니다’라는 말이 반복되다 보니, 요즘은 이러다가 요양원에 가시게 되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감이나 죄책감이 불거지기도 한다.

 

‘나 죽어도 요양원에는 보내지 말아달라’는 게 어머니의 유일한 소원이 아니신가. 어쩌면 요양원에 가시느니, 더 나빠지기 전에 집에서 눈을 감고 싶으신 걸까? 나날이 불친절하고 지쳐가는 내모습이 어머니의 가슴에 이미 대못을 박아놓은 건 아닐까...

 

지난 주에는 주간보호에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간식도 점심도 드시지 않고 그저 눈을 꼬옥 감고 주무시기만 한다고. 이름을 불러도 대답을 않으시고, 눈을 뜨시라 해도 반응이 없다고. 부리나케 요양원으로 달려갔다.

 

안 그래도 이 여름철 장마 기간이 노인들에겐 가장 위험한 계절이라는데..., 어떻게든 이 때는 지나가야 할텐데.... 새벽마다 내가 드리는 어머니를 위한 기도가, ‘우리 어머니 이제 백세를 사셨으니, 이 여름을 잘 보내고, 가을이 깊어져서 만물이 추수될 때, 가을바람을 타고 편안하게 천국 가게 해주소서’인데... ‘우리 어머니는 정신력이 대단해서 아직은 큰 일이 없을 거야...’라고 마음으로 기도하고, 소원하고, 바램을 되씹으면서 과속으로 질주했다.

 

주간보호 직원의 팔에 매달려서 현관으로 나오신 어머니는, 말 그대로 눈을 감으신 채 전신이 축 늘어져 있었다. 어머니를 오랫동안 맡아 온 직원은 ‘아무래도 이번은 어려울 것 같아서 연락드렸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 정신 차리세요. 눈을 떠봅서, 나 정옥이우다”라고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서 어머니를 덥썩 안은 나. 그래도 여전히 눈을 감고 축 늘어진 채 마치 무거운 짐처럼 몸을 맡기시는 어머니. 아, 생각보다 어머니의 상태가 위중해 보였다.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 어머니가 늘상 가시는 병원으로 냅다 달렸다. ‘오, 하나님, 아직은 아닙니다. 이렇게 무더운 계절은 지나가야 합니다...’라고 부르짖으면서.

 

병원에 도착해서도 어머니는 눈을 뜨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오랫동안 살펴 온 간호사는 첫눈에 ‘어렵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어머니를 격려하고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의사 또한 심각한 얼굴로 어머니의 얼굴을 살폈다. 얼마나 눈꺼풀이 무거우면 그렇게 신뢰하는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에도 눈을 뜨지 못하실까.

 

그래도 의사 선생님은 침착하게 어머니에게 말도 걸어보고 여기저기 만져보기도 하였다. ‘입원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걸로 봐서, 상태를 위중하게 보는 것 같았다. “선생님, 죄송하지만, 우선 우리 어머니, 링겔 좀 놓아주시면 안될까요? 평소에도 늘 생각해 오던 일인데, 우리 어머니, 링겔 아주 좋은 것으로 꼭 맞혀드리고 싶습니다...”

 

다행히 의사선생님도 선선히 동의를 해주셨다. 주사실로 옮겨간 어머니는 3시간 가까이 링겔을 맞는 동안, 초지일관 눈을 감고 주무시기만 하였다. 불안한 마음에 숨을 제대로 쉬시는가 코 끝에 귀를 대볼 정도로 움직임이 없었다. 다소 차이가 있다면 얼굴 표정이 좀 더 편안해진 것 같았다. 침대가 3개인 주사실은 다양한 유형의 환자들이 교대로 들어와서 주사를 맞고 나가기를 반복하였다.

 

다행히 커튼으로 가려진 어머니의 침대는 복잡한 주사실의 맨 구석에 자리하였다. 그 와중에도 틈틈이, 나는 주사실 바깥에 놓여진 의자에 앉아서 어느 기관의 업무 평가서를 읽는 요령을 피웠다. 마음이 편안하게 가라앉는 게 이번에는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기에....

 

한 방울의 마지막 액체조차도 어머니의 혈관 속으로 스며들도록 소중하게 링겔을 다루는 간호사의 손 끝에서 정성과 배려, 그리고 행운이 느껴졌다. 주사를 다 맞은 어머니는, 참 ‘기적이 이런 건가’ 싶게 눈을 뜨셨다. 그리고는 ‘집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나 또한 ‘병원보다 집이 어머니에게는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으므로, 안도의 한 숨을 쉬면서 과감하게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과연 강인한 제주도의 해녀 할망이었다. 손자가 주문한 치킨도 몇 조각 드시고, 수박이나 죽도 싫은 내색 없이 잘 드시는 것 같았다. 안심이 되었다.

 

이튿날 아침, 요양원 주간보호에서는 시간 맞춰 차가 왔고, 어머니는 일상대로 봉고차를 타셨다. 마치 말을 잘 알아듣는, 착한 유치원생처럼. 이러한 일상이 행복임을 느끼면서, 나는 오랜만에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니 두팔을 들어 힘차게 내둘렀다. 어머니, 힘내세요! 이 여름, 꼭 이겨내세요!! 고맙수다, 어머니!!!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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