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인괘(同人卦)
동인(同人)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것이다. 모이면 교류하여야 한다. 교류하여야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여야 일치된 의견을 이룰 수 있다. 서로 한데 뭉치고 단체에 융합되어 들어가니 조화를 이루고 행복이 충만하다.
혼자 서서 홀로 가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강하의 물은 물결을 일으키며 세차게 흘러가니 대단히 도도하다. 시내 물은 졸졸 흐르니 온화하고 조용하다. 큰 강과 시냇물은 기세 상으로 보면 도무지 맞지 않아 서로 배척할 것 같은데 결국에는 서로 손잡고 ‘같은 큰 가정’으로 유입된다.
사람이 늑대를 말하면 머릿속에서는 흉악하고 잔인하며 사람을 위압하는 대단한 기세를 가진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외경하는 동물인 늑대는 여태껏 오랫동안 흥성하며 생존해 왔다. 늑대 대가족은 견줄 상대가 없는 응집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결, 맞붙어 끝까지 싸우는 끈기, 향상능력, 간담상조,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다.
얼음은 딱딱하다. 굳어있다. 여러 얼음조각을 한 곳에 놓아두면 어찌 두더라도 같이 융합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녹여 물로 만들면 자동으로 일체가 된다. 어떤 격의도 없이 매우 친밀한 친우가 된다. 강에 있든 바다에 있든 호수에 있든 아니면 산골짜기에 있든 들이나 산맥에 있든 결국 용맹하게 기세 좋게 공동의 목표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마음이 서로 융합될 때 단결하고 협조하게 되고 깊은 사랑을 나눈다. 비할 데 없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기세 드높게 큰일을 너끈히 해낸다.
뇌봉(雷鋒)은 일찍이 말했다.
“한 떨기 꽃은 아름다운 봄날을 장식하지 못한다. 한 사람이 앞서 나아가면 결국 단기필마일지니, 여러 사람이 앞서 나아가야 산을 옮기고 바다를 메울 수 있나니.”
그렇다. 오늘날은 단체의 시대다. 어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도 혼자 힘으로는 위대한 업적을 만들어 내기 쉽지 않다. 반드시 광활한 무대로 나와 자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튼튼한 뒷받침이 자신을 지지해 줘야 한다. 서로 융합된 단체가 자신에게 협조해 줘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현 사회 속에서 강력한 지혜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고 갈수로 더 강력하게 변할 수 있다.
『주역』은 말한다.
“광대한 들판에서 사람과 함께 하니 형통하다.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군자는 바르게 함이 이롭다.”
사람들이 넓고 넓은 아름다운 곳에 모여,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말하고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며 한마음 한뜻이 되고 상하가 한마음으로 뭉치면, 천지와 그 덕을 합치고 일월과 그 밝음을 합치며 여러 사람과 그 이익을 합치면, 가장 좋고 길하다. 그렇게 되면 천재지변이나 인재나 고통과 빈곤을 만나더라도 해결하기 어렵지 않다.
만약 큰 사업을 할 생각이 있다면 반드시 집단에 융합돼 들어가야 한다. 사회에 융합돼 들어가야 한다. 사람과 화목하고 함께 지내야 한다. 당신이 타인과 화목하고 함께 지낸다면 다른 사람도 당신과 한데 뭉쳐 어울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주 읊조리지 않던가, 일을 이루려면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사람됨을 첫 번째 위치에 놓으면 사업은 줄기차게 발전할 것이다.
사람은 인연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 인연을 만들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단체와 한데 뭉쳐 어울려야 한다. 단체에 융합돼 들어갈 생각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주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교류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의 소리를 이해하여야 한다. 타인이 생각하는 바를 생각하고 타인의 어려운 일을 도와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단체에 융합돼 들어갈 생각이라면 사귐성이 있어야 한다. 겸허하고 신중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의 비평과 교육을 용감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좋은 관점과 의견을 잘 제시하여야 한다. 평등하게 사람을 대하고 특별취급해서는 안 된다. 권위를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 신축적으로 자제하고 섬세함과 강인함을 아울러야 한다. 어진 이를 예의와 겸손으로 대해야 한다.
『주역』은 말한다.
“사람과 함께 문에 있으니, 허물이 없다. 문을 나서 사람과 함께 하니 또 누가 허물이 있겠는가.”
동문, 친척과 화목하고 함께 지내면 나쁠 것이 없다. 밖에 나갔을 때 마땅히 다른 사람과 화목하고 함께 지내며, 사귐성 있게 만나고 일시동인(一視同仁)하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무엇이 그리 어렵겠는가?
기원전 11세기, 상(商) 왕조가 멸망한 후 서주(西周) 왕조는 그 정권을 공고히 하려고 분봉제도를 추진하였다. 귀족과 공신에게 사방을 나누어 봉하고 건도 입국하였다. 강태공(姜太公)은 제(齊) 지역을 분봉 받아 제나라를 건립하였다.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은 노(魯) 지역을 분공 받아 노나라를 세웠다.
강태공이 제 지역을 분봉 받아 건국한 지 5개월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제나라를 안정시키고 주공에게 제나라에서 시행한 정치 상황을 보고하였다. 당시 주공은 놀랍고도 기이하다고 느껴 물었다.
“어떻게 그리도 빨리 하셨소?”
강태공이 대답하였다.
“군신 사이의 예절을 간소화했고 현지의 풍속에 순응했기에 그렇게 빨리 시행된 것입니다.”
백금은 노 지역에 도착한 후 3년이 지나서야 주공에게 노 지역의 정치 상황을 보고하였다. 주공은 불만스러워 물었다.
“어째서 이렇게 늦게야 보고하는 것이오?”
백금이 대답하였다.
“그곳의 풍속을 개혁하고 그곳의 예법을 혁신하여서 3년 후에나 효과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주공은 저도 모르게 탄식하며 말했다.
“아, 노나라의 후대는 장차 제나라의 신민이 되겠구나! 정치상의 법도와 규칙이 간략하고 쉽게 행하지 못하면 백성은 가까이 하지 못한다. 정치사의 법도와 규칙이 평화롭고 쉽게 행해지면 백성은 틀림없이 귀순해 따른다.”
‘풍속에 따르며 예절을 간소화하고 평이하여 쉽게 이해되는 것’이 강태공이 건국하는 3대 기본 국책 중 하나였다. 그는 제나라에 온화하고 달관하는 국풍을 마련하였고 자유롭고 낙관적인 민풍을 진작시켰다. 그리하여 제나라가 춘추시기에 패자가 되고 전국시기에 칠웅이 되는 데에 기틀을 다졌다.
같은 민족이든 다른 민족이든, 같은 종교든 다른 파벌이든 우리는 ‘같은 큰 가정’에서 생장하고 있다.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서로 융합되고 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돕고 있다.
아주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개미는 자기 집 주변을 왔다 갔다 한다. 그저 보기에는 새까맣게 모여들어 빽빽하게 어지러이 뒤죽박죽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세밀하게 분업돼 있고 서로 협력하며 한창 진행 중인 ‘집 만들기 사업’을 질서정연하게 진행하고 있다. 모든 구성원 개개인이 평범하면서도 감탄할만한 위대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개미는 한 곳에 어려움이 있으면 팔방에서 지원한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는 단체정신을 갖추고 있다. 견실하고 성실하게 힘을 다하여 열심히 일한다. 피차 조화롭게 공동의 ‘궁전’을 건축한다. 행복하고 원만하게 자기의 자손후대를 양육한다. 우리 인류가 배워야 하는 본보기이다.
단체가 최고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일단 한 개인이 단체를 벗어나면, 번잡한 사회의 장애를 멀리 벗어나려고 망상을 가지게 되면, 깊은 산속이나 숲속에 은거하거나 고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면, 개인영웅주의를 실행하여 모든 일을 누가 뭐라 하여도 평소 자기식대로 하면 타인과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의견과 관점은 단편적이거나 극단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럼 문제가 생긴다.
공자(孔子)는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실현시키려고 세상을 두루 유람하고 사해를 떠돌아다녔다. 여러 나라를 주유하면서 가는 곳마다 학문을 설파하였다. 한번은 주유 도중에 농사짓는 은사를 만났다. 급히 나아가 겸손하게 은사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은사는 체면을 봐주지도 않고 공자가 바보라고 비웃었다.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은 금수와 같이 살아서도 안 되고 현실을 도피하는 태도를 채용해서도 안 됩니다. 내가 사람과 같이 살지 않는다면 누구와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은사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단체정신이다. 단체정신이 요구하는 것은 여러 가지 소질이 전면적으로 발전한 인재다. 한 개인은 정밀하고 깊은 전공 기술 능력 이외에 멸사봉공의 정신을 갖추어야 한다. 융통성 있는 협조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도의 책임감과 적극적인 창신 정신이 있어야 한다.
사사로운 욕망과 감정을 비워버린 공정한, 텅 빈 들판과 같은 마음으로 사람과 함께 할 때, 모든 사람이 일치된 마음으로 협동하며 살아갈 수 있다.
참고로, ‘동인(同人)’의 ‘동(同)’은 ‘화(和)’와 대립된 획일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의 뜻까지 포함된 ‘같이 하다’, ‘함께 하다’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동인’은 ‘사람들과 같이하다’고 풀이될 수 있으며, 동인괘는 세상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화합하면서 살아가는 대동사회를 건설하는 방도를 제시한 괘라고 할 수 있다.
괘상을 보면 하늘 아래에 불이 있는데, 하늘은 위에 있고 불도 위로 타오르는 성질을 갖고 있으므로 하늘과 성향을 같이한다. 또한 구오(九五)와 육이(六二)는 각각 중정한 효로서 상호 감응해 상하가 함께 하고 있다.
그러나 2효에서 “일가친척끼리 함께하는 것이니 인(吝)할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혈연·지연·학연 등 사사로운 관계에 얽매인다면 파당을 짓게 되어 대동사회는 무너지게 되는 것이다.
동인괘는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주체가 되는 지도자가 무엇보다 사리사욕과 사사로운 인간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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同人卦 ䷌ : 天火同人(천화동인), 건(乾 : ☰)상 리(離 : ☲)하
초구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를 문 밖에서 하니, 허물이 없다.(初九,同人於門,无咎.)
「상전」에서 말하였다 : 문을 나가 사람들과 함께 함을 또 누가 허물하겠는가?(象曰,出門同人,又誰咎也.)
광대한 들판에서 사람과 함께 하니 형통하다. 대천을 건너는 것이 이로우니 군자는 바르게 함이 이롭다.(同人於野,亨.利涉大川,利君子貞.)
사람과 함께 문에 있으니, 허물이 없다. 문을 나서 사람과 함께 하니 또 누가 허물이 있겠는가.(同人於門,無咎.出門同人,又誰咎也.)
[傳]
동인괘는 「서괘전」에서 “사물[물(物)]은 끝내 비색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동인괘로 받았다”고 하였다. 하늘과 땅이 서로 교류하지 못하면 비색하게 되고, 위와 아래가 서로 함께 하면 동인괘(同人卦䷌)가 되니, 비괘(否卦䷋)와 그 뜻이 반대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이어지게 했다. 또 시대가 비색하게 되면 반드시 사람들과 함께 힘을 써야 구제할 수 있으니, 동인괘로 비괘를 이은 까닭이다. 괘의 모양은 건괘(乾卦☰)가 위에 있고 리괘(離卦☲)가 아래에 있다. 두 개의 상으로 말한다면, 하늘이 위에 있는데 불의 성질이 타 올라가서 하늘과 함께 하기 때문에 동인괘이다. 두 개의 몸체로 말한다면, 오효가 바른 자리에 있어 건괘의 주인이고 이효는 리괘의 주인이니, 두 효가 가운데에 있고 제자리에 있음으로 상응하면서 위와 아래가 서로 함께하니, 남들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또 괘에 하나의 음만 있어 여러 양들이 함께 하고자 하는 것도 남들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다른 괘에도 진실로 하나의 음이 있는 경우가 있지만, 남들과 함께 하는 때에 있으면서 이효와 오효가 서로 응하고 하늘과 불이 서로 함께 하기 때문에 그 뜻이 크다.
☞이권홍은?
=제주 출생. 한양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나와 대만 국립정치대학교 중문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현대문학 전공으로 『선총원(沈從文) 소설연구』와 『자연의 아들(선총원 자서전)』,『한자풀이』,『제주관광 중국어회화』 등 다수의 저서·논문을 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중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