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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100세 일기] 어머니, 아직 그 강을 건널 때가 아닙니다

 

요양원 야간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피곤할까? 저녁 8시부터 아침 8시까지, 밤을 새워 치매노인들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단할까? 그 힘든 일을 마치고, 우리집에 먼저 들른 언니의 손에 참외 한 상자가 들려 있다. 도중에 마트에 들렸더니 먹음직한 참외가 참 싸게 나왔더라고.... 그 참외를 본 순간 어머니를 떠올렸을 언니의 마음이 울컥하니 가슴을 적신다.

 

그리고, ‘두뇌 트레이닝을 위한 어르신들의 색칠공부’ 책과 크레파스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심심할 때 어머니도 색칠놀이를 하시면 치매가 조금이라도 예방되지 않을까....”라며 희미하게 웃는 어머니의 다섯 번째 딸. 아, 언니는 요양원 할머니들을 보살피면서도 늘상 어머니 생각을 하고 있는 게다. 언니의 그 바람대로, 어머니가 크레파스를 움켜쥐고서 도화지 위에다 아무렇게나 색칠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저 자유로운 한 줄의 선, 삐뚤어진 세모, 이지러진 동그라미라도...

 

 

어머니는 아침을 지나고 점심에 가까운 오전 11시 현재, 잠에 묻힌 듯 누워 계신다. 깨우지 않으면 오늘도 점심때를 넘기시리라. 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 의하면, 노인이 임종기에 접어들 경우, 대부분 누워 있게 되며 음식 및 음료 섭취에 무관심해진다.

 

어머니가 요즈음 그러하시다. 아니, 오히려 먹는 것을 귀찮아 하시고 싫어 하신다. 어찌어찌 식탁에 앉으시게 한 후, 달래고 얼르면서 겨우 죽 몇 숯갈을 입안으로 밀어넣는 형편이다. 그리고 더 이상 안되겠다 싶으면 식사대용식인 액체 뉴케어를 삼키시게 한다. 이렇게 아침 식사를 하는 데 1시간이 족히 걸린다. 그럼에도 필요한 식사량의 절반도 충족되지 않는다. ‘다 살아진 것 담다’는 어머니의 희미한 목소리가 안개처럼 식탁을 감싸고 돈다. ‘건강, 건강...’ 하시거나, ‘나 살려줍서!’라고 혼잣말을 하시던 게 엊그제인데, 알 수 없는 게 백세노인의 하루다.

 

“어머니, 이제랑 눈떠봅서. 미국서 막둥이 아들이 어머니 보래 온댄 햄수다. 제게 일어낭 목욕허게 마씸. 경해도 아들한티 코삿헌 모양을 보여줘사 안되쿠가?”라고 깨워보고 달래본다. 그래도 눈을 뜨지 못하시는 어머니. 아들이 왕 ‘어머니!’라 부르면 얼른 눈을 뜨시려나.... 밤새 내리던 비가 잦아들고, 희뿌옇게 연막치던 장마기운도 수그러지는데... 해가 저 구름을 제치고 삐죽이 얼굴을 내밀어주면, 어머니도 눈을 뜨시겠지..... 아직은 가실 때가 아니다.

 

오늘 새벽에는 기도하러 가는 길에 어머니의 일생을 그려보았다. 백 년을 사시는 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과 고난, 재난, 환란을 겪어오셨을까. 1923년 3월 22일생이시니, 일제치하, 4.3사건, 6.25 동란, 보릿고개, 새마을운동, 원정물질, 유채·보리·고구마 농사, 한라산 고사리 캐기와 동백열매 줍기 등을 다 겪으셨다.

 

2남7녀로 딸을 많이 낳은 여인의 설움은 또 어떠한가? 그래도 딸·딸·딸·딸·딸을 거쳐 마지막에 아들을 낳은 기쁨은 또 얼마나 컸을까. 그 귀한 아들의 이름을 위해 옥편을 뒤지고 뒤져서, 용익(龍翼)이라고, 이름하여 ‘용의 날개’라 짓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마음은 또 얼마나 날아갈 듯 흐뭇하였을까. 동네 사람들도 덩달아 웃으면서, ‘용아기’라 부르며 귀애할 정도였으니까.

 

그 아들이 오늘 어머니를 방문하였다. 이제 막 일어나신 어머니를 목욕시키는 중에 말이다. 원래는 토요일 저녁이 목욕 시간이지만, 기운이 없으셔서 미룬 게 이 시간이다. 장마철의 습기가 백세노인에게는 짓누르듯 무거운 게다. 미국에서 온 막내아들이 “어머니!”를 부르는데도, 표정이 무심하다. 그리고는 이내 눈을 감고 조신다. 머쓱해진 아들이 어머니의 품에다 하얀 봉투를 안겨드린다. 그래도 눈을 뜨지 않는 어머니. ‘너무 오랫만에 보니까, 서운함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라는 큰 딸의 진단에, 며느리가 어머니의 두 손을 꼬옥 잡아드린다.

 

아들이 옛날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렸을 적, 엄하신 아버지에게 얼마나 꾸중을 듣고, 매를 맞으며, 훈계를 받았는지에 대해. ‘네가 오랜만에 나온 아들이니까, 그만큼 기대가 크셨단다. 그때는 떡을 팔아서 아들을 키운 한석봉의 어머니처럼 정은 숨기고 매를 때리는 게 교육인 줄 알았던 시절이쟎아.’라며 넷째딸이 중재한다. 아마 아버지가 계셨다면 ‘미안하다’고, ‘그때는 그게 너를 위한 건 줄 알았다’고 말씀하시리라.

 

나도 마음 속으로 아버지가 얼마나 막내아들을 사랑했는지 말해주고 싶었다. ‘용익이, 너는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유모차를 타고 자란 아이였다’라고. 아버지는 한라산에서 칡나무 줄기를 잘라다가 유모차를 만드셨다. 아마도 중문의 신작로 주변에 사는 가게집 아이나 도시문화를 맛본 젊은 엄마의 아이들이 타는 유모차를 눈여겨보셨으리라.

 

“너는 우리집의 희망이었다. 딸들에게는 ‘공부해라, 훌륭하게 되어라’는 말을 못해주고, 교과서도 교복도 제대로 갖춰주지 못하셨기에, 너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뒷바라지 해주고 싶으셨을 거다. 노는 애들과 어울리지 말고 열심히 공부만 해주면 대학까지라도 보내주고 싶으셔서, 너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크고 높아서...사랑의 매를 드신 게지”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초등학교조차 나오지 못해서 한 동네에 ‘갑장(나이가 같은 또래들)’은 있지만, ‘동창’은 없으셨던 아버지의 그 마음을, 우리 동생이 지금에라도 헤아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고 누나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며느리의 손에 붙들려 식당으로 가시는 어머니의 얼굴이 조금은 풀리셨다. 부모의 그 깊은 속을, 자식들이 어찌 알랴. 어머니에게는 인생의 생사고락을 함께 해 온 남편인데, 그 남편의 깊은 속을 몰라주는 아들이 얼마나 안타까우실까.

 

백세 어머니가, 비록 치매노인이지만, 느낌으로 본능으로 좋은 소리 나쁜 소리를 다 알아듣는 줄을, 자식들은 왜 모를까.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 가슴으로 마주하면 짐작이라도 할 수 있으련만. 효도는 두툼한 봉투와 좋은 음식보다 진심어린 감사와 따뜻한 손길에 있음을, 우리는 왜 늙어서 부모의 나이가 되어야지만 뼈아프게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요양보호사 표준교재에 의하면 치매 대상자와 의사소통할 때는 인격적으로 대해야 한다. 비록 심각한 언어장애를 가진 치매 대상자라도 요양보호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대상자가 요양보호사를 믿지 않는다 하여도 요양보호사는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P.470).

 

맞는 말이다. 어머니가 백세이고, 치매이고, 하루종일 졸기만 하셔도, 좋은 말 나쁜 말은 느낌으로 알아들으신다. 그러니, 더 서러운 거다. 못 알아들을까 봐 아무렇게나 말하는 자식들이, 야속하기보다 ‘내가 이렇게 오래 살아서 자식들을 힘들게 하는구나’ 하며 가슴이 저린 거다.

 

점심을 끝내고 온 언니가 은박지에 싸인 고기를 건네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어머니가 오늘은 고기를 아주 많이 드셨단다. 그러니, ‘너도 이 고기 먹고서 힘을 내라’는 뜻이리라.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고기를 펼쳐 본다. 하나 하나 구울 때마다 정성을 쏟았으리라. 그렇게 우리를 키우신 어머니의 오늘 하루가, 이 고기로 인하여 사흘쯤은 더 길어지기를,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도한다. <다음편으로 이어집니다.>

 

☞허정옥은?
= 서귀포시 대포동이 고향이다. 대학 진학을 위해 뭍으로 나가 부산대학교 상과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하고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미국 볼티모어시에 있는 University of Baltimore에서 MBA를 취득했다. 주택은행과 동남은행에서 일하면서 부경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이수했고, 서귀포에 탐라대학이 생기면서 귀향, 경영학과에서 마케팅을 가르치면서 서귀포 시민대학장, 평생교육원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2006년부터 3년간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 JEJU)의 대표이사 사장과 제주컨벤션뷰로(JCVB)의 이사장 직을 수행한데 이어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을 거쳤다. 현재는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서비스 마케팅과 컨벤션 경영을 가르치고 있다. 한수풀해녀학교와 법환좀녀학교도 다니며 해녀로서의 삶을 꿈꿔보기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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