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를 간병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이 건너야 할 어둠의 긴 터널’이다. 게다가 때로는 10년 이상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혼자서 그 짐을 짊어지려고 해서는 안된다. 가급적 다른 가족들의 관심과 도움을 최대한 이끌어 내서 독박돌봄의 무거운 짐을 나눠 져야 한다. 더불어 주간보호, 방문요양, 요양병원, 요양원, 간병인 등 가능한 사회적 지원도 모두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간병은 무겁고 힘겨운 여정이다. 오죽하면 노인의 경우는 ‘죽어야 끝나는 전쟁’이라고 하겠는가. 어머니를 모셔온 지 20년이다. 아니, 처음 10년은 어머니가 우리를 돌봐주셨다. ‘아이들을 돌봐주면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아들을 위해, 나이 65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신 지 17년.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어머니는 나를 붙좇아 고향으로 돌아오셨다. 당시 81세의 어머니가 지금은 100세가 되셨다. 어머니를 돌보는 것은 보통 자식의 의무로 이해되지만, 나의 경우는 어머니의 권리라 해야 맞다. 어머니는 일찌감치 10년 동안 나로부터 ‘돌봄 받을 권리’를 저금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늘 ‘고맙다, 미안하다’를 입에 달고 사신다. 96세에 대퇴부골절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
치매는 알기 쉽게 표현해서, 정신이 나가는 병이다. 영어로는 디멘시아(dementia)라 한다. 라틴어 de(~로부터 나간)+mens(정신)+ia(상태)의 합성어다. 다소 점잖게 표현하자면 ‘정신이 없어진 상태’라고나 할까. 신이 내린 가장 가혹한 형벌이 ‘기억의 유실’이라는 말 그대로, 정신이 나가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선 자신의 인생 목적을 알지 못하므로 잠시도 인생길을 제대로 운전할 수가 없어진다. 삶에 대한 결정권도 없으므로 주변 사람들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의 삶도 피폐하게 만든다. 결국은 집을 떠나 요양원으로 보내지고 만다. 요양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요, 인생행로의 종착지가 된다. 우리나라가 고령 사회로 접어들면서 치매환자 또한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이 실시한 치매극복 연구개발사업(2019)에 의하면 국민은 치매를 가장 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질병으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인구고령화에 따른 치매환자 및 사회적 비용 급증으로 국가 재정부담 또한 심화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치매를 의료비 지출(34.3%), 환자·가족의 고통(54.8%), 발병원인과 치료
가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 어떵허난 백살꼬지 살아점신고, 이?” 곰곰이 어머니의 일생을 헤아려 보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서, 오래 사시라는 주위의 돌봄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길까? 아마도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까지 고려한다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헤아려보면, 어머니에게도 수많은 죽음의 위기들이 있었다. 17세부터 육지로 원정물질을 다니면서 60이 넘도록 해녀를 하였으니, 더 말하여 무엇하랴. 내 고향 대포마을에서도 물질을 하던 중 익사한 경우를 여러 번 보았다. 어머니의 조카인 종택이 어멍은 물질하던 중 숨이 다해서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제이는 물질을 마치고 나오다가 성창에서 발이 미끄러져 익사하였다. 그리고 달문이 삼춘은 ‘물 소굽에서 밥을 해영 먹어사 나오주’라는 소리를 듣는 대상군이었지만, 어느날 물 속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지금 살고 있는 보목마을도 마찬가지다. 섶섬 앞에서 물질하던 해녀가 지나가던 배의 스쿠루에 걸려서 죽는 사고가 있었고, 태왁만 남긴 채 사라진 해녀가 거센 조류를 따라 지귀도에서 발견되
가끔 어머니가 혼잣말처럼 하는 소리가 있다. “나, 어떵허난 백살꼬지 살아점신고, 이?” 곰곰이 어머니의 일생을 헤아려 보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죽음의 위기를 넘겨서, 오래 사시라는 주위의 돌봄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요즘들어 어머니가 기운이 통 없으시다. 이 여름을 무사히 지나실 수 있을까.... “나, 이젠 다 살아진 모양이여”라며 물끄러미 내 얼굴을 쳐다보시는 어머니. 눈가에 촉촉이 물기가 배어 있다. ‘눈이 정신’이라는데, 어머니의 눈동자가 많이 흐려지셨다. 안개가 자욱한 시선에는 ‘나 좀 살려 달라’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이제는 기력이 다하신 게다. 100살이 아니신가. 하지만 ‘대포 부택이 어멍은 102살이라도 정정허게 돌아다념잰 호여라만은...’이라며 말끝을 흐리시는 어머니. 마저 끝마치지 못하고 흐려지는 말의 여운에는 더 오래 사시고 싶으신 갈망이 담겨 있다. 그래, 우리 어머니, 더 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시어머니와 시할머니, 두 분 시어른을 지성껏 봉양하고 임종을 지켰으니, 하늘의 이치대로라면 장수의 복을 받으실 게 분명하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애굽기 2
백 세 어머니는 한 살 아이와 같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기저귀를 간다. 그저 차이가 있다면, 늘상 하는 일임에도 항상 불편하신 거다. ‘네가 며느리가 아니고 딸이라서, 나는 참 복이 많다’는 말 속에 그러한 속내가 담겼다. 이어서 옷을 갈아입힌다. 그냥 두면 바지도 몇 개씩 껴입고, 양말도 보이는 대로 다 신고 만다. 다섯 켤레를 신고서 하루를 보내신 적도 있다. 윗옷은 아무리 입어도 모자랄 정도로 보이는 족족 걸치신다. 어떻게 그러고도 걸음을 걸을 수 있을까 싶은데..., 추운 것보다는 무거운 게 나으신가 보다. 노상 추위를 호소하는 어머니는, 손도 발도 만져보면 생각보다 서늘하다. 오늘 아침에도 식사를 마치고 요양원 봉고차를 기다리는 사이, 어머니의 두 손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이 손으로 밭일, 논일, 바당일에 한라산 고사리까지 꺾으면서 우리 2남7녀 9남매를 키워주셨구나. “어머니, 오늘도 차 조심허곡, 멩심해영 잘 다녀옵서예. 어머니가 오래 오래 살아사, 우리 모두 기십나곡, 손지들도 훌륭헌 사람들이 될 거우다 예!”라고 언제나 같은 소리로 장수의 사명감을 당부하는 나. “아고 니 손은 무사 영 또똣허니게. 고맙다 이! 고맙다.”라
어린 시절에, 말하자면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나는 부모님과 한방에서 지냈다. 2남7녀 중 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떠난 두 언니를 그리워할 여유도 없이, 우리 7명은 17평짜리 초가에서 영토전쟁을 벌였다. ‘한라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모처럼 큰집을 지었다’는 큰언니의 건축소감이 무색하도록, 집은 비좁고 복잡하였다. 부엌과 연결된 안방과 마루를 사이에 두고 남향의 사랑방은 장남 차지가 되었다. 오빠는 마을에서 보기 드문 대학생이었다. 나머지 두 개 방 중 하나는 증조할머니 차지였다. 93세 할머니는 몸이 어린아이처럼 작았다. 우리 중에서 비교적 무게감이 컸던 셋째 딸이 자원하여 할머니의 룸메이트가 되었다. 나머지, 부엌과 인접하여 자질구레한 생활도구들이 미리 진을 치고 있던 방으로 넷째와 다섯째 딸이 들어갔다. 그리고 나와 동생은 더 고민할 것도 없이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안방에 체류하게 되었다. 갓난아기인 막내아들을 포함해 다섯 명이, 밤이면 또 다른 가족이 되어서 한 덩어리를 이루었다. 나는 주로 어머니 발밑으로 들어가, 한 발을 인형처럼 붙들고서 꿈나라 여행을 하였다. 40대 중반의 어머니에게서는 달작지근한 살 냄새와 땀이 밴 열기가 느껴졌다. 어머니 냄새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어린애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이 점에 대해 전문가들 또한 ‘삶의 여정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유아는 삶의 끝자락으로 여행 중인 노인과 육체적·정신적으로 비슷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식사·취침·목욕·용변 등 일상생활에서 보호자의 돌봄이 필요다. 백 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나로서도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다. 어느 날 한밤중에 어머니께서 베개를 안고 우리 방으로 오셨다. ‘무서워서 도무지 혼자 잘 수가 없다’시면서. 그 모습이 꼭 ‘엄마와 함께 자겠다’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92세쯤 되셨을까? 그즈음에 어머니는 부엌의 가스 불을 끄지 않아 냄비를 태우거나 ‘이러다가 집을 태울 수도 있겠다’ 싶은 상황을 드문드문 만드셨다. 화재보험에 가입하고, 수시로 부엌을 점검하다가, 결국은 취사도구를 정리했다. 우리와 함께 사신지 10년만의 일이다. 81세에 17년간의 미국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오신 어머니는, 혼자서 부엌을 쓰고 싶어 하셨다. 당신이 좋아하는 자리젓, 마농지, 비린내가 많이 나는 생선조림, 옛날 냄새가 진동하는 재래식 된장국 등을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드시면서 여생을 제주도 식으로 보내보리라’는 뜻이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생활속담 중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아이를 낳고 키워본 사람이라면 가슴 뭉클하게 의미가 느껴지는 말이다. 아이를 안고 마실을 나갔을 때, 백일과 돌잔치와 명절에, 그리고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지나면서 저절로 맞닥뜨리게 되는 일이 아닌가. 아이가 어엿하게 자라서 동네를 떠날 때까지 이웃들의 따뜻한 시선은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된다. 사려 깊은 언어와 다정스런 미소 없이 어떻게 한 생명을 무사하게 키워낼 수 있었으랴. 마찬가지로 어머니가 구십을 넘기면서부터는 온 동네가 이웃이자 친척이 되어 주었다. 특히 대소사를 맞은 동창생들의 한결같은 ‘어머니 사랑’은 누가 딸인지 헷갈릴 정도다. 경조사의 분주한 상황 속에서도 어머니가 드실 음식을 바지런히 챙기는 손길들. 특히 어머니가 좋아하는 돼지고기는 ‘정옥이 어머니 반(몫)’이라면서, 저마다 자기들의 쟁반을 비워줄 태세다. 어디 고기뿐이랴. 떡과 찬을 곁들여서 불룩해진 어머니의 검은 봉지는, 그야말로 사나흘은 족히 먹을 식량으로 거듭난다. 십시일반이 이런 기분일까? 친구들이 벌이는 한바탕 소동은 마트에서 사온 고기와 다른 맛의 감동을 선사한다. “게무로사 다
우리 어머니의 100세는 만 나이가 아니라서 대통령의 지팡이를 기대할 순 없는 노릇. 어떻게 하면 청려장처럼 깜짝 선물을 어머니에게 전해드릴 수 있을까? 3월이 되면서부터 시작된 이 고민은, 막내딸이 자기 손으로 생신상을 차리고 싶다는 말로써 일거에 해결됐다. ‘어머니의 생신축하 현수막을 아파트 입구에 내걸면 어떨는지... 백세라면 오가는 사람들도 축하의 미소를 보내주지 않을까요?’라는 아이디어와 함께. 그래, 어머니의 이름이 김성춘(金成春)이니, 봄을 이루는 새싹과 햇살, 때늦은 유채꽃과 벚꽃들도 축복의 퍼레이드를 펼쳐줄거야! 우리는 모두 막내의 제안에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동생이 디자인한 사진 속에서 어머니는 엘리자베스 여왕보다 더 행복한 웃음으로 천진난만하게 세상을 바라보신다. 오, 딸들이 무색하도록 저리도 고우신 어머니의 백세 미소라니! 어머니가 100년을 살아내셔서 가장 기쁜 자식은 누구일까? 아마도 막내이리라. 오래전, 오십을 훌쩍 넘긴 큰언니가 어머니에게 떼를 쓰는 것을 보면서 내심 부러워한 적이 있다. 아, 내가 언니 나이쯤 되었을 때도 어머니가 저렇게 언덕이 되어줄 수 있을까? 첫째인 큰언니와 일곱째인 나 사이에는 14년의 터울이 있다. 막내
새 연재를 시작합니다. 허정옥 전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 이사장의 ‘어머니의 100세 일기’입니다. 고령화=장수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의술의 발전으로 우리 삶이 연장되긴 했지만 그만큼 삶이 더 풍요로워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장수인생이 꿈이라지만 우리 사회는 우리 노년의 삶을 보장할만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허 이사장의 어머님, 그 분의 삶을 빌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다시 성찰하고 미래 한국사회 노년의 삶을 다시 점검해봅니다./ 편집자 주 오늘은 어머니의 생신이다. 1923년생이시니, ‘세는나이’로 백 살이 되셨다. 만나이로는 99세시니, 백수(白壽)가 되신 거다. 백(百)에서 일(一)을 빼면 백(白)이 됨을 뜻한다. 아기가 엄마배 속에서 보낸 10개월을 한 살로 치는 우리들의 나이 셈법은, 한국이 세계를 대표한다. 나이를 헤아리는 단위인 ‘살’은 ‘살다(生)’에서 왔을 것이다. 엄마는 아기가 잉태되었을 때부터 대화를 시작한다. 태아를 생명체로 여기고 세상으로 나오기 전의 사전학습, 소위 ‘태교’가
최근 제주도 감사위원회가 발표한 ‘제주도내 주요 관광지 운영실태 점검 결과’를 보면 ‘관광객의 하소연을 외면한 수박 겉핥기식 점검’이라는 언론평가에 시선이 멎는다. 한창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여름 성수기에 실시한 점검 치고는 그 불편 및 불만 사항들이 지극히 일상적 수준들이다. 적발된 사례들이 쓰레기 방치, 화장실 불량, 야영장 시설 미비 등 주민생활 불편 차원의 개선 사항 일색이다. 정작 여름철 관광객들을 불만케 하는 해수욕장의 불친절이나 무질서한 상거래 등은 지적된 바가 없다. 정녕, 올 여름의 관광지는 이처럼 관광불만이 전무한 고객만족의 현장이었단 말인가? 실제로 같은 기간 동안 제주도청의 홈페이지 게시판이나 시청의 인터넷 신문고 등에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야기된 불친절 사례들이 관광객 민원으로 올라와 있다. 예컨대 무료 야영장이라 해놓고 돈을 받는 '바가지' 요금이나 해수욕장에서 파라솔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횡포 등 전형적인 여름철 관광지의 불상사들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들이 문제로 지적되지 않은 것은 ‘현장을 점검한 감사관들이 지역주민으로 구성된 때문이 아닐까?’ 하는
도지사후보마저 공항에서 발이 묶이던 2일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는 한 대도 예외 없이 결항이었다. 암수술을 받은 아내를 동반하고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남편은 "5개월 전에 예약을 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소리 나게 울먹였다. "서울에는 병원밖에 아는 곳이 없어 공항근처 찜질방에서 대기하겠으니, 제발 내일 아침에 비행기 좀 타게 해달라"는 남편은 새벽 3시부터 공항에서 대기하겠다고 사정한다. 그러고는 돌아서다가 갑자기 카운터로 다가가더니 "투표도 꼭 해삽니다. 제주도는 투표가 정말 중요해서 일부러 오늘 퇴원해수다"라며 제주도 사투리로 통사정을 한다. 다행히 새벽 6시 20분에 출발하는 첫비행기의 예약확인증을 받은 그는 상기된 얼굴에 안도의 웃음기를 머금었다. 어쩌면 투표보다 병색이 남아 있는 그의 아내를 위해 발휘된 순발력인지도 모르겠다. 온종일 제주도는 출발 133편, 도착 137편, 국제선 왕복 2편이 모두 결항돼 국내외 관광객과 도민 등 2만명에 가까운 이들의 발이 묶였다. 비좁은 제주공항은 오늘도 아수라장을 이루었을 것이다. 어쩌면 위급한 병이나 당면한 경조사, 사업이나 회의 등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