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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의 주문처럼 외우는 '건강' ... 행복을 바라는 기도

어머니가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신다. ‘적막강산에 나 혼자 남았구나’라며 흐느끼신다. 얼마나 외로우면 저러실까? 외로움은 홀로 있는 것같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감정이다. 우리말 사전에서는 ‘혼자가 되어 적적하고 쓸쓸한 느낌’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가족과 함께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그러므로 외로움은 혼자 있는 상태가 아니라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감정의 문제로 보인다.

 

관련 연구에 의하면 외로움이란 열등감과 함께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꼽힌다. 실제로 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대단히 고통스럽고 심혈관계 질환에 노출되며 극심한 무기력증을 느낀다.

 

따라서 술·담배·마약 등의 여러 가지 일탈 행위에 노출되어 최악의 경우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그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인 셈이다. 이 고통은 실제로도 신체적 고통과 연결되어 있어서 ‘타이레놀(정확히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먹으면 완화된다’는 연구가 있다.

 

200년 전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책을 통해 ‘절망’이란 단순한 우울이나 슬픔이 아닌 실존의 문제로,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해 방황하다 직면하는 막다른 골목임을 암시하고 있다. 자아를 잃어버린 상태야말로 외로움의 극단이 아닐까?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제주장수복지연구원의 연구 과제로 ‘제주지역 노인 행복도 조사’를 수행하였다. ‘행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을 설문한 결과 ‘건강’이 제1 요인으로 집계되었다. 다음은 가족·경제적 여유·친구 순이었다. 가족과 친구를 합하면 ‘사람이 돈보다 외로움을 덜어주는 힘이 두 배 정도 강함’을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행복이란 삶의 의미, 성취감(보람), 원하는 삶, 자주 웃음, 잘 살아왔다는 생각,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 등으로 종합된다. 우리말 사전은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는 전반적인 행복도로 차원을 넓혀보았는데, ‘내 삶은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나는 잘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성취감(보람)을 느낀다, 전반적으로 행복하다,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순으로 행복감을 보여주었다. 요컨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 의미와 가치가 느껴지고 성취감과 보람이 인정되면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득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기존의 행복론에서는 일반적으로 행복을 만족도의 연장선으로 인식했다. 내 기분에 따라 만족도가 떨어지면 불만이 되어 불행으로 이어지고, 만족도가 올라가면 만족이 되어 행복으로 이어지는 루트다. 그러므로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만족도를 자극하는 이벤트가 필수요건이 된다. 행복 이벤트가 자주 발생하면 행복하다 싶지만, 빈도가 떨어지면 ‘요즘은 행복할 일이 없다’라며 불행을 한탄한다. 우리 연구원의 조사에서는 행복도를 정서, 성공적 노화, 삶의 만족도 차원으로 확장해서 살펴보았다.

 

행복도 측정 항목에서 정서 요인은 나는 ‘즐겁다, 활기차다, 차분하다, 걱정한다, 슬프다, 우울하다, 화가 난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피곤하다, 외롭다’의 10가지 요인으로 측정하였다. 이 중에서 ‘즐겁다, 활기차다’가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나타내는 한편 ‘ 걱정한다, 피곤하다’ 또한 비교적 높은 점수를 얻고 있다.

 

말하자면 제주지역 노인들은 즐거움과 활기참의 플러스 측면과 동시에 걱정과 피곤의 마이너스 측면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특히 내 시선을 끌어당기는 부분은 ‘슬프다, 우울하다, 화가 난다’라는 정서보다 ‘스트레스를 받는다, 외롭다’라는 요인이 2∼3배 높은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노인들에게 있어 외로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깊어지고 가속화되는 측면이 있다.

 

한편 행복도 조사의 중심축에 해당하는 성공적 노화를 통한 삶의 만족도, 즉 노인의 행복도에서는 자녀들은 건강하다, 자녀들이 결혼해서 화목하게 살고 있다, 몸이 허락하는 한 활동을 계속한다 등이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어서 ‘자식들의 도움 없이 생활할 수 있다, 자녀들과 자주 연락하거나 만나고 있다, 매일매일 할 일거리가 있다’ 등이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다.

 

요컨대 제주지역 노인들에게는 ‘자녀와 일’이 행복의 양 기둥을 이루는 셈이다. 또한 ‘삶의 만족도’에서는 ‘자녀와의 관계’가 생활 수준이나 현재의 삶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주지역 노인들은 행복의 중심에 자녀를 두고 있으되 의존적이지 않고 관계 지향적이며, 일을 통해 생활의 독립과 삶의 의미를 탐색하고, 자녀의 건강과 행복을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특성을 보인다.

 

이쯤에서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연구원이 실시한 ‘2024년 제주지역 노인실태조사’ 결과를 살펴본다. 노인들이 생각하는 노인 연령 기준은 평균 73.2세로 2020년 대비 1.4세 상승했다. UN이 규정한 노인의 연령 기준이 65세 이상이고 보면, 노인들 스스로가 과거보다 한층 의식이 젊어졌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노인’이라 생각하고 사회적으로 어른 대접을 받기보다 노인의 집합에 들어가는 시기를 이왕이면 늦추고 싶은 추세다.

 

건강 측면에서 만성질환 보유 노인이 70%로 2020년 86%보다 감소했고, 평균 만성질환수도 1.88개로 2020년도 2.53개보다 눈에 띄게 줄었다. 우울 증상을 가진 노인도 감소해 건강 수준이 다소 개선되었다.

 

일하는 노인은 58.8%로, 2020년도의 51.6%보다 7.2% 증가했다. 직종은 농업 비중이 감소하고 단순노무직과 서비스판매직이 증가해 도시지역 노인들의 증가세를 가늠할 수 있다. 이는 일하는 주된 이유가 ‘생계비 마련’이라는 점에서도 뒷받침되는 사실이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는 치매관련 서비스, 돌봄서비스, 노인고용 일자리 등이다.

 

우리 연구원의 관련 조사를 접목해 보면, 인생에서 노년기가 차지하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고, 100세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남아 있음을 고려하면 ‘일’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대책이 시급하다.

 

이쯤에서 102세를 사시는 어머니의 삶을 응시해 본다. 입만 열면 ‘건강, 건강….’을 주문처럼 외우시는 게, 이제 보니 행복을 바라시는 기도인 듯하다. 여전히 생선만 있으면 하루 세 끼니를 잘 드시고, 화장실 출입을 스스로 하시며, 지팡이를 짚고 집안을 챙기시고, 빨래가 마르면 으레껏 개키시며, 마당에 고추와 배추를 심고 잡초도 뽑으신다. 이따금 ‘난 니 덕분에 잘 살아왔져. 고맙다 이. 똘이영 사난 걱정 호나토 엇다!’라며 감사를 표현한다.

 

하버드 대학의 탈 벤 샤하르 교수가 강조한 바,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존재하며, 행복해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격이다. 그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정의하지 않으며, 어디에서 오는지도 모르지만, ‘우연히 맛보고 느끼게 되는 감정이 아닐까?’라는 추론을 남기고 있다.

 

이를테면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운동하는 중에 경험하는 충만함에서 감지되는 느낌과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서 행복이란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중에 어느 날 우연히 맛보게 되는 감정이며, 학습과 훈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노라면 외로움을 잊거나 사라져 버리지 않을까?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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