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괘(訟卦)
송(訟)은 다툼, 논쟁, 쟁탈, 쟁송의 뜻이다. 다툼은 화기(和氣)를 손상시킨다. 화(和)함이 없으니 분열이 일어난다. 분열은 힘의 약화를 의미한다. 에너지의 손실이다. 고립된다. 출로가 없다. 궁지에 몰린다. 실패한다.
다툼이 생기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좌전(左傳)』은 말한다.
“어지러움으로 정돈됨을 바꾸는 무덕(武德, 안: 무력을 씀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아니다.”1)
무슨 말인가? 분열과 혼란으로 단결을 대체하는 것은 무사의 도리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날에 적용한다면, 고의로 다툼을 야기하고 단결을 저해하며 혼란을 초래하여 평화안정과 번영발전을 대체하는 것은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
『주역』은 말한다.
“송은 믿는 바가 있으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지함은 길하고 끝까지 함은 흉하다."2)
늘 다른 사람과 다투는 사람은 승부욕이 강하여 항상 이기려고만 한다. 그런 사람은 점차 앞길이 막히고 고립되게 된다. 고립돼 외로워지면 중정지도(中正之道)를 두려워하고 경계하게 된다. 중정(中正: 치우치지 않고 올바름, 정직하고 공정함)하지 않으면 길하지 않다. 결국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다툼이 결국 우리에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하니, 우리는 가능한 한 다툼을 피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툼을 피할까? 다툼을 피하려면 반드시 되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일이 생기기 전에 되돌아봐야 한다. 사소한 부분까지 고려하여야 한다. 그래야 모든 일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
좌절을 맛보게 되더라도 앞서 확실하게 고심하여 준비하였기 때문에 막판에 일을 망치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된다. 일을 한 후에도 되돌아봐야 한다. 그 속에서 경험을 얻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런 후, 성공의 길을 닦아야 한다.
순자가 말했다.
“군자가 널리 배우고 날마다 거듭 자신을 돌아보면 지혜가 밝아지고 행동에 지나침이 없어지게 된다.”3)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도 말했다.
“나는 매일 세 가지로 나를 반성한다.”4)
성인들도 하루에 세 번 되돌아보는데 어찌 우리와 같은 보통사람이야?
반성이란 말을 떠올릴 때면 독일을 생각하게 된다. 독일은 역사 문제에 있어 반성하고 직시한다. 그래서 일까, 세계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뛰어난 나라를 건설하였다.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을 대하는 태도는 적극적이고 진실하다. 히틀러에서 나치, 다시 유태인 문제까지 어느 하나 회피하지 않는다. 독일 정부나 국민 할 것 없이 결코 회피하지 않고 진심으로 반성한다. 5월 8일이 항복일이지만 독일인은 그날을 ‘해방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날이 히틀러 독재에서 벗어난 날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독일인의 반성은 독일을 세계의 지지와 찬양을 받는 나라로 만들었다.
반면에 일본은 이런 방면에서는 증오의 대상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은 아시아에서 하늘에 사무칠 죄행을 저질렀다. 오늘날 일부 일본인은 여전히 염치라는 것을 모른다. 자신들이 2차 대전 당시 아시아에서 저지른, 용서할 수 없는 죄행을 감히 마주 대하려 하지 않는다.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른다. 심지어 역사교과서를 고쳐 역사조차 바꾸려 한다.
일본의 정객들은 야스쿠니 신사를 재삼재사 참배하면서 아시아인의 감정을 해치고 있다. 아시아인과 선량한 일본 국민의 소망을 위배하고 있다. 역사는 역사다. 어떤 사람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다. 강철 같은 사실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영원히 새겨져 있다.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잘못을 고칠 수 있다.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다툼을 피할 수 있다.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다. 반성할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울 수 있고 재능을 키울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고 큰 내를 건넘에는 이롭지 않다.”5)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당신과 타인 간에 다툼이 생겼다면 제3자나 비교적 명망 있는 사람을 찾아가 쟁의를 담당하게 하고, 화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절묘한 방법이라는 말이다.
두 사람 사이에 유쾌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면 피차 화가 난 상태다. 얼굴이 빨개지고 목에 핏대를 세운, 붉으락푸르락한 상태다. 서로 양보하지 않는다. 누가 이치에 맞다하더라도 쌍방은 인내심을 가지고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때에 제3자나 명망 있는 인물이 중간에서 화해시키면, 적대적인 쌍방이 그 사람을 존경한다면, 앉아서 마음이 평온하고 태도가 온화한 상태로 제3자의 의견을 들을 것이다. 한쪽으로는 쌍방의 노기를 가라앉혀 나간다.
너무 흥분하면 경솔해지고 덤벙대진다. 그러면 일이 복잡해진다. 그것을 방지하여야 한다. 제3자의 의견은 비교적 공평하다. 모두 쉬이 받아들일 수 있다.
“큰 내를 건넘에는 이롭지 않다.”
서로 다툼이 생겼을 때 양보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다툼이 심화되거나 계속되지 않는다. 한도 끝도 없이 쌍방 모두 총칼을 들고 마주하게 되면 대대적으로 전쟁을 벌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려야 끝이 난다. 그것을 길하지 않다.
한 순간을 참으면 무사평온하다. 한 발 물러서면 바다와 하늘이 한없이 넓다.
공자가 말했다.
“예의를 행하는 데는 화평(和平)이 귀중하다.”6)
다툼을 피해야만 조화롭고 원활하게 된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모두 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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訟卦 ䷅ : 天水訟(천수송) 건(乾: ☰)상 감(坎: ☵)하
송(訟)은 믿음이 있으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도를 지키면 길하고, 끝까지 하면 흉하다./ 송(訟)은 믿음이 있으나 막히니, 두려워하여 중도를 지키면 길하고, 끝까지 하면 흉하다.(訟,有孚窒惕,中吉,終凶.)
“송은 믿는 바가 있으나 막혀서 두려우니, 중지함은 길하고 끝까지 함은 흉하니, 대인을 보는 것이 이롭고 큰 내를 건넘에는 이롭지 않다.”(訟,有孚,窒惕,中吉,終凶.利見大人,不利涉大川)
송괘는 인간사회의 작은 다툼을 상징한다.
[傳]
송사하는 도는 반드시 믿음과 진실이 있어야 한다. 속에 진실이 없으면 속이고 망령된 것이니 흉한 도리이다. 괘의 가운데 효가 이어져 있으니 ‘믿음이 있는’ 상이다. ‘송사’라는 것은 다른 사람과 다투고 변론하여 남에게 판결을 기다리는 것이다. 비록 믿음이 있더라도 막혀서 통하지 않는 것이다. 막히지 않았다면 이미 분명하여 송사가 없을 것이다. 일이 분변되지 못해서, 길하고 흉함을 기필할 수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중도를 지키면 길하다”라 함은, 중도를 얻으면 길하다는 것이다. “끝까지 하면 흉하다”라는 것은, 송사를 끝까지 하면 흉하다는 것이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1) 以亂易整,不武.(『좌전·촉지무퇴진사(燭之武退秦師)』)
2) 訟,有孚,窒惕,中吉,終凶.
3) “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智明而行無過矣.”(先秦·荀况『荀子·勸學』)
4) “나는 매일 세 가지로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않았는지? 친구와 교제하면서 미덥지 않았는지? 제자에게 지식을 전수하면서 스스로 익숙하지 않았는지?”(曾子曰:“吾日三省吾身:爲人謀而不忠乎?與朋友交而不信乎?傳不習乎?)
5) 利見大人,不利涉大川.
6) 禮之用,和爲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