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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코골이 평안 너머로 들려오는 염려

 

낮잠을 주무시는 어머니가 코를 고신다. 잠이 달콤하게 느껴지는 게 평화롭기도 하다. 하지만 전에 없이 코를 고시는 게 이상하다 싶어서 인터넷 바다로 들어가 본다. ‘노인의 코골이’를 검색어로 넣자, 주르륵 주르륵 정보들이 쏟아져 내린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기대했던 평화나 안녕은 눈을 씻고 보아도 없고, ‘코골이와 치매’가 대세를 이룬다. 최근 노인의학이 발전하고 다양한 노인 대상 임상연구가 진행되면서 치매와 코골이 간 연관성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속속 나오고 있단다. ‘코콜이는 수면 중에 생길 수 있는 현상으로 호흡이 불규칙해지거나 숨이 막혀서 생기는 소리다. 노인의 경우 코골이가 심할수록 치매와 관련된 위험이 커진다. 코골이로 인해 발생하는 저산소증(무호흡수면)은 뇌 손상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호흡 수면은 무엇일까? 수면 중에 호흡이 일시적으로 멈추거나 느려지는 현상으로, 보통 10초 이상 지속되면 진단된다. 심한 경우에는 2분에 한 번씩 호흡이 끊어지기도 한다. 수면 무호흡증은 코골이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으며, 노인들은 젊은 사람들보다 더 취약하다. 노인들은 노화로 인해 기도 주위의 근육이 약해지고, 턱이 앞으로 내려가서 기도가 좁아지고 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저산소증으로 인한 뇌 손상이 조기에 발견되지 않을 경우, 치매와 같이 더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개인 블로그).

 

아이쿠나, 큰일 났다 싶어서 다른 정보들을 더 훑어 본다. 심한 코골이가 알츠하이머 치매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원의 제랄딘 라우쉬 교수 연구팀이 노인 122명(평균연령 69.4세, 여성 63.1%)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진행한 '건강한 노화'(Age-Well) 연구 자료를 분석한 결과이다.

 

내용인즉, 심한 코골이로 인한 수면 호흡 장애(SDB: sleep-disordered breathing)가 기억 중추인 해마를 비롯, 치매 초기에 영향을 받는 뇌 부위들의 회색질을 위축시킨단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은 뇌의 내측두엽 중에서 해마를 포함, 기억력과 관련이 있는 소부위들의 용적이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연합뉴스; 미국신경학회(American Academy of Neurology) 학술지 '신경학'(Neurology) 최신호).

 

어떻게 하면 코콜이를 방지할 수 있을까? 1)건강한 체중 유지: 균형 잡힌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으로 비만 체중 감소, 2)수면자세 바꾸기: 옆으로 누워 자는 습관, 3)알코올과 진정제 제한하기: 잠자리에 들기 전 몇 시간 동안 술과 진정제 사용 억제을 줄이면 목의 근육이완을 방지해 코골이 감소, 4)코막힘 치료하기: 알레르기나 감염 치료, 식염수 비강 스프레이나 가습기 사용을 통해 코막힘을 제거, 5) 금연하기 등.

 

그런데 이걸 어쩌나? 어머니의 경우에는 위의 내용에 해당사항이 없다. 어머니는 날로 체중이 감소해서 오히려 걱정이고, 대부분 옆으로 주무시는 편이며, 알코올과 진정제는 무관하고, 코막힘과 담배는 현재까지 관련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초기 치매환자의 약 50%가 낮에도 과도한 졸음 발생을 겪으며,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수면장애를 치료하면 삶의 질이 높아진단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낮에도 거실 소파에서 끄덕끄덕 조시는 게 다른 노인들과 비슷한 현상인 게다. 어렸을 적에 어머니가 이따금 하시던 말씀처럼, ‘놈의 대동 허라(남과 같이 하라)’고, 그냥 조시도록 놔두면 되지 않을까?

 

사실은,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는 늦잠을 주무셨다. 기저귀를 갈고, 옷을 갈아입히고 보니, 시계가 11시를 가리킨다. 내가 시계를 쳐다보는 게 ‘서두른다’고 생각하신 건지, 내 손을 가만히 붙잡으시더니, 정색을 하신다. “정옥아, 몸을 애끼라, 이! 나는 젊은 때부터 굳짝(계속) 몸을 막 써부난, 하근디가 버짝허곡(여기저기가 뻣뻣하고), 알리곡(아프고), 아명해도 니가 안 일려주민(아무래도 네가 안 일으켜주면), 못 일어나키여게”.

 

맞는 말씀이다. 우리 동네에서 어머니처럼 일을 많이 하신 분이 어디 있으랴. 봄에는 새벽미명에 1100도로를 타고 올라가, 대포목장과 거린사슴을 누비며 고사리를 캐시다 저녁 어스름이 밀려들면 빵빵해진 마다리 푸대를 버스에 싣고서 기사님이 뭐라하든 ‘고맙수다’를 연발하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고사리를 껴안으시던 어머니.

 

가을이 되면 다시 영실로 올라가서 계곡마다 늘어져 있는 동백나무 열매를 따서는 마다리 푸대에 짊어지고서 웃음 가득한 얼굴로 버스에 오르시던 어머니. 봄의 보리, 가을의 고구마 농사 사이로 육지 원정 물질과 대포바당 상군해녀로 현금소득을 창출해 2남7녀를 학교마당에 올려보낸 어머니.

 

겨울이면 새벽 두 세시부터 밤바다로 나가서 해삼·소라·문어를 잡는 밤바르로 소득이 아쉬운 동절기을 보충하시던 어머니. 오죽하면 동녁집 옥자 어멍이 아침 저녁, 담장 너머로 경고장을 날라면 어머니의 중노동을 염려하였으랴. “정열이 어멍아, 몸을 아끼라 이. 니 그추룩 일허당은, 육십이 못 되엉 앉은뱅이 되어불거여!” 그런데 이렇게 백년을 살면서 육십이 넘은 딸에게, ‘몸을 아끼라'던 당신의 경고를 그대로 전승함을 본다면, 옥마 어멍께서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5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7살부터 홀어머니와 함께 밭고랑에 앉아서 김을 매던 어머니, 12살에 언니가 만들어 준 테왁을 짚고서 자맥질을 시작한 어머니, 17세부터 동네 해녀분들의 아기업게로 육지물질을 따라가서는 우뭇가사리 채취로 상군해녀로 인정 받은 어머니, 63세까지 대포마을에서 해녀 물질하면서 해녀회장까지 하신 어머니, 미국에서 17년의 이민 생활을 마치고 보목마을로 와서는 섶섬 앞에서 보말을 잡으며 할망해녀의 마무리를 알뜰하게 해내신 어머니.

 

그리고 100세가 되어서도 “정옥아, 이 어멍 오늘은 무슨 일 허코, 이?” 하면서, 그냥 지내는 게 무슨 허물이라도 되는 냥, 딸의 얼굴을 바라보시는 어머니. 아!, 이 제주도 어머니, 이 제주도 할망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해드려야 후회 없이 미련도 없이, 저 하늘로 아기 천사처럼 보내드릴 수 있을까?

 

 

나이 육십에 백세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은, 때로는 축복의 시간이기도 하다. 직장을 은퇴하고 어머니를 돌보아 온 지 2년이 가까운 지금, 나도 어느새 노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돌봄 직업에 종사하는 어머니의 요양보호사가 되어, ‘돌봄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있다.

 

그러한 내 모습을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집으로 ‘돌봄의 중심에서 어떻게 삶의 균형을 잡을까?’라는 책을 보내왔다. 출판사가 잘 늙어가기 시리즈(WELL AGING SERIES)인 걸 보니, 요새는 돌봄이 각종 사업의 중심 주제로 정착했나 보다.

 

고마운 마음으로 첫장을 펴니,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곧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라는 하버드대학교 교수(아서 틀라인먼)의 일성이 적혀 있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석학이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내를 10년 동안 돌보며 고군분투했던 자신의 간병기록을 담은 책 ‘케어(Care)’에서, 돌봄의 가치와 의미를 두고 한 말이란다.

 

그렇다. 치매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곧 나를 돌보는 일, 어머니를 통해 나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동안 바쁘게 일에 파묻혀 사느라 정작 자신의 삶-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뒤를 돌아 지나온 길을 한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문득, 문학소녀를 꿈꾸던 시절 가슴에 품고 다녔던 김기림 시인의 ‘길’을 다시 펼쳐본다. 알 수 없는 감정이 슬픔 같은데도 떨치기보다 자꾸 감싸안게 되는 게,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내 마음 속 풍경이다.

 

나의 소년 시절은 은(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빛에 혼자 때 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갔다가도 노을에 함뿍 자줏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다녀갔다. 까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낳은지를 모른다는 동구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에 얼룩을 씻어 준다.(『조광』 1936. 3)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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