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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소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19)

19.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근데
정말로
재밌긴 했을까

 

“우리 과 MT를 여기서 하려고 하는데 이틀 임대가 가능한지요?”

 

가끔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에 들리는 단짝 사내들이 있다. 제주시 쪽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전공하고 있는 신출내기 대학생 4명이 바로 그들이었다. 내 또래이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 학생들에게 동성애자들 같다는 농담을 했었다. 그만큼 친해 보였다는 얘기인데 지나친 농담이긴 하지만 실제로 이들은 상당히 특이했다. 고향은 다 달랐다. 인천, 오산, 천안, 청주 등지에서 온 소위 집 떠나온 유학생들이었다. 다르다는 점이 이들을 같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또래인 내가 봐도 이 친구들은 참으로 절친해 보였다. 하지만 매번 올 때마다 주문하는 노래는 각기 다 달랐다. 트로트에서 서양팝송에 이르기까지 형일이는 모르는 노래가 없었고, 규남이는 신세대 노래를 즐겨 찾았다. 아버지가 듣도 보도 못한 노래를 어떤 재주로 불러줄 수 있겠는가. 재현이는 제 외모처럼 조용하고 얌전한, 보기엔 내숭 같은 노래를, 동훈이는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하지만 형일이처럼 수준급 매니아는 아니고 따라 부를 정도의 분위기맨이었다. 개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이들은 잘 어울렸다.

 

 

좁아서 되겠느냐 했지만, 마흔 명이 쓰기엔 좁더라도 마당이 있으니 장소는 문제가 없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연히 이틀 사용료도 지불해 드리지만 깨끗이 쓸 테니까 염려 마세요. 그리고 우리가 먹을 것, 마실 것은 미리 준비해 와도 되지요? 학생들이잖아요.”

 

동훈이가 아버지의 팔을 붙들며 사정을 해왔다. 이런 데서 꼭 오래 남을 추억을 만들고 싶다며 규남이가 거들었다.

 

“사장님은 우리에게 흔쾌히 내 주실 거야. 단, 요구사항이 하나 더 있어요. 사장님을 저희 MT에 라이브 카페 주인이 아니라 게스트로 모실까 해요. 가수로요.”

 

“물론 출연료도 드릴 겁니다. 비록 끝내주게 적지만.”

 

재현이는 동훈이가 잡지 못한 아버지의 다른 팔을 끌었다.

 

“다섯 곡은 준비해주셔야 하고요, 앙코르곡도 두어 곡이 필요할 테니 악보를 마련해두셔야 할 겁니다.”
무뚝뚝해 보이는 형일이가 준비해야 할 다섯 곡을 정중하게 요구했다. 진짜 가수와 계약을 하듯.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김도현 밴드의 <사랑 two>, 그리고 박은옥·정태춘의 <봉숭아>. 앙코르곡은 가수 맘이라며 선심을 썼다.

 

“아빠, 드디어 정식 초청가수가 됐네.”
“그럼, 언젠 가수가 아니었더냐?”
“가수이긴 했지. 헌데 자칭이지 초청은 한 번도 없었잖아. 이번엔 타칭에 초청까지... 우와 울아빠 출세했다. 동네사람 여러분, 우리 아빠가 글쎄...”

 

손마이크로 동네방네 소문을 낼 작정이었다. ‘정식가수입문’ 현수막이라도 걸까? 이렇게 내가 그들의 MT를 허락해주고 있었다.

 

날자가 잡혔고 학생들이 사용료를 묻자 ‘알아서 적게 달라’고만 했다. 2주일을 남겨 놓고 아버지는 노래연습에 들어갔다. 참으로 열심이었고 그전 자칭 가수 때보다 열정적이어서 더 신명나 보였다. 초대는 충분히 기분 좋게 만드는 거였다. 초청은 충만히 달뜨게 만들 만했다.

 

“더 좋아, 아빠?”
“언젠 안 이랬냐? 최선을 다하는 건 언제나 같아야 하는 법이야. 법이라고. 법은 지켜야 하는 거구.”

 

목소리에 무게가 실렸다.

 

“안 그래 보이는데? 더 신나 보이는 걸?”
“얀마, 사십 명이라잖아. 그전과는 다르잖니. 그리고 어린 학생들 앞이니 더욱더 신경을 써야지.”

 

관객(손님) 열 명 정도까지 둔 적은 보았다. 정말 많긴 많은 수가 처음으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이 노래, 아니? 처음 듣는데... 한번 불러볼래?”

 

나도 <애인 있어요>는 생소하다고 했다.

 

“여기 이 부분, 참 좋네. ‘그 사람 갖고 싶지 않아요. 욕심나지 않아요. 그냥 사랑하고 싶어요.’ 아직 모르겠지? 이 말 뜻을? 지나면 다 알게 돼.”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라고? 스스로 떠났으면서... 라이브로 직접 들어봤는데 꽤 밝은 청년이 어쩌다가... 농담도 아주 잘 하고. 나이 마흔 되면 할리 데이비슨인가 하는 오토바이 타고 세계여행 간다느니, 예순 되면 연애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 친구 마흔 전에 떠났지? 알 수 없는 일이야, 미래란 누구도!”

 

<서른 즈음에>를 부르면서 가수 김광석을 얘기하고 있는 듯했다.

 

“이 안에 들어오면 사심, 사욕이 없어졌어. 정말이야. 그런데 손님들이 찾아오고 그래서 돈도 좀 벌리고. 사람들도 여기서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덕분에 여기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 이게 사랑인 거구.”

널 만나면 말없이 있어도 또 하나의 나처럼 편안했던 거야
널 만나면 순수한 네 모습에 철없는 아이처럼 잊었던 거야

 

“그러고 보니, 한 동안 이 노래를 안 불렀구나. 이 노래 때문에 가게 이름을 이것으로 할까도 생각했는데. 한동안 <봉숭아>에 소원했구나.”

 

초저녁 별빛은 초롱 해도 이 밤이 다하면 질 터인데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가고 저 별이 지기를 기다리나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곱디고운 내 님은 어딜 갔나
별 사이로 맑은 달 구름 거쳐 나타나듯
고운 내 님 웃는 얼굴 어둠 뚫고 나타나소
초롱한 저 별빛이 지기 전에 구름 속 달님도 나오시고
손톱 끝에 봉숭아 지기 전에 그리운 내 님도 돌아오소

 

“이 노래는 그 4인조 깡패들에게 딱 맞는 노래인 걸? 지금 그 마음처럼 늘 변함없는 우정을 간직하라고 기도하며 불러야겠구나. 참, 승철이 하고는 연락하니? 평생 친구로 소원해지는 일 없도록 애 쓰거라. 오래 간직하려거든 평소 노력해야 하는 거거든. 네 이름도 친구의 소중함을 알며 살라는 뜻에서 이 태백의 시, <우인회숙>에서 따온 거잖니.”

 

아버지는 높은 음에 힘들어하면서도 포기하진 않았다.

 

너에게 난 해질녘 노을처럼 한편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소중했던 우리 푸르던 날을 기억하며 후회 없이 그림처럼 남아주기를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이 노래는 학생들에게 눈을 감고 들어보라고 해야겠어. 눈 감고 먼저 들어 보겠니?”

 

「나에게 넌 ......
조그맣던 너의 하얀 손 위에
빛나는 보석처럼 영원의 약속이 되어
......
반짝이던 너의 예쁜 눈망울에
수많은 별이 되어 영원토록 빛나고 싶어
너에게 난 ......」

 

이틀간의 MT는 그럭저럭 잘 끝났다.

 

“아주 깨끗이 치우고 청소까지 다 해놓고 갔어. 전보다 더 말끔해졌다고, 봐봐. 홀도 주방도 다. 앞으로 한 달간 소제하지 않아도 되겠다. 야아, 다시 봐야겠어. 조국의 젊은 놈들을... 나를 비롯하야...”
“그 친구들, 청소하고 있을 때 아들은 뭘 했지?”
“이거, 받아왔잖아. 실속! 아빠한테 직접 드리면 안 받을지 모른다며 내게 주고 갔어.”

 

사장님께,
자리를 허락해주셔서 잘 놀다 갑니다.
회비를 반절로 뚝 줄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모두
무척 만족해했습니다. 그냥 만족이 아니라 대만족!
사장님이 ‘짱’이라네요.
하루만이라도 아버지로 삼고 싶다는 여학생도 있었어요.
사장님이 귀엽다면서...
특히 앵콜로 불러주신 <넌 할 수 있어>는,
들을 때도 뭉클했지만 지금도 힘이 솟구칩니다.
언제 그렇게 기타실력이 느셨어요?
과의 다른 친구나 선배들도 이 카페를 알게 돼
기쁘다고 하며 아지트로 삼겠다고 하네요.
저희도 더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사용료라기보다는 저희들 마음으로 받아주세요.
저희가 받은 것에 비해 너무 적어요. 양해! 구함!
(정산)
2일 사용료=50만 원
가수 출연료=20만 원
도합=70만 원

 

P.S. MT비용을 저렴하게 썼기 때문에 한 번 더 과 회식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다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근데, 드럼은 장식용인가요? 치시는 걸 못 봤어요. 해서 스틱
두 개를 감사의 선물로 함께 담았습니다.

 

컴퓨터프로그래밍학과 1학년 학생 모두 올림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 문 열고 최고 많이 번 날이로구나. 드럼스틱까지? 이놈들 은근히 매력이 있네. 두들겨봐야겠는걸. 하지만 50만 원은 돌려주자.”
“아빠, 내가 그 학생들 또래라 잘 아는데, 그러면 더 미안해하고 무안해할 수 있어. 우리세대는 어렸을 적부터 기브앤테이크를 분명히 익혀왔거든. 그래도 적게 들인 거지 뭐. 내 친구들을 보면 이보다 훨씬 더 들여서 MT가더라. 이건 받아두는 게 좋아, 아빠. 하여튼 간에, 아빠, 이번 기회에 영업전환해 보지 그래? MT전용 라이브카페에다가 전업가수로 말이야.”
“이 놈이... 근데 정말 재밌긴 했을까? 내가 노래... 좀 불렀니? 기타실력... 는 거 맞아? 괜히 듣기 좋으라고 고놈들이 하는 말이겠지?”
“예. 사장님. 늘었습니다. 그것도 많이. 무엇보다도 능청이 늘었거든요. 능청이 노래실력이니깐. 짱 가수님!”
“이 녀석이? 애비를 골려 먹고 있네. 출연료 20만 원이라, 나를 봉으로 보진 않았어, 그치?” 글.그림=오동명/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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