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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소설] 라이브 카페, 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20)

20. Vincent

 

이제
당신이
내게 말하려던

 

<시래기를 맛나게 활용하는 법>

 

1. 시래기국 만들기
=물+시래기+국멸치+다시마 3쪽+무 반절을 채 썰어 넣기.
다음, 푹 끓인 후 조선된장을 넣고 1분 정도 더 익힌 후
기분 좋은 마음으로 드시면 됩니다.
2. 시래기밥 만들기
=씻은 쌀 위에 얹어서 고슬고슬하게 밥하기
다 된 시래기밥에 고추장 풀어 드세요.
옆 사람 쓰러지지 않나 조심하고요.
3. 생선조림
=시래기를 냄비에 깔고 그 위에 생선 얹고 양념장 부어 뭉근히 익힘.
둘이 먹을 때 조심하세요. 혼자 먹으면 더 위험하겠지요?
둘이 먹다가 혼자 죽어도 모를 그 맛이 시래기에 담겨 있답니다.
4. 시래기 보관법
=냉동보관하면 1년 동안 꺼내 먹을 수 있음.
냉장이 아니라 꼭 냉동입니다.
두고두고 맛나게 우려먹기.

 

 

미국의 타샤 튜더 할머니처럼 사는 부부도「나는 서툴다 고로 존재한다」의 단골손님이다. 아내는 타샤처럼 화가며, 남편은 농부다. 또한 아내는 농부며 남편은 화가다. 함께 30여 년을 살다보니 직업도 섞였다. 이들이 밭에서 직접 거둬들인 거라며 시래기와 무를 놓고 갔다. 살뜰한 레서피도 담겨있었다.

 

30여 년 전, 그림만 그리며 살던 40대 초반의 처녀는 시골 논길을 걷다가 물동을 지고 가는 한 사내를 바라보게 되었다. 노을이 짙어질 무렵의 실루엣은 마치 밀레의 <만종>을 보고 있는 듯했다. 발이 마음을 따라 가고 있었다. 사내는 모델이 되어주었고 남편이 되어 왔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그 때, 그림이 그려지질 않았어요. 머리에선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으니 붓이 움직일 리 없었지요. 그래서 무작정 떠돌아 다녀보자며 발 닿는 대로 걷고 있었을 때였지요. 한 달은 그렇게 돌아다녔을 겁니다. 그 때 제주도에서 자네를 만났어요.”

 

따라가면서 그렸다는 30년 전 스케치는 주방 맞은편 사방 중에 그나마 가장 넓은 벽면에 보기 좋게 걸려 있다.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저 스케치가 내가 그린 그림 중에 제일 맘에 들어요.”

 

스케치를 하면서 화가 쿠르베의 말이 떠올랐단다.
‘누구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더더구나 쉽게 돈 벌기 위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다.’던.

 

“자네를 만나면서 내 속에 잡고 또는 잡혀 살던 타인의식이 없어졌거든요. 명성이라고 하나요, 명예이기도 할 거구요. 그에 사로잡혀 붓을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줬지요. 자네 덕에 이로부터 난 아주 자유로워졌고요.”

 

얼굴이며 손등이며 검게 그을려 주름이 더 굵게 뵈는 농부는 피식, 그녀 옆에서 웃기만 했다. 이 말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자네 덕을 내가 더 많이 봤지. 내가 준 게 뭐 있다고 그려.”
“안 그래 뵈지요? 집에선 나보다 더 말이 많아요. 자네가 얼마나 수다쟁이인데요.”

 

 

또 피식 웃기만 할 뿐, 농부가 수다쟁이로는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스케치 외에 그들이 두고 간 CD 속에는,

 

이별 후의 사랑은 어디로 가나?
그윽하게 나를 바라보던
당신의 눈길은 어디로 갔나.
당신의 미소가 불러오던
기적은 어디로 갔나.
늘 그 자리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그토록 위대한 사랑은 어디에 있나?

 

이 노래를 내게도 틀어주곤 하다가 아버지가 혼자 더 자주 듣는 곡이 되었다. 아버지와는 그 노래가 들리는 영화, <사랑의 추구와 발견>을 인터넷으로 찾아 함께 보았다.

 

“그토록 위대한 사랑으로 지금 살고 계시지않나요?”

 

내가 한국의 타샤 부부에게 물으면,

 

“두 사람 간의 사랑만으로 사랑이 위대해질 수 있을까?”

 

농부의 아내와 화가의 남편은 그토록 갖고 싶은 아이가 없다. 아내는 제 자식을 안는 대신 아이들을 그리며 보듬었고 동화의 삽화를 주로 그려왔다. 그들의 자녀로 탄생시킨 캐릭터 꼬마가 ‘고강이’이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섞어 놓은 사내 아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세상의 중심이자 핵심이라는 뜻에서 고갱이로서의 ‘고강이’로도 들리는군요.”

 

아버지가 초들어 말하자,

 

“자네하고 똑같은 말씀을 하시네. 난 거기까진 깊이 생각지 못했는데... 남들도 그렇게 들어주겠지요?”

 

물동 지고 있는 남편과의 첫 대면은 스케치를 가지고 오던 날이었다. 소중하고 귀중한 작품을 허술한 곳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저어하며 마다했지만...

 

“그림으로도 서툴고 보잘것없는 빛바랜 스케치를 누가 탐내겠어요. 탐을 내서 훔쳐가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좋겠군요. 우리가 처음 이곳 카페에 왔을 때 이 스케치가 잘 어울리는 곳이라며 저희 자네들끼리 마음이 맞았답니다. 우리를 만나게 한 스케치이지만, 우리는 가슴에 품고 살고 있으니 바라볼 필요가 없거든요.”
아버지는 노래로 화답했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
the silver thorn of bloody rose
like crushed and broke on the virgin snow
......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is true
...... 」

 

이제야 당신이 애써 나에게 말하려던 걸 알겠어요.
사람들을 어떻게 자유롭게 하려 했는지를.
그들이 듣지도 알지도 못했지만
아마도 지금은 알아들을 수 있겠지요.
그들이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다 해도
여전히 당신의 사랑은 진실하니까요

 

 

“내 자네, 말 많죠?”

 

할머니 농부의 아내가 넌덕을 떠는 모양새는 꼭이 소녀와 같다. 우리 모두 꺄르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화가라는 말씀을 처음 듣고 문득 고흐가 생각났어요. 해바라기가 흐드러지게 핀 들판에서 그림을 그리던 고흐도 아마 비슷했을 겁니다. 우리 집도 고흐가 살던 집 같이 노란색으로 바꿀까요? 두 분한테서는 고흐의 박복한 삶과는 달리 살아있을 때도 행복한 고흐로 두 분을 떠올렸지요. 물감을 잔뜩 묻힌 앞치마를 입고 처음 우리 카페로 들어오셨지요?”

 

칠순이 훌쩍 넘은 부부가 서로를 ‘자네’라며 나누는 대화는 참으로 젊어보였다. 청년 같았다.

 

“저분들처럼 늙을 수 있는 것도 큰 복이지. 마음으로 늙는 것 말이다. 곱다고 표현하면 맞을까?”
“아빠도 그렇게 살고 있어.” 글.그림=오동명/ 다음 주 이 시간에 계속>>>
 

 

오동명은? =서울 출생.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사진에 천착, 20년 가까이 광고회사인 제일기획을 거쳐 국민일보·중앙일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했다. 1998년 한국기자상과 99년 민주시민언론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사진으로 세상읽기』,『당신 기자 맞아?』, 『신문소 습격사건』, 『자전거에 텐트 싣고 규슈 한 바퀴』,『부모로 산다는 것』,『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울지 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와 소설 『바늘구멍 사진기』, 『설마 침팬지보다 못 찍을까』 등을 냈다. 3년여 전 제주에 정착, 현재 제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자연과 인간의 만남을 주제로 카메라와 펜, 또는 붓을 들고 있다. 더불어 한라산학교에서 ‘옛날감성 흑백사진’을, 제주대 언론홍보학과에서 신문학 원론을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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