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5 (일)

  • 맑음동두천 23.2℃
  • 흐림강릉 23.5℃
  • 구름많음서울 23.9℃
  • 구름많음대전 23.2℃
  • 흐림대구 21.8℃
  • 흐림울산 21.8℃
  • 흐림광주 22.4℃
  • 흐림부산 22.3℃
  • 흐림고창 23.4℃
  • 구름많음제주 24.7℃
  • 구름많음강화 22.9℃
  • 흐림보은 22.0℃
  • 흐림금산 21.7℃
  • 흐림강진군 22.4℃
  • 흐림경주시 21.8℃
  • 흐림거제 21.7℃
기상청 제공
검색창 열기

[김효곤 교사의 우리말 톺아보기(25)]일제강점기 생뚱맞게 바뀐 이름

 

무더위가 한창인 요즘, 들판에 나가 보면 길가나 냇가, 논둑 밭둑 등 어디서나 흔히 며느리밑씻개 또는 그 형제 격인 며느리배꼽의 가시 돋친 덩굴이 제멋대로 벋어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두 가지를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는 여전히 헷갈리지만, 가벼운 여름 옷차림으로 무심코 풀섶에 들어섰다가 거꾸로 난 날카로운 가시에 쓸려 팔다리에 피가 맺혀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뒷면에 가시가 가득하면서도 새콤한 삼각형 이파리를 쉽게 잊지 못할 겁니다.

 

저는 고마리 닮은 조그만 분홍빛 꽃들이 올망졸망 한데 모여 피어 있는 모습,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서 꽃이 진 자리마다 열 몇 개씩 달린 팥알만 한 동그란 열매가 파란빛, 보랏빛을 거쳐 검게 변해 가는 모습이 어쩌다 눈에 띄면, 그 앙증맞은 모습에 홀려 가던 길을 잊은 채 잎을 한두 장 뜯어 그 새콤하고 까칠한 느낌을 혀로 느끼면서 한참씩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 ‘며느리밑씻개’라는 예사롭지 않은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다 그에 얽힌 슬픈 사연이 있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저 또한 얼마 전까지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이름을 듣는 순간 누구나 ‘심술궂은 시어미에게 구박받는 불쌍한 며느리의 애잔한 모습’이 떠오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그런 전설은 있을 수도 없다는 것을 요즘에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이 흔해 빠진 가시덩굴을 ‘며느리밑씻개’라는 얄궂은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겨우 80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문화에 얼룩진 우리 문화의 본모습을 찾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연구하고 있는 이윤옥 선생이 낸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에 따르면, 이 풀에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처음 붙은 것은 1937년에 나온 “조선식물향명”이라는 책에서입니다. 그에 앞서 1921년에 나온 “조선식물명휘(名彙)”만 보더라도 '사광이아재비'라는 버젓한 이름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 십여 년 후 난데없이 ‘며느리밑씻개’라는 생뚱맞은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식물학자들은 이 풀의 원래 이름 '사광이아재비'를 버리고 대신 일본 이름인 ‘마마꼬노시리누구이(継子の尻拭い)’, 즉 ‘의붓자식의 궁둥이 닦기’에서 ‘의붓자식’만 ‘며느리’로 바꾸어 올린 겁니다. 아울러 ‘사광이풀’에도 ‘며느리배꼽’이라는 새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무리 일제강점기라 해도 한국인 학자들이 낸 책에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을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광이’란 살쾡이, 즉 고양이 종류를 뜻하는 것으로 봅니다. 고양이나 살쾡이, 호랑이 등 고양잇과의 육식동물들은 속이 불편하면 시큼한 풀을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잘 먹는 풀에 ‘괭이밥’, ‘사광이풀’ 같은 이름을 붙였을 거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요.

 

한편으로는 ‘소리쟁이’, ‘싱아’, ‘수영’, ‘까치수염’ 등 이름에 ‘ㅅ’ 자가 들어간 풀들은 대체로 신맛을 내므로, ‘사광이풀’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신맛이 나는 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광이아재비’를 찾아보면 ‘며느리밑씻개의 북한어’, ‘사광이풀’은 ‘→ 며느리배꼽’이라고만 나와 있습니다. 남쪽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잊힌 ‘사광이풀’, ‘사광이아재비’라는 우리 이름이 북쪽에서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이지요. 종종 그렇습니다만 북쪽이 남쪽보다는 훨씬 더 우리말 지킴이 노릇에 충실합니다. 언젠가 얘기했듯이 일본식 표현이라고 모두 뒤집어엎을 수는 없겠습니다만, 최소한 그 유래쯤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것이 아닌데 우리 것으로 착각해서는 꼴이 우스워집니다.  [김효곤/ 서울 둔촌고등학교 교사]

 

☞김효곤은?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35년여 고교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청년기 교사시절엔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의 기자생활도 했다. 월간 <우리교육> 기자와 출판부장, <교육희망> 교열부장도 맡았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 강좌를 비롯해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 편집위원회, 한겨레문화센터, 여러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기자·일반인을 상대로 우리말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전교조신문>,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 정기간행물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 논술 강좌 등을 연재했다.

 

 

 

배너

관련기사

더보기
34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배너

제이누리 데스크칼럼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제이누리 칼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