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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아직은 그 강을 건너지 마세요 (1)

내가 얼마 안 남았다. 올해 들어 어머니가 자주 내뱉으시는 혼잣말이다. 하기야 100세의 육신, 그 무거운 장막을 지고 사시니..., 얼마나 힘이 드실까. 걷는 것, 아니 움직임 자체가 고역이지 않겠는가. 더욱이 ‘홀로 나이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참으로 쓸쓸하고 외로울 것이다.

 

고향마을 대포(큰개)에 조카 제이가 있을 때는, ‘대포’라는 소리만 나와도 어머니의 얼굴에 햇살같은 웃음꽃이 번졌다. 가끔은 제이가 참기름이나 소라꼬지, 자리젖 같은 것을 가지고 어머니를 찾아 왔는데,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외치는 첫 마디가 언제나 똑같은 레퍼토리였다.

 

“고모님, 그동안 잘 이십디강? 대포 부택이 어멍은 백두살이라도 온 동네 돌아댕기멍 정광허게 살암수다. 경 허난, 고모님도 꼭 백두살꼬지만 아프지 말곡, 효도 받으멍, 재미나게 사십서, 예!”라고.

 

조카의 말이 사실대로인지, 그냥 고모가 들으라고 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의 응답이 메아리쳐 울린다.

 

“니가 이추룩 놀래만 와준댄 허민, 무사 백 두살꼬지만 사느니? 백 세살꼬지라도 오래오래 살아사주!” 바로 이 때부터 어머니의 목소리에 활기가 스며들고, 얼굴에도 천진스런 웃음기가 번지기 시작한다. 이어서 약천사 앞의 배튼개나 큰엿도 바당을 주름잡던 왕년의 무용담이 터져 나온다.

 

물질에 관한한 조카보다 한 수 위였던 어머니는, 대상군은 아니어도 상군 중의 상군이었다. 하기야 좀수들 중에 당신이 스스로 ‘나 물질을 잘하노라’고 큰소리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머니도 늘, “일등은 못해도 중간은 했져!”라고 하시는데, 사실인 즉 남들에 비해 못하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잘했다는 얘기다.

 

가끔은 어머니가 대포마을 제이네 집에서 이삼일씩 머물다 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사는 게 뭣 산디...’라며 유감스런 속내를 드러내곤 했다. “게무로사 삼춘이 오랜만이 가신디, 동새배기 밭으로 돌곡, 바당으로 돌곡...밥도 혼 적 같이 못 먹곡... 게무로사 경 안 허민 삼시 세끼 못먹엉 살카....” 워낙에 부지런한 조카라, 해 뜨기 전부터 동분서주 일하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어쨌든 그 조카마저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에게 고향은 ‘먼 그대’처럼, 생각나기는 하지만 다가서기가 쉽지 않은 곳이 되고 말았다. 또한 부택이 어멍 소식도 더 이상은 들을 수 없게 되었고, 어머니가 아는 누구가 얼마쯤 살아 있는지도 모를 일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제이가 없는 고향은 사무치게 그립지만 머물 데가 없는 곳, 현재하고 있지만 과거에 묻혀버린 공간이다. 그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하고, 쓸쓸하실까.

 

또한, ‘내가 얼마 안 남은 것 같다’는 말은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아프다는 뜻이리라. 지난 주에는 꺼져가는 촛불처럼 임종을 예감케 하는 징후들이 한꺼번에 발생하였다. 무엇보다도 밥을 보면 아예 고개를 돌리면서 역정을 내시는 게 큰 일이었다.

 

하기야 기력이 없으시니 식탁에 앉는 것조차 고역이리라. 식음전폐까지는 아니지만, 음식섭취의 의지가 없으시니 기력은 더 떨어지고, 기운이 없으니까 자꾸만 눕게 되는 것이다. 어머니처럼 연로한 100세 노인에게는 이러한 악순환은 생사의 기로에서 앞을 막는 절벽과 같은 게 아닌가.

 

그러므로 어머니가 좋아하실 듯한 음식들을 이것저것 마련해서 권해보고, 못 먹겠다는 걸 집요하게 다시 먹여본다. ‘치매이니가 아까 일도 잊어버렸는지 누가 알랴’하는 궁여지책으로 반복을 시도해 본다. 싫다고 고개를 돌리면 달래도 보고 을러도 보는데, 식사 때가 되면 하루에 세 번씩 전쟁을 치룬다.

 

다행히 ‘게장’이라는 비밀병기가 있어서 그나마 아침에는 저절로 입을 벌리게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입에 겨우 넣어드린 음식을 한동안 우물거리다가 돌연히 뱉어버리면, 그동안 애쓴 보람이 허무해진다.

 

사실, 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 의하면 섭취감소, 식음전폐, 삼킴곤란, 뱉어내기 등은 임종에 가까운 노인들의 총체적인 음식증후군들이다. 이 중에서도 삼킴의 문제는 ‘연하장애(嚥下障礙)’라 하는데, 음식물이 구강에서 식도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음식을 원활히 섭취할 수 없는 증상이다.

 

식사시에 음식물이 목에서 잘 넘어가지 않거나 사레가 자주 들리거나, 기침이 잦으면, 이 증상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예는 음식물이 식도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로 넘어가는 것인데, 이런 증상이 계속되면 폐에 염증이 생겨서 폐렴으로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노인들의 사망원인 3위가 폐렴인데, 연하장애가 그 원인인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치매노인에게 식사를 제공할 때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다음과 같은 식사돕기의 기본원칙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1)의치가 잘 맞지 않으면 음식을 삼킬 때 의치가 기도로 같이 넘어가거나 기도를 막을 수 있으므로 잘 고정되어 있는지 확인한다. 2)그릇은 접시보다 사발을 사용하여 덜 흘리게 하고, 투명한 유리제품보다 색깔이 있는 플라스틱 제품을 쓴다. 3)음식은 잘게 잘라서 부드럽게 조리하여 쉽게 먹을 수 있게 한다. 4)식사 전에 음식의 온도를 미리 확인하고, 졸려하거나 초조해하는 경우 식사를 제공하지 않는다. 5)비닐 식탁보나 식탁용 매트를 깔아주고, 턱받이보다 앞치마를 입혀 옷을 깨끗이 유지한다. 6)소금이나 간장과 같은 양념은 식탁 위에 두지 않으며, 당뇨병·고혈압 등으로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하는 경우에는 해당음식을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둔다. 7)씹는 행위를 잊어버린 노인에게는 질식의 위험이 있는 사탕·땅공·팝콘 등은 삼가고, 잘 저민 고기·반숙한 계란·과일 통조림 등을 갈아서 제공한다. 8)물과 같은 묽은 음식에 사레가 자주 걸리는 경우에는 좀 더 걸쭉한 액체음식(예:요거트)을 제공한다. 9)숟가락으로 떠먹이는 경우에는 한 번에 조금씩 먹이고 음식을 삼킬 때까지 충분히 기다린다. 10)식사를 잘 하지 않아서 체중이 감소하면 의료진에게 알리되 특별한 원인이 없으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나 걸쭉한 형태의 고열량 액체음식을 제공한다.

 

이상의 10가지 외에도 치매노인에 대한 식사돕기의 기본 원칙과 방법, 유의사항 등이 다각적이므로, 어머니와 식탁에서 벌이는 ‘먹이기와 먹지 않기’의 밀고 당기기는 사활을 건 싸움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 이추룩 안 먹으민 죽을 수도 이서, 예! 먹지도 안 허는디 살아날 장사가 세상에 어디 이시쿠광? 잘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댄 허는 말이, 게무로사 그냥 겁이나 주젠 해보는 헛소리카 마씸? 잘 생각해 봅써, 어머니! 잘 먹는디 죽는 사람 보십디강? 먹음만 허민 당연히 살주 마씸. 경 허난, 어서 이거 한 숟가락만 먹어봅서!”라는 협박이, 요즈음 우리집 식탁에서 벌어지는 일상사다.

 

게다가 눈에는 눈꺼풀 같은 막이 얇게 뒤덮혀 있어서, 눈의 정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니 눈맞춤이 여의치 않다. 어쩌면 보이는 것 자체가 안개속의 희미한 물체이니 차라리 눈을 감는 것인지..., 하루 종일 그저 조시는 게 일이다.

 

그야말로 서귀포 출신 김광협 시인이 쓴 ‘유자꽃 피는 마을’의 백발을 인 조모님을 닮았다. ‘내 소년의 마을엔 유자꽃이 하이얗게 피더이다. 유자꽃 꽃잎 새이로 파아란 바다가 촐랑이고, 바다 위론 똑닥선이 미끄러지더이다. 툇마루 위에 유자꽃 꽃잎인 듯 백발을 인 조모님은 조을고 내 소년도 오롯 잠이 들면, 보오보오 연락선의 노래조차도 갈매기들의 나래에 묻어 이 마을에 오더이다.’라는 시는, 요즘들어 보면, 유독 ‘유자꽃 꽃잎인 듯 백발을 인 조모님’이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늙으신 몸이 얼마나 약하고 작아졌으면 난간 위에 떨어진 꽃잎으로 묘사되었을까. 우리가 서로를 대면하여 마주볼 수 있음이, 그저 눈으로도 마음을 읽고 욕구를 파악할 수 있음이, 어쩌면 살아 있음의 축복이요 지상의 은혜가 아닐까 싶다.

 

한편, 간호사들이 토로하는 ‘노인 임종 경험’에 의하면 임종노인들은 섭취감소, 식음전폐, 삼킴곤란, 뱉어내기 등을 나타내면서 전반적으로 허약해져 간다. 우선 눈에 눈꺼풀 같은 얇은 막이 하나 끼고, 점차 의식도 저하되면서 활력증후도 조금씩 약화된다. 대부분 깊은 수면처럼 주무시다가 서서히 호흡이 느려지면서 어느 순간 호흡이 멎는데, 이 과정은 마치 서서히 꺼져가는 촛불과 같은 느낌이다.

 

그러므로 간호사들은 꺼져가는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위에서 언급된 임종징후들이 보이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생명을 붙잡기 위해, 소위 전력투구를 다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일념에서 호흡유지와 영양공급에 집중한다. 생명연장을 원하지 않는 보호자가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처치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보호자 모르게 식이를 공급하고, 지속적으로 활력징후를 측정하며, 간호사실 가까이 환자를 옮겨 놓고 신체 상태를 관찰하기도 한단다.

 

호흡곤란이 생겨서 이제는 좀 힘들겠다 싶을 경우에는, 간혹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보호자들도 있다. 그래도 간호사들은 살리는 게 자기들의 도리요 사명이므로, 보호자 없는 시간에 몰래 먹인다든지, 주사기로라도 어떻게든 먹여보려고 애를 쓴다. 마지막으로 해야될 일이란, ‘무조건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집의 경우에도 2남 7녀의 자녀들간 어머니의 임종대응에 대해 생각들이 약간씩 다르다. 백세를 사셨는데, 이제는 편안히 가시도록 ‘병원치료를 하지 말자’는 의견과 그래도 ‘최선을 다하는 게 도리’라는 견해가 반반이다.

 

그 중에서 미국에 사는 형제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자녀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보지 않으면 부모 자식 사이도 멀어지는 것일까 싶어 은근히 섭섭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아니지, 오죽하면 그러겠어. 어떻게 해드릴 수 없으니까, 할 말도 못하는 게지. 더 애가 타고 간이 녹겠지...

 

그러므로 형제들의 마음을 모아서 결정한 나의 입장은, 산소공급을 위해 코에 호흡기를 달거나 음식투여를 위해 튜브를 연결하지는 않지만, 어떤 경우에든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다. 하기야 의식이 있을 때마다 ‘정옥아, 나 살려도라’고 하시니, 어머니의 요청대로 하는 게 도리가 아니겠는가.

 

사실, 삶에 대한 어머니의 의지는 호흡이 어려울 때마다 가정용 간이 호흡기를 쓰고서 온 힘을 다해 산소를 흡입해 보려는 모습에서 확인이 된다. 기운이 없으니 산소를 빨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내쉬기만 하는 어머니와 내가 벌이는 사투는,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죽음과의 전쟁이다.

 

“어머니, 물질헐 때 추룩 호이〜 허멍 숨을 들이킵서. 바당에서 숨이 그차지게 숨비질 해영 나올 때, 해녀 삼춘들 다 어떵 헙니까? 호〜오이, 호〜오이 허멍 이신 힘을 다 해영 숨을 들이싸지 예? 살아나젠 허민 어머니도 어서 그 들숨을 들이켜야 됩니께!”라고 숨이 가쁘게 어머니를 다그치는 나. 끊어지는 숨을 쉬어 보려고 호흡기에 대고 헉헉거려 보지만 들숨 대신 날숨만 바람 빠진 풍선처럼 새어 나오는 어머니.

 

이 순간은 김종두 시인의 ‘사는 게 뭣 산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진다. ‘태왕난 명줄, 그 지럭시 몰랑 사는 우리네 인생. 올디 갈디 어신 막은 창에 와 이시멍도, 그걸 몰랑 감장도는 이 노릇 어떵 허리. 아, 사는 게 뭣 산디.’ 그래, 사는 게 무엇이기에, 나는 어머니의 목숨 줄을 부여잡고 이리도 안간힘을 쓰고 있는가.

 

사실, 사람의 임종 모습은 지상에 살아 있는 사람 수 만큼이나 다양할 것이다. 우리 시어머니의 경우에는 어느 날 곡기를 딱 끓으시더니, 마치 작정이라도 하신 듯 본격적으로 주무시기만 하셨다. 연락을 받은 장남이 와서 보더니, 임종하시려는 것 같다며 ‘어머니’를 큰 소리로 불러보았다. 들은 척도 안하시고 그저 못 다 잔 잠을 실컷 자시려는 듯 편안한 모습으로 계속 주무시기만 하는 어머니.

 

그렇게 나흘째 되던 날,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호흡이 점차 약해지더니, ‘푸우〜’ 하면서 세 번의 긴 호흡을 하시고는 숨을 거두셨다. 평화로운 임종이었다. 6.25 때 피난 와서 정착하신 부산의 대청동 산 94번지, 장사하시던 국제시장이 멀지 않게 내려다보이는 당신의 집에서 자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셨으니 말이다.

 

기독교의 장례식에서는 임종한 이를 발인할 때,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으로 성도를 환송하면서,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찬송을 부른다. 여기에서 요단강은 이 땅에서 작별한 성도를 하늘에 올라가 만날 때 건너가야 하는 강을 말한다. 그러므로 요단강을 건넌다는 말은 죽음을 뜻한다.

 

언젠가는 어머니도 그 강을 건너가실 것이다. 물론 나도 그 강을 건너서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그 강의 이쪽 강둑에 앉아서 붉게 물든 저녁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두 손을 꼬옥 잡고서 서편 하늘에 별이 총총 뜨기를 기다리면서....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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