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행정체제개편위원회가 최종 대안으로 권고한 ‘행정시장 직선제’에 대한 제주도민보고회가 마무리 됐다. 하지만 첩첩산중이다. 보고회는 말 그대로 이제 보고를 마친 것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제 어떤 식으로 결론을 내리느냐다. 가장 중요한 도민여론 수렴의 형식도 갖춰야 한다. 또 제주도의회 동의도 거쳐야 한다.
찬성이 우세할 지라도 일정도 촉박하다. 제주도의 고민이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도민 의견수렴 방법에서만 그렇다.
제주도의회도 고민되기는 마찬가지다. 도와 도의회는 어떤 방법으로 이 산을 넘을까?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 촉박한 시간 속에서 도와 도의회는 어떤 해법을 제시할까?
지난 12일부터 시작한 도민보고회가 19일 오후 7시 서귀포시 성산읍사무소에서 제주 동부권 제주시 구좌·조천과 서귀포시 남원·성산·표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마무리됐다. 우도와 추자지역을 포함해 모두 12차례 열렸다.
공무원과 자생단체장들을 동원했다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보고회는 계속 진행됐다.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였는데도 그랬다.
첫날부터 도는 공무원과 자생단체장을 동원해 도민보고회를 가졌다. 주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지만 주민의견은 제대로 수렴되지 않았다. 이후 <제이누리> 등 일부 언론이 공무원 동원 문제를 제기하자 현장을 차지한 주민의 수는 현격이 줄었다.
도의회에서도 무용론을 제기했다. 13일 열린 도의회 전체의원 간담회에서 집행부는 도의원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가뭄과 전력난으로 농민들과 공무원들이 총동원된 상태에서 보고회를 갖는 게 맞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특히 박희수 의장은 “정당이 공식적으로 반대하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면서 “보고회를 갖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의회에서 논의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며 이미 ‘행정시장 직선제’는 물 건너갔음을 시사했다.
도내 정당들은 이미 반대의견을 천명한 상태다. 특히 “우 지사가 자신의 공약인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저버렸다”며 “이 문제를 차기도정으로 넘기라”고 촉구하고 있다.
새누리당도 “행정체제 개편은 단순하게 도민 의견 몇 번 수렴하고 얼렁뚱땅 넘어갈 문제가 아닌 제주의 백년대계를 결정지을 중차대한 사안이다. 시간을 두고 도민과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검증에 검증을 거쳐도 지나치지 않다”면서 “행정체제 개편 문제를 다음 도정의 과제로 넘기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행정체제개편 문제는 제주의 백년대계가 걸린 중대 사안이다. 그만큼 도민총의에 충실하고, 숙고가 필요한 사안인 것”이라며 “계획된 시간을 초과해 결정에 어려움이 있다면, 또 도민총의를 모으는 데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 양해를 구하고 차기 도정의 과제로 넘기는 현실적인 차원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지역 진보정당들도 나섰다. 노동당·정의당·통합진보당 제주도당과 제주녹색당 준비위원회는 “현재 우근민 지사가 주장하는 ‘행정시장 직선제’가 주민을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 묻고 싶다”며 “시간이 촉박하다면서 도민들을 협박하듯이 몰아 부치는 것도 보기에 안 좋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임기 마지막 과제로 기초자치단체 부활 공약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관련 법 규정을 조속히 정비하라”고 촉구했다.
제주지역 시민단체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기초자치권부활 도민운동본부는 “제주특별자치도형 기초자치단체가 법인격이 없는 것이라면 ‘행정시장 직선제’는 짝퉁에 불과하다”면서 “잘못된 행정시장 직선제를 폐기하고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위해 도민과 함께 노력하라. 2010년 지방선거 제1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다면 그만두는 것이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도민보고회는 마무리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수렴한 도민의견을 어떤 식으로 판단할 것이냐다.
도의 최종 목표는 내년 지방선거 적용. 이를 위해서는 12월 말까지 제도개선을 완료(국회통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10월15일까지 국회에 상정돼야 한다. 국회 상정에 앞서 다음 달 말까지는 정부협의를 완료해야 한다. 도민들의 찬성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일사천리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도의회 동의’가 반드시 필수요소다. 도의회 동의가 없다면 내년 직선 행정시장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도의회 동의까지는 ‘도민여론 확인’이라는 산이 가로막혀 있다.
도민여론을 확인하는 것을 언제 어떻게 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찬성’이나 ‘반대’냐를 확인해야만 일정대로 가느냐, 포기하느냐가 결론나는 것이다.
도는 도의회와 협의해 도민의견 수렴 방법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도 관계자는 “도의회와 협의해 여론조사든, 주민투표든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민여론을 확인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사도 지난 5일 ‘도민보고회에서 도민 여러분의 가감 없는 의견을 듣고 다시 한 번 도민들이 바라는 여망을 확인해 나가겠다. 도민의 대의기관인 도의회에도 이와 같은 과정 및 내용을 설명 드리고 공식적인 의견을 듣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며 도민과 도의회 동의가 동시적으로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한다면 적어도 다음달 중순 이전에는 여론확인 및 최종판단이 끝나야 한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주민투표는 사실상 어렵다. 현실적으로는 여론조사를 해야 하지만 도는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도의회의 동의를 반드시 구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
이유는 독단적으로 비춰지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도 관계자는 “제주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안이다. 이와 관련된 모든 것을 도의회와 협의를 거쳐 하는 것이 뒤끝도 없다”고 말했다.
도가 목표하는 바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의회를 정책협의회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러나 도의회는 이미 “도가 결정하고 의회에 정책협의를 하는 것은 의회가 들러리 서는 격”이라며 정책협의회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다만 의회는 지난 13일 전체의원 간담회를 통해 의견 합의를 보지 못해 20일 교섭단체 대표들의 의견을 듣고 차후 전체의원들의 의견을 다시 듣기로 했다.
결국 도는 최종여론 확인이라는 고지에 오르기 위해 도의회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도의회도 마냥 있을 수는 없다. 찬성이나 반대 의견을 피력하지는 않고 있지만 이미 일부 의원은 찬성 의사를 보이고 있다.
도의회는 다음 달 4일부터 9일까지 제309회 임시회를 열 계획이다. 도는 회기 전이든 중이든 반드시 논의를 하려 할 것이다.
쪽문이라도 열어야 하는 게 도의회의 입장이다. 결국 모든 것은 도의회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우근민 지사로선 바쁠 것이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우 지사는 자신의 공약이라고 강조하지만 "공약도 도민들이 원해야 실현 가능하다"고 한발 발을 뺄 수 있다. 도민여론 확인도 마찬가지다. 도민의견 확인 기간이나 방법조차도 도의회가 논의를 거부하면 우 지사는 “의회가 논의 자체를 거부해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가 있다.
결국 도는 바쁜 척 하지만 공은 도의회에 넘어 간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한편 도는 이번 도민보고회 기간 중 모두 100여건의 의견을 받았다. 서면은 47건이었다. 이중 대부분이 행정시장 직선제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었다. 행정시장 임명제와 어떤 차이가 있냐고 반문한 것이다.
민선 5기 도정에 대해 '기초자치권 부활'을 기대했던 도민들은 도와 의회 간 책임만 떠넘기는 '핑퐁게임'을 쳐다보는 신세로 전락해고 있다. [제이누리=김영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