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의 말귀가 어지러워서 국민노릇하기가 참 어렵다.
자신의 정책비전을 너무 모호하게 표현하거나 선거공약을 중의적으로 표현했다가 나중에 형편에 따라서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은 국민의 정치신뢰를 떨어뜨리는 매우 질 나쁜 수작이다.
얼마 전에는 국민들이 ‘박근혜의 창조경제와 안철수의 새 정치, 김정은의 속마음’을 ‘아무도 모르는 3가지’라고 비아냥거리더니, 요즘 도내 항간에는 ‘우근민의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무엇인지 당최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늘고 있다.
지난 2010년 6월, 우근민 후보는 농촌할머니의 손을 간절하게 잡은 자신의 배경사진 위에 『기초자치단체를 부활해서 제주형 특별자치를 실현하겠습니다』라고 굵은 고딕체로 쓰여진 선거공보의 내용을 도민들에게 공약하고 민선5기 제주자치도지사로 어렵사리 당선됐다.
우근민 도지사는 취임사에서 제주사회가 미래비전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고, 국제자유도시의 완성을 위해 “제주특별자치도형 기초자치단체를 도입하여,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주민 여러분이 직접 뽑은 민선 기초자치단체장이 등장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 그가 느닷없이 작년 8월 행정체제개편위원회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지 않는 소위 ‘행정시장 직선제(안)’과 의회를 구성하는 ‘기초자치단체 부활(안)’을 도민들에게 내어 놓더니, 급기야 지난 5일에는 자신이 지방선거에서 공약한 것은 '기초자치단체 부활'이 아니라 '제주형 자치단체'였다고 정정을 요구했다.
이어서 "도지사 후보 당시와 당선된 후 인수위 과정을 거치면서 특별법에 의한 시장직선제와 관련된 제목을 뽑을 때 혼란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신이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믿고 시집 온 아내에게 이제 와서 내말은 그게 아니었다니, 내가 사랑한 건 당신이 아니고 당신이 갖고 있는 재주뿐이었다니 이런 황당한 일이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최소한 취임 초기에 공약을 믿고 투표한 도민들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어야 옳을 일이다. 임기 말에 다다라서야 도민들이 공감하지 않는 자의적이고 모호한 해석으로 말귀를 어지럽히는 것은 투표의 뜻을 유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만일, ‘기초자치단체 부활’의 공약만을 믿고 우근민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가 상당수였다면 1%에도 못 미치는 2,252표차의 승리는 참으로 시시하고 위태롭기 그지없다.
그 신승의 요인은 실제로 ‘기초자치단체 부활’ 전략 때문일 수 있다.
그러니 이미 도민이 투표로 선택한 ‘기초자치단체’부활에 대하여 이제 와서 또 다시 도민여론을 수렴하겠다는 것은 전후 논리상 맞지 않다.
무엇보다도 애당초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면 도민들이 우선 그렇게 이해하도록 한 후, 오로지 득표를 위해 교묘한 말장난으로 기망한 걸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가 된다.
우근민 후보가 도민들에게 선거 공약으로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하여 말 할 자유는 있었으나, 우근민 도지사가 “내가 말한 건 그게 아니었다”라고 말 할 자격은 본디 없는 것이다.
이미 자신만의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말은 쉽고 분명해야한다.
말이 쉽고 분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이 솔직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왕자처럼 순수하게 말해야 한다.
10억짜리 집이라고 말하면 부자와 흥정꾼들만 알아듣는다.
창가에 화분이 있고 지붕에 비둘기가 살고 있는 붉은 벽돌집이라고 말해야 가난한 도민들도 쉽게 알아듣는다.
우근민 도지사는 “내 말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분명하다”라고 누구도 되묻지 않게 정확한 어조로 먼저 말해야 한다.
그러나 형편이 여의치 않았다고...
그러면 당신이 실현시키지 못한 ‘기초자치단체 부활’에 대하여 도민들이 함께 고민할 것이다.
☞김성민은? =탐독가, 수필가다. 북제주군청에서 공직에 입문, 제주도청 항만과 해양수산 분야에서 30여년 간 공직생활을 했다. 2002년엔 중앙일보와 행정자치부가 공동주관한 제26회 청백봉사상 대상을 수상한 전력도 있다. 그해 12월엔 제주도에 의해 행정부문 ‘제주를 빛낸 사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년 월간 한맥문학사의 ‘한맥문학’에 의해 수필부분 신인상으로 등단한 수필가다. 공직을 퇴직한 후에는 그동안 미루어 왔던 깊은 독서와 보이차의 매력에 흠뻑 젖어서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