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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아직은 그 강을 건너지 마세요 (4)

지난 겨울, 직장의 임기를 마칠 즈음, ‘앞으로 무슨 일을 할까?’하는 생각이 문득 문득 머리와 가슴을 스치고 지나갔다. 마치 호랑이 장가가는 날에 햇빛 사이로 비가 쏟아지면, 집에 두고 온 우산을 잠깐 잠깐 떠올리는 것처럼. 그런데 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칠 때는 이성이, 가슴을 스칠 때는 감성이 움직였다.

 

올해로 103세를 사시는 김형석 교수님께서 ‘백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황금기는 60에서 75세까지’라고 하신 점에 비추어 보면, 실제로 나는 매우 심각하게 이성적인 고민을 해야 하는 지점에 있었다. 그런데 정작은 심도있게 생각하고 다양하게 살펴봐야 할 인생 3모작의 과제를, 마치 말을 타고 달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는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대응하고 말았으니...., 왜 그랬을까?

 

사실, 나는 이미 답을 정해 놓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오랫동안 가슴으로 결정해 두었던 답이, 현실적으로는 이성적인 판단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으로 그 답을 묵살하고 넘어간 듯 하다.

 

제 3자적 입장에서 나의 형편과 처지를 바라보면, 좌고우면 할 필요도 없이, ‘바보야, 직장이 우선이야!’가 답이 되어야 할 터다. 하지만 내 가슴은 ‘아니야, 새해가 되면 백세가 되시는 어머니의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해 드리는 것이 최우선, 내 일생일대의 과제야!’라고 소리치는 것이다.

 

지난 날을 회고해 보면, 이러한 결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결코 아닌 듯 하다. 아버지가 미국에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나를 따라 한국행을 결정하실 때, 그러고 보니 20년 전에 이미 자신과 이루어진 약속인 것이다.

 

‘내가 잘 모시겠다’고 미국에서 모셔 온 어머니를, 누가 뭐래도 상황이 어떻든 간에, 약속대로 정성껏 잘 보살피고 나서, 여한 없이 웃으면서 천국으로 보내드리자’는 생각이 오랫동안 내 심중에 자리해 있었다. 또한 지금은, ‘어머니를 위한 일인데, 설마 어머니께서 나를 나쁘게야 하시겠나’하는 믿음이 마음 한 켠을 지키고 있다.

 

어찌 보면, 내가 공부해 온 마케팅의 고객만족이론은 ‘어머니를 감동시켜서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오시도록 한 때는, 마케터인 나와 고객인 어머니 간에 형성된 ‘진실의 순간(Moment of Truth)’에 해당한다.

 

MOT는 고객과 처음으로 만나 진정어린 감정이 교차됨으로써 나를 선택하도록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시간을 말한다. 그러니까 60여년을 해로해 온 남편을 미국의 공원묘지에 장사지낸 어머니가, 오랜만에 만난 딸이 당신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자, 17년 동안 살아온 미국을 등지고 딸을 따라 한국행을 결심하신 그 순간 말이다.

 

즉각적이라면 5〜10초, 잠시 생각해 본대도 1〜2분의 시간이리라. 지금도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나는 메누리 손이 아니라 똘인 늬영 곹이 사난, 촘말로 좋다!’라고 하신다(이 세상의 모든 며느님들과 효부들에게 머리숙여 양해를 구한다). 나의 진심에 어머니의 슬픔이 교차되어 이루어진 결정이니, 지상의 어떠한 약속보다 진실의 순간에 가까우리라. 그런데 실증분석을 통해 더 중요하게 평가되는 것은, 고객과 헤어지는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하라’는 주장이다. 사람들은 보통 마지막 기억을 가장 오래토록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보면, 지난 연말 이후로 어머니를 보살피는 일을 내 생활의 중심으로 잡은 게, 어쩌면 지당하고도 마땅한 의사결정인 듯 하다. 지난 20년을 잘하고도 마지막 1년을 잘못해서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박는다면, 그처럼 밑지는 장사가 어디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즈음의 나는, 유일한 단골인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매우 심각한 정도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다. 끝까지 돌봐드려야 하는 게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노인요양시설에 보내드리는 게 오히려 어머니에게 더 나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찾아들기도 한다.

 

치매하는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고, 강제하며 가르치고, 그래도 고쳐지지 않으면 ‘요양원에 보낸다’고 협박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100세 어머니는 한 살 아기와도 같음을, 더욱이 길어봐야 1년 정도의 시한부 삶에 불과함을 주지하고 있는 내가, 어머니를 온전히 품어내지 못하는,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절망하여 한숨을 쉬고 있는 모양이라니...

 

한편, 어머니가 치매진단을 받으신 것은 8년 전, 92세 때 일이다. 어느날 밤, ‘무서워서 혼자 잘 수가 없다’면서 베개를 안고 우리방으로 오신 게 단초가 되었다. 그 전에도 가끔 수돗물을 끄지 않으시거나, 가스불을 켜두어 냄비를 태우시거나, 버스를 잘못 타시거나, 길을 잃어버려 119를 동원시키거나....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였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혼자 잘 수 없을 정도로 아기가 되었다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선 시내의 신경정신과 병원으로 가서 치매검사를 받았다. 어머니의 일상생활 능력을 테스트 하는 문진표를 작성한 후, 일정 기준에 따라 점수를 매김으로써 치매여부를 판정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치매 초기이므로 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언니 중 한 분이 치매약을 반대하고 나섰다. 동네 할머니가 치매약을 먹고 나서 성격과 행동이 급격하게 나빠졌다고... 성격이 조급해지고 분노조절이 잘 안되더니, 자식들간에 이간질을 유발하는 상황까지 이르다, 결국 제 풀에 지쳐 빨리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지내기로 하였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니, 어머니의 건망증과 치매 정도가 일상생활을 혼자서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졌다. 그 즈음 보건소에 치매안심센터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바로 찾아가서 의사의 검진을 받았다.

 

벌써 치매가 중기로 접어들어 있었다. 즉시 치매약을 복용하고, 낮에는 요양원 주간보호에 다닐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기요양인정 신청을 하였다. 공단 직원이 방문하여 어머니의 상태를 조사했고, 등급 판정 결과 장기요양 4등급이 나왔다. 어머니는 ‘심신의 기능 상태 장애로 일상생활에서 일정 부분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자’에 해당하였다.

 

드디어 어머니 나이 92세에, 아침 9시면 봉고버스를 타고 요양원 주간보호에 갔다가 저녁 5시면 귀가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8년 동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결같이. 그 덕분에 우리는 별 탈 없이 일상을 영위해 올 수 있었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100세가 되신 요즈음에는, 어머니가 요양원 주간보호가 아니라 입소하여 아예 요양원에서 생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을 안겨 주었다. 기저귀 갈기, 옷갈아 입기, 식사, 세수 및 목욕, 거동 등에 한 사람의 보호자, 바로 나의 24시간 밀착 돌봄이 필요한 수준에 이른 것이다.

 

게다가 주간보호에서 하루를 온전히 지낼만큼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서, 결석이나 조퇴, 지각을 하다가, 결국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소위 재가복지서비스로 전환을 한 것인데, 가정에서 기거하면서 혼자서 자신의 일상생활을 이끌어 나가지 못하는 병약자나 국민기초생활보장 대상 노인, 장애인 등을 도와주는 사회적 서비스를 말한다.

 

어머니의 경우는 그 서비스를 수행하는 요양보호사 자격을 내가 취득해서, 딸이 어머니를 돌보는 셈이다. 문제는 하루 60분, 겨우 1시간만 급여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실제는 하루 종일 붙어서 나와 일상을 같이 하시니, 어머니는, 요즘 표현으로 껌딱지와 같다.

 

그런데 최근들어서는 밤 중에 거실이나 마당에 나갔다 하면 방을 못찾아 오신다. 호흡이 곤란해져서 ‘나 살려도라’고 외치면, 간이산소호흡기를 대고 한바탕 응급소동을 벌인다. 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가면, 하루 이틀 입원해서 병원에서 지내야 하기 때문에, 경험 끝에 생각해 낸 병원과 우리의 공조시스템이다.

 

식사를 잘 못하시면 기력이 약해져서 병원행을 해야 하므로, 뉴케어와 같은 식사대용의 액체 영양식을 드시게 한다. 화단에 끼어든 잡초를 제거한다고 꽃도 함께 뽑아버리는 것은 귀여운 장난이다. 마당에 심어놓은 상추를 일찌감치 뽑아버리거나 고추가 달리는 족족 부지런히 따버리는 것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야 하는 사소한 일.

 

큰 문제는 아무데나 침을 뱉는 것이다. 손수건이나 휴지를 드리면서 아무리 침뱉기를 훈련시키고 가르쳐 드려도 소용이 없다. 뒤따라 다니면서 닦는 수밖에. 어쩌다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되셨나 싶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려니 하고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서로가 편안하다.

 

하지만 이렇게 불편하고 괴로운 일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안겨다 준 웃음이나 행복이 괴로움을 넘어설 만큼 많았다. 머리를 염색해 드리면, 다른 할머니들의 머리는 허연 색인데, 당신의 머리는 새까맣다고 자랑하시는 귀여움. 요양원에서 귀가하는 시간, 봉고차가 빵빵 거려서 대문으로 나가면, ‘아이고, 니가 집에 있었구나’하면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어린냥. 마치 어린 아이들이 마중나온 엄마를 보고 소리치며 의기양양하게 달려들 때 주는 기쁨처럼. 아침에 옷을 입혀 드리면 ‘고맙습니다’하는 낯설은 인사. 아마도 요양원 주간보호에서 그렇게 교육을 받은신 게다. 내가 화장하는 모습을 거울로 주의깊게 관찰하는 호기심어린 눈빛(이따금 영양크림을 너무 많이 써버려서 곤혹스럽긴 하지만...). 마당에서 꽃을 꺾어다 탁자위에 곱게 올려놓으시는 여성스러움...

 

되돌아보면 어머니와 함께 보낸 20년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특별한 축복이었다. 어머니가 계셔서 아이들이 “된장찌개 참 맛있다!”고 탄성을 지를 수 있었고, “아명허민 못사느냐, 살암시민 살아진다”는 삶을 살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보낼 수는 없지... 이 글을 쓰는 동안 비로소 분명해진 이 마음이, 잔잔한 바다처럼 평안하고 이 가을의 햇살처럼 따사롭다.

 

 

다만, 이 순간에도 ‘언제 요양원에 보내는 게 좋을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같은 심정으로 그 답을 모색하고 정리해 놓은 사례를 소개해 드린다.

 

■ 질문

어머니께서 치매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지났습니다. 한동안 괜찮으셨는데, 요즘은 상태가 많이 나빠진 게 눈에 보입니다. 식사도 잘 안 하시고 씻는 걸 너무 싫어하시네요. 늘 다니던 길을 배회하시고, 같은 소리만 반복하십니다. 이제 정말 요양원에 보낼 때가 된 건지...보통 치매 환자들이 어느 정도 수준이면 요양원에 입소하나요?

 

■ 답변

요양원 입소 시기라는 것은 없습니다. 유일한 기준은 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보호자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어르신을 모시기 힘든 시점이 되겠지요. 만일 보호자의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혼자 사시고 계신 분이라면 그 역시도 시설에 모실 시점이 될 것입니다.

 

■ 사례

- 질문: 남편(치매진단 6년, 장기요양 3등급)을 혼자 돌보고 있는데 대소변관리도 점점 힘들어지고 오랜 간병에 몸과 마음이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끝까지 돌보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너무 지치면 시설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대체로 어느 시기에 요양원 입소를 고민하는지 궁금합니다.

 

- 답변: 치매초기는 부분 도움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나 치매중기에 이르면 증상이 점점 심해져 상당부분 돌봄이 필요하며 특히, 정신행동증상으로 인해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이런 시기에 요양시설 입소를 고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가족입장에서는 결정이 쉽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시설입소를 고민하는 경우는 폭력, 배회 등의 정신행동증상이 심해져 돌봄이 힘들거나 가족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상황, 치매와 동반된 질환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 대소변 관리가 잘되지 않는 상황 등입니다.

 

요양원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시설등급이 필요합니다. 현재 3등급이니 두 가지 방법으로 시설등급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첫째, 등급변경신청을 통해 1~2등급을 받거나 둘째, 급여종류·내용변경신청을 통해 시설 등급을 받으셔야 입소가 가능합니다. 기관 검색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홈페이지 장기요양기관 찾기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남편을 돌보느라 힘이 많이 들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고민하고 있는 감정들은 치매환자를 돌보다보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지치거나 우울증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러한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현재 느끼는 어려운 감정들을 가족, 친지, 친구, 이웃 등과 나눠보시거나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는 치매환자 가족들을 만나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울증상이 심해진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치매환자에게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고 돌봄이 힘들어질 수 있으니 상담센터로 오셔서 마음의 고통을 덜어보세요.

 

☎ 시설입소 시기

1) 치매어르신의 생활안정과 심신기능의 유지 및 향상이 필요할 때

2) 부득이한 사유로 가족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일시적 보호가 필요할 때

3) 가족이 더 이상 환자의 일상생활을 도와 줄 수 없을 때

4) 치매 어르신의 망상과 환각 등 심각한 정신행동증상으로 타인과 공동생활이 어

려울 때

5) 치매와 동반된 신체질환으로 인해 지속적 치료가 필요할 때

 

♦ 요양병원은 의료기관이지만 요양원은 의료기관이 아니다. 요양원은 사회복지시설이다. 요양병원에는 의사가 있으나, 요양원에는 의사가 없고 간호사만 주간에 근무한다. 의사는 월 2회정도 촉탁의 형태로 시설을 방문한다. 요양병원에 비해 이용 요금이 저렴한 편으로, 식대를 합쳐서 50만~60만원 가량이다. 요양병원에는 아무나 입원할 수 있지만, 요양원에 입소하기 위해서는 장기요양보험의 시설등급(1~4등급)을 받아야 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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