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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곤 교사의 우리말 톺아보기(27)] 반대하는 이유(2)

 

앞선 글에서 국한문 혼용론을 주장하는 분들의 논리를 요약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같은 주장들이 충분한 논거를 갖추지 못한 억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한자를 섞어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한자를 쓰지 않으면 동음이의어가 많아진다는 주장은 특히 일본어와 비교해 볼 때 굳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입니다.

 

일본어는 음절문자로서 발음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동음이의어가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즉, 일본어는 청음, 탁음, 반탁음, 요음을 모두 합쳐도 106가지 발음에, 받침이라고는 ‘ん’ 하나뿐이라 최대 212개 음절까지 발음할 수 있습니다((45+20+5+36)×2=212).

 

이에 비해 우리말은 초성 19개, 중성 21개에다가 받침소리 7개와 받침 없는 경우까지 더하면 최대 3천개가 넘는 음절을 발음할 수 있습니다(19×21×(7+1)=3,192). 이걸 다시 두 음절짜리로 확대해 보면 그 차이는 무지막지하게 벌어집니다. 일본어는 212개의 제곱이니 5만이 채 안 되는 데 비해(44,944가지) 우리말은 3,192개의 제곱이니 1000만이 훌쩍 넘습니다(10,188,864가지).

 

이렇듯 다양한 발음이 가능하니 동음이의어가 적을 수밖에 없고, 간혹 있다 하더라도 문맥 속에서 충분히 그 뜻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일본말은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아져서 고유 문자인 가나만으로는 도저히 뜻을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불편을 무릅쓰고 한자어를 섞어 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말은 컴퓨터든 휴대폰이든 입력이 간편하나, 한자나 일본어는 입력하기가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한자는 글자판에 다 올릴 수 없는 것이 당연하고, 일본어도 글자판에 올리다 보면 숫자나 특수문자 영역까지 다 차지해 버리기 때문에 한글자판이나 영문자판에 비해 타수가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생략합니다.

 

* 해방 후 한글운동의 선구자였던 외솔 최현배 선생은 한때 ‘우리말 가로 풀어쓰기’를 주장한 바 있습니다. 한글은 초, 중, 종성이 모여 한 음절을 이루는데, 가로뿐 아니라 세로로도 붙여 써야 하기 때문에 입력하기가 불편해서 기계화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수동타자기 시절의 얘기이고, 컴퓨터 입력 체계가 발전하여 한글 모아 찍기가 자동으로 실현되는 지금은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음절 구분이 어려운 영어와 달리 한 음절씩 정확히 구별되는 우리말이 컴퓨터 공학적으로는 더 유리한 점이 많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셋째, 똑같은 한자를 세 나라에서 같이 쓴다 해도 뜻이 항상 같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애인(愛人)’이라는 말은 우리말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남편이나 아내’, 일본에서는 ‘남편이나 아내 몰래 만나는 이성, 즉 정부’를 뜻합니다. 또, ‘기차(汽車)’가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열차를 뜻하지만, 중국에서는 자동차를 뜻합니다. 이런 예는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니 삼십년 쯤 전 일본에서 안중근 의사를 ‘장사(壯士)’라고 표현하여 논란이 된 적도 있습니다. ‘장사’는 우리말에서도 ‘몸이 우람하고 힘이 아주 센 사람’이라는 뜻이어서 안중근 의사와는 동떨어진 생뚱맞은 표현이지만, 일본말에서는 한술 더 떠서 ‘1. 씩씩한 남자, 2. 폭력으로 사건 교섭이나 협박을 일삼는 건달’이라는 뜻이어서 대놓고 안중근 의사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얄팍한 표현이었던 것이지요.

 

<동아일보 - 1986년 6월 17일자>

 

넷째, 세 나라에서 쓰는 한자는 이제 서로 글자 모양부터 다릅니다.

 

한자를 원래대로 쓰는 나라는 우리뿐이고, 중국은 간체자, 일본은 약자를 씁니다. 두 나라 다 한자를 쓰지 않을 수 없기에 복잡한 글자를 간편하게 줄여 쓰는 문화가 발달한 것이지요. 이때 획수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발음이 비슷하면서 획이 적은 다른 글자를 차용하여 쓰는 일도 흔하기 때문에 아무리 한자의 원래 뜻을 정확히 안다 해도 한참 달라진 현대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통하지 않아 당황하게 됩니다.

 

다행히도(!!) 일본의 약자는 ㅈㅅ일보나 ㅅㅅ그룹 등 일부 일본문화 애호 계층에서 열심히 퍼 나른 덕에 어느 정도 알아볼 수도 있지만, 중국의 간체자는 웬만큼 한자를 안다는 사람들조차도 대부분 알아보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한국인이 제대로 갖추어 쓴 한자를 정작 중국이나 일본 사람들은 거의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섯째,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동안 남긴 방대한 한문 서적들을 읽으려면 한문을 공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 엄청난 문화유산을 그대로 묻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일상생활에서 국한문을 혼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전문가들을 키워 연구와 번역에 종사하게 하면 될 일이지 모든 사람이 다 한자를 공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지요.

 

이미 50여 년 전에 민간 주도로 민족문화추진회를 설립한 후, 국역연수원을 열어 한문 번역가들을 키워내기 시작했습니다. 최근에는 이 일을 국립 한국고전번역원에서 이어받았다고는 하는데, 과제로 놓인 어마어마한 유산에 비해 그 규모나 지원은 미약한 듯합니다. 나라에서 이 일에 더 공을 들여야겠지요. [김효곤/ 서울 둔촌고등학교 교사]

 

☞김효곤은?
=연세대 국문과를 나와 35년여 고교 국어교사를 하고 있다. 청년기 교사시절엔 전교조신문(현 교육희망)의 기자생활도 했다. 월간 <우리교육> 기자와 출판부장, <교육희망> 교열부장도 맡았었다. 1989년 이후 민주언론운동협의회가 주최하는 대학언론 강좌를 비롯해 전국 여러 대학 학보사와 교지 편집위원회, 한겨레문화센터, 여러 신문사 등에서 대학생·기자·일반인을 상대로 우리말과 글쓰기를 강의했다. <전교조신문>, <우리교육>, <독서평설>, <빨간펜> 등 정기간행물에 우리말 바로쓰기, 글쓰기, 논술 강좌 등을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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